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즈망가 대왕 3
아즈마 키요히코 지음, 이은주 옮김 / 대원씨아이(만화) / 200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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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몇 년전에 투니버스에서 <아즈망가 대왕> 애니를 방영했을 때, 하필이면 그 때 변태선생이 나오는 장면부터 보는 바람에 <아즈망가 대왕>에 대한 나의 첫인상은 한마디로 구김 또는 아주아주 흐림이었다. 애들 보는 만화에 뭐, 저런 변태가 나와서 주접거리냐.. 싶은게 나의,  <아즈망가 대왕>에 대한 첫인상이었다고나 할까나.  그 이후로 아즈망가 애니에 별로 정이 안갔고 사람들이 왜 좋아하는지 몰랐다. 진짜 그 이유를 그 때는 정말이지 몰랐다. 끽해야 풋풋한  여고생들이 나와 설쳐대는 것이 그냥 좋아서겠지하는 성적인 편견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 사실이고. 

그러다가 며칠 전에, 이 작가의 요츠바랑을 읽었는데, 오우, 재밌는 거라. <아즈망가 대왕>처럼 뒤집어질 정도로 웃기는 것은 아니었는데, 요츠바의 유쾌, 경쾌, 명랑의 허무맹랑함에 빠져버렸다. 그래서 이 작가의 출세작이라는 <아즈망가 대왕>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설마설마하는 마음을 접고 구입해서 읽다가 웃느냐고 뒤집어져 버렸다. 그것도 애들 앞에서.

읽고 있던 책이 좀 버거워서 가볍게 읽을 생각으로 <아즈망가 대왕> 집어들고 애들 앞에서 읽다가 치요와 토모 그리고 오사카때문에 자지러지게 웃으니깐, 옆에 있던 우리 아들 신기한 표정으로" 엄마, 이 책이 그렇게 재밌어. 어디,어디가 그렇게 웃기는데."  아들의 질문에 거실 바닥에서 배깔고 웃느냐 대답할 겨를도 없었다. 다 웃고 상황을 수습하려니깐 아이들 앞에서 민망하더라.  아닌게 아니라, 아들애가 나이가 어려서 이렇게 슬쩍 지나갔지, 초고학년만 이었다면, 만화책 보고 웃는 어미보고 가만 두겠어.치요, 토모 다 너희들 때문이야! 치요, 토모 다 너희들 때문이야! 

좀 맹한 모자란 구석이 있는 네컷의 만화지만, 작가의 건강하고 엉뚱한 유머을 느낄 수 있었다. 여태껏 일본 소설속의 여고생들은 우리와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온다 리쿠의 여고생은 신비하고 야마다 에이미의 여고생은 요부같은. 그래서 거리감이 있었던 것은 사실. 그런데 그러면 그렇지, 사람 사는 곳은 어디든 다 똑같아. 여고시절에는 동성끼리의 집단 어울림은 따분한 학교 생활에 활력소 같은 거 아니겠는가. 재잘거림과 별 것 아닌 것에 대한 감정적인 호들갑과 유치함등. <아따맘마>의 아리나 <아즈망가 대왕>의 치요, 토모, 오사카등과 접하면서, 역시 우리와 똑같은 여고생이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여고생들의 천진난만한 낙천성, 집단과의 어울림, 그 속에 갖는 자신들만의 세계를 쌓아가는, 사회에 나가기 전의 편안함속의 갈등 같은 것.

