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한 일이지만 낮이 많이 짧아졌다. 아침에 일어나 산행길에 나설 때면 어둑어둑한 등산로와 고즈넉한 숲을 만나게 된다. 불과 한 달 전만 하더라도 5시 30분이면 대낮처럼 환하던 길이 벌써 이렇게 변했나 싶은 게 불현듯 세월의 속도를 실감케 된다. 얼마 지나지 않으면 랜턴 없이는 길조차 분간하기 어려운 시기가 도래할 것이다. 그렇게 또 한 해를 보내고 맥없이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할 걸 생각하면 왠지 우울해진다.

 

윤 전 검찰총장의 여권 정치인 형사고발 사주 의혹을 보도한 뉴스버스의 기사로 인한 정치권 파장이 심상치 않은 듯 보인다. 보도에 따르면 작년 4월 3일 윤 전 총장의 최측근인 손준성 당시 대검 수사정보정책관이 미통당 송파갑 국회의원 후보자였던 김웅 의원에게 유시민 이사장과 최강욱·황희석 열린민주당 비례대표 후보 3명과 언론사 관계자 7명, 성명미상자 등 총 11명에 대한 고발장을 전달했고 김웅 의원은 이를 당에 전달했다는 것이다. 고발장에 고발인란은 빈칸으로 남아 있었고, 명예훼손의 피해자는 윤 전 총장과 부인 김건희 씨, 한동훈 검사장 등 3명이었다는 게 보도 내용의 골자다.

 

말하자면 수사의 주체인 검찰총장이나 검사장이 자신들의 피해를 직접 고소하기는 좀 낯 뜨거운 면이 없지 않으니 제삼자로 하여금 자신들의 고발장을 대신 접수케 하고 이에 대하여 자신들이 직접 수사하겠다는 것인데 쓰리 쿠션 수사라고나 할까. 아무튼 국민들 보기에 이래저래 볼썽사나운 건 사실이다. 그런 까닭인지 윤 전 총장을 지지하던 사람들 중 대다수가 윤 전 총장의 대선 행보에 대해 의구심을 갖는 경우가 많아졌다. 이를테면 반 전 유엔 사무총장처럼 중도에 사퇴하거나 불미스러운 일로 탈락하지나 않을까 하는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는 사실이다. 윤 전 총장의 흠집이 너무 많은 데 비해 토론이나 다른 방식을 통해 검증되거나 해명되지 않았다는 사실에 주목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윤 전 총장의 완주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여기게 되었고 당내의 경쟁 주자인 홍준표 후보에게로 지지세가 옮아가는 건 당연하다는 게 그들의 주장이다.

 

오늘은 24절기 중 열다섯 번째 절기인 백로. 이맘때부터 밤에 기온이 떨어져 풀이나 물체에 이슬이 맺힌다는 것인데, 윤 전 총장도 이제는 조금쯤 깨닫지 않았을까 싶다. 정치판이 얼마나 비정하며, 자신이 주장하던 '공정'이 얼마나 허망한 구호였던가를... 혹여라도 그는 '공정'이 공작정치의 줄임말로 잘못 알고 있었던 건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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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워지는 것도 사랑입니까
황경신 지음, 김원 사진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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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이 차곡차곡 쌓이는 특별하지 않은 주말 오후. 삶을 재촉하는 잰걸음의 속도는 계절이 바뀔 때마다 달라지는 것인지 가을의 초입에 설 때마다 나는 한 해의 끝을 향해 한달음에 달려갈 것만 같은 불안감에 시달리곤 합니다. 그럴 때는 늘 허둥지둥 갈피를 잡지 못하고 괜한 일에 에너지를 소진하게 됩니다. 푸른 마음의 빗장을 열어젖힌 채 가을의 고독과 쓸쓸함과 삶의 허무를 한껏 받아들이는 까닭에 애상 과잉의 상태에 빠져버리는 듯합니다. 술에 취하는 게 아니라 슬픔에 취한 느낌이지요. 한 계절이 그렇게 정신없이 흘러갑니다.

