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은 모두에게 다른 말을 건다 - 위태로운 정신과의사의 행복한 산티아고 피신기
김진세 지음 / 이봄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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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잠에서 깨자마자 무작정 걷고보는 게 하루의 시작을 알리는 나의 오래된 일상이다. 학창시절부터 지켜온 워낙 오래된 습관인지라 뇌가 명령하거나 의무적인 사명감으로 움직여지는 게 아니라 으레 그렇게 하는 것으로 몸은 기억하고 있다. 그런 까닭에 나는 매년 연초의 신년 계획에 남들 다 하는 '운동하기'를 목록에서 뺄 수 있다. 그것 하나만으로도 어깨가 으쓱해진다. 사실 제 몸을 위하는 일인데 굳이 다른 사람의 칭찬이나 부러움이 필요한 건 아니지만 말이다.

 

많은 사람들이 예찬하는 '걷기'에 대하여 곰곰 생각해보는 경우는 더러 있다. 그렇다고 걷는다는 행위 자체에 대한 무의미한 열광 대열에 무작정 동참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그보다는 오히려 다비드 르 브르통의 <걷기 예찬>을 이따금 들춰보며 맘에 드는 구절을 소리 내 읽어보는 게 더 낫지 않나 싶기도 하고 말이다. '시간이 흘러가면서 발걸음을 앞으로 밀어내는 것은 그 무시무시한 괴로움의 씨앗이 아니라 자기변신, 자기 버림의 요구, 다시 세상으로 나아가 길과 몸을 한덩어리로 만드는 연금술을 발견해야 한다는 요청이다. 여기서 인간과 길은 행복하고도 까다로운 혼례를 올리며 하나가 된다.'('걷기 예찬' 중에서)

 

정신과의사 김진세의 산티아고 순례기 <길은 모두에게 다른 말을 건다>는 저자가 찍은 사진과 그 길에서 만난 사람들, 그때 그때의 순간적인 감성과 스치는 생각들을 메모식으로 기록한 일반적인 산티아고 순례기와는 조금 다른 책이다. 사진도 없을 뿐만 아니라(아주 없는 건 아니고 책의 맨뒤에 부록처럼 묶였다) 생각의 편린들을 쥐어짜듯 그러모은 듯한 느낌도 들지 않는다. 적어도 내가 읽기에는 그러했다.

 

"삶은 음미하는 것이다. 급하게 보내면 언제 갔는지도 모르게 지나가버리는 삶, 비록 지긋지긋한 삶이라도 그 고통에서 헤어나오고 싶은 것이지, 실제로 인생이 빨리 흘러가길 바라는 사람은 없다. 오히려 인생을 즐기려면, 마치 음식을 천천히 씹으며 참맛을 느끼듯, 천천히 살아가야 한다." (p31)

 

정신과의사로서 저자는 서울에서 환자를 많이 보기로는 손가락에 꼽을 정도였다고 스스로 밝히고 있다. 평일 진료는 말할 것도 없고 주말이나 야간 진료도 마다하지 않는 저자가 수백 편의 정신의학 칼럼과 인간 심리에 대한 단행본만 여덟 권, 방송 출연과 강연까지. 그야말로 저자는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을 보냈던 것이다. 남들 두 배, 세 배 몫의 일을 하면서도 거뜬했던 그에게도 슬럼프가 찾아왔다. 일상이 무너지고 상담조차 귀찮은 일이 되더니 급기야 환자에게 짜증을 내는 사태까지 이르렀다. 결국 그는 자신의 버킷리스트에 있던 '산티아고 길 순례'를 실행에 옮기기로 결심했다. 단순히 버킷리스트로만 간직할 줄 알았던 일을 실행에 옮긴다는 게 말처럼 쉽지만은 않았을 터, 가뜩이나 정신과의사라는 자신의 직업에서는 더더욱.

