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입] Duran Duran - Greatest
듀란듀란(Duran Duran) 노래 / 이엠아이(EMI) / 199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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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인용의 영팝스세대인 나는 10대 시절에는 듀란듀란을 좋아하지는 않았다. 지금도 그렇게 좋아한다고 할 수는 없지만, 지난 그들의 내한 공연에 대해 꽃들에게 희망을님이  쓴 리뷰를 읽고, 갑작스레 시간을 달려 십대시절로 되돌아간 기분이었다. 80년대는 흔히 지금은 명반이라고 불리우는 반젤리스의 Heaven & hell 이나 블랙 사바스의 Heaven & hell 같은 음악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라디오에서 흘러나왔던 시대였다. 10분짜리는 물론 20분짜리의 프로그레시브음악이나 클래시 메탈이 밤낮을 가리지 않고 흘러나왔던, 팝의 황금기이자 김기덕, 황인용, 박원웅, 김광한 같은 팝 전문 디제이들의 전성기였다고 할 수도 있었다. 물론 AFKN에선 케이시 케이슴과 울프맨 잭의 전성기였기도 하고.

80년대의 팝음악은 질적이나 양적으로 넘쳐 흐르던 시기였다. 당연히 듀란듀란같은 꽃미남들로 구성된 구룹은 음악성이 월등한 쪽에 끼기 보다는 얼굴로 한 몫 본다는 시각이 더 우세했고 그들의 경쾌한 팝 음악은 하이틴 특히나 여자아이들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지금 다시 그들의 save a prayer 나 오디너리 피플을 들고 있으면, 꽃미남이라는 이유 때문에 음악적으로 덜 평가된 구룹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긴 든다. 하지만 명심해야 할 것은 70년대를 이어서 80년대 뮤지션들의 실력이 쟁쟁했다는 점이다. 70년대에 시작된 메탈이나 프로그레시브음악을 하던  실력이 탄탄한  많은 뮤지션들이  80년대에 들어오면서 본격적으로 팝화되던 시절이므로, 듀란듀란의 음악실력으로 빌보드 차트 상위까지 오르고 앨범은 플래티늄을 받을 지언정, 당시에는 그들보다 덜 팔리고 덜 알려진,  더 뛰어난 뮤지션들이 날고 기었다는 사실일게다.

세월이 흘러, 2008년 4월, 중년의 불은 몸으로 대한민국의 봄과 함께 그들이 왔다. 사실 난 꽃님의 포스팅을 보기 전에는 듀란듀란이 한국에 내한했는지도 몰랐다. 꽃들에게 희망을님의 <아줌마의 추억>를 읽으면서, 번쩍하며 불러 들인 나의 10대 시절의 팝음악의 얽힌 파노라마가 계속해서 상영되었다.

고등학교 시절 가장 친하게 지냈던 한 친구가 이 듀란듀란의 사이먼 르 봉을 열렬하게 좋아했다. 자신이 사이먼의 아내라면서, 당시 사이먼이 사귀였던 여자 모델 야스민(?)에 대한 엄청난 질투를 불사르며 자신은 미국을 꼭 가서 사이먼을 만날 것이라고 다짐을 하는 것이었다. 물론 듀란듀란의 모든 테프를 구입한 것은 물론이요(사실 그 때는 지금처럼 인기 있다고 해도 그들의 앨범 전체가 레코드로 나오지도 않았다).  그 친구네 집에 가는 도중에도 그리고 그녀의 다락방에 부쳐놓은 듀란듀란 특히나 사이먼의 사진을 보면서 재잘재잘 이야기를 나누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이러했으니, 내 어찌 듀란듀란을 잊을소냐!

듀란듀란, 당시에는 남자치고는 얼굴들이 이쁘다보니 음악쪽으로 제대로 평가받지 못 했을지라도 이 정도의 음악이라면 팝음악사에는 길히 남을 만하지 않을까 싶다. 지금 기억하기로는 데뷔 초기곡이자 빌보드 차트 상위에 오른,  드럼이나 기타음보다는 신서사이저를 앞세우며 가볍고 경쾌한 hungry like the wolf나  wild boy, 그리고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했던 girls on flim 이나 활동중반기, 좀 더 성숙한 음악적인 변화가 보인 히트곡 notorius, a view to a kill ,ordiary people, save a prayer등이 실려있다. 이 음반을 훑으면서, 중력의 법칙을 새삼 확인했다. 높은 정상에 있고 싶어하는 욕망을 자꾸 끌어내리려고 하는. 해체 시기만해도 음악이 신통찮다. 음악에 대한 열정보다 음반이 가져다 준 수입을 어디에 쓸 것인가에 관심이 많아서 그런 것은 아니었을까.

