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농장
조지 오웰 지음, 임병윤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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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확실한 것은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의 대다수가 동물이라는 점이다. 말하자면 우화라고 할 수 있는 이 소설이 전 세계의 독자들에게 찬사를 받고, 출간된 지 수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스테디셀러로서 굳건히 자리매김하는 데는 '조지 오웰'이라는 저자의 명성 하나만으로는 부족했으리라. 그보다는 오히려 권력과 인간 속성에 대한 저자의 철저한 탐구가 세월이 흐른 지금까지도 독자들의 감탄과 공감을 지속적으로 불러일으키고 있을 뿐이라는 해석이 더 설득력이 있을 터이다. 권력지향적인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는 국가 제도가 지속하는 한 영원히 사라지지 않고 이어질 테니까 말이다.

 

나는 사실 조지 오웰의 소설보다는 르포 작품에 더 매력을 느끼는 독자 중 한 사람이다. 현장과 체험을 바탕으로 쓴 그의 탁월한 작품들은 화려한 문체와 더불어 날카로운 문제의식, 그리고 체험과 검증에서 비롯된 현실 감각 등은 독자로 하여금 르포란 이런 것이다 하는 자각을 심어주기에 충분하다. 그렇다고 르포에 비해 그의 소설 작품들이 격이 떨어진다거나 상대적으로 빈약하다는 얘기는 아니다. 주관적인 느낌상 그의 르포 작품이 더 좋다고 말할 뿐이다. 어떻게 보면 <위건 부두로 가는 길>과 같은 탁월한 르포 작품이 있었기에 <동물농장>과 같은 완성체의 소설이 존재할 수 있었겠지만 말이다.

 

"그리고 동무들이여, 절대로 이런 결심이 흔들려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어떤 말에도 현혹되어서는 안 됩니다. 인간과 동물들이 서로 같은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으며, 인간의 번영이 곧 동물들의 번영을 가져다준다는 주장에 절대로 귀 기울이지 마십시오. 모두가 거짓말입니다. 인간은 자기 자신 외에는 어떤 생물의 이익에도 관심을 갖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 동물들은 모두 일치단결하여 철저한 동지애를 가지고 인간과 투쟁해야 합니다. 모든 인간은 적이고, 모든 동물은 우리의 동지들입니다."  (p.33)

 

소설은 매너 농장의 주인인 존스 씨가 술에 취해 곯아떨어지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동물들은 결국 주인인 존스 씨를 몰아내고 동물들의 세상인 동물농장을 만든다. 여기에서 시사하는 것처럼 지도자의 지나친 음주는 항상 문제가 된다. 그래서인지 고인이 되신 노무현 대통령은 애주가였음에도 불구하고 대통령 취임과 함께 술을 끊었다고 전해진다. 대통령이 술에 취해 온전한 정신이 아니라면 대통령의 궐위 상태와 진배없기 때문이란다. 그럼에도 현재의 대통령은 취임한 지 한 달도 지나지 않아 술에 취해 꾸알라가 된 모습을 언론에 노출시켰다. 창피도 이런 창피가 있을 수 없다. 게다가 휴전 상태에 있는 국가의 대통령이...

 

"매너 농장의 존스 씨는 밤이 깊어지자 닭장 열쇠를 채우기는 했는데, 술에 너무 취한 나머지 문을 닫는 것을 그만 잊어버리고 말았다. 이리저리 휘청거리는 둥그런 등불 빛을 앞세우고 비틀거리면서 뜰을 가로질러 가서는, 뒷문에다 장화를 휙 차 버리고 주방으로 들어가 술통에서 맥주 한 잔을 따라 마지막으로 들이켜고 난 후에야, 한참 코를 골며 곯아떨어져 있는 존스 부인 옆의 침대 위로 기어 올라갔다."  (p.25)

 

주인인 존스 씨를 몰아낸 동물들은 글을 읽을 수 있는 동물들인 나폴레옹(돼지), 스노우볼(돼지), 스퀼러(돼지)의 지도 아래 동물농장의 7계명을 만들고 모든 동물들을 평등하게 살게 하는 데 뜻을 모은다. 그러나 각종 사건들로 인해 동물들 사이에 권력투쟁이 발생하고, 결국 나폴레옹(돼지)이 무력으로 동물농장을 지배하게 된다. 나폴레옹은 동물들을 독재와 공포정치로 통솔한다. 이러는 과정에서 동물들 사회에서도 계급과 서열이 생겨나고, 급기야 나폴레옹은 인간처럼 2발로 걸어다니며 채찍을 휘두르기에 이른다.

