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복도 지나 처서가 가까운데 날씨는 여전히 한여름처럼 무덥습니다. 이 편지를 읽는 당신도 역시 번잡했던 여름휴가의 혼란에서 벗어나기 위해 여러 방안을 고민 중에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한 해의 중간은 언제나 이렇게 넘긴 힘든 고개를 넘어가듯 힘겹기만 합니다. 그에 비하면 소한 대한으로 이어지는 요즘의 겨울 추위를 견디는 일은 얼마나 수월한지요. 과거 혹한의 겨울 추위가 길게 이어지던 기억 속의 겨울에 비하면 말입니다.
이 편지를 읽고 있을 당신 또한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견디기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을 줄 압니다. 대한민국의 국민 대다수가 그럴 테지요. 불과 1년 전만 하더라도 '대통령 한 명 잘못 뽑는다고 무슨 큰일이야 나겠어?'라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국민들 대부분이 자신의 실수가 얼마나 크나큰 결과로 이어지고 있는지 자신의 눈으로 똑똑히 확인하는 데에는 그닥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경제는 끝없이 추락하고, 민주주의의 근간인 언론은 붕괴되었으며, 국민을 돌봐야 할 정부 시스템은 작동하지 않고 있습니다. 전 세계가 부러워하던 대한민국의 공무원 제도는 이제 아이들의 놀이터인 세계 잼버리 대회 하나 치러내지 못할 수준의 보잘것없는 것으로 추락하고 말았습니다.
자국의 국방 안보를 오직 강대국의 힘으로 대체하고자 하는 대통령의 노력은 오히려 안쓰럽기만 합니다. 우크라이나의 사례에서 보는 것처럼 힘이 약한 국가는 주변의 힘이 센 국가의 먹잇감으로 전락할 뿐 타국의 안보를 마치 제 일인 양 앞장서서 돌봐주는 국가는 없습니다. 한국전쟁 당시 일본의 총리였던 요시다 시게루는 재일 한국인을 뱃속 벌레로 취급하면서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이를 신이 내려주신 축복이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이와 같은 역사적 맥락에도 대한민국의 대통령이라는 자는 일제 식민지 치하에서 고통을 겪었던 강제노동 피해자의 배상금에 대해 돈만 받으면 됐지 그게 전범기업의 돈이든 한국 기업의 돈이든 무슨 상관이냐며 자국민을 우롱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일천한 역사 인식은 급기야 어처구니없는 광복절 경축사로 이어지고 말았습니다. 독립운동을 건국운동으로 폄훼하는가 하면 광복절 경축사에는 어울리지도 않는 분단의 현실을 말하면서 민주주의 운동가, 인권 운동가, 진보주의 행동가를 공산전체주의 세력으로 몰아붙였습니다. 어떤 학술적 용어에도 없는 '공산전체주의'라는 단어를 언급한 것은 그의 지적 한계이자 무식의 발로였습니다. 그의 논리대로 하자면 군에 입대하는 모든 입영 대상자들에 대해 입대 전 먼저 사상검증을 하고 인권운동이나 진보주의 운동을 한 전력이 있는 젊은이는 모두 현역 대상에서 제외해야 마땅합니다. 그러나 현실은 이와 정 반대로 진행되어 왔습니다. 진보주의 운동을 한 젊은이는 1순위 징집대상이 되었고, 소위 반공을 주창하던 자들은 부동시네, 담마진이네 하면서 입대에서 제외되었던 것입니다.
1년 전의 과거를 되짚어 보면 우리는 너무나 안일한 현실 인식을 하고 있었던 듯합니다. 물론 인간은 개인의 의지보다는 주변 환경에 지배되는 까닭에 자신의 삶을 살아간다기보다 등 떠밀려 살아지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비근한 예로 우리는 아침에 출근하기 위해 자신의 의지로 잠에서 깨는 듯하지만 날를 둘러싼 여러 조건들, 이를테면 내가 직장을 그만두면 어찌 될까? 생활비는? 우리 가족은? 등과 같은 여러 조건들에 의해 종국에는 등 떠밀려 출근을 하게 됩니다. 이처럼 순수한 개인 의지인 듯 보이는 많은 것들이 보이지 않는 이면에는 주변의 환경에 의해 우리의 의지에 반하는 다른 행동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주변의 환경과 자신의 위치를 세밀히 살피지 못하면 생각지도 못한 엉뚱한 결과에 맞닥뜨릴 확률이 높아집니다. 작금의 대한민국이 겪는 현실처럼 말이지요.
네로 황제의 스승이기도 했던 세네카는 이런 말을 남겼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판단하는 것보다 다른 사람의 말을 믿고 싶어 한다."고 말이지요. 결국 개인의 의지에 따라 행동하지 않는 자는 타인의 생각에 지배되는 모르모트로 전락하고 마는 것이지요. 대통령이라고 해서 다르지 않습니다. 독서를 하지 않는 대통령이 자신의 생각을 키울 만한 명상의 시간을 가질 여유를 확보할 리 없으며, 그런 지도자가 바른 역사관과 바른 현실 인식, 바른 생각과 바른 판단, 그리고 바른 명령과 지시 또는 바른 행동을 할 리 없습니다. 당연하게도 말입니다.
이 편지를 읽는 당신에게 먼저 심심한 위로의 말을 전하고 나의 이야기를 시작하려 했던 것이 편지의 말미에 이르러 겨우 생각났습니다.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매우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을 당신에게 진심으로 위로의 말을 전합니다. 당신 역시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무능한 대통령 밑에서 어찌할 수 없는 치욕의 날들을 감내하고 있는 까닭입니다. 더욱 불행한 것은 우리가 지나온 시간보다 더 많은 임기가 그에게 남아 있다는 사실입니다. 부디 건투하시길, 그리고 무엇보다도 옥체를 보중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