잠시마나 여고생들의 건강한 세계를 엿 볼 수 있는 것에 묘한 희열을 느꼈다. 다시 그 시간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지만, 한때 내가 경험했던 시절이었고 아직까지는 그 세계가 변하지 않았다는 생각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이 단순한 네컷의 만화의 때늦은 발견에 열광과 기쁨을 느끼고 무한한 애정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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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롱 1
존 케네디 툴르 지음 / 사람과책 / 199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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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전에 읽었던 릭 게코스키의 <아주 특별한 책들의 이력서>를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던 이유중의 하나가 그가 언급한 작가들과 그들의 가치를 어느 정도 알고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물론 그의 재미난 글빨이 한 몫 단단히 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가 언급한 작가들의 이름조차 들어보지 못했더라면, 그 책에 관심조차 두지 않았을 것 같은데. 여하튼 낯익은 이름의 작가들에게 끌려 읽는 재미가 만만치 않았다. 하지만 내가 도서관 사서가 아닌 이상, 그 많은 작가들을 아는 것은 무리. 릭 게코스크가 언급한 작가들중에서 존 케네디 툴는 처음 들어보는 작가였지만 그의 책<바보들의 연합>이라는 책의 발간 비화는 흥미를 끌 만 했다. 우리 나라에서는 <조롱1,2>이라는 제목하에, 번역되었다는 친절한 주가 달려 있어 검색해 보니, 이 책 아직도 팔고 있다. 혹시나 해서 주문해 봤더니, 이틀만에 집으로 배달되었다. <조롱>이 처음 발간한 시기가 1995년인데, 현재 내가 받은 <조롱>의 출판일자도 1995년이더라. 12년전 책.초판을 받은 셈이다. 하지만 책 상태는 깨끗하다.

이 책의 저자 존 케네디 툴은 1937년 뉴올리언즈에 태어났다. 툴레인 대학을 졸업한 그는 컬럼비아 대학에서 영문학을 석사학위를 받고 박사과정을 진학한 뒤 헌터 칼리지에서 잠시 강사 생활을 하기도 했다. 1954년 16살에 <네온 바이블>이라는 장편을 썼을 정도로 글쓰기에 애착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가 편집자에게 보낸 수 많은 글들은 거절당하기 일쑤였다. 그가 <바보들의 연합>이라는 책을 쓴 후, 사이먼 앤 슈스터 출판사의 편집자 로버트 고트리브에게 보냈지만, 결국 출간이 흐지무지 되자, 1969년 3월 26일 그는 황무지에 차를 세워 놓고 배기가스를 들이마시고 자살하고 만다.  

이 책을 처음 읽은 편집자 고트리브는 "이야기가 재미있고, 몇 몇 등장인물의 형상화가 완벽하며, 배를 쥐도록 즐거운 에피소드가 몇 꼭지 있다. 그렇지만 결정적 약점이 하나 있다. 재미는 있지만, 도대체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 잘 모르겠다. 달리 말하면 작품속에 어떤 핵심이 담겨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라는 말에 릭 게코스키는 "<바보들의 연합>은 미국 남부지방과 현대인의 삶을 뼈저리게 풍자하고 지독히 우스꽝스럽게 만들기 때문에 분명 재미있는 소설이다. 그렇지만, 무엇인가 빠진 것은 없을까?도덕?  절대 그렇지 않다. 내 생각으로는 작품이 아리스토텔레스적인 견지에서 좀 더 일관성을 갖도록 고트리브가 요구하지 않았을까한다. 즉 하나의 사건에 뒤이어 다른 사건이 일어나는 것은 두 사건이 연속될 개연성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바보들의 연합>은 사건에서 사건으로 이동해 나간다. 그렇지만 사건이 발생하는 방식은 하나에사 하나가 유발되는 방식이 아니다. 이 작품에서 사건은 부조리하다. 이는 이그나티우스의 삶이 자유를 향한 내리막길을 구르고 있음을 보이기 위해서이다. 고트리브는 이런 방식이 마땅치 않았겠지만, 작품이 출간된 이래 바로 여기에서 매료된 독자가 수백만명이 된다."라고 강조하고 있다. 이렇게 강조한데다가 작가 툴의 어머니인 셀마가 이 책을 발간하기 위한 집착은 이 책을 강렬하게 읽고 싶다라고 만든 동기였다. 툴의 어머니인 셀마는 아들의 유작을 들고, 
`워커 퍼시를 찾아가다.` 셀마의 첫 행보는 이것이었다. 워커 퍼시는 당시 로율라대학의 교수이자 연작 장편 베스트 셀러의 저자로, 가장 유명한 작품은, <영화광>이었다. 셀마가 왜 이 사람을 지목했는지는 잘 알려져 있지 않았다. 어쨌든 셀마는 끈덕졌다. 계속 편지를 보내고 전화를 넣고 끝없이 졸랐다. 자신의 죽은 아들이 대단한 장편소설, 미작의 걸작을 썼다고. 그러니 퍼시 선생이 꼭 읽어야한다고. 1976년 어느 날, 셀마는 로욜라 대학에 직접 찾아가 퍼시의 연구실 문 앞에 기대고 앉아, 땟국에 절어 꼬깃꼬깃해진 두툼한 먹지 타자 원고를 내밀었다. 그리고는 당장 읽어야 한다고 했다.
"제가 왜 그래야 합니다?" 퍼시는 냉담히 물었다. 그때 그는 속으로 "내키지 않은 일을 솜씨 좋게 피해온 역사가 몇 년인데"하고 으쓱해 했다. 그렇지만, 셀마같은 사람은 처음이었다 승강이를 하느니 차라리 원고를 읽어주는 것이 시간을 아끼는 일이겠다 싶었다. 퍼시는 원고를 받아들고, 이 전염병균 같은 부인네를 돌려보낸 뒤, 원고를 넘기기 시작했다. .....중략......... 첫 대목을 읽은 후, 불행하게도,그는 계속 원고를 넘겨야 했다. 흥미를 느끼고 글에 빠져들고, 점점 웃음을 터뜨렸다.(131~ 132 p) 

