내 인생의 의미 있는 사물들
셰리 터클 엮음, 정나리아.이은경 옮김 / 예담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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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결혼하고 한 10년쯤 지나면 슬슬 버려야 할 것 들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어쩌면 그 이전부터 시작되었는는데 기억을 못하고 있을 수도 있다.  사람마다 개인적 편차가 있겠지만 자신이 쓰던 물건을 버리는 일은 그렇게 쉬운 것만은 아니라고 본다.  누구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물건일 수도, 또는 세상 무엇보다도 소중한 물건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같은 대상을 두고 이렇듯 다른 판단이 내려지는 것은 함께 한 세월의 무게가 한 몫 하는 듯하다.  어떤 사물에 있어 그 형태와 쓰임은 세월을 견뎌내지 못하고 스러진다 할지라도 세월에 깃든 사물의 영혼은 끝내 사라지지 않을 것처럼 보인다.  마치 육체가 쇠잔한 노인에게도 거대한 추억의 구조물이 영원히 살아있는 것처럼 말이다.

 

"'의미 있는 사물'이라, 참으로 달콤한 말이 아닐 수 없다.  아련히 떠오르는 과거에 희열을 느끼고 어린 시절 즐거운 한때의 추억과 함께 진한 향수가 몰려올 때 우리는 그런 말을 쓴다.  하지만 지금의 나에게는 참으로 아픈 말이다.  그렇다.  우리 가족은 앞으로 영원히 평범한 가족이 될 수 없으리라는 것을, 우리 가족사는 동화 같은 해피엔딩이 결코 아니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어린 내 눈에 이상적이었던, 불행이 시작되기 전의 가족의 모습을 형상화하기 위해 나는 쉽게 막내 여동생을 그림에서 제외해버렸다."   (P.127)

 

MIT대학에서 예술사학을 가르치는 캐롤라인 A 존스는 어린 시절 자신이 그렸던 한 장의 그림을 보며 서글퍼 한다.  이렇듯 우리는 어떤 사물을 통하여 넘을 수 없는 시간의 벽을 단숨에 통과한다.  그리고 우리가 물리적 시간을 그렇게 거슬러 올라 닿게 되는 어느 순간에 우리는 비로소 감성의 언어를 배우게 되는지도 모른다.  이성의 언어에 종속되어 살았던 긴 시간 동안 우리 행위의 숱한 오류와, 삶의 은유와, 숨겨진 비밀들이 뒤늦게 배우는 감성의 언어를 통하여 제자리를 찾고 많은 비밀들이 조금씩 밝혀지게 되는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그제사 철이 들고, 삶의 보폭이 얼마나 느려져야 하는지 깨닫는다.

 

이 책은 하버드, 코넬, MIT 등의 세계적인 석학 34인이 평범한 주변의 사물들에서 느꼈던 그들만의 특별한 에피소드를 들려줌으로써 그들의 인생철학과 삶의 가치를 전해주고 있다.  누구에게는 첼로가, 누구에게는 발레 슈즈가, 또는 할아버지의 폴라로이드 카메라가, 또는 어린 시절 입었던 노란 우비가 어느 순간 특별한 의미로 다가온다.  기억의 저편에서 펼쳐지는 황홀한 축제를 어찌 이성의 언어로 설명할 수 있을까?  하늘을 향해 솟구치는 그 많은 불꽃들을 어찌 식은 가슴으로 느낄 수 있을까?

 

"하지만 여전히 지나가는 급행열차를 보면 저 반대편의 세상이 떠오른다.  열차는 잊고 있던 기억을 되살린다.  길게 늘어선 향기로운 유향나무, 공을 주우러 기어올라갔다가 너무 뜨거워 손도 대지 못했던 녹슨 철제 지붕, 불현듯 코끝에 다가오는 흙먼지 속의 빗방울 냄새, 그리고 작고 호기심 많은 한 아이가 있다.  태양이 작열하는 고요한 시골길을, 놀랍도록 젊고 아름다웠던 부모님과 함께 걸어가고 있는 한 아이가."    (P.212)  

 

