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와 하모니카
에쿠니 가오리 지음, 신유희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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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애를 써도 도무지 상쾌하거나 산뜻해질 수 없는 날씨였다. 우중충한 하늘과 땀구멍까지 막아버릴 듯한 높은 습도 그리고 바람 한 점 없이 정체된 대기. 사람들은 "이제 두어 달 더울 일만 남았다"며 조물주의 저주보다도 더 끔찍한 예언을 서슴없이 꺼내 놓았다. 그런 예언을 들으면서 나는 '불쾌지수, 열대야, 폭염경보' 등 오래 생각하지 않아도 줄줄 딸려 나오는 온갖 우울한 단어들을 떠올려보았다. 아득하기만 한 한낮이었다.

 

"시나는 홀연히 이해했다. 자신이 지금도 고독하다는 것을. 이 세상에 홀로 존재한다는 것을. 그리고 여자아이를 바라보며 친구라고 생각했다. 저 아이는 그렇게 생각해주지 않겠지만 우리는 친구다,라고. 바람이 두 사람 사이를 시간처럼 천천히 흘러갔다." (p.73)

 

에쿠니 가오리의 신작 소설집<개와 하모니카>를 읽었다. 에쿠니 가오리의 소설은 때로 읽는다기보다 본다는 느낌이 더 강하게 든다. 어느 시점의 풍경을 있는 그대로 촬영하여 시청자에게 꼭 보여주고 싶은 것만 잘 편집하여 내보내는 다큐멘터리를 보고 있는 느낌이랄까.

 

"마누엘이 실제로 좋아하는 것은 술이 아니라 술자리다. 그곳에는 대화가 있고 침묵이 잇고, 사람이 있고, 인간관계가 생겨난다(또는 무너진다). 시간이 특별한 방식으로 흐르기에 그 자리에는 이미 사라지고 없는 사람들이며 기억들이 존재하기도 한다. 마누엘은 그런 자리가 좋아서 바텐더가 되었을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p.148 '알렌테주' 중에서)

 

책에는 각기 다른 주제의 단편 여섯 편이 실려 있다. 표제작인 '개와 하모니카'를 비롯하여 '침실', '늦여름 해 질 녘', '피크닉', '유가오', '알렌테주'가 그것이다. 서로 다른 목적으로 나리타 공항을 이용하게 되는 다양한 인간 군상을 그린 '개와 하모니카'와 열다섯 살이나 어린 젊은 여자와 5년 넘게 밀애를 즐겨온 중년의 남성이 갑작스러운 이별을 통보받은 상황을 밀도 있게 그린 '침실', 낯가림도 심하고 열의도 부족한 한 여인이 한 남자를 만나 열정적으로 사랑하게 되는 과정을 그린 '늦여름 해 질 녘', 결혼한 지 5년이 되는 부부의 평범한 일상을 통해 바라본 두 사람 사이의 좁힐 수 없는 거리를 그린 '피크닉', '겐지 이야기'를 현대적인 언어로 개작한 '유가오', 이성 커플과 크게 다를 바 없는 게이 커플의 3박 4일 여행담을 그린 '알렌테주'. 작가는 그들의 모습을 자신의 어떤 주관적인 감정도 싣지 않고 아주 담백하게 그저 무심히 그려낸다. 사람들은 누구나 더 밀접한 관계를 원하지만 어떤 관계에서도 더 이상 가까워질 수 없는 거리가 존재한다는 것을 암시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처마 밑에 선 채 방금 전 담뱃불을 붙였을 때처럼 남자는 무심히 손을 놀려 자신의 왼손 살갗을 얇디얇게 벗겨냈다. 엄지손가락 바깥쪽에서부터 손목 방향으로. 그만두라고 시나는 말하지 않았다. 주인이 주는 먹이를 기다리는 개처럼 숨죽인 채 그저 가만히 기다렸다. 만들기 놀이에 빠진 소년처럼 자신의 손에 집중하고 있는 남자를 응시하면서." (p.64 '늦여름 해 질 녘' 중에서)

 

작가는 남자가 벗겨낸 피부를 여자가 받아먹는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매우 그로테스크한 장면을 작품에 삽입하기도 한다. 가족을 중시하며 남편 역할에 충실했던 남자가 딸의 인형에 '햄'이라는 괴이한 이름을 붙였다는 단순한 이유만으로 이혼을 요구하는 여인, 격정적으로 사랑하는 남자와 더 가깝게 느끼고 싶어서 남자의 피부를 먹겠다는 여인, 5년째 결혼 생활을 유지하면서도 남편의 이름조차 헷갈려하는 여인, 남자의 이름도 모른 채 밤을 함께 보내는 여인, 이성 커플은 아니지만 질투의 감정만큼은 하나 다를 게 없는 게이 커플 등 다양한 인물을 보여줌으로써 작가는 우리가 맺는 관계는 결국 허울뿐이며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 할지라도 인간은 끝내 혼자일 수밖에 없음을, 그리고 둘이 하나가 된다는 건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임을 아주 무덤덤하게, 잔인하게 말하고 있다.

 

일본 문학의 특징은 작가의 생각이나 감정을 독자에게 강요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이러한 특징은 개인의 신변잡기를 다루는 수필에서 가장 잘 드러나지만 소설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 시각적인 영상을 단순히 글로 옮긴 듯 처리함으로써 독자가 그 글을 읽었을 때의 감정이나 느낌은 나 몰라라 한다. 그러다 보니 소설을 읽은 후의 느낌이나 교훈도 각자 다를 수밖에 없다. 반대로 한국 문학은 작가의 느낌이나 의도가 독자에게 고스란히 전달되도록 노력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작가와 독자, 또는 책과 독자가 일치되도록 한다. 말하자면 몰입도를 증가시키는 것이다. 이게 꼭 좋은 것만은 아니어서 독자는 작가의 이러한 태도(예컨대 과잉 감정이나 행동)에 거부감을 느끼거나 신파조로 읽히기도 한다. 반면에 일본 문학이 가볍다거나 선정적이라는 비판도 이와 같은 태도에서 비롯되는지도 모른다. 책과 독자, 작가와 독자 사이에 일정한 거리를 둠으로써 객관성을 유지하고자 하는 일본 문학의 특징은 에쿠니 가오리의 소설에서도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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