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 최고의 책
앤 후드 지음, 권가비 옮김 / 책세상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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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자신도 미처 알지 못하는 사이에 수많은 사건들이 마치 모래알처럼 자기 옆을 스쳐지나간다는 사실을, 그리하여 그 많은 사건들이 결국에는 나의 기억 속에서는 단 한 번도 깨어나지 못한 채 영원한 침묵으로 잠든다는 걸 종종 잊고 지낸다. 나를 스쳐간 많은 일들, 그러나 나의 기억 속에는 하나도 남아 있지 않은 그런 일들을 나는 어떻게 추억해야 할까. 아쉬움이란 결국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나를 스쳐갔지만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어떤 것들이 시간 속에서 영원히 자취를 감추는 동안 나는 온전한 작별 인사도 하지 못했는데 말이다. 나는 이따금 소설을 읽는 목적이 바로 거기에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다. 내가 소설을 읽음으로써 의식에서 사라진 많은 것들을 다시 되살릴 수는 없지만 적어도 나는 내가 살았던 그 시간 동안 부지불식간에 사라져간 많은 일들이 있었다는 사실만큼은 다시금 되새기게 되니까. 마음에 되새기는 횟수만큼 나는 조금씩 겸손해질 수 있으니까.

 

"시간에서의 이탈, 사차원이라는 개념이 지금 자기가 느끼는 것, 겪고 있는 것을 정확히 설명해주는 것 같았다. 그렇게 생각하자 어느덧 어릴 적 침실로 돌아와 있었다. 릴리의 침대가 자기 침대 맞은편에 일년 동안 주인 없이 놓여 있었다. 시트와 얇은 여름용 싸개가 꾸깃꾸깃 뒤집혀 있었다. 마치 어린 그녀가 막 거기서 나왔거나 금방 다시 들어갈 것 같았다. 에이바가 무릎에 <클레어에서 여기까지>를 평쳐놓고 읽으며 그 책이 오로지 자기만을 위해 쓰인 책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정말 그랬던 걸까? 지금도 궁금했다." (p432~p.433)

 

미국의 여류 작가 앤 후드는 그녀의 소설 <내 인생 최고의 책>에서 우리가 흘려보내는 시간의 잔물결을 좀 더 세밀한 시선으로 바라보아야 한다고 말한다. 자신의 의식 속에 가둬두지 못한 많은 일들이 바람처럼 사라져갔음을 상기시키면서 말이다. 책에 등장하는 에이바도 그런 실수와 아픔을 간직한 여인이다. 어린 시절 동생의 죽음으로 평생 죄책감에 시달렸던 그녀는 설상가상 이혼의 고통까지 겪게 됨으로써 마음을 편히 내려놓고 의지할 수 있는 대상을 모두 잃고 만다. 그때 그녀의 친구 케이트가 구세주처럼 다가온다.

 

미국의 가장 작은 주 로드아일랜드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 소설은 프로비던스 지역에 위치한 아테나이움 도서관의 아래층 방에서 매달 두 번째 월요일 이루어지는 북클럽 모임에 에이바가 가입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북클럽은 해마다 주제를 달리하여 진행하는데 에이바가 가입했을 때의 주제는 '내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책'이었다. 북클럽의 회원들은 8월과 12월을 제외한 열 달 동안 각자가 선정한 10권의 책을 읽고 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에이바의 오랜 친구이자 사서로서 북클럽 모임을 주재하는 케이트는 회원들이 정한 책의 목록을 기초로 하여 각각의 달에 읽을 책을 선정한다. 12월에 새로 가입한 에이바가 고른 책은 로절린드 아든의 <클레어에서 여기까지>였다. 이 책은 물론 작가가 꾸며낸 가상의 책이지만 말이다. 다른 회원들은 <오만과 편견>, <위대한 개츠비>, <안나 카레니나>, <백 년 동안의 고독>, <제5도살장> 등 다양했다.