결국 <바보들의 연합>은 툴의 어머니와 어머니의 끈덕진 구애에 넘어간 퍼시에 위해 루이지애나 주립대학에서,  출간되었고 이듬해 <바보들의 연합>은 풀리처상을 수상하였다.  

흐흐흐, 정말이지 흥미로운 책이 아닐 수 없었다. 작가의 창작활동에 대한 대답없는 절망감과 자살이라는 마침표, 그리고 그의 어머니의 끈질긴 집념이런 것들이 나를 유혹하고 있었다. 읽어죠. 제발 읽어죠하면서 말이다. 그래 결국 사서 읽기는 했지만, 쩝.이 책의 주인공 이그니티우스 레일리라는 인물은 내가 읽은 책 중에서 가장 밥맛없는 캐릭터였다. 물론 재미 없었다는, 비평가들의 구라가 풍선처럼 부풀려진 소설은 아니었다. 단지 이그니티우스의 사회적 고립, 자기식의 해석과 제멋대로인 행동. 이런 것들이 구역질나게 했다. 내가 청춘의 나이도 아니고, 멋진 잘난 캐릭터를 요구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이 나이에 무슨 남자에 대한 아니 캐릭터에 대한 로망이 있겠나. 한마디로 이런 새끼낳고 미역국 먹은 레일리 부인이 불쌍하다고나 할까나. 답답하고 꽉 막힌 인물은 아닌데, 그의 행동과 사고 하나하나가 독자를 미치게 만든다. 너 왜 그렇게 사니? 툴의 이그니티우스라는 캐릭터에 대한 환멸은 지식인이라는 소위 말하는 책만 읽고 떠들어 대는 행동하지 않는 자에 대한 과장된 인물로 비추어졌다. 뭐 그래도 이런 재수없는 캐릭터 요즘 포스트 모던 이니 해서 환영받겠지만. 난 딱 질색이다. 

소설의 형식이 좀 특이한데, 묘사가 거의 없이 대화체이다. 그래서 흡입력도 있고 빨리 읽힌다. 연극무대를 보는 것처럼 배경은 한정적인데, 장편치고 작품속에 나오는 장소가 몇 안된다. 커다란 사건이 작품에서 절대적인 역활을 하기 보다는 이그니티우스의 우발적인 행동에 따른 이야기의 흐름이 결을 따라 간다고 해야하나. 뭐 그렇다. 책 내용은 나름 재미있었지만 캐릭터는 도저히 매력을 못 느끼겠다 정도. 영화로 왜 안만들어 졌는지 읽어보면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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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고 카브레 2 - 영화와 마술의 세계로!, 2008년 칼데콧 수상작
브라이언 셀즈닉 글.그림, 이은정 옮김 / 꿈소담이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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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사 첫 페이지를 장식하는 조르쥬 멜리에스의 흑백무성영화에 대한 오마쥬라고 할 수 있는, 브라이언 셀즈닉의 그림책은 아마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묘한 흥분으로 전율감을 느꼈을 법한 실험적이고 프로그레시브한 그림책이다. (오히려 아이들은 시큰둥^^*)

