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얼빈
김훈 지음 / 문학동네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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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기원은 한순간의 '끌림'에 의해 소설가를 유도하고, 그 '끌림'에 의해 탄생한 소설 역시 '끌림'을 통하여 독자들을 유인한다. 양전하와 음전하에 의해 전기를 띠게 되는 대전체처럼 소설가의 열정과 상상력은 세상의 모든 낱낱의 '끌림'을 유도하는 '끌림'의 대전체. 나는 김훈의 소설 <하얼빈>을 읽는 내내 소설가가 이룩한 '끌림'의 대전체에 기꺼이 감전되고픈 한 마리 부나방이라는 생각을 했다.


"포수, 무직, 담배팔이, 이 세 단어의 순수성이 이 소설을 쓰는 동안 등대처럼 나를 인도해 주었다. 이 세 단어는 생명의 육질로 살아 있었고, 세상의 그 어떤 위력에도 기대고 있지 않았다. 이것은 청춘의 언어였다. 이 청년들의 청춘은 그다음 단계에서의 완성을 도모하는 기다림의 시간이 아니라 새로운 시간을 창조하는 에너지로 폭발했다."  (p.303 '작가의 말' 중에서)


일본의 천황 메이지가 대한제국의 황태자 이은을 접견하는 장면으로 시작하는 이 소설은 조선의 청년 안중근의 대의와 일본의 노련한 정치가이자 전략가인 이토 히로부미의 대의가 맞부딪히는 순간을 중심으로 펼쳐진다. 안중근의 일대기가 탄생에서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 일반의 전기문처럼 쓰인 게 아니라 1909년 10월 26일 하얼빈역에서 이토를 쓰러트린 순간과 그 전후의 짧은 나날들을 조망한다. 말하자면 소설가 김훈의 눈에 비친 안중근의 삶은 응축된 에너지를 한순간에 폭발시키는 불꽃과도 같은 삶이었다. 그것은 다른 누군가의 명령이나 오랫동안 준비된 계획이 아니라 하나의 마음, 어떠한 논리로도 설득될 수 없는 붉은 마음이었음을 김훈은 말하려고 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김훈은 이러한 안중근의 마음을 우덕순의 그것으로 비껴가고 있다.


" - 그대는 안의 명령에 따른 것인가?

  - 아니다. 나는 안에게 명령을 받을 의무가 없다. 또 명령을 받을 의무가 있다 하더라도 이런 일은 명령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나는 내 마음으로 한 것이다."  (p.232)


우리는 시시각각 스스로 말을 짓고, 자신이 지은 말을 누군가에게 전달하면서 살아간다. 작가는 생활인이 아닌 직업인으로서 말을 짓고, 자신의 말을 일반 대중을 향해 던진다. 그것은 청년 안중근이 이토를 향해 총부리를 겨누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안중근은 인간 이토를 저격한 것이 아니라 제국주의를 신봉하는 수많은 제국주의자들의 가슴을 향해 결연한 단절의 의지로써 총을 들었기 때문이다. 우리의 말이, 혹은 작가의 언어가 각자가 품은 의사를 표현하는 것처럼 안중근 역시 제국주의를 신봉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자신의 죽음을 통해 그것의 부당함을 알리고자 했을 터, 목숨이 자신의 의사표현을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 쓰일 수 있었음에 안중근은 마지막까지 안도했는지도 모른다.


"앎이 통절한 자들은 세상을 바꿀 수 있는데, 앎이란 곧 사물의 실상을 보는 정신의 작용이다. 실상을 보는 자는 몸 둘 자리를 알고 몸 쓸 방편을 스스로 안다. 이 세계는 인간이 만드는 구조물이다. 이것이 우리의 앎이다. 우리의 앎은 사물을 향해 나아간다. 이것이 제국의 길이다."  (p.80)