 

25년간에 걸친 결혼 생활이 파탄에 이른 후 가입한 북클럽이었기에 에이바는 처음 얼마간은 북클럽에 잘 적응하지 못한다. <오만과 편견>, <위대한 개츠비>의 경우에는 숫제 읽지도 않고 영화를 보는 것으로 대체하려다가 회원들에게 들켜 창피를 당하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에이바는 북클럽 멤버들에게 잘 보이고 싶은 마음에 저자가 간담회를 해주기로 했다며 거짓말을 하고 저자와 출판사를 찾기 위한 여정에 돌입한다. 이러는 과정에서 에이바는 북클럽 멤버들의 사정을 하나씩 알아가게 되고, 남편과 아이들에 매여 자신의 정체성을 잃고 살았던 지난 날들을 되돌아보게 된다. 삼십 대 초반의 젊은 남성인 루크와 잠시 연인 관계를 맺기도 하고, 여섯 아이를 키워낸 루스의 부지런함을 부러워하기도 하고, 에이바와 같은 날 들어온 신입 멤버이자 사별한 아내를 그리워하는 존의 마음을 토닥이기도 한다. 책을 매개로 멤버들과의 교류가 잦아짐으로써 에이바는 점차 자신의 삶을 찾아간다.

 

에이바가 어렸을 때 그녀의 엄마 샬럿은 서점을 운영하면서 두 아이를 돌보느라 늘 바빴고, 보험회사 직원이었던 아버지는 무신경한 사람이었다. 엄마 샬럿과 비어트리스 이모는 서점을 같이 운영하며 샬럿이 바쁠 때는 비어트리스가 아이들을 돌보곤 했다. 재주가 많고 활동적이었던 릴리는 그날 높은 나무에 올라갔었고, 에이바는 그 밑에서 책을 읽고 있었다. 엄마 샬럿이 서점으로 출근하고 아이들을 돌보기 위해 왔던 비어트리스 이모가 설거지를 하는 동안 릴리가 나무에서 떨어졌다. 구급차가 릴리의 시신을 수습했고, 사건을 담당했던 형사 행크 빙엄이 왔고, 릴리의 사고 소식을 들은 샬럿과 아버지 테드가 왔다. 릴리가 나무 위에 올라가 있었을 때 그 누구도 릴리를 돌보지 않았다는 죄책감은 가족 모두에게 큰 상처로 남았다. 비어트리스 이모가 종적을 감추었고 엄마 샬럿의 차가 제임스타운 다리 위에서 추락했다. 유서도 없었고 시신도 발견되지 않았지만 에이바는 엄마가 자살했다고 믿었다. 사실 샬럿과 행크 빙엄은 부적절한 관계에 있었고, 릴리가 나무에서 떨어지던 날도 그들은 함께 있었다.

 

릴리와 엄마를 잃고 슬픔에 빠져 있을 때 누군가로부터 받았던 책이 <클레어에서 여기까지>였다. 에이바는 그 책을 통해 다시 살아갈 용기를 얻었다. 남편 짐을 만났고, 아들 윌과 딸 매기를 낳았다. 누구보다도 성실한 아들 윌과는 다르게 딸 매기는 약물과 남자 문제로 부모의 속을 썩이던 아이였다. 짐과 헤어졌을 때 윌은 아프리카 우간다에서 산악 고릴라 연구를 하고 있었고, 매기는 미술사를 공부하겠다며 피렌체로 유학을 떠나 있는 상태였다. 그러나 매기는 학교를 그만두고 독일인 남학생을 따라 파리로 향한다. 파리에서 매기는 마약과 섹스에 취해 걷잡을 수 없이 추락한다. 가족들과의 연락도 끊은 채 죽음 직전까지 이르게 되었던 매기는 결국 경찰에 의해 구조된다. 매기의 상태가 걱정되었던 에이바는 짐에게 연락하였고 파리에 갔던 짐으로부터 무사하다는 소식을 전해듣는다. 그리고 작가 로절린드 아든을 찾는 과정에서 에이바는 자신의 과거와 연결된 새로운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제5도살장>을 인생의 책으로 선정했던 존은 이렇게 말한다.

 

"책이라는 게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했던 적이 한 번도 없었어요. 그런데 솔직히, 오늘 밤 독서 모임 때문에 이 책을 다시 읽는데 시간 여행이니 뭐니를 생각하니까 기분이 한결 나아지더라고요. 저도 이제 뭔가를 좀 이해했나보죠?" (p.436)

 