지금까지 나온 그림책 중에서 가장 두꺼운, 총 550여 페이지에 걸쳐서 그린 그림은 30년대 파리와 인물들을 그리기 위하여 총천연색의 색을 선택하기보다는 흑백무성영화시대에 걸맞게 흑백의 톤으로 처리했고, 롱 숏과 클로즈 업이라는 영화기법을 사용하여, 아주 혁식적이고 실험적으로 그려졌다. 그림은 이야기를 뒷받침하기 위한 보조적인 일러스트라기보다는 그림자체만으로 독립적으로 글과 이야기가 대등하게 맞물려 진행된다. 

소설이라기도 뭐하고 그렇다고 그림책이라고 단정지을 수 없는, 아마도 21세기의 새로운 형식의 선구적인 그림책의 탄생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브라이언 셀즈닉은 <공룡을 사랑한 할아버지>라는 책을 통해 알았는데, 그렇게 매력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던 작가였다. 그냥 여느 작가들처럼 그림 잘 그리는 작가로만 알았는데, 이렇게 큰 일을 낼 줄이야. 솔직히 칼데콧 상타기 전에는 이 책 관심조차 없었다가, 칼데콧상이 브라이언 셀즈닉의 <위고 카브레>에 돌아갔다는 글을 읽고 부랴부랴 검색해서 구입했던 것이다. 오호라, 책을 받고 보니 그의 멜리에즈에 대한 오마쥬에 흥분했고, 칼데콧상 위원들의 작품의 진면목을 볼 줄 아는 안목에 박수를 보내고 싶었다.   

브라이언 셀즈닉은 어렸을 때, 레미 찰립의 Fortunately와 Thirteen이라는 그림책을 좋아했다고 . 이 두 권의 그림책은 브라이언 셀즈닉의 작품 활동에 어느정도 영향을 끼쳤다고 쓰고 있는데, 레미 찰립의 그림책은 그림책의 페이지를 넘기는 행위가 다음 이야기를 설명하는 중요한 역활을 하고 있다고 한다 . 매 페이지를 넘길때, 비로소 그 전 페이지의 이미지들을 만드는 새로운 것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다음 페이지를 넘기면 전 페이지의 이미지와 연결하여 하나의 새로운 이미지와 이야기가 연결된다는 의미인 것 같다. 그러므로 페이지를 넘긴다는 행위가 중요한 의미로 다가오는 것이 아닌지.) 


그는 위고 카브레에서 (브라이언은 이 그림책을 소설(novel)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다른 소설들과 달리, 이미지가 이야기를 단순히 설명하는 것이 아니고 스토리를 말하는 것을 돕는다라고 쓰고 있다. 나는 정확하게 소설도 아니고, 완전한 그림책도 아니고, 사실 그래픽 노블이나 플랩북 혹은 영화도 아닌 여러가지가 뒤섞인 책을 만들기 위하여 레미 찰립이나 다른 그림책의 대가들이 사용한 방법을 사용했다고 쓰고 있다. 

그는 몇년 전에 레미 찰립을 만날 기회가 있었고, 그 이후로 쭉 친구로 지내고 있는데, 지난 12월(2007년) 레미가 브라이언이 진행중인 작품을 물어왔고 브라이언은 그에게 위고 카브레를 설명하다가 작품속의 멜리에즈와 레미가 닮았다는 사실을 깨닫고, 레미에게 작품속 캐릭터의 포즈를 부탁했다고 한다. 레미는 예스라고 승낙하고 우리가 보는 <위고 카브레>의 멜리에즈는 레미를 보고 있는 것이라고.

