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롱 1
존 케네디 툴르 지음 / 사람과책 / 1995년 11월
평점 :
절판


 
전에 읽었던 릭 게코스키의 <아주 특별한 책들의 이력서>를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던 이유중의 하나가 그가 언급한 작가들과 그들의 가치를 어느 정도 알고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물론 그의 재미난 글빨이 한 몫 단단히 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가 언급한 작가들의 이름조차 들어보지 못했더라면, 그 책에 관심조차 두지 않았을 것 같은데. 여하튼 낯익은 이름의 작가들에게 끌려 읽는 재미가 만만치 않았다. 하지만 내가 도서관 사서가 아닌 이상, 그 많은 작가들을 아는 것은 무리. 릭 게코스크가 언급한 작가들중에서 존 케네디 툴는 처음 들어보는 작가였지만 그의 책<바보들의 연합>이라는 책의 발간 비화는 흥미를 끌 만 했다. 우리 나라에서는 <조롱1,2>이라는 제목하에, 번역되었다는 친절한 주가 달려 있어 검색해 보니, 이 책 아직도 팔고 있다. 혹시나 해서 주문해 봤더니, 이틀만에 집으로 배달되었다. <조롱>이 처음 발간한 시기가 1995년인데, 현재 내가 받은 <조롱>의 출판일자도 1995년이더라. 12년전 책.초판을 받은 셈이다. 하지만 책 상태는 깨끗하다.

이 책의 저자 존 케네디 툴은 1937년 뉴올리언즈에 태어났다. 툴레인 대학을 졸업한 그는 컬럼비아 대학에서 영문학을 석사학위를 받고 박사과정을 진학한 뒤 헌터 칼리지에서 잠시 강사 생활을 하기도 했다. 1954년 16살에 <네온 바이블>이라는 장편을 썼을 정도로 글쓰기에 애착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가 편집자에게 보낸 수 많은 글들은 거절당하기 일쑤였다. 그가 <바보들의 연합>이라는 책을 쓴 후, 사이먼 앤 슈스터 출판사의 편집자 로버트 고트리브에게 보냈지만, 결국 출간이 흐지무지 되자, 1969년 3월 26일 그는 황무지에 차를 세워 놓고 배기가스를 들이마시고 자살하고 만다.  

이 책을 처음 읽은 편집자 고트리브는 "이야기가 재미있고, 몇 몇 등장인물의 형상화가 완벽하며, 배를 쥐도록 즐거운 에피소드가 몇 꼭지 있다. 그렇지만 결정적 약점이 하나 있다. 재미는 있지만, 도대체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 잘 모르겠다. 달리 말하면 작품속에 어떤 핵심이 담겨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라는 말에 릭 게코스키는 "<바보들의 연합>은 미국 남부지방과 현대인의 삶을 뼈저리게 풍자하고 지독히 우스꽝스럽게 만들기 때문에 분명 재미있는 소설이다. 그렇지만, 무엇인가 빠진 것은 없을까?도덕?  절대 그렇지 않다. 내 생각으로는 작품이 아리스토텔레스적인 견지에서 좀 더 일관성을 갖도록 고트리브가 요구하지 않았을까한다. 즉 하나의 사건에 뒤이어 다른 사건이 일어나는 것은 두 사건이 연속될 개연성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바보들의 연합>은 사건에서 사건으로 이동해 나간다. 그렇지만 사건이 발생하는 방식은 하나에사 하나가 유발되는 방식이 아니다. 이 작품에서 사건은 부조리하다. 이는 이그나티우스의 삶이 자유를 향한 내리막길을 구르고 있음을 보이기 위해서이다. 고트리브는 이런 방식이 마땅치 않았겠지만, 작품이 출간된 이래 바로 여기에서 매료된 독자가 수백만명이 된다."라고 강조하고 있다. 이렇게 강조한데다가 작가 툴의 어머니인 셀마가 이 책을 발간하기 위한 집착은 이 책을 강렬하게 읽고 싶다라고 만든 동기였다. 툴의 어머니인 셀마는 아들의 유작을 들고, 
`워커 퍼시를 찾아가다.` 셀마의 첫 행보는 이것이었다. 워커 퍼시는 당시 로율라대학의 교수이자 연작 장편 베스트 셀러의 저자로, 가장 유명한 작품은, <영화광>이었다. 셀마가 왜 이 사람을 지목했는지는 잘 알려져 있지 않았다. 어쨌든 셀마는 끈덕졌다. 계속 편지를 보내고 전화를 넣고 끝없이 졸랐다. 자신의 죽은 아들이 대단한 장편소설, 미작의 걸작을 썼다고. 그러니 퍼시 선생이 꼭 읽어야한다고. 1976년 어느 날, 셀마는 로욜라 대학에 직접 찾아가 퍼시의 연구실 문 앞에 기대고 앉아, 땟국에 절어 꼬깃꼬깃해진 두툼한 먹지 타자 원고를 내밀었다. 그리고는 당장 읽어야 한다고 했다.
"제가 왜 그래야 합니다?" 퍼시는 냉담히 물었다. 그때 그는 속으로 "내키지 않은 일을 솜씨 좋게 피해온 역사가 몇 년인데"하고 으쓱해 했다. 그렇지만, 셀마같은 사람은 처음이었다 승강이를 하느니 차라리 원고를 읽어주는 것이 시간을 아끼는 일이겠다 싶었다. 퍼시는 원고를 받아들고, 이 전염병균 같은 부인네를 돌려보낸 뒤, 원고를 넘기기 시작했다. .....중략......... 첫 대목을 읽은 후, 불행하게도,그는 계속 원고를 넘겨야 했다. 흥미를 느끼고 글에 빠져들고, 점점 웃음을 터뜨렸다.(131~ 132 p) 