 

내 마음에도 계절이 있어

바람 불면 쓸쓸한 잎을 떨어뜨리고

작은 오솔길 따라 걸어간

오래전 누군가를 그리워하기도 하지

단단한 공처럼 차가운 공기

여린 호흡을 얼어붙게 하는 한밤의 서리

그리워도 그리워도 여름은 지나갔으니

이제 침묵 같은 기다림만 남았는 (p.165 '여름은 지나갔으니' 중에서)

 

고독이 구석구석 먼지처럼 쌓이는 숙소의 휑한 공간에서 나는 황경신 작가의 <지워지는 것도 사랑입니까>를 읽었습니다. 빈 공간으로 꾸역꾸역 어둠이 밀려들고, 농밀한 침묵이 처진 어깨를 더욱 짓누릅니다. 우리는 언제나 고독을 통해 그리움을 배우고, 이별을 통해 사랑을 배우는 것처럼 작가 역시 그런 경험들이 차곡차곡 쌓여 이처럼 아름다운 글들을 자연스레 쓸 수 있게 되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대라는 허공에 편지를 쓰듯 쓰고 지우고, 또 쓰고 지우는 일이 수천, 수만 번 반복되다 보면 나도 언젠가는 작가처럼 순한 글 한 편쯤 쓸 수 있는 날이 올지도 모릅니다. 나는 그렇게 대책 없는 희망을 안고 특정할 수 없는 날을 기약합니다.

 

이 경우에

세월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굳은살이 박히고 툭, 툭 갈라진

거칠고 무심한 세월로는 막을 수 없다

둑을 무너뜨리고 바다로 달려가는

세찬 물줄기처럼 치명적인

사랑이라 하기에는 너무 차가운

메마르고 단단한 그 무엇에

마음을 묶인 채 살아가야 하는

 

당신과 나의 경우에는

(p.257 '당신과 나의 경우에는')

 

김원 작가가 찍은 사진 몇 장을 황경신 작가에게 후보로 건네면 그중 마음에 드는 하나를 골라 황경신 작가가 글을 입혔다는 뒷얘기 때문인지 책을 읽는 독자들 역시 글과 사진의 끈끈한 인연에 눈길이 가곤 합니다. 우리가 보는 풍경에도 영혼이 있다는 걸 말하려는 듯 작가는 한 컷의 사진에 영혼을 불어넣고 있습니다. 그렇게 어우러진 글과 사진이 마음 저 밑바닥으로 녹아들 때, 나는 마치 멈추어진 시간 속으로 혹은 농밀한 침묵 속으로 나도 모르게 빠져드는 느낌입니다.

 

"이 글에 서둘러 마침표를 찍기도 전에, 나는 가을의 적막 속으로, 겨울의 침묵 속으로, 봄의 무심함 속으로, 또다른 여름의 난폭함 속으로 내몰릴 것이다. 그러한 방식으로 그 또한 지나갈 것이며, 더불어, 당연하게도, 그냥 그렇게 지나가버리는 것은,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 미셸 슈나이더의 말을 빌자면, '무언가가 완성되면서 사라지는' 순간이고 삶이고 영원이다."  (p.272~p.273 '에필로그' 중에서)

 

시나브로 가을입니다. 나는 다시 허둥대고, 갈피를 잡지 못한 채 시간을 허비하고, 야속한 시간들은 서둘러 끝을 향해 나아갈 것입니다. 그러나 매 순간의 삶에는 나도 모르는 매듭이 있고, 총체적인 결말이 존재하며, 누군가에게 주는 일말의 감동이 있음을 나는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 역시 그런 아주 작은 의미들로 순간순간이 채워지기 때문입니다. 황경신 작가가 쓴 '영혼시' 역시 그런 순간들의 기록이기에 나는 작게나마 감동하고, 때론 하늘을 우러르고 먼 산을 바라보며 까르르 웃는 아이들 웃음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됩니다. 이 가을의 기억은 그렇게 화석처럼 굳어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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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라는 말이 있다. 특정 직위에 부여되는 권위로 인해 그 자리에 오른 사람이 누구든 직위에 어울리는 사람으로 변하게 마련이라는 뜻일 게다. 말하자면 '지위가 매너를 바꾼다'(Office changes manners)는 의미일 텐데 이와 같은 사례는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다. 막내 사원일 때는 그렇게 촌스럽고 속된 말로 찌질해 보이기까지 했던 사람도 짬밥이 쌓여 승진을 거듭하다 보면 어느새 그에게도 한 부서를 책임질 수 있는 노련함과 경륜에서 오는 권위가 몸 곳곳에서 폴폴 풍겨오는 것이다.