 


"Deleted Scene" from The Invention of Hugo Cabret

This is a finished drawing that I had to cut from The Invention of Hugo Cabret. I was still rewriting the book when I had to begin the final art. There was originally a scene in the story where this character, Etienne, is working in a camera shop. On one of my research trips to Paris I spent an entire day visiting old camera shops and photographing cameras from the 1930's and earlier, as well as the facades of the shops themselves. I researched original French camera posters and made sure that the counter and the shelves were accurate to the time period. I did all the drawings in the book at 1/4 scale, so they were very small and I often had to use a magnifying glass to help me see what I was drawing. After I finished this drawing I continued to rewrite, and for various reasons I realized that I needed to move this scene from the camera shop to the French Film Academy, which meant that I had to cut this picture. I tried really hard to find ANOTHER moment when I could have Etienne in a camera shop, but, as painful as it was, I knew the picture had to go. I'm glad to see it up on the Amazon website because otherwise no one would have ever seen all those tiny cameras I researched and drew so carefully!
--Brian Selznick

이 장면은 내가 <위고 카브레>에서 삭제해야했던 완성된 드로잉이다. 나는 마지막 작업을 마무리 해야할 때도 여전히 작품을 다시 쓰고 있었다. 원래는 에티엔이라는 캐릭터가 카메라 상점에서 일하는 장면이 있었다. 파리에 자료조사차 들리면서 나는 하루종일 구식 카메라 상점을 방문하거나 30년대 사진기나 상점의 정면을 찍으면서 보냈다. 나는 오리지널 프랑스 카메라 포스터를 조사했고 그래서 이 드로잉에서 카운터나 선반은 그 시대를 정확하게 재현했다고 확신한다. 나는 책속의 모든 드로잉들을 1/1 크기로 그렸으며, 그것들은 매우 작았는데 그래서 내가 그린 것을 보기 위하여 종종 확대경을 사용해야만 했다. 내가 수정을 계속하면서 이 드로잉을 완성한 후, 여러가지 이유로 나는 카메라 상점 장면이 프랑스 영화 아카데미로 이야기의 흐름이 이동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고 결국 이 장면은 삭제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나는 이 카메라 상점앞에 있는 에티엔의 이 그림을 실기 위하여 다른 가능성도 생각하며 애썼지만 고통스럽게도 이 장면을 떠내보내야했다. 내가 조사하고 애써 그린 작은 카메라를 누구도 볼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아마존을 통해  이 장면을 볼 수 있어서 기쁘기 그지 없다.

조르쥬 멜리에스에 대한, 흑백무성영화에 대한 자료를 조사하기 위하여 여기저기 거리를 쏘다니고, 상상하고, 수 많은 드로잉 작업을 거치면서 창작에 대한 환희와 낙담과 좌절을 느꼈을 것이다. 셀즈닉은 마지막으로 작품을 내려놓아야 할 때도 그의 머리 속에는 이야기가 맴돌고 있었다.  이야기의 흐름상, 자신이 가장 공들여 그린 드로잉이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자각하고 잘라내야 했을 때, 욕심도 함께 버렸다. 그는 창작하는 동안  작품의 요소속의 더하기와 빼기가 책의 완결성을 한층 끌어올린다는 사실을 알았으리라. 만용을 부려 무엇을 하겠는가. 하지만  바로 위의 장면을 커트시켜야할 때, 그는 참담한 기분이 들었을 것 같다. 떠나야보내야했다는 글을 읽는 순간, 작가의 씁쓸함과 옳은 결단성을 읽을 수 있었다.

위고 카브레를 만들기 위한 작업 기간이 2년 정도였다는 것을 작가후기로 알 수 있었는데, 그의 영화와 그림책에 대한 열정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작품이다. 아이들과 함께 흑백무성영화 한 편 보고 나서, 이 작품 읽으면 브라이언의 작품에 대한 열정과 애정을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우리 아들 이 작품의 두께에 허걱 놀랬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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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특별한 책들의 이력서
릭 게코스키 지음, 차익종 옮김 / 르네상스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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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처드 매드슨의 단편 <매드 하우스>에서 주인공이 살고 있는 집은 주인공의 자아가 투영된 곳이다. 글을 쓰고 싶지만 자신의 능력으로는 제대로 된 글이 써 쓰지지 않자, 점차 주인공의 정신세계는  분열되고 그와 동일선 상에 있는 그의 집도 주인을 따라 미쳐 간다. 주인공이 신경이 극에 달하자 집 또한 미쳐 괴물로 변하는데, 그와 집은 이제 동일한 자아가 아닌 각각 분리되어, 미친 집은 주인공을 살해하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이 단편 읽으면서, 유형의, 단순한 건물에 지나지 않을 것 같은 집이라는 게 주인의 성격을 그대로 답습한다는 리처드 매드슨의 집에 대한 극단적인 상상력을 엿볼 수 있었다.

