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먹고 느지막이 집을 나서는데 고등학생쯤으로 보이는 앳된 모습의 남자 한 명이 얼굴 가득 미소를 띤 채 옆동을 향해 서둘러 뛰어가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한 손에는 꽃다발이 담긴 쇼핑백을 들고, 다른 한 손에는 선물 꾸러미를 든 모습이 언뜻 보기에도 누군가의 생일이나 아니면 어떤 특별한 일을 축하하기 위한 행사에 참석하는 차림이었다. 검은색 면바지에 검은색 패딩을 입고, 머리도 한껏 멋을 부려 단정하게 빗은 모습이었지만, 얼굴엔 여드름이 군데군데 솟은 것으로 보아 아직은 성인이 되지 않은 듯한 그의 나이를 짐작할 수 있었다. 그렇게 뛰어가는 남자를 향해 마주 보고 달려오는 비슷한 또래의 여자 모습이 보였다. 두 사람은 다른 사람의 시선을 전혀 의식하지 않은 채 한참 동안 반가운 포옹을 나눈 후 어렵게 떨어져 나란히 손을 잡은 후 아파트 정문을 향해 걸어갔다.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 새벽부터 일어나 멋을 내고, 선물을 준비하고, 혹시 잊은 게 없는지 몇 번이고 확인에 확인을 거친 후 집을 나서고, 약속 장소에서 기다리던 누군가를 만나 꿈같은 시간을 보내고,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도 되풀이하여 낮에 만났던 그 사람의 목소리를 재생하고, 밤이 늦도록 잠이 오지 않아 뒤척이지만 그럴수록 오히려 똘망똘망 정신이 맑아지는 듯 느껴졌던 경험. 사람은 그런 시간으로부터 멀어지는 게 아니라 그런 경험으로부터 멀어지는 게 아닌가 싶었다.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누군가를 만나는 일에 가슴 설레고, 낮에 있었던 일을 떠올리면서 한없이 즐거울 수 있다면, 그런 가슴 두근거리는 경험으로부터 멀어지지 않으려고 하는 열정과 노력이 있다면 우리는 굳이 영영 돌아갈 수 없는 과거를 그리워하며 청승맞게 눈물을 흘리지 않아도 될 일이 아닌가.


"사람은 행복하기만 하면 어떤 규율도 견뎌 낼 수 있다. 글쓰기 습관을 깨뜨린 것은 바로 불행이었다. 우리가 얼마나 자주 다투는지, 내가 얼마나 자주 짜증을 부리며 그녀의 신경을 건드리는지 깨달았을 때 나는 우리의 사랑이 불행한 운명을 맞이하리라는 것을 알아차리게 되었다. 사랑이 시작과 끝이 있는 정사로 변한 것이었다. 나는 사랑이 시작된 그 순간을 말할 수 있었다. 그리고 어느 날, 사랑이 끝난 마지막 순간을 말할 수 있으리라는 것을 알았다."  (p.60 그레이엄 그린의 <사랑의 종말>중에서)


어쩌면 우리는 사랑이 끝났다고 생각하는 순간, 또는 사랑이 식었다고 생각되는 그 순간부터 늙음을 경험하게 되는지도 모른다. 곁에 있는 아내 혹은 남편을 만나는 일이, 출가한 자식을 만나는 일이, 꽃 한 다발을 들고 부모님을 만나러 가는 일이 늘 가슴 설레고 기다려지는 사람이라면 그는 영원히 청춘으로 사는 것이다. 우리는 흘러간 시간으로부터 멀어지는 게 아니라 흘러간 경험으로부터 너무나 빨리 멀어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늙는다는 건 젊었던 시간으로부터 멀어지는 게 아니라 젊었을 때의 경험으로부터 멀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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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의에 대하여 - 무엇이 우리를 살아가게 하는가
문형배 지음 / 김영사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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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기온은 생각보다 차가웠다. 그러나 코에 스미는 공기는 깨끗했다. 맑고 청량한 공기의 느낌이 잠이 덜 깬 모든 감각기관을 서둘러 호출하는 듯했다. 올 가을은 유난히 비가 적었다. 바싹 마른 낙엽이 걸음을 옮길 때마다 발길에 차여 제멋대로 흩어지곤 했다. 그리고 비탈면에 쌓인 낙엽은 무게를 잃고 부풀어올라 발밑에 눌린 낙엽 더미는 조금의 마찰력도 없이 쭉쭉 미끄러지곤 했다. 마치 빙판 위를 걷는 나그네처럼 나는 한 발 한 발 옮기는 일에 온 신경을 집중해야만 했다. 어느 등산객이 버렸는지 코를 푼 듯한 화장지가 (조금 과장하자면)1미터 간격으로 떨어져 있었다. 나는 그 휴지를 줍느라 하산길이 무척이나 더뎌지기만 했다.


