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 뜨는 나라의 공장 - 개정판 무라카미 하루키 에세이 걸작선 (개정판)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안자이 미즈마루 그림, 김난주 옮김 / 문학동네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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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젊은 시절을 엿보는 것은 꽤나 흥미 있는 일이다. 물리적으로 시간을 거꾸로 되돌릴 수는 없지만, 그가 젊은 시절에 썼던 글이나 사진 등을 보면서 '아, 그때는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구나'라거나 '젊은 시절에 그는 이런 스타일의 옷을 입었었네' 하는 식의 감탄은 당사자가 어두운 골방에 갇혀 어쩌다 하게 되는 무익한 회상과는 차원이 다른 행위이기 때문이다. 가까운 지인 몇몇이 모여 앨범이나 일기장을 들춰보면서 하게 되는 농담 섞인 담소나 추억 되살리기는 일종의 작은 축제에 가깝다. 그런 의미에서 글을 쓰는 작가나 포토그래퍼는 무척이나 매력적인 직업일 수 있다. 물론 연극이나 영화를 하는 배우 역시 그에 못지않게 매력적이지만 말이다.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30대의 젊은 시절에 썼던 수필집 <해 뜨는 나라의 공장> 역시 그런 작품으로 읽기에는 안성맞춤이다. 70대 중후반의 나이가 된 작가를 마주하고 있는 독자가 시대를 거슬러 그가 30대에 했음직한 생각들을 가늠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작가의 생각이 은밀하게 내재된 소설이 아닌, 작가의 생각이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산문집이 존재한다는 건 작가를 사랑하는 독자의 입장에서는 행운에 가깝다고 말할 수 있다. 나는 하루키의 애독자 중 한 사람으로서 그가 쓴 작품 대부분을 읽어보았지만, 그럼에도 이따금 하루키의 문체가 그리워질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나는 그가 쓴 소설보다는 에세이에 먼저 손이 가곤 한다. 독자의 생각을 방해하지 않는 쉽고 간결한 문체로, 독자와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려는 듯한 그의 문장 스타일은 읽는 이로 하여금 '쉼'의 느낌을 강하게 자각하게 한다. 그래서인지 하루키의 에세이 한 권을 읽고 나면 왠지 모르게 머리가 맑아진 듯한 느낌을 받곤 한다.


"나는 여행을 떠날 때면 가급적 형편없는 차림을 하는데, 그래도 현지에 도착해서 보면 주위 사람들에 비해 상당히 반듯하게 차려입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어 황당하곤 한다. 그리고 반대로 일본에 돌아오면 주위의 모든 사람들이 너무나 단정하게 입고 잇는 것 같아서 또 한동안 안절부절못한다. 그런 일이 몇 번 거듭되는 사이, 나도 모르게 '아무려면 어때'의 숲속으로 끌려들어가고 만 듯하다."  (p.160)


알 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하루키는 소설 외에도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써왔다. 분류하자면 여행에세이나 가벼운 신변잡기를 다룬 경수필 외에도 르포르타주나 탐방기를 쓰기도 했다. 옴진리교 지하철 사린사건을 다룬 르포르타주 <언더그라운드>와 공장 탐방기 <해 뜨는 나라의 공장>가 대표적이다. 하루키의 공장 탐방기라니, 왜?라고 질문할 사람도 있을지 모르겠다. 소설을 쓰기 위해 공장을 취재할 수는 있지만, 일반인들이 관광이나 견학을 목적으로 하는 공장 방문을 하고 그곳에서 일하는 직원과의 일문일답을 했던 내용을 책으로 엮는다는 건 소설가가 하는 일상적인 취재 활동과는 격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가 새삼 얘기하기는 좀 뭣하지만, 일본 사람들이란 정말 애처로울 정도로 열심히 일하는 인종이더군요. 잘하기도 할뿐더러 일 자체에서 즐거움과 철학과 긍지와 위로를 찾아내려고 애쓰기도 한다. 그게 옳은 일인지 아닌지는 물론 내가 알 수 없는 노릇이고, 그것이 앞으로 어떻게 변해갈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것을 차치하고 내가 지금 이렇게 원고를 쓰고 있는 동안에도 일본 각지의 공장에서 여러 사람들이 몸을 움직여 무수한 것들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 왠지 마음이 푸근해지고 용기가 생긴다."  (p.12~p.13 '서문' 중에서)


