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2020년 한해의 독서를 돌아보면서.

 

읽은 책의 권수에 큰 의미를 두지는 않지만, 올 해만큼은 "살면서 한 해에 100권 넘게 읽어 봤어?"라는 누군가의 질문이 제기된다면, 사실적 근거를 가지고 "2020년도에 읽어봤거든!"이라고 대답해 보고 싶어서 2020년 중순부터 100권을 향한 나름대로 전략적인 독서를 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나, 코로나로 인해서 테니스장이 종종 폐쇄되고 재택근무가 늘어난 반면, 저녁 회식 숫자는 줄어든 덕분에 책읽는 시간을 많이 확보할 수 있었던게 큰 요인인 듯 하다. 아마 이런 기회는 다시 오지 않을 것 같고, 코로나를 원인으로 해서는 다시 오지 않았으면 좋겠는 간절한 바램이다.       

 

한해의 마지막 즈음에 다른 알라디너 여러분들께서 한 해를 돌아보는 결산 페이퍼를 올리실 때마다 나도 한번 해보고 싶었지지만, 게으름에 한해 한해를 넘기면서 기회를 놓쳤었다.

 

그런데, 100권 돌파 기념으로 올 한해의 독서를 되돌아 보면서 추억해 보는 것도 뜻깊은 일이 될 것 같다. 더군다나 2020년의 마지막날이 되니 사무실은 혼자의 공간이 되었으니 더 없이 좋은 시간이다.

 

2. <2020년의 1월>

 

 ㅇ 올해의 첫날은 철학자 김진영님의 <아침의 피아노>를 마무리함과 동시에 신영복 선생님의 <담론>으로 시작했다.

 

   - (아침의 피아노) 암 선고를 받고 죽음을 바라보는 철학자의 담당한 시선과 죽음을 앞에 두고 바라보는 삶과 관계를 맺었던 인간, 그리고 주변의 의미를 조용히 성찰하며 눌러쓴 작가의 필체에 감동했다.

 

   - (담론) 신영복 선생님의 글은 재독이었는데 그 분의 글은 언제나 나에게 가슴깊이 되새기고 되뇌이면서 그와 같은 삶을 살고 싶은 마음을 가지게 만들지만, 올 한해를 돌아보니 나에게 그분의 가르침에 대한 실천은 역시나 요원한 일이었나 보다. 그러나, 그분의 글이 주는 울림을 간직하고 싶다.

 

  ㅇ (지대넓얕 시리즈) 책중에는 책 자체가 주는 감동을 지닌 책이 있지만, 감동여부를 떠나 나의 삶을 바꾸는데 적지않은 영향력을 미치는 책도 있다. 내용의 심오함 여부를 떠나서 이런 책은 기억에 오래 남는다. 19년의 말에 채사장 작가님의 <지대넓얕0>라는 책을 보았는데, 이 책을 통해서 136억년전 빅뱅에서 시작된 우리 인류가 까마득한 시절로부터 늘어져 있는 보이지 않는 얇은 거미줄 같은 걸로 연결되어 있는 느낌을 받았다. 


     특히나 이 책을 통해 우주와 물리, 종교(특히, 불교와 인도사상)에 관한 독서에 관심을 가지고 책을 펼쳐 보게되었다는 점은 엄청난 소득이고 그 출발점이 되어준 고마원 책이다. 이러한 이유로 지대넓얕 시리즈를 보았던것 같다.

 

  ㅇ (이집트에서 만끽한 사치스러운 독서) 19년 연말부터 뭔가 거대한 것을 느끼고 싶었다. 그리고, 나름대로 조금씩 진행해 왔던 서양미술사 여행도 우선은 어느정도 마무리 하고 싶었다. 그래서 1월에 설 연휴를 이용해서 이집트행 비행기를 탔었다.  본격적인 코로나 시대가 오기전에 정말 운이 좋았다. 


     솔직히 피라미드와 사막의 거대함보다는 유유히 흐르는 나일강의 크루즈 갑판위나 휴양지 후르가다의 선배드에 누워서 맥주 한변을 홀짝이며 읽었던 <배움의 발견>과 <그리스인 조르바>는 영원히 잊지 못할 사치일 것 같다. 조르바 형님이야 영원할 것 같고, 요즘에 <완벽한 아이>를 읽으면서 타라가 떠 올랐는데 작가님은 잘 지내는지 모르겠다.

     

 

 

 

 

 

 

 

 

 

 

 

 

 

 

 

3. <2020년의 2월>

 

ㅇ(무소유) 2월에는 절판되어 읽지 못했던 법정스님의 <무소유>의 가르침을 접한 것이 기억에 남는다. 역시나 머리로 아는 것과 가슴으로 느끼고 실천하는 것은 별개일지 몰라도 혜민스님사건으로 돌이켜 보니 법정스님의 가르침은 역시나 한줄기 죽비와 같다.

 

ㅇ(세종교이야기, 동서양의 인간 이해) 야훼를 본질로 하는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의 역사, 교리, 이를 믿는 사람들의 삶과 이들의 믿음사상이 만들어낸 세계사적인 흐름을 쉽고 재미있게 배울수 있었다. 그런데, 하나님 한분의 뜻은 분명히 하나인데 이를 해석하고 실천해 가는 인간은 크게 3가지 방법으로 서로 대립하고 있으니 인간은 본질적으로 신의 뜻을 알수 없는 존재이거나, 본질을 알지만 신의 뜻 보다 자신이나 집단의 이해를 신의 뜻 위에 새우거나 신의 뜻에 기대어 존재하는 존재일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4. <2020년의 3월>

 

ㅇ (곰브리치 서양미술사) 나름대로의 서양미술사 여행을 마무리하는 차원에서 다신 잡아든 책이었다. 결국, 미술이란 그 시대를 만들었던 사람들의 시대정신, 느낌과 감정 등을 그 시대의 미술가들이 표현하고, 극복하는 과정의 연속인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미술의 역사는 시대가 제시하는 지배적인 사상에 맞서서 동 시대가 지배하는 사상이나 개인이 물들어 있는 습관과 편견을 버리고 새로운 시각으로 현상을 바라보며 탄생시킨 변화하는 생각과 요구들의 역사"라는 작가의 말을 상기해 본다면,

어쩌면 서양미술관 여행은 전시된 작품들이 보여주는 표면적인 아름다움, 역사적 교훈, 표현하고자 하는 정신이나 감정 등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미술가가 자신의 영혼을 갈아 넣어 창작한 작품속에 깊숙이 배어 있는 지독한 시대적 편견과 폭력적인 지배 사상에 투쟁하고자 하는 처절한 고뇌를 깊이 있게 공감하는 것이 그림에 한 발자국 더 다가가는 것이 아닌지 생각해 보았다. 