어떤 직업군이나 연차와 경험이 쌓이면 자신이 맡은 일에 조금씩 긴장을 풀게 된다. 말하자면 조금 느슨해지는 것이다. 그게 꼭 나쁘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남들이 보기에는 아무래도 농땡이를 피우는 듯 비칠 때도 있다. 물론 직급이 오를수록 이전에 자신이 하던 많은 일을 연차가 낮은 다른 동료 직원에게 위임함으로써 어느 정도 근무 강도가 약해지는 건 사실이지만 말이다. 자신이 맡은 일에 대한 요령도 생기고 전에 비해 근무 강도도 약해지는 바람에 상대적으로 시간이 남는 빈도가 많아지는 것은 좋은데 문제는 짬이 나는 그 시간에 딴생각을 자주 하게 된다는 점이다. 퇴임 이후의 노후 대비라거나 자식들의 진로 문제 등 결론도 나지 않을 문제를 들춰내서 끙끙 앓는 소리를 내게 만드는 것이다.


"이제 무직이 되어 여유가 생겼으므로 인생과 함께 글을 한번 정리해보고 싶었습니다. 우선 그동안 썼던 글들을 다시 읽고, 여러분과 공유하고 싶은 내용을 골랐습니다. 그렇다고 특별한 내용을 담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남의 인생에 조언할 만큼 지혜롭지 않습니다. 다만 제가 판사나 재판관으로 있으면서 생각하였던 바를 여러분에게 말하고 여러분의 의견을 듣고 싶었습니다. 이로써 우리 사이에 대화가 이루어진다면 저의 인생이 풍요로워질 것이고, 어쩌면 여러분의 인생에도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p.6 '여는 말' 중에서)


많은 이들이 퇴임 이후의 계획이나 대책을 세우기 위해서는 독서가 필요하다고 조언하지만 습관이 붙지 않은 직장인들이 짬을 내서 책을 읽는 것은 흔한 풍경이 아니다. 아무리 많은 시간이 주어진다 한들 정작 독서에 매진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는 얘기다. 그보다는 오히려 퇴임 후에 자신이 기댈 수 있는 사람을 찾아내 그들과 어울리는 시간을 만들고자 하거나 퇴직금을 굴려 어떻게 돈을 벌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골몰하는 게 다반사이다.


"독서가 취미라고 하면 밥맛이라고 할지 모르겠는데, 재미있는 책도 많다는 점, 잠이 안 올 때 어려운 책을 잡고 있으면 잠이 솔솔 온다는 점만 말해둔다."  (p.116 '취미 세 가지' 중에서)


법조계 인사들과 어느 정도의 교류가 있는 사람들이라면 다들 아는 사실이지만, 그쪽 직업군에 속한 사람이 이 책의 저자처럼 책을 좋아한다면 외부 직업군에 속한 사람들로부터 존경과 칭찬의 대상이 될 수 있을지는 몰라도 내부 사람들에게는 따가운 눈총이나 받기 십상일 터, 저자 역시 현직에 있을 때는 따돌림깨나 받지 않았을까 싶다. 독서는 고사하고 퇴임 후 돈과 명예를 좇는 일에만 골몰하는 대다수 법조계 종사자들 사이에서 우아하게 책이나 읽는다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밥맛이다. 내가 이 책을 읽고 리뷰를 쓰고자 결심했던 것도 어제 국민의힘 의원들의 국회선진화법 위반 1심 선고를 보면서 재판장 역시 자신의 퇴임 후를 생각해서 내린 판결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피고인들 상당수가 법조인이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유추 가능한 이야기이다.


