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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깊게 읽는 즐거움 - 속도에서 깊이로 이끄는 슬로 리딩의 힘
이토 우지다카 지음, 이수경 옮김 / 21세기북스 / 2012년 8월
평점 :
품절
대학 시절 내 친구 L은 시인으로 등단하여 모 출판사에서 시집을 출간했었다.
그러나 친구의 시집은 거의 팔리지 않았고, 모르긴 몰라도 전국의 서점에서 반품된 책들이 출판사의 창고를 가득 채웠을 것이다. 친구는 책이 나온 지 얼마 후에 내게 와서 자신의 시를 몰라주는 독자들을 원망하며 넋두리 삼아 푸념을 했었다. 사실 친구의 시는 친구인 내가 읽어도 난해하기 짝이 없었고, 어떤 부분에서는 도통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래서 친구에게 앞으로는 독자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쓰면 안되겠냐고 했더니 도리어 친구는 내게 불같이 화를 냈었다. 친구의 주장인즉슨 이랬다. 시인마다 추구하는 시의 경향이 있고, 자신이 쓰는 시도 짧은 시간에 쉽게 쓰여진 시가 아니므로 독자도 그 시를 이해하려면 적어도 작가의 노력에 버금가는 수고를 해야 한다는 논리였다. 딴은 맞는 말이었지만 일반적인 독자에게 자신의 독서 스타일을 바꾸라고 말할 권리는 작가에게도 없는 것이 아니냐고 따졌더니 친구는 문학도 모르는 무식한 놈이라고 길길이 날뛰며 분을 삭이지 못하는 눈치였었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신만의 독서법을 갖고 있을 것이다. 나 역시 어떤 부분에서는 편협한 책읽기를 고집하고 있다. 가령 맘에 들지 않는 책은 몇 쪽 읽지도 않고 던져버린다든가 오탈자가 많으면 책의 내용까지 의심한다든가 하는 식으로 말이다. 아무튼 한번 길들여진 습관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오래 전 법정스님의 추천도서 목록에 올랐던 다치바나 다카시의 <나는 이런 책을 읽어왔다>를 읽고는 '왜 스님은 이런 책을 추천도서에 올렸을까?'하는 의문을 품은 적이 있었다. 그런가 하면 박웅현의 <책은 도끼다>나 히라노 게이치로의 <책을 읽는 방법>을 읽었을 때는 꽤나 만족했었다.
그 외에도 이지성의 <리딩으로 리드하라>, 장정일의 <독서일기>는 독서의 방법론이 아닌 책의 선택과 독서의 관점에 어떤 주관을 갖지 못했던 내게 도움을 준 책이었다. 글을 쓰는 것으로 업을 삼는 사람이 아니라면 나처럼 수동적인 독서를 경험할 수밖에는 달리 도리가 없다. 그러므로 도움이 될 만한 많은 책을 통하여 자신의 독서법을 다듬고 보완하여 나름의 틀을 형서하게 되는지도 모른다. 그리 큰 도서관이 아니더라도 독서에 관련된 책은 줄잡아 수십 권은 족히 될 것이다. 나같은 얼치기 독서가를 위해서 말이다.
그러나 이런 수동적 독서법에 관한 책은 넘치도록 많은 반면 아이들이나 부족한 성인들을 대상으로 독서에 대한 강의(실천적 독서 또는 적극적 독서)를 목적으로 책을 읽는 사람에게 필요한 방법론을 제시해 주는 책은 많지 않다. 그래서인지 우리나라에서도 논술이나 독서 교육을 전담하는 분들이야 많지만 어떤 소신이나 사명감을 갖고 그 방법론을 고민하는 분들은 찾기 어렵다. 물론 공교육의 제도권에서 국어를 담당하는 선생님들은 그 틀을 깨기가 쉽지 않지만 사설 교육기관이나 봉사활동의 일환으로 그 일을 하는 사람이라면 얘기가 조금 다르지 않을까? 그럼에도 교수법에 대한 고민은 하지 않는 듯하다.
