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하고 소박한 삶 - 아미쉬로부터 배운다 타산지석 12
임세근 지음 / 리수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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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종교란 그저 있는 듯 없는 듯 미미한 것이지만 이런 나에게도 종교를 생각할 때마다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은 바로 군에서 같이 근무했던 후임병이다.  대대 군수과에서 근무했던 나는 부대 밖으로의 외출이 잦았다.  반면에 군수과의 서기 겸 잡다한 일을 처리하던 그 후임병은 본부중대 소속이 아닌 일반 전투중대에서 차출된 사병으로서 늘 군수과 사무실을 벗어나는 법이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 후임병은 챠트글씨를 잘 쓴다는 이유로 차출된 것이기에 그에게 맡겨진 업무는 언제나 넘쳐났고 그렇다고 다른 사람이 그의 업무를 대신해줄 수 있는 것도 아니었기에 붙박이로 사무실을 지켜야만 했다.

 

올림픽 준비로 한창이던 1987년의 여름, 공병부대였던 우리 부대의 부대원 대부분은 국군의 날 행사 시설을 짓기 위해 봄부터 여의도로 파견을 나가 있었다.  국군의 날 행사에 참여하는 전 군의 숙소로 사용될 24인용 천막을 세우고, 화장실을 짓고, 사열대를 비롯한 제반 시설을 짓는 것은 많은 인력과 자재가 소요되는 큰 공사였다.  눈만 뜨면 작업 현장으로 달려가는 일반 전투중대원들과는 달리 나는 필요한 자재를 조달하기 위해 군지사(군수지원사령부)를 뻔질나게 드나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볼일이 있어 부대로 복귀했는데 당시 일병이었던 후임병은 사무실에서 여전히 파견 나간 다른 사람들의 업무까지 처리하느라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그런 모습이 안쓰러워 보였던 나는 그에게 여의도로 문서수발을 보냈다.  모처럼 바람도 쐬고 업무에서 벗어나 짧은 휴식시간이라도 주고자 했던 게 나의 의도였다.

 

그런데 생각과는 달리 문서수발을 다녀온 후임병의 얼굴이 내내 어두웠다.  이유를 묻자 후임병의 대답인 즉 버스에 탄 어떤 여자 승객을 보고 음심을 품었다는 것이었다.  어이가 없었다.  그게 무에 그리 큰 죄라고.  그러나 그것은 나의 일방적인 판단이었지 그에게는 그렇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다음 날이 되어서도 후임병의 얼굴은 밝아지지 않았다.  당시 후임병은 부천에 있는 모 신학대학에서 종교음악을 전공하다 휴학을 하고 군에 입대한 상황이었고, 그의 종교적 신념에 비춰볼 때 자신의 행위는 결코 용서될 범주 안에 있지 않은 듯했다.  후임병은 그 일로 한동안 괴로워했다.  지금 생각해도 나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지만 후임병의 믿음이 조금은 부럽기도 했었다.  지금은 대구의 한 교회에서 목사로 있는 그 후임병이 문득문득 떠오르곤 한다.  트로트를 잘 부르고 재주가 많은 친구였는데...

 

이 책 <단순하고 소박한 삶=아미쉬로부터 배운다>를 읽으며 그 친구를 생각했었다.  문명의 이기를 거부한 채, 자신들의 종교적 신념에 따라 100년 전 방식으로 오늘을 사는 아미쉬 공동체의 삶은 그 친구와 무척이나 닮아 있었다.  저자는 펜실배니아 주 랭카스터 지역의 아미쉬 공동체와 이웃하며 살면서 그들의 삶을 관찰하고 기록하였다.

 

"엄격한 율법 아래 겸허한 삶을 영위하는 아미쉬 공동체 사람들에게는 절대적으로 지켜야 할 규범이 많다.  용모, 복장, 행동, 의례 등 일상의 생활양식에서부터 종교 의식과 신앙 생활에 이르기까지 공동체 일원으로서 지키며 실천에 옮겨야 할 사항들을 구체적으로 정하고 모두가 이를 철저하게 지키고 따른다."    (p.108)

 

교회도 짓지 않고 십자가를 비롯한 모든 우상을 섬기지 않으며, 고등학교 이상의 교육을 거부하고, 사회보장 보험을 비롯한 일체의 보험에 가입하지 않으며, 유아 세례를 반대하는 등 오직 성경에 의지하여 자신들의 삶을 살아가려는 아미쉬 공동체의 사람들.  물질 문명이 극도로 발달한 21세기에, 그것도 전 세계의 물질 문명을 선도하는 미국에서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아미쉬 공동체의 모습은 놀랍다 못해 신기하다.

