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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의 결전
우영수 지음 / 역사의아침(위즈덤하우스) / 2013년 5월
평점 :
역사소설이 유행했던 시절이 있었다.
90년대 초 <소설 동의보감>을 필두로<소설 토정비결>, <소설 목민심서>, <매월당 김시습> 등 우리나라의 역사적 인물을 사실적으로 다룬 작품들이 봇물처럼 터져나왔을 뿐 아니라, 지역을 넓혀 <소설 강태공>, <소설 의성 화타> 등 중국의 역사에까지 이르게 되었었다. 이러한 배경에는 대형 출판사의 상업자본이 한몫했다는 사실도 무시할 수 없지만, 시대적으로 정치적 허무주의의 만연, 세기말적 현상에서도 그 이유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 시대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다들 알겠지만 TV에서도 책 광고를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아무튼 나도 그 시절에 이러한 전기류, 야사류의 역사소설을 열심히도 사들였었다. 상업적 대중소설의 활황에 나도 일조를 한 셈이다. 90년대의 역사소설은 개화기의 역사소설-이를 테면 김동인의 <운현궁의 봄>이나 이광수의 <단종애사> 등-이나 박경리의 <토지>, 황석영의 <여울물 소리>, 조정래의 <아리랑> 등과도 확연히 다른 것이었다. 어쩌면 그 시대의 우리 국민은 소설 속의 인물과 같은 영웅의 출현을 간절히 원했는지도 모르고, 역사에 가미된 소설가의 상상력에 흠뻑 취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2000년대 이후의 역사소설은 또 다른 면모로 나타난다. 김훈의 <남한산성>과 최근에 출간된 김진명의 <고구려>, 그리고 역사와 판타지를 교묘히 섞은 <해를 품은 달>과 같은 소설들은 90년대 역사적 인물의 삶을 다룬 통속적 역사소설과는 많은 면에서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최근 등장한 역사소설은 전쟁의 오욕과 상처의 기억, 부끄러운 역사의 한 페이지로 거슬러 올라간다. 현재의 고통을 잊기 위한 낭만적 도피나 환상의 역사가 아닌, 죽음이 얼룩진 수난의 역사에서 삶의 이유를 찾으려는 듯 보인다.
나는 그 때를 생각하며 최근에 나온 역사소설 한 권을 읽었다. 우영수의 <최후의 결전>. 고려의 역사에서 하나의 전환점이 되었던 '묘청의 난'을 다룬 작품이다. 고려 숙종, 예종, 인종 대에 걸쳐 전횡을 일삼았던 이자겸과 자신의 기득권을 지키고자 했던 김부식, 그리고 서경 천도를 주장했던 정지상과 묘청의 모습이 잘 그려져 있다.
"역사는 반복되는 것일까? 나에겐 1980년의 광주와 1135년의 서경성이 겹쳐 보인다. 두 사건 모두 특정 지역 사람들이 억울하게 목숨을 잃어야 했고, 사건에 대한 평가도 극과 극으로 나뉜다. 두 사건의 승자는 정국의 1인자로 떠올라 한 시대를 풍미했으며, 이후 시대적 변화와 함께 역사의 방향도 달라졌다." ('작가의 말'에서)
서울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코넬대학교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는 작가는 잘못 인식되고 알려진 우리 역사를 바로잡기 위해 역사소설을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역사소설을 쓰는 작가라면 고증을 통하여 소설의 얼개를 짜고 소설이 전개되는 지역적 배경과 시대적 범위를 설정하겠지만 자료에도 없는 여러 인물과 사건의 구성은 전적으로 작가의 상상력에서 나온다고 하겠다. 그러나 이러한 허구적 요소마저 설득력을 얻기 위해서는 작가의 '역사 인식'이 필수적이다. “조선 역사상 일천 년래 제일대사건”이라 하며 이 사건의 승자가 바뀌었다면 조선의 역사가 달라졌을 것이라고 통탄했다는 단재 신채호의 말을 빌지 않더라도 우리는 지난 역사에서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수구 세력의 패륜과 역사적 과오를 너무나도 많이 보아 왔다.
"한참 동안 정지상을 바라보던 김부식은 목소리를 차분하게 가다듬었다. 조용했지만 싸늘한 목소리가 김부식의 입을 타고 흘러나왔다.
“옛 영광이 있었다고 오늘날 다시 그 영광을 재현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은 송을 중심으로 오랑캐인 여진의 금을 타도하여 질서를 확립한 뒤 예와 법이 살아 있는 나라를 만들어야 할 때입니다.”
“저도 남들 못지않게 공맹의 예와 법을 공부했다 자부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공맹의 예가 유일한 예이고 법이라고는 생각하질 않습니다. 백성이 평안한 길이 있으면 그걸 따르면 될 일이지 어찌 공맹의 예와 법만 언급하십니까? 어사대부와 제 사이엔 현실인식에 대한 차이만 있는 것이 아니지 않나 싶습니다.”
정지상의 반론을 들은 김부식의 얼굴이 파랗게 변해갔다." (p.270)
정치권력을 등에 업고 사대주의와 유학사상을 고려의 사상적 기반으로 삼으려 했던 김부식과 김부철 형제. 그들은 소식과 소철을 흠모하여 자신들의 이름마저 그렇게 지었다고 한다. 이에 맞선 정지상은 학식과 재능이 뛰어난 고려의 충신이었으며 고조선 건국의 이념과 동이족의 풍류대도 사상을 통하여 자주국 고려의 위상을 드높이고자 했다. 그 한가운데에는 열다섯 살에 왕위에 오른 인종이 있었다. 즉위부터 신하들의 위세에 눌려 왕으로서의 권위를 세우지 못했던 인종이 정지상과 더불어 서경천도를 추진하려다 마음을 바꾼 인종으로 인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어야만 했던가.
이것을 어찌 역사 속의 일로만 치부할 것인가.
오늘날에도 역사를 부정하고 자신들의 이익을 확보하려는 모 사이트가 연일 뉴스에 등장하고, 친일을 옹호하는 사람들의 역사서가 교과서로 인정되는 세상. 종군 위안부를 '성매매업자'로, 김좌진 장군과 안중근을 테러리스트로 규정하고 있는 역사서가 미래의 우리나라를 이끌 아이들의 교과서로 채택되는 작금의 현실 앞에서 굴욕과 자괴감에 어깨가 처진다. 어찌 같은 민족의 후손으로서 이럴 수 있단 말인가! 역사의 동력을 방해하는 기생충 속성의 인물들이 오늘의 세상에도 활개를 치고 있다. 굴종의 역사는 여전히 진행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