주말을 이용하여 학생들에게 내가 갖고 있는 책도 빌려주고 읽어볼 만한 책도 소개하는 일을 두어 달 해본 경험에 의하면 그런 구태의연한 방법으로는 아이들이 책을 좋아하지도, 글쓰기에 흥미를 붙이는 것도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단순히 봉사의 차원에서 시작한 일이니 읽고 싶은 책만 빌려주고 내 할 일 다했노라 말할 수도 있겠지만 자신이 뭘 좋아하는지도 모르는 아이들에게 자신의 장래와 희망에 대해 한번쯤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라면 독서보다 더 좋은 것이 없겠다 싶어 내가 고집하던 방법을 바꾸기로 했다.
그 방법을 간략히 소개하면 이렇다. 못쓰는 글이지만 내가 소설의 발단 부분만 쓰고 아이들로 하여금 그 다음 이야기를 상상하여 말하도록 하고 그 중 가장 재밌는 내용을 그 다음 이야기로 채택하여 소설을 이어가는 방식이다. 물론 아이들은 스토리 라인만 내게 들려주고 쓰는 것은 전적으로 내가 담당한다. 이 수업에서 내가 의도하는 것은 몇 가지 있다. 아이들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작가의 입장에서 글을 쓰다 보면 다른 책을 읽을 때도 더 깊이 이해하게 된다는 점과, 글쓰기에 대한 흥미 진작과 더불어 자신들이 쓴 것은 아니지만 한 편의 단편소설을 완성하면 그것에서 얻게 될 성취감 등이다.
아직은 시작 단계이니 그 결과를 이렇다 저렇다 평가할 수는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아이들의 참여도나 열의, 또는 흥미가 예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아졌다는 점이다. 그로 인해 나는 주중에도 아이들이 들려준 이야기를 바탕으로 글을 쓰느라 여가 시간이 많이 줄어들기는 했지만 말이다.
이 책은 어쩌면 독서법을 찾는 수동적 독서가가 아닌 국어를 가르치는 능동적 독서가에게 필요한 책인지도 모른다. 일본 고베의 사립학교인 '나다'에 근무하던 하시모토 다케시 선생의 독특한 수업 방식을 집중 조명한 책으로 문고본 분량의 책 한 권을 무려 3년에 걸쳐 읽는 방식이다. 나카 간스케의 자전적 소설 <은수저>를 교과서 삼아 천천히, 그리고 깊이 음미하면서, 때로는 연괸된 내용을 찾아 '옆길로 새기'도 하면서 소설 한 권을 철저히 독파하는 것이다.
'단정하게 넘겨 빗은 올백 머리가 썩 잘 어울리는 그 국어선생님'은 아이들이 소설에 흥미를 갖게 하기 위해 소설 속 주인공이 먹었던 막과자를 나눠주고, '축(丑)'이라는 글자에서 10간 12지를 이용한 육십갑자의 유래와 의미를 이끌어내고, 미술 수업과 연계하여 연을 직접 만들어 날려 보기도 한다.
"설령 빨리 읽어 나간다고 합시다. 여러분에게 뭐가 남을 것 같습니까? 아무것도 남지 않습니다. 내 수업은 속도를 다투지 않습니다. 여러분에게 속독을 가르칠 생각도 없습니다. 그보다 다들 조금이라도 어렵다고 느낀 곳, 흥미로운 곳에서 스스로 옆길로 빠졌으면 좋겠습니다. 자꾸만 파고들어서 자신의 세계를 깊게 했으면 좋겠습니다. 시간이 걸려도 천천히 갈 작정입니다." (P.131)
한 학교에서 50년을 근무하고 지금은 은퇴하여 또 다른 교재를 준비하고 있다는 하시모토 다케시 선생의 열정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올해 7월에 100세가 되었다는 선생의 삶처럼 독서는 먼 미래를 준비하기 위한 인생의 지렛대가 되어야 한다. 설렁설렁 읽어 그 권수를 자랑할 일이 결코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