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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신 - 카프카 단편선 ㅣ 소담 클래식 7
프란츠 카프카 지음, 배인섭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5년 10월
평점 :
작가가 체험하지 못한 글은 독자에게도 감동을 주지 못한다. 대개는 그렇다. 그러므로 작가는 자신이 쓰고 있는 글이 과거에 직접적으로 겪은 체험이든 아니면 자신이 글을 쓰는 가상의 공간에서 지금 현재 겪고 있는 만들어진 체험이든, 아무튼 작가는 자신이 쓰는 글에 대한 생생한 느낌이 존재해야 한다. 사랑의 기쁨이든 실연의 고통이든 그것은 작가의 직접적인 느낌이어야 하며, 그러한 느낌이 고스란히 글로 재현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머릿속에서의 단순한 논리나 가정만으로 글을 쓴다는 것은 작가로서의 자격을 상실한 것일지도 모른다. 진정한 배우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작품 속의 인물로 완전히 탈바꿈해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글을 쓰는 작가가 자신이 만들어 낸 인물들과 얼마나 가깝게 느끼고 그 인물과 혼연일체가 되어 얼마나 근접하게 생각하고 행동하느냐가 결국 작품의 성패를 좌우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소설가는 자신의 작품 속에서 1인 다역의 연기자가 되어 소설을 이끌어 갈 수밖에 없다.
지난해 노벨상을 받은 한강 작가 역시 <소년이 온다>를 쓸 당시에 작가가 느꼈을 고통이 작품을 읽는 독자에게 고스란히 전해진다. 견딜 수 없는 심적 고통으로 인해 집필에서 손을 뗀 채 몇 날 며칠을 서성였을 모습이 눈에 선하게 그려진다. 우리가 고전이라고 일컫는 대부분의 작품들이 그러하다. 작가의 미세한 심적 변화마저, 슬픔으로 인한 가벼운 떨림조차 행간의 침묵 속에서 읽어낼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을 받을 때에야 비로소 최고 권위의 노벨문학상에 다가갈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은 어쩌면 작가의 고통과 진실에 대한 세계인이 보내는 작은 답례일지도 모른다.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 역시 내겐 그런 작품으로 기억되고 있다. 비록 그가 노벨상 수상 작가는 아니지만 병약하고 감성적이었던 그가 위압적인 아버지 밑에서 주변의 기대와는 다른 방향으로 자신의 삶을 꾸려가면서 겪어야 했을 온갖 수모와 좌절, 그리고 정신적 불안 등이 그의 작품 속에서 그대로 투영되기 때문이다. 가족들이 모두 잠든 밤에 글을 쓰는 등 틈틈이 저작 활동을 이어가던 그가 하룻밤 만에 완성했다는 <변신>은 숨 죽이며 살아야 했던 그의 삶이 어떠했을지, 할 수만 있다면 벌레로 변해서라도 가족들의 시선에서 벗어나기를 그가 얼마나 학수고대했을지 소설을 읽는 독자는 가슴 절절히 느끼게 되는 것이다.
"그는 감동과 사랑으로 가족들과의 추억을 더듬었다. 그가 사라져야 한다는 생각은 누이동생보다 그레고르 자신에게 더욱 절실했을 것이다. 그레고르는 이런 상태로 허전하고 평화롭게 상념을 정리하고 있었다. 시계탑이 새벽 세 시를 칠 때까지, 창밖이 찬찬히 밝아 오기 시작하는 것을 다시 한번 체험할 수 있었다. 그러고서 그의 머리가 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풀썩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의 콧구멍에서 마지막 숨이 약하게 새어 나왔다." (p.192 '변신' 중에서)
소담출판사에서 출간한 <변신: 카프카 단편선>에는 중편소설인 '변신' 외에도 1910년대 초반에 집필한 단편소설 '화부'와 '선고'가 함께 실려 있다. '화부'에서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카를 로스만이라는 소년은 가정부가 그를 유혹해서 아이를 낳았다는 이유로 강제적으로 미국에 보내지는데 소설은 카를이 막 미국에 도착하여 하선을 하려는 순간에서 시작한다. 익숙했던 공간에서 벗어난 어린 주인공이 낯설고 적대적인 공간에서 새롭게 정착해야 하는 부담과 불안한 심정 등이 복합적으로 그려지고 있는 이 소설은 미완성 장편 <아메리카>의 서문 격인 작품이기도 하다.
"카를은 맞을까 무서워서 마구 휘두르는 화부의 두 손을 잡고 싶었다. 아니, 할 수만 있다면 그를 한쪽 구석으로 밀어붙이고 싶었다. 그러고서 아무도 들을 수 없는 나직한 목소리로 흥분을 가라앉혀 줄 말 몇 마디라도 그에게 속삭여 주고 싶었다. 그러나 화부는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날뛰고 있었다. 카를은 급한 경우 화부가 완전한 절망에서 솟구쳐 나오는 힘으로 이 방의 일곱 남자 모두를 제압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면서 이제 심지어 일종의 위안을 얻는 듯 느끼기 시작했다." (p.40 '화부' 중에서)
카프카 스스로 '자신의 문학적 탄생'이라 평할 만큼 자전적 색채가 짙은 작품인 '선고'는 사업적으로 성공하고 곧 약혼을 하게 되는 주인공 게오르크가 러시아에 있는 친구에게 자신의 약혼 소식을 전해야 할까 말아야 할까 고민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그리고 이와 같은 고민을 병상에 누워 있는 아버지에게 털어놓자 아버지는 게오르크에게 '죽음을 선고'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벌어진다. 인간관계의 갈등과 다층적 심리, 아버지의 권위와 복종, 죄책감 등 일상에서 빚어질 수 있는 다양한 심리를 간결하게 그려내고 있는 이 소설은 현대인의 관점에서는 다소 엉뚱하고 어처구니없는 상황으로 인식될지도 모르겠다.
"이제 너도 알겠지. 너 말고도 무엇이 있는지. 이제까지 너는 오로지 너 자신만을 알았지! 너는 본래 순수한 아이였어. 그렇지만 더 본래의 네 모습은 악마 같은 인간이었어! 그런 이유에서 이제 알리노니, 너에게 물에 빠져서 죽을 것을 선고하노라!" (p.94 '선고' 중에서)
우리가 소설을 읽는 이유는 소설 속에서 작가의 진실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작가의 진실은 작가 스스로가 체험했던 온갖 느낌을 독자에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데서 온다. 결국 그것은 작가의 상상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작품을 쓰는 동안 그가 체험했던 생생한 기록에서 근거한다. 독자는 작가의 체험을 읽으면서 때로는 웃고 때로는 눈물을 흘리면서 미처 겪어보지 못했던 다양한 경험을 공유하게 된다. 늦가을의 날씨 치고는 꽤나 따뜻한 날들이 이어지고 있다. 물기가 쪽 빠진 단풍잎이 제 무게를 잃은 듯 하늘 저편으로 하늘하늘 떨어지고 있다. 하루 종일 흐린 하늘엔 이따금 아이들 웃음이 퍼지곤 한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카프카의 단편을 읽고 짧았던 그의 삶을 생각한다. 가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