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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미가 없다면 스윙은 없다 - 하루키가 말하는 '내가 사랑한 음악'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윤성원 옮김 / 문학사상사 / 2006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하루키의 음악에세이집인 <의미가 없다면 스윙은 없다>에서 다룬 뮤지션들은 시더 월튼, 브라이언 윌슨(비치스의 리더), 슈베르트의 피아노 소나타 제17번 D장조 D850, 스탠 게츠, 브루스 스프링스틴, 제르킨과 루빈스타인, 윈턴 마샬리스, 스가시카오, 프랜시스 풀랑크, 우디 거스리이다. 이 전의 재즈 에세이집과는 달리 락음악에서부터 클래식까지 두루두루 다루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는데, 이 중에서 가장 흥미로운 뮤지션은 브라이언 윌슨과 브루스 스프링스틴이었다.
재즈라는 음악쟝르를 그닥 좋아하는 편이 아니라서 팝스화된 재즈가 아니라면 정통 재즈는 굳이 찾아서 듣는 편은 아니다. 재즈를 듣고 있노라면 귀가 심심하다고나 할까나. 어릴 때부터 비트가 들어간 음악에 익숙하다보니 지금도 재즈는 영 아니올시다이다. 블루스음악도 마찬가지. 하루키같은 소설가가 언급하는 재즈 매니아가 멋스러워 (한마디로 겉멋들어서) 몇 번 재즈음악 듣기를 시도는 해 봤지만, 역시나 재즈는 내 취향은 아니구나 하는, 멋적은 결론만 확인했을 뿐이었다.
나는 70년대부터 80년대 초까지 록음악에 거의 흥미를 가지지 않고 살아왔으나 , 브루스 스프링스틴의 레코드만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들었다. 두장짜리 앨범인 <The river>를 자주 들었고, 거기에 수록된 <헝그리 하트>는 특히나 좋아한 노래였다.
보통 팝의 전성기가 80년대였다고들 하니 지금 생각해 보면 라디오만 틀면 거의 24시간 팝음악이 흘러나왔던 중고등학교시절 내내 내 귀는 호사의 극치였지 않았나 싶다. 브루스 스프링스틴을 알 게 된 것은 그의 84년도 최고 히트 앨범 <Born in the USA>를 통해서였는데, <Born in the USA>를 히트 시키고 나서 연달아 Dancing in the dark 과 Cover me 가 빌보트 차트 상위에 오르면서, 이 정도로 히트곡이 많으면 브루스의 앨범 한 장 정도는 갖고 있어도 되겠다 싶어, 그의 앨범 <Born in the USA>를 레코드가 아닌 테프로 (가격이 더 쌌다) 구입했었다. 구입 즉시, 앨범에 수록된 곡 한곡 한곡을 듣고 있는데, 라디오에서 흘러나왔던 Born in ths USA, Dacing in the dark나 Cover me 같은 신나고 경쾌한 음악보다는 I'm on fire 나 downbound train 같은 씁쓸하고 아린 노래가 더 맘에 들었다. 게다가 그때가 브루스의 절정기여서 AFKN에선 그의 Born in the USA 이전의 앨범에 수록된 곡도 간간히 흘러나왔는데, 그의 The river, Hungry heart 라는 곡도 그 때 알게 되었다. 그의 곡을 들으면 들을수록 그의 음악세계를 구체적으로 알고 싶다라는 생각이 본격적으로 들면서 우리나라에서 발매된 그의 테프를 틈틈히 모으기 시작했다. 80년대 그의 정규 앨범은 우리 나라에서 발매 되지 않아서 실제 그의 <Thr river>와 <Nebraska>는 90년대 초반 CD로 구입했다.
정작 브루스를 알게 해준 Born in the USA , Born to run 테프는 찾다가 찾다 못 찾았다.