그렇다면 소설가 김훈은 독자들에게 무엇을 말하고자 했을까. 독실한 천주교 신자였던 도마 안중근과 조국을 위해 살인도 불사하겠다는 속인 안중근의 갈등을 보여주려 했을까 아니면 일본의 제국주의론과 안중근의 동양평화론이 맞부딪히는 순간을 이토의 저격을 통해 현실화하고자 했던 청년 안중근의 야심과 그를 지지하고 응원했던 여러 인물들의 삶을 부각하려 했을까. 아니면 안중근에게 세례를 준 빌렘 신부와 그 당시 한국 교회를 통솔했던 뮈텔 주교의 갈등을 역사 속에서 다시 되살리려 했던 것일까. 사형을 선고받은 안중근은 죽음을 앞두고 신에게 자신의 죄를 고할 수 있기를 염원했고, 빌렘 신부는 뮈텔 주교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안중근이 있던 뤼순 감옥을 향한다. 그리고 빌렘 신부는 안중근을 면회한다.


"빌렘은 주일미사 강론 원고를 쓰지 못했다. 무엇을 말해야 하는지는 알 수 있었으나, 그것을 말해도 되는 것인지를 알 수가 없었다. 말은 하느님의 것이고 또 이 세상의 것이었다. 하느님의 나라와 이 세상 사이의 먼 길을 말은 건너가기 힘들었고 말하려는 것이 문장으로 엮어지지가 않았다. 새벽에, 빌렘은 원고 쓰기를 단념했다. 문장으로 엮지 말고, 말하여지는 대로 말하는 편이 오히려 진심에 가까울 것이라고 빌렘은 판단했다. 빌렘의 종이 위에는 죄, 살인, 생명, 영혼, 구원...... 같은 단어들이 문장으로 엮이지 못하고 흩어져 있었다."  (p.245)


작가에게 대전(帶電)되는 모든 단어들이 문장이나 책으로 엮어지는 것은 아니다. 어떤 단어는 일필휘지로 순식간에 책으로 엮여 독자들에게 배포되기도 하고, 또 어떤 단어는 오랜 시간을 건너 어렵게 어렵게 그 생명력을 득하기도 한다. 그러나 작가에게 대전되었던 많은 단어들이 끝내 책이나 문장으로 엮이지 못한 채 조용히 소멸하고 만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인연이 닿지 않았던 수많은 단어들의 소멸을 누군가는 기억하고 또 기려야 한다. 역사의 한 순간을 김훈 작가가 기억함으로써 불꽃처럼 타올랐던 청년 안중근의 삶이 2022년을 사는 우리에게 되살아났던 것처럼 작가에게 이끌렸으나 끝내 소멸할 수밖에 없었던 수많은 단어들의 운명을 기억함으로써 우리는 <하얼빈>보다 더 절절한 그들의 이야기를 제야의 종소리가 울리는 미래의 어느 해에 한 권의 책으로 엮을 수 있지 않을까. 소설 <하얼빈>은 내게 우연처럼 이끌렸던 몇몇 단어들이 한 권의 책으로 엮이는 기적으로, 그리고 그 기적에 부나방처럼 이끌렸던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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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두려움에 대하여


우리 멧돼지들에 대하여 사람들에게 잘못 알려진 사실이 있다. 멧돼지들은 대개 머리도 나쁘고 겁이 없어서 물불 가리지 않고 달려드는 짐승으로 알려져 있는데 사실은 그 반대에 가깝다는 것이다. 다른 짐승에 비해 영민한 편이며 무척이나 겁이 많아 때로는 '저게 미쳤나?' 싶을 정도로 무모한 데가 있는 것이다. 그런 모습들을 오해하여 사람들은 멧돼지 하면 먼저 머리가 나쁜 동물, 또는 앞뒤 가리지 않는 무식한 동물을 떠올리곤 하였던 것이다.


