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습관 - 도리스 레싱 단편선
도리스 레싱 지음, 김승욱 옮김 / 문예출판사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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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설게 하기'라는 개념은 러시아의 문학자이자 형식주의자인 빅토르 시클로프스키에 의해 시도된 것으로 사람들이 매일 마주치는 일상적이고 친숙한 대상보다 새롭고 낯선 대상으로부터 미학적 가치를 느낀다는 사실에서 착안되었다. 돌이켜 보면 사랑도 그런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종종 하게 된다. 흔히 하는 우스갯소리로 '남자에게 가장 매력 있는 여자는 처음 보는 여자'라고 하지 않던가. 미학적인 측면에서 어쩌면 당연한 말일 수도 있겠지만 결혼을 하여 매일 한 집에서 얼굴을 맞대고 살아가야 하는 세상의 모든 부부들에게는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진실일지도 모른다.

 

영국 출신의 세계적인 작가 도리스 레싱은 그녀가 쓴 단편소설 '사랑하는 습관'에서 사랑조차 습관이 돼버린 한 남자에 대해 쓰고 있다. 연극을 제작하기도 하고 강연도 하는 조지는 연극계에서는 꽤나 영향력이 있는, 그야말로 연극계의 거물이었다. 아내 몰리와 이혼한 후 5년쯤 동거를 했던 연인 마이러는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전쟁을 피해 호주로 떠났다. 전쟁이 끝나자 조지는 마이러에게 영국으로 돌아올 것을 청한다. 그러나 마이러는 조지의 청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조지는 외로움을 참지 못하고 방황한다.

 

"사람들의 우스갯소리에 웃을 수 없을 때도 많았다. 가볍고 암시적이고 건조한 그의 말투도 변했음이 분명했다. 옛 친구들이 혹시 요즘 우울하냐고 물어본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친구들은 조지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예전처럼 공감한다는 듯 미소를 짓지 않았다. 조지는 자신이 이제 함께 이야기를 나누기에 좋은 상대가 아닌 것 같다고 추측했다." (p.18)

 

결국 조지는 외로움을 견디지 못해 몰리를 찾아간다. 이혼을 하기는 했지만 그녀와 함께 살 때 그닥 나쁘지 않았다고 그는 생각한다. 오랜만에 보는 몰리는 나이에 비해 젊어 보였고, 조지는 그녀에게 자신과 다시 결혼하지 않겠냐고 묻는다. 그러자 몰리는 "있잖아요, 당신은 그저 사랑이 습관이 되었을 뿐"이라며 거절한다. 결혼 생활을 지속할 때 조지가 만났던 여인들을 거론하면서. 필리파, 조지나, 재닛 등.

 

외로움을 참지 못하고 미친 사람처럼 밤거리를 쏘다니던 조지는 결국 심한 감기에 걸리고 만다. 몰리는 그를 간병할 사람을 물색해준다. 그녀의 이름은 보비 티팻. 예순 살의 조지에 비하면 40대의 보비 티팻은 무척이나 젊고 매력적으로 보였다. 조지는 자신이 앓아 누워 있는 동안 자신을 돌보고 집에 찾아오는 손님들을 대접하는 등 능숙하게 안주인 역할을 했던 보비가 무정하지만 예의가 바른 여인이라고 생각한다. 반면에 그가 보기에 그녀는 모든 면에서 무척이나 어리다고 판단한다.

 

"지금 그는 그녀 안에서 되살아난 자신의 과거 속에서 그 과거를 향해 말하고 있었다. 평생의 경험이 그에게 위엄을 주었다. 그의 눈빛은 묵직하게 상대를 조롱하며 비난하는 듯했다." (p.37)

 

보비와 혼인을 한 조지는 그녀와 함게 노르망디의 한 마을로 신혼여행을 떠난다. 전에 이브라는 아가씨와 갔던 곳이었다. 보비에 대한 조지의 사랑이 열렬하고 뜨거웠지만 그것은 오래 가지 못한다. 조지의 주선으로 보비는 예전에 했던 연극배우의 세계로 복귀한다. 보비가 출연한 연극이 유명세를 타면서 보비는 제법 바빠지기도 했고, 같이 출연한 남자 배우와도 친한 사이가 되었다. 그리고 조지와의 결혼 생활이 이어지면서 보비 역시 몰리와 같은 생각을 하게 된다. 조지의 사랑이 한 여인에 대한 깊은 애정이 아니라 그저 자신의 외로움을 극복하기 위해 습관적으로 여자를 곁에 둘 뿐이라는.