 

"누구나 상실을 겪는다. 아버지를 잃은 야스퍼도, 동생을 잃은 라우라도, 그리고 우리 모두가 마찬가지다. 살다보면 어느 날, 한 번 이상의 상실을 마주해야 한다. 상실은 피할 수 없는 삶의 한 과정이다. 너무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인간의 상실은 역설적으로 축복이다. 우리는 상실을 통해서 커다란 아픔을 맛보지만, 그 아픔이 우리를 성숙하게 한다. 삶은 그렇게 상실을 통해 깊어진다." (p.232)

 

무작정 걷다 보면 생각이 없어지거나 반대로 생각이 많아지는 순간이 온다. '걷기'라는 단순한 반복운동이 주는 효과일 것이다. 아무 생각도 없이 아주 먼 거리를 걷는 것도 기분 좋은 일이지만 하나의 생각에 몰두하여 아주 깊이 빠져드는 일도 더없이 즐겁다. 사는 게 걷는 것만큼이나 단조로웠으면... 하고 생각할 때도 있다.

 

"처음에는 낯선 길이었다. 시간과 공간이 다른 지구별의 낯선 지점에 서 있었다. 걷다보니 그 길이 친근해졌다. 많은 것을 깨닫게 해주었다. 하지만 이제는 한 걸음 한 걸음이 두렵다. 그 두려움 속에서 내게 기적이 일어났다. 기적은 '혼자가 아니다'라는 것을 깨닫게 해주었다. 내가 사는 이 세상에는 나말고도, 커다란 나무를 꺾을 만큼 거친 바람도 있고, 영화의 한 장면처럼 소리 없이 다가와 은혜를 갚은 사울도 있다. 그리고 그 순간에 기가 막힌 타이밍으로 펼쳐지는 기적을 주관하는 '존재'가 있다. 사람과 자연, 그리고 '존재'는 복잡하게 얽혀 있다. 그래서 기적은 이렇게 이야기한다. '사람과 자연에 대한 배려와 존중은스스로를 위한 것이다. 좀더 신중하고 진지히게 인생을 살자. 누군가 지켜보고 있으니 말이다.' 별똥별이 떨어진다." (p.333)

 

나이가 들수록 삶에서 오는 두려움을 이기고 좀더 초연해질 수 있는 까닭은 그것이 비단 나만 겪는 일이 아니라는 걸 경험이나 타인과의 만남을 통해 알게 되기 때문이다. 상실의 고통도, 경제적 어려움도, 인간관계의 복잡한 얽힘도 언젠가는 다 지나가게 마련이고, 현실에서 바라보는 과거는 누구에게나 아릿한 그리움으로 남는다는 사실을 저절로 알게 된다. 우리가 순례길에 매료되는 것도 다 그런 이유가 아닐까 싶다. 인생에서 겪는 보편적인 경험들을 그 길에서 압축적으로 맛볼 수 있고, 그런 고통들을 나만 겪었던 게 아니구나, 하는 안도감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만남과 헤어짐, 절망과 기쁨, 기대와 한탄 등이 지금 당장은 나로 하여금 울고 웃게 하지만 시간의 저편으로 밀려나는 순간, 흐릿한 기억으로 변질되어 내게서 점차 멀어진다는 걸 수많은 만남과 직접적인 경험을 통해 배우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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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달 전에 명예퇴직을 한 친구가 있다. 나는 그 친구의 소식을 건너 건너 소식으로만 전해들었을 뿐 직접 연락하거나 위로주를 산 적도 없다. 생각해보면 나는 참으로 무정했었다. 허투루 대할 친구는 아니었지만 내가 그렇게 한 데에는 나름 이유가 없었던 것도 아니다. 지금에 와서 변명을 하자면 이러했다. 친구가 명예퇴직을 했다는 소식은 빠르게 퍼져서 나에게도 그 다음날 바로 전해졌었다. 나는 그때 집안의 작은 고민거리로 며칠째 머리를 싸매고 있었던지라 친구의 소식은 금세 잊혀졌고, 날짜가 많이 흐른 후 다른 친구의 입을 통해 다시 그 소식을 듣고나서야 '아, 맞다. 그런 일이 있었지.' 하고 기억을 되살렸던 것이다. 납덩이처럼 무거운 죄책감이 가슴에 쿵 하고 떨어지는 듯했다.