"양형 기준제 전면 확대만이 전관예우 논란을 일거에 재우고 법무부의 양형 기준법 제정 시도를 봉쇄하는 가장 유력한 방법이고, 국민의 개혁 요구에도 부합할 것입니다. 물론 양형 기준제 전면 확대에 관하여 법관들 사이에 논란이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이는 양형 기준제라는 큰 틀에서 극복되어야 할 문제일 뿐, 양형기준제를 시행하느냐 마느냐를 선택할 수 있는 상황은 지났다고 봅니다. 국민의 신뢰와 지지 없이 사법부가 존재할 수 없고, 사법부의 존재 없는 민주주의는 공염불에 그칠 것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p.345~p.346)


내가 만나본 여러 직업군의 사람들 중에서 법조계에 근무하는 사람들만큼 '독서지향적'이 아닌 '독서지양적'으로 사는 직업군도 드물지 않을까 싶다. 우리가 생각하는 판,검사의 이미지와는 전혀 딴판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개중에는 물론 이 책의 저자인 문형배 전 헌재소장 권한대행처럼 책과 친화적인 인물도 있기는 하다. 그러나 대부분의 판,검사들이 젊어서는 바쁘다는 핑계로, 나이가 들어서는 퇴임 후의 진로를 모색하느라 책과는 담을 쌓고 산다. 단순 무식하게도 법 외에는 아는 게 없을 뿐만 아니라 법조계 밖을 벗어나보지도 않았으니 타인의 삶에 대한 이해도 역시 다른 직업군에 비해 현저히 떨어지는 게 사실이다. 물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아주 없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검찰 출신의 전직 대통령만 보더라도 그 수준을 짐작할 수 있지 않은가. 제1야당의 당대표도, 어제 재판을 받았던 야당의 5선 의원도 모두 법조계 출신이다. 그들 수준이 얼마나 한심한가. 그럼에도 그들은 국민 위에서 왕처럼 군림하고자 한다. 그게 가당키나 한 일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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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 물리적 충돌을 방지하고 대화와 타협을 증진하며, 소수 의견 개진의 기회를 보장하면서도 심의의 효율성을 강화하여 민주적이고 효율적인 국회를 구현하고자' 2012년 5월 2일에 개정된 국회법 조항이 있다. 이른바 우리가 알고 있는 '국회선진화법'이 바로 그것이다. '국회선진화법'은 사실 위반시 매우 엄격한 처벌이 가해지는 까닭에 현직 국회의원 및 국회의원에 출마하고자 하는 정치인이라면 누구나 '국회선진화법' 저촉 여부를 심각하게 따져볼 수밖에 없다. 500만 원 이상의 벌금형이 확정되면 의원직 상실은 물론 5년 동안 피선거권이 박탈되기 때문이다. 일반인에게 5년은 짧다면 짧은 기간일 수 있지만 정치인에게 5년은 영원과 같은 시간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정치인을 벌벌 떨게 만드는 법이라고 해도 전혀 주눅 들지 않는 사람들은 늘 있게 마련, 남편이 판사이거나, 현직 국민의힘 의원이거나, 내란 재판을 받고 있는 윤석열. 김건희와 가깝게 지냈던 사람이라면 전혀 걱정할 문제가 아니다. 예컨대 국회에서 빠루를 들고 설치다 기소가 되어도 1심 선고가 내려지는 데는 무려 6년이란 긴 시간이 소모되기도 하고, 여론에 등 떠밀려 재판이 열린다 한들 검찰의 구형과는 상관없이 벌금 400만 원이라는 비교적 가벼운 형에 처해짐으로써 의원직은 그대로 유지될 수 있도록 하는 재판장의 하혜와 같은 배려가 준비되어 있는 것이다. 달리 말해 벌금 400만 원이 준비된 능력자라면 앞으로도 계속 국회에서 빠루를 들고 설칠 수 있는 자격이 부여된다는 점이다. 그게 보기 싫다고? 그러면 당신도 판사 남편을 두거나 국민의힘 의원이 되면 된다.