 

"사랑이 습관이 되었다는 표현이 조지의 마음속에서 혁명을 일으켰다. 그 말이 맞다. 그는 생각했다. 충격이 너무 커서 자신의 맨살에 누군가의 맨살이 닿는 느낌, 젖가슴이 닿는 느낌에 본능적인 반응조차 할 수 없을 정도였다. 보비가 지금껏 알던 그 사람이 아닌 것 같았다. 지금까지 사실상 그녀를 잘 모르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p.38)

 

연극 연습을 마치고 매일 비슷한 시각에 귀가를 하던 보비가 어느 날 연락도 없이 늦었다. 걱정이 된 조지는 보비를 찾아 나선다. 모두가 떠난 연극 연습장은 텅텅 비어 있다. 보비가 어딘지 모르게 아파 보였다는 말을 듣게 된 조지는 속이 탄다. 보비의 상대 배우인 재키의 집에서 보비를 발견한다. 이십대 초반인 재키와 사십대인 보비. 조지는 둘이 잘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보비는 조지의 그와 같은 생각에 펄쩍 뛴다. 나이로 따지면 재키는 자신의 아들뻘이라고 하면서.

 

"이제야 비로소 그녀가 감정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았으니 두 사람이 진정으로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우게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조지는 자신의 팔다리를 타고 그녀를 향해 힘이 살아나는 것을 느꼈다. 그는 아직 남자였다." (p.52)

 

우리는 객체화된 대상에 대해서 그것이 사람이건 자연이건 집이건 상관없이 마주치는 횟수가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특별한 감정을 갖고 대하는 게 아니라 그냥 존재하는 어떤 것, 감정을 교류하는 대상이 아니라 단지 존재로서의 개체, 사물화된 어떤 것으로 인식하게 되는 건 아닐까. 세수를 하고 옷을 입고 어제와 다름없이 출근을 하는 반복되는 일상처럼 말이다. 도리스 레싱은 사랑에 있어서도 사람들의 습관화된 무심함 그것을 지적하고 싶었을 게다. 남녀 간의 사랑이 처음 만나던 그 순간과 영원히 같을 수는 없겠지만 습관화된 일상에 우리의 사랑마저 포함한다면 그러한 삶은 얼마나 불행한가. 추억을 떠올리는 건 무료한 시간의 청량제이기도 하지만 사랑이 화석처럼 딱딱하게 굳어가는 걸 방지하는 방부제 역할을 하기도 한다. 사랑은 언제나 처음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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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제법 차다. 그래도 좋은 게 있다면 공기가 맑다는 사실. 투명한 겨울 햇살을 동무 삼아 잠시 걸었다. 이제야 비로소 겨울 분위기가 난다. 볼을 스치는 바람과 손끝에 전해오는 알싸한 추위. 명절 연휴의 피곤이 말끔히 씻기는 느낌. 사람들의 말간 표정이 햇살처럼 곱다.

 

2차 북미 정상회담이 27~28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개최된다는 기분 좋은 소식. 명절 연휴 뒤에 날아든 반가운 소식이기는 하지만 국민들의 피로를 날려줄 이런 산뜻한 소식을 자주 들을 수 없다는 게 못내 아쉽다. 사실 우리나라 국민들이 정치권에 바라는 것도 이와 같은 소박한 기대일 텐데 말이다. 그러나 자유당 국회의원 김진태·이종명 및 지만원에 의한 망언과 돌출 행동은 우리나라 정치권의 후진성을 여실히 드러낸 한 사례이기도 했다. 저절로 눈살이 찌푸려지게 만드는 그런 소식은 이제는 제발 그만 좀 들었으면 좋겠지만 하지 말라면 더 기를 쓰고 하는 청개구리 영신이 붙었는지 법적 처벌에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마치 정신이 나간 놈들처럼 말이다.

