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밤을 빠져나와 완전히 다른 빛의 세계에 도달하는 일은 우리에게는 늘 있는, 언제까지나 진행될 것만 같은 일상적인 것이지만 어둠과 빛의 경계에서 하루를 시작하는 저로서는 감회가 새로울 수밖에 없습니다.  요즘에는 낮이 길어진 탓에 미처 산을 다 오르기도 전에 먼 산 위로 하루의 태양이 떠오르곤 하지만 그렇다고 어둠과 빛의 경계가 옅어지거나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봄꽃 만발한 숲의 어둠 속으로 속속들이 스며들고 있는 빛의 폭발에 내가 지금 어둠과 빛의 경계에 서 있구나 하는 느낌이 선연해지곤 합니다.

 

이따금 저는 나와 타인의 경계가 모호해질 때가 있습니다.  보통은 '여기까지가 내 의식의 영역이야.'하는 생각으로 든든히 담을 치고 사는 까닭에 경계의 이 편에서 저 편에 있는 상대방과 섞이거나 구분짓지 못하는 '의식의 혼재 상태'를 경험하지는 않지만 문득 그 경계가 무너지는 한 순간, 이를테면 의식의 무방비 상태에 있을 때의 나는 '왜 내가 여기에 있지?'하는 의문에 빠지는 것입니다.

 

어제는 개인적인 볼일이 있어 차를 몰고 밖에 나갔습니다.  신호를 기다리며 무심히 앉아 있었는데 제 차의 룸미러에 비친 뒷차의 운전자가 시야에 들어왔습니다.  SUV차량을 타고 있는 여성 운전자였습니다.  불과 5,6년 전만 하더라도 SUV 차량을 운전하는 여성은 드물었던 게 사실입니다.  그러나 요즘은 SUV 차량을 선호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여성 SUV 운전자도 심심찮게 볼 수 있죠.  그 여성 운전자는 나처럼 신호를 기다리며 음악을 듣고 있었는지 핸들에 올려진 손가락으로 핸들을 가볍게 톡톡 두들기면서 박자를 세고 있는 듯했습니다.  저는 그때 라디오를 튼 것도, 다른 음악을 틀어 놓은 것도 아닌데 제 귀에도 음악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았습니다.  그렇게 있었던 '의식의 무방비 상태'가 얼마나 지속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뒷차의 크락션 소리에 놀라 앞을 보니 제 앞에 있었던 차량들은 이미 다 사라진 상태였습니다.

 

흔히 말하는 텔레파시도 그런 게 아닌가 싶습니다.  의식의 경계가 무너지고, 심지어 너와 나의 구분도 모호해지는 상태.  산을 오르며 등산로 근처의 나무 둥치에 손을 대보는 경우가 있습니다.  의식의 경계가 분명한 나로서는 나무의 생각을 도무지 읽어낼 수가 없습니다.  담을 없애고 경계를 허무는 일이 인간사에만 필요한 것은 아닌가 봅니다.  나무와 꽃과 이름도 모르는 풀과, 더 나아가서 우주의 모든 것들과 스스럼없이 생각을 주고받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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