 

'세대교체 주역'으로 화려하게 취임한 지 두 달이 지난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를 보면 확실히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을 실감하게 된다. 국회의원을 경험하지 못한 찌질한 정치인이었던 그는 웬만한 방송사의 패널로 초청되는 걸 큰 영광으로 여기고 이슈가 있을 때마다 방송사 곳곳에 등장하여 얼굴 알리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랬던 그가 제1야당의 당대표가 되자 그는 이제 미리 약속된 방송 출연마저 제멋대로 펑크를 내는 안하무인의 캐릭터로 완벽하게 변신하고야 말았다. 그것도 녹화방송이 아닌 생방송을 말이다. MBC <100분 토론>에 참석하기로 했던 그는 생방송을 단 40여 분 앞둔 시점에 출연 거부를 최종 통보했고, 방송 공백에 대해 '동물의 왕국'이나 틀면 된다고 답했다고 하니 그의 놀라운 변화에 혀를 내두를 정도다.

 

사람은 특정 지위에 주어지는 권위에 의해 달라지기도 하지만 그 사람의 내면 깊숙이 자리한 본심이 어떤 권위가 주어짐으로써 자유롭게 표출되기도 한다. 말하자면 권한이 주어지지 않아 꾹꾹 누를 수밖에 없었던 자신의 본심이 특정 지위에 오름으로써 자유롭게 분출되는 것이다. 이를테면 사람 자체가 변하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의 본모습이 나온다고 해야 옳을 것이다. 그러므로 한 국가의 최고지도자를 뽑는 대통령 선거는 신중해야만 한다. 그 사람의 내면을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주 120시간에 달하는 노동과 불량식품 섭취 발언 등 자신의 본심을 가감없이 표출한 어느 후보의 모습은 순진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자신의 본모습을 감추지 않고 미리 보여주었으니 말이다. 대선까지 남은 시간은 이제 약 6개월, 누가 대통령이 될지 알 수 없지만 철저한 검증을 통해 후보자의 내면까지 들여다볼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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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착취의 지옥도 - 합법적인 착복의 세계와 떼인 돈이 흐르는 곳
남보라.박주희.전혼잎 지음 / 글항아리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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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기지 않는 현실 앞에서 우리는 흔히 "한 편의 소설 같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나는 실재하는 현실이 소설보다 더 끔찍하며, 때로는 더 잔인하고, 소설가도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이 현실에서는 버젓이 일어날 수 있다는 걸 잘 알고 있습니다. 얼마든지 말입니다. 그것은 소설가도 역시 작가인 동시에 인간의 선의를 지닌 한 사람의 인간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한 인간이 인간의 보편성을 뛰어넘어 어둠의 저편까지 들여다보기에는 그 끔찍함으로 인해 자신도 모르게 눈을 감게 되는 경우도 많으며, 때로는 자신이 보았던 것을 날것 그대로 표현하지 못하고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에서 적당히 순화하고 윤색하여 사회의 보편적인 윤리에서 조금쯤 엇나간 정도라고 말하는 게 일반적입니다. 우리는 그렇게 인간의 보편적인 정서를 향해 관성처럼 되돌아오곤 합니다.

 

"많은 노동자가 노동의 대가를 중간업체에게 빼앗기는 현실에 분노했지만 그 분노를 압도하는 게 있었죠. 어차피 현실은 달라지지 않을 거라는 체념, 행여 인터뷰 사실이 밝혀져 일자리마저 잃지 않을까 하는 불안, 원청과 용역·파견업체가 서로 책임을 떠넘기며 노동자의 권리를 짓밟는 거대하고 교묘한 착취 구조 속에서 무력감을 느끼지 않을 사람은 별로 없을 겁니다. '계약 해지'라는 말로 언제든 해고할 수 있는 악랄한 구조는 노동자들의 연대를 원천 차단하고 있고요."  (p.5 '머리말' 중에서)

 

한국일보 마이너리티팀이 반년 넘게 취재해 온 기획 기사를 책으로 엮어 출간한 <중간착취의 지옥도>는 노동자들이 업체로부터 임금을 빼앗기는 실태를 알아보기 위해 노동자 100명을 인터뷰한 기록, 1부 '합법적인 착취, 용역'과 이들이 떼인 돈이 어디로 흘러가는지를 추적한 2부 '떼인 돈이 흘러가는 곳', 파견법의 제정으로 진화하고 있는 노동 착취를 다룬 3부 '진화하는 착취, '지옥도'라고 부를 수밖에 없었던 간접고용 세계에 아주 작은 균열이라도 내보려 국회, 고용노동부, 지방자치단체를 찾아갔던 기록과 중간착취를 막을 법과 제도를 생각해보고자 하는 4부 '법을 바꾸는 여정'으로 구성된 르포 형식의 책입니다.