 

지난 8일 국회에서 열린 '5·18 진상규명 대국민공청회'장에서 '5·18이 북한군이 개입한 폭동'이었다거나 '5·18 유공자라는 이상한 괴물 집단을 만들어 내 우리의 세금을 축내고' 있다는 둥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의원의 발언이라고는 도저히 믿기지 않는 말들을 마구 쏟아냈다. 게다가 이미 그와 같은 주장을 일삼고 다니다가 법적으로도 처벌을 받은 바 있는 지만원 범죄자를 초청하여 그의 의견에 동조하는 행동을 했다는 건 우리나라 국민의 민의를 완전히 무시한 초헌법적 행위를 했다는 걸 의미한다. 그럼에도 그들은 자신들이 마치 애국지사라도 되는 양 뻔뻔하기 그지없는 얼굴이다. 찬바람이 미세먼지를 몰아내는 것처럼 정치권에도 새 바람이 불어 미세먼지보다 더 해로운 몇몇 국회의원들을 날려버렸으면 좋겠다. 머지않아 그렇게 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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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라노, 안개의 풍경 스가 아쓰코 에세이
스가 아쓰코 지음, 송태욱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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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 한 해 해가 가면 갈수록 문학적 수사나 기교가 없는 담백한 글이 좋아진다. 물론 젊은 시절에는 그렇지 않았다. 이전에 본 적 없는 화려한 수사의 문장을 접할 때마다 노트 한 귀퉁이에 적어 두거나 편지 상단의 계절 인사말로 써먹거나 하는 식으로 시간이 지나도 어떻게든 잊지 않으려 애를 쓰곤 했었다. 그러다 보니 화려함이라곤 눈을 씻고 찾아보아도 찾을 길 없는 담백한 글에는 시선이 가지 않았다. 말하자면 책의 내용보다는 문장의 화려함에 이끌리곤 했던 것이다. 제사보다 젯밥에 관심이 많았다고나 할까.

 

스가 아쓰코의 에세이 <밀라노, 안개의 풍경>은 담백함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딱 들어맞는 책이라고 말할 수 있다.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를 보는 것처럼 반복해서 읽어도 지겹다거나 지루한 느낌이 들지 않는다. 예순이 넘은 나이에 등단했던 그녀는 '이미 완성된 작가'라는 평을 들을 정도로 탄탄한 실력을 갖춘 작가였지만 팔 년 후 세상을 떠나기까지 단 다섯 권의 에세이만을 세상에 남겼을 뿐이다. 그러나 전통과 구습에 얽매인 고국에서의 생활에 갑갑함을 느끼고 보다 자유롭고 개방적인 세계를 향해 동경을 품었던 작가가 1960년대에 이미 유학과 국제결혼이라는 파격적인 선택을 감행하였다는 사실과 2차 세계대전 직후 십삼 년간 이탈리아 밀라노에 거주하며 이방인의 눈으로 바라본 유럽의 모습은 꽤나 신선하게 다가온다. 그것은 마치 기억의 올들을 한 올 한 올 섬세하게 풀어내고 잇는 듯한 느낌이 든다.

 

"무심코 로마네스크 양식의 종루를 올려보았다가 나는 실로 신기한 광경을 목격했다. 저녁해를 가득 받은 종루의 크고 작은 종들 아래 가로대 위에서 한 사내가 양쪽 손발을 사용해 춤을 추듯, 공중을 헤엄치듯 움직이고 있었다. 아주 짧은 순간 본 광경이지만 지금도 눈을 감으면 사내의 모습과 함께 그의 온몸에서 솟아나는 듯한, 밀려왔다가 물러가는 파도처럼 여러 겹으로 포개지고 사방으로 흩어지며 축일을 알리는 종소리가 떠오른다. 저 멀리 해가 뉘엿뉘엿한 평야를 뒤덮는 연보랏빛 안개와 함께." (p.42~p43)

 

<밀라노, 안개의 풍경>에는 낯선 땅에서 새로운  사상과 문화를 받아들이며 끊임없이 사유했던 청춘의 한 자락과 2차 대전 직후 유럽 대륙을 휩쓸었던 카톨릭 학생운동에 대한 생생한 경험담, 국적을 초월하여 자신과 함께 순수했던 청춘의 기쁨과 슬픔을 공유했던 사람들에 대한 기억, 그리고 작가가 심취하고 동경했던 움베르토 사바, 알렉산드리아 만초니 등 이탈리아의 여러 문호들에 대한 이야기가 실려 있다.