 

2006년 초가을 어느 날, 아미쉬 공동체 학교에서 벌어진 총기 난사 사건이 터졌을 때도 그들의 반응은 '즉각적이고도 조건없는 용서'였다고 한다.  어린 자녀들의 목숨을 빼앗아간 범인의 장례식에 참석하여 명복을 빌고, 답지하는 성금을 범인의 유가족에게 먼저 할애해달라는 간청과 범인의 미망인과 어린 세 유자녀를 초청하여 식사를 대접하며 위로의 시간을 가졌다는 아미쉬 공동체의 관용은 물질 만능주의에 찌든 현대인들에게 진정한 종교인의 자세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답을 제시한다.

 

유럽의 종교개혁 당시 개혁파 중에서도 강경보수주의자들이었던 '재세례파'의 후예인 아미쉬 공동체는 그 당시 이단으로 몰려 갖은 박해와 고난의 역사를 겪어야 했다.  그럼에도 그들은 폭력을 거부하고 소송조차 하지 않는다고 한다.  영악한 현대인들의 시각에서 보면 바보처럼 보일 수도 있고, 답답해 보일 수도 있다.  일부 언론에서는 그들의 삶을 동물원의 원숭이들처럼 보여주려고도 했다고 한다.  더구나 랭카스터 지역을 찾는 관광객의 증가와 산업시설의 증가로 아미쉬 공동체의 존립마저 위태로워지고 있다고 한다.  문명의 이기를 향유하며 사적 이익에 눈 먼 현대인들을 위해서도 그들의 방식은 영원히 존채해야 하는데 말이다.

 

"안타까운 것은 아미쉬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경제적 풍요나 삶의 질을 높이는 그 어떠한 변화나 개혁이 아니고, 그들의 전통적 삶을 유지해나갈 수 있는 터전, 흙먼지 묻히며 땀을 뿌릴 수 있는 약간의 문전옥답門前沃畓이 필요할 따름이라는 사실이다."    (p.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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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코 쉽지 않은 결론에

너무도 쉽게 다다를 때가 있습니다.

때로는 성급한 성격 때문에

때로는 판단할 자료가 턱없이 부족해서

때로는 아무 이유도 없이,

무엇엔가 홀린 듯이 말이죠

어쩌면 귀찮아서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쉽게 내려진 결론으로 인해

얼마나 많은 일들이

뒤엉켜져 이제는 정리조차 힘든 상태에까지

이르게 되었던가요

그 결과들을 멀뚱히 바라보며

혹은 부질없는 노력으로 제 자신을 괴롭히며

수많은 날들을 그렇게 속절없이 흘려 보냈던 적이 있습니다

그런 날들을 모두 모으면

내게 허락된 삶에서 몇 할이나 될까요?

 

우리는 오지도 않을 고도(Godot)를 기다리며

또는 갑자기 들이닥친 고도에 당황하며

어떠한 대책도 없이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한 치 앞도 알 수 없다는 게

우리네 인생이라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한심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의미도 없이

참으로 뜬금없이 말이죠

날씨가 대책없이 더워서인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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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의 결전
우영수 지음 / 역사의아침(위즈덤하우스)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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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이 유행했던 시절이 있었다.