 

책을 읽는 독자라면 나도 모르게 화가 나고 울분이 치솟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책에 소개된 인터뷰이들의 태도는 오히려 담담하기만 합니다. 인터뷰 내용을 조작했거나 순치했다고 보이지는 않습니다. 어쩌면 그들에게는 '이딴 게 다 무슨 소용이야' 하는 내재화된 체념이 돌덩이처럼 무겁게 자리 잡고 있기 때문에 그들의 인터뷰 역시 어쩌다 있는 하나의 이벤트처럼 대했는지도 모릅니다. 스스로의 권리를 찾고, 지금 현재의 상태를 개선하려는 노력은 그것이 가능하리라는 일말의 희망이 보일 때에나 하는 것이지 간접고용이 공고화된 체계 속에서, 게다가 코로나 시국의 장기화와 플랫폼 기업의 성장으로 인해 나날이 일자리가 부족해지는 상황 속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세상에 전달하려는 의지는 차츰 희미해지게 마련일지도 모릅니다. 당연하게도 말입니다.

 

"이런 중간착취를 알아차리고도 뗀씨와 동료들은 공장과 파견 업체 측에 바로 항의하지 못했다. 어떻게 된 일이냐고 따져 물었다가 그나마 하는 일마저 그만둬야 하는, 보복성 해고가 무서워서였다. 그들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사이 공장에서는 이주노동자들이 월급에 불만을 갖고 있다는 소문이 알음알음 퍼져나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뗀씨를 비롯한 이주노동자 전원은 해고당했다. 일감이 없다는 핑계로 이들을 내보내면서도 '우리는 파견업체에 제대로 된 임금을 보냈으니 책임이 없다'는 말을 덧붙였다."  (p.221)

 

우리가 기억하고 있는 구의역 김군 사건이나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사망한 협력업체 비정규직 노동자 故 김용균 씨의 사례는 그 현상과 결과만을 보도한 단발성 기사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위험의 외주화'라는 말도, 갈수록 교묘해지는 용역업체의 중간착취 사례도, 그리고 파견 근로자에 대한 원청 업체의 부당한 대우도 결국 그 원인을 파고들어 보면 기업의 이윤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까닭에 입법을 통한 제재에는 한계가 있을지도 모릅니다. 경제력이나 정보력의 차원에서 노동자측이 사측을 결코 이길 수 없기 때문입니다. 기업의 이익 측면에서 용역업체를 통한 노동자의 수급이 비용도 절약되고 책임 소재에서도 자유로울 수 있는데, 해고도 쉽지 않고, 임금도 높은 정규직을 고용하여 굳이 자신들의 이익을 감쇄시킬 이유는 없겠지요.

 

"국회와 정부가 23년간 간접고용 노동자 보호에 등 돌린 탓에 근로기준법은 아직도 1958년 제정 당시, 과거의 노동 시장에 머물러 있다. 용역업체도 파견업체도 없던 그때, 간접고용이라는 말조차 없었던 당시의 법은 당연히 오늘날 실재하는 346만 명의 간접고용 노동자를 한 명도 보호하지 못하고 있다. 이 낡은 법을 도대체 언제까지 방치하려는 걸까."  (p.252)

 

가난하고 힘없는 자의 죽음은 마치 일상처럼 가볍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목소리는 언제나 일정한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 채 다만 울림으로만 존재합니다. 세상은 그렇게 거북이보다 느린 걸음으로 아주 천천히 변해가는 까닭에, 변화에 목마른 사람들은 저마다의 애끓는 심정으로 국회로 국회로 꾸역꾸역 모여들곤 합니다. 그러나 그들의 목소리는 아주 미약하고, 기업을 대표하는 몇 안 되는 사람들의 목소리는 우렁우렁 크기만 합니다. 길게 이어지는 코로나 시국에 중간착취의 지옥도를 향한 자발적인 발걸음은 오늘도 끊이지 않고, 다만 오늘의 노동자가 내일의 다른 노동자로 대체될 뿐입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이 싸움은 처서도 지난 올해의 가을장마처럼 서글프기만 합니다. 비가 내리려는지 오늘도 하늘은 끄물끄물 어둡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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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불호텔의 유령
강화길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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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일이든 의욕이 앞서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럴 때 기다림의 시간이 충분하지 않으면 대개는 자신의 의지나 기대와는 전혀 다른, 말하자면 기대에 못 미치는 실망스러운 결과를 맛보게 된다. 예컨대 투자자는 많은 돈을 벌겠다는 의욕이, 학생은 뛰어난 성적을 얻겠다는 의욕이, 스포츠인이라면 자신이 참가하는 대회에서 반드시 우승을 거머쥐겠다는 의욕이 앞선 까닭에 다른 제반 사항을 고려하지 못하는 우를 범하게 되고, 이는 곧 부상이나 과로, 투자 실패와 같은 좋지 않은 결과와 직결되기도 하는 것이다. 글을 쓰는 작가도 크게 다르지 않은 듯하다. 자신이 추구하던 문학 스타일과 전혀 다른 새로운 작품을 선보이고 싶다거나, 꾸준히 추구하던 성향의 작품에서 대작을 쓰고야 말겠다는 의욕이 앞선 나머지 전보다 못한 작품을 선보이게 되는 경우가 그렇다.