나는 지금 누렇게 변색되고 습기를 머금어 찌들 대로 찌든 나의 오래 전 일기장을 읽고 있다.  찬바람이 몰아치는 눈길을 벙어리 장갑을 낀 한 소년이 걷고 있다.  버석버석 심하게 튼 손을 호호 불며 시린 어깨를 옹크린 채 홀로 걷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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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청춘의 격렬비열도엔 아직도 음악 같은 눈이 내리지 민음의 시 104
박정대 지음 / 민음사 / 200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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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박정대의 시를 읽으면 아련한 슬픔이 묻어나곤 한다.  그것은 아마도 나만이 느끼는 주관적 감정일 수 있다.  왜 그렇게 느꼈을까?  그것은 시인과 내가 겪었던 추억의 공유, 적어도 같은 시대, 같은 지역에서 느꼈던 막막함이 아닐 수 없다.  시인은 정선에서, 나는 고한에서, 산들로 둘러싸인 육지 속의 섬과 같은 곳에서 자랐다.  석탄 트럭이 굉음을 울리며 도로를 질주하고, 인생의 막장과 같은 곳으로 몰려든 사람들이 악다구니를 쏟아내는 곳.  삶은 생각만큼 아름답지도, 살 만한 가치가 있는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부모의 한숨 소리에 설핏 잠이 깬 그 순간에 배웠다.  생존본능의 포로였던 아이들은 전혀 아이답지 않았고, 오직 살아남아야 한다는 슬픈 매질이 내 영혼에 문신처럼 남았다.

 

4 만항재

아무리 달려도 이정표가 나타나지 않아 뒤돌아 보면 좁은 산길 아래로 폭포처럼 쏟아지는 나무들의 물결, 허공의 바다를 털털거리며 지난다.  갈매기 한 마리 날지 않는 이곳은 전생에 무슨 바다였나.  길이 좁아질수록 생각은 날아가고, 길이 험해질수록 더욱 깊어지는 그리움의 계곡, 엄나무들은 엄숙하게 머리를 길렀지만 식솔들 이끌고 산 중턱까지 와서 정착한 낙엽송, 참나무 이주민들.  아무리 달려도 너에게 가는 길은 보이지 않아 어느새 다다른 하늘 밑, 침묵은 끝나지 않고 바람 끝에 매달려 와서 끝내 만항재, 해발1,330m라고 씌어진 곳에서 불어가는 음악, 페루, 나비, 바람. 

 

5. 음악, 페루, 나비의 경계를 지나서

오래도록 꿈꾸던 것, 그것을 나는 만항재에서 본다.
만항재는 음악과 페루와 나비의 경계선. 이 경계선을 지나면
음악만이 남을 것. 그때부터 나는 눈을 버리고 음악을 얻을 것.
그리고 당신이 어느 날 참 많이 어두워져서 그때부터 음악소리 들린다면,
그것이 바로 나의 이름이다.
('열두 개의  촛불과 하나의 달 이야기' 中에서)

 

그랬다.  만항재를 넘으면 또 다른 세계가 펼쳐진다.  전나무 숲에서 홀연히 나타나는 정암사와 진신사리를 모셨다는 수마노탑. 

황동규 시인은 태백에서 만항재를 넘어 몰운대로 차를 몰며 이렇게 읊었다. 

고개가 가파르다./자장율사가 진신사리 봉안했다는 정암사 가는 길/그도 헐떡이며 넘었으리라./앵앵대는 소형차를 길가에 그냥 내버리고 싶다./가만, 자장이며 의상 같은 쟁쟁한 거물들이/경주, 황룡사, 부석사를 버리고/ 왜 강원도 산 속을 방황했을까?//왜 자장은 강원도 산골에서 세상을 떴을까?/입적지 미상의 의상도 행려병자가 아니었을까,/이곳 어디쯤에서?/가파른 언덕을 왈칵 오르자/해발 1280m의 만항재./태백시 영월군 정선군이 서로 머리 맞댄 곳./자글자글대는 엔진을 끄고 차를 내려 내려다보면/소나무와 전나무의 물결/가문비나무의 물결/사이사이로 비포장도로의 순살결/저 날것,/도는 군침/

 