집은 주인을 닮아간다는 사실. 예로  깨끗하고 정리정돈을 잘 하는 사람이라면, 집은 주인의 의지대로  먼지 한 톨 없은 집이 되어가는 것이고 너저분하고 지저분한 소유의 주인이라면, 그 집 또한 쓰레기장과 같은 집으로 변해간다는 것이다. 흔히 어른들이 지나가면서 하는 말로 집이 주인을 닮는다고 하더니라는 말이 꼭 들어맞는 표현일지도.  어쩜 집이 주인의 심리적 성격이나 행동을 여과없이 그래도 드러내는 것이라는 말은 맞는 말이지도 모른다. 우리가 어떤 집을 방문했을 때마다, 그 집에서 뿜어내는 기운을 감지하고 그 느낌은 각기 다 다르니깐 말이다. 지랄 같은 성격의 소유자집에서 신경질적인 기운을 감지했다면, 취미 생활을 넘어 강박관념으로 무엇인가를 수집하는 수집광의 집은 어떨까.  수집대상이야 사람마다 천자만별이고 각양각색이지만, 그 수집 대상이 책이라면?  책에 미친 사람의 집을 방문하고, 방의 벽마다  차곡차곡 빼곡히 꽂혀 있거나 쌓여 있는 집을 방문하고 나서면, 이런 생각을 하지는 않을까. 미쳤군!

책이 좋아 책을 수집했다가 (단순히 책을 수집했다기보다는 읽고나서 그 책을 소유하고 싶다는 것이 더 맞을지 모르겠다)  희귀본 거래업자가 된 릭 게코스키의 집은  온통 책으로 도배가 된 매드 하우스 아닐까. 그는 분명 어린 시절 뛰놀기보다는 책을 좋아하는 조숙한 소년과 청소년시절을 보낸 후, 대학에 가서도 영문학을 선택해 번듯한 대학교수 자리를 꿰하고 앉아서 지루한 강의나 해대는 삶을 마무리할 듯 하다가, 우연히도 접하게 된 초판본의 신선한 매력과 설레임 그리고 짜릿함을 느꼈던 순간도 잠시, 초판본의 거래가 엄청난 돈을 벌어다 줄 수 있다는 사실을 안 순간, 그는 미련없이 대학강사를 때려치우고 희귀본 거래라는 모험의 세계에 뛰어들게 된다. 20세기 문학을 전공한 그는 주로 20세기에 출간된 영문학 소설가나 시인의 초판본을 다루고 있는데, 그의 책 <아주특별한 책들의 이력서>는  영국의 BBC방송국에서 그가 진행했던 <희귀한 책, 기막힌 사람들>이라는 프로그램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이 책은 20세기를 산 소설가나 시인들, 나보코프, 조이스, 샐린져, 골딩, 케루액, 오스카 와일드, 조지 오웰, 로렌스, 실비아 플라스, 롤링, 베아트릭스 포토, 훼밍웨이, 이블린 워, 그레이엄 그린, 필립 라킨 그리고 존 케네디 툴등, 작가들의 숨겨진 개인적인 일화와 책에 얽힌 에피소드를 적절히 배치해 읽는 재미가 솔솔하다. 일단 한번 읽기 시작하면, 다른 책은 눈에 들어오지 않을 정도로 각각의 챕터에서 다룬 인물들과 작품설명에 쏙 빠지는데, 개인적으로 톨킨, 그린, 툴, 롤링과 실비아 플라스의 책과 관련된 일화를 재밌게 읽었다. 제일 관심밖의 인물은 역시 덜 알려진 라킨.