어제도 나는 얼마나 겁이 났던지 똘마니들이 마련해준 안가에서 딱히 할 일도 없이 하루를 소일하느라 좀이 쑤실 지경이었다. 난데없이 북한의 정은 멧돼지가 무인기를 보냈기 때문이다. 그게 어디 예사로 넘길 일인가. 여차하면 리더 멧돼지인 나의 목숨이 날아갈 판 아니던가. 가뜩이나 예민한 시국에 무인기라니... 나는 하루가 지난 지금도 여전히 오금이 저려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사정을 모르는 일반 멧돼지들은 국가 안전 보장 회의도 열지 않고 도대체 뭘 했느냐?고 비난하지만 생각해 보라. 여차하면 목숨이 날아갈 판인데 회의가 뭔 필요며, 목숨이 두 개도 아닌데 남들이야 죽든 말든 일단 나부터 살고 봐야 할 일 아니던가. 게다가 정은 멧돼지의 일차 목표는 누가 뭐래도 리더 멧돼지인 내가 아닌가.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만 나는 리더가 된 직후부터 밤에 제대로 잠을 자지 못하고 있다. 퇴임 후에 있을 나의 안위가 걱정이 돼서다. 나를 이어 리더가 될 멧돼지가 리더에서 물러난 나를 감옥에 보내지나 않을까 하는 걱정에 자다가도 문득문득 잠이 깨는 것이다. 리더에서 물러나기 전에 나를 감옥에 보낼 만한 멧돼지란 멧돼지는 모조리 손을 써 놓을 작정이지만 그렇더라도 내가 미처 생각지도 못한 멧돼지가 리더라도 되는 날이면 나는 꼼짝없이 감옥에 갈 신세로 전락하고 마는 것이다. 정말 가능성은 없지만 뒷골목의 내 똘마니였던 은정 멧돼지가 리더로 뿝힌다면 나는 그야말로 죽은 목숨이 되는 것이다. 멧돼지 속담에 '설마가 멧돼지 잡는다'고 하지 않던가. 이런 불안과 공포는 나뿐만 아니라 아내 멧돼지도 함께 느끼고 있다. 퇴임 후 우리는 나란히 감옥으로 직행하는 꿈을 꾸기도 한다. 그렇게 되지 않도록 나는 지금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하고 있다. 내 편이 될 만한 멧돼지들이란 멧돼지들은 모두 풀어줄 작정이다. 나는 오늘도 전임 리더 멧돼지를 비롯한 온갖 비리에 연루된 멧돼지들을 모두 풀어주었다. 내가 퇴임 후 어려움에 처한다면 그들 역시 나를 위해 함께 싸워주리라 기대하면서 말이다.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일 역시 내후년에 있을 총선거에서 나와 반대편에 있는 멧돼지들이 대거 당선되어 나를 탄핵하는 것이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내가 예상하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발생하는 셈이다. 요즘 내가 교회를 자주 찾는 것도 그런 까닭이다. 사람들이 믿는 신 중에서 가장 세다는 하느님에게 제발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게 해달라고 간절히 빌고 싶었기 때문이다. 여차하면 아내 멧돼지를 내 대신 감옥에 보내는 한이 있더라도 나는 그러고 싶지 않다. 뒷골목 대장이었던 내가 가오가 있지 그런 최후를 맞는다면 쪽팔린 일 아닌가.


* 경고 : 이 글은 단지 허구에 의한 소설일 뿐 특정 사실이 아님을 엄중히 고지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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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2-27 22:1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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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2-30 17: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하루하나 365일, 챌린지 인생 문장 - 1년은 사람이 바뀔 수 있는 충분한 시간
조희 지음 / 리텍콘텐츠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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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삶을 아무리 정교하게 계획하고 절제하며 이루고자 하는 목표를 향해 하루하루 나아간다고 해도 모든 게 자신이 처음 구상했던 대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목표를 이루기도 전에 우리가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돌발 변수가 전혀 생각지도 못한 엉뚱한 방향으로 우리를 인도하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실망할 필요는 없습니다. 삶의 신비는 바로 그 지점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자신의 삶을 아무런 계획도 없이 되는 대로 살라는 것은 아닙니다. 자신의 삶이 계획한 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해서 실망할 필요도, 신을 원망할 필요도 없다는 뜻이지요. 살다 보면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어떤 부분은 그저 운명이려니 생각하면서 툭툭 털어버릴 필요가 있음을 자연스레 깨닫게 됩니다.


