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극단적인 정의일 수도 있겠지만 장서가로도 유명한 이동진 평론가는 자기계발서를 읽는 것 자체를 일컬어 '돈을 내고 꼰대의 얘기를 듣는 것'이라고 말했다. 나 역시 일부 동의하는 바이다. 물론 전적으로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우리나라 젊은 직장인(혹은 취업 준비생)들이 읽는 책의 80~90%는 자기계발서라는 사실을 부인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젊은이들(물론 개중에는 나이 든 사람들도 더러 있겠지만)은 왜 그렇게 자기계발서를 좋아할까? 우리나라의 젊은이들이 자기계발서뿐만 아니라 다른 장르의 책도 무척이나 좋아한다는 사실을 지금에서야 비로소 알게 된 것일까? 나는 이도 저도 아니라고 본다.


내 주변에도 갓 입사했거나 입사한 지 채 5년이 되지 않는 젊은 직장인들이 여럿 있다. 다독가는 아니지만 다른 이가 읽는 책에는 관심이 많은, '독서 관음증' 환자랄 수도 있는 나는 그들이 읽는 책을 볼 때마다 그들의 독서를 방해하지 않는 선에서 책의 제목이나 저자를 알고 싶어 한다. 내가 읽을 것도 아니면서 굳이. 그렇게 입수한 책에 대한 정보에 의하면 십중팔구 최근 유행하는 자기계발서가 대부분이다. 그렇다. 자기계발서에도 유행이 있어서 유행에 뒤떨어진 책은 베스트셀러 목록에 오르지도 못할 뿐 아니라 추천 도서 목록에도 오르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한때 없어서 못 팔 정도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시크릿>과 같은 도서도 지금은 전국의 어떤 헌책방에서도 구매를 꺼리는 천덕꾸러기 신세로 전락하지 않았던가.


대한민국의 젊은 직장인들이 자기계발서에 열을 올리는 까닭은 목적 지향성 독서를 하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일반적이다. 말하자면 월급보다 많은 돈을 벌기 위해서, 어느 정도 나이가 들면 남들 앞에서 절대 꿇리지 않는, 간지 쩌는 삶을 살아보고 싶어서 그렇게 시도 때도 없이 자기계발서를 읽어댄다는 것이다. 결국은 간 때문이야가 아니라 결국은 돈 때문에 피곤에 지친 눈을 비벼가며 책을 읽는다는 것인데 올바른 지적이긴 하다. 그러나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거기엔 '조급함'이라는 슬픈 허방이 존재한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내가 조급함을 '슬픈 허방'이라고 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전에도 한 번 비슷한 얘기를 쓴 적이 있지만 사실 대한민국의 현실은 보이지 않는 계급이 더욱 단단하게 고착화되었거나 그렇게 진행되는 과정 중에 있다. '개천에서 용 난다'는 속담은 이제 전혀 통하지 않는 세상이 된 것이다. 그 사실은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고, 부정하지 않는다. 소위 '수저 계급론'은 그러한 비극적인 현실을 코믹하게 표현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내가 허방 앞에 슬픈 이라는 관형사를 둔 이유는 바로 그와 같은 현실 때문이다. 사회 시스템이 바뀌지 않는 한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결코 극복할 수 없는 장벽이 존재한다는 현실.


내가 생각하는 자기계발서는 자신이 처한 처참한 현실을 위로받거나 부정하는 데는 그럭저럭 쓸모가 있을지도 모른다. 말하자면 아무것도 안 하고 있다는 무력감보다는 이것이라도 하고 있으니 앞으로 조금 나아질 수 있을 거야 하는 희망이 언제든 나를 위로하는 것이다. 그러나 달라지는 건 크게 없다. 자기계발서를 읽는 데는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존재한다. 한 사람이 평생 동안 깨달은 바를 한 권의 책에 요약본으로 실었을 때 어떤 천재가 그것을 저자처럼 이해하고 실행할 수 있을 것인가. 말도 되지 않는다. 소설처럼 그렇게 두꺼운 책에 단 하나의 깨달음을 자세한 예시와 함께 실어도 이해하기 어려운 우리들이 아무런 삶의 예시도 없이 수없이 많은 깨달음을 한 줄 경구처럼 요약식으로 전달해도 다 이해할 수 있다고? 애초부터 말도 되지 않는 일이다.


젊은 직장인 대부분이 그와 같은 자기계발서를 읽고 미친 듯이 뛰어드는 게 주식과 코인 투자이다. 사람들은 그것을 일컬어 도전이라고 말한다. 그것은 도전이 아니다. 도전이란 우리가 받아들일 수 있는 어느 정도의 가능성이 있을 때 쓰는 말이다. 그러나 주식이나 코인 투자에서 꾸준한 수익을 낸다는 건 하늘의 별을 따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다. 반면에 금수저로 태어난 이들은 머리를 싸매가면서 그런 골치 아픈 일에 매달리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상속을 받은 재산에서 월급 이외의 꾸준한 부수입이 유입된다. 말하자면 대부분의 젊은이들이 투자를 통한 손실을 보는 동안 그들은 오히려 원금이 꾸준히 불어나거나 적어도 투자를 통한 손실은 보지 않는 것이다. 이런 까닭에 격차를 줄여보겠다고 노력했던(잠을 줄여가면서 자기계발서를 읽었던) 부류와 상속을 받고 별 노력도 하지 않은 부류의 격차는 점점 더 크게 벌어지고 마는 것이다. 나는 무리한 투자를 하는 젊은 직장인들에게 원금을 잃지 않는 게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말을 기회가 있을 때마다 수시로 하곤 한다. 꼰대의 이야기로 들리지나 않을까 늘 걱정하면서 말이다. 자기계발서를 읽느라, 주식이나 코인 투자를 하느라 삶을 허비하느니 차라리 베짱이처럼 삶을 즐기는 게 낫다. 그것이 오히려 격차를 줄이는 방법이 될 수도 있다. 웃기는 말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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