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하차피의 달 - 2010 문화체육관광부 우수교양도서, 2011 이주홍문학상 수상도서 테하차피의 달
조갑상 지음 / 산지니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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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하루 종일 비가 오는 날에는 이집 저집 할머니들이나 어머니들이 모여서 정구지든 묵은 김치든 그런 걸로 부침개 부쳐 먹으며 궁금한 입을 달랬잖아요. 궁금한 입이 뭐겠어요. 주전부리도 주전부리지만 평소에는 하지 못했던 얘기, 가슴에 막힌 이야길 한다는 거지. 누구 이야기든, 무슨 이야기든, 또 지어낸 얘기처럼 에둘러 한들 어때요. 제 나름으로 하고 싶은 말, 가슴속에 묻어두었던 이야기를 한다는 게 중요한 거지.” (75)

 

입이 궁금한 게 아니라, 마음이 궁금해서 자꾸 소설책을 펼쳐드는 요즈음. 남들의 가슴속에 묻어둔, 평소에는 듣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만나고자 이 소설 저 소설 자꾸 기웃거린다. 그렇게 나는 소설을 보며 이 아닌 마음을 달랜다. 인적 드문 산골마을에 살다 보니, 누군가 끊임없이 이야기를 풀어놓는 텔레비전도 없이 살다 보니, 그런 시간이 더 많아진다. 글로라도 다른 사람의 삶을 만나고 그네들과 이야기 나눌 수 있다는 것, 소설이 있어서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자주 든다.

 

마음 하나 어떻게 먹느냐가 사는 것 그 자체가 아니냐, 그런 생각에서 빠져나올 수가 없었소.” (90)

 

죽은 자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기에 산 자가 맞설 수 없다.” (101)

 

그렇지, 그래. 내 마음은 내가 씻고 지우지. 지워 오기도 했을 거고.” (130)

 

살면서 숙제야 언제나 있는 거 아닙니까. 견해의 차이도 있을 수 있는 거고. 그냥 둘 건 둬야지 억지로 봉합해서야 되겠습니까.” (132)

 

조금 낯선 제목을 가진 소설 <테하차피의 달>. 그리 특별해 보이지 않는 사람들의 담담한 이야기들은 잔잔하고도 시릿하게 내 마음을 어루만진다. 삶의 허무를 견뎌보고자 종교에 지나치게 빠져든 아내가 어느 날 갑자기 사고로 죽고, 친척 보증을 잘못 서서 가정이 파탄 나고, 젊은 시절 사랑하던 여자의 죽음을 우연히 알게 되고, 팔순 넘은 아버지의 죽음을 준비하는 식구들 이야기까지…….

 

한두 이야기를 빼고는 범상한 소재와 줄거리들이 이어진다. 빨갱이라는 누명 아닌 누명으로 돌아가신 아버지의 기억을 지우려는 어느 형제들의 제사 풍경과 식민지 시절 부산에서 벌어진 조선 여자 살인사건을 다룬 글조차 평범한 삶처럼 다가온다. 그래서 더 마음이 간다, 그네들의 사랑과 이별, 그리고 삶과 죽음에.

 

삶이 소설을 모방하는지 아니면 소설이 삶을 모방하는지는 여전히 이론의 여지가 많은 문제이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조갑상은 삶이 어떤 정형의 플롯으로는 온전히 포착될 수 없으며, 오히려 선험적으로 이해되고 있는 플롯을 위반하기 일쑤이고, 또한 우리들의 삶에는 그다지 의미 있는 기복이 있다기보다는 인간 개개인이 곱씹어가면서 스스로 해명하지 않으면 안 될 수수께끼 같은 문제가 반복해서 제기되는 것일 뿐이라는 전언을 전달하고 있다는 점이다. () 그러니 그의 소설에 어떤 파격적인 결말이 있을 수가 없고, 어떤 대안이나 답이 제시될 수 없는 것은 오히려 당연한 일이다.” (250~251)

 

삶의 매 순간에서 그 자체의 행위와 사건의 의미를 알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삶은 반추를 통해서만 의미를 지니게 되고, 그런 회상 행위를 통해서만 현재 존재하고 있는 자아의 현재로 편입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다. 해석되지 않는 과거란, 정체를 알 수 없는 일종의 수하물 같은 것으로, 현재 삶에 균열을 일으킬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253)

 

소설이 끝나고 작품해설을 본다. 소스라치게 깨닫는다. 내가 왜 자꾸만 소설을 찾아 이리저리 헤맸는지, <테하차피의 달>을 읽는 동안 내 마음에 아스라하게 피어오른 그 감정의 조각들의 정체가 무엇이었는지.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만날 수 있는, ‘아직이미사이에 놓여 있는 크고 작은 사건들은, 그것이 가상임에도, 내 지나온 삶과 다가올 삶을 찬찬히 곱씹게 만들었다. 때론 수도 없이 나를 혼란에 빠뜨렸던 수수께끼 같던 내 지난 과거의 이야기들마저도 이 소설은 그건 너한테만 닥친 문제가 아니었다고, 그러니 괜찮다고 등을 토닥토닥 두드려 주었다. 그래서 나는, 파격적인 소재나 결말도 없고 어떤 대안이나 답도 내밀어 주지 않는 이 소설을 보면서 그렇게나 위안을 얻었나 보다.

 

비록 절대적인 고립자라는 유한성을 지니고 있더라도, 그런 인생 자체가 생판 남인 사람들에게 감각되고 이해되고 결국은 공유될 수 있는 바탕이 있음으로 해서 개체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단서를 얻게 된다는 것을 말한다.” (255)

 

그런 세상에 소설마저도 없다면 사람은 무엇으로 상처를 치유할 것인가라는, 자의식적인 질문이 그의 소설에는 깔려 있는 것이다. 그런 만큼 그의 소설은, 소소하지만 나름대로 절실함을 담고 있는 우리 일상의 곤혹스러움의 정체와 맞서고 있는 것이다.” (256)

 

김경수 문학평론가의 작품해설 말미를 읽다가는 하나를 위로해 주는 것을 넘어 소설이 우리 삶에 반드시 있어야 하는 까닭을 느끼고야 만다. 소설은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대신 로 건넴으로써 그것과 만나는 사람들의 상처를 치유해 주는 마지막 보루가 될 수 있지 않을까. 때론 따뜻한 입김이 묻어나는 바로 내 앞에 있는 사람의 말보다 더 애틋하고 포근하게.

 

나 대신 울고

나 대신 아파하고

나 대신 힘을 내는

소설 속 사람들 덕에,

그리고 그 사람들의 삶을

글로, 이야기로 만들어 준 작가 덕에

 

나는 오늘

울다가도 웃고

웃다가도 운다.

그러면서 마음속

상처가

후회가

미움이

아픔이

미련이

 

조금씩 옅어진다.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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