 

"전후 이십대의 젊은이였던 그들이 카톨리시즘을 보편적인 시각으로 재조명하자며 시작한 운동보다 사회변혁의 보폭이 훨씬 커서, 서점 친구들이 한순간 목표를 잃은 듯 보이던 무렵이었다. 나와 처음 만난 날 제노바 역으로 함께 마중나왔고 나중에는 나의 남편이 된 페피노가 1967년 마흔하나의 나이로 갑자기 세상을 떠나며, 유력한 대변자를 잃은 가티의 처지는 더욱 악화되었다. 그 무렵 서점은 경영에 문제가 없을 정도로 성장해 있었지만 출판을 책임지던 가티가 슬럼프에 빠져 제대로 일을 하지 못하니 당연히 출판 부문은 개점휴업이나 마찬가지 상태였다." (p.102~p.103)

 

스가 아쓰코의 에세이가 독자의 마음을 붙드는 이유는 밀라노의 안개처럼 모호하고 여러 겹으로 중첩되는 면이 있다. 작가가 경험했던 젊은 시절의 추억을 쫓아가다 보면 독자들 역시 아슴아슴 자신의 추억 속으로 스며들기도 하고, 다시 오지 않을 청춘의 한 페이지를 작가와 함께 경험하다 보면 그게 마치 자신의 것인 양 아련한 슬픔이 되어 밀려오기도 한다. 책에서 나열되는 밀라노의 한 장면이 독자가 겪었던 구체적인 한 장면으로 치환되기도 하고, 그 순간 책장을 훑던 손가락도 방향을 잃고 만다. 어쩌면 오래된 흑백 사진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는지도 모른다.

 

"오래된 사진 한 장. 한여름 태양이 내리쬐는 제노바 기념묘지의 하얀 대리석 계단 위에서 햇볕에 새까맣게 그을린 내가 흰색 투피스를 입고 희미하게 웃고 있다. 일본을 떠난 지 사십 일째인 1953년 8월 10일 아침, 이탈리아에 막 상륙한 참이었다." (p.133)

 

이십대 말에서 사십대 초, 인생의 한창때를 회상하는 작가의 글은 강물에 찰랑이는 물비늘처럼 곱디곱다. 그 시절의 추억은 누구에게나 그렇겠지만 말이다. 때로는 영화나 연극의 한 장면처럼, 그 시절 읽었던 책 속 한 구절처럼, 다정했던 사람의 낮은 목소리처럼 정겹다. 나이듦이 두렵지 않은 까닭 역시 현실의 고단함으로부터 우리의 눈길을 빼앗는 아름다운 추억이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설 연후의 후유증이 밀라노의 안개처럼 잔득하게 달라붙는 금요일 오후, 스가 아쓰코의 추억 속으로 하염없이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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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 연휴의 여파는 기껏 마련한 제사 음식이 천덕꾸러기 신세로 전락하는 연휴 끝물부터 시작된다. 다들 기진한 몸으로 귀가를 서두르는 사람들과 연휴의 마지막 날까지 알뜰하게 연휴를 즐기려는 사람들의 묘한 뒤섞임이 변덕스러운 날씨만큼이나 어지러운 건 지난해나 올해나 크게 달라지지 않은 풍경이었다. 설 전날 올해 고등학생이 되는 아들과 함께 이천에 사는 큰형 집으로 향했다가 사정이 여의치 않아 갑자기 서울 어머니 집으로 모이게 되었다. 왁자한 분위기에 쉽게 동화될 수 없었던 나는 방 한켠의 조용한 곳을 찾아 준비해 간 책을 꺼내 읽었다.

 

설날 점심 무렵 아들과 함께 서울대학교에 들러 학교 곳곳을 돌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중앙도서관 앞의 잔디밭 벤치에 앉아 잠시 쉬고 있는데 가방을 멘 학생들이 도서관을 향해 끝없이 밀려들고 있었다. 하루쯤 쉬어도 괜찮으련만 설날 당일에도 공부를 하기 위해 학교 도서관을 찾는 많은 학생들. 그들의 어깨가 천근만근 무거워 보였다. 어느 대학을 졸업하건 취업이라는 벽 앞에선 속수무책인 듯 보였다. 어렵다는 취업 관문을 통과한들 세상살이가 갑자기 쉬워지는 건 아니지만 그들에게는 역시 먹고사는 문제가 시급하겠지.