태백시에서 만항재를 넘으면 바로 고한이다.  석탄산업의 부흥기였던 7,80년대에  고한은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사람들로 넘쳐났었다.  그 주변 지역은 다 그랬다.  전국의 사투리가 모두 모여 새로운 사투리가 생겨나고, 사람들은 그 억센 사투리를 시나브로 닮아갔다.  허술하기 짝이 없는 마스크와 헬멧을 쓰고 막장에서 꼬박 8시간을 일했다.  요새와 같았던 유배지에서 돈 벌어 도시로 나갈 꿈을 꾸었던 사람들, 그러나 천형과 같은 광산일은 대를 물려 이어지고, 지친 사람들은 '잊혀진 곳에서 잊혀질 곳으로의 비상'을 기다렸다.  도로도, 집도, 심지어 냇물까지 검었던 그곳에서 오직 산과 하늘만 푸르렀다.  봄이면 태백산맥을 넘은 높새바람이 석면 슬레이트 지붕을 날리고, 겨울이면 방 안의 물도 꽁꽁 얼었던 그 혹독한 지역에서 철마다 아이들은 태어나고 또 그렇게 질긴 목숨을 지켜갔다.

 

박정대 시인은 그 매섭던 바람의 끝자락을 닮았다.  서정적이고 낭만적인 그의 시는 때로는 긴 호흡으로, 때로는 순간에 정지한 채로 자연을 모방한다.  그 시뮬아크르의 세계는 현실의 벽을 자유자재로 넘어 상상의 세계로 안내한다.  태백준령에서 자란 소년이 간절히 바라던 그 상상의 세계로.  높은 산맥을 따라 점점이 흩어진 가난한 마을들, 그 육지 속의 격렬비열도엔 음악 같은 눈이 내리고 눈처럼 고운 꽃가루가 흩날리기를...  중년의 시인은 아린 손마디처럼 절절한 꿈을 꿈 속에서도 바라나 보다.

 

나는 삶이 봄바람처럼 느슨하다 느낄 때 박정대의 시집을 읽는다.  그의 슬픔과, 꿈과, 음악과, 나비로 사라지고픈 불멸의 잔상과 먼 이국의 어느 섬과, 사람들.  시인의 눈에 촛불처럼 흔들리는 삶.

 

10 밤의 여행자들

........

허공에다 당신은 매일 간절한 키스를 한다. 그 입맞춤이
대지의 가슴에 닿아 그곳에서 아름다운 나무들이 태어나기를,
그 나무 아래서 사랑하는 사람과 오래 함께 머물 수 있기를 기도한다.
그것이 내 이름이다.
어느 날 당신은 창밖에 환하게 핀 앵두꽃을 보고
밤이 어디론가 사라진 줄 알았다.
당신은 그 꽃을 보면서 이유를 알 수 없는
슬픔에 눈물을 흘렸다.
눈물이 때로는 음악이 된다는 것을 당신은 알고 있다.
그래서 당신은 매일 밤마다 촛불을 켜 들고 어디론가 여행을 떠난다,
그것이 내 이름이다. 
   <'열두 개의 촛불과 하나의 달 이야기' 中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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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 중에 이름이 '종북'인 분이 있다.  자연을 사랑하고 사람을 아끼는 순한 분이다.  가끔 그분을 만날 때면 '나도 저렇게 늙을 수만 있다면'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그런 면에서 나만큼 철저한 종북주의자도 세상에 다시 없겠다 싶다.  그런데 각종 언론이나 인터넷에서 종북 운운하는 기사를 볼 때마다 어깨가 으쓱하고 자랑스럽기는커녕 영 마음이 개운치 않은 게 사실이다.  내가 아는 종북氏는 꽤나 연로하신 분인데 그분보다 나이도 한참이나 어린 분들이 뉘집 개이름 부르 듯 '종북, 종북'할 때면 나도 모르게 욱하는 심정이 아니 들 수 없기 때문이다.  곁에서 그런다면 한 대 쥐어박기라도 할텐데 그마저도 어려우니 속으로만 꾹꾹 눌러 참곤 한다.  동방예의지국에 사는 모든 사람들은 내 심정을 충분히 이해하리라고 본다.