하루키가 방문하고자 했던 공장의 선택 기준은 조금 독특한 면이 있다. 서문에서도 밝히고 있지만 그 기준이 순전히 작가의 호기심에 의해 작성되었기 때문이다. 작가가 방문했었고,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공장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인체모형 공장, 결혼식장, 지우개 공장, 낙농 공장, 콤데가르송 공장, 콤팩트디스크 공장, 아데랑스 공장 등으로 우리의 상식에서 상당히 벗어난 듯도 하고, 우리가 생각하는 공장 이미지와도 잘 부합되지 않는 측면이 있다. 그러나 작가는 지금 막 결혼식장을 벗어나는 신혼부부마저 공장에서 찍어낸 듯한 인상을 받았던 까닭에 '결혼식장'을 하나의 공장으로 인식한 것을 보면 작가의 시선이 남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일종의 공장인 결혼식장, 혹은 '결혼식장'이란 이름의 공장에서 사용하는 원료는 다름아닌 신랑 신부로 불리는 한 쌍의 남녀이며, 그 기계적 추진력은 전문적 노하우와 숙달된 서비스, 주된 부가가치는 감동(좀더 소극적으로 표현하면 정서의 고양), 그 수요를 뒷받침하는 것은 세상 일반의 '관례. 상식. 습관'이다. 그런 식으로 결혼식장에서는 오늘도 흉일만 아니면 한 회 또 한 회, '의식'이라는 이름의 휘황찬란한 상품이 생산되고 있다."  (p.52)


어떤 대상에 대한 애착을 표현하는 소위 '덕질'이라는 것이 문학계에서는 다소 수줍게 이루어지고 있는 듯하다. 물론 임경선 작가처럼 하루키를 흠모하는 까닭에 그가 살았던 일본의 몇몇 지역을 직접 방문하여 훑어보는 열혈 덕후도 존재하지만, 대다수의 애독자는 자신이 좋아하는 작가의 작품을 소장하거나 탐독하는 선에서 그치는 게 일반적이다. 물론 해외여행 중에 자신이 좋아하는 작가의 무덤을 방문하여 애도를 표하는 경우는 많이 보았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독서가의 덕질은 꽤나 은근한 면이 있어서 길을 걷다가도, 일을 하다가도, 심지어 낯선 곳을 여행하다가도 자신이 좋아하는 작가의 어떤 작품이나 문장을 떠올리곤 한다. 말하자면 독자의 내면에 깊이 자리하는 것이다.


기온이 올랐는지 눈이 쌓였던 자리에서 눈석임물이 조금씩 흘러내리고 있다. 조금 귀찮기는 하지만 가벼운 산책이라도 다녀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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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적으로 눈이 내려 대한민국은 이제 온통 눈 세상이 되었습니다. 건듯 불어오는 바람도 눈의 냉기를 한껏 머금은 듯 조금의 온기마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고 청량합니다. 점심을 먹은 후 더부룩한 속을 달래느라 근처 공원을 한 바퀴 돌았습니다. 반려견을 데리고 산책을 나온 사람들도 보이고, 햇볕을 쪼이며 조곤조곤 담소를 나누는 할머니들 모습도 보입니다. 12월의 첫 주말을 맞는 사람들의 표정은 이렇듯 냉랭한 한기 속에 적잖이 움츠러든 모습입니다.