 

ㅇ (양정무 교수님의 난처한 미술이야기6) 난처한 미술사 시리즈도 책의 내용을 떠나서 나의 서양미술사 여행에 선한 영향력을 미친 좋아하는 시리즈이다. 17년도에 그리스, 이탈리아 여행을 준비하면서 이 시리즈의 3,4권이 나왔는데 이 책을 읽고 라벤나와 파도바를 넣는 코스로 변경했었다. 결과적으로, 서양 중세미술과 르네상스의 시작을 몸으로 체험할 수 있었던 너무나 좋은 여행이었다. 특히나 6권은 19년도 2주동안 연수를 받았던 벨기에의 브뤼헤와 겐트에 대한 추억을 떠올리기 해 주었고, 연수전에 이 책을 읽었다면 더 좋았을 것을 하는 아쉬움도 남겨 주었다.

 

ㅇ (도울선생님의 나는 예수입니다, 스무살반야심경에 미치다) 도울선생님의 글을 처음 접했던것 같다. 엄격한 체계를 이루고 있는것 같지는 않았지만, 하나의 콩나물 시루를 설명하기 위해서 이를 구성하는 콩나물들을 하나하나 설명해 내는 엄청난 지식과 특히, 본질적 어원의 의미를 분석하는 것에 대한 중요성을 느낄수 있었다. 특히나 <나는 예수입니다>를 통해 내가 바로보고 싶은 예수님의 모습을 설명해 주어서 감사했다.  

 

 

 

 

 

 

 

<2020년의 4월>


5. <2020년의 4월>


ㅇ (서중석의 현대사 이야기시리즈 1~7) 어느날 문득,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 시대에 대해서 내가 무엇을 제대로 알고 있는가라는 생각이 들어었고, 너무 몰라서 미안했던 우리 역사와 그 역사속에서 살았던 수많은 민중의 삶고 의식을 조금이나마 새롭게 이해하고 공감해 보고 싶다는 마음에서 시작했는데, 아직까지 높은산 깊은 골을 다 넘지는 못했다. 2021년의 숙제로 남겨두자.

 

ㅇ (정희진 처럼 읽기) 페미니즘이라는 의미에 대해서 처음으로 생각다운 생각을 해 볼수 있는 계기를 주었던 좋은 책이었다.

돌이켜 보아도 후기에서 남겼듯이 책을 읽는 동안 챕터 챕터마다 누군가에게 회초리로 얻어 맞는 느낌이다. 정말 나의 선한 의도나 옳다고 생각해 왔던 기존의 관습이 달리 나와 성을 달리 하는 사람에게는 엄청난 폭력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깊이 있게 느껴 보았던 것 같다. 그래서 정희진 교수님의 글에 댓구할 잔머리를 쓰지 않고 일부로 생각해 보지도 않고 교수님의 회초리를 묵묵히 맞았던 기억이 난다........그러나, 2020년의 마지막에 돌아보면 본질적인 변화는 미미한듯 하다. 더 맞아야 하나?ㅠ

이 책을 계기로 몇권의 페미니즘 관련 책을 들을 읽었고 사 두었다. 알라딘에서 폐미니즘 관련 책읽기 하시는 분들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ㅇ (책읽어 주는 남자) 한 사람에게 수치심이라는 의미, 예루살램의 아이히만에서 느끼는 철학적 고민까지 느껴 볼 수 있었던 좋은 작품이었다, 영화에서는 케이트윈슬렛이 여주인 한나를 너무 실감나게 연기했다.

 

ㅇ (안녕 주정뱅이) 심야식당 같은 분위기의 포차에서 권여선 작가님이 펼쳐놓은 7개지 이야기가 주저리 주저리 열리고, 나는 혼자 술을 마시며 7개의 이야기를 엿듣듯 빠져들어 읽었던 좋은 기억이 있다. 혼술하는 사람이 7팀의 이야기를 전부 이해할 수 없었지만, 책을 덮고 신형철이라는 술집 주인이 다시 한번 7팀의 7개의 이야기를 되뇌여 줄 때, 손님들의 이야기도, 술집주인의 해설도 정말 훌륭하다는 생각을 하며 두번 감동을 먹었던 좋은 기억이 있다. 

 

 

 

 

 

 

 

  

 

 

 

 

 

 

 

 

6. <2020년의 5월>

 

ㅇ 5월은 과학의 달인가 아닌가? 모르겠지만, 올 해 오월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과학책을 돈주고 사서 읽었다는 사실에 큰 의의를 두고 싶다. 특히나, 빅뱅으로 시작된 만들어진 시간과 공간, 그 위에서 조그만 원자로 출발해서 오늘날 지구위에 살아가는 인간들이 모두 모두 어떤 보이지 않는 파동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알게되었을때 그 떨림과 울림은 대단했다.