 

"그리고『동물농장』에서 오웰은, 다음번의 선거가 빠짐없이 다가오듯이 늘 새롭게 나타나기 마련인 정치적인 폭력과 그에 대한 공포는 우리들 스스로에게 그 책임이 있다는 교훈을 남기고 있다."  (p.19 '러셀 베이커(Russell Baker)의 서문' 중에서)

 

유행이 끝없이 반복되는 것처럼 정치적 유형도 되풀이되는 듯 보인다. 군부 독재가 사라진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가 채 자리를 잡기도 전에 독재 시대에 대한 향수가 불꽃처럼 타올랐고, 급기야 검찰 권력에 의한 독재가 시작된 느낌이다. 과거의 교훈을 쉽게 망각하는 인간의 철없음, 혹은 타인의 감언이설에 쉽게 현혹되는 대중의 얕은 지조에 의해 역사는 비슷한 과오를 끝없이 양산한다. 대중은 술에 취해 자신의 임무를 망각하는 존스 씨를 자신의 지도자로 선출하고야 만다. 오늘도 그리고 어쩌면 내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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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신할 수는 없지만 코로나 정국이 엔데믹으로 진행되고 있는 듯합니다. 누구에게나 길고 어두웠던 터널을 이제 막 벗어나는 느낌이겠지만 한편으로는 피하고 싶었던 현실에 다시 적응해야 하는 고충도 있는 것도 같고, 워낙 오랜 시간을 버텨 온 까닭에 습관처럼 굳어진 몇몇 것들을 어떻게 벗어던지는가 하는 문제도 고민입니다. 이를테면 이런 것이지요. 출근을 하지 않고 달콤하게 즐기던 재택근무도, 주말마다 동원되던 각종 행사에 코로나를 핑계로 가볍게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은 물론 한적한 야외에서 편안히 즐길 수 있던 여유도, 부서 회식이나 경조사에 참석하여 부어라 마셔라 하다가 뜬눈으로 출근하던 일도 한낱 옛 추억으로 만들어 버렸던 코로나 시국의 좋았던 풍경들이 일거에 사라진다는 의미입니다. 경조사는 무조건 계좌이체를 통한 가벼운 일처리가 국룰이었는데 이제는 좋든 싫든 얼굴 도장이 우선이고, 부서 회식은 2차가 기본이고, 재택 근무는 꿈도 꿀 수 없으며, 코로나 확진이라는 달콤한 휴가는 옛말이 되고 말았습니다. 물론 야외에서 마스크를 쓰지 않아도 되고, 예전보다 여행이 자유로워진 건 사실이지만 높아진 물가에 코로나 시국보다 더 심한 집콕을 강요받는 실정이고 보니 코로나 엔데믹의 자유는 저만치 멀어진 듯합니다. 저만 그렇게 느끼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이런 실정이고 보니 한동안 뜸하던 사람들로부터 걸려온 전화가 결코 반갑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특히나 주말이 가까워 올 때의 전화는 더욱 그러하지요. 미뤘던 결혼식에, 친척들의 고희연에, 아이들의 백일이나 돌, 제사와 부고 등 그냥 돈만 보내고 모른 척하기에는 얼굴이 따끔거리는 행사가 어찌나 많던지요. 코로나 팬데믹 이전에는 이 모든 게 당연한 일상이었는데 편함에 길들여진 탓인지 이제는 힘겹게만 느껴집니다.