1949년 9월 23일 본명 Bruce Frederick Springsteen은 뉴저지주에 있는 freehold의 중산 계층이 모여 사는 공장도시에서 태어났다. 그가 진정으로 음악에 눈을 뜬 것은 9살때였는데 1956년 9월 브루스는 당시 수백만의 시청자를 가졌던 에드 설리반 쇼에서 록의 제왕 엘비스 프레슬리를 보았던 것이다. 어린 브루스는 프레슬리에게 압도당해 어머니를 졸라 그 다음날로 기타를 샀다. 하지만 기타를 치기에는 그의 손이 작았고 정규적인 교습은 생각할 수도 없었던 상황이었던 만큼 브루스는 좀 더 기다려야 했다. 1963년 실질적으로 18달러를 주고 자신의 첫 기타를 구입하고 사촌에게서 기타코드를 배우면서 엘비스 프레슬리, 샘쿡, 비틀즈, 척 베리, 팻 도미노, 롤링 스톤즈, 만 프레드만, 로이 오비슨, 그리고 모타운과 스택스 사운드의 음악을 들어면서 자신의 음악적 영역을 넓혀 나가는 동시에 음악활동을 반대하는 부모와 대립하며 불화를 겪었다. 클럽을 전전하거나 세션활동하는 하면서 서서히 자신의 앨범을 발표하게 되었고, 음악 활동 초기에 그는 뉴 밥딜런이라는 칭호를 얻게 되었지만 그 뉴 밥 딜런이라는 칭호를 벗어던지며, 1975년 발매된 <Born to run>를 통해 노동계급의 대변인으로 성장하게 되었다. 꿈과 절망, 혼란, 일상적인 일에서 오는 권태, 잃어버린 사랑과 우정, 도피, 욕망, 생존 투쟁, 장를 향한 열망등을 솔직담백하게 묘사함으로써 록이 새로운 메시아로 확고부동하게 자리매김하게 시작한다. 그 후 <The river>와 보컬과 기타로만 만든 <네브라스카>와 그를 슈퍼 스타로 만들어 준 <Born in the USA>를 발매하였고 지금2000년에도 여전히 그는 활발한 순회공연과 앨범을 내고 있다.
하루키가 지적하고 있듯이, 브루스가 허스키한 목소리로 격한 소리로 질러대는, 미국애찬가쯤으로 알고 있는<Born in the USA>는 브루스가 "미국에 태어났네 라고 외칠 때 거기에는 두말할 나위도 없이 분노가 있고, 희의가 있고, 슬픔이 있다" 그는 미국에서 태어난 자부심보다는 미국정부에 대한 비난과 분노에 대한 그의 격정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앨범 표지에서 알 수 있듯이, 그는 자랑스러운 성조기 앞에서 오줌을 누는 듯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성조기에 대한, 미국정부에 대한 경멸은 아무리 노력해도 절망뿐인 노동자들의 삶에서 연유하고 있다.
Born in the USA
Born down in a dead man's town
The first kick I took is when I hit the ground
You end up like a dog who's been beat too much
Till you spend half your life just coverin' up
Born in the USA
I was born in the USA
I was born in the USA
Born in the USA
Got in a little hometown jam
So they put a rifle in my hand
Sent me off to a foreign land
To go and kill the yellow man
Born in the USA
I was born in the USA
I was born in the USA
I was born in the USA
Born in the USA
Come back home to the refinery
Hiring man says, "Son, if it was up to me!"
Went down to see my VA man
He said, "Son, you don't understand!"