 

 

 

 

 

 

 

 

 

 

 

 

 

 

 

 

7. <2020년의 6월>

 

ㅇ (코스모스) 누구나 다 알고 있지만 읽지 않은 것이 고전의 정의라면 알고 있는 것과 그것을 실제 읽고 느끼는것은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가르쳐 주는 것도 고전일지 모른다. 5~6월에 걸쳐 우주에 대한 책을 제법 읽어 와서 대략적인 내용은 알고 있지만, 이렇게 우주를 아름답게 설명하고 깊은 감동을 주는 책은 코스모스만한 것도 없을 것같다. 알쓸신잡에서 유시민 작가님이 무인도로 가져가고 싶은 1권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정말 적확한 표현인듯 하다.

 

ㅇ (산티아고 길에서 나를 만나다) 이책은 코로나시대에 산티아고 순례라는 꿈을 꾸게 해주었고, 어느덧 밤에 맥주를 마실때면 무심한 듯 틀어놓고 보는 영화로 자리메김했다.(개인적으로 본 영화를 틀어 놓고 술먹는걸 좋아한다. 매번 새롭게 보인다.) 옛날 후기를 보니 영화를 혹평했던데 사과해야 겠다. 너무 좋하는 영화로 등극했다. 아름다운 풍경이 좀 더 있었으면 하지만.

 

ㅇ (당신 인생의 이야기) SF라는 장르가 우주괴물이 쳐들어 와서 지구에서는 미국을 중심으로 맞서 싸우는 장르라고 생각해 왔던 나에게 이 소설을 혁명과도 같고, 하나의 철학적인 지평을 열어준 감동적인 세계 였다. 올 한해에 끝에서 돌아보니 전부 이해 하지 못했지만 알수 없는 감동은 깊이 퇴적되어 있다는 걸 다시 한번 확인했다.      

 

 

 

 

 

 

 

 

8. <2020년의 7월>

 

ㅇ 2020년의 하반기는 보잘것 없는 독서 인생에서 소설이 주는 감동과 숨어 있는 깊은 철학을 머리가 아닌 마음으로 느낄수 있다는 희망을 희미하게 나마 발견했던 신 기원의 7월이었다고 정의하고 싶다.

 

 - (순교자) 도서 팟캐에서 이 책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울먹이던 게스트의 떨림이 선했다. 내가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신의 본질적인 뜻과 그것을 실천하려는 인간의 본질이 충돌하고 내외적으로 갈등하는 엄청한 울림을 주는 작품으로 꼭 다시 한번 꼼꼼하게 읽고 리뷰하고 싶은 작품이었다. 근데, 몇몇 지인에게 추천했는데 반응이 시큰둥하긴하다.ㅠ.ㅠ

 

 - (분노의 포도) 자본의 속성과 자본에 맞선 소시민들의 애처로운 투쟁, 좌절, 그속에서 싹트는 사랑과 연대의 힘이 책을 덮고도 진한 여운으로 남는 따뜻한 에너지를 주는 소설이었다. 특히나, 이 소설을 통해서 삶의 질곡을 묵묵히, 그리고 뚜뻐뚜벅 헤쳐나가는 성모 같은 흑인 어머니가 주는 감동은 말이나 글로 설명하기 곤란했다.

 

 - (참을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더 이상 말해서 무엇하겠는가? 다시 또 보겠다는 지킬수 없는 약속만 해 둔다.   

 

 - (이방인) 정말 힘든 일이지만, 올해의 소설을 묻는다면 주저없이 카뮈의 <이방인>을 선택할 수 밖에 없다. 특별히 악한 존재도 아니고, 남과 조금은 다르게 생각하고 느끼지만 적극적인 표현을 자제하면서 묵묵히 살아가는 개별적인 존재가 보편성이라는 거대한 폭력 앞에 멍들어가고, 분노로 맞서 항변하고 싸우지만 결국에는 쓸쓸히 형장의 이슬로 사라져가는 뮈르소를 보면서 삶에 대해 여러가지 측면에서 깊은 생각을 해 볼 수 밖에 없게 만들어 주었다. 꼬리물기 독서로 카뮈와 관련된 책을 몇권 읽었고.....물론 지금까지 정리도 안되고 결론도 없지만...이방인 카뮈의 매력에서 벗어나기는 힘들것 같다. ㅠ.ㅠ. 


무엇보다 인간의 삶의 정류장 곳곳에서 버티고 있고, 궁극의 종착지 어딘가에서도 자리하는 부조리와 허무주의라는 개념에 대해서 기존에 갔고 있던 단견을 더 두텁게 생각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주었다고 생각한다. 어렴풋이 그리스 비극에서 주로 설정하고 그려내는 운명이라는 것과 허무주의는 표현할 수 없지만 뭔가 결이 다르다는 생각을 해 보았으나, 구체적 생각은 아직까지 부족한 것 같다. 8월에 이어서 읽었던 <시지프신화>는 이방인에서 느꼈던 의문에 대해서 작가가 철학적으로 접근하여 해설하여 주고 있는 것 같다. 좀 더 생각을 진득하게 붙잡고 이해하고 싶어서 새해에 반드시 해결하고픈 숙제로 남겨둔다.

 

 

 

 

 

 

 

 

 


9. <2020년의 8월>

 

ㅇ 8월에도 여전히 뮈로소의 선한 망령이 지배했던것 같다. 코로나로 휴가가 취소되고 테니스장도 폐쇄되었다. 에어컨틀고 집콕 바캉스를 즐기면서 책보고, 자고, 밥먹고 책보고 했던 2020년의 쓸쓸한 여름휴가였다.


 - (읽고 쓴다는 것, 그 거룩함과 통쾌함에 대하여) 잘 읽고, 잘 쓰는 방법을 제시한다기 보다는 제목 그대로 읽고 쓴다는것이 얼마나 위대한 일인지에 대해서 마음속 깊숙히 느끼게 해주고, 몸 속에 깊숙히 아로 새겨주는 책이다. 개인적으로 글쓰기가 전제된 책읽기가 얼마나 집중력을 높여주는지 체험할 수 있는 계기가 되어 준 책이다. 하지만, 글쓰기는 나에게 너무나 요원해서 진즉에 포기했다. 


