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근처의 공원에는 다른 나무들과 더불어 감나무가 두어 그루 서 있다. 당연한 일이지만 그곳의 감나무에는 제법 탐스런 감이 해마다 열리는데 여름내 농약을 친 탓에, 또는 시의 재산이라는 이유로 공원을 찾는 사람들이 그 감을 따서 먹을 수는 없는 노릇이고 그저 바라보고 즐길 뿐이다. 말하자면 관상용의 감나무인데 올해도 어김없이 제법 실한 감들이 조롱조롱 열렸다. 아직은 잎과 과일의 색깔이 초록으로 한 색이어서 구별이 쉽지 않지만 말이다.

 

다른 나무들도 많은데 내가 굳이 감나무에 애착을 갖는 이유는 요즘처럼 타는 듯한 더위에도 푸르고 반짝이는 생명력을 잘 유지하는 때문이기도 하지만 아침 저녁으로 제법 소슬한 추위가 느껴지는 늦가을까지 갈색의 잎과 주홍빛으로 농익은 과일을 그대로 매달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러한 까닭에 나는 매년 감나무를 보면서 계절의 변화를 감지하고 있다. 말하자면 감나무는 나와 같은 도시내기들에게 계절의 변화를 알려주는 '계절 알리미'로서의 역할을 하는 셈이다. 도시에서 산다는 건 계절의 변화에 점차 무감각해지는 삶을 선택한다는 것일지도 모른다.

 

요즘처럼 연일 폭염에, 열대야에 시달리다 보면 어서 빨리 이 시간이 지나갔으면 하고 간절히 바라게 된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 보면 1년 전체에서 요즘과 같은 혹서기는 아주 짧은 시간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물론 지구온난화로 전지구의 기온이 매년 꾸준히 높아지고 있는 추세이기 때문에 올해 1년 전체를 통틀어서 보면 가장 기온이 높은 해가 된다고는 하지만 말이다. 그러나 하얗고 노랗던 감꽃이 어느새 아기 주먹만 한 크기의 열매로 자라난 것처럼 시간은 우리가 미처 알지 못하는 순간에도 쉼 없이 흐르고 매섭던 더위도 시나브로 사그러들 것이다.

 

밖에는 오늘도 여전히 무덥다. 도시의 더위는 끈적끈적할 뿐 아니라 사람의 기분을 종일 우울하게 만드는 특징이 있다. 마치 더위 속에 우울한 기분을 슬쩍 찔러넣은 것처럼 말이다. 에어컨 바람을 쏘여도 기분은 나아지지 않는다. 다만 이 더위를 쫓기 위해 매미 혼자서 열심히 울어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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