인생의 어떤 순간에 벌어진 일이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기억 속에 착 달라붙어 삶의 발걸음을 더디게 하는 경우도 있고, 기억에도 없던 어떤 일이 한참이나 지난 어느 순간에 내 삶 속으로 파고들기도 한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의 삶을 스스로 계획하여 자신의 의지에 따라 살아가고 있는 듯하지만 사실 우리는 시간의 경과에 따른 달라진 환경에 그때그때 적응만 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삶에서 오는 충격으로 인해 우리가 잠시 방향을 잃고 주어진 환경에 적응하지 못할 때 책은 종종 마음의 안식처가 되기도 한다. 마음을 닫고, 두 눈마저 질끈 감았던 어느 날, 마음을 다잡고 읽었던 책은 내가 다시 사람들을 향해 마음을 열게 하고, 감았던 눈을 뜨게 한다. 그 순간에도 여러 일들이 내 곁을 스쳐지나갔음을 상기시키면서 말이다. 불어오는 바람 속에서 가을의 기미가 느껴지는 것처럼 지난 여름을 스쳐간 많은 일들이 잘게 부서지는 오후, '내 인생 최고의 책'을 생각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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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담장을 따라가다 보면 직선으로 꺾이는 모퉁이에 등나무 정자가 있고 그곳으로부터 몇 발자국 떨어진 곳에 자귀나무가 한 그루가 서 있다. 나는 그곳을 지나칠 때마다 정자와 자귀나무의 조합이 어쩐지 낯설고 영 어색하게만 느껴지곤 한다. 정자 옆에 자귀나무를 심자고 했던 건 도대체 누구의 발상이었을까. 20년도 더 된 오래된 아파트인 이곳으로 내가 이사와 살게 된 건 기껏해야 5년 남짓이니 새내기와 다름없는 내가 그 이전 상황을 알 길은 없지만 그곳에 자귀나무가 심어진 전후 사정이 왠지 궁금해지는 것이다. 아파트가 처음 지어질 때 조경을 담당했던 업자의 손에 우연히 어린 자귀나무 한 그루가 들어왔던 것인지, 건설회사의 담당 소장이 유난히 자귀나무를 좋아하여 그곳에 자귀나무를 심도록 강권했던 것인지, 아니면 내가 이사오기 몇 해 전에 아파트 관리소장의 직권으로 자귀나무가 심어진 것인지...

 

우리 사회에도 이처럼 영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어색한 조합들이 수도 없이 많다. 언론인과 기업인, 검사와 기업인 등 일반인이 생각하기에는 두 그룹이 서로 반목하며 소 닭 보듯 데면데면 지내는 게 당연하다 싶지만 우리나라에서 그들은 상식을 깨고 오랜 세월 비교적 친밀하게 지내왔던 것인지 엊그제 언론에 보도된 장충기 전 삼성 미래전략실 사장에게 보낸 문자 메시지 내용을 보면 이게 도대체 21세기 대한민국의 모습이 맞는지 의심부터 들었다.

 

보도에 따르면 아들의 입사 청탁을 부탁했던 CBS 전 간부, 삼성의 광고액을 늘려달라고 부탁했던 문화일보의 간부, 자신을 사외이사로 뽑아달라고 청탁했던 서울경제의 전 간부, 삼성의 면세점 사업을 도와줄 수 있는 구체적 방법을 알려달라는 매일경제의 한 기자, 이건희 회장의 성매수 사건을 두둔하는 듯한 연합뉴스 관계자, 삼성에 근무하는 사위의 인도 파견을 요청하는 임채진 전 검찰총장 등 문자 메시지 내용과 문자를 보낸 주체자들의 직업은 다양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같이 장 사장과의 친밀함을 내보이는 한편 '사장님의 하해와 같은 배려와 은혜를 간절히 앙망하오며'와 같은 듣기에도 민망한 저자세의 표현도 서슴지 않았다.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말이다.

 

새로운 정부가 세워진 지 불과 3개월 남짓, 짧다면 짧은 이 기간 동안 우리는 우리 사회 곳곳의 부적절한 관계를 정말 많이도 보아왔다. 이와 같은 일들이 언론에 보도되지 않았더라면 아마도 그들은 누구누구와 친하다는 게 마치 자신의 위세를 드러내는 한 사례인 듯 어깨에 힘을 주며 말했을지도 모른다. '나 이런 사람이야' 하는 식으로 말이다. 그러니 최고권력자인 대통령과 친밀했던 최순실과 알고 지낸다는 건 얼마나 큰 위세였겠는가.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 마치 권력과 위세의 상징인 양 치부되었던 구시대의 풍경이 조금씩 드러나고 있다. 어울리지 않는 조합을 그저 부러운 눈으로만 보아왔던 게 아닌지 나부터 반성해본다. 정자와 자귀나무처럼 부조화는 부조화로 바라보는 게 옳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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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를 모르는 멋진 문장들 - 원고지를 앞에 둔 당신에게
금정연 지음 / 어크로스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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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로부터 '대체로 그렇다.'는 말을 듣게 될 때 나는 조금 슬프다. 그렇지 않은 어떤 것, 세상의 평범에서 슬쩍 비껴선 어느 별종, 다름에 이르기 위한 저만의 과정에 있는 어느 주체, 그의 자존심, 그의 별남을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폄훼하거나 깎아내리는 듯한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평범을 거부하는 어느 소수자의 몸짓이 때로는 딱해 보이기도 하지만 다수의 편에 서서 그들 자체를 숫제 지워버리기라도 하려는 듯 '대체로 그렇다.'고 누군가 말해버린다면 그나마 자신의 존재를 알리기 위해 고군분투하던 그들의 노력마저 허사로 만드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 말이다.