 

며칠 전 한동안 연락이 없었던 지인 한 분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모 초등학교에서 교장 선생님으로 정년 퇴임을 한 후 한가로운 노년을 보내고 계신 분이었습니다. 카이스트를 졸업한 그분의 손자와도 각별한 인연이 있는 나로서는 손자의 결혼식에 참석해달라는 소식이겠거니 지레짐작을 하였는데, 전화를 걸었던 목적은 전혀 엉뚱한 데 있는 듯했습니다. 주말 계획이 어찌 되느냐는 질문에 특별한 계획은 없다고 말씀드렸더니 그분은 친구분들과 함께 용산공원에 갈 계획이라고 하시더군요. 저는 용산공원이 서빙고에 있는 용산 가족공원인 줄 알고 그곳으로 가기보다는 가까운 공원을 가는 게 좋지 않겠느냐는 의견을 제시했더니 용산공원 입장 예약을 어렵게 성사시켰다며 절대 그럴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생각해 보니 용산 미군부대를 시범 개방한다는 뉴스를 어디서 본 것 같았기에 혹시 그곳이냐고 재차 여쭈었더니 그렇다는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각종 독성물질이 정화도 되지 않은 채 개방되는 것이라 우려를 전했더니 별것 아니라는 식의 답변과 함께 나도 예약을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사실 미군 부대에서 카튜샤로 근무했던 친구 덕분에 그곳에서 영화도 보고, 볼링도 치는 등 여러 번 출입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다가 잘 다녀오시라는 인사와 함께 전화를 끊었습니다. 전화를 끊고 곰곰 생각해보아도 용산공원을 서둘러 개방하는 이유를 도무지 모르겠어서 용산공원 입장 예약 사이트에 들어가 보았습니다. '더 가까이 국민 속으로'라는 캐치 프레이즈가 걸려 있는 예약 사이트에는 행사의 내용이나 주의사항 등은 잘 정리되어 있었으나 다이옥신이나 비소 등 1급 발암물질 범벅인 그곳을 국민들에게 서둘러 개방하는 이유는 적시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추측컨대 연금개혁을 공약으로 내세운 대통령이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연금개혁을 하는 대신 여당의 열렬한 지지자인 노인분들을 용산으로 모셔 수명을 1년이라도 단축시킬 수만 있다면 연금개혁은 서두르지 않아도 되는 게 아닌가 싶어서 그런 발상을 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렇게만 된다면 연금개혁은 물론 노령연금을 아낌으로써 재정건전성까지 좋아질 수 있으니 일석이조, 아니 일석삼조쯤 될 수도 있겠습니다. 비록 지지자들을 잃는다는 게 안타깝기는 하지만 말입니다. 게다가 세대 간의 갈등도 조기에 봉합할 수 있겠습니다. 한 가지 제안을 하자면 2시간이 아니라 하루 종일 머무르게 함으로써 효과를 극대화하는 게 어떨까 하는 것입니다. 읍참마속의 심정으로 말입니다. 비교적 여유롭고 시간적 제한도 없는 노인분들은 용산으로 모시고, 임대주택에 사는 가난한 노인들은 정신병자로 몰아 격리시킨다면 초고령화 사회의 대한민국이 당면한 문제를 조기에 수습할 수 있지 않을까요? 서울대 나온 대통령이라 역시 생각하는 게 탁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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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6-15 16: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6-18 16: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yamoo 2022-06-24 09:40   좋아요 0 | URL
하...글쿤요~~ㅎㅎ
 
