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특별한 책들의 이력서
릭 게코스키 지음, 차익종 옮김 / 르네상스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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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처드 매드슨의 단편 <매드 하우스>에서 주인공이 살고 있는 집은 주인공의 자아가 투영된 곳이다. 글을 쓰고 싶지만 자신의 능력으로는 제대로 된 글이 써 쓰지지 않자, 점차 주인공의 정신세계는  분열되고 그와 동일선 상에 있는 그의 집도 주인을 따라 미쳐 간다. 주인공이 신경이 극에 달하자 집 또한 미쳐 괴물로 변하는데, 그와 집은 이제 동일한 자아가 아닌 각각 분리되어, 미친 집은 주인공을 살해하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이 단편 읽으면서, 유형의, 단순한 건물에 지나지 않을 것 같은 집이라는 게 주인의 성격을 그대로 답습한다는 리처드 매드슨의 집에 대한 극단적인 상상력을 엿볼 수 있었다.

집은 주인을 닮아간다는 사실. 예로  깨끗하고 정리정돈을 잘 하는 사람이라면, 집은 주인의 의지대로  먼지 한 톨 없은 집이 되어가는 것이고 너저분하고 지저분한 소유의 주인이라면, 그 집 또한 쓰레기장과 같은 집으로 변해간다는 것이다. 흔히 어른들이 지나가면서 하는 말로 집이 주인을 닮는다고 하더니라는 말이 꼭 들어맞는 표현일지도.  어쩜 집이 주인의 심리적 성격이나 행동을 여과없이 그래도 드러내는 것이라는 말은 맞는 말이지도 모른다. 우리가 어떤 집을 방문했을 때마다, 그 집에서 뿜어내는 기운을 감지하고 그 느낌은 각기 다 다르니깐 말이다. 지랄 같은 성격의 소유자집에서 신경질적인 기운을 감지했다면, 취미 생활을 넘어 강박관념으로 무엇인가를 수집하는 수집광의 집은 어떨까.  수집대상이야 사람마다 천자만별이고 각양각색이지만, 그 수집 대상이 책이라면?  책에 미친 사람의 집을 방문하고, 방의 벽마다  차곡차곡 빼곡히 꽂혀 있거나 쌓여 있는 집을 방문하고 나서면, 이런 생각을 하지는 않을까. 미쳤군!

책이 좋아 책을 수집했다가 (단순히 책을 수집했다기보다는 읽고나서 그 책을 소유하고 싶다는 것이 더 맞을지 모르겠다)  희귀본 거래업자가 된 릭 게코스키의 집은  온통 책으로 도배가 된 매드 하우스 아닐까. 그는 분명 어린 시절 뛰놀기보다는 책을 좋아하는 조숙한 소년과 청소년시절을 보낸 후, 대학에 가서도 영문학을 선택해 번듯한 대학교수 자리를 꿰하고 앉아서 지루한 강의나 해대는 삶을 마무리할 듯 하다가, 우연히도 접하게 된 초판본의 신선한 매력과 설레임 그리고 짜릿함을 느꼈던 순간도 잠시, 초판본의 거래가 엄청난 돈을 벌어다 줄 수 있다는 사실을 안 순간, 그는 미련없이 대학강사를 때려치우고 희귀본 거래라는 모험의 세계에 뛰어들게 된다. 20세기 문학을 전공한 그는 주로 20세기에 출간된 영문학 소설가나 시인의 초판본을 다루고 있는데, 그의 책 <아주특별한 책들의 이력서>는  영국의 BBC방송국에서 그가 진행했던 <희귀한 책, 기막힌 사람들>이라는 프로그램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이 책은 20세기를 산 소설가나 시인들, 나보코프, 조이스, 샐린져, 골딩, 케루액, 오스카 와일드, 조지 오웰, 로렌스, 실비아 플라스, 롤링, 베아트릭스 포토, 훼밍웨이, 이블린 워, 그레이엄 그린, 필립 라킨 그리고 존 케네디 툴등, 작가들의 숨겨진 개인적인 일화와 책에 얽힌 에피소드를 적절히 배치해 읽는 재미가 솔솔하다. 일단 한번 읽기 시작하면, 다른 책은 눈에 들어오지 않을 정도로 각각의 챕터에서 다룬 인물들과 작품설명에 쏙 빠지는데, 개인적으로 톨킨, 그린, 툴, 롤링과 실비아 플라스의 책과 관련된 일화를 재밌게 읽었다. 제일 관심밖의 인물은 역시 덜 알려진 라킨.