 

생계형 서평가 금정연의 글은 왠지 짠하다. 2010년 초봄, 온라인 서점 MD로 일하며 쏟아지는 신간 속에서 책을 읽지도 못한 채 책과 싸우는 날들을 거듭하다 책을 읽고 글을 쓰려고 회사를 그만두었다는 저자. 8년차 프리랜서인 그의 세 번째 서평집 <실패를 모르는 멋진 문장들-원고지를 앞에 둔 당신에게>는 글쓰기 책은 아니다. 전문 서평가로서 첫발을 내디딘 순간부터 지금까지의 기록인 동시에 생계독서가인 그의 눈에 띄었던 34개의 멋진 문장을 그의 삶에 견준 책이다.

 

"나는 서평가, 다른 이들의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우스꽝스러운 직업을 가진 사람이다. 하지만 많은 경우 내 서평은 한 권의 책이 아닌 하나의 문장에서 시작되었다. 혹은 둘. 셋. 어쩌면 다섯. 롤랑 바르트의 말처럼 뭐라도 쓰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문장이거나, 리처드 웬트워스의 말처럼 마음에 들어서 내 것으로 만들고 싶은 문장이거나, 이 책은 그렇게 쓴 글들을 모은 것이다." (p.10)

 

저자가 건져올린 하나의 문장은 베르나르 키리니의 단편 '첫 문장 못 쓰는 남자'나 폴 오스터의 '달의 궁전',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알베르 카뮈의 '시지프 신화', 장 그르니에의 '섬', 마루야마 겐지의 '인생 따위 엿이나 먹어라', 한승태의 '인간의 조건', 찰스 부코스키의 '글쓰기에 대하여' 등 다양하다. 그러나 이 책을 읽는 독자는 저자가 발견한 멋진 문장에 감탄하기보다는 그 문장에 슬몃 끼어든 저자 자신의 이야기(때로는 푸념)에 더 눈길이 간다. 저자에 대해 그저 '찌질하기는...'이라고 생각하면서 때로는 혀를 끌끌 차기도 하고, 웬지 모를 우월감에 우쭐해지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서른 살이 될 때까지 잡문으로 생계를 유지했고 결국 그것 때문에 인생의 낙오자가 되었지만 거기에는 어떤 낭만적인 생각이 있었던 것 같다.'고 썼던 폴 오스터의 에세이를 생각할 때 저자 또한 그런 게 아닌가 싶어 저자의 사정을 무작정 딱하게만 여길 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 것이다.

 

"문득, 나는 이집트를 탈출하던 히브리 노예들을 생각했다. 그들 앞에 하얗게 쏟아지던 '만나'를 생각했다. 창밖에는 올겨울의 첫 함박눈이 쏟아지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생각했다. 아직도 내겐 도망쳐야 할 거리가 남아 있는 모양이라고. 써야할 서평이, 글들이 좀 더 남은 모양이라고. 나는 비록 신자는 아니었지만 게을렀고, 내가 게으른 한 앞으로도 적지 않은 불편함을 참을 수 있을 것이다. 그게 바로 내가 하는 일이었다." (p.235)

 

글쓰기를 그만두는 작가를 이해할 수 없다며 그건 심장을 파내어 변기에 넣고 똥과 함께 내려버리는 것과 같다면서 자신은 마지막 숨이 넘어갈 때까지 글을 쓰겠다고 다짐했던 일흔 살의 노장 찰스 부코스키의 말을 새삼 인용할 필요도 없이 금정연 또한 이와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추측하게 된다. 사는 모습은 '대체로 그렇다.'의 편에 선 다수의 사람과 흔적이나 자취마저 쉽게 지워지는 소수의 몸짓으로 구성된다는 걸 기억해야 한다.