 - (설국) 11. 5.14에도 읽었던 모양인 책이다. 첫문장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 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 밤의 밑바닥이 하얘졌다. 신호소에 기차가 멈춰 섰다."은 읽기만 해도 머리속은 강렬한 눈발을 가르며 굴뚝으로 연기를 내뿜는 은하철도999를 타고 니카타 현으로 달리고 있다. 온 통 흰색으로 뒤덮인 일본의 온천마을로 한 여름에 떠나는 휴가!


이 소설은 아련한 감정이 무엇인지 느끼게 해 주었다. 안밖의 기온차로 서리가 끼여있는 기차의 유리창을 통해 온통 하얗게 뒤덮인 온천마을 풍경의 아련함과, 사랑이라고 정의하고 싶지만 말하기도 조심스러운 아련한 감정들을 동시에 느끼면서 보는 감정이란 이런것일 수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덫붙이자면, 설국에는 눈의 하얀 풍경만 존재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인상파 화가 모네의 <개양귀비꽃밭>에서 볼수 있는 선명하지 않지만 엹은 붉은색이 아련한 감정에 드문드문 잊지못할 진한 마음의 자국을 남긴다.


 - (에브리맨) 이 책은 내가 좋아하는 100% 메밀로 만든 평양냉면과 같은 맛이다. 한 사람의 죽음앞에서 "현실을 다시 만들수는 없어요", "그냥 오는 대로 받아들이세요. 버티고 서서 오는 대로 받아들이세요"라는 문장의 대사는 잔잔하지만 거대한 파도라는 형용모순적인 느낌이 무엇인지 그대로 알게 해 주었다. 21년에는 필립로스 작가의 작품을 몇 편 더 읽어내고 싶다.


 - (금각사) 작가에 대한 편견으로 접근하기 껴려했던 작품이었다, 하지만, 유려한 문체로 서술된 금각사의 아름다움(미)에 대한 묘사와 아름다움의 이면에 흐르는 절대적인 가치(미)의 존재가 개별자를 황폐하게 추로 전락시켜 버리는 부조리에 맞서 소극적인 인식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이고 지속적인 반항으로 마무리하는 이 소설은 하나의 미학이나 철학적인 의미로서는 오래 기억될 것 같다. 

 


 

 

 

 

 

 

 

 

 


 

 

 

 

 



 

 

 

 

 

 



10. <2020년의 9월>


 ㅇ 나의 독서에 있어 2020년의 9월은 단편소설이 주는 매력이 무엇인지를 아주 조금이지만 강렬하게 맛 본 해로 기억될 것 같다. 


  - (레이먼드 카버의 대성당) 올해 읽은 소설을 통틀어서 <이방인>이 최고였다면, 단편소설 부분의 최고자리(사실은 단편부분 공동 1위로 하자)는 당연히 <대성당>이라는 작품에 양보해야 할 것이다. 소설집 속의 단편 <대성당>과 <별 것 아니지만 도움이 되는>을 읽고 나서 카스테라에 맥주를 마셨던 기억이 아직까지 잊혀지지 않는 좋은 추억으로 남아 있다. 참고로,클래식클라우드 레이먼드 카버 편이 카버의 대성당을 읽어내는데 정말 큰 도움이 되었다. 돌이켜 보니 설국을 읽고 나서는 이 시리즈의 가와바타 야스나리 편으로 감동을 되새김질하는데 도움을 많이 받았다.


  - (김연수 작가님의 작품 세 편) <소설가의 일>을 통해서 핍진성이라는 개념을 처음으로 접했다. 아직까지 머리속에 명확하게 자리잡지는 못해지만, 어렴풋이 가슴속에 개념에 남아있다.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을 읽으면서 <오이디푸스왕>에서 진실을 알기 위해서 모든걸 내던지는 오이디푸스의 결단을 보았고, 반대편 전해질 기약이 없는 진실을 말하는 자의 소리없는 간절한 아우성을 아름다운 문장으로 느꼈다.


    <일곱해의 마지막>에서는 마음속의 끓어대는 감정과 진실을 말하고자하는 열정, 용기, 욕망 등을 시대적인 보편성에 억눌려 주저앉아 버렸지만, 결코 쓰러지지 않고 그 무게를 묵묵이 머리에이고 견디고, 견디어 내며 살아 낼 수밖에 없는 시인의 거대한 침묵이 읽는 내내 마음아프게 했다.


 - (고요한 폭풍 스피노자) 잘 알지도 못하면서 스피노자를 이해하고 싶은 어설픈 욕심은 언제나 강하다. 이 책을 통해 이성에 기반하여 다른 사람을 포함한 모든 자연산물과의 마주침과 연대를 중시한 점, 개인의 욕망을 긍정적으로 해석하는 점, 당시 유럽사회를 지배하던 신에 대한 관념을 주체를 중심으로 뿌리부터 새롭게 해석한 점 등에서 그의 사상은 지금도 여전히 유효한 의미를 유지하고 있으며, 다각도로 재조명 되어야 할 사상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21년에는 스피노자에게 조금 더 다가갈수 있을까? 다가가는 징검다리로 스티븐 내들러의 책은 잔뜩 쟁여져 있는데..ㅠ.ㅠ.     

      

 

 

 

 

 

 

 

 

 

 

 

 

 

 

 

 11. <2020년의 10월>


 ㅇ 2020년의 10월은 한국 단편소설, 특히나 여작가님이 쓰신 단편소설이 주는 매력에 한껏 빠졌던 달이었던것 같다. 특히나, 10월의 추석연휴에 만났던 최은영 작가님, 김금희 작가님, 황정은 작가님의 작품은 정말 좋았고 기억에 많이 남아있다. 하지만 나에게 있어 갑 오브 갑은 김애란 작가님이었다.


  - (쇼코의 미소) 국적이 다른 인물들의 소통과 사랑이 전개되며 오해와 갈등을 일으키면서 좌절하고 아파하는 감정들이 담담하게 묘사된 작품인 <쇼코의 미소>, <씬짜오 씬짜오>, <한지와 영주>는 명확하지는 않지만, 올해의 마지막에 돌이켜 보아도 아련한 감정이 마음속에서 배어 나온다.