2019년 국회 패스트트랙 충돌 사건으로 기소되었었던 국민의힘 전신 자유한국당 지도부 전원이 서울남부지방법원에서 열린 1심 결심공판에서 500만 원 미만의 비교적 가벼운 벌금형에 처해짐으로써 다시 동물 국회로 회귀해도 된다는 법원의 공식적인 허가를 받게 되었다. 법원을 나서는 피고인들의 표정에서 그들의 속내를 추측하자면, "너무 부당한 것 같다고? 지금 감히 하느님과 동격인 판사의 결정에 불복한다는 얘기? 고귀하고 신성시하는 사법부의 권위에 도전하겠다는 사람이 있으면 어디 한번 나와 봐라. 이참에 본때를 톡톡히 보여줄 테니. 그리고 재판장과 가까운 사람은 너희와 같은 대중 나부랭이와 계급이 달라.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이라고 외치는 놈들은 다 빨갱이고, 좌파야. 어딜 감히..."라고 말하고 싶어 하는 듯했다.


법원은, 말하자면 사법부는 법률로 정한 국회의 운영도 자신들의 맘에 들지 않으면 언제든지 되돌릴 수 있는 무소불위의 권한을 쥐고 있다. 2025년 11월 20일의 판결을 통해 그것을 대한민국 국민 전체에게 보여주었다. 사법부는 하느님과 동격이니 어느 누구건 대들지 말지어다. 대한민국 국회는 다시 동물 국회로의 회귀를 명한다. "땅, 땅, 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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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과 농담 말들의 흐름 7
편혜영 외 지음 / 시간의흐름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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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은 이제 겨울로 접어들고 있다. 매년 이맘때면 사람들은 유난히 이 음식에 집착하곤 한다. 그것은 다름 아닌 술이다. 술을 음식이라고 말해도 되는지 잘 알 수는 없지만, 아무튼. 그럼에도 나는 술꾼들의 기분을 전혀 모른다. 그렇다고 내 주변에 술꾼들이 아주 없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가깝게 지내는 술꾼들이 내게 이따금 자신들이 거나하게 취했을 때의 기분을 자세히 들려주기는 해도 직접 경험해 본 적 없는 나로서는 이렇다 저렇다 도무지 평을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 나는 선천적으로 알코올 분해 효소가 없이 태어난 까닭에 술은 입에도 대지 못한다. 술을 조금이라도 마시면 얼굴은 물론 온몸이 빨갛게 달아오르고 기운이 쭉 빠지는 통에 그 즉시 잠을 자지 않으면 활동을 하기 어렵다. 남들은 즐겁자고 마시는 술이지만 나에게 술은 그야말로 사약에 버금가는 고통유발물질에 불과할 뿐 기호식품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그런 까닭에 술을 가까이해보려 억지로 노력한 적은 있었지만 기꺼운 마음으로 좋아했던 적은 없었다.


그렇다고 내가 술자리를 일부러 피하거나 술꾼들과 거리를 두려 했던 적은 없었다. 오히려 나는 술을 못 마시는 것에 대해 일종의 죄의식(?)이나 미안함을 더 크게 가졌던 듯하다.  그런 마음이 나를 더 자주 술자리로 이끌었던 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 그 바람에 나는 술값이며, 대리기사 호출 등 술꾼들의 뒷수습을 전담하는 뒷감당 전담 매니저가 되고 말았다. 그렇게 자리매김하면서부터 웬만한 술자리에는 으레 나를 부르는 것이 일종의 선결 과제로 정착되고 말았다. 이처럼 술도 마시지 않으면서 술자리 경험은 누구 못지않게 풍부했던 까닭에 술에 관련된 전문 서적이나 술과 얽힌 경험담을 쓴 책이라면 가리지 않고 읽었던 것도 사실이다. 아주 기꺼운 마음으로. 편혜영 외 다섯 명의 작가가 쓴 <술과 농담>도 그런 연유에서 비롯되지 않았을까 싶다. 물론 '말들의 흐름' 시리즈 네 번째 책이었던 한정원 작가의 <시와 산책>을 우연히 읽었던 게 이 시리즈 중 몇 권의 책에 더 손이 간 직접적인 계기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말이다.