딸기 따러 가자 - 고립과 불안을 견디게 할 지혜의 말
정은귀 지음 / 마음산책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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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에 비가 잠깐 내렸다. 얼마만의 비인지... 과거 노무현 정부 시기에는 가뭄이 들어도, 홍수가 나도 모두 대통령의 잘못인 양 전국의 모든 언론이 대통령 탓을 하기에 바빴었다. 대한민국에서 정부의 잘못을 제대로 지적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그야말로 언론사다운 건전한 언론사가 단 한 군데라도 존재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 당시에는 언론 소비자 중 한 사람인 나로서도 너무 심하다는 인식을 아니할 수가 없었다. 그러던 언론사들이 역사상 유례가 없는 봄 가뭄이 오랫동안 지속되는 와중에도 이게 모두 대통령의 탓이라거나, 밀양에 번진 대형 산불로 주민들이 발을 동동 구르고 있을 때 대통령은 한가하게 브라질과의 축구 국가대표 경기를 관람하고 있느냐고 지적하는 언론은 단 한  군데도 없었다. 언론사들도, 경찰도, 심지어 검찰도 알아서 길 거라는 예언은 현재의 대통령이 당선되기 전부터 용하다는 어느 여인의 입을 통해 기자에게 전달된 바 있었다. 과연 그 여인은 무속인들과 그리 어울려 다니더니 웬만한 무속인을 능가하는 예지와 신통력(?)을 지닌 게 아닌가!

 

"좋은 날도, 슬픈 날도 다 지나갑니다. 기도와 웃음은 정다운 주술과 같습니다. 괴로워도 슬퍼도, 외롭고 서러워도, 두렵고 막막해도, 불안해도, 눈물을 거두고 웃습니다. 어제는 지나갔고 오늘 우리를 기다리는 하루는 다시 희미한 웃음으로 채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내 안에서 지펴낼 수 있는 온기는 바로 웃음입니다. 전환점이 되는 달에 멀리서 미소 담은 편지를 띄웁니다."  (p.128)

 

한국외대 영미문학ㆍ문화학과 정은귀 교수의 산문집 『딸기 따러 가자』가 출간되었다. 코로나19를 통과하던 시기, 묵상하듯 인디언의 노래를 찾아 읽으며 고립과 불안을 달랠 수 있었다고 고백하는 작가는 아메리카 인디언들의 열두 달과 지금 우리가 사는 1년 열두 달의 주기를 비교하며 우리가 그동안 잊고 지냈던 계절 감각과 생활 감각을 일깨운다. 북아메리카에 흩어져 살던 인디언들은 비록 그들이 사용하던 언어는 서로 달랐지만 자신이 깃들어 사는 터를 존중했고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사는 방식으로 생태적 가치를 지켜왔다는 점에서는 비슷한 면면을 지녔었다. 인간의 이기심으로 인해 자연이 파괴되고 자국의 이익을 위해 다투느라 전쟁마저 불사하는 요즘, 인디언들의 지혜는 현대인의 절망을 극복하는 현명한 처방전이 될지도 모르겠다.

 

"주변의 환경에 맞추어 살아가는 방법을 택했던 아메리카 인디언은 힘든 환경이나 사건 사고를 두고 투덜거리지 않았습니다. 늘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그 아름다움을 순간순간 느끼려고 했지요. 세상은 우리가 바라보는 그대로 우리에게 삶을 돌려줍니다. 이 세상이, 삶이 가치 없다 여기면 모든 일이 쓸모없이 여겨질 것이고, 아무리 힘든 일이 있어도 이 세상이, 삶이 가치 있고 소중하다 생각한다면, 주변의 작은 것들도 아름답게 느껴지겠지요."  (p.144)

 

퇴임한 전직 대통령의 사저 근처에서 주야장천 욕설을 퍼붓고, 확성기를 틀고, 근거도 없는 말들을 떠들어대는 인간들의 모습을 뉴스를 통해 보게 된다. 자신들과 이념을 같이 하는 사람들을 위해 영상을 제작하고 이를 통해 약간의 돈을 갈취하는 게 그들의 목적이겠지만, 아무리 돈이 중하다고 하더라도 자신의 인간성마저 팔아 팽개친다는 게 도무지 납득이 가지 않을 때가 많다. 그렇게 생명을 부지한다는 게 무슨 소용이며, 몇몇 지지자들로부터 '잘한다'는 소리를 듣는 게 그렇게도 기분 좋아할 일이란 말인가. 그곳에 터를 잡고 살아온 여러 사람들의 건강과 평화는 안중에도 없고, 오직 자신들의 이익에만 혈안이 된 사람들을 과연 인간이라 말할 수 있을까.