 

고민거리만 해결되면 문자나 전화로 끝낼 게 아니라 직접 만나 따뜻한 밥이라도 한끼 사줘야겠다, 생각했던 게 그만 머릿속에서 까맣게 잊혀지고 말았던 것이다. 시일이 한참이나 지난 뒤에 친구의 소식을 다시 들었던 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속만 끓였다. 이따금 소식으로만 친구의 안부를 전해들으면서 말이다. 그렇게 나는 '무정한 놈'으로 변해가는 나 자신을 그저 멀뚱히 지켜보면서 죄책감만 키워왔었다.

 

오늘 낮에 그 친구로부터의 전화가 걸려왔다. 휴대폰 벨소리만 들으며 머뭇머뭇 받지를 못하던 내가 어렵게 통화 버튼을 눌렀을 때 저 건너편에서 전해지는 친구의 목소리는 무척이나 따뜻했다. "많이 바쁘지? 일하는 데 방해가 될까봐 전화 걸기도 조심스럽더라구. 진작 했어야 하는데..." 나는 친구에게 무릎이라도 꿇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짐짓 바쁜 척 시치미를 뗐다. "응. 그동안 좀 바빴지뭐야. 전화라도 한다는 게 그만... 미안하다." 했더니 친구는 손사래를 치며, "아니야. 너가 미안할 일이 뭐 있다고. 지금 시간 괜찮으면 점심이나 같이 할래?" 하였다. 나는 그렇게 오래 미뤄두었던 밥 한끼를 어렵게 대접했다. 내가 만일 그 친구 입장이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오늘에서야 하면서 말이다.

 

헤어지면서 했던 친구의 말이 지금도 뇌리에 떠돈다. 어떻게 지내느냐는 나의 물음에 "사는 게 다 그렇지."하면서 담담히 답하던 친구의 목소리는 전에 없이 맑았다. 오늘은 대설, 친구에게 밀린 숙제를 하듯 밥 한끼를 대접했던 나는 찬바람 속에서도 훈기를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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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어 랄프 로렌
손보미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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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의 삶은 그 사람의 '비밀'로 완벽히 치환된다. 그러므로 삶은 곧 하나의 비밀 덩어리인 셈이다. 평생에 걸쳐 생성된 비밀은 오롯이 한 사람에게 귀속되지는 않는다. 시간에 풍화되기도 하고 새로운 비밀과 합쳐져 새로운 비밀을 만들기도 한다. 사는 동안 드러나지 않은 비밀은 죽음과 함께 영속하는 우주의 언어로 저장된다. 그러나 시간에 풍화된 비밀은 망각의 공간 속으로 흔적도 없이 사라지기도 하고 떨어져 나간 부스러기가 누군가의 기억 속으로 조용히 스며들기도 한다. 하나 분명한 사실은 한 사람의 삶이, 또는 한 사람의 죽음이 가치 있는 어떤 것으로 남기 위해서는 그가(또는 그녀가) 평생을 바쳐 만들었던 비밀을 비밀 그 자체로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비밀은 비밀로 유지될 때 아름답기 때문이다.

 

손보미의 장편 소설 <디어 랄프 로렌>의 이야기 또한 주인공 종수의 비밀 서랍장에서 출발한다. 미국에서 구 년째 유학생활을 하던 종수는 대학원 지도교수인 기쿠 박사로부터 사실상 자퇴 압력을 받는다. 종수가 전공하는 물리학이 그와 어울리지 않는다는 게 구실이었지만 기쿠 박사의 충고는 대학원을 떠나라는 명령이나 진배없었다. 종수는 자신의 모멸감을 숨긴 채(말하자면 기쿠 박사와 자신에 의해 만들어진 비밀을 숨긴 채) 자신의 기숙사 방에 칩거한다. 대학원 기숙사에 있는 그 누구와도 마주치지 않은 채 침거하던 그는 잠겨 있는 책상 서랍을 열어 오래전에 만들어진 자신의 비밀과 조우하기도 하고 우스꽝스러운 복장으로 피겨스케이팅을 하는 기쿠 박사의 모습을 보기 위해 브라이언트 파크에 다녀오기도 한다.