"그 무렵 엄마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유별난 조갈은 무엇 때문이었는지, 혼자 아이를 감당하느라 얼마나 지쳤는지, 날마다 자라는 아이를 돌보면서 나이 들어가는 스스로에 대해서는 어떤 기분을 느꼈을지 당시의 나는 한번도 헤아려보지 않았다. 길가에 앉아 바쁘거나 한가로이 오가는 사람들을 보며, 등을 땀으로 적시는 손자의 무게를 견디며 시간을 들여 천천히 맥주를 마시는 동안 엄마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조금도 모른다는 게, 지금도 종종 마음을 아프게 한다."  (p.24 '편혜영')


술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술의 미덕에 대해 찬양한다. 스트레스 해소에 그만이라거나 묵었던 앙금을 풀고 일치된 마음으로 단합하는 데는 술만 한 게 없다는 등 술에 대한 칭찬은 끝이 없다. 그러나 술로 인한 실수나 실패의 경험 또한 술꾼이라면 피해 갈 수 없는 대목이다. 과거 우리 사회가 술에 대해 무한정으로 관대했던 시기에 갓 입사한 신입사원을 상대로 입사 축하주랍시고 독한 술을 들이붓는 바람에 양복을 입은 채로 길바닥에서 잠을 자는 풍경도 흔히 볼 수 있었다. 그러나 못 먹는 술을 억지로 권하던 풍습도 이제는 찾아보기 힘들고, 술은 그야말로 좋아하는 사람의 기호식품으로 자리를 잡아가는 듯하다. 우리 사회가 그만큼 성숙했다는 뜻인지도 모른다.


"스무 살에 시작된 만취 습관은 일 년 정도 계속되다가 스물한 살이 되자 그야말로 볕을 받은 눈송이처럼 녹아 없어졌는데, 그건 단지 한 살 더 먹어서가 아니라 어떤 허무의 집적 때문이었을 것이다. 테이블 위의 술을 몽땅 마셔버릴 수 있을 것만 같던 호기롭던 마음과 사랑이니 정의니 하는 아름다운 단어를 들으면 언제라도 거리로 뛰쳐나갈 수 있을 것 같던 그 간질거리던 마음은 술자리가 끝나면 순식간에 사라져버렸고, 귀갓길에선 예외 없이 허무가 찾아왔다. 이상한 걸 알면서도 이상하고 싶어 했던 스무 살은 그렇게 지나갔다. 솔직해서 풋풋했지만 돌아갈 수 없다는 게 미덕이기도 한, 단 한 번의 시절...... 솔직함의 시절, 가끔은 그립지만 돌아가고 싶지 않은......"  (p.49 '조해진')


술에 관대했던 사회적 분위기는 술의 소비를 한껏 부추겼다. 술에 취해 저지른 범죄마저 '주취경감'이라는 이유로 형을 가볍게 하거나 용서하자는 분위기였다. 그런 분위기가 한동안 지속되는 바람에 취객은 언제나 보호되고 용서되었다. 사회 공동체가 얼싸안고 힘을 합쳐 취객을 보호하자는 공동선언이라도 한 듯 우리 사회는 취객을 보호하는 데 언제나 앞장서곤 했다. 돌이켜보면 그것은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가 공동체 의식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한 분위기에 어느 누구도 불만을 표시하지 않았다. 그러나 공동체 의식이 소멸되고 개인주의가 대세를 이루고 있는 요즘 취객의 실수는 용서받지 못할 범죄로 취급되고 있다. 가슴 답답한 누군가가 술에 취해 하던 넋두리는 이제 아무도 받아줄 이가 없다는 얘기다. 그렇게 조각조각 부서진 사회가 더 많은 술꾼을 양산하고 있지만, 그 모든 술꾼들에게 '입은 닫고 실수는 금물'이라는 표어를 강제하는 바람에 술에게도 버림받았다고 느끼는 우울한 현대인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오고 있다.