나 같은 사람은 초판본이든 재판이든 그 작품을 소유하고 있다는 것만해도 감지덕지한 사람이라서, 초판본을 소유하기 위하여 큰 금액을 덥석 지불하는 사람들이 좀 이해가 안 가지만, 그래도 그 거래 금액이라는 것이 미술작품에 비하면 형편없다는 사실에 좀 놀랬다. 현재 초판본 거래는 그 작품이 좋아서 그 초판본을 소유하려고 한다기보다는 투기의, 금전적인 이윤을 목적으로 초판본 책이 팔리는 것 같아 씁쓸하기는 하다. 하지만  일단 이렇게 책이  관심을 갖는 다는 자체가 책에 관해서는 빠삭한 지식을 무장으로, 그 책에 대해 뭘 알아도 알아야 투기를 하는 것이라서 할 말은 없지만. 케루액의 자필원고는 200만달러에 스포츠 구단주에 팔렸지만 자신은 이 원고를 잠시 보관하는 집사일뿐이라고 한다는데, 그러면 다음에는 도대체 얼마에 팔려고!

난 초판본이라는 것에 관계없이 읽기 위하여 책을 모으는 사람이라 일단 내 수중에 책이 들어오면 왠만해서는 방출되는 일은 거의 없지만,  릭 게코스키의 책을 읽으면서 책이라는 것도 운명적인 만남이라는 것이 있구나 하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한 권의 책이 불특정한 사람들과 만나 읽히고 나서, 무슨 운명의 장난으로 이 사람 저 사람과의 새로운 만남을 가지게 되는 팔자의 책이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헤어짐과 만남을 반복적이니, 책에게도 팔자가 있다면 , 그런 책은 기구한 팔자라고 해야할지, 아님 팔자가 세다고 해야할지.

난 그림책에 관심이 있어 주로 그림책을 수집하고 있는데, 그 대상이 콜린 톰슨과 신데렐라 여러가지 여러 판본들이다. 때때로 영어권의 그림책 작가들의 놀라운 상상력이 동원된 알파벳 그림책도 모으고 있고. 간혹 내가 왜 이런 짓을 하는지, 정말이지 미쳤구나 싶을 때가 한 두번이 아니다. 물론 월급쟁이 아내다보니, 경매금액이 나의 경제사정과 맞으면 모으는 것이니깐, 단시간에 책을 수집한 것은 아니고 강박까지는 아니다. 최근에 나의 레이더에 걸려든 책은 코미네 유라의 <신데렐라> 이 책은 한 1년 남짓 일본아마존에서 품절이라서 구입할 수가 없었는데, 일본 경매시장에서 우연히 보게 되서 구입한 책이다. 일본 경매시장은 해외배송을 하지 않아 아예 들어가보지 않았는데, 작년 12월초에 일본야후경매사이트에 들어갔다가 올라와 있길래 구매대행으로 구입한 책이다. 야후경매사이트에서 이 책 봤을 때 아주 묘한 기분이 들었는데,  이 책이 이사람 저사람을 만나 돌고 돌다가 결국에는 나란 사람하고 만날 운명이었구나,하는 유치찬란한 감상적인 기분이 들었다.

 

원제가 <톨킨의 가운> 또는 <나보코프의 나비>이기도 한 이 <아주 특별한 책의 이력서>에서 언급된 책은 어찌보면 기구한 생을 살아가는 존재일지도 모르겠다. 책 팔자 한번 더럽군 또는 기구하는구 싶을 정도로. 사람들의 눈먼 애착심이나 투기심으로 한 책장에 정착되는 삶은 포기해야 하겠지만 언젠가 탐서광에 책장에 안착하기를.