쿠팡의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 사건으로 인해 우리가 추구하던 편안함에 대한 대가를 톡톡히 지불하고 있는 듯한 느낌입니다. 사실 나는 그와 같은 편안함을 일부러 피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미련하다는 세평을 꽤나 많이 들어왔습니다. 쿠팡을 이용하지 않는 까닭에 장을 보기 위해 직접 마트를 방문해야 하는 것은 물론 간단한 것을 구매할 때에도 편의점이나 인근의 가게를 방문해야만 합니다. 심지어 나는 어떤 배달앱도 이용하지 않고 있습니다. 배달 음식이 먹고 싶을 때에는 가게에 직접 전화를 걸어 주문을 한 후 약속 시간에 맞춰 찾으러 가곤 합니다. 게다가 나는 남들 다 한다는 '페이'도 이용하지 않고 플라스틱 카드로 결제를 하곤 합니다. 독서를 좋아하지만 전자책은 이용하지 않고 오직 종이책만 고집합니다.


이런 내 모습이 직장 동료들에게는 구시대적 유물처럼 보이나 봅니다. 그럼에도 나는 굴하지 않고 나의 루틴을 견지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나는 이제껏 나의 개인정보가 단 한 번도 유출된 적이 없었을까요? 불행하게도 그렇지는 않습니다. 과거 내가 이용하던 인터파크에서도, 최근에는 SK텔레콤에서도 나의 개인 정보는 무참히 유출되었던 것입니다. 물론 그전에도 내가 이용하던 인터넷 사이트에서 두어 번의 정보 유출이 있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주변 사람들이 말하기를 이렇게 하나 저렇게 하나 어차피 개인정보가 유출될 거면 편안함을 추구하고 유출되는 게 더 낫지 않느냐고 나에게 주장합니다.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나는 과학기술의 발달과 그것으로부터 우리가 얻는 편안함에는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대가가 따른다고 믿는 사람입니다. 남들이 뭐라 하든 말입니다.


인간의 삶은 어쩌면 아날로그적 경험을 이행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수많은 실수와 그로 인해 우리가 지불하는 많은 불편과 시간낭비를 통해 더욱 풍요로워지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편안함과 효율성만 추구하다 보면 우리의 삶도 그렇게 효율적으로 흘러가게 될 것 같은 불안이 나를 이따금 깨어나게 합니다. 그것은 마치 대량생산을 담당하는 자동화된 공장과 다를 게 없는 듯합니다. 나의 삶도, 당신의 삶도 공장에서 찍어낸 듯한 단일한 삶이라면 우리는 굳이 개별적인 삶을 살아야 할 이유가 없겠지요. 당신의 삶도, 나의 삶도 이제껏 없었던 고유한 것이기에 우리는 오늘도 최선을 다해 살아야 할 이유를 발견하게 되는지도 모릅니다. 나는 그와 같은 삶을 응원하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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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프리쿠키 2025-12-06 23: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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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르른 틈새
권여선 지음 / 문학동네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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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밤에 눈이 조금 내렸다. 첫눈이었다. 포근한 날에 내리는 함박눈처럼 우리가 기대하는 첫눈의 낭만이나 환호는 찾아볼 수 없었다. 온몸이 움츠러들 정도로 날씨는 추웠다. 그리고 지난해 있었던 잊지 못할 기억 때문인지 눈송이마저 푸슬푸슬 가늘게 쪼개지는 듯했고, 옹송그린 채 걷고 있는 사람들의 시선도 눈이 내리는 허공을 향하지 않고 시종일관 땅으로만 향해 있었다. 나는 행인들의 우울한 시선을 뒤로한 채 서둘러 차를 몰았다. 연말의 바쁜 일정 틈틈이 읽기 시작했던 권여선 작가의 <푸르른 틈새>도 이제 몇 쪽 남지 않았던 까닭이었다. 어떤 소설이건 소설을 읽는 독자는 마지막 부분으로 갈수록 손에 땀이 나고 호흡은 거칠어지게 마련, 그 순간에 다른 일로 어쩔 수 없이 책을 손에서 놓아야 했던 독자는 마치 책이 펼쳐 놓은 그물망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못한 듯 어서 빨리 책의 마지막 부분을 읽어야겠다는 생각으로 허둥대게 된다.