  - (김금희 작가님의 작품들) 김금희 작가님의 작품 <너무 한낮에 연애>, <오직 한사람의 차지>, <복자에게>도 20년의 10월을 뭉클하게 만들어 준 작품들이었다. 아울러 20년 김승옥문학상 수상작인 <우리는 페퍼로니에서 왔어> 읽었을때 뭔가 허한 감정이었으나, 산책을 하면서 '페퍼로니에서 왔다는 의미는 뭐지?', '왜 수업시간에 교수님은 우리라는 말은 뺴라고 했을까?'라는 의미를 혼자 고민해 가면서 나름대로 정리해 나가면서 소설 읽는 맛을 더 해 주었다. 순간을 잡아네는 작가의 문장이 너무 좋아서 많이 읽었던 것 같다. 다만, <복자에게>에서는 조금 실망이었다. 너무 좋은 스토리라인을 잡았고 글을 써내려갔음에도 불구하고 김금희 작가라면 작가가 뜨겁게 사유하고 느꼈던 감정들에 대해서 좀 더 치열하고 깊이 있는 문장으로 그려 낼 수 있을텐데 너무 착하고 아름다운 문장이라서 조금 아쉬웠던 기억이 있다. 


  - (황정은 작가님의 작품들) 황정은 작가님의 <백의 그림자>, <연년세세>는 겉으로 보기에는 무덤덤하고 서늘함이 배어 있는 문장과 스토리를 가지고 있는것 같다. 하지만 책을 덮고나서 가슴에 남는 잔상은 묘한 애잔함이 있다.


  - (김애란 작가님의 작품들) 개인적으로 김애란 작가의 소설집 <바깥은 여름>은 데이비드 카버의 <대성당>과 동급의 감동이었다. 다만, 감동의 결이 다를 뿐이다. 그래서 올해의 단편소설 분야의 공동 1위라고 말하고 싶다. 각 단편에 안타까운 마음에 흐르는 서늘한 시선의 묘한 조화가 선명한 인상으로 남아 있다. 특히나 뭘 더 이상 자세히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고 공감할 수 있는 아픔이 서려있는 듯 하여 21년에도 한편씩 꼼꼼하게 호빵을 뜯어먹듯이 읽어내어 속에 있는 안꼬에 다가가고 싶다. <바깥은 여름>에 실린 "입동", "침묵의 미래", "가리는 손", "건너편"은 잊기 어려울것 같다. 

     

 

 

 

 

 

 

 

 

 

 

 

 

 

 

 


12. <2020년의 11월>


 ㅇ(문학상 작품집에 대하여) 올해 단편소설집을 보는 재미를 느끼기 시작하면서 소설 작품도 작품이지만, 작품을 보는 근육을 키우기 위해서 작품의 해설이나 비평등을 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그래서 일부러 문학상 작품집을 골라서 읽어보았고 해설도 꼼꼼하게 읽었으나 근육이 늘었는지는 모르겠다. 근육이 늘어나려면 생리적으로 근육에 상처가 나야하고 그 상처가 아물면서 근육이 생기는데, 그 만큼 열심히 노력을 하지 않은 결과일지 모르겠다. 참고로 문학동네에서 발간하는 문학작품상 수상작은 작품마다 해설이 곁들여 있어서 단편의 맛을 더 깊이 있게 느끼고 이해하게 해 주어서 좋았던것 같다.


   - '20년 젊은작가상 작품집은 여러가지 생각의 거리를 던져주어서 산책길을 즐겁게 해주었다. 강화길 작가님의 <음복>은 제사를 모티브로 전통적 가부장제를 지탱하며 흐르는 문제점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거나 인지하지 못해서 벌어지는 모순과 폭력을 차가운 시선으로 그려낸 것이 마음에 남아있다.


     이현석 작가님의 <다른 세계에서도>는 낙태라는 정말 어려운 문제를 던져주었다. 이 글을 통해서 낙태문제에 대해서 기존에 생명권의 관점에서만 접근했던 나를 발견했고, 임신중단권이라는 개념에 대해서 희미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는 것은 정말 좋았다. 덫붙이자면, 낙태문제를 다루면서 도덕적인 관점에 너무 발목이 잡히거나, 도덕적인 정당성 기반해서 논리적 패러다임을 전개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거나 타당한 것은 아닐수도 있다는 생각도 해 보았다.


     김초엽 작가님의 <인지공간>은 보편성이라는 것이 어떤 이익에 개념으로 수렴되고, 이것을 보존하려는 노력이 가속화 될수록 소외되고 사라져 가는 소중한 것들에 대해서 돌이켜 보게 한다. 김초엽 작가의 작품은 처음 접했는데, 21년에는 유명한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수 없다면>을 꼭 읽게 하는 모멘텀을 제공해 주었던 것 같다. 아울러, 보후밀흐라발의 <너무 시끄러운 고독>도 <인지공간>이라는 작품과 함께 되뇌여 보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 이효석문학상 작품집중 특히나 대상작인 <소유의 문법>은 소유의 의미, 소유에 대한 욕망, 그로 인한 파괴에 대하여 담당한 문체로 울림을 주는 좋은 작품이었던 기억이 있다.


 ㅇ (이승우 작가님의 캉탕, 생의 이면) 작품이 아니라, 올해에 만난 작가라면 단연히 이승우 작가님을 꼽고 싶다. 작가의 다듬고 다듬어 낸 길지않은 한 문장, 한단락 속에는 입방체를 깍아서 다듬은 듯한 다양한 무늬와 결이 숨겨져 있고, 그 문장과 단락의 단단함이 독자의 가슴에 파고드는 가공할 에너지는 쉽게 가슴에서 떠나지 않았다. 올해는 <생의 이면>과 <캉탕>으로 입문했다. 21년에는 좀 더 많은 작품으로 단단한 에너지를 느끼고 싶어진다.