"취해서 길에 누운 자들이 보일 때마다 경찰에 신고했다. 어찌된 일인지 모두 남자들이었다. 여름밤, 겨울밤. 경찰들은 대개 친절하게 말했고 더욱 친절하게도 경과를 문자로 알려주기까지 했다. 언젠가 내가 길 위에 눕게 된다면, 누가 나를 경찰에 신고하게 될까? 나는 그에게 스타벅스 커피쿠폰이라도 미리 보내주고 싶다. 혹은 발베니 21년산 한 병을. 나는 단 한 번 단 한 잔 그 술을 마신 적이 있고 그대로 죽고 싶었다."  (p.127 '한유주')


못 믿겠지만 우리 사회에서 술을 못 마신다는 건 팔이 하나 없거나 귀가 들리지 않는 것처럼 신체적 장애가 있는 사람과 동일하게 취급되었다. 그랬던 시절이 있었다. 멀지 않았던 과거의 일이다. 나 역시 음주량을 늘리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던 시절이 있었다. 공동체 의식이 과하게 넘쳐나던 시기였고, 한 사람이 술을 마시면 구성원 모두가 예외 없이 마셔야만 하던 시절이었다. '먹고 죽자'는 말이 농담처럼 읊어지던 시절이었고, 서툰 개인주의가 구성원 모두에게 눈총을 받던 시절이었다. 그런 시절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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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우리는 자신의 삶을 이어가기 위해 또 한 주를 시작해야 합니다. 어제는 새벽부터 바람이 거세게 불었습니다. 하늘을 향해 손전등을 비출 때마다 짙은 농도의 어둠 속으로 서너 장의 낙엽이 사선을 그리며 낙하하곤 했습니다. 간밤에 소리도 없이 살짝 흩뿌렸던 비가 메마른 낙엽 위에 이슬처럼 맺혀 있고, 나의 발길이 닿을 때마다 비명을 지르듯 서걱댔습니다. 습관처럼 우리는 또 하루를 살아낼 테고 차분히 헤아리거나 의식하지도 못하는 채 한 주를 또 그렇게 흘려보낼 것임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오늘 아침에는 거짓말처럼 바람이 잦아들었습니다. 올가을 들어 처음 영하로 떨어진 아침, 날이 추울수록 공기는 맑다는 걸 아는 나로서는 갑작스러 추위가 영 마뜩지 않은 것은 아니어서 나는 다른 날보다 조금 더 이른 시간에 집을 나섰습니다. 공기는 맑고 고요는 깊었습니다. 고요가 한정 없이 깊어서 산을 오를수록 낙엽 밟는 소리는 더욱 커져만 갔습니다. 어둠을 밀어내는 손전등 불빛이 힘겨워만 보이고, 인근의 아파트 공사 현장에는 벌써 일꾼들의 말소리가 두런두런 들립니다. 어제에 비해 등산객의 숫자는 많이 줄어든 느낌입니다.

문형배 전 헌재소장 권한대행이 쓴 <호의에 대하여>를 읽고 있습니다. 전업 작가가 쓴 글처럼 매끄럽거나 맛깔난 문체는 아닙니다. 그러나 투박한 문장에서 그의 진심이 묻어납니다. 책의 제목은 <호의에 대하여>이지만 나는 '진심에 대하여' 생각하며 책을 읽어나갑니다.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30대에 형사 단독 판사를 할 때 어느 지원장님이 하신 말씀이 생각난다. "30대가 되면 단독 판사로 판결할 수 있다." "부처님도 득도한 때가 30대였고, 예수님도 돌아가실 때가 서른세 살이었다." 그분의 말씀을 지금에 와서 풀어보자면 '세월의 부피가 아니라 세월의 무게가 중요하다. 그러니 나이의 적고 많음에 얽매이지 말고 세월의 무게를 체화할 수 있도록 고민하고 경험하라'라는 뜻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p.106 '나이 먹는 일의 기쁨과 슬픔' 중에서)

해가 뜨면서 어느 정도 한기는 가셨지만 한낮에도 기온은 크게 오르지 않습니다. 어쩌면 앞선 날들이 평균 이상으로 더 따뜻했는지도 모릅니다. 아무튼 나는 점심을 먹고 공원을 한 바퀴 도는 것도 거른 채 서둘러 사무실로 복귀했습니다. 창밖에는 늦가을 햇살이 넘치게 쏟아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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