 

"서로가 소로의 다른 손, 다른 머리가 될 것. 함께 나눌 것. 성탄절에 세상에 오신 분이 가르치는 사랑도 그러한 것이겠지요. 강해 보이는 이에게 굴종으로 엎디지 말고, 약하고 보잘것없는 이의 곁에 머물 것. 혐오의 말들이 난무하는 메마르고 거친 시절에, 구원의 역사를 새로 쓰신 분의 탄생을 기리며, 조금 차분한 성탄 전야를 보냅니다. 사랑으로 오신 분의 사랑의 방식을 생각하며 오늘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일을 하려 합니다. '구원'이 비현실적인 단어가 된 오늘날, 우리의 구원은 이렇게 작고 가까운 곳에 있는지도 모릅니다."  (p.223)

 

면허 취소 수준을 훌쩍 뛰어넘는 만취 상태에서 운전을 한 경력이 있는 자를 교육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하면서 주취범죄 처벌 현실화를 공약으로 내세운 대통령. 차별금지법의 통과는 반대하면서 차별은 반대하는 이상한 논리. 선제타격 운운하면서도 북한의 미사일 발사를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듯 하는 정부. 사람이 하는 일에 실수란 늘 따라붙게 마련이지만 그럴 때일수록 더욱 잘 드러나는 게 이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태도가 아닌가. 최근 미 백악관의 초청에 의해 K팝 스타인 방탄소년단이 백악관에서 바이든 대통령과 면담한 적이 있다. '반(反) 아시안 증오범죄 대응 방안'에 대한 의견 교환의 차원이었지만 낮은 지지율의 바이든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 제고 목적이 더 컸을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 명분만은 누구나 수긍할 만했다. 그에 비하면 우리나라 정부의 지도자들은 얼마나 수준이 낮은가. 모호크 인디언의 어느 할머니는 가족 모두가 길을 잃고 낙심하고 있을 때, "딸기 따러 가자."라고 말한다고 한다. 그들에게 낙심과 우울과 절망을 떨치고 일어서도록 하는 원동력은 바로 딸기일 수도 있겠다. 오늘 당신의 '딸기'는 과연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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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사라지지 않고 영원히 남는 것은 당신의 '영혼'이 아니라 당신의 '깊은 사유'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당신의 오래전 기억들을 뒤져보면 그의 '얼굴'보다는 그의 '태도'가 변하지 않고 남아 있는 것처럼 말이지요. 언젠가 했던 당신의 '깊은 사유'는 허공에 쌓인 시간의 지층 속에 오롯이 남아 긴 세월 동안 화석화 과정을 거칠 것입니다. 당신의 '깊은 사유'가 종이에 기록되든 그렇지 않든 당신이 없는 세상의 먼 훗날에 태어난 누군가가 얼굴도 알지 못하는 당신의 '깊은 사유'를 마치 유물을 발굴하는 고고학자의 손길처럼 아주 세밀하고 조심스러운 붓질을 통해 발견해내고, 인류 영혼의 발전에 기여한 당신의 '깊은 사유'를 보물인 양 기릴 것입니다.


행복한 기억들은 순간인 양 흩어질 뿐, 당신을 '깊은 사유'로 이끌지는 못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고통 속에 살았던 당신의 삶이 '깊은 사유'로 인해 비로소 빛나는 삶으로 인정받게 되는 것은 아주 먼 훗날의 이야기가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내세나 전생이 있다는 것은 누군가가 꾸며낸 허구라 할지라도 인류가 존재하는 한 후세의 누군가가 시간의 지층 속에서 화석으로 변한 당신의 '깊은 사유'를 발견할 수 있으리라는 건 단 1%의 가능성일지라도 과학이자 부인할 수 없는 논리라고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영적인 존재인 인간은 살아 있는 동안 생각을 멈추어서는 안 됩니다. 말초적인 기쁨이나 가벼운 행복에 대부분의 시간을 허비해서도 안 되겠습니다. 극히 가볍기만 한 인간이 자발적인 고통을 통해 끊임없는 '깊은 사유'의 길을 걷는다는 건 있을 수 없겠지만 적어도 자신에게 주어진 고통의 시간만큼은 회피하거나 부정하지 말고 '깊은 사유'의 길로 스스로를 이끌어야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만들어 놓은 '깊은 사유'의 유물들이 시간의 지층 속에서 화석처럼 존재하는 한 인류는 풍요로운 영혼을 간직한 채 자신의 삶을 유익한 시간으로 채워 나갈 것입니다.