90년대 초 <소설 동의보감>을 필두로<소설 토정비결>, <소설 목민심서>, <매월당 김시습> 등 우리나라의 역사적 인물을 사실적으로 다룬 작품들이 봇물처럼 터져나왔을 뿐 아니라, 지역을 넓혀 <소설 강태공>, <소설 의성 화타> 등 중국의 역사에까지 이르게 되었었다.  이러한 배경에는 대형 출판사의 상업자본이 한몫했다는 사실도 무시할 수 없지만, 시대적으로 정치적 허무주의의 만연, 세기말적 현상에서도 그 이유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 시대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다들 알겠지만 TV에서도 책 광고를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아무튼 나도 그 시절에 이러한 전기류, 야사류의 역사소설을 열심히도 사들였었다.  상업적 대중소설의 활황에 나도 일조를 한 셈이다.  90년대의 역사소설은 개화기의 역사소설-이를 테면 김동인의 <운현궁의 봄>이나 이광수의 <단종애사> 등-이나 박경리의 <토지>, 황석영의 <여울물 소리>, 조정래의 <아리랑> 등과도 확연히 다른 것이었다.  어쩌면 그 시대의 우리 국민은 소설 속의 인물과 같은 영웅의 출현을 간절히 원했는지도 모르고, 역사에 가미된 소설가의 상상력에 흠뻑 취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2000년대 이후의 역사소설은 또 다른 면모로 나타난다.  김훈의 <남한산성>과 최근에 출간된 김진명의 <고구려>, 그리고 역사와 판타지를 교묘히 섞은 <해를 품은 달>과 같은 소설들은 90년대 역사적 인물의 삶을 다룬 통속적 역사소설과는 많은 면에서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최근 등장한 역사소설은 전쟁의 오욕과 상처의 기억, 부끄러운 역사의 한 페이지로 거슬러 올라간다.  현재의 고통을 잊기 위한 낭만적 도피나 환상의 역사가 아닌, 죽음이 얼룩진 수난의 역사에서 삶의 이유를 찾으려는 듯 보인다.

 

나는 그 때를 생각하며 최근에 나온 역사소설 한 권을 읽었다.  우영수의 <최후의 결전>.  고려의 역사에서 하나의 전환점이 되었던 '묘청의 난'을 다룬 작품이다.  고려 숙종, 예종, 인종 대에 걸쳐 전횡을 일삼았던 이자겸과 자신의 기득권을 지키고자 했던 김부식, 그리고 서경 천도를 주장했던 정지상과  묘청의 모습이 잘 그려져 있다.

 

"역사는 반복되는 것일까?  나에겐 1980년의 광주와 1135년의 서경성이 겹쳐 보인다.  두 사건 모두 특정 지역 사람들이 억울하게 목숨을 잃어야 했고, 사건에 대한 평가도 극과 극으로 나뉜다.  두 사건의 승자는 정국의 1인자로 떠올라 한 시대를 풍미했으며, 이후 시대적 변화와 함께 역사의 방향도 달라졌다."    ('작가의 말'에서)

 

서울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코넬대학교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는 작가는 잘못 인식되고 알려진 우리 역사를 바로잡기 위해 역사소설을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역사소설을 쓰는 작가라면 고증을 통하여 소설의 얼개를 짜고 소설이 전개되는 지역적 배경과 시대적 범위를 설정하겠지만 자료에도 없는 여러 인물과 사건의 구성은 전적으로 작가의 상상력에서 나온다고 하겠다.  그러나 이러한 허구적 요소마저 설득력을 얻기 위해서는 작가의 '역사 인식'이 필수적이다.  “조선 역사상 일천 년래 제일대사건”이라 하며 이 사건의 승자가 바뀌었다면 조선의 역사가 달라졌을 것이라고 통탄했다는 단재 신채호의 말을 빌지 않더라도 우리는 지난 역사에서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수구 세력의 패륜과 역사적 과오를 너무나도 많이 보아 왔다.

 

"한참 동안 정지상을 바라보던 김부식은 목소리를 차분하게 가다듬었다. 조용했지만 싸늘한 목소리가 김부식의 입을 타고 흘러나왔다.
“옛 영광이 있었다고 오늘날 다시 그 영광을 재현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은 송을 중심으로 오랑캐인 여진의 금을 타도하여 질서를 확립한 뒤 예와 법이 살아 있는 나라를 만들어야 할 때입니다.”
“저도 남들 못지않게 공맹의 예와 법을 공부했다 자부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공맹의 예가 유일한 예이고 법이라고는 생각하질 않습니다. 백성이 평안한 길이 있으면 그걸 따르면 될 일이지 어찌 공맹의 예와 법만 언급하십니까? 어사대부와 제 사이엔 현실인식에 대한 차이만 있는 것이 아니지 않나 싶습니다.”
정지상의 반론을 들은 김부식의 얼굴이 파랗게 변해갔다."   
(p.270)

 

정치권력을 등에 업고 사대주의와 유학사상을 고려의 사상적 기반으로 삼으려 했던 김부식과 김부철 형제.  그들은 소식과 소철을 흠모하여 자신들의 이름마저 그렇게 지었다고 한다.  이에 맞선 정지상은 학식과 재능이 뛰어난 고려의 충신이었으며 고조선 건국의 이념과 동이족의 풍류대도 사상을 통하여 자주국 고려의 위상을 드높이고자 했다.  그 한가운데에는 열다섯 살에 왕위에 오른 인종이 있었다.  즉위부터 신하들의 위세에 눌려 왕으로서의 권위를 세우지 못했던 인종이 정지상과 더불어 서경천도를 추진하려다 마음을 바꾼 인종으로 인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어야만 했던가.

