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길 자동차 안에서는 창을 열면 가을바람이 매섭고, 창을 닫으면 에어컨 버튼에 손이 갈지 말지를 망설이게 된다.
차창 밖을 보니 모네의 그림 <양산을 든 여인>에 나올법 한 아가씨가 갑자기 불어오는 세찬 바람에 두 손으로 늦여름을 가린 양산을 꾹 움켜 지고선 더디게 출근길을 제촉하고 있다.
사라지는 여름의 존재감이 아쉬운 듯, 늦여름의 햇살은 초가을 바람에도 아랑곳 없이 이 계절의 끝자락을 부여잡고 내리쬐고 있다. 높고 푸른 하늘아래 늦여름의 햇살과, 초가을의 산뜻한 바람은 서로간에 정체성의 싸움을 벌이고 있는 계절의 시간이다.
요즘 여름휴가를 가지 못한 아쉬움을 마쓰이에 마사시의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라는 책으로 달래고 있다.
도심에서 근무하던 설계사무소의 사장과 직원들은 여름이면 해발 1,500미터 산골마을에 마련된 별장같은 사무소로 옮겨서 일하는데, 올해 여름은 공공도서관을 설계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이야기이다.
현재까지는 정말 잔잔하게 소설이 전개되고 있다. 여름사무소에서 직원들은 당번을 정해서 채소등을 직접 재배하고 삼시세끼 당번을 정해서 음식을 만들어 먹는다.
마을 주변의 건물들과 사람들, 건출물을 설계하는 직원들의 모습, 아침 점심 저녁의 풍광들, 각종 새들과 곤충들, 그리고 이제 막 피어오를 듯한 남녀의 사랑 등이 세밀화를 묘사한 듯 서술하고 있어 읽는 재미를 더해 주고 있다.
나는 정말 한 여름 강원도의 어느 깊은 산장에 들어가 짙은 나무그늘을 비집고 들어오는 햇살아래 캠핑의자를 길게 펴고, 베개 두개을 겹쳐서 머리를 누인 후 두 다리 꼬아 늘어 뜨리며 상쾌한 바람을 맞고 있다. 그리고 한손에 들른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를 느릿느릇 넘기고 있다. 적어도 이 책을 잡고 있는 순간은!
느리게 읽어 가던 중 도서관을 설계하는 팀원과 사장과의 대화에 시선이 멈춘다. 그리고, 맥주 한캔을 따서 이런 저런 생각에 잠겨 본다. 모름지기 여름휴가 대용인데 이 정도의 낭만은 사치가 아닐것이다. 나는 책보다는 도서관이라는 장소에 의미를 좀 더 생각해 보았다.
서술 내용은 다음과 같다.
[ 선생님은 한참 생각에 잠겼다가 말했다. "혼자서 있을 수 있는 자유는 정말 중요하지. 아이들에게도 똑같아. 책을 읽고 있는 동안은 평소에 속한 사회나 가족과 떨어져서 책의 세계에 들어가지. 그러니까 책을 읽는 것은 고독하면서 고독하지 않은 거야. 아이가 그것을 스스로 발견한다면 살아가는 데 하나의 의지처가 되겠지. 독서라는 것은, 아니 도서관이라는 것은 교회와 비슷한 곳이 아닐까? 혼자 가서 그대로 받아 들여지는 장소라고 생각한다면 말이야."(P180~181)]
도서관에서 책을 읽는다는 행위. 각자가 어떤 목적을 가지고 어떤 마음가짐으로 책을 읽어가더라도 공공 도서관에서 책읽기에 몰입하는 개인은 본질적으로 자유를 갈망하는 고독한 존재임은 분명한 듯 하다.
이러한 고독한 존재에게는 고독한 개별자들이 모이는 공공도서관은 자유를 향한 피난의 공간이자 의지의 공간이고, 좀 더 신성한 의미를 부여하자면 집단성과 보편성이 지배하는 사회와 공간속에 던져져 상처받고 소외된 고독한 개인에게는 종교장소와 같은 구원의 공간으로서의 의미를 충분히 가질수 있을 것 같아 작가의 글이 마음깊이 새겨진다.
휴일 오후 편한 복장으로 한손에는 아메리카노를, 다른 한손에는 소설책 한권을 들고 찾았던 그곳은 한명 한명의 고독한 개별자들이 혼자 있는 자유를 누리면서도 책이라는 사물을 통하여 위로받고 구원받기 위한 무의식으로 연대하며 고독하지만 고독하지 않았던 아름다운 공간이었다는 느낌만으로도 도서관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을 것 같다.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는 좋은 성적, 좋은 대학, 좋은 취직 등 어느 단계로 진입하게 위한 노력으로 도서관을 찾아 처절한 사투를 벌이고 있을 것이고, 다른 누군가는 마음의 양식을 찾거나 휴식을 위해서 도서관을 찾고 있을 것이다.
공공도서관을 찾는 고독한 자들에게 이들이 개별적인 자유를 느끼면서도 서로간의 고독을 무의식적으로 연대를 통하여 더 큰 자유와 구원을 느낄수 있는 공간으로 공공도서관이 자리매김 하였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 본다.
PS1 : 어제 서울 출장을 가서 여유로웠던 점심시간에 여의도 국회의사당을 산책하며 국회도서관을 담아 보았다. 본질적으로 국회도서관은 자유로운 고독들이 연대하는 공간은 아닐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도서관이 파르테논 신전의 웅장함을 닮아 있다. 고대 그리스에서도 파르테논 신전은 신에게 제사 지내는 일부 신관들 위한 폐쇄적 공간이었음을 상기하면 국회도서관의 현재 모습과 기능은 타당할 수도 있겠지만 조금 아쉽기는 한 것 같다.
PS2: 이 책의 일본의 제목이 화산의 ~~~~~(어쩌구 저쩌구하는 것 같은데 혹시 아시는분 계세요?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