"나는 연애가 아니라 이별을, 사랑이 아니라 그리움을 기억한다. 연애의 시작이나 과정은 조금도 특별할 것이 없지만 연애의 끝은 언제나 특별하다. 나는 그 특별한 그리움과 집착, 뒤틀린 내 몸 안에 도사리고 있던 특별한 사나움을 기억한다. 실제보다 더 길어 보이는 욕실 거울처럼 이별의 순간을 몹시 길고 캄캄한 세월로 반사하는 내 기억의 틀 속에서......"  (p.202)


작가의 데뷔작이기도 한 이 소설은 소설의 주인공인 미옥이 이사를 앞둔 7일 동안 자신의 자취방에서 서른 살에 이르는 자신의 인생을 회고함으로써 자신에게 있었던 숨겨진 진실을 발견하고 이를 통하여 자신의 정체성을 획득해가는 과정을 그린 작품이다. 어린 시절부터 시작된 그녀의 인생은 대학 시절을 거쳐 삼십 대인 지금에 이르고 있지만, 회고의 중심은 민주화 운동기였던 1980년대 중후반의 대학가를 배경으로 미옥이 운동권 여대생으로 정착되었던 시점을 부각하고 있다. 1960년대에 태어나 대학 입학 정원 확대와 중산층의 성장에 기대어 대학에 진학했고 민주화의 물결 속에서 광장에 섰던 혹은 억지로 그곳에 서야만 했던 시대 상황과 여성성을 억압한 채 남성 중심의 운동 문화 속에서 중성적 여인으로 성장해야 했던 불합리한 현실이 소설 속에 투영되고 있다.


"어느 날엔가 나는 꽃무늬 커튼을 친 어두운 방에서 가구에 둘러싸인 채 동그마니 앉아 있었다. 움직일 수 있다고, 내부에서 무언가 꿈틀거리고 있다고 믿고 싶었지만 믿음과는 달리 습기를 잔뜩 머금은 젖은 나무토막처럼 나는 꼼짝도 할 수 없었다. 오랜 세월이 흐르도록 이렇게 서서히 젖어가고 싶다는 축축한 욕망이 혈관을 타고 번졌다. 먼 훗날 누군가 이 방에 들어와 내겐 전혀 개의치 않고 이 방의 가구들과 함께 나를 들어내어서 어디론가 싣고 가 낱낱이 부수어주기를, 그렇게 해체된 채로 햇볕 받으며 말라가기를, 골수부터 관절까지, 마디마디까지 곰팡이로 뒤덮였던 몸이 콱콱 쪼개지고 틀어지며 버쩍버쩍 말라가기를 나는 꿈꾸었다."  (p.154~p.155)


어린 시절 미옥은 원양어선을 탔던 아버지 덕분에 별 어려움 없이 성장할 수 없었지만, 가산을 탕진한 외삼촌으로 인해 외할머니를 비롯한 외가 식구들이 미옥의 집에 얹혀살았다.  둘째 이모는 남편의 바람기로 자식과 함께 미옥의 집으로 들어왔고, 사업으로 가산을 탕진한 외삼촌으로 인해 외숙모 역시 비슷한 처지가 되고 말았다. 그러나 미옥의 아버지가 직장을 잃고 실직자가 되었을 때 둘째 이모부는 사업에 성공해서 전세가 역전되었고, 외숙모와 외할머니 역시 미옥의 집을 떠났다. 운동권의 현실에 실망했던 미옥이 휴학계를 내고 집에 돌아왔을 때 미옥과 아버지는 천덕꾸러기 신세가 되어 집 안에서 머물러야만 했다. 미옥이 다니던 대학에 복학하면서 여성성을 회복하고 한영과의 연애가 시작되는데...