사람만이 운명적인 만남이 있는 것이 아닌 것이다. 나와 사물(책뿐만 아니더라도)이 각기 맺는 그 연이라는 것은 참. 어떤 식의 만남이든지 귀한 것임에는 틀림없다. 길던 짧던 간에 그 동안의 인연이란 각자의 운명 속에 정해져 있는지도 모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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솟아나라 호기심 펑펑 - 창의력을 키우는 과학상식
김종철 지음, 유남영 그림 / 가문비(어린이가문비)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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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글릭의 <천재>라는 책은 세계적인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의 업적과 삶을 다루고 있는데, 그 책에서 가장 인상적인 일화는 파인만의 아버지에 관한 이야기였다. 자식 교육이라면 불물가리지 않는, 우리 못지 않은 열성을 가지고 있는 이 유대인의 아버지는 파인만에게 어떤 사물에 대한 정의나 개념을 설명할 때, 상대방이 알아 듣기 쉽게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었다. 예를 들어 2m의 공룡의 키를 설명할때, 아이들에게는 2미터라는 추상적인 길이를 말하는 것이 아니고 우리집 이층 베란다 높이에 몸무게는 어쩌구 저쩌구.. 이런 식으로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었다고 한다. 아이들의 단순한 호기심조차 어떤 식으로 설명해야 아이들의 이해를 돕는지, 그리고 그 이해를 바탕으로 그 아이의 사고 체계가 핵을 만들 수 있는 지점까지 다다를 수 있는지 극명하게 보여주는 일화였다.

 

자라나는 아이들이 툭하면 내 뱉는 왜요?라는 질문는 세상을 이해하고 세상을 둘러싼 사물들을 알고 싶어하는 아이들의 왕성한 호기심의 표출이라고 할 수 있다. 어른인 우리들이 더 이상 과학적인 이론과 실제에 대해 알고 싶어하지 않는 것과 반비례하여 사물의 과학적 원리를 알고 싶어하는, 아이들의 호기심어린 질문은 우리 어른들을 당혹스럽게 하는 경우가 종종( 아니 아주 많이) 있다. 사실 어른인 나도 잘 모르는 사실들을 어떤 식으로 설명해야할지 난감할 때가 한 두번이 아니었다. 그럴 때마다 학교 다닐때 과학 공부 좀 열심히 할걸,이라고 때 늦은 후회를 하곤 하지만 학창시절에 과학적인 이론을 잘 배운 사람이라고 할 지라도 요즘 아이들의 최신식 호기심에 대한 욕구를 충족시켜 줄 수 있을까나. 그건 모르는 일이지만 아마도 나처럼 인터넷 검색해봐라,라고 말하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아이들이 인터넷을 뒤져본들 자신의 호기심에 대해 100% 이해를 돕는 설명이 있다라고 생각은 하지 않는다. 엉성한 답과 얼렁둥땅 설명만 있을 뿐.

 

어쩜 <솟아나라 호기심 펑펑>이라는 책은 아이에 뜬금없는 질문에 대한 궁여지책으로 인터넷 검색이나 뒤져보라는 나 같은 부모를 위해 탄생한 책일지도 모르겠다. 이 책은 초등학교 아이들이라면 절로 생길 수 있는 호기심에 대해, 익살맞은 삽화와 함께 쉽게 설명하고 있다. 인체호기심,동물 호기심 그리고 생활 호기심 세 파트로 나눠졌는데, 여타의 호기심 책들과 다른 점이라면 호기심에 대한 질문에 대해 곧바로 스트레이트로 설명하는 것이 아니고 삼지선답형이라는 것이다. 아이들에게 세가지 가능성 있는 답을 제시하고 어느 것이 맞는지 답을 맞춰 보는 게임도 해 볼만하고 왁자지껄하니 하는 동안  재밌다. 

 

하지만 한가지 태클을 걸자면, 호기심어린 질문중에 사람들은 키스할 때 왜 눈을 감나요라든다 술을 물보다 더 많이 마실 수 있는 이유는?, 야한 생각을 하면 머리카락이 빨리 자란다는 이야기가 진짜 일까요 또는 성형수술을 하면 관상이 바뀌나요? 같은 항목이 왜 있는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얼마나 많은 아이들이 이런 항목에 관심을 기울리고 있다고, 솔직히 지면 낭비다. 이런 몇 가지의 엉뚱한 질문 빼고는 호기심에 나름 성실하고 적절하게 설명을 했고 아이의 호기심에 대한 적절한 설명은, 훗날 아이의 정신적 성장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고 그 호기심을 바탕으로 아이가 천재(혹은 그 비스무리한 존재)가 될 수 있는 자양분을 다져주는 것이나 다름 없으므로, 이 책 한권 정도는 집에 구비하는 것도 괜찮지 않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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