지난 번에 남동생하고 같이 듀란듀란 음악 들으면서 "누나, 듀란듀란은 확실히 음악이 저 평가 되었던 것 같아"라는 말이 다시 귓등에 울린다. 상대평가겠지! 당시에 음악적으로 실력있는 구룹이나 아티스트가 많았으니깐. 듀란듀란이 낄 자리는 없었잖아."라는 말로 되맞았지만, 지금 현재 2008년에 들어도 손색이 없다는 것은 그들의 음악이 어느정도는 앞섰다라고 할 수도 있겠다.  20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그들의 음악을 다시 편견없이 듣고 싶고 정당한 평가를 내릴 수 있을 것이며 경쟁 치열한 팝의 역사에서 지금껏 살아 남은 것으로 봐서 그들의 음악이 후진 것은 결코 아니었던 것이다.

아마 그 아줌마도 이 시디를 사서 예전 10대 시절 몸살을 앓았던 첫 사랑 존을 떠올리지 않을까나. 요즘 파는 시디들을 훑어보면 정규앨범이 사라졌다. 대부분이 히트곡 모음집들 뿐이니. 아쉽다. 예전에는 정규 앨범 일러스트가 거의 예술적 경지였는데........음악이 죽었다라는 말을 실감한다. 요즘 그나마 에이브릴 라빈이 괜찮던데.

덧붙여 : 10대 시절 난 듀란듀란보다  히어로나 차이나 걸을 부른 데이빗 보위와 리버를 부른 브루스 스프링스틴을 좋아했고 80년대가 거의 끝날무렵, 락음악이 거의 죽다시피 해 그 대안으로 나온  너바나의 얼터네이티브 락과 메탈리카의 트래쉬메탈 사이에서, 난 메탈리카을 선택했다. 20대 무엇을 해야할지 몰라 방황도 많이 했던 시기여서 그런지 라스 울리히의 드럼이 시원하게 들렸던 것이다. 지금은 메탈음악 들으라고 해도 저절로 클래식 특히나 아리아쪽을 선호하지만 나도 예전에는 락이나 메탈을 들었었다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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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나귀 실베스터와 요술 조약돌 뒹굴며 읽는 책 2
윌리엄 스타이그 글 그림, 이상경 옮김 / 다산기획 / 199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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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라시노 게이노의 <회랑정 살인사건> 겉표지 등장인물들의 눈동자 없는 허연 눈을 보면서, 자켓디자이너가 작중인물들의 눈동자를 어떻게 그려야할 줄 몰라서, 자신이 없어서 공백상태로 놔 둔  것인지 아니면 미스터리물 답게 누가 범인인가에 대한, 등장인물들의 공백의 심리 상태를 나타내는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사실 조잡하고 뜨악해 보였다. 

실지로 눈, 특히나 눈동자의 위치는 그리기 쉽지는 않다. 대체로 인물 표정을 위해 눈의 형태, 입이나 눈썹을 다양하게 그림으로써 인물들의 감정을 풍부하게 나타내는데, 윌리엄 스타이그만큼  눈동자의 위치를 통해 인물의 생생한 표정을 포착한 경우도 드물지 않나 싶다.

젋은 시절  카툰니스트로 활동하며 카툰의 왕이라는 호칭을 얻은 그는 이순의 나이에 그림책 세계에 뛰어 들면서  독특한 카툰스타일의 그림과 역발상으로 아이들을 사로 잡았다. 같은 시기에 비슷한 나이로 데뷔한 레오 리오니의 도덕적이고 우화스러운 그림책과는 달리, 스타이그는 나이에 걸맞지 않게 이분법적인 결말에서 탈피하여 전복적인 이야기를 통해 아이들의 사고를 하나의 이데올로기 틀에 가두는 것이 아니고  사물을 입차원적으로 볼 수 있게 그리고 자유롭게 생각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하였다. 그런 면에서 그의 <슈렉>은 그림책 역사에서 한획을 긋는 기념비적인 작품이 될 지도 모르겠다(아, 헐리웃이 망쳐놓은 슈렉이여!) 

윌리엄 스타이그의 그림은 카툰스타일이라서 처음 보는 사람들은 그렇게 매력적으로 다가오지  않을 수 있다. 나 또한 처음엔 그의 카툰 스타일에 시큰둥했으니깐. 사실 스타이그의 카툰의 매력을 알려 준 것은 아이들이였다. 큰 애는 그의 <슈렉>과<자바자바정글>,<엉망진창 섬>을, 작은 애는 이 그림책을 하루에도 3,4번씩 읽라고 가져오면서 그림을 찬찬히 뜯어볼 수 있었고, 그의 캐릭터의 얼굴 표정이 여타의 그림책 등장인물들보다 더욱더 생생하다는 느낌을 받고 부터, 그 차이가 무엇인지 궁금하기 시작했다. 수십번을 아이들에게 읽어주고 나서 그게 무엇인지 알았다. 등장인물들의 눈동자 위치가 다 틀리다는 것. 그리고 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 눈동자의 점 하나가 인물의 표정을 생생하고 풍부하게 하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특히나 이 작품 실베스터가 사라지자 동네 개들이 그를 찾기 위해 언덕에서 끙끙거리는(?) 장면에서 개의 눈동자의 위치가 다 틀리다는 것을 알아채는데 한참 걸리지 않을까 싶다. 너무나 당연하고 자연스러워서, 잘 그린 그림이라는 느낌조차 못 받는다. 떼 지어 있는 개의 눈을 이렇게 다양하게 그리고 자연스럽게 그릴 수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특히나 바바라 쿠니여사의 캐릭터의 희멀건 눈과 비교하면 스타이그, 그가 얼마나 뛰어난 카툰니스트인지 알 것이다.)