"나는 내일 이사를 떠난다. 지난 일주일의 시간처럼 내가 또 어떤 기다림의 간이역에서 다시금 내 삶을 향해 새로운 일별을 던질지 알 수 없지만, 그러나 그것이 언제이든 그때도 나는 이렇게 소낙비처럼 쏟아지는 기억의 화살을 향해 내 가슴을 과녁으로 내보이리라. 이런 생각만으로도 몸 속의 푸르른 창이 열리고 그 틈새로 빛이 쏟아져들어오는 듯하다."  (p.280)


곤두박질쳤던 기온은 조금씩 풀려가는 느낌이다. 어떤 작가든 그의 초기작을 읽을 때면 언제나 약간의 어색함과 부자연스러운 느낌과 함께 작가 자신의 선명한 이미지가 도드라지게 부각되곤 한다. 작가 자신의 정체성이나 세계관이 작품 속에 진솔하게 묻어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정유정 작가의 <내 인생의 스프링 캠프>를 읽었을 때도 비슷한 느낌이었다. 그러나 작가가 쓴 소설의 권수가 더해지고 세월이 흐를수록 작가 본연의 색채는 옅어지지만, 어색했던 문장은 더욱 매끄러워진다. 그것을 발전이라고 할 수 있을까? 나는 이따금 작가의 데뷔작이 몹시 그리워질 때가 있다. 이 책을 읽었던 것도 그런 까닭이었는지도 모른다. 첫눈을 그리워하듯 내가 좋아하는 어느 작가의 데뷔작을 나는 오늘도 그리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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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베란다에서 얼굴만 빼꼼히 내밀고 내려다보면 아이들 놀이터가 한눈에 들어온다. 나는 휴일 한낮의 느긋함을 확인하기 위해 놀이터의 풍경을 몰래 훔쳐보곤 한다. 쇠양배양 돌아치는 아이들의 잰 몸놀림을 미처 따라잡지 못한 시간은 급할 것 없다는 듯 느릿느릿 흘러간다. 꾸물꾸물 늦장을 부리는 시간 속을 쉼 없이 움직이는 아이들. 극과 극의 대비가 휴일 한낮의 놀이터에서 펼쳐지는 것이다. 나는 지금은 군에 있는 아들의 어린 시절을 응시하는 부모의 시선이 되었다가 이따금 거침없이 뛰노는 아이의 시선이 되기도 하면서 단지 관객으로서 누릴 수 있는 느긋한 여유를 즐긴다. 휴일의 시간은 그렇게 나릿나릿 흘러간다.


12월의 첫날. 사람들은 왠지 모르게 비장한 표정이다. 하필이면 첫날이 월요일이라서 그랬는지도 모르고 어제보다 기온이 떨어져서 그랬는지도 모른다. 또는 비상계엄 1주년이 코앞으로 다가왔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지켜보고 있을 때의 시간은 정말 느리게 흐르지만 대충 뭉뚱그려 따져보는 시간은 너무너무 빨리 흐른다. 벌써 1년이라니... 뜬금없는 비상계엄과 이를 극복하기 위한 시민들의 노력 그리고 암담하게 흘러가던 시간들. 내란에 대한 죄과가 낱낱이 드러난 것도 아니고, 그에 대한 처벌이 시작된 것도 아니지만, 우리는 그 처참하고 암담했던 시간에서 벗어나 보통의 일상을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에 그저 감사하고 있다.


영화감독 윤가은의 산문집 <호호호>에는 다음과 같은 대목이 나온다.

"나는 별자리 운세에 꽤 진지하다. 꿈은 너무 멀고 사랑은 계속 아픈데, 나는 내 마음조차 모르겠어 끝도 없이 방황하던 시절에 별자리를 만났다. 친한 선배의 소개로 점성술사 수전 밀러의 별점을 다달이 번역해 올려주는 개인 홈페이지를 방문했다가 전에 경험한 적 없던 큰 위로를 받았던 것이다. 정말 놀라운 경험이었다. 크고 따뜻한 무언가가 나와 내 인생을 깊이 이해하고 친절하게 설명해주는 것 같았다. 절대 겁을 주거나 경고하는 방식이 아니었다. 그저 다정하게 위로하고 부드럽게 격려할 뿐이었다. 혼자가 아니라고 말해주는 것도 같았다. 너와 비슷한 주기로 넘어지고 일어나는 다른 친구들도 많이 있다고, 그들과 함께 가는 거니까 너무 외로워 말고 힘내라고 응원해주는 것도 같았다."  (p.165)