 


 

 

 

 

 

 

 

 

13. <2020년의 12월>


 ㅇ 장편소설 부문에서 올해 만난 최고의 작품이라면 주저없이 <모비딕>을 꼽고 싶다. <모비딕>은 정말 뭐라고 규정할 수 없는 말이나 글로 묘사할 수 없는 그냥 정말 거대한 것에 대한 정말 거대한 이야기이다. 이 작품에 대해서는 말할 수 있거나, 부족하고 힘없는 문장이나마 몇 줄이라도 표현할 수 있을 때까지 읽고, 이해하고, 느끼고 싶어지게 하는 마력을 가지고 있다.


    <모비딕>을 읽고 꼬리 물기 독서로 관련 서적을 추가로 몇 권 읽으면서 기억에 남을지 말지 모르는 몇가지 코드를 얻을 수 있었다. 이 페이퍼를 통해서 스스로에게 다짐하건데 21년에는 문학동네판으로 피쿼드호를 다시 타고 모비딕을 찾으러 갈것이다. 모비딕을 잡으러 가는 것이 아니다. 다만, 다시 한번 그 거대함 앞에 마주하고 싶을 뿐이다.


    <모비딕>의 감정에 취해서 술자리에서 이 책을 동료들에게 이야기 한적이 있다. 다들 고개를 절래절래하며 덮었다거나 어린시절 문고판 <백경>수준에 머물러 있어서 안타까웠다. 그렇다고 강요할 수도 없고, 사람마다 느끼는게 다르니 <모비딕>을 제대로 읽지 못했다고 타박할 수는 더더욱 없다. 그래선 안된다.


    다만, 이 페이퍼를 빌려 전하지 못한 말을 하자면, <모비딕>은 소설의 처음에 나오는 고래에 관하여 고대로부터 기술한 서적에 관한 서술, 고래의 혀끝과 머리에서 시작해서 위장 등 내장을 지나 지느너리의 끝까지 묘사하는 지겹디 지겨운 고래학에 관한 서술과, 피쿼드호의 선수부터 선미까지 세세한 묘사와 등장인물에 대한 세세한 묘사와 역할에 대한 항해학부분을 엉덩이 붙이고 견뎌낸다면 마지만 50여쪽에 등장하는 모비딕은 고래로 읽히는 것이 아니라 정말 거대한 선이자 악 같은 걸로 가슴속에 다가온 다는 사실이다. 


    모비딕을 읽으면서 책상을 지켜준 향유고래 피규어가 여전히 애정이 가고, 만취해서 들렀던 노래방에서 윤도현의 <흰수염 고래>를 목이 찢어져라 불렀던 추억이 수줍은듯 떠오른다.


 

 

 

 

 

 

 

 

 ㅇ 유시민 작가님이 알릴레오북스를 시작했다. 10여년전 어쩌다가 남들 출근할때 시립도서관에 자발적으로 유폐되어서 읽었던 <청춘의 독서>는 그야말로 독서생활 뿐만 아니라 삶의 패러다임을 전환시켜준 혁명적 만남이었다. 올해의 마지막날까지 <자유론>, <광장>, <침묵의 봄>, <코로나 사이언스>, <진보와 빈곤> 5편이 진행중이다. 21년은 유작가님의 방송을 꾸준히 따라가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


  - 레이슨 카첼의 <침묵의 봄>은 무분별한 화학살충제의 사용으로 인하여 파괴되는 생태계의 피해, 즉 단기적으로 사람이나 동물에 대한 부작용부터 장기적으로 생태계 전반에 대한 유무형의 피해는 물론이고 잠재적 위험성까지 각장이 하나의 문학작품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만큼 차분하게 절규하는 문장으로 읽는 이의 마음에 잔잔한 울림을 주었고, 책을 다 덮으면 잔잔한 울림의 모음은 큰 파동이 된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를 둘러싼 환경문제에 대해서 그 위험성을 모르거나 도덕적으로 미안함 감정을 포기하고 있지는 않고 있을 것이다. 어렸을때 이따이이따이 병이라는 이상한 단어를 외워가며 환경 문제의 심각성을 머리속으로 이해하는데 그치고 마음으로 깊이 느끼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편리함과 저렴함 앞에 합리적이라는 이성을 방패삼아 환경에 대한 미안함을 잠시 한 구석으로 밀쳐 넣고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나, <침묵의 봄>을 읽으면서 새롭게 생각하게 된 것은 지구의 환경을 파괴하는 것의 최정점에 자본주의가 있으며, 이런 자본주의와 강철같이 연결된 관료제의 모순이 또아리를 함께 틀고 있다는 점을 깊이있게 절감했다.


   그러나, 결코 간과할 수 없는 측면, 자본주의와 관료제를 연결하고 지탱해주는 궁극적인 힘 뒤에는 보이지 않는 인간의 어리석고 거대한 욕망이 있다는 점을 알았다.


  - 마가렛 애트우드의 <미친 아담 3부작> 이러한 절제하지 못하는 욕망이 어떻게 지구를 파괴하고 더 나아가서 인류를 파멸로 몰아가는지, 이에 대항해서 인간은 어떻게 새로운 공동체를 만들어내고 소위 신인류는 이 위기를 어떻게 극복해 나가는지를 마음으로 느끼수 있게 해준 작품이었다. 어쩌면 섬뜩하고 읽어 내기 불편한 지점이 많은것도 사실이지만 인간의 욕망과 파괴된 인류와 지구의 삶과 환경의 문제를 머리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가슴으로 느끼기에는 더 없이 좋은 독서였던것 같다. 믿고 보는 애트우드라는데 재미야 두말하면 입만 아프지! 개인적으로는 무엇보다 바이러스의 피해로부터 살아 남은 대항 세력이 신인류에게 언어를 가르치며 단어의 의미를 하나하나 새롭게 정의해 나가는 부분에서 애틋함과 희미한 희망을 보고 느낄 수 있어서 좋았던 것 같다. 