 

한번은 내가 "어르신, 요즘 유명인사가 다 되셨던데요?" 하고 농을 치자 대체 뭔 소린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시기에 "인터넷이건, 방송이건 어르신 함자가 안 나오는 곳이 없어요."하자 그제서야 알겠다는 듯 밝게 웃었다.  그리고 "그렇다고 부모님이 지어주신 이름을 이제 와서 바꿀 수 있남?" 하시며 혀를 끌끌 찼다.

 

나는 한 국가가 다양한 사람들로 채워지면 질수록 더 성숙한 사회라고 믿는 사람이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서로가 서로를 비난해서는 안 된다는 암묵적 전제조건이 따른다.  내 의견이나 이념이 다른 사람과 다를 수 있다.  그리고 다른 것이 어쩌면 당연할 테고.  물론 그렇게 일방적으로 비난 일색인 사람의 인간성이 나쁜 것이니 그것도 다양성의 한 측면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그러나 최소한의 예의는 지켜야 하지 않을까?  내가 '종북氏'라고만 했어도 이런 글까지 쓰지는 않았을 것이다.  내 주위에 '좌빨'이나 '수꼴'이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은 없으니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행이지만 말이다.

 

나는 참 궁금한 것이 만일 우리나라가 통일이라도 된다면 그때도 '종북'을 외치는 사람이 있을까 하는 점이다.  아마 없겠지 싶다.  그렇다면 이 용어는 한시적으로 쓰일 수 있는 말이고 생명력이 그리 길지도 않은, 한마디로 좋지 않은 말인데 왜 그렇게 그 말을 쓰지 못해 안달하는 것일까?  정히나 쓰고 싶다면 '종북氏'라고나 하던가.  혹시 그 말을 영구히 쓰고 싶어서 통일을 부정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만일 그런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반 인륜적이요, 반 민족적인 사람이 아닐 수 없다.  어찌 그깟 말 한마디 때문에 헤어진 동포들의 가슴에 철책을 칠 수 있을까?  인간이라면 절대 그럴 리가 없다고 믿는다.

 

아무튼 요즘 인터넷 키워드에 '종북'이라는 단어가 다시는 안 보였으면 하고 간절히 바라는 마음에서 이 글을 쓴다.  앞으로는 '종북氏, 또는 종북氏주의자'라고 하자.  그것이 이 땅에 사는 모든 '종북'씨를 욕되게 하지 않는 일이며, 동방예의지국의 국민으로서 우리가 할 도리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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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사랑을 둘러싼 것들 - 그해, 내게 머문 순간들의 크로키, 개정판
한강 지음 / 열림원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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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지처럼 하얘진다'는 표현은 진부하기 이를 데 없다.  그럼에도 종종, 솔직히 말하면 자주 쓰게 된다.  오늘도 나는 이 글을 쓰기 전에 떠오르지 않는 생각을 쥐어짜며 이 말을 했었다.  이렇듯 조금만 주의를 기울여 주변을 둘러보아도 우리가 일상에서 습관적으로 반복하는 것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사실에 놀라게 된다.  그러나 현실에서 내가 진부하다고 놀리면서도 '백지처럼 하얗다'는 말을 자주 쓰는 것과는 달리, 독서 과정에서는 가끔, 아주 가끔은 맘에 쏙 드는 작가를 우연처럼 만날 때가 있다.  진부하지만 전혀 진부하지 않게 느껴질만큼 세련된, 일상에서 흔하디 흔한 말인데도 전혀 새로운 말을 쓰는 그런 작가를 만나면 괜히 긴 손편지라도 써야할 것만 같다.  '한강'은 내게 그런 작가 중 한사람이다.  가볍고 일상적인 글들이 낙엽처럼 깊게 쌓이면 나도 그녀처럼 오래된 토담벽처럼 허물없이 자연스러운 글줄이나 쓸 수 있으려니 하는 헛된 꿈을 심어 준 작가도 그녀였으니 따지고 보면 나는 그녀의 팬이라고 자처하기도 애매한 구석이 있지만 말이다. 