결국 <바보들의 연합>은 툴의 어머니와 어머니의 끈덕진 구애에 넘어간 퍼시에 위해 루이지애나 주립대학에서,  출간되었고 이듬해 <바보들의 연합>은 풀리처상을 수상하였다.  

흐흐흐, 정말이지 흥미로운 책이 아닐 수 없었다. 작가의 창작활동에 대한 대답없는 절망감과 자살이라는 마침표, 그리고 그의 어머니의 끈질긴 집념이런 것들이 나를 유혹하고 있었다. 읽어죠. 제발 읽어죠하면서 말이다. 그래 결국 사서 읽기는 했지만, 쩝.이 책의 주인공 이그니티우스 레일리라는 인물은 내가 읽은 책 중에서 가장 밥맛없는 캐릭터였다. 물론 재미 없었다는, 비평가들의 구라가 풍선처럼 부풀려진 소설은 아니었다. 단지 이그니티우스의 사회적 고립, 자기식의 해석과 제멋대로인 행동. 이런 것들이 구역질나게 했다. 내가 청춘의 나이도 아니고, 멋진 잘난 캐릭터를 요구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이 나이에 무슨 남자에 대한 아니 캐릭터에 대한 로망이 있겠나. 한마디로 이런 새끼낳고 미역국 먹은 레일리 부인이 불쌍하다고나 할까나. 답답하고 꽉 막힌 인물은 아닌데, 그의 행동과 사고 하나하나가 독자를 미치게 만든다. 너 왜 그렇게 사니? 툴의 이그니티우스라는 캐릭터에 대한 환멸은 지식인이라는 소위 말하는 책만 읽고 떠들어 대는 행동하지 않는 자에 대한 과장된 인물로 비추어졌다. 뭐 그래도 이런 재수없는 캐릭터 요즘 포스트 모던 이니 해서 환영받겠지만. 난 딱 질색이다. 

소설의 형식이 좀 특이한데, 묘사가 거의 없이 대화체이다. 그래서 흡입력도 있고 빨리 읽힌다. 연극무대를 보는 것처럼 배경은 한정적인데, 장편치고 작품속에 나오는 장소가 몇 안된다. 커다란 사건이 작품에서 절대적인 역활을 하기 보다는 이그니티우스의 우발적인 행동에 따른 이야기의 흐름이 결을 따라 간다고 해야하나. 뭐 그렇다. 책 내용은 나름 재미있었지만 캐릭터는 도저히 매력을 못 느끼겠다 정도. 영화로 왜 안만들어 졌는지 읽어보면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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