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리새우 : 비밀글입니다 - 제9회 문학동네청소년문학상 대상 수상작 문학동네 청소년 42
황영미 지음 / 문학동네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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꺼내서 보여줄 수 없는 것들이 더러 있다. 놀라움은 대개 그런 것들에서 비롯된다. 아무도 볼 수 없으니 그러려니 무시하고 지내다가 어찌할 수 없는 막다른 국면에서 사태의 심각성을 겨우 알아채는 것들. 자녀를 키우다 보면 그와 같은 일들을 수시로 겪게 된다. 걱정과 불안 속에 시작되는 첫째의 초등학교 입학, 학년이 바뀔 때마다 새롭게 형성되는 교우관계, 담임 선생님과의 관계 등 아이의 사회성에 대한 의심과 걱정은 고등학생이 되어도 끝나지 않는다. 올해 고등학생이 된 아들 역시 그와 같은 과정 속에서 성장했다. 사회성이 부족한 건 아니지만 숫기가 없는 아들은 초등학교 고학년부터 중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단짝처럼 붙어다녔던 두 명의 절친이 있다. 그러나 올해 각자 다른 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 뿔뿔이 흩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 중 한 명은 같은 학원에 다니면서 일주일에 한 번꼴로 얼굴을 볼 수 있다고는 하지만.

 

황영미 작가의 소설 <체리새우: 비밀글입니다>는 중학교 2학년인 주인공 다현을 통해 아이들 세계의 관계맺기와 만연한 따돌림, 그리고 청소년기의 고민과 피할 수 없는 여러 과정, 이를 극복하면서 맞는 한뼘 성장의 이야기를 독자들에게 들려 준다. 작가는 현실감 있는 언어와 어색하지 않은 상황 설정을 통해 청소년기의 학생뿐 아니라 다른 어떤 세대의 사람이 읽어도 이야기에 쉽게 동화될 수 있도록 한다.

 

소설은 중학교 2학년이 된 다현의 반 배정 이야기로부터 시작된다. 초등학교 시절 은따를 경험한 바 있는 다현은 친구를 그 무엇보다 소중히 여긴다. 단톡방 '다섯 손가락'에 들어갈 수 있었던 것도 행운으로 생각할 정도로 말이다. 반 배정은 그닥 나쁘지는 않았다. '다섯 손가락' 멤버 중 미소와 설아는 각자 다른 반이 되었지만 아람이와 병희가 한 반이 되었고, 담임도 좋아 보였다. 그러나 '다섯 손가락'이 선정한 밉상 2위인 노은유가 짝이 되면서 이야기는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국어 선생님인 담임이 반 아이들에게 모둠 과제로 마을신문 만들기를 내주었다. 다현의 모둠이 된 아이는 모두 네 명. 다현과 그녀의 짝인 노은유, 시후와 해강이 모둠으로 정해졌다. 같은 모둠이기는 하지만 '다섯 손가락' 멤버들이 그토록 싫어하는 은유와 가까이 지내기라도 하면 단톡방 멤버들로부터 압박을 받을 게 뻔한 상황. 설상가상으로 모둠의 회의 장소가 은유네 집으로 정해지면서 다현은 난감한 처지에 놓이게 되는데 첫날 모임은 치과 예약을 핑계로 빠지기로 했다. 그러나 모둠 멤버들과 딱 마주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은유네 집으로 가게 되는데...

 

"은유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파편처럼 와서 나한테 박혔다. 저렇게 덤덤하게 말할 수 있는 경지를 나는 안다. 저 말에 실린 무게도, 그것은 말이 아니라, 켜켜이 쌓인 그리움이다." (p.82)

 

변호사인 은유의 아버지는 이따금 방송에도 출연하는 유명인이라고 했다. 그러나 은유의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강남에 살던 은유네는 고모가 사는 아파트 근처로 이사를 오게 되었고, 은유는 그때의 충격으로 대인기피증을 앓는 것처럼 사람들을 가까이 하지 않게 되었다. 엄마가 없는 은유네 집은 공간은 넓지만 꾸미거나 정리가 되지 않은 듯 황량했다. 은유와의 만남이 계속되면서 '다섯 손가락' 멤버들과의 사이는 점점 벌어졌다. 단톡방에서도 투명인간 취급을 받았고, 멤버들이 밉상 1위로 꼽았던 황효정이 자신을 대신해 멤버로 들어오게 되었다는 것도 나중에 알게 되었다. 그리고 독립영화를 좋아한다는 은유 역시 가곡이랑 클래식을 좋아하는 다현만큼이나 '진지충'이라는 사실을 새롭게 알게 된다.

 

"체리필터의 <낭만 고양이>. 내 비공개 블로그 '체리새우'의 배경음악이다. 배경음악은 자주 바뀐다. 이 노래 말고도 좋은 노래를 많이 올려 놓았다. 책 읽다가 발견한 좋은 문장이나 내가 찍은 동네 풍경도 있다. 체리새우 블로그는 내가 좋아하는 걸 다 말하는 공간이다. 물론 비공개로." (p.20)

 

학원도 다니지 않고, 혼자 있어도 어색하지 않으며, 독립영화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아무렇지도 않게 말할 수 있는 은유. 사고로 아빠를 잃은 후 마을에서 조그만 우동 가게를 하는 엄마와 함께 알콩달콩 살아가는 다현. 다현 역시 학원을 다니지 않는다. 모둠의 만남이 늘어갈수록 은유 쪽으로 살짝 마음이 기우는 다현. 다현은 자신을 '다섯 손가락'의 멤버로 이끌어주었던 설아에게 은유에 대한 자신의 솔직한 심정과 짝사랑하는 남학생에 대한 이야기를 솔직하게 털어놓는다. 그러나 자신의 비밀을 지켜주리라 믿었던 설아는 그렇게 하지 않았고, 자신의 이야기가 단톡방에서 오가는 것은 물론 밉상이라던 황효정을 다현의 짝남과 맺어주려 하는 걸 보면서 다현은...

 

"어차피 우리 모두는 나무들처럼 혼자야. 좋은 친구라면 서로에게 햇살이 되어 주고 바람이 되어 주면 돼. 독립된 나무로 자라게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존재. 그러다 보면 과제할 때 너희처럼 좋은 친구도 만나고, 봉사활동이나 마을 밥집 가면 거기서 또 멋진 친구들을 만나. 그럼 됐지 뭐." (p.156~p.157)

 

다현은 이제 비밀글로 하던 자신의 블로그를 공개로 전환한다. 다른 사람의 생각이나 시선이 어떻든 간에 '그래, 나 진지충이다. 어쩌라고!' 외치면서 세상을 향해 한 발 나아가는 다현. 그런 다현을 위로하는 댓글들이 다현의 블로그에 올라온다. 몸집이 자랄 때마다 주기적으로 탈피를 한다는 체리새우처럼 소설 속 다현이도 자신의 블로그를 공개함으로써 '비밀'이라는 껍질을 벗고 세상으로 나아갔던 게 아닐까. 어른들의 걱정과 불안이 우리의 아이들을 세상으로부터 꽁꽁 가두고, '비밀'이라는 껍질 속으로 숨어들게 하는 건 아닐까. 우리는 아이들로부터 그들의 '실수할 수 있는 권리'마저 빼앗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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