 

"나는 기억한다, 초등학교 시절 이불 속에서 손전등을 켜놓고 읽던 책들을. 나는 기억한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밤새 글을 쓰고 맞던 아침을. 나는 기억한다, 내가 처음으로 받은 원고료를. 그때 나는 평생 이렇게 먹고 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언제부터 그 생각을 후회하기 시작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나는 기억한다, 이게 다 뭐 하는 짓인지 이해해보려 했던 것을." (p.220)

 

요 며칠, '살인적인 더위'라는 말이 한낱 문학적 수사에 그치는 말이 아님을 실감하였다. 설마 했던 일들이 어느 순간 거리를 좁혀 우리의 뒤통수를 후려치기 전까지 우리는 그 실체조차 파악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어제 차도 없이 외출을 했던 나는 '더위 때문에 정말 죽을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글을 쓴다는 것, 굶는 한이 있어도 글 쓰는 재미를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도 우리가 체감했던 더위와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가 직접 두 눈으로 확인하지 못하면 우리가 들었던 사실은 '설마'이거나 '대체로 그렇다'로 나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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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근처의 가까운 곳에 산이 있다는 건 크나큰 자산이다. 물론 그 산을 어떻게 이용하느냐에 따라 체감하는 효용도 크게 달라지겠지만 말이다. 그저 바라보기만 하는 사람도 있을 테고, 우리집 근처에 그런 산이 있었어? 하면서 마치 처음 들어보는 소리라는 듯 화들짝 놀라는 사람도 있을 테고, 이따금 가기 싫다는 아이들을 대동하고 산을 찾은 바람에 산을 오르는 내내 뚱한 아이들의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마음에도 없는 수다를 늘어놓는 사람도 있을 테고, 등산로 한켠에 놓인 벤치에 앉아 오가는 사람들을 온종일 지켜보는 사람도 있을 테고, 나처럼 아침 동이 트기도 전에 집을 나서서 이제 막 잠에서 깨어나는 숲을 온몸으로 만끽하는 사람도 있을 터이다.

 

그러나 이런 식의 생각은 산이 우리에게 주는 혜택을 매우 제한적으로 해석하게 한다. 주기적으로 산을 찾음으로써 우리가 누릴 수 있는 육체적 건강 또한 우리가 산으로부터 받는 혜택 중 하나임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그것 외에도 우리는 많은 것을 산에 의지하고 있다. 이를테면 누구에게도 털어놓을 수 없는 고민이나 말 못할 비밀, 심지어 자신의 생각으로조차 꺼내서 확인하는 게 꺼려지는 여러 일들도 우리는 숲의 나무들에게, 반짝이는 눈을 데굴거리는 청설모에게, 먹이를 찾아 쉼 없이 비행하는 새들에게 흉금을 터놓고 다 이야기할 수 있다. 우리가 하는 고민은 대개 문제의 해결책을 본인이 알고 있다. 그러나 그 해결책과 마주하기 어려울 뿐이다. 산은 우리에게 새로운 해결책을 제시해주지는 않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해결책을 향해 피하지 않고 시선을 마주할 수 있는 용기를 제공한다.

 

입추를 하루 앞둔 오늘, 한반도로 향하던 태풍 노루는 마침내 일본으로 방향을 틀었고 뜨거운 햇빛이 내리쬐는 휴일 오후, 허공에 생채기라도 내려는 듯 말매미 울음소리가 요란하다. 하루를 살아낸다는 게 마치 전쟁처럼 힘겹고 아득한 일일 수 있겠지만 입추가 지나고 아침 저녁으로 거짓말처럼 소슬바람이 불어오면 산에는 탐스럽게 여문 밤송이가 지난 여름을 그리워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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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단장 죽이기 2 - 전이하는 메타포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홍은주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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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가지 전제로 이 글을 시작해보자. 사람은 누구나 어린 시절의 결핍이나 상실감을 기준으로 삼아 사랑하는 대상을 고르고 그 대상에게 자신의 결핍을 꾸준히 요구하게 된다는 전제. 무라카미 하루키는 그의 최신작 <기사단장 죽이기>에서 이 전제를 바탕으로 자신의 소설을 완성했다. 예컨대 부모의 적극적인 보살핌을 받지 못한 사람은 성장하여 어른이 된 후에도 자신을 헌신적으로 보살펴주는 사람을 배우자로 선택할 뿐만 아니라 결혼 후에도 그와 같은 요구가 꾸준히 이어진다는 식이다. 그런 전제가 일부는 맞고 일부는 틀리다고 할지라도 작가의 믿음은 비교적 확고한 듯 보였다.