집 근처의 도서관을 시간이 날 때마다 풀방구리에 쥐 드나들듯 번질나게 드나들다 보니 도서관에 근무하는 직원들뿐만 아니라 나와 비슷한 유형의 사람들을 여럿 알게 되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햇수로 십여 년 이상을 제집처럼 드나들었으니 아는 사람이 없다는 게 더 이상한 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도서관에서 만난 인연들은 저보다 한참 연배가 높은 분들이 대부분입니다. 다니던 회사에서 은퇴 후 도서관에서 책을 읽거나 취미 생활을 하면서 소일하는 것이지요. 그분들 중 한 분은 모 은행에서 교육을 담당하셨던 분인데 지금은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가 자주 만날 수는 없지만 전에는 일주일에 적어도 한두 번을 만날 정도로 가깝게 지냈습니다. 그분은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도서관에서 반나절을 보내곤 했습니다. 읽고 싶은 책을 꺼내 읽다가 기억해야 할 문구를 볼라치면 반드시 자신의 노트에 기록하여 간직하곤 했던 것이지요. 그렇게 모은 노트만 수십 권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나와 만나기 시작했던 어떤 시점부터는 자신의 노트를 다시 읽으면서 새로운 노트에 다시 간추려 꼭 기억해야 할 문구를 기록하고 있다고 말하면서 언젠가 자신이 세상을 떠났을 때 아들에게 물려주고 싶다는 뜻도 내비쳤습니다. 인문학자 조희가 쓴 <하루하나 365일, 챌린지 인생 문장>을 읽으면서 그분 생각이 났던 것도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저는 문학, 철학, 경영, 자기계발을 넘나드는 자유로운 책 한 권을 저술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독서를 하고 요약하는 일을 꾸준히 해왔습니다. 책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문장이 저에게 인생문장으로 다가왔습니다. 특히 큰 울림을 주었던 몇 문장들은 삶을 긍정적으로 바꾸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주었지요."  (p.4 'prologue' 중에서)


SESSION 1 '운명에 맞서 개척하는 인생, 도전의 계절', SESSION 2 '달콤한 환상 꿈같은 사랑, 열정의 계절', SESSION 3 '어떨 때는 배반하는 인생, 인내의 계절', SESSION 4 '흐르는 시간 영원한 사랑, 이성의 계절'의 총 4부로 구성된 이 책은 저자가 읽고 발췌한 하나의 문장을 제시하고 그 밑에 저자의 코멘트를 다는 형식으로 제작되어 365개의 문장으로 꾸려져 있습니다. 말하자면 1년 365일을 이 책과 함께 하면서 결심을 굳히고 부록에서는 책에 실린 문장 중 20개를 선정하여 '나의 인생문장집'을 만드는 미션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공지영 작가의 산문집 <빗방울처럼 나는 혼자였다>에서 발췌한 '일어나 걷는 자는 동사하지 않는다.'는 문장에 대해 저자는 다음과 같은 코멘트를 달았습니다.


"우리는 인생에서 주저앉고 싶은 순간을 종종 맞이합니다. 하지만 주저앉아 있으면 추운 날씨와 내리는 눈에 그대로 얼어붙어 죽고 말죠. 반면에 일어나 걷는 자는 땀이 나면서 체온이 올라가고, 그 체온에 눈이 녹아 동사하지 않습니다. 오늘은 단 10분이라도 밖으로 나가 걸어보세요. 주저앉고 싶었던 마음이 언제 그랬냐는 듯 사라질 것입니다."  (p.213)


내가 도서관에서 만나 지금까지 관계를 지속하고 있는 분도 그렇게 오랜 시간 공을 들인 그분의 인생 문장집에 대해 그 노트를 물려받을 당사자, 이를테면 그분의 아들은 그것에 대해 딱히 관심이 없다고 내게 하소연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분의 아들 역시 결혼하여 슬하에 어린 아들을 두고 있지만 아버지가 했던 삶의 방식을 그대로 물려받아 자신의 아들에게도 고스란히 물려줄 생각은 없을 듯합니다. 물론 그렇게 될 리도 없겠지만 말입니다. 어쩌면 그분의 아들은 아버지의 노트에 대해 그저 고리타분한 구시대의 유물쯤으로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아들의 인생길이 남들보다 수월하고 편한 길이 되기를 바라는 아비의 마음은 십분 이해한다고 할지라도 말입니다.