 

<채식주의자>, <바람이 분다 가라>, <희랍어 시간>, 그리고 <노랑무늬 영원>에 이르기까지 그녀는 줄곧 소설쓰기에만 매달렸었다.  마치 그녀에게 소설은 그녀의 삶이자, 생명인 것처럼.  이 책 <사랑과, 사랑을 둘러싼 것들>은 그녀가 쓴 두번째 산문집이다.  그녀가 쓴 첫번째 산문집 <가만가만 부르는 노래>는 자신이 좋아하는 노래와 그에 얽힌 추억들을 다룬, 그리고 자신이 직접 작사, 작곡하여 음반으로 만들기까지 한, 어찌 보면 소설가의 취미생활과 같은 책인 반면에 이 책은 그녀가 아이오와 대학이 주최한 국제창작 프로그램(IWP)에 참가함으로써 만나게 된 사람들의 스케치이다.  즉 미국 아이오와시티에서 체류했던  석 달 반 동안 그녀가 만났던 세계 각국의(주로 제3세계의) 작가들과 그녀가 겪었던 경험들을 다룬 일종의 소품과 같은 책이다.

 

"그날 저녁 마흐무드와 나는 부슬비를 맞으며 헌책방 순례를 했다.  몇 권의 책을 서로에게 사주었고, '초원의 빛'이라는 이름의 단골 책방 2층에서 옷을 말리며 케이크를 들었다.  "사랑이 아니면"하고 마흐무드는 중얼거렸다.  "인생은 아무것도 아니야."  네 살 때 이스라엘군에게 고향을 잃은 뒤 청년 시절에 두 번 투옥되어 4년간의 옥살이를 했던, 그 뒤로 10여 년간 망명생활을 했던 그는 덧붙여 말했다.  "사랑 없이는 고통뿐이라구."  "하지만 때로는"하고 나는 반문했다.  "사랑 그 자체가 고통스럽지 않나요?"  마흐무드는 생각에 잠겼다.  "아니지.  그렇지 않아."  그의 음성은 숙연했다.  "사랑을 둘러싼 것들이 고통스럽지.  이별, 배신, 질투 같은 것.  사랑 그 자체는 그렇지 않아."  그 말을 꺼내기까지 마흐무드의 눈앞을 스쳐간 여인들의 얼굴을 나는 알지 못한다.  그가 그녀들과 보냈던 시간, 나누었던 밀어, 무수한 입맞춤과 어루만짐을 모른다.  다만 그가 그 여인들을 이용하지 않았다는 것, 그때마다 순정을 다했으며 아무것도 바라지 않았다는 것만은 알 수 있었다."    (사랑과, 사랑을 둘러싼 것들-다시, 마흐무드 中에서)

 

작가는 자신이 보았던 그들의 몸짓, 표정, 그들의 말과 표정 하나하나를 담담하게 쓰고 있다.  사랑은 그렇게 호들갑스럽거나 유난을 떨지 않아도 마음과 마음으로 전해지는 것임을 믿는 듯했다.  세상 모든 사람이 '표현하지 않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다'라고 주장할지라도 작가만큼은 마음 속으로 조용히 '사랑은 그만큼 은근한 것'이라며 입술을 깨무는 듯하다.  두꺼운 유리창을 통하여 바라보는 무음의 세상, 세월이 거둬간 습기만큼 파삭파삭해진 그때의 추억을, 그저 스쳐지나간 사람들일 수도 있었던 그들을 오래도록 간직하고 있었나 보다.  나는 오늘처럼 겨울비가 내리는 날에 낙엽처럼 부스러지는 그녀의 추억을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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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강희, 사소한 아이의 소소한 행복
최강희 지음 / 북노마드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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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답다'는 말은 2인칭의 평가인 동시에 1인칭의 결심이다.  그렇게 구분된다는 것은 역설적이게도 결속과 연대를 강화하는 쪽으로 발전한다.  현대인이 점점 더 외롭다고 느끼는 것은 피상적으로는 서로가 서로를 구분할 수 없는 '하나'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쌍둥이처럼 닮은 사람들이 강남대로를 어깨를 부딪히며 걷고 있을 때, 말할 수 없는 외로움이 그림자처럼 따라붙는다.  어쩌면 그림자가 사람들을 끌고 가는지도 모르겠다.  내 곁에 나와 다른 어떤 사람이 존재한다는 느낌, 분명 다른 사람이라고 확신할 수 있을 때의 푸근함, 내가 아니면 그가(또는 그녀가) 내가 지닌 불안감을 날려줄 것이라는 믿음, 동시대의 잔혹함과 아직 닥치지 않은 위기로부터 나를 지켜줄 것이라는 확신은 거울 속의 나에게서는 결코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내가 너가 아닌 나이고자 하는 노력은 너를 위한 작은 배려요, 오직 '나'들만 가득한 망망대해를 향해 내가 보내는 구조신호다.  그러므로 나는 '너'라고 확실히 믿을 수 있는 그를(또는 그녀를) 만나면 반갑다.  이 책의 저자인 배우 최강희는 그런 의미에서 누구 스럽지 않은 몇 안 되는 배우 중의 한 명이라고 말할 수 있다.  자신의 인기를 등에 업고 어떤 의미도 찾을 수 없는 책을 발간하는 연예인들을 보면 사실 좀 구질구질하고 구차스럽지 않은가.  맘에 안 들면 안 읽으면 된다고?  맞는 말이다.  그래서 나는 연예인이 쓴 책은 거의 읽지 않는다.  그러나 최강희의 책은 다르다.  그녀는 나와 다른, 또는 당신과 다른 생각을 가진, 확실히 '너'라고 인정할 수 있는 배우라는 것을 그녀가 낸 이 책(포토 에세이)을 읽고 알았다.