  - 정혜윤PD님의 <앞으로 올 사랑>은 <침묵의 봄>이나 <미친아담 3부작>을 좀 더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게 해주었으며, 코로나 시대 이후에 우리가 직면하고 고민해야할 여러가지 문제를 잘 서술해 주고 있다. 작품의 구성이 <데카메론>의 체계를 따르고 있지만 몇 편은 공감하기 쉽지 않다는 측면은 있는듯 하다. 하지만 다른 몇 편에서 작가님이 제시하는 견해나 소개해주는 책들은 깊은 관심을 일으키고 새로은 지평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해볼 기회를 제공해 주었다. 

       

 

 


 

 

 



ㅇ 올해 우리동네는 화이트크리스마스 였다. 크리스마스를 맞이하는 밤에 <올리브 키터리지>속 단편 '약국'은 들이키는 맥주캔이 늘어나고 알콜의 축적이 진해질수록 많지도 않았던 옛 여자친구들과의 아련했던 감정을 소환해 주었던 고마운 작품이다. 왠지 크리스마스 이브부터 크리스마스가 끝나는 자정까지는 이렇게 해도 도덕적으로 면책되는 기분이다.


  하지만, 크리스마스 당일 이 책의 단편을 몇 편 더 읽어내고 20년의 크리스마스를 보내는 밤에 맥주캔을 들이키며 단편들을 생각해 보니 이 책은 아련하고 따듯한 감정들만 묘사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실제 등장해서 마주한 올리브는 세월에 파도를 몸으로 격어낸 뱃살을 간직하고 모진 풍파를 거친 손으로 헤쳐낸 굵은 손목을 가진 나이든 아줌마이자 할머니이였다. 


 하지만 이 단편들이 좋았던 것은 단편단편이 올리브 키터리지라는 미국 바닷가 마을의 노인 이야기가 아니라 오늘 하루를 살아가는 대한민국의 도시인과 시골인이 모두 공감할 수 있는 사랑과 외로움에 관한 이야기였다는 것이고, 작가가 전개하는 이야기의 문장들이 직설적인듯 하지만, 읽는 독자로 하여금 충분한 공감을 일으키면서 감성적인 문장으로 둔갑시켜 버리는 묘한 느낌이 있었다는 점인것 같다. 후속작인 <올리브>를 통해서 다시 만나고 싶은 할머니이자 동네사람들이다. 근데 언제 다시만나지 21년의 크리스마스때까지 기다려야 할까?ㅎ


   마지막으로 올리브 키터리지를 덮고 책걸이 맥주를 마시며 주님(디오니소스 내지 바쿠스)께 다음과 같이 소망해 본다.


   "주님! 올리브 키터리지 읽고 던킨 도너츠를 먹지않는 우를 범하는 인간들이 없게 하소서! 맥주까지 마시면 다음에 읽는 책도 감동을 주도록 축복을 내려 주소서!"


ㅇ 니클의 소년들은 21년에 읽은 예정인 <앵무새 죽이기>를 읽고 나서 되새김질을 해보고 싶은 충격적인 작품이었다. 이런 사건을 어린아이와 청소년의 시선으로 담담하게 그려내니까 어쩌면 진부할 수 있는 스토리도 엄청난 파괴력을 가질 수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14. <2020년의 마지막날 올해의 독서에 대한 단상을 마치며>


  독서도 삶도 모든게 20년의 연초에 세운 계획대로 진행되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저의 의도에서에서 우연찮게 벗어난 조그만 비끄러짐이 더 좋은 책을 만나는 행운을 많이 가져다준 한해 였던것 같습니다. 그리고 더 좋은 책을 만날수 있도록 작은 비끄러짐의 계기를 제공해 주신 여러 알라디너 여러분들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돌이켜 보면 해외에서 발생한 코로나를 단순한 독감같은 것으로 생각하면서 맞이 했던 2020년도는 그 문을 닫으려는 올해의 마지막 시간에는 우리에게서 너무나 많은 고통을 주었으며, 소중함으로 채워져야할 2020년의 앨범을 소중함을 위한 노력마저 박탈해 버리며 공란으로 만들어버리기까지 했습니다.


  이런 어려운 환경이었지만, 알라딘 서재와 북플에서 비끄러짐을 통해서 글로 만났던 여러 이웃님들은 혹독한 자연의 시련과 자연의 시련과는 별개로 혹은 자연의 시련에 더불어서 찾아오는 온갖 역경을 몸으로도, 그리고 마음으로도 묵묵히 그저 묵묵히 견뎌내고  잘 받아내고 이겨 내셨습니다. 이름도 얼굴도 모르고 글로만 아는 한분 한분께 응원의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아마도 맞이하는 새해도 그 묵묵함의 무게와 깊이는 쉽게 줄어들지 않을 것 같습니다. 비극적인 예상으로 한해를 마무리하고 시작해서 정말 죄송합니다. 


 하지만, 힘든 2020년의 한 해를 그 무거운 묵묵함으로 버티신 여러분들께 새해에는 그 묵묵함의 무게가 좀 더 가벼워졌으면, 버티는 묵묵함에 좀 더 행복한 순간이 찾아오는 시간들이 잦아 지기를 진실한 마음을 담아 세상의 만신들에게 기도해 봅니다.


 여러분들의 버텨내는 묵묵함의 작은 울림들이 눈에 보이지 않는 미세한 거미줄 같은걸로 저에게도 전달되어서 좋은 에너지는 나누어서 증가시키고, 나쁜 에너지도 나누어서 감소시킬수 있다는 결코 헛되지 않은 바램으로 새로운 2021년을 시작했으면 좋겠습니다.


 2021년의 새해에는 더 많이 행복하십시요!