2022년의 마지막 남은 한 주를 보내는 오늘, 새해에는 이런저런 계획을 세우기도 하고 며칠 지나기도 전에 금세 잊어먹기도 하겠지만, 설사 그렇더라도 새해는 언제나 설레는 마음으로 맞아야 하겠습니다. 인문학자 조희의 <하루하나 365일, 챌린지 인생 문장>을 읽었던 것도 그런 마음이었습니다. 다가오는 새해는 올해와 다를 것이라는 희망,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도 그럴 것이라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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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사는 게 뭔지...


가뜩이나 살얼음판의 아슬아슬한 정치판인데 날씨마저 꽁꽁 얼어붙었다. 리더 멧돼지가 되기 전에는 그렇지 않았는데 시시각각 전해지는 국내외 뉴스 하나하나에 신경이 곤두서곤 한다. 나처럼 게으르고 천하태평인 멧돼지도 리더라는 자리는 특별할 수밖에 없는가 보다. 어떤 일처리를 내가 잘해서가 아니라 나는 아무것도 한 게 없는데 좋은 소식이 전해지는 바람에 지지율이 크게 오르기도 하고 반대로 크게 떨어지기도 하니 뉴스의 힘이 무섭다는 생각을 아니할 수가 없다. 그런 까닭에 나에 대해 나쁜 소식을 전하는 언론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기를 죽여 놓아야겠다고 결심했다. 한 언론사는 리더 전용 수레에 타지 못하도록 지시를 내렸고, 또 다른 언론사는 회사를 통째로 나에게 우호적인 재벌 멧돼지들에게 팔아버리라고 명령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나라의 모든 언론사는 나를 찬양하는 뉴스만 매일 내보낼 테니 그렇게 되는 날 비로소 술도 마음껏 먹을 수 있고, 잠도 편히 잘 수 있을 게 아닌가.


한 해를 보내는 기념으로 전임 리더 멧돼지를 풀어주기로 했다. 사실 그는 리더로 재임하던 시절 자신의 부를 축적하기 위해 만만한 자들 여럿으로부터 삥을 뜯었다는 죄로 감옥에 갇혔던 것인데, 마음 같아서는 한 10년쯤 더 가둬두고 싶지만 나를 보좌하는 똘마니 멧돼지들 중 상당수가 전임 리더 멧돼지의 심복이었던 까닭에 그들의 눈치를 전혀 안 볼 수가 없었던 것이다. 나도 물론 아내 멧돼지와 장모 멧돼지가 나를 대신하여 불법적으로 부를 축적하고 있으니 전임 리더 멧돼지를 딱히 비난할 입장은 못되지만 그를 풀어줌으로써 나라 전체의 일반 멧돼지들로부터 비난이란 비난은 내가 다 받아야 할 처지이니 그게 좀 번거롭다는 것이다. 전임 리더 멧돼지 역시 나의 선처에 감읍하는 것 같지도 않고 말이다.


