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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사슴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한강 장편소설 ㅣ 문학동네 한국문학 전집 24
한강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12월
평점 :
인생에서 시간의 퍼즐이 완성되기까지 우리는 아무도 그 결과를 알지 못한다. 그러므로 어떤 이의 운명을 함부로 예단해서는 안 된다. 인간의 단순한 논리 구조로 쉽게 예측할 수 있을 만큼 삶은 그렇게 단순하지도, 인간의 직선적인 사고방식으로 점칠 수 있을 만큼 분명한 방향성을 갖는 것도 아닌 까닭에 우리 삶의 결과는 때로 기적처럼 부풀려지기도 하고 농담이나 조롱처럼 무시되기도 한다. 그러나 전체로서 개개인의 삶이 비록 하찮고 무의미할지라도 탄생에서 죽음에 이르는 그 과정은 오직 한 개인에게 귀속된 유일한 것이기에 우리는 이따금 다른 이의 입을 통해 누군가의 삶을 전해듣기도 하고, 한 권의 책 속에서 어떤 이의 삶을 발견하기도 한다. 우리는 그렇게 자신의 삶도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 오랫동안 살아남기를 바라며 사는 동안 다른 누군가의 삶을 끝없이 궁금해하는지도 모른다.
한강의 첫 장편소설인 <검은 사슴>은 등장하는 인물이 그리 많지 않은 반면 분량은 꽤나 길고 두꺼운 까닭에 인물 상호 간의 관계와 그에 따른 인물 개개인의 심리를 비교적 명확하게 파악할 수 있는 소설이다. 물론 사람의 심리라는 게 형식화된 틀 안에서 정형적으로 작동하는 것은 아니지만 작가가 설정한 인물 개개인의 성격이나 지나온 삶의 이력을 대입하면 소설 속 인물 개개인의 행동이나 심리를 이해하지 못할 것도 없겠다 싶은 것이다. 그러나 이 소설에 대한 일반 독자의 리뷰에서 종종 왜?라는 의문부호를 목도하게 되는 것은 아마도 소설의 배경으로 등장하는 탄광 지대라는 낯선 환경이 독자들로 하여금 생경한 느낌을 불러일으킨 게 아닌가 싶다. 그리고 소설 속 중심인물인 의선의 성장 배경이 그곳이었다는 것도 독자들의 호기심을 부추겼을 테다.
"의선의 생감새는 평범했다. 조그맣고 마른 얼굴에 코와 광대뼈는 평면적이었다. 긴 외까풀 눈이 유달리 맑기는 했다. 인중이 약간 짧아 웃을 때면 입술이 유아적인 동그란 모양으로 벌어졌고, 그 안으로 오종종한 옥니가 보였다. 애써서 찾아보려 해도 남다르게 예쁜 구석이라고는 없는, 누군가 후천적인 매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식의 질문을 던진다면 그때서야 어렴풋하게 떠오를 법한 얼굴이었다. 그러니 그녀를 사랑하는 남자도 아닌 내가 이따금씩 그녀를 아름답다고 느꼈던 것은 의아스러운 일이다." (p.81)
각 인물의 복잡한 심리에 비해 소설의 얼개는 비교적 단순하다. 작은 제약회사에서 근무하던 의선이 알몸으로 거리를 내달리는 황당한 사건으로 인해 실종되자 인영과 명윤이 의선을 찾아 그녀의 고향인 황곡으로 향한다. 같은 건물에 위치한 잡지사에서 근무하는 인영은 의선이 살던 반지하방의 침수로 오갈 데 없어진 그녀를 자신의 집으로 이끌었고 진심을 다해 의선을 돌봐준 인물이다. 인영의 후배이기도 한 명윤은 의선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등장한다. 한편 의선의 고향인 황곡에서 만난 장종욱은 탄광 사진작가로서 의선과 관련된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그러나 이들 모두의 공통점은 고통 속에서 성장했던, 혹은 고통과 함께 현실을 살고 있는, 그럼에도 어둠을 박차고 밝은 햇빛을 향해 나아가려고 하는 상상 속의 동물 '검은 사슴'과 닮아 있다는 점이었다.
"한 사람의 정신이 폭발했을 때 그 사건은 얼마만한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것일까. 더이상 의선은 병원에서 진정제를 맞을 필요가 없었다. 내장에 든 것을 모두 토한 뒤의 마르고 쓸쓸한 얼굴로 웃지도 않았다. 극도로 말을 아끼다가도 매우 이따금, 마치 오랫동안 글로 써서 다듬은 문장 같은 말들을 천천히 독백하던, 나이에 비하여 성숙해 보였던 스물다섯 살의 여자애는 더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p.201)
한때는 번성했지만 이제는 사라져가는 탄광촌 황곡에서 의선을 찾아 헤매는 인영과 명윤의 과거가 허물을 벗듯 하나씩 드러난다. 어쩌면 의선은 인영과 명윤이 겪고 있는 어둠의 트라우마를 벗겨줄 작은 희망, 밝은 침묵이었는지도 모른다. 어둠에서 태어나 어둠을 벗어나고자 발버둥쳤던 의선이 제풀에 지쳐 쓰러져 다시 어둠 속으로 도피하는 것을 방관한다면 잠시나마 의선과 연이 닿았던 인영과 명윤 역시 어둠의 나락으로 떨어질 것 같은 불안감이 되돌리려던 그들의 발길을 끝내 황곡에 묶어두었던 것이다.
"사람들이 흑백사진에 친밀감을 갖는 것은 밤 때문인지도 모른다고 나는 생각했다. 또한 누구나 태중의 어둠 속에서 태어났으므로, 그 열 달 동안의 어둠에 대한 기억을 몸 어딘가에 저장해두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거기서 몸부림치며 빛 속으로 뛰쳐나오려 했던 마지막 순간의 기억 역시 그 안에 숨겨져 있을 것이다." (p.320)
잔뜩 흐렸던 하늘에는 조금씩 빛이 되살아나고 있다. 다행이었다. 인간의 연약함과 깊은 어둠을 탐색하는 이와 같은 소설을 읽은 날에는 빛이 들지 않는 캄캄한 어둠 속으로 끝없이 추락하는 느낌이 들곤 한다. 벗겨진 구름 사이로 언뜻언뜻 햇살이 비친다. 헤어날 수 없을 것 같은 좌절과 고통 속에서도 아주 이따금 희망의 웃음을 볼 수 있는 것은 어쩌면 어둠에서 태어나 어둠에 익숙한 사람들의 강인한 연대 때문일지도 모른다고 나는 생각한다. 혼자가 아니라는 믿음, 내가 쓰러지면 다른 누군가가 즉시 나를 일으켜줄 것이라는 희망의 메시지가 고통 속에서도 우리를 살게 하는지도 모른다. 구름 사이로 드러나는 저 햇살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