 

"기분이나 감정엔/유통기한이 있는 것 같아.//감정을 끊임없이 되새겨내야 하는 게/내 일이긴 하지만.//웃음엔,감정엔,기분엔 분명히/유효기간이 있는 것 같아.//그러니까,모두./행복할 수 있을 때 행복하기로...//     (P.185)

 

4차원 소녀, 최강동안, 강짱, 골수천사 등 참으로 다양한 수식어를 달고 다니지만 그 무엇도 그녀 자신을 오롯이 설명해주지는 못하는 배우.  언제부턴가 '아, 이거 너무 좋아!'라는 게 없어져서 무엇을 듣고 보아도 감동이 없고 무감각해졌단다.  그때 김C가 준 시규어 로스(Siguar Ros)의 DVD를 보고 아이슬란드에 흠뻑 빠졌었단다.  영상 속에 등장하는 사람들이 입은 아이슬란드의 전통 스웨터부터 색이며 자연이며, 모든 게 그녀를 매료시켰단다.  그래서 그녀는 아이슬란드로 떠났고 꿈만 같은 5일 동안 책 한 권 분량의 사진을 찍었다고 했다.  이 책에는 아이슬란드에서 찍은 사진과 그녀의 생각을 담은 짧은 글들이 빼곡하다.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글과 사진들이 마치 살아서 떼구르르 구를 것만 같다.

 

"매일 매일/어떠한 결심을 만들고,/지우고,/또 결심을 하고.//미워하고, 사랑하고, 용서하고,/또 눈물을 닦고,/애써 웃는 모습을 지어보이고...//또 다른 결심을 하고.//그치만 언제나 휘청이는 쪽은/대단한 결심을 해대는 쪽인 걸.//어쩌면/무엇도 결심하지 않는 쪽이//어쩌면/ 무엇도 포기하지 않는 쪽이//어쩌면/마음을 수없이 열고 닫아/삐거덕거릴 바에야/그대로 방치하는 쪽이...//    (P.198 "놓아주기")

 

때론 잡으려 하면 무너지는 것들이 있다고, 보이지 않는 계단이 있다고, 우리는 서로의 그것들을 바라봐줄 차례라고 그녀는 말했다.   지난 2007년 백혈병 환자를 위해 골수를 기증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져 '기부천사'라고 불리는 그녀, 이 책의 수익금 전액도 미혼모 시설과 환경보호 단체에 기부했다고 한다.

 

"내가 지구를 지켜야 하는 이유는

너를 약속한 시간에 만나고 싶어서야."    (P.190)

 

그녀에게선 삶에 있어서는 누구나 초보인 숙명적인 아픔이 전해진다.  우리는 그것을 '화~'라고 부르자.  다시 한 번 "화~"라고 외치면 화한 박하향이 나지?  가벼운 눈물이 볼을 타고 흐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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