I had a brother at Khe Sahn
Fightin' off them Viet Cong
They're still there
He's all gone
He had a woman he loved in Saigon
I got a picture of him in her arms now
Down in the shadows of the penitentary
Out by the gasfires of the refinery
I'm ten years burnin' down the road
Nowhere to run, ain't got nowhere to go
Born in the USA
I was born in the USA
Born in the USA
I"m a long gone daddy in the USA
Born in the USA
Born in the USA
Born in the USA
죽은 사람만 사는 듯한 마을에서 태어나 내가 최초로 한 킥은 땅을 차는 일이었지. 너무나 많이 얻어 맞았어 개처럼 인생을 끝내. 이제 인생의 반을 그것을 치유하느라 보내야 하지. 미국에서 태어나 작은 고향 마을에서 말썽에 휘말렸어. 그러자 그들은 내 손에 라이플를 주었고 그리고는 나를 외국땅으로 보냈지. 가서 황인종을 죽이라구. 미국에서 태어나 고향으로 돌아와 제련소에 들어갔어. 고용주는 말하길, 이봐 그게 만일 나한테 달렸다면'이라고. 재향군인회 사람을 보러갔지. 그는 말하길 이봐 아직도 이해 못하겠어라고. 미국에서 태어나. 나는 케산에 형이 한 명 있어. 그는 베트콩과 싸우고 있지. 베트콩들은 아직 그곳에 있는데 그는 가버리고 없어. 미국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나는 망나니라우. 사이공에서는 그가 사랑하던 여자가 있었지. 이제 내갠 그녀의 품에 있던 그의 사진 한장이 남아 있어. 교도소의 그는 아래 있다가 제련소의 가스 불길에도 내몰린채 나는이제 10년째 길거리에서 헤매고 있지 달릴 곳도 갈 곳도 없이. 미국에서 태어나(100% 맞는 해석이라고 할 수 없슴. 특히나 첫 두문장 자신 없슴)
내가 처음으로 미국에 간 것은 1984년 여름이었다. 당시 미국을 방문했던 이유 중 하나는 소설가 레이몬드 카버를 인터뷰하기 위해서였다. 미국에 도착해 공항에서 택시를 탔을 때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발매된 지 얼마 안 된 LP <Born in the USA>이 거대한 광고 간판이었다. 그 광경을 지금도 뚜렷히 기억하다. 거대한 성조기와 색 바랜 청바지 뒷주머니에 아무렇게나 구겨 넣어진 빨간 야구 모자, 그렇다 1984년은 그야말로 브루스 스프링스틴을 위한 해였다....중략.......위싱턴주 올림픽 반도에위치한 레이몬드 카버의 집 거실에서 그와 마주 않자 그의 소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던 중, 나는 문득 브루스 스프링스틴의 <헝그린 하트>의 가사를 떠올리게 되엇다 그리고 이렇게 생각했다. 이 곡의 가사는 생각해보면 마치 카버의 소설 한 구절 같지 않은가 하고 말이다. 거기에 공통되어 있는 것은 미국의 블루컬러 계급이 가지고 있는 폐쇄감이며 그로 인해 사회 전체에 야기된 "황량함"이다 노동자 계급의 사람들은 대개 말이 없고 대변인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들은 쓸데 없이 말을 많이 하는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것이 오랜 세월에 걸쳐 그들이 살아 온 방식이다. 그들은 다지 묵묵히 일하고 묵묵히 살아왔다. 그리고 오랜 세월에 걸쳐 미국 경제의 기틀을 뒷받침해왔다. 레이몬드 카버가 이야기로서 문장에 묘사하고, 브루스 스프링스틴이 이야기로서 노래한 것은 그와 같은 미국 노동자 계급의 생활이면 심정이며 꿈이며 절망인것이다. 레이몬드 카버, 브루스 스프링스턴 그들 두 사람은 그렇게 80년대을 통해 미국의 노동자계급을 위한 소수의 귀중한 대변인 되었다.
미국 문학은 사회병폐나 부조리한 세계 또는 미쳐 가는 세계와 내면적 자아의 충돌 같은 세계는 많이 그리고 있지만 정작 노동자들과 관련된 문학은 거의 찾아 보기 힘들다. 하루키는 그와 같은 현상에 대해 " 미국의 문화나 예술이 기본적으로 동쪽 해안을 중심으로 한, 지적 엘리트 계층에 의해 형성되면서, 노동자 계급의 생활을 진지하게 묘사하려는 예술가가 거의 등장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다. 정확히 미국문학을 잘 모르는 입장임에도 불구하고 반공감이 가는 말이다. 미국 문학이 지적 놀음에 빠져 있는 사이, 스프링스틴은 80년대 노동자들의 일상의 삶이 어떤 것인지 노래하고 있었던 것이다.
