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는 끝났지만 선거 결과에 대한 분석 및 뒷얘기로 가는 곳마다 비슷한 이야기를 듣게 된다. 코로나 정국에서 치러진 유례가 없는 선거였던 탓인지 후보자 개개인에 대한 관심은 전혀 없고 당과 이념에 대한 이야기만 난무하는 무미건조한 대화이기도 했다. 대화 중간에 간간이 막말 인사로 지목되어 언론에 자주 오르내리던 몇몇 의원들의 낙선과 여전한 지역 쏠림 현상에 대한 이야기가 안주처럼 등장하기도 했으나 그보다는 작금의 결과에 놀라워하면서도 선거가 치러지기 훨씬 전부터 이런 결과를 예측했었다는 믿거나 말거나 식의 이야기가 주를 이뤘다. 그 어느 때보다 후보자 개인의 정보에 대해 무관심했던 깜깜이 선거로 치러지다 보니 선거가 끝난 후에도 지역 후보자에 대한 언급은 더 이상 없었고, 그럴 만하다고 다들 느끼는 분위기였다.

 

같은 결과이지만 더불어 민주당의 압승 원인을 분석하기보다는 경상도를 중심으로 하는 일개 군소정당으로 전락한 미래 통합당의 참패 원인에 대한 분석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대개는 텔레비전에서 보았던 시사평론가들의 분석을 종합하여 전달하는 수준에 그쳤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내가 옳다, 아니다 내가 옳다 하면서 이러쿵저러쿵 의견이 분분했다. 곁에서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그들은 이미 선거 전문가의 포스를 풍기고 있었다.

 

나라고 해서 미통당의 참패 원인에 대해 궁금하지 않았던 건 아니다. 그렇다고 선거 전문가들의 의견을 신뢰하지도, 그들의 분석에 대해 전적으로 공감하는 것도 아니었다. 오랜 시간을 두고 생각해 본 건 아니지만 미통당 지도부나 후보들이 세계사의 흐름이나 변화를 미처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음은 물론 그것에 대해 완전히 귀를 막고 있었다는 게 내가 내린 나름대로의 결론이었다.

 

예컨대 이런 것이다. 민주주의가 보편화된 작금의 세계에서 빨갱이 운운하는 반공 이데올로기는 이미 구시대의 유물로 변한 지 오래되었고, 그와 같은 변화는 이제 남북 대치 상황인 우리나라에서도 크게 주목을 받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게다가 개인주의와 자유주의에 기반한 서구 민주주의가 코로나와 같은 위기 상황에서는 전혀 유용한 제도가 될 수 없음을 실제적으로 입증했다는 사실이다. 럭비공처럼 어디로 튈지 모르는 천둥벌거숭이와 같은 개개인을 국가가 통제하고 올바른 길로 인도하기에는 서구 민주주의 제도가 한계를 드러냈다는 점이다. 뿐만 아니라 일당 독재에 가까운, 일본과 같은 전체주의적 민주주의 제도 역시 정치인들의 과오를 숨기기에만 급급할 뿐 위기를 적절히 관리하고 해결하는 데는 적합하지 않은 것으로 판명되고 있다. 그렇다면 중국이나 러시아와 같은, 시장경제를 바탕으로 한 공산 체제가 바람직한가? 꼭 그렇지만은 않은 듯하다. 위기 시 일사불란하고 빠른 대처는 주목할 만하지만 정보를 낱낱이 공개함으로써 정부의 잘잘못을 국민들로부터 듣고 시정하려는 노력은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여전히 부족하다.

 

전 세계가 우리나라의 코로나 대응 방식과 관리를 앞다투어 보도하고 칭찬하는 데는 두 가지가 전제되는 듯하다. 정보의 투명성과 정부의 적극적인 노력이 그것이다. 그러나 내 생각은 조금 다른 측면이 있다. 국가 제도를 운용하는 현 정부도 열심히 잘하고는 있으나 그 저변에는 국민들의 성숙한 시민의식이 한몫하고 있다는 점이다. 말하자면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는 평상시에는 개인의 자유와 인권이 존중되지만 국가적 위기 시에는 공동체적 민주주의 또는 자기희생적 민주주의-또는 호혜평등적 민주주의-로 전환된다는 점이다. 이는 나로 인해 타인이 피해를 입을 수도 있음을 자각하고, 이를 미연에 방지하고자 스스로 희생하고 배려함을 의미한다.

 

결국 세계사의 관점에서 코로나19에 대한 각국의 대응을 보면서 세계인은 과연 어떤 제도, 어떤 이념이 자신들에게 가장 적합한가를 묻게 되었다는 것이다. 좌와 우로 구분되던 서구적 이데올로기의 시대는 이미 막을 내렸고, 대한민국과 같은 공동체적 민주주의를 지지하느냐 아니면 일본과 같은 전체주의적 민주주의를 지지하느냐, 아니면 중국과 같은 독재적 이념이나 제도를 지지하느냐의 문제로 진화했다는 점이다. 미통당의 지도부와 구성원들은 오래전에 막을 내린 좌와 우의 구분, 개인의 욕망을 부추기고 자유주의만 강조하는 케케묵은 이념체계에서 단 한 발도 벗어나지 못했던 게 최대의 패착이었던 셈이다. 그 결과 경상도와 서울의 강남을 지역기반으로 하는 군소정당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눈을 크게 뜨고 바라봐야 한다. 세계의 이념지도는 이제 대한민국을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다는 사실을 미통당의 지도부도 인정해야만 하는 시점이다. 그렇지 않으면 다음 선거도 자신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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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d 2020-04-18 08: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정말 탁견입니다. 어렴풋하게 인식의 언저리에 떠돌던 국내 정치 상황 · 기류 · 지형의 실체를 정말 명료하고도 핵심적으로 정리해주셨네요. 비로소 독자의 하나인 저한테도 뚜렷한 윤곽이 잡힌 듯한 느낌입니다. 특히 ① 세계사의 흐름/변화에 대한 미통당 지도부와 후보들의 인식 부재가 미통당의 참패를 불러왔다는 점, ② 개인주의와 자유주의 기반한 서구 민주주의가 코로나19 바이러스 감염병과 같은 전방위적 위기 상황에서는 결정적 한계를 노출한다는 점, ③ 우리나라 정부의 정보 투명성 유지와 (국민 생명을 지키기 위한) 적극적 노력(이 울나라가 코로나19 바이러스 감염병과의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다는 점), ④ 우리나라 민주주의를 공동체적 민주주의 또는 자기희생적 민주주의 또는 호혜평등적 민주주의로 파악하신 점, ⑤ 일본의 정치 체제를 전체주의적 민주주의로 파악하신 점, 등등은 정말 날카로운 통찰이고 핵심적 요점을 정확하게 검출해낸 혜안이라고 봅니다. 저를 비롯해 많은 독자들이 비슷비슷한 생각을 어렴풋하게 단지 느끼고만 있을 터인데요. 꼼쥐 선생님의 명쾌한 파악/정리와 핵심적 요점 제시 덕분에 명철한 인식의 단계로까지 나아갈 수 있었다고/있겠다고 생각되네요. 정말 탁월한 혜안에 감탄하며 선명하고도 구체적인 인식을 전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

꼼쥐 2020-04-19 19:10   좋아요 0 | URL
제가 오히려 감사를 드려야 할 듯합니다. 중구난방으로 쓴 제 글을 이렇게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주셔서 저 또한 감탄하게 됩니다.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