나는 지금 조지 오웰의 소설 <동물 농장>을 읽고 있습니다. 현재의 대한민국은 존스 씨를 몰아낸 나폴레옹과 스노우볼의 시대일지도 모릅니다.

"자, 동무들, 지금과 같은 우리의 삶의 본질은 무엇입니까? 똑바로 생각을 해봅시다. 우리의 삶은 비참하고 고단하며, 또 아주 짧게 지나가 버립니다. 이 세상에 툭 던져지면, 겨우 목숨을 유지할 수 있을 정도의 먹이만 받아먹으며, 숨이 붙어 있는 한은 젖 먹던 마지막 힘까지 다 짜내어 노동을 해야만 합니다. 그러다가 결국 아무 쓸모가 없게 되면, 정말 끔찍하도록 잔인하게 도살을 당합니다. 영국 땅의 어떤 동물도 한 살이 넘으면 행복과 여가란 꿈도 못 꾸는 일입니다. 이들에게 자유란 없습니다. 우리 동물들의 삶은 이처럼 비참하게 죽도록 일만 하는 것입니다." (p.29 동물농장(소담출판사) 중에서)

유난히 자유를 강조하는 대통령이 만든 검찰 공화국의 대한민국은 이미 파국으로 달려가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100여 년 전에 살았던 조지 오웰은 돼지들이 장악한 아시아의 작은 나라를 그렇게 상상했을지도... 현충일까지 이어지는 짧은 연휴의 첫날, 나는 오래전에 읽었던 <동물농장>을 현실과 견주면서 재미있게 읽고 있습니다. 시간의 지층에 남은 조지 오웰의 화석을 마치 고고학자라도 된 양 조심스레 더듬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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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고 싶다 쓰고 싶지 않다
전고운 외 지음 / 유선사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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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재미있는 일도 취미가 아닌 직업이 되는 순간 재미는 완전히 사라지거나 반감되게 마련이다. 심지어 웬만한 아이들이라면 쉽게 빠져드는 인터넷 게임도 취미가 아닌 업으로 변하는 순간 흥미를 잃게 된다고 한다. 그도 당연한 것이 수십, 수백억 원의 연봉을 받는 프로 선수가 자신의 책임을 망각한 채 설렁설렁 취미인 양 임한다면 그를 고용한 구단에서도 참으로 난감한 지경에 처하게 됨은 물론 자신 역시 발전된 기량을 통해 더 많은 연봉을 받을 수 있는 기회는 애초에 사라지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측면에서 바라볼 때 글을 쓰는 일도 크게 다르지 않은 듯 보인다. 아마추어 작가일 때는 다른 무엇보다도 좋아하던 글쓰기가 시간과 돈에 의해 제한되는 업으로 변하는 순간 이전과 전혀 다른 모습으로 여겨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이제는 원고 요청을 제법 잘 거절하지만 여전히, 나를 원한다는 이유로 확신이 부족한 상태에서 시작하는 글이 있다. 또는 일이기 때문에 쓴다. 내가 쓰고 싶다는 이유로 시작하는 글을 내가 원한 대로 지키기는 늘 어렵다. 내 능력이 뒷받침되지 않을 때도 있으니까."  (p.92 '이다혜' 중에서)