 

국내에서는 익숙지 않은 고딕 호러 장르를 꾸준히 시도하고 있는 강화길 작가의 신작 <대불호텔의 유령>을 읽고 들었던 생각이다. 작가의 두 번째 장편소설이기도 한 이 책은 6·25 전쟁의 비극적 상처가 가시지 않은 1950년대의 인천 대불호텔을 배경으로 그곳에서 생활하던 네 사람의 심령 체험을 이야기의 주된 테마로 삼고 있다. 그러나 액자 소설 형식을 취하는 까닭에 프롤로그와 1부에서는 강화길 작가를 연상시키는 화자 '나'의 이야기가 나온다. 소설가인 '나'는 <니꼴라 유치원>이라는 소설을 쓰려고 할 때마다 악의에 찬 목소리의 방해를 받았으며, 그 목소리는 '나'가 모언가를 성취하려 할 때마다, 소중한 누군가와 관계를 진전시키려 할 때마다 저주를 퍼붓는 등 자신 역시 악령에 씌었던 적이 있음을 고백한다. 자꾸만 위축되어가는 삶에 고통스러워하던 '나'는 점차 악의에 전염되고, 보란 듯이 더 깊은 악의로 점철된 소설을 써내 저주를 짓뭉개주겠다고 결심한다. '나'는 <니꼴라 유치원>의 풍경이 인천에 실존했던 대불호텔과 비슷하다는 엄마 친구 아들의 말을 듣고 1호선에 몸을 싣는데...

 

"그래서 나는 포기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의 가족 안에 비집고 들어가는 일은 말이다. 그 어처구니없는 소설을 쓰겠다며 진을 흔드는 일은 그만둬야겠다 싶었다. 그래, 무슨 소용이 있겠어. 다 의미 없는 일이야. 그런데 그 순간, 진이 뭔가를 결심했다는 듯 다부진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어떤 예감에 사로잡혔다. 인천에 오기 전에 나를 휘감았던 바로 그 감정. 그를 영원히 보지 못하게 될 일이 벌어질지도 모른다는 깊은 불안."  (p.70)

 

소설의 2부에서는 이제 1955년 인천의 대불호텔이 배경이다. 더불어 이야기의 화자도 '나'(지영현)로 바뀐다. 6·25 전쟁 당시 북한군 병사들의 군복을 담당하던 '나'의 부모는 폭격으로 사망하고, 홀로 살아남은 '나'는 동네 사람들의 눈을 피해 당숙모에게 의탁한다. 그렇게 가까스로 성장한 '나'는 돈을 벌어 당숙모에게 갖다 바치는 생활을 이어오고 있다. '나'는 호텔 3층을 임차하여 숙박업소로 운영한 뒤 수익금으로 건물 주인에게 임차료를 내고 있는 고연주에게 고용된 몸으로, 손님 한 명을 호텔로 데려올 때마다 인센티브를 받는 호객꾼이다. 호텔에는 영어에 능통하고 장사 수완이 있는 고연주와 중식당에서 일하며 부엌방에 얹혀사는 화교 뢰이한이 있다. 어느 날, 한 미국인이 대불호텔에 장기 투숙하게 되자 고연주는 '나'에게 자신을 좀 도와달라는 부탁을 하게 되었고, 당숙모와의 갈등도 갈등이지만 고연주를 동경하던 '나'는 제안을 수락함과 동시에 짐을 옮겨 그녀와 호텔에서 함께 거주하며 호텔 일을 본격적으로 거들기 시작한다. 그 미국인의 이름은 '셜리 잭슨'으로 귀신 들린 집 이야기를 쓰기 위해 흉가를 찾아온 소설가이다.