 

연휴를 마치고 일상으로 복귀한 오늘. 그닥 힘든 일도 없었는데 하루의 피로가 어깨를 짓누른다. 포근하던 날씨는 찬바람이 불며 기온이 크게 떨어졌다. 전국에 한파주의보가 발령되려나 보다. 불현듯 윤대녕의 소설 '대설주의보'가 떠오른다. 살다 보면 돌변하는 날씨만큼이나 가팔라지는 삶의 파도를 넘어야 할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무슨 무슨 주의보' 발령을 내려줬으면 좋겠다. 누군가 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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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와 당신들 베어타운 3부작 2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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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읽는 독자가 책에서 기대하는 바는 크게 두 가지라고 말할 수 있다. 재미와 교훈. 그러나 이게 언제나 공평하게 작동하는 것은 아니어서 어떤 책은 재미 쪽으로 극단적으로 기울거나 또 어떤 책은 교훈을 너무 강조한 나머지 마치 윤리 교과서에 약간의 스토리를 얹은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물론 책을 읽는 독자도 자신의 취향에 따라 재미를 우선순위에 두기도 하고 교훈을 위주로 책을 선택하기도 할 것이다. 물론 책 속으로 깊이 빠져들어 아주 두꺼운 책도 끝까지 읽어내도록 하는 것은 온전히 재미라 말할 수 있고 책을 다 읽은 후 뭔가 뻐근한 느낌이 들도록 하는 것은 교훈인 까닭에 재미와 교훈 중 어느 것 하나도 무시할 수는 없는 게 현실이지만 말이다.

 

프레드릭 배크만의 소설 <우리와 당신들(Us against you)>은 재미와 교훈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무척이나 애쓴 작품이 아닌가 싶다. 평범한 독자의 한 사람으로서 작가가 교훈을 더 염두에 두었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살짝 들기는 하지만 말이다. 그러나 두 요소는 서로 상충되는 면이 없지 않아서 재미만 강조하면 교훈이 퇴색하는 느낌이 들고 교훈을 강조하면 반대로 재미가 떨어지는 경향이 있다. 말하자면 재미를 추구하는 예능 프로그램에서 출연자들이 너무 진지하게 임하는 바람에 살짝 다큐가 된 느낌이랄까. 두꺼운 철학책도 무리 없이 읽어내는데 그깟 재미쯤이야 조금 덜하면 어떠냐고? 그렇게 생각한다면 뭐 어쩔 수 없는 일이긴 하지만.

 

"인생은 우라지게 희한한 것이다. 우리는 모든 시간을 쏟아부어가며 인생의 여러 가지 측면을 관리하려고 하지만 통제할 수 없는 영역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인생의 대부분을 규정한다. 우리는 이해를 절대 잊지 못할 것이다. 가장 좋았던 기억도, 가장 나빴던 기억도. 이해는 언제까지고 우리에게 영향을 미칠 것이다. 우리 중 누구는 이사를 가겠지만 대부분은 여기에 남을 것이다. 이곳은 복잡하지 않은 곳이 아니지만 어른이 되어보면 어디든 그렇다는 걸 알게 될 것이다. 베어타운과 헤드에 얼마나 많은 허점이 있는지 하늘도 알고 땅도 알지만 그들은 우리 마을이다. 여기가 우리에게 주어진 세상의 모퉁이다." (p.595)

 

