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전국의 시골이란 시골을 다 돌다 보면 정말 보기 힘든 게 어린아이인 듯합니다. 사실 어린아이는 고사하고 젊은 사람도 보기 힘든 게 현실이지요. 마을에서 젊은이 축에 끼이는 사람이 대개 50, 어느 마을에서는 70대가 젊은이로 불리기도 합니다. 그보다 더 무서운 건 할아버지보다 할머니 혼자 사시는 집이 열에 일곱 여덟은 된다는 사실입니다. 언제 어느 때 어떤 변고가 일어날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는 현실이지요.

 

얼마 전 내가 들렀던 어느 집에서는 할아버지 한 분이 툇마루에 앉아 햇볕을 쪼이고 있었습니다. "추운데 왜 나와 계세요?" 하고 내가 여쭙자, "햇살이 좋아서." 하는 답변이 돌아왔죠. 군데군데 검버섯이 핀 얼굴, 쪼글쪼글한 주름살, 거동이 불편해 보이는 듯한 움직임 등 한눈에 봐도 적지 않은 연세임을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커피 한 잔 타 줄까?" 하시기에 ", 주세요." 하며 웃었더니 방으로 들어가셨던 할아버지는 한참이 지나서야 나오셨습니다. 뜨거울까 봐 종이컵 두 개를 겹쳐서 가져오셨기에 밖의 컵을 빼서 드리려 하자 뜨겁다며 그냥 마시라고 손사래를 치셨습니다. 그런데 더 이상한 건 커피의 양이었습니다. 종이컵에 가득 차 넘칠 듯 찰랑거렸습니다. "양이 많지? 날이 차서 금방 식을까 봐 커피 믹스 두 개를 탔어. 다 못 마시겠으면 적당히 마시고 버려." 하시는 게 아니겠습니까. 따뜻한 마음씨에 왈칵 눈물이 솟을 뻔했습니다. 물론 나는 할아버지의 커피를 한 방울도 남기지 않고 다 마셨지만 말입니다.

 

할아버지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길게도 나누었습니다. 과학이 발달하면서 사람들의 일자리가 줄어드는 현실과 더불어 우리나라의 인구가 급격하게 감소하는 추세를 짚으시면서 그런 현실이 오히려 다행이라고도 하셨습니다. 다만 젊은이가 부족한 게 문제라면서 똑똑하고 성실한 젊은 인재를 외국에서 적극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도 하셨죠. 한민족이니, 단일민족이니 운운하는 건 오만함의 극치라는 말씀도...

 

"살아온 날들이 마치 꿈만 같아." 하시는 말씀을 끝으로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석양빛을 따라 할아버지의 시선은 아스라이 멀어졌습니다. 우리는 결코 간단하지 않은 하루를 아주 가볍게 통과한 듯 생각하지만 그것은 마치 거의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다는 사실을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나 깨닫게 되는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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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9-12-24 17: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꼼쥐님, 2019년 서재의 달인 북플마니아 축하드립니다.
올해도 좋은 이웃이 되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즐거운 크리스마스 되세요.^^

꼼쥐 2019-12-27 11:03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답글이 너무 늦었죠? 제가 이렇게 무심해서... 이따금 알라딘에 접속할 때마다 알라딘 서재 인기글에 올라온 서니데이 님의 글 잘 읽고 있습니다. 저야말로 서니데이 님이 좋은 이웃으로 남아주심에 감사드립니다. 다가오는 새해에도 좋은 글 많이 올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