 

"수영의 청첩장을 앞에 두고, 나는 분노와 좌절감과 패배감과 슬픔과 외로움이라는 온갖 감정의 소용돌이 속을 헤매고 있었다. 왜 그런지 몰랐다. 그냥 내 안의 어떤 부분이 통째로 사라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비밀의 서랍'이 나를 구원해줄 거라고 믿었지만, 그건 완전한 착각이었다. 나는 이미 낭떠러지 바깥 허공에 있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p.33)

 

잠겨 있던 책상 서랍에서 종수가 발견한 것은 받았던 사실조차 잘 기억나지 않는 '수영'이 보낸 청첩장이었다. "디어 종수, 나는 잘 지내. 곧 결혼식을 올릴 거야. 나는 무척 행복해. 너도 잘 지내길 바란다."는 짤막한 내용의 청첩장에서 종수는 그가 열여덟 살이던 그해 여름, '수영'과의 추억(둘만의 비밀일 수도 있는)을 떠올린다. 수영은 그때 자신이 랄프 로렌에게 편지를 쓰려고 하는데 번역을 해달라고 부탁했었다. 그녀의 주장에 따르면 랄프 로렌은 니트, 헤어슈슈, 향수 등 온갖 것을 만들면서도 오직 시계만은 만들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머리부터 발끝까지 랄프 로렌으로 걸치고 싶은' 그녀는 시계를 만들어달라는 편지를 써서 랄프 로렌에게 보낼 작정이었다. 종수는 '수영'과 조금이라도 더 오래 같이 있고 싶어서 편지를 번역하는 일에 생각보다 더 많은 시간을 썼던 걸로 기억한다.

 

대학원에서도 쫓겨나는 바람에 마땅히 할 일이 없어진 종수는 남들이 뭐라 하든 자신만의 세계에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피겨스케이트를 타는 기쿠 박사의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보고 면전에서 그를 조롱하려던 처음의 계획을 접고 만다. 돌아오는 길에 그는 랄프 로렌 매장을 보았고 매장에 들어가는 대신 뉴욕 도서관에 들러 고인이 된 랄프 로렌의 정보를 검색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는 그닥 알려진 게 없는 랄프 로렌의 삶을 탐구하기 시작한다.

 

종수는 대학원에서 쫓겨난 후 미국에 머물렀던 일 년 동안 랄프 로렌이 시계를 만들지 않은 이유를 찾아나선다. 그와 관련된 많은 자료를 찾아 읽고, 주변 인물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 소설은 이제 종수의 이야기인 동시에 종수가 탐색하는 랄프 로렌의 이야기가 된다. 열한 살에 야반도주를 하여 뉴욕에 왔던 랄프 로렌이 구두닦이를 할 때, 그를 데려가 아들처럼 키워주었던 조셉 프랭클, 조셉 프랭클의 오랜 이웃이었던 백네 살의 할머니 레이첼 잭슨, 레이첼 잭슨을 돌보는 입주 간호사 섀넌 헤이스 등 랄프 로렌을 탐색하는 과정에서 종수가 만난 인물들의 이야기도 더해진다.