나 같은 사람은 초판본이든 재판이든 그 작품을 소유하고 있다는 것만해도 감지덕지한 사람이라서, 초판본을 소유하기 위하여 큰 금액을 덥석 지불하는 사람들이 좀 이해가 안 가지만, 그래도 그 거래 금액이라는 것이 미술작품에 비하면 형편없다는 사실에 좀 놀랬다. 현재 초판본 거래는 그 작품이 좋아서 그 초판본을 소유하려고 한다기보다는 투기의, 금전적인 이윤을 목적으로 초판본 책이 팔리는 것 같아 씁쓸하기는 하다. 하지만  일단 이렇게 책이  관심을 갖는 다는 자체가 책에 관해서는 빠삭한 지식을 무장으로, 그 책에 대해 뭘 알아도 알아야 투기를 하는 것이라서 할 말은 없지만. 케루액의 자필원고는 200만달러에 스포츠 구단주에 팔렸지만 자신은 이 원고를 잠시 보관하는 집사일뿐이라고 한다는데, 그러면 다음에는 도대체 얼마에 팔려고!

난 초판본이라는 것에 관계없이 읽기 위하여 책을 모으는 사람이라 일단 내 수중에 책이 들어오면 왠만해서는 방출되는 일은 거의 없지만,  릭 게코스키의 책을 읽으면서 책이라는 것도 운명적인 만남이라는 것이 있구나 하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한 권의 책이 불특정한 사람들과 만나 읽히고 나서, 무슨 운명의 장난으로 이 사람 저 사람과의 새로운 만남을 가지게 되는 팔자의 책이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헤어짐과 만남을 반복적이니, 책에게도 팔자가 있다면 , 그런 책은 기구한 팔자라고 해야할지, 아님 팔자가 세다고 해야할지.

난 그림책에 관심이 있어 주로 그림책을 수집하고 있는데, 그 대상이 콜린 톰슨과 신데렐라 여러가지 여러 판본들이다. 때때로 영어권의 그림책 작가들의 놀라운 상상력이 동원된 알파벳 그림책도 모으고 있고. 간혹 내가 왜 이런 짓을 하는지, 정말이지 미쳤구나 싶을 때가 한 두번이 아니다. 물론 월급쟁이 아내다보니, 경매금액이 나의 경제사정과 맞으면 모으는 것이니깐, 단시간에 책을 수집한 것은 아니고 강박까지는 아니다. 최근에 나의 레이더에 걸려든 책은 코미네 유라의 <신데렐라> 이 책은 한 1년 남짓 일본아마존에서 품절이라서 구입할 수가 없었는데, 일본 경매시장에서 우연히 보게 되서 구입한 책이다. 일본 경매시장은 해외배송을 하지 않아 아예 들어가보지 않았는데, 작년 12월초에 일본야후경매사이트에 들어갔다가 올라와 있길래 구매대행으로 구입한 책이다. 야후경매사이트에서 이 책 봤을 때 아주 묘한 기분이 들었는데,  이 책이 이사람 저사람을 만나 돌고 돌다가 결국에는 나란 사람하고 만날 운명이었구나,하는 유치찬란한 감상적인 기분이 들었다.

 

원제가 <톨킨의 가운> 또는 <나보코프의 나비>이기도 한 이 <아주 특별한 책의 이력서>에서 언급된 책은 어찌보면 기구한 생을 살아가는 존재일지도 모르겠다. 책 팔자 한번 더럽군 또는 기구하는구 싶을 정도로. 사람들의 눈먼 애착심이나 투기심으로 한 책장에 정착되는 삶은 포기해야 하겠지만 언젠가 탐서광에 책장에 안착하기를.

사람만이 운명적인 만남이 있는 것이 아닌 것이다. 나와 사물(책뿐만 아니더라도)이 각기 맺는 그 연이라는 것은 참. 어떤 식의 만남이든지 귀한 것임에는 틀림없다. 길던 짧던 간에 그 동안의 인연이란 각자의 운명 속에 정해져 있는지도 모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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