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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할수록 밝아지는 것들 - 혜민 스님과 함께 지혜와 평온으로 가는 길
혜민 지음 / 수오서재 / 2018년 12월
평점 :
누구에게나 자신의 과거는 판타지이고, 미래는 도박이라는 생각을 종종 하게 된다. 물론 나의 생각이 전적으로 옳은 것은 아닐 테지만 말이다. 그러나 자신의 기억을 들추어보면 어느 것 하나 아름답지 않은 것이 없으며,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편집되거나 왜곡된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 그러므로 개인의 과거는 대개가 판타지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미래는 어떤가. 아무리 용한 점쟁이도 한 치 앞의 미래도 알 수 없는 게 현실, 말하자면 우리는 캄캄한 어둠 속에서 다트 던지기를 하고 있는 셈이다. 운이 좋으면 자신의 다트가 높은 점수에 맞을 수도 있고, 운이 나쁘면 과녁 밖으로 벗어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타인의 삶을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는 우리는 현실의 칼날 위에서 아슬아슬한 외줄타기를 하고 있는 누군가를 불안한 시선으로 바라보게 된다.
새해가 되면 나도 모르게 마음을 가라앉히는 에세이나 명상 관련 서적 등 평소에는 잘 읽지 않던 책에 손이 가곤 한다. 새해가 되면 아무래도 들뜨고 거창한 욕심에 사로잡히게 마련, 이와 같은 책을 읽는다는 건 불안감을 잠재우기 위한 일종의 자구책일지도 모른다. 혜민 스님이 쓴 <고요할수록 밝아지는 것들>을 읽었던 것도 그런 맥락의 연장선이었다.
"지금부터라도 목표를 성취한 후에야 비로소 마음의 여유가 생겨 쉴 수 있을 것 같다는 그 생각을 내려놓자. 명상을 하듯 좀 더 현재에 집중하고 지금에 감사하면, 마음이 한결 덜 바쁘고 해야 하는 일의 과정도 즐기면서 할 수 있다. 행복하려면 먼 미래가 아니고 지금 여기서 행복해야 한다는 말이 있다. 구하는 마음이 쉴 때 생각보다 행복은 멀리 있지 않고 가까이에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p.144)
총 6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1장 '나에게 집중하는 시간', 2장 '가족이라 부르는 선물', 3장 '삶을 감상하는 법', 4장 '우정의 여러 가지 면', 5장 '외로움에 관한 생각', 6장 '마음을 닦는다는 것' 등의 소제목으로 이루어져 있는 바, 장을 이루는 각각의 제목만 보더라도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대략적으로 짐작할 수 있을 듯하다. 책의 서문에서도 밝혔듯이 결국 스님은 책을 읽는 모든 독자가 '우리 안에 있는 고요함과 만나시기를 바라는 마음'인 것이다. 누구에게나 가장 가까우면서도 먼 존재는 자기 자신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고요함을 통해 '나'와 만나고 진정한 '나'를 발견한다는 건 새로운 삶을 개척하는 것과 같다. 그러나 '나'를 제외한 세상의 모든 사물은 '나'의 눈을 통해 확인할 수 있지만 '나'란 존재는 오직 생각과 관념만으로 파악할 수 있는 까닭에 진정한 '나'를 발견한다는 건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가 살면서 자신이 불행하다고 느끼는 것은 어쩌면 내 문제점만을 지나치게 반복적으로 크게 생각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부정적인 생각을 하면 할수록 그 프레임 안으로 나를 더 견고하게 가두고 밖으로 나올 수 없게 만든다. 이런 땐 자기 생각에 빠져 있는 것보다 남에게 아주 작은 친절을 베풀어보는 것이 큰 도움이 된다. 내가 쓸모없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나의 작은 도움으로 상대가 잘되는 모습을 보면 내 자존감도 올라가고 세상과의 연결감도 증가하게 된다." (p.169)
관찰이 아닌 생각과 관념만으로 '나'를 객관적으로 이해한다는 건 어쩌면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 모두는 자신의 생각과 관념의 틀로 세상을 바라보고 이해한다. 그럼에도 내가 틀렸다는 생각은 잘 하지 않는다. 나의 시선이 비뚤어져 있거나 세상 사람들의 그것과 상당한 차이가 있다면 궁극적으로 '나'란 존재는 세상으로부터 소외될 수밖에 없다. 너무도 당연한 이치이다. 그러나 모든 잘잘못은 나의 외부에서만 찾을 뿐 나의 내면을 들여다보려고는 하지 않는다.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 마음을 어지럽히고 세상과 분리감을 만드는 주된 요인이 바로 생각입니다. 마음속에 올라온 생각에 집착하면서 그 속에 빠져 있으면 그 생각의 노예가 됩니다. 숨이 깊고 편안해질수록, 내 주위가 숨에 집중할수록 생각이 줄어들게 됩니다." (p.257)
수십 년을 겪어온 일이지만 번잡하고 시끄러운 것을 싫어하는 나로서는 연말 연초의 떠들썩한 분위기가 여전히 익숙하지 않다. 그럴 때면 나는 숲을 거니는 아침 산책 시간이 길어지곤 한다. 하루를 시작하는 청설모의 바쁜 움직임, 이따금 들리는 새소리, 산을 거슬러 올라오는 바람소리, 그리고 마음결을 따라 흐르는 여러 갈래 감정의 실타래... 이 모든 게 나를 통해 한꺼번에 발현된다는 게 때론 놀랍다. 해가 조금씩 길어지는 요즘, 산책을 마치고 돌아올 즈음이면 뿌옇게 여명이 밝아온다. 고요 속에서 또 하루가 시작되는 것이다. 늘 그런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