<The river>
I come from down in the valley where mister when you're young
They bring you up to do like your daddy done
Me and mary we met in high school when she was just seventeen
We'd ride out of that valley down to where the fields were green
Wed go down to the river
And into the river we'd dive
Oh down to the river we'd ride
Then I got mary pregnant and man that was all she wrote
And for my nineteen birthday I got a union card and a wedding coat
We went down to the courthouse and the judge put it all to rest
No wedding day smiles no walk down the aisle
No flowers no wedding dress
That night we went down to the river
And into the river we'd dive
On down to the river we did ride
I got a job working construction for the johnstown company
But lately there aint been much work on account of the economy
Now all them things that seemed so important
Well mister they vanished right into the air
Now I just act like I dont remember, mary acts like she dont care
But I remember us riding in my brothers car
Her body tan and wet down at the reservoir
At night on them banks I'd lie awake
And pull her close just to feel each breath shed take
Now those memories come back to haunt me, they haunt me like a curse
Is a dream a lie if it dont come true
Or is it something worse that sends me
Down to the river though I know the river is dry
Down to the river, my baby and i
Oh down to the river we ride
10대 시절에 만난 메리를 임신시키고 19살 생일날에 그는 출근카드와 결혼예복을 입고 법원으로 가 서약을 한다. 결혼식날 웃는 사람은 없고 결혼 행진도 없으며 결혼식 꽃도 그리고 웨딩드레스도 없다. 핑크빛 서약이나 부푼 희망의 미래 따윈 없다. 뻔히 보이는 미래의 절망을 안고 부서진 꿈(shatted dream)을 뒤로 한채, 10대부터 노동자의 삶을 선택하고 아마도 평생 그는 노동자로서 살아 갈 것이다. 삶의 저주는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작은 월급으로 그날 그날의 삶을 선택하고 더 나아질 것이라고는 눈꼽만큼도 보이지 않는 미래의 "황량함"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보통 사람들처럼 스물타운에서는 그렇게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존 쿠거 멜랜켐프의 small town이란 곡에서) 스물 타운에서 태어나 자라 그 곳의 커뮤니티와 관계를 맺으며 죽는 곳. 친구들과 부모들이 살고 있으며 적은 기회와 교육 받으며 자란 스물 타운. 평범한 인생이란 그런 것이라고 말하지만 절반은 희망을 접고 살아야하는 것은 절망의 길(알콜 중독 같은)로 인도하는 것이리라. 그 속에서 서로의 결속은 있어도 삶이 더 나아지라는 법은 없다.
하루키는 브루스와 레이몬드 카버를 비교하면서, 두 사람의 작품이 놀랄만큼 흡사하다고 말하고 있다. "공통되는 특징으로 들 수 있는 것은 거기에 담긴 황량하고 통절할 정도의 리얼리티다. 스프링스틴은 노동자 계급의 젋은이들의 심정을 실로 정직히, 정말로 솔직히 묘사했다 거기에는 생생히 살아있는 이야기가 있었다. 그리고 스프링스틴은 그 이야기를 로큰롤이라는 강력한 도구에 실을 수 있었다"라고 말하고 있다.
하루키의 글은 짧지만 정곡을 찌르는 맛이 있다. 내가 지금까지 들어온 락음악 중에서 브루스만큼 노동자들의 생활을 리얼하게 그리고 씁쓸하게 묘사한 락커는 없었다. 게다가 브루스만큼 미국적인 락커도 없다. 그가 우리나라에 어필하지 못한 것은 상당히 그가 미국적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미국내 그의 영향력은 대단한 것이어서 숀펜의 감독 데뷔작인 <하이웨이 페트롤>은 브루스의 <네브라스카>의 곡이 모티브가 되었으며 미드 콜드 케이스 3x11는 드라마 전체가 그의 곡으로 헌정되었으며 극의 모티브 또한 그의 곡 the river다. 그의 노래속에 표출되는 소외된 계층에 대한 직설적인 노랫말은 현재 우리네 월급쟁이의 보편적인 일상과 다를 바 없다. 그의 노랫말은 희망적인 메세지보다 어두운 정서가 깔려 있고 드러내고 싶지 않는 치부를 노출시킨다. 들으면 들을 수록 가슴에 묵직한 무엇인가가 걸려 있는 것 같기는 하지만, 락이라는 음악 형식이 그 껄그럽고 어두운 것을 토하게 해 준다. 알 수 없는 마력이라고나 할까.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미국문학이 고도의 지적 놀음에 빠져있는 동안 미국의 대중문화(팝음악이든지 영화라든지 아니면 드라마)가 추상성을 배제하고 미국의 어두운 현실을 담당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고 말이다. 지금도 브루스는 미국 어디에선가 순회공연을 하면서 하루 일을 마치고 오는 관객들과 헝그리 하트나 리버를 같이 부르며 반미국을 외치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