 -막시무스 드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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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1-01-01 17: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정리 정말 잘하셨어요 엄지척 ! 제가 읽은 책이 나오니 꼭 머리 맞대고 같이 읽은 것마냥 반가워지네요 ㅎㅎ 100권 돌파 진짜 축하드립니다 ~

막시무스 2021-01-02 14:56   좋아요 1 | URL
죄송해요! 미니님! 댓글이 2페이지에 넘어가 있는지 모르고 이제야 인사를 드립니다. 새해 첫 연휴의 둘째날 토요일은 잘 보내시고 계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우연찮게 댓글에서 보니 요즘 자제분의 진학문제로 고민이 많으시던구요! 얼마나 마음 고생이 얼마나 크실지 감히 짐작조차 할 수는 없겠지만, 원하시는 결과가 무사히 이루어 지시길 기원할께요! 21년은 시작부터 무게가 큰 고민을 가지고 출발하시지만 하루하루 한걸음 한걸음이 조금 가벼워지고, 행복함으로 채워 지길 바랍니다. 건강하시구요!
ps...오늘 새벽에 완벽한 아이를 읽고 미니님의 훌륭한 리뷰 잘 보았습니다. 새벽 3시경이어서 댓글은 못남겼고, 저의 댓글에 좋은 글 남겨주셔서 감사하다는 댓글을 첨언합니다.ㅎ

서니데이 2021-01-02 16: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막시무스님 새해인사 드립니다.
올해는 좋은 일만 있으시기를 기원합니다.
새해복많이받으세요.^^

말리 2021-01-02 22: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댓글이 페이지를 넘기는 것도 놀랍고, 한 해에 책을 100권 읽는 다는 것은 더더욱 놀랍습니다! 저는 천천히 읽는 편이라 한 달에 한두 권이면 많이 읽는 건데요. ㅎㅎ 좋은 한해 맞으시길 바랍니다.

scott 2021-01-08 20: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막시무스님 오늘은 던킨 맥주 세트 드셔야 하는날
이달의 당선작 축
✧ʕ•ٹ•ʔ

서니데이 2021-01-08 23: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막시무스님 축하드립니다.^^
좋은주말보내세요.^^

나비종 2021-01-24 09: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몇몇 반가운 책들이 보이네요~^^
서툰 글들이 담겨있는 제 공간에 자주 들르셔서 ‘좋아요‘로 계속 나아갈 힘을 주시는 점, 내내 감사한 마음이었습니다.
독서 속도가 느려터진 저로서는 100이라는 숫자는 넘사벽이지만 이렇게 앞에서 열심히 달려가주시는 분이 있기에 부지런히 화이팅을 다져봅니다.
올해도 막시무스님의 목표가 이루어지시기를~^--^
소개해주시는 도서는 다시 천천히 둘러보며 리스트에 담으려합니다.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막시무스 2021-01-24 09:21   좋아요 1 | URL
나비종님! 편한 휴일 보내고 계신가요?ㅎ 나비종님을 비롯하여 여기 계시는 많은 분일이 읽으신 책과 정성으로 눌러쓴 글에 오히려 선한 영향을 받는 건 저인것 같습니다.

올해의 출발도 어제 인듯 한데, 벌써 한달의 노동에 대한 댓가가 돌아오는 날이 내일이 되어 버렸네요! 항상 건강하시고 즐거운 독서를 응원할께요!ㅎ

그리고, 저는 시를 잘 모르지만 종종 올려주시는 시도 잘 보고 있어요!

즐건 주일되십시요!ㅎ

서니데이 2021-01-24 15: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시 한 번 보아도, 진짜 많은 책의 긴 페이퍼입니다.
이달의 당선작 표시가 있어 한 번 더 눈길이 가는 페이퍼예요.
막시무스님,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막시무스 2021-01-24 16:08   좋아요 1 | URL
오늘 날씨가 너무 좋은 휴일 오후네요! 평화롭기까지 하구요! 서니데이님께서도 즐건 오후되셨으면 합니다!

2021-01-31 09: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1-31 11: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1-31 11: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말리 2021-02-05 13: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올해 <코스모스>를 읽으려고 합니다.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20~30년 전에 읽었습니다. 그때는 완역판이 아니었나 봐요. 천문학자가 번역한 것도 아니고. 여하튼 이 책을 사람들과 같이 읽으려고 하는데, 보급판과 양장판 둘 중 어느 것을 택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가격이 일단 두 배나 차이가 나서, 책의 구성도 다를 것 같아서요. 글자가 다르지는 않겠지만 그 외에 보급판에 없는 것이 양장판에 있을 것도 같고, 없어도 될런지 있어야 할런지 몰라서 여쭤 봅니다. 어떤 것으로 읽으셨나요? 추천 부탁드립니다.

막시무스 2021-02-05 13:08   좋아요 0 | URL
말리님! 우선 코스모스 읽기 응원드립니다!ㅎ 저는 보급판을 구입해서 뭐라 드릴 말씀이 없지만 양장이 컬러 사진을 포함하고 있다라면 양장선택할것 같아요!ㅎ 보는 맛이 있어야 할 것 같아서요!ㅎ 참고로, 아르테에서 발간하는 책보다 여행시리즈가 있는데 팥빵같은 팟케 검색하시면 되요! 여기서 칼세이건 코스모스를 강연한걸 올려두었더라구요! 아직 책으로 나오지는 않았구요. 저도 아직 들어보진 못했지만 과학쪽에 입문이시면 괜찮을것 같은 느낌입니다!ㅎ 즐거운 하루되셔요!ㅎ

말리 2021-02-05 13:08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 보급판 읽으셨군요. 처음 읽을 때는 보급판도 좋을 것 같아요. 일단 사람들 부담이 없을 것 같아서요. ㅎㅎ 추천하신 강의 들어 보겠습니다. 저는 이 강의를 들으며 다시 읽어야지 하고 결심했습니다.
https://classe.ebs.co.kr/classe/detail/133548/40009039

막시무스 2021-02-05 13:09   좋아요 1 | URL
ebs에서도 했군요!ㅎ 저도 봐야겠어요!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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