 

"수영은, 수영은 그 시절을 기억하고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니까 가슴이 무너지는 것 같은 느낌에 사로잡혔다. 나중에 섀넌 헤이스는 그게 바로 상실감이라고 말했다. "마음속에 구멍이 난 것 같죠. 안 그래요?" 그리고 그녀는 이렇게 덧붙였다. "누군가가 당신 마음속 서랍에서 무언가를 꺼내서 가지고 가버린 거죠." (p.41)

 

종수는 끝내 랄프 로렌이 시계를 만들지 않았던 구체적인 이유를 찾지 못한다. 그렇다면 그가 랄프 로렌을 탐색하며 미국에 머물렀던 일 년의 시간이 무의미하기만 했던 것일까? 종수가 읽었던 여러 자료와 주변 사람들이 들려주었던 여러 이야기, 그 모든 게 랄프 로렌의 삶을 완벽히 재현한다고 할 수 있을까? 개인이 취득한 평생의 비밀은 결국 그 사람의 온전한 삶이 된다. 독일의 심리학자 우르술라 누버는 자신의 책에서 이렇게 말했다. '비밀은 우리 인생에 어떤 권한도 없는 사람이 우리 삶에 함부로 기웃거리지 못하게 막아주는 울타리'라고 말이다.

 

타자화 된 어떤 대상이나 광대한 이 우주의 시공간에는 우리가 채 밝혀내지 못한 무수히 많은 비밀이 존재한다. 비밀이 존재하는 까닭에 우리의 관심과 호기심이 이어지고 그로 인하여 어떤 관계와 질서가 맺어진다. 나와 타자와의 관계에서 비밀은 곧 대상과의 관계를 부드럽게 하는 윤활유이자 촉매제인 셈이다. 투명함이 보편적 미덕처럼 여겨지는 요즘 세상에 자신의 비밀을 지키며 산다는 건 그리 호락호락한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매일 조금씩 자신의 비밀을 잃어가는 것으로도 모자라 없는 비밀까지 탈탈 털어버리는 작금의 세태에 누구 한 사람쯤은 굳건히 자신의 비밀을 지키며 산다는 건 우리에게 얼마나 큰 위안이 되는가. 나는 누군가의 비밀을 열렬히 응원하고 싶은 것이다. 당신의 마음속 서랍에서 무언가를 꺼내가지 못하도록 나 한 사람이라도 꼭 지켜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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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견인, 애묘인 등 반려동물을 키우는 가구가 획기적으로 늘었다는 걸 실감하고 있다. 내가 평일에 머물고 있는 집은 20평대의 다소 오래된 아파트인데 주로 젊은 부부나 연세가 많은 부부 또는 나처럼 독신인 사람들이 산다. 그래서인지 반려동물을 키우는 가구가 유난히 많다. 날씨가 무더운 여름철이면 현관문이나 창문을 열어 놓고 지내는 경우가 다반사인데 아파트 구조가 복도식이다 보니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집으로 가다 보면 본의 아니게 이웃의 집안을 훔쳐보게 된다. 특별히 신경 서서 보지 않아도 이웃 가구의 구성원이며 살림 형편을 자연스레 알게 되는 셈이다. 한 층에 15가구가 사는데 반려동물 분변의 냄새 때문인지 여름이면 쓰레기 봉투를 복도에 두고 사용하는 집도 있고, 열어 놓은 현관문 앞을 지키던 강아지가 복도를 통행하는 이웃을 향해 사납게 짖어대는 경우도 더러 있다.

 

며칠 전에는 집을 나서는데 개 짖는 소리가 어찌나 우렁차고 크던지 아파트 건물 전체가 흔들리는 것만 같았다. 주인이 집에 없었는지 열려진 베란다 창문을 통해 개 짖는 소리가 쩌렁쩌렁 울리는데 개를 달래거나 제지하려는 사람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나마 밤이 아니었으니 망정이지 깊은 밤에 벌어진 일이었더라면 동네 사람들의 원성깨나 샀을 것이다. 나는 8호실에 사는데 결혼을 하지 않은 아들과 나이 지긋한 부부가 사는 7호와 어린 딸 둘과 젊은 부부가 사는 9호에도 강아지를 키우고 있다. 게다가 7호에는 한두 마리가 아니다. 정확한 숫자는 모르지만 적어도 강아지 서너 마리와 고양이 두세 마리를 키우고 있는 듯했다. 그닥 넓지 않은 아파트에서 그렇게 많은 개체수의 반려동물을 키우다 보니 개들도 스트레스를 받았는지 복도에서 작은 발자국 소리만 들려도 왕왕 짖는다. 반려동물을 키우지 않는 나는 소리와 냄새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데 새벽녘에 짖는 강아지 소리에 몇 번 잠이 깬 적도 있다. 대용량 쓰레기 봉투를 사용하는 7호는 반려동물의 분변을 처리한 쓰레기를 봉투에 담아 복도에 내놓곤 하는데 여름에는 그 냄새가 정말 지독하다.