 

이것을 어찌 역사 속의 일로만 치부할 것인가.

오늘날에도 역사를 부정하고 자신들의 이익을 확보하려는 모 사이트가 연일 뉴스에 등장하고, 친일을 옹호하는 사람들의 역사서가 교과서로 인정되는 세상.  종군 위안부를 '성매매업자'로, 김좌진 장군과 안중근을 테러리스트로 규정하고 있는 역사서가 미래의 우리나라를 이끌 아이들의 교과서로 채택되는 작금의 현실 앞에서 굴욕과 자괴감에 어깨가 처진다.  어찌 같은 민족의 후손으로서 이럴 수 있단 말인가!  역사의 동력을 방해하는 기생충 속성의 인물들이 오늘의 세상에도 활개를 치고 있다.  굴종의 역사는 여전히 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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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으로도 쓰고 손끝으로도 써라 - 안도현의 시작법詩作法
안도현 지음 / 한겨레출판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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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에 미혹되어 시인으로 살아온 지 30년이 지난 안도현 시인.  그의 작품이야 워낙 유명하여 다는 아니더라도 몇 구절쯤은 암송할 수 있는 사람이 많을 터.  그러나 바쁜 현대인에게 시는 역시 어렵고 다가가기 어려운 대상일 뿐, 낭만과 여유로움 속에 맘에 두었던 시를 나즉나즉 읊으며 조용히 자신의 내면을 응시하는 사람은 더 이상 찾아보기 어렵다.  어쩌면 시인은 이 책을 쓰기 위해 수많은 책을 뒤적이고 몇 날 며칠을 뜬 눈으로 지새웠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시인의 열정에 비하면 내가 이 책을 읽은 소회는 아주 작고 보잘 것 없는 것이었다.  이처럼 오늘을 사는 사람들이 시를 이해한다는 것, 나아가 자신이 직접 시를 쓴다는 것은 다락에 쌓아 둔 먼지 묻은 시집 몇 권의 가치보다도 못할 터였다.

 

안타까운 마음으로 이 책 <가슴으로도 쓰고 손끝으로도 써라>를 읽었다.  민주화 열기가 뜨거웠던 1980년대의 시 열풍, 그 정점에는 서정윤의 <홀로서기>와 도종환의 <접시꽃 당신>이 있었다.  대학생은 물론 중고생과 직장인 모두에게도 시는 삶의 허기를 채워주는 마음의 양식이었다.  그러나 어느 정도의 물질적 풍요를 경험한 요즘의 젊은 세대에게는 시는 한낱 시인의 전유물이자 대학 입시를 위한 통과의례쯤으로 밖에는 여겨지지 않는 게 현실이다.  한 해 동안 발행된 시집을 다 합쳐도 신경숙의 소설 <엄마를 부탁해>의 판매량에 미치지 못하는 이 현실은 시를 사랑하는 한 사람으로서 서글프기 그지없는 일이다.

 

"우리나라만큼 시인이 많은 나라도 흔치 않을 것이다.  수천 명의 시인이 책상 앞에 웅크리고 앉아 있는 시의 나라라면 적어도 시적인 일들이 곳곳에 넘쳐나야 마땅하다.  하지만 날이 갈수록 비시적인 생각과 행동이 우리 사회를 지배하며 움직이는 이 현실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시인이 되는 일을 단순히 개인적 명예와 욕망을 채우는 장신구로 활용하려는 사람들은 왜 또 그렇게 많을까?  혹시 글 쓰는 자의 태도에 어처구니없는 문제가 있었던 것은 아닐까?  시를 쓰는 기술과 훈련뿐만 아니라 영혼의 생산자로서 시인이 된다는 일이 무엇인가를 여기에서 조금 따져보고 싶었다."    ('머리글'에서)

 