 

"참고로,네가 여자에게 일관되게 요구하는 그게 뭔데?"

"말로는 설명하기 힘들어. 내가 인생의 도중에 어쩌다 잃어버렸고, 그뒤로 오랫동안 계속 찾아온 무언가겠지. 사람은 누구나 그런 식으로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는 거 아닐까?" (2권 p.197~p.198)

 

소설의 주인공인 '나'에게는 열세 살의 어린 나이에 죽은 여동생 '고미'가 있다. 선천적으로 심장에 문제가 있었던 '고미'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나'에게 충격적인 일이었고, 성인이 된 후에도 '나'는 '고미'의 흔적을 찾아 헤맨다. 대학을 졸업하고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초상화를 그리던 '나'는 한 여자를 사귀게 되고 그 여자의 친구였던 '유즈'를 만나게 된다.'유즈'의 얼굴에서 '나'는 '고미'의 옛모습을 본다. '나'와 '유즈'는 사랑에 빠지게 되고, 건축설계사무소에 다니는 '유즈'와 초상화가인 '나'는 처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결혼을 한다. 그렇게 6년을 살았다. 그리고 '유즈'는 갑작스럽게 결별을 통보한다. 다른 남자가 생겼다는 것이다. 순수 생계 목적이었던 초상화 그리기도 그만둔 '나'는 빨간색 고물 푸조를 타고 여행을 시작한다.

 

3월에 시작된 여행은 5월까지 이어진다. 타고다녔던 빨간색 푸조 205 해치백은 여행 도중에 수명을 다했고, '나'는 중고 코롤라 왜건을 구입한다. 도중에 누군가에게 쫓기는 듯한 여자를 만나 하룻밤의 정사를 나누기도 하고, '하얀 스바루 포레스터의 남자'가 자신의 일거수 일투족을 지켜보는 듯한 느낌을 받기도 한다. 본격적인 이야기는 '나'가 대학동기이자 화백 아마다 도모히코의 아들인 아마다 마사히코의 권유로 산속 집에 정착하면서부터 시작된다. 그 집은 아마다 도모히코의 작업실이자 거처였다. 치매를 앓고 있는 도모히코는 요양원에 입원중이다.

 

마사히코는 '나'에게 일주일에 두 번 오다와라 역 근처의 문화센터에서 그림을 가르치는 일을 주선해주었고, 상업적인 초상화가 아닌 '나'의 그림을 그리라고 충고한다. 그러나 '나'는 집을 떠나기 전에 거래를 했던 한 에이전트로부터 거절할 수 없는 금액의 초상화 의뢰를 받게 된다. 초상화를 의뢰한 사람은 멘시키 와타루이며 그의 집은 '나'가 정착한 도모히코의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산꼭대기의 대저택이었다. 은색 재규어를 타고다니는 그는 부유한 독신남으로 지극히 현실적이며 냉철한 인간이다. '나'와는 대척점에 있는 듯한 멘시키이지만 '나'는 그에게서 동류의식을 느낀다.

 

"-우리는 어찌 보면 닮은 꼴인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손에 쥐고 있는 것, 혹은 장차 손에 넣을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잃어버린 것, 지금은 손에 없는 것을 동력 삼아 나아가고 있다. 그렇다고 내가 그의 행위를 납득할 수 있었다는 말은 아니다. 그것은 명백히 이해력의 범위를 넘어선 일이었다. 하지만 적어도 그 동기를 이해할 수는 있었다." (1권 p.484)

 

멘시키의 초상화를 그리면서 '나'는 몇몇 기이한 사건을 경험하게 된다. 침실 천장에서 발견한 아마다 도모히코의 그림 <기사단장 죽이기>를 필두로 한밤중에 희미하게 들리는 방울 소리, 그 방울 소리의 발원지를 찾는 과정에서 발견한 숲 속의 기묘한 지하 석실, 그리고 도모히코의 그림에 있는 기사단장을 닮은 이데아의 현현(顯現).

