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완연한 봄, 나는 왜 짜증만 느는가?


내 기억에 봄은 언제나 바람과 함께 오고 더위와 함께 흩어지곤 했습니다. 오늘처럼 하늘이 맑고 창밖으로는 바람이 윙윙 소리를 내며 스쳐가는 날이면 '아, 벌써 봄이 왔구나!' 내심 놀라며 감탄하게 됩니다. 어쩌다 바람이 없는 날이면 탁한 미세먼지가 며칠씩 이어지고, 그러다 오늘처럼 바람이 불어 공기질이 반짝 좋아지는 날이 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바람과 미세먼지의 끝없는 반복을 몇 차례 겪고 나면 미처 대비하지 못한 더위가 화염방사기의 불꽃처럼 뿜어져 나오는 것입니다. 개나리와 진달래가 피고, 황량하기만 하던 숲이 연녹색 생명의 색깔로 물들기 시작하는, 꿈처럼 아름다운 풍경은 이제 어느 오래된 시인의 시집에서나 찾아볼 수 있을 듯합니다. 그것은 마치 공룡이 출몰하던 중생대 백악기의 기록처럼 사람들 기억의 지층 속에서 단단한 화석으로 굳어가고 있는 듯 느껴집니다.


대한민국의 리더 멧돼지가 된 지도 벌써 만 1년이 가까워오고 있습니다. 1년에 한 번, 11월에서 1월 사이에 짝짓기를 하는 멧돼지의 생태상, 시기적으로 보면 우리 멧돼지에게 겨울은 가장 원기가 왕성한 계절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럼에도 나는 다른 어느 때보다 기운이 없었습니다. 오죽하면 이를 보다 못한 아내 멧돼지는 내가 취임한 후 9개월간의 주요 성과 10가지를 정리한 20초짜리 영상을 2월 한 달간 전국 146개 옥외 전광판에 송출하도록 지시를 내렸겠습니까. 순전히 나의 축 처진 어깨에 힘을 불어넣어주기 위한 목적으로 말입니다. 부동산 규제 지역 해제나 사상 최대 수출액 달성으로 세계 수출 순위 6위를 달성했다는 등의 내용은 사실 성과라기보다 감춰야 할 오점에 불과하지만 아내 멧돼지는 이를 포장하여 사기에 가까운 말로 뭉뚱그렸던 것입니다. 사실 부동산 침체와 사상 최대의 무역 적자를 성과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으니까 말입니다. 그게 다 나의 지지율 감소로 인한 급격한 원기 하락이 원인이었습니다. 그 외의 성과도 나의 치적이라고 말하기는 어렵고 전임 리더 멧돼지의 성과라고 하는 게 옳겠습니다.


상대편 무리의 대장을 내 뒷골목 똘마니들을 시켜 잡아들이라고 했던 게 아무래도 조금 무리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주말의 거리에는 온통 나에 대한 욕설과 조롱으로 넘쳐나고 있으니 말입니다. 그런 걸 보면 나의 결정이 옳았다고 생각하는 멧돼지보다 그르다고 생각하는 멧돼지들이 훨씬 많은 게 아닐까 싶은 것입니다. 게다가 결혼 전에 있었던 아내 멧돼지의 주가 조작 증거들이 속속 드러남으로써 나는 요즘 밤잠을 설칠 지경입니다. 차라리 아내 멧돼지를 감옥에 보내고 새장가를 드는 게 어떨까 하는 못된 생각도 하고 말입니다. 그동안 물심양면으로 나를 도와준 아내 멧돼지의 노력이나 희생은 내가 모르는 바 아니지만 아내 멧돼지와 장모 멧돼지 역시 나의 권력을 이용하여 사적 이익을 추구하는 데 열을 올렸던 것 또한 사실인 까닭에 나는 그들에게 조금의 미안함도 갖고 있지 않습니다. 이렇게 생각하는 나를 많은 일반 멧돼지들이 사정도 모르는 채 욕을 할 게 너무도 뻔하지만 말입니다. 그러나 자식도 없는 내가 다른 젊은 암컷 멧돼지와 살아보고픈 마음을 굳이 숨겨야 하나? 하는 의문이 드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어차피 한 번뿐인 돈생인데 말입니다.


발정기가 지나서인지 아니면 환절기에 따른 일시적 현상인지 똘마니 멧돼지들에 대한 짜증이 늘었습니다. 자살 예방을 위한 대책이라며 내놓은 게 번개탄 생산 금지를 거론하지 않나, 매년 남아도는 쌀 생산량을 세금으로 수매하는 기존 제도의 불합리성을 제거하기 위해 저생산의 품종을 선택하도록 하겠다는 둥 한심하기 짝이 없는 대책만 나열하고 있는 것도 나의 짜증을 유발하는 한 원인이 되고 있지만 일본의 기시감 멧돼지 역시 얄밉게 굴고 있는 게 사실입니다. 뭐 하나 내 뜻대로 풀려나가는 게 없는 듯합니다. 게다가 북한의 여정 멧돼지가 깐죽대는 것도 참아내기 힘듭니다.


완연한 봄인 듯합니다. 창밖으론 바람이 윙윙 소리를 내며 치달리고 괜스레 부아가 치밀어 짜증만 한가득입니다.


*경고 : 이 글은 단지 허구에 의한 소설일 뿐 특정 사실이 아님을 엄중 고지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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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23-02-20 17: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만간 <대한뉘우스>의 부활을 보게 될지도 모릅니다.

꼼쥐 2023-02-24 16:03   좋아요 0 | URL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요즘 언론들의 작태를 보면 말이죠.

라로 2023-02-21 1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직 1년도 안 되었군요! ㅠㅠ

꼼쥐 2023-02-24 16:05   좋아요 0 | URL
시간이 너무 천천히 가는 것 같아요. ㅠㅠ
총선에서 본때를 보여줘야 할 텐데 말이죠.

singri 2023-02-21 15: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미가요도 틀어주고 조만간 이완용 나올지도요

꼼쥐 2023-02-24 16:06   좋아요 0 | URL
일왕 생일에 외교부 2차관이 참석한 자리에서 기미가요도 틀고 다케시마의 날에 맞춰 일본 자위대와 함께 독도에서 훈련도 하고...

2023-02-21 20: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2-24 16:09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