작가는 이 책에서 시의 전반에 대해 논하고 있다.  시인이 되기를 바라는 자가 아니라면 어쩌면 공허한 메아리로 들릴 수도 있는 이 한 권의 책이 시를 읽는 독자의 마음을 흔들고, 어제의 비처럼 가슴을 적시고, 종국에는 그들 모두가 서늘한 시의 숲으로 걸어 들어가는 날이 오기나 하는 걸까?  나는 결국 가슴 에이는 심정으로 이 책의 책장을 넘긴다.  우리 사회에서 시인으로 산다는 것, 아니 그보다는 시인의 가슴으로 살아가고자 한다는 것은 '바보', '멍충이'로 살아가겠다고 서언하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그럼에도 안도현 시인은 생활인으로서의 시 쓰기를 강조하고 있다.

 

"시를 창작하는 사람은 시인의 개인적인 삶과 시를 별개로 보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  삶은 엉망진창으로 살되 건강한 시를 쓰라는 말이 아니다.  시라는 텍스트의 자율성을 존중해야지 창작자의 사사로운 체험이나 느낌을 가지고 시를 간섭하지 말라는 말이다.  한 편의 시는 한 사람의 시인이 쓴 것이지만 그 시는 시인의 것이 아니다.  시인은 우주가 불러주는 감정을 대필하는 사람일 뿐이다.  시에다 쓴 언어는 그 언어를 사용하는 민족의 것이며 독자의 것이지 시인의 개인 소유물이 아니다."    (p.271)

 

요즘 들어 '시의 위기'를 말하는 사람이 부쩍 늘었다.  어쩌면 우리 문학의 총체적 위기일 수도 있다.  그러나 결국 사람은 빵만으로는 살 수 없지 않은가.  한 나라의 미래는 그 구성원의 영혼이 바로 설 때, 그리고 민족의 정신이 흔들리지 않을 때 밝아지는 것이 아니겠는가.  어디선가 장인수 시인이 했던 말이 생각난다.

 

'어차피 우리 시대는 활자매체에 의한 시집은 팔리지 않는 시대로 접어들었다. 판매 부수 따위는 이제 특별한 의미가 없는 시대가 되었다. 판매부수에 연연해 할 필요는 전혀 없다. 판매부수는 엄밀한 의미에서 시인의 몫이 아니라 출판사의 몫일 뿐이다. 판매부수보다는 다른 장르와의 넘나들기로 통한 독자와의 만남을 넓혀야 한다. 그러면 되는 것이다. 내 생각은 단호하다. 시의 탄생 과정에서는 대중성과의 단절을 고독하게, 외롭게 추구해야 하며,  시의 유통에 있어서는 대중성과의 결합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고 본다.'

 

내가 자라면서 아이 적의 생각을 버렸듯 시대는 이제 시를 버린 것은 아닐까?  우리 사회는 그렇게 병들어 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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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 위젤 지음, 김하락 옮김 / 예담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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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차'를 생각할 때마다 떠오르는 장면이 있다.

사람들은 '여행'이나 MT 등 낭만적인 그 무엇을 생각할지 모르지만 나는 아니다.  내게 떠오르는 그 장면은 기대와 설레임에 가득 찬 낭만의 풍경이 결코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늦가을의 서늘한 한기를 품은 공포와 두려움이다.  내가 지금처럼 열차에 대한 트라우마를 갖게 된 것은 군생활의 경험 때문이었을 게다.  그런 까닭에 나는 지금도 열차를 타지 않는다.  더불어 병역의 의무가 신성하다는 둥 자랑스럽다는 둥 남자는 군대를 다녀와야 철이 든다는 둥 하는 말도 되지 않는 말을 들을 때마다 울컥울컥 치솟는 구역질을 느끼곤 했다.  그런 말들은 아마도 아직 군대에 가지 않은 누군가를 현혹시키려고 하는 말이거나, 군대 경험이 전혀 없는 누군가의 입을 통하여 근거도 없이 지어낸 말이기 쉬울 것이다.  가장 빛나야 할 청춘의 시기에 살인의 기술을 배우면서 보내야 했던 29개월의 지옥 같았던 시간을 지금까지 나는 단 한 번도 자랑스럽게 여겨본 적이 없었다.