 

"내가 생각을 가지고 살아 움직이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 구덩이 또한 사고는며 살아 움직이고 있다. 호흡을 하고 신축伸縮도 한다. 나는 그렇게 느꼈다. 그리고 내 사고와 구덩이의 사고가 그 어둠 속에서 뿌리를 얽고 수액을 주고받는 것 같았다. 녹아든 물감처럼 자아와 타자가 혼탁해지며 경계선이 점점 불명확해졌다." (2권 p.75)

 

멘시키는 완성된 자신의 초상화를 기쁘게 받는다. 그리고 '나'에게 또 하나의 부탁을 한다. 아키가와 마리에의 초상화를 그려달라는 것. 새벽마다 들리는 방울 소리의 출처를 알기 위해서 멘시키에게 도움을 청했던 '나'는 그로부터 베일에 가려져 있던 아마다 도모히코의 유학 생활과 가족 내력을 듣게 된다. 그 정보를 통하여 '나'는 도모히코가 '기사단장 죽이기'를 그리게 된 경위와 그림의 존재를 꽁꽁 감추어 둘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생각하게 된다. 멘시키는 숲 속의 구덩이를 발견하는 과정에서의 제비용을 부담하기도 했다. 그러는 동안 멘시키는 자신의 비밀 한두 가지를 털어놓기도 했는데, 과거에 사귀었던 여자가 아키가와 마리에의 엄마이며 생물학적으로 자신이 마리에의 아빠일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문화센터 그림교실의 학생이기도 한 마리에의 초상화를 그려달라는 멘시키의 부탁을 '나'는 결국 수락하고 만다.

 

"그때 문득 이런 생각을 했어요. 이 세상에서 뭔가를 달성한다 한들, 아무리 사업에 성공하고 자산을 일군다 한들, 저는 결국 한 세트의 유전자를 누군가에게서 물려받아 그것을 다음 누군가에게 전달하기 위한 편의적이고 과도기적인 존재에 불과하다고. 그런 실용적 기능을 제외하고 남는 것은 그저 흙덩어리 같은 것뿐이라고 말이죠." (2권 p.144)

 

아키가와 마리에의 초상화를 맡게 되면서부터 마리에와 그녀의 고모 아키가와 쇼코가 일주일에 한 번 '나'의 집을 방문한다. 마리에는 모델을 서기위해서, 쇼코는 자신의 파란색 도요타 프리우스로 마리에를 태워 오고 태워 가기 위해서. 벌 알레르기가 있었던 마리에의 엄마는 마리에가 어렸을 때 벌에 쏘여 죽었다. 마리에가 방문하는 일요일 오전의 시간에 맞춰 멘시키가 방문한다. 그와 아키가와 쇼코는 급속히 가까워진다. '나'는 마리에의 초상화를 그리며 숲속의 지하 석실과 여행 중에 만났던 '스바루 포레스터의 남자'를 그려보기도 한다. 기사단장의 모습으로 이따금 나타나던 이데아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다. 지하 석실에서 발견한 방울과 함께.

 

"우리 인생에는 잘 설명할 수 없는 일이 많고, 또 설명해서는 안 되는 일도 많습니다. 특히 설명함으로써 그 안의 가장 중요한 것을 잃어버리는 경우에는요." (p.450)

 

그리고 '나'는 작업실 스툴에 앉아 자신이 그렸던 <기사단장 죽이기>를 뚫어지게 보고 있는 도모히코의 생령을 목격하게 된다. 육체도 정신도 죽음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아마다 도모히코가 자신이 살던 집을 직접 찾아왔을 리는 만무한 일이었다. '나'는 아마다 마사히코가 그의 아버지를 방문하러 갈 때 같이 가게 해달라고 부탁한다. <기사단장 죽이기>에 대한 비밀을 제멋대로 꺼내놓은 듯한 죄책감을 도모히코가 죽기 전에 솔직하게 말해야 했기 때문이다. 마사히코와 요양원에 함께 가기로 약속하고 며칠 후 마리에가 실종된다. 문화센터의 그림교실에도 나타나지 않았다. 걱정이 된 멘시키는 '나'의 집에서 하룻밤을 묵는다. 기사단장의 모습으로 나타난 이데아에게 마리에의 행방을 물었지만 그는 대답 대신 힌트 하나만 던져준다.