 

불과 10여 년 전만 하더라도 공동주택에서 반려동물을 키우는 건 여간 조심스러운 일이 아니었다. 반려동물의 소리 때문에 이웃과 마찰을 빚을까봐 소리가 나지 않도록 성대수술을 하기도 했고 이웃과의 마찰 때문에 단독주택으로 이사를 가기도 했었다. 며칠 전에도 의정부시에서는 산책을 하던 60대 여성이 목줄이 풀린 개에 물려 큰 부상을 입었다는 뉴스가 있었다. 반려동물 인구 천만시대라고는 하지만 우리나라의 페티켓 문화는 턱없이 낮은 수준에 머물고 있지 않나 싶다. 애견인들도 자신이 키우는 동물보다는 '사람이 먼저'라는 생각을 갖고 이웃을 배려한다면 사람과 동물이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을 텐데 말이다. 적어도 지금보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캐치 프레이즈 '사람이 먼저다'는 이럴 때 써야 하는 게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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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빗 스태킹 - 쌓일수록 강해지는 습관 쌓기의 힘
스티브 스콧 지음, 강예진 옮김 / 다산4.0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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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12월, 엊그제 새해가 시작된 듯한데 2017년의 마지막 달을 맞고 있다. 지금은 송년 분위기도 많이 달라져서 거리에 크리스마스 캐롤이 울려퍼지던 8,90년대의 시끌벅적한 분위기는 많이 없어진 듯하다. 차분해졌다기보다 쓸쓸하거나 울적해진 느낌마저 감돈다. 그래도 빼놓지 않고 하는 것들이 있다. 송년모임이나 신년 계획 세우기, 해돋이·해넘이 행사 등이 그것이다. 어떤 특별한 구실이 없으면 한 자리에 모여 얼굴 한 번 마주할 기회조차 좀체 내기 힘든 바쁜 현대인들에게 송년모임이야 그렇다손 치더라도 요식행위처럼 매년 반복하는 신년 계획 세우기는 그야말로 무의미한 일이 아닌가 싶을 때가 더러 있다.

 

대표적인 신년 계획만 하더라도 '다이어트 및 외모관리', '체력관리 및 운동', '금연 및 금주', '취업', '영어공부' 등 거창하지만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걸 보면 우리는 너무 욕심이 많거나 성급한 게 아니가 싶은 것이다. '바쁠수록 돌아가라'는 옛말도 있는 것처럼 우리들 삶의 여러 분야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핵심 습관'이 아무리 탐나고 부러울지라도 그것을 향해 곧바로 돌진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성공하기도 어렵고 말이다. 그보다는 '핵심 습관'을 뒷받침하는 '보조 습관'을 신경쓰거나 '코끼리 습관'을 이루기 위해 '미니 습관'을 관리하는 게 중요하다. 예컨대 운동을 하기(핵심 습관) 위해 맘에 드는 운동복을 준비해 놓거나 매일 체중계에 올라서기(보조 습관)를 실천하는 식이다. 또는 이삿짐 싸기(코끼리 습관)를 실행하기 위해 책정리(미니 습관)부터 하자는 식이다.