 

나는 논산에서 6주간의 신병 훈련을 마쳤다.  그래도 그 기간 동안 몸은 고되고 힘들었지만 그럭저럭 지낼 만했다.  훈련을 마치고 자대배치를 받던 늦가을의 어느 날.  우리는 밤 10시에 출발하는 연무대발 의정부행 TMO열차에 몸을 실었다.  풋내기 병사들을 가득 실은 밤열차가 대전-조치원-천안을 지나면서 각각의 역에 정차할 때마다  한 무더기의 화물처럼 신병들을 토해내었다.  정들었던 동기들과 헤어지는 슬픔도 슬픔이지만 자신이 근무할 곳이 어딘지도 모른 채 자신의 키만한 더블백을 짊어지고 떠나는 신병들의 뒷모습은 지켜보는 사람이나 떠나는 사람 모두에게 뻣뻣하게 굳은 공포로 다가왔었다.  그날의 풍경은 세월이 한참이나 지난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엘리 위젤의 <나이트>를 읽으며 나는 신병 훈련소를 떠나던 그날을 생각했었다.  2차 세계대전 중 열다섯 살의 나이에 가족들과 함께 강제수용소에 수감되었던 작가는 화물열차에 실려 강제수용소로 향하던 그때의 풍경을, 그리고 전쟁의 막바지에 탔던 가축 수송용 무개열차에서의 끔찍했던 모습을 적나라하게 그려내고 있었다.

 

"우리는 식량을 배급받지 못했다.  눈으로 연명했다.  빵 대신 눈을 먹었다.  낮도 밤과 다름없었고, 밤은 암흑의 찌꺼기를 우리 영혼 속에 남겼다.  열차는 천천히 달렸다.  때로는 몇 시간이나 멈추었다가 다시 달렸다.  눈은 그칠 줄 몰랐다.  다른 사람 위에 올라탄 사람도 있었다.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우리는 얼어붙은 몸뚱어리에 지나지 않았다.  모두 눈을 감고 있었고, 열차가 멈추어서 시체를 들어내기만 기다렸다."    (p.175~p.176)

 

이런 종류의 책을 읽고 있노라면 가끔 이런 의문이 고개를 내민다.  '나는 왜 이런 끔찍한 이야기를 읽는가?  우리 민족의 이야기도 아니고, 내 일가친척의 이야기도 아닌데.  게다가 인간의 잔혹한 모습에서 내가 배울 것이라고는 인간에 대한 혐오뿐인데...'  이런 생각이 들 때마다 내가 내릴 수 있는 답은 인간의 기억력이 그리 좋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결론이다.  역사는 그 비슷한 일을 수없이 반복하는데 인간은 그때마다 경각심은커녕 너무도 빨리 잊는다.  다음 수업이 기다리고 있다는 듯.

 

"저는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 일은 어제 일어난 일이기도 하고 까마득한 옛날에 일어난 일이기도 합니다.  한 유대인 소년이 '밤의 왕국'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 소년이 겪은 혼란과 고뇌를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전광석화같이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게토.  추방.  밀폐된 가축 수송용 열차.  유대 민족의 역사와 인류의 미래.  그 모든 것의 희생을 뜻하는 불타는 제단."    (p.202 -노벨 평화상 수락 연설문 중에서)

 

1986년에 엘리 위젤은 '인종차별 철폐와 인권신장을 위해 노력한 공로'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어떠한 명목으로든 전쟁은 모두 미친 짓이다.  그럼에도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인 우리나라에서는 전쟁의 망령이 하루도 멈추어지지 않는다.  테러와의 전쟁을 기치로 내걸고 중동을 불바다로 만들었던 미국도, 이에 동조했던 유럽의 각국도 여전히 테러의 공포에 떨고 있다.  인류애와 관용을 전면에 내세우는 지도자가 나타나지 않는다면 살육의 역사는 결코 그치지 않을 것이다.  그 사실은 세살배기 어린 애도 다 안다.  그저 알 뿐이다.

 

"사랑의 반대는 증오가 아니라 무관심이다. 예술의 반대는 추함이 아니라 무관심이다. 신앙의 반대는 이단이 아니라 무관심이다. 생명의 반대는 죽음이 아니라 무관심이다."  작가 엘리 위젤의 외침이다.  무관심의 역사는 끝업이 반복될 뿐이다.  뱀이 입으로 제 꼬리를 물고 있는 우로보로스(ouroboros)의 원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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