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 보면 '참 다행이야!'라고 생각되는 몇몇 순간들을 우연처럼 만나게 된다. 삶에서 그런 우연마저 없다면 인생은 참으로 감당하기 벅찬 어떤 것으로 인식될지도 모른다. 가뭄의 단비처럼, 삶을 풍요롭게 하는 깜짝 선물처럼 우리를 미소 짓게 하는 그런 우연들은 예고도 없이 찾아오곤 한다. 기대하지 않았던 어떤 순간에 조금쯤 힘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하느님의 응원이 우리에게 배달된 것처럼...

 

어제는 잔여백신 예약을 통해 코로나19 백신 1차 접종을 했다. 약간의 긴장과 두려움을 안고 방문했던 병원. 접종은 빠르게 진행되었고, 나는 이렇다 할 느낌도 없이 얼떨떨한 기분으로 병원을 나왔다. 미리 준비해둔 타이레놀 한 알을 먹었고, 나른해진 기분으로 침대에 누워 비발디의 사계를 들었다. 왠지 모르게 머릿속이 텅 빈 느낌도 들고, 깊은 동굴에서 울려 퍼지는 낮은 음의 메아리가 내 머릿속에서 들려오는 듯도 했다. 한두 시간 까무룩 잠이 들었었나 보다. 특별하지 않은 저녁을 먹었고, 몸에는 별 이상이 느껴지지 않았다. 김연수의 소설 <일곱 해의 마지막>을 읽었지만 접종 후에 들었던 멍한 느낌 탓인지 좀체 집중이 되지 않았다.

 

선거도 치르기 전에 대통령은 이미 떼어 놓은 당상인 것처럼 거만하게 굴던 윤 전 검찰총장의 기세가 크게 꺾인 듯하다. 빈 수레가 요란하다는 말을 실감하게 되는 요즘, 그의 지지율은 한낱 허세에 불과했을지도 모른다. "후쿠시마 원전이 폭발한 게 아니다. 지진하고 해일이 있어서 피해가 컸지만 원전 자체가 붕괴된 것은 아니다. 그러니까 방사능 유출은 기본적으로 안됐다"라고 말했던 바와 같이 일본 극우적 사고방식이 그의 정체성일지도 모르지만, 근본적으로 대통령으로서의 재목은 아니었던 게 분명하다. 그나마 선거가 한참 남은 지금 시점에서 밝혀진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겠다.

 

최 전 감사원장의 태도는 더욱 가관이다. 내가 어렸을 적만 하더라도 학교에서는 '국민교육헌장'을 외우게 하고, 매주 월요일 아침의 전체 조회 시간에는 애국가를 4절까지 불렀으며, 국기 게양식이나 하강식을 알리는 애국가가 울려 퍼지면 하던 일을 멈추고 부동자세로 서서 국기를 향해 경례를 해야만 했었다. 그들이 말하는 자유는 자신들이 만든 시스템 내에서의 자유인 동시에 그들이 말하는 공정은 자신들이 출제한 시험 문제를 얼마나 잘 맞히는가에 대한 잣대인 셈이다. 한마디로 말해 우리가 국가 시스템이나 시험 문제는 잘 만들 테니 너희들은 관심 끊고 하던 일이나 해라, 하는 게 그들의 생각인 것이다. 그것이 곧 자유요, 공정이다. 그들의 권위에 도전하지 않는 것. 최 전 감사원장의 며느리들이 애국가를 4절까지 부르면서도 누구 한 사람 부당하다고 말하지 않는 게 공정이자 자유인 셈이다.

 

어떤 결과가 도출되기 전에 실체를 알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막상 일이 진행된 후에 돌이키기란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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