 

습관 전문가로서 신망이 두터운 스티브 스콧은 '작은 습관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그의 책 <해빗 스태킹>에서 강조하고 있다. 탄탄한 습관 근육을 키우기 위해 지속적으로 할 수 있는 작은 습관 계획을 세우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점을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좋은 습관이 어느 날 갑자기 뚝딱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오랜 시간 동안 쌓이고 쌓여 형성된다는 점을 독자들에게 주지시킨다.

 

"습관 쌓기의 가치는 각각의 습관 하나하나에 있는 것이 아니다.사람들 대부분은 이미 우리 삶을 '어떻게' 향상시킬 수 있는지 알고 있다. 사람들이 모르는 부분은 작은 습관을 '지키기 쉬운 구조'로 바꾸는 방법이다." (p.90)

 

습관에 관련된 책은 무수히 많다. 언뜻 생각나는 것만 해도 '습관의 힘'(찰스 두히그), '인생을 바꾸는 부자 습관'(토마스 C. 콜리), '나를 변화시키는 좋은 습관'(한창욱),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스티븐 코비), '퍼스트클래스 승객은 펜을 빌리지 않는다'(미즈키 아키코), '이중세뇌'(이소무라 다케시) 등이다. 이것을 다시 주제별로 나눈다면 수십 권도 넘을 것이다. 그러나 불공정한 사회에서 정의가 강조되는 것처럼 습관에 관련된 책이 매년 차고 넘치게 발간된다는 것은 자신이 원하는 핵심 습관을 게획하여 지속적으로 지킬 수 있는 사람이 그만큼 적다는 것을 의미하는 건 아닐까.

 

"사람들이 습관 들이기를 그만두는 이유는 '게을러서'가 아니다. 어려움이나 문제가 생겼을 때 극복하는 방법을 모르기 때문이다. 습관을 방해하는 사건이 생겨 '달리던 말에서 떨어졌을 때 다시 올라타는' 방법을 모르기 때문이다. 어떤 유형의 습관이든 지속성을 유지하는 비결은 계획된 일상을 방해할만한 문제를 미리 파악하고 이에 대비한 계획까지 세워두는 것이다." (p.299~p.300)

 

스티브 스콧은 이 책에서 우리의 하루가 작은 습관들로 채워질 수 있도록 그 방법을 세세하게 기록하고 있다. 1부 '습관은 바꾸는 것이 아니라 쌓는 것이다', 2부 '습관 쌓기를 완성하는 하루 5분 습관 127', 3부 '성공한 사람의 하루는 습관 쌓기로 이루어져 있다'로 구성된 이 책은 작지만 중요한 습관을 잊거나 뒤로 미루지 않기 위해서는 습관을 차곡차곡 쌓아 올려 하나의 일과로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우리가 이 과정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매우 친절하게 설명하고 있다. 저자는 '인생을 완성하는 7가지 목표 영역'(커리어, 자산 관리, 건강, 여가생활, 정리정돈, 인간관계, 영성)을 분류하고 이에 필요한 127가지 실천 항목을 제시한다.

 

헤비 스모커였던 나는 2015년 1월에 담배를 끊었다. 금연을 실천한 지 이제 만 3년이 되어간다. 갑작스러운 담뱃값 인상도 내가 금연을 결심하게 된 하나의 계기였지만 이소무라 다케시의 <이중세뇌>가 큰 도움이 되었다. 만 하루도 담배 없이 지낸 적 없었던 내가 금연을 실천한 지 하루, 이틀, 사흘 날짜가 흘러가는 걸 확인하면서 나는 무한한 희열을 느꼈었다. 그 시간이 얼마나 힘들고 고통스러웠는지 잘 알기에 그 인내의 시간이 아까워서라도 나는 두 번 다시 담배를 피울 생각이 없다. 매일 새벽 5시 30분에 하는 산행도 다르지 않다. 습관은 쌓여가는 것이라는 스티브 스콧의 주장에 고개를 끄덕이며 이 책을 읽었다. 이제 나는 인생의 다른 목표를 세우고 그에 필요한 작은 습관들을 꼼꼼히 메모하여 실천하고자 한다. 2018년이 기다려지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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