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신할 수는 없지만 코로나 정국이 엔데믹으로 진행되고 있는 듯합니다. 누구에게나 길고 어두웠던 터널을 이제 막 벗어나는 느낌이겠지만 한편으로는 피하고 싶었던 현실에 다시 적응해야 하는 고충도 있는 것도 같고, 워낙 오랜 시간을 버텨 온 까닭에 습관처럼 굳어진 몇몇 것들을 어떻게 벗어던지는가 하는 문제도 고민입니다. 이를테면 이런 것이지요. 출근을 하지 않고 달콤하게 즐기던 재택근무도, 주말마다 동원되던 각종 행사에 코로나를 핑계로 가볍게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은 물론 한적한 야외에서 편안히 즐길 수 있던 여유도, 부서 회식이나 경조사에 참석하여 부어라 마셔라 하다가 뜬눈으로 출근하던 일도 한낱 옛 추억으로 만들어 버렸던 코로나 시국의 좋았던 풍경들이 일거에 사라진다는 의미입니다. 경조사는 무조건 계좌이체를 통한 가벼운 일처리가 국룰이었는데 이제는 좋든 싫든 얼굴 도장이 우선이고, 부서 회식은 2차가 기본이고, 재택 근무는 꿈도 꿀 수 없으며, 코로나 확진이라는 달콤한 휴가는 옛말이 되고 말았습니다. 물론 야외에서 마스크를 쓰지 않아도 되고, 예전보다 여행이 자유로워진 건 사실이지만 높아진 물가에 코로나 시국보다 더 심한 집콕을 강요받는 실정이고 보니 코로나 엔데믹의 자유는 저만치 멀어진 듯합니다. 저만 그렇게 느끼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이런 실정이고 보니 한동안 뜸하던 사람들로부터 걸려온 전화가 결코 반갑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특히나 주말이 가까워 올 때의 전화는 더욱 그러하지요. 미뤘던 결혼식에, 친척들의 고희연에, 아이들의 백일이나 돌, 제사와 부고 등 그냥 돈만 보내고 모른 척하기에는 얼굴이 따끔거리는 행사가 어찌나 많던지요. 코로나 팬데믹 이전에는 이 모든 게 당연한 일상이었는데 편함에 길들여진 탓인지 이제는 힘겹게만 느껴집니다.

 

며칠 전 한동안 연락이 없었던 지인 한 분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모 초등학교에서 교장 선생님으로 정년 퇴임을 한 후 한가로운 노년을 보내고 계신 분이었습니다. 카이스트를 졸업한 그분의 손자와도 각별한 인연이 있는 나로서는 손자의 결혼식에 참석해달라는 소식이겠거니 지레짐작을 하였는데, 전화를 걸었던 목적은 전혀 엉뚱한 데 있는 듯했습니다. 주말 계획이 어찌 되느냐는 질문에 특별한 계획은 없다고 말씀드렸더니 그분은 친구분들과 함께 용산공원에 갈 계획이라고 하시더군요. 저는 용산공원이 서빙고에 있는 용산 가족공원인 줄 알고 그곳으로 가기보다는 가까운 공원을 가는 게 좋지 않겠느냐는 의견을 제시했더니 용산공원 입장 예약을 어렵게 성사시켰다며 절대 그럴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생각해 보니 용산 미군부대를 시범 개방한다는 뉴스를 어디서 본 것 같았기에 혹시 그곳이냐고 재차 여쭈었더니 그렇다는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각종 독성물질이 정화도 되지 않은 채 개방되는 것이라 우려를 전했더니 별것 아니라는 식의 답변과 함께 나도 예약을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사실 미군 부대에서 카튜샤로 근무했던 친구 덕분에 그곳에서 영화도 보고, 볼링도 치는 등 여러 번 출입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다가 잘 다녀오시라는 인사와 함께 전화를 끊었습니다. 전화를 끊고 곰곰 생각해보아도 용산공원을 서둘러 개방하는 이유를 도무지 모르겠어서 용산공원 입장 예약 사이트에 들어가 보았습니다. '더 가까이 국민 속으로'라는 캐치 프레이즈가 걸려 있는 예약 사이트에는 행사의 내용이나 주의사항 등은 잘 정리되어 있었으나 다이옥신이나 비소 등 1급 발암물질 범벅인 그곳을 국민들에게 서둘러 개방하는 이유는 적시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추측컨대 연금개혁을 공약으로 내세운 대통령이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연금개혁을 하는 대신 여당의 열렬한 지지자인 노인분들을 용산으로 모셔 수명을 1년이라도 단축시킬 수만 있다면 연금개혁은 서두르지 않아도 되는 게 아닌가 싶어서 그런 발상을 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렇게만 된다면 연금개혁은 물론 노령연금을 아낌으로써 재정건전성까지 좋아질 수 있으니 일석이조, 아니 일석삼조쯤 될 수도 있겠습니다. 비록 지지자들을 잃는다는 게 안타깝기는 하지만 말입니다. 게다가 세대 간의 갈등도 조기에 봉합할 수 있겠습니다. 한 가지 제안을 하자면 2시간이 아니라 하루 종일 머무르게 함으로써 효과를 극대화하는 게 어떨까 하는 것입니다. 읍참마속의 심정으로 말입니다. 비교적 여유롭고 시간적 제한도 없는 노인분들은 용산으로 모시고, 임대주택에 사는 가난한 노인들은 정신병자로 몰아 격리시킨다면 초고령화 사회의 대한민국이 당면한 문제를 조기에 수습할 수 있지 않을까요? 서울대 나온 대통령이라 역시 생각하는 게 탁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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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6-15 16: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6-18 16: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yamoo 2022-06-24 09:40   좋아요 0 | URL
하...글쿤요~~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