똘마니 멧돼지들과의 회의에서 세계 최강이라는 '날리면' 멧돼지의 말을 몇 마디 섞어 썼다가 괜한 시비에 휘말렸다. 나는 사실 '날리면'이 쓰는 말을 뜻도 모르면서 그저 멋있어 보인다는 이유로 했을 뿐인데 그게 이렇게 큰 뉴스거리가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던 것이다. "거번먼트 인게이지먼트가 바로 레귤레이션이다. 마켓에 대해서 정부는 어떻게 레귤레이션 할 거냐, 마켓을 공정하게 관리하고 그 마켓의 생산성을 높일 수 있도록, GDP(국내총생산)를 많이 만들어 낼 수 있는 그런 아주 효율적인 시장이 될 수 있도록 공정한 경쟁 체제를 만들어 주는 것이 정부가 시장에 대해서 관여하고 개입해야 하는 기본적인 방향이다. (…) 금융기관의 거버넌스가 아주 투명하고 합리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정부의 일이다. (…) 2023년에는 그야말로 다시 대한민국, 도약하는 그런 나라로 만들기 위해서 더 적극적으로, 더 아주 어그레시브하게 뛰어봅시다." 나는 아직도 거번먼트 인게이지먼트, 거버넌스, 어그레시브 등 내가 했던 말들의 의미를 여전히 모르고 있다.


최근에 아내 멧돼지는 밖으로만 나돌고 있다. 물론 나와 아내 멧돼지는 사랑으로 맺어진 관계는 아니고, 필요에 의한 공생관계이긴 하지만 섭섭한 마음은 어쩔 수가 없다. 아내 멧돼지는 나의 권력이 필요하고, 나는 아내 멧돼지의 재력이 필요할 뿐이지만 그래도 가끔은 남들처럼 알콩달콩 사는 모습이 부러운 것이다. 더구나 내일은 인간들이 반기는 성탄절 아니가. 동장군의 기세만큼이나 가슴에는 찬바람이 휘몰아친다. '아, 사는 게 뭔지...'


* 경고 : 이 글은 단지 허구에 의한 소설일 뿐 특정 사실이 아님을 엄중히 고지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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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가 다녀왔습니다
신경숙 지음 / 달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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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숙의 산문집을 읽는 것은 참으로 오랜만이다. 소설가라는 책무를 다하기 위함인지 작가는 자신이 쓴 소설 작품에 비해 산문집은 작품 권수가 현저히 적다. 소설가로 등단한 어떤 작가는 소설보다는 에세이에 치중하는 탓에 소설가인지 에세이스트인지 도통 구분이 되지 않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지만 말이다. 그에 비하면 신경숙 작가는 소설가라는 자신의 본분을 명확히 지키고 있는 게 아닌가. 물론 불미스러운 일로 한동안 작품 활동을 중단하기도 했지만 말이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등단한 지 40년 가까운 작가가 그런 불미스러운 사건 사고 하나 없이 홀로 깨끗한 것도 이상한 일, 작가를 아끼는 팬의 한 사람으로서 나는 여전히 작가의 편을 들고 싶은 것이다. 표절을 옹호하겠다는 건 아니지만, 표절을 통해 박사 학위를 받았으면서도 얼굴 똑바로 들고 나다니는 사람에 비하면 한동안 자숙의 시간을 가졌던 신경숙 작가는 꽤나 양심적인 게 아닌가.


"물론 나는 이보다 더 나빠져도 요가를 계속할 것이다. 왜냐하면 요가는 이제 나에게 한끼 식사 같은 것이 되었으니까. 계속 숨을 쉬듯이, 내가 작가이니 계속해서 글을 쓰듯이 요가는 이제 조건 없이 나의 일상이 유지되는 한 계속하는 그런 것이 되었다."  (p.122)


내가 신경숙 작가의 산문집 <우울한 그늘>을 읽었던 건 딱 10년 전이다. 작가의 소설 작품만 읽어오던 내가 산문집을 읽었을 때의 감회는 새로운 것이었다.(신경숙의 산문집을 읽는 것은 참으로 오랜만이다. 소설가라는 책무를 다하기 위함인지 작가는 자신이 쓴 소설 작품에 비해 산문집은 작품 권수가 현저히 적다. 소설가로 등단한 어떤 작가는 소설보다는 에세이에 치중하는 탓에 소설가인지 에세이스트인지 도통 구분이 되지 않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지만 말이다. 그에 비하면 신경숙 작가는 소설가라는 자신의 본분을 명확히 지키고 있는 게 아닌가. 물론 불미스러운 일로 한동안 작품 활동을 중단하기도 했지만 말이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등단한 지 40년 가까운 작가가 그런 불미스러운 사건 사고 하나 없이 홀로 깨끗한 것도 이상한 일, 작가를 아끼는 팬의 한 사람으로서 나는 여전히 작가의 편을 들고 싶은 것이다. 표절을 옹호하겠다는 건 아니지만, 표절을 통해 박사 학위를 받았으면서도 얼굴 똑바로 들고 나다니는 사람에 비하면 한동안 자숙의 시간을 가졌던 신경숙 작가는 꽤나 양심적인 게 아닌가.