이 책은 지난해 발간된 <베어타운>의 후속작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소설의 배경이 되는 곳도 베어타운이고 전작에서 마을의 하키팀 에이스였던 케빈으로부터 성폭행을 당한 마야와 그 주변 사람들도 그대로 등장한다. 자신의 딸 마야를 지켜주지 못했다는 죄책감을 안고 사는 워킹맘 미라와 하키팀 단장이자 마야의 아빠이기도 한 페테르, 마야의 절친인 아나... 전작에서도 그랬지만 작가는 한 작은 마을을 배경으로 사람들의 갈등과 분열, 화해와 용서를 바탕으로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케빈에게 성폭행을 당한 마야는 이젠 더 이상 성폭행을 당하는 꿈을 꾸지 않지만, 동생인 레오는 누나를 보호하지 못했다는 자책으로 밤마다 긁는 버릇이 생겼고, 언제든 복수를 할 수만 있다면 무엇이라도 하겠다고 생각한다. 마리 역시 자신의 딸에게 일어났던 끔찍한 사건을 계기로 앞으로도 혹시 다른 끔찍한 일이 일어나지 않을까 노심초사한다. 게다가 청소년 하키팀의 유망주였던 아맛 역시 케빈의 성폭행 사실을 증언하는 바람에 모든 것을 잃고 방황하는 등 그날의 상처는 마을 전체에 깊은 상처로 남았다. 그들이 사는 베어타운 역시 청소년 아이스하키팀을 육성하여 마을 경제를 살려보려 했던 꿈은 산산조각이 나고 다른 돌파구를 찾지 못한 채 헛돈다.

 

마야의 아버지이자 베어타운 하키팀의 단장인 페테르는 하키팀을 재건하고 마을을 살리기 위한 방안을 찾아 동분서주한다. 하키팀의 후원금이 절실했던 페테르는 베어타운 지역구 의원인 리샤르드 테오와 접촉하고, 신임 코치로 사켈을 영입하며, 하키팀의 팀원도 일신한다. 그러는 과정에서 마을 사람들 간의 불신과 알력, 온갖 소문과 억측, 혼란을 이용하여 자신이 원하는 바를 얻으려는 획책과 술수가 난무한다.

 

"팀 스포츠를 좋아하게 되는 이유는 뭘까? 단체의 일원이 되고 싶어서일까? 어떤 사람에게는 이유가 단순하다. 또 하나의 가족이 필요한 사람에게는, 애초에 가족이 없었던 사람에게는 팀이 가족일 수 있다." (p.472)

 

사켈에 의해 새로 구성된 베어타운의 아이스하키 팀 멤버는 오직 개인이 갖고 있는 실력만으로 선발된 까닭에 범죄 전과가 있는 비다르마저 포함되게 되었고 주장을 맡은 벤이가 동성애자라는 사실이 밝혀짐으로써 마을 사람들은 또 다시 혼란 속으로 빠져든다. 벤이를 옹호하는 사람들과 벤이를 배제해야 한다는 사람들.

 

"베어타운에서는 누가 세상을 떠나면 가장 아름다운 나무 아래에 묻는다. 다들 말없이 슬퍼하고 조용히 이야기하며 말로 표현하는 것보다 행동으로 보여주는 걸 훨씬 쉽게 생각한다. 이곳에는 좋은 사람들도 살고 나쁜 사람들도 살기 때문에 문제가 복잡해지는데, 그 둘을 구분하기가 쉬운 것만은 아니다. 어쩌면 우리는 좋은 사람인 동시에 나쁜 사람일 수도 있다." (p.515)

 

우리 사회에서도 자신과 신념이 같은 사람에게는 한없이 너그러우면서도 조금이라도 의견이 다르면 극도로 혐오하는 사람들을 종종 만나게 된다. 결속력이 강하고 인원이 적을수록, 못 배우고 다양한 사회 계층과의 소통이 어려울수록, 종교적 신념이나 공동체의 목표가 뚜렷할수록 그러한 경향은 강화된다. 소위 태극기 부대와 같은 일부 극우 집단이나 워마드와 같은 남성 혐오 집단, 그리고 사회적 지탄을 받는 일베 회원들이 대표적이다. 그렇다면 일상에서도 그들은 접촉하는 모든 사람들을 향해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낸 채 공격성을 보이게 될까. 아마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어쩌면 누구보다도 순한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을지도 모른다. 인간에게는 언제나 선과 악의 양면성이 공존하는 까닭에 어느 쪽에 더 많은 영양분을 주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인격과 성향이 결정된다. 우리가 사는 공동체도 크게 다르지 않다. 작가는 베어타운의 주민을 통해 인간 본성과 차별, 혐오, 집단 이기주의 등을 보여줌과 동시에 이런 불완전한 존재인 인간이 서로의 단점을 보듬으며 더 나은 사회를 위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가에 대한 가능성을 타진하고 있다. 베어타운은 21세기 대한민국의 축소판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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