 

"그래도 나는 멘시키처럼 되지 않는다. 그는 아키가와 마리에가 자기 아이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는 가능성의 밸런스 위에 자신의 인생을 구축하고 있다. 두 가지 가능성을 저울에 달고, 끝나지 않는 미묘한 진동 속에서 스스로의 존재 의미를 찾아내려 한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귀찮은(적어도 자연스럽다고는 하기 힘든) 작업에 도전할 필요가 없다. 나에게는 믿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비록 좁고 어두운 장소에 갇힌다 해도, 황량한 황야에 버려진다 해도, 어딘가에 나를 이끌어줄 무언가가 존재한다고 순순히 믿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내가 오다와라 근교의 산머리 집에 살면서 몇 가지 예사롭지 않은 체험을 통해 배운 점이었다." (2권 p.597)

 

도모히코의 병문안을 갔을 때 회사일로 걸려온 전화를 받기 위해 마사히코가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에 기사단장의 모습을 한 이데아가 나타난다. 그리고 자신이 차고 있던 칼을 빼들어 '나'에게 건네주며 자신을 찌르라고 말한다. 도모히코가 그렸던 그림 속의 장면을 그대로 연출하라는 것이다. 그리고 바닥에서 고개를 내밀고 결투 장면을 바라보고 있는 의문의 남자가 나왔던 통로를 통하여 메타포의 세계로 내려가라는 주문도 이어졌다.

 

"생각해보면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처음부터 그런 식으로만 그림을 그려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실에서 얻을 수 없는 것을 그림에 나타내는 것. 남들에게는 보이지않게, 나 자신의 비밀신호를 그 안쪽에 은밀히 그려넣는 것." (2권 p.220)

 

소설은 그런 식으로 끝을 향해 나아간다. 하루키의 작품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이 소설에서 그동안 하루키가 썼던 많은 작품들이 오버랩될지도 모르겠다. 일종의 기시감이라고 말할 수 있는 장면이 곳곳에 등장한다. 그러나 확실하게 달라진 점도 눈에 띈다.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추구하는 하루키 문학의 특성상 과거에는 그 무게중심이 비현실의 세계로 살짝 기운 듯한 면이 있었지만 이제는 확실히 5대 5, 또는 현실 쪽으로 조금 더 옮겨진 게 아닌가 하는 느낌을 받았다.

 

예컨대 이런 것이다. 소설에서 '나'와 멘시키는 과거에 집착한다는 점에서 비슷하다. '나'는 죽은 여동생에 대한 기억을, 멘시키는 헤어진 과거의 연인을. 멘시키가 사랑했던 여인은 이미 죽고 없지만 그녀의 딸을 통하여 진실을 알고 싶어 한다. 어쩌면 멘시키는 누군가로부터의 신뢰를 받지 못하면서 성장하여 진실에 대한 강한 결핍을 형성하였을지도 모른다. 어린 시절에 동생을 잃음으로써 가족 간의 사랑마저 상실했던 '나'와 마찬가지로. 그러나 멘시키가 돈과 진실에 집착했던 반면 '나'는 동생에 대한 그리움에 집착한다는 점에서 차이를 보인다. 그러므로 '나'는 동생 '고미'를닮은 '유즈'를 아내로 선택했고, 열세 살의 '마리에'와 잘 통한다.

 

과거는 나의 바람과 욕망이 더해진 일종의 판타지이다. 과거에 집착하는 사람은 현실의 삶에 방해를 받고 미래를 향해 나아가지 못한다. 소설 속의 '나'가 반복되는 판타지를 경험하는 것도 그런 이유가 아닐까 싶다. '나'는 메타포의 세계를 혹독하게 체험함으로써 과거의 기억으로부터 벗어나 미래로 나아갈 수 있는 힘을 얻는다. 반면에 아버지와의 추억이 별로 없는 마사히코는 지극히 현실적이며 미래지향적이다. 마리에 또한 다르지 않다. 그녀는 나이도 어리지만 일찍 엄마를 잃었고, 아버지는 얼굴도 보기 힘들다.

 

짧게 리뷰를 쓴다는 게 그만 주저리주저리 길어지고 말았다. 하루키의 소설 <기사단장 죽이기>에 대한 다른 분석을 더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처음부터 인물 위주로 살펴보려 햇던 까닭에 이쯤에서 그만두어야겠다. 과거에 경험했던 결핍이나 상실에 의해 사랑이 결정된다는 하루키의 믿음을 곰곰 되새기면서. 타인의 사랑이 궁금해지면 우리는 가끔 물을지도 모르겠다. "당신의 사랑은 무엇에 의해 결정되는가? 혹은 무엇에 의해 결정되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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