"물론 나는 이보다 더 나빠져도 요가를 계속할 것이다. 왜냐하면 요가는 이제 나에게 한끼 식사 같은 것이 되었으니까. 계속 숨을 쉬듯이, 내가 작가이니 계속해서 글을 쓰듯이 요가는 이제 조건 없이 나의 일상이 유지되는 한 계속하는 그런 것이 되었다."  (p.122)


내가 신경숙 작가의 산문집 <우울한 그늘>을 읽었던 건 딱 10년 전이다. 작가의 소설 작품만 읽어오던 내가 산문집을 읽었을 때의 감회는 새로운 것이었다.(https://blog.aladin.co.kr/760404134/5263012) 그렇게 나는 강산이 한 번 바뀐 후에 제목도 생소한 작가의 에세이집을 손에 들었던 것이다. 책의 제목인즉 <요가 다녀왔습니다>. 요가라고는 해본 적 없는 나로서는 택의 표지에 '신경숙'이라는 이름 석자가 없었더라면 결코 쳐다보지도 않았을 제목 아닌가.


"나는 체력을 잃고 난 뒤에 자주 심각해지고 좌절에 빠지고 작은 일에도 화를 내고 물건을 사납게 내려놓고 문을 쾅쾅 닫고 기다림에 인색해졌다. 마구 날뛰는 말 한 마리가 심장 부근에 살고 있다가 어딘가로 내달리는 느낌이었다. 그래 놓고 내가 왜 이러나 싶어 자책하곤 했는데 요가를 시작하고는 그게 사라졌다."  (p.37)


15년 넘게 요가를 하며 몸과 마음을 들여다본 일상을 평이한 문장으로 기록한 이 산문집은 달라질 것 없는 우리네 일상처럼 지극히 편안하고 단조롭다. 앞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신경숙의 산문집은 <우울한 그늘>이 거의 유일했던 까닭에 소설이 아닌 산문에서의 문체와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소설의 그것과는 사뭇 다르지 않을까 은근히 기대하면서 읽게 되는데 <요가 다녀왔습니다>는 너무나 평이한 문체와 마치 집안에서 입는 일상복의 느낌이어서 독자이자 팬의 한 사람으로서 조금 당황했던 것도 사실이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도 신경숙 작가도 그렇고 시나브로 나이가 들고 있음이다. 다름을 통하여 남보다 앞서가려 했던 젊은 시절의 마음은 이제 온데간데없고 다른 작가들과 하등 다를 게 없는 평이하고 소탈한 문체를 통하여 자신의 속마음을 독자들에게 전하려 하는 것이다. 작가도 이 세상을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 중 1인일 뿐이라는 느낌이 글 전체에 배어 있는 것이다.


"소설은 결국 문장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어쨌든 시작부터 끝까지 한 문장 한 문장을 벽돌처럼 쌓으며 나아가야 소설이 완성된다. 앞 문장에 의해서 뒤 문장이 이루어지듯 숨쉬기도 들이쉬기가 있어야 내쉬기로 이루어진다. 복식 호흡을 익혀나가는 일은 숨쉬기가 요가에서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해주는 과정이기도 했다."  (p.141)