우리는 비록 별자리는 서로 다르지만 '비상계엄'이라는 엄청나게 높은 산을 함께 넘은 동지이자 동시대의 대한민국을 이끌어가는 시민으로서 '비상계엄 1주기'에 맞춰 힘내라는 응원의 말이라도 나누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추워진 날씨에 우리는 갑자기 서로의 건강이 문득 걱정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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돗자리 장수에서 광장으로 - 민주화 운동가 이오순 평전
임수정 지음 / 밥북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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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운명은 한순간에 변한다. 살아보니 그렇다. 우리는 마치 두께가 다른 얼음판 위에 서서 어디가 얇은지 또는 어디가 두꺼운지 도통 아무런 정보도 없이 자신에게 주어진 얼음판의 둘레를 마구 헤집고 다니는 꼴이다. 겁도 없이 말이다. 단 한 번도 나의 무게를 감당할 수 없는 얇은 얼음 위를 딛지 않는다는 건 기적에 가깝다. 물론 얇은 얼음을 디뎠지만 물에 휩쓸리기 직전에 다른 이의 도움을 받아 기적적으로 살아나는 경우도 더러 있겠지만 말이다. 이렇듯 삶을 유지하는 건 두렵고 힘든 일이다. 그러나 두렵다고 해서 다들 한 귀퉁이에 모여 오들오들 떨고만 있을 수는 없는 일, 두려움을 떨치고 과감히 일어나 자신이 밟을 곳이 살얼음판이라는 사실을 뻔히 알면서도 기꺼이 한 발을 내딛는 이도 있고, 그것을 똑똑히 지켜본 이들 역시 자신의 두려움을 툭툭 털고 일어서 다른 이의 평안한 삶을 위해서, 그리고 현실의 부당함을 알리기 위해서 자신의 편안한 삶을 기꺼이 포기하기도 한다. 삶의 용기는 그렇게 하품처럼 전염되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삶이 두려울 때마다 그들의 지난 삶을 회상하기도 하고, 그들의 용기를 가슴에 깊이 새기기도 한다.


"나는 처음부터 이오순의 외동딸 송영숙에 주목했다. 이오순이 서울로 장사하러 떠날 때 열 살이었던 송영숙은 엄마 없는 집에서 가사를 전담했다. 1965년 가족들이 서울로 이주할 때 함께 상경했으며 청계천 봉제공장에 취직해서 가족의 생계를 도왔다. 막냇동생 송광영이 분신하자 엄마와 함께 민주화운동에 동참했다. 내가 인터뷰를 하러 갔을 때 일흔여섯의 송영숙은 치매를 앓고 있었다. 대부분의 질문에 '다 좋았다'고 답했다. 왜 그렇게 열심히 했느냐고 묻자 '막둥이가 나를 그렇게 만들었제'라고 답했다."  (p.6 '책머리에; 중에서)