<쓰고 싶다 쓰고 싶지 않다>는 어쩌다 보니 글쓰기가 업이 된 9명의 사람들이 글쓰기에 대한 자신의 솔직한 마음을 담은 가벼운 책이다. 전업 작가가 된다는 건 어쩌면 대단한 특권이자 적지 않은 노력의 결과물임은 분명할 터, 작가 지망생들이 보기에는 '배부른 소리'로 읽힐 수도 있는 쓰고 싶지 않은 마음들은 대체로 마감을 앞둔 극도의 긴장과 그로 인한 스트레스에서 비롯되는지도 모른다. 아마추어 작가일 때는 쓰고 싶은 순간에 자신이 쓰고 싶은 주제로 원하는 분량만큼 쓸 수 있는 자유가 주어지지만 돈을 받고 쓰는 글에는 그와 같은 자유가 주어지지 않는다. 글의 주제나 분량도, 마감 시한도 전적으로 의뢰자의 사정에 달려 있는 것이다. 그토록 좋아하던 글쓰기 작업도 '의무'라는 무게에 눌려 압사 직전의 상태에 놓이게 되는 것이다.


"쓰는 것 외에 아무것도 할 일이 없어진 나의 머릿속에서 '자, 이제 준비기 되었으니 글을 써볼까?' 하는 게 아니라 정말로 더 할 일이 없는 건지, 정말 지금 완벽하게 글을 쓰기 위한 상태가 된 것이 맞는 건지 지뵤하게 묻고 있다는 걸. 그리하여 마침내 생각도 못했던 다른 할 일을 '녀석'이 기어이 찾아내는 걸 보면서 나는 알았다. 그동안 나는 쓰기 위한 준비를 해왔던 게 아니라 오로지 그 일을 하지 않기 위해 피해 다니기만 했었다는 걸. 그게 두려움이나 권태든 다른 무엇 때문이든 간에 나는 이 일이 음악이 그랬던 것처럼 또 하기 싫어졌다는 걸."  (p.70 '이석원' 중에서)


프로 작가가 된 후 마감 시한에 맞춰 글을 쓰기 위한 각자의 노력이나 일상 습관은 열이면 열 서로 다 다를지도 모른다. 그러나 작가가 되기 위해 쏟아부었던 열정이나 노력은 글쓰기에 대한 각자의 애정만큼이나 서로 비슷했을지도 모른다. 다른 여타의 취미와는 달리 글쓰기는 타고난 재능만으로는 결코 좋아질 수 없는 취미이기 때문이다. 글쓰기를 좋아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지만 글쓰기를 잘하기 위해서는 먼저 다양한 분야의 책 읽기가 선행돼야 하며, 산책이나 명상 등 생각의 파편들을 한데 모으는 작업을 수시로 반복해야 하며, 이런 일련의 과정을 통한 결과물을 다듬고 고치는 일이 지루하다거나 지겹지 않아야 한다. 그와 같은 반복을 통해 더딘 성장을 이룰지라도 결코 포기하지 않는 자만이 글쓰기를 취미로 갖게 되는 것이다. 글쓰기에 투자된 시간과 노력이 항상 기꺼워야 하며, 아깝다거나 후회하는 마음이 들지 않아야 한다.


"나는 청결하고 질서 정연한 세계 속에서 평화와 안정을 느끼지만, 동시에 저항하고 싶고 그 세계를 파괴해 버리고 싶다. 나는 정치적 올바름의 가치를 중요시하지만, 내 곁에 항상 올바른 사람들만 두고 싶진 않다. 나는 엘리트주의를 혐오하는 동시에 몰개성적인 다수를 혐오한다. 금욕적인 청교도 정신을 거부하면서 카톨릭 사제를 매력적으로 여긴다. 나는 무신론자이자 기독교인이고, 남성이자 페미니스트다. 나는 발언하고 싶지만 입을 닫고 싶다. 쓰고 싶지만 쓰고 싶지 않다."  (p.241 '임대형' 중에서)


오늘은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13주기 추도식이 있었던 날. 검은 상복 속에 숨어든 많은 말들이 세상의 허무 속으로 흩어진다. 대기는 알 수 없는 미래처럼 탁했고, 흘러간 세월만큼 옅어진 슬픔이 잔기침과 함께 툭툭 불거진다. 아무도 막지 못했던 십삼 년 전 오늘의 미래가 세월을 따라 켜켜이 슬픔의 과거가 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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