아침에 내리던 눈은 낮이 되자 비로 바뀌었다. 우산을 쓰고 하교를 서두르는 아이들이 보이고, 종일 어두웠던 하늘은 다가올 추위를 예고라도 하려는 듯 내내 깊고 우울하다. 요가를 통해 삶의 활기를 되찾으려는 게 아니라 한 해 한 해 나이가 들고 그에 비례하여 늙어가는 자신의 몸에 알맞게 적응하려는 작가의 태도는 오늘처럼 흐리고 우울한 날엔 나로 하여금 더더욱 많은 생각에 잠기게 한다. 매일 아침 오르는 아파트 뒷산도 이따금 힘에 겨울 때가 있는 걸 보면 나의 몸도 조금씩 기울어가나 보다. 작가처럼 나도 아파트 인근의 요가원을 알아봐야 할까? 그럴 나이가 되었는지도 모른다, 아무튼.) 그렇게 나는 강산이 한 번 바뀐 후에 제목도 생소한 작가의 에세이집을 손에 들었던 것이다. 책의 제목인즉 <요가 다녀왔습니다>. 요가라고는 해본 적 없는 나로서는 택의 표지에 '신경숙'이라는 이름 석자가 없었더라면 결코 쳐다보지도 않았을 제목 아닌가.


"나는 체력을 잃고 난 뒤에 자주 심각해지고 좌절에 빠지고 작은 일에도 화를 내고 물건을 사납게 내려놓고 문을 쾅쾅 닫고 기다림에 인색해졌다. 마구 날뛰는 말 한 마리가 심장 부근에 살고 있다가 어딘가로 내달리는 느낌이었다. 그래 놓고 내가 왜 이러나 싶어 자책하곤 했는데 요가를 시작하고는 그게 사라졌다."  (p.37)


15년 넘게 요가를 하며 몸과 마음을 들여다본 일상을 평이한 문장으로 기록한 이 산문집은 달라질 것 없는 우리네 일상처럼 지극히 편안하고 단조롭다. 앞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신경숙의 산문집은 <우울한 그늘>이 거의 유일했던 까닭에 소설이 아닌 산문에서의 문체와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소설의 그것과는 사뭇 다르지 않을까 은근히 기대하면서 읽게 되는데 <요가 다녀왔습니다>는 너무나 평이한 문체와 마치 집안에서 입는 일상복의 느낌이어서 독자이자 팬의 한 사람으로서 조금 당황했던 것도 사실이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도 신경숙 작가도 그렇고 시나브로 나이가 들고 있음이다. 다름을 통하여 남보다 앞서가려 했던 젊은 시절의 마음은 이제 온데간데없고 다른 작가들과 하등 다를 게 없는 평이하고 소탈한 문체를 통하여 자신의 속마음을 독자들에게 전하려 하는 것이다. 작가도 이 세상을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 중 1인일 뿐이라는 느낌이 글 전체에 배어 있는 것이다.


"소설은 결국 문장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어쨌든 시작부터 끝까지 한 문장 한 문장을 벽돌처럼 쌓으며 나아가야 소설이 완성된다. 앞 문장에 의해서 뒤 문장이 이루어지듯 숨쉬기도 들이쉬기가 있어야 내쉬기로 이루어진다. 복식 호흡을 익혀나가는 일은 숨쉬기가 요가에서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해주는 과정이기도 했다."  (p.141)


아침에 내리던 눈은 낮이 되자 비로 바뀌었다. 우산을 쓰고 하교를 서두르는 아이들이 보이고, 종일 어두웠던 하늘은 다가올 추위를 예고라도 하려는 듯 내내 깊고 우울하다. 요가를 통해 삶의 활기를 되찾으려는 게 아니라 한 해 한 해 나이가 들고 그에 비례하여 늙어가는 자신의 몸에 알맞게 적응하려는 작가의 태도는 오늘처럼 흐리고 우울한 날엔 나로 하여금 더더욱 많은 생각에 잠기게 한다. 매일 아침 오르는 아파트 뒷산도 이따금 힘에 겨울 때가 있는 걸 보면 나의 몸도 조금씩 기울어가나 보다. 작가처럼 나도 아파트 인근의 요가원을 알아봐야 할까? 그럴 나이가 되었는지도 모른다, 아무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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