나는 평전을 좋아한다. 개인의 일생에 대한 필자의 논평이 곁들여진 평전은 전기문에 비해 객관적이고 학술적이라는 게 다수의 견해다. 물론 미화와 왜곡으로 점철된 평전도 없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임수정 작가가 쓴 <민주화 운동가 이오순 평전, 돗자리 장수에서 광장으로>를 읽게 된 것도 지금까지 내가 유지해 온 독서 편력의 결과가 아닌가 싶다. 그리고 나는 전두환 독재정권이 발의했던 학원안정법에 반대하여 스스로 분신의 길을 택했던 이오순 여사의 아들 송광영 열사를 익히 알고 있었다는 사실 역시 책을 읽는 데 주저함이 없도록 했다. 사실 8,90년대의 민주화 과정을 겪어보지 않은 세대에게 있어 '송광영'은 낯선 이름이다. 더구나 그의 모친이었던 '이오순'은 더더욱 낯선 이름이다. 그러나 독재에 저항하고 그들의 탄압에도 결코 굴하지 않았던 용기와 헌신의 역사를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이오순은 숨죽인 채 오열했다. 머리에 삼베수건을 쓰고 대열의 맨 앞에 서 있던 유가협 어머니들 그 누구도 소리 내어 울지 못했다. 울음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눈물만 뚝뚝 떨궜다. 동백꽃이 툭, 질 때처럼. 심장이 벌떡이는데도 소리 내 울 수는 없었다. 울음소리를 내는 순간 광영의 죽음은 개인적인 일이 되어버릴 것 같았다. 이오순은 그때 알았다. 침묵만큼 처절하고 슬픈 오열은 없다는 것을. 광영의 죽음, 열사들의 자기희생은 민주주의를 위한 순수한 피흘림이라는 것을. 수천의 군중 앞에서 열사로 호명되는 순간 광영의 죽음은 그 의미가 분명해졌다는 것을. 막내아들 광영은 민주주의를 위해 산화한 투사라는 것을 가슴에 또렷하게 새겼다."  (p.213)


일제강점기였던 1927년에 태어난 이오순은 그녀의 나이 38세에 남편과 사별하고 다섯 명의 어린 자식을 책임지는 가장으로 살다가 1994년 68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재산이나 연고도 없이 자식들을 데리고 무작정 서울살이를 시작했던 1959년부터 그녀의 삶은 오롯이 해방 이후 우리나라가 겪었던 질곡의 역사를 그대로 재현한 셈이었다. 더구나 1985년에 막내아들을 잃고 1986년부터 시작된 '민주화운동유가족협의회(유가협)' 창립회원으로서의 활동은 평범한 아낙이었던 이오순을 광장의 투사로 변모시켰다. 산업화시기에 서울로 서울로 모여들었던 수많은 사람들의 고단한 삶과 그들의 허기진 일상을 따뜻한 손으로 어루만지지 않았던 위정자와 기업인들로 인해 거리는 온통 최루탄과 화염병이 오갔고, 공장 노동자의 삶은 점점 더 피폐해져 갔었다. 나는 이오순 평전을 읽는 내내 송광영 열사의 짧았던 생애를 떠올렸고, 언젠가 읽었던 권여선 작가의 <푸르른 틈새>가 나도 모르게 오버랩되었다.


"이오순은 자식뿐만 아니라, 이웃, 일가친척, 유가협 동지들을 돌보며 함께 살아갔다. 그녀는 언제나 남들 앞에 나서기보다 뒤에서 조용히 헌신하는 사람이었다. 그렇다면 그녀는 자기 자신을 위해서는 어떤 헌신을 했을까? 수많은 자료를 훑어보아도 '무엇을 좋아했다', '무엇을 즐겼다'는 기록은 없었다. 늘 돈을 벌러 다녔고 시위에 참여했고 유가협 회원들과 한울삶에서 지냈다."  (p.289 '에필로그' 중에서)


숨이 컥컥 막혀 곧 죽을 것 같던 현실도 지나고 나면 별것 아닌 듯 무척이나 가볍게 느껴질 때가 있다. 기억 속의 시간은 언제나 중력을 잃고 부유한다. 그러나 가벼이 떠다니던 기억들이 누군가의 손에 의해 기록으로 남겨졌을 때, 그것을 읽는 사람들은 그때의 기억을, 그 시절의 삶을 가슴으로 살아내게 된다. 손에서 책을 놓지 않는 한 우리는 남편과 자식을 잃고 억척같이 살았던 한 여인의 삶을 다시 살게 되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어쩌면 가난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던 이오순이라는 여인과 그 여인을 어머니로 두었던 송광영이라는 이의 뜨거운 피가 책을 통하여 수혈되었는지도 모른다. 영하로 떨어졌던 오늘 아침의 기온 속에서 조금의 추위도 느끼지 못한 채 산을 오를 수 있었던 건 아마도 그런 까닭이었을 테다. 삶의 열정은 역사의 물관을 타고 그렇게 끝없이 전해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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