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함쟁이 엄마 비룡소의 그림동화 148
유타 바우어 글.그림, 이현정 옮김 / 비룡소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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쑥쓰러운 고백이지만 난 적어도 일주일 3~4번 정도는 하루가 저물무렵, 저녁밥을 하면서 시원한 캔맥주 한잔을 들이킨다.  벌컥벌컥 마시는 시원함과 알콜이 주는 노곤한 알딸딸함이 그날 그날 아이들에게서 받은 스트레스를 어느정도 풀어주기 때문이다. 결혼 하기 전, 아이들을 키우는 것이 이렇게 힘든 중노동이라는 것을, 그리고 밑빠진 독에 퍼붓는, 끝없는 인내와 사랑이 필요한 자리라는 것을 그 누구도 알려주지 않았다.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24시간 365일 사적인 시간이 전혀 없다는 것을 의미하고 구속을 의미하고 절대적인 복종을 의미한다. 아마도 여기에서 부모와 아이의 불화가 시작되는지도 모르겠다.

흔히 우리는 아이가 로봇처럼 움직여 주길 바란다. 시키는 대로.  하지만 하지마, 안돼라는 말을 곧이 곧대로 들어먹은 아이는 맹세컨데 없다. 그 자그마한 몸에서 표현해내는 거부의 몸짓은 투정 그 이상이다. 반항이라고는 뭣하지만 여하튼 뭐해라든가 하지마라고 하는 말들이 군대마냥 아이에게 들어먹히리라고 생각하면 오산. 뺀질뺀질거리기 시작하면서 나 보란듯이 가볍게 거역하기 시작하더니 내가 무슨 말을 해도 들어먹히질 않는다(한마디로 막가기 시작하는 것이다). 처음엔 참아야지 하고 맘 먹다가 점점 신경이 거슬리는 것도 잠깐, 아이의 행동에 속이 부글부글 끓어오르다가 마침내 폭발하기에 이르른다. 폭발은 화산 폭발 저리가라다. 표정은 험해지고 말소리는 굉음에 가깝다.  펑!

아이를 키우면서 고함을 지르지 않는 부모는 없다. 적어도 부모이거나 부모였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신의 아이에게 소리를 질렀을 것이다. 무난한 성격인 나조차 아이가 저지르는 못마땅한 행동에 분을 못 이겨 고함을 지른 적이 몇 번 있었다. 정말로 몇 번!  아이의 행동을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애썼음에도 불구하고, 어쩔 수 없이 속에서 끓어오르는 분노를 참지 못하고 온갖 몹쓸 말을 쏟아내면서 고함을 미친듯이 지른 적이 있었다. 난 적어도  너희를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그러니 제발 엄마인 내가 하는 말 좀 들어달라는 애원을 고함으로 표출했던 것이다. 아이에게 소리 친 것을 정당화하려는 것은 아니다.  나도 안다. 엄마가 소리치기 전에 말 좀 잘 들었어야지 하는 말은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아이는 로봇이 아니고 자신의 의지대로 할 수 있는 한 명의 살아있는 인격체라는 것을. 결국 난 아이들에게  몇 번 소리 지른 것으로 더 이상 아이들에게 소리치지는 않는다.  살면서 내가 아이들에게  습관적으로 고함을 지르지 않는 이유는 딱 한가지이다. 죄.책.감.  엄마의 고함에 주눅에 든 아이를 보면서 희열을 느끼며 가정에서 우월적 위치를 재차 확인하려는 새디스트적 관계를 거부하거니와  고함 친 후, 시원하다거나 통쾌하다는 그런 느낌보다는 알 수 없이 밀려드는 죄책감으로 몇 시간이고 몸살을 앓고 나서는, 결코 아이에게 소리를 지르는 것이 나 자신의 분노를 잠재우는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판단때문이었다.

고함이 아이에게 얼마나 큰 상처를 남기지 그것이 얼마나 치명적인지 유타 바우어는 자신의 <고함쟁이 엄마>라는 그림책에서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엄마의 언어폭력과 고함은  아이의 몸을 갈기갈기 찢어놓고 그 신체의 일부분들은 도처에 널부러진다. 어디 몸만 상처 받았겠냐 마음은 칼로 난도질 당한 것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아이의 상처받은 마음을 치유하는 것도 결국에는 엄마 몫이다. 맨 마지막에  엄마펭귄은 아기 펭귄의 몸을 하나 하나 찾아 꿰매주고는 미안해라고 말한다. 아, 미안해할 짓은 하지 말자.  

내가 즐겨보는 드라마인 <criminal mind> 1x14 에피소드에 이런 말이 나온다.살면서 부모가 되는 것보다 더 좋은 재능은 없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그 재능을 학대하고 낭비하고 있다고(There is no greater gift in life that of being a parent. Yet so many of us abuse and squander that gift.) 모든 육아서적이 아이들편이듯이, 부모가 된 이상 어쩔 수 없이 욕망보다 희생이 앞서야한다는 각오를 다져야겠다. 그나마 나에겐 시원한 맥주가 있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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