 

젊은 여자의 몸으로 다 쓰러져가는 호텔을 임차하여 능숙하게 운영하는 고연주에 대해 사람들의 시선은 곱지 않았다. 그녀에게 귀신이 들러붙었다 둥, 드센 팔자라는 둥 이상한 소문과 억측이 뒤따랐다. 그럼에도 그녀는 어떻게든 셜리 잭슨을 더 오래 붙들어두기 위해 대불호텔에서의 자신이 겪은 공포 체험을 들려주며 환심을 사려 애쓴다. 연주와 셜리 잭슨이 붙어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호텔의 잡다한 일은 언제나 '나'의 몫으로 남게 되고 연주에 대한 '나'의 불만은 점점 깊어만 간다. 한편 대불호텔에서 거주하는 셜리와 고연주, 심지어 화교 뢰이한까지 유령의 소행이라고밖에 생각할 수 없는 환각에 시달리며 그 건물에 영원히 갇혀버릴 것만 같은 공포를 느끼게 되는데, '나'에게만은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누구보다도 대불호텔에 자리 잡고 싶어하는 '나' 지영현에게는...

 

"당신들은 모두 웃고 싶어해요. 행복하기를 원해요. 하지만 서로를 믿지 못해요. 믿을 생각이 없어요. 믿으면 배신당한다고 생각하니까요. 그래서 자기 자신조차 믿지 못하니까요. 그게 당신들의 삶이었으니까요. 아, 그건 나의 삶이기도 해요. 네, 그래요. 왜 이토록 어려울까요. 불안함으로만 가득할까요. 누군가에게는 쉬운 일이 우리에게는 왜 이토록 고통스러울까요. 우리에게 사랑이란 덧없는 기억이고, 불행은 오래 남는 이야기죠."  (p.207)

 

소외감을 느끼던 '나'(지영현)는 결국 함께 지내던 사람들에게 원한을 터뜨린다. 광기에 휩싸인 대불호텔의 악의 속에서 사람들에게 내재된 원한이 분출된다. 좌익과 우익 간의 증오, 화교에 대한 미움, 젊은 여성을 향한 알 수 없는 적개심 등 쌓인 분노가 더 이상 누를 수 없는 악의로 터져 나온 것이다. 소설의 뒷이야기는 이제 3부로 이어진다.

 

"그들의 목소리가 호텔에 둥둥 울린다. 아주 오래전, 사람들로 가득했던 커다란 홀. 뜨거운 닭 국물과 향긋한 고수 냄새로 가득했던 오래된 벽돌 건물. 그들의 대답이 피아노 음처럼 건물 안을 가득 채운다. 그리고 어디선가 또다른 목소리가 들린다. 지나간 시간, 역사, 그곳을 거쳐간 사람들의 기억으로 남아 건물 자체가 된 모든 이들의 목소리. 그리고 그 이야기를 상상하는 사람의 목소리."  (p.298)

 

극한의 공포와 오싹한 느낌을 기대했던 독자라면 약간의 실망감으로 이 책을 덮을 수도 있겠다. 사람들에게 고딕 호러 장르는 여전히 낯선 어떤 것이며, 셜리 잭슨과 에밀리 브론테, 장화 홍련 등 우리 귀에도 익숙한 이름들의 차용은 왠지 소설에 대한 거부감을 일으킨다. 우리는 언제나 소설을 구성하는 익숙한 테마와 플롯, 가상이지만 각각의 인물에 걸맞은 적당한 이름들을 상상하며 책을 읽는 까닭에 우리의 상상을 뒤집는 새로운 것들이 등장할 때마다 소설에 대한 흥미와 가독력을 조금씩 잃게 된다. 작가라는 직업이 자신의 창의력과 욕구에 반할지라도 독자의 수요와 관심에 전적으로 부합하는 작품만 쓰는 것은 아니겠지만, 강화길 작가도 언젠가는 자신이 추구하는 고딕 호러 소설의 장르와 대중의 관심이 한 곳에서 만나는 새로운 시대를 개척하리라고 믿는다. 안방극장을 차지하는 드라마는 언제나 막장 드라마가 최고라고 확고하게 믿는 당신의 기대가 언젠가 깨지고야 마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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