이 후부터 그의 그림책을 읽으면서 캐릭터을 훑어보는 재미가 보통이 아니다. 어쩜 이 모든 것이 자신이 원하는 그림이 나오기 위해서 수 십번씩 다시 그린 결과이기도 하지만, 그것은 그보다 더 그림을 잘 그리는 다른 그림책 작가도 그리기 힘든 그의 천부적인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 사실 난 레오 리오니의 <프레드릭>을 읽고 그림책에 뽕 간 건데.... 어째, 레오 리오니를 갑갑한 사람으로 묘사해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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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레오파트라의 꿈 - 간바라 메구미의 두 번째 모험 간바라 메구미 (노블마인) 2
온다 리쿠 지음, 박수지 옮김 / 노블마인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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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쟝르문학 쪽에서 관심가는 여성 작가로는 온다 리쿠, 미야베 미유키, 그리고 기리노 나쓰오인데, 온다리쿠와 미미여사의 작품은 상당 부분 구입했고 구입한 책 대부분을 읽었지만 기리노 나쓰오의 경우 거의 도서관에서 빌려 읽고 구입하지는 않는다. 이 세명의 소설가는 현재 일본에서 왕성하게 활동하며 자신의 위치를 확고하게 다져 놓았을 뿐만 아니라 한국이나 미국에서도 어느 정도 인지도가 있는 것 같아 보인다. 온다 리쿠의 경우 아직 미국 데뷔작이 없지만, 기리노나 미유키의 경우 영역본이 꽤 많이 검색되는 것으로 보아 그들의 활동폭이 점점 넓어지고 있음을 지레짐작 할 수 있겠다.

기리노여사와 미미여사의 공통점은 숨 막힐 정도로 하드하다는 것 일 것이다. 특히나  기리노의 경우 그녀의 작품을 읽는 사람이라면 기리노가 얼마나 새디스틱한 작가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사실 그녀의 작품을 읽고 있노라면, 읽는 내내 작가로부터 고문당한다는 생각이 든다. 그녀의 작품에는 미미처럼 절망적인 상황에 대해 위안 받을 수 있는 낙천적이고 밝은 결말이라고는 찾을 래야 찾아 볼 수가 없다. 기라노의 작품에 빛이라고 스며 들지 않는다. 그녀는 독자가 자신의 작품을 읽으면서 괴로워하는 것을 즐기고, 자신의 작품 주인공의 파멸의 끝까지 독자를 이끌고 간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읽은 나도 성격 별나!, 솔직히 읽다가 내려 놓고 싶었다. 난 남이 잘 못 되는 꼴을 보고 고소해하는 schadenfreude가 아니다. 순전히 그녀의 작품을 끝까지 읽어내려간 것은 그녀의 판타지가 결국에는 좋은 결말을 이끌어 낼 것이라는 희망때문이었다.)

반면에 미미여사는 쟝르를 넘나들며 소프트와 하드의 경계에서  왔다갔다 하고  온다의 경우 하드하다기 보다는 소프트한 면이 휠씬 더 강하다. 그럭저럭 읽을 만하다는 말이다. 일본 작가들의 경우, 그들이 내는 작품의 질적 편차가 심하다는 것을 짐작하고 있었지만, 온다의  이 <클레오파트라의 꿈>도 그닥 잘된 작품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워낙 작가의 기본 가닥이 있어서인지 형편없다고 할 수도 없겠지만서도.  어쩜 온다가 만들어낸  모험심 강한,  성적으로 모호한  메구미에게 별다른 매력을 못 느껴서 일지도 모르겠고. 모험소설의 50% 이상은 캐릭터의 힘이 아닐까 싶다. 사건 해결도 사건해결이지만 캐릭터을 얼마나 잘 묘사하고  캐릭터와 독자 사이의 거리를 좁힐 수 있느냐하는 것이다.  메구미라는 캐릭터의 경우 똑똑하기는 한데 힘이 없다. 그는 독자에게 벌렁거리는 긴장감을 주지 못하고 사건을 힘있게 부여잡지 못하고 끌여다니기만 한다. 이 곳 저 곳 옮겨다니며 변장만 하면 다냐. 아, 정말 매력없어! 메구미 간바라가 남자주인공이라면 적어도 그에게 성적 매력이라도 부여 했어야지. 완전 몰입 불가능한, 실패한 캐릭터 같다. 인디애나 존스같은 남자 주인공이 그리워!

대부분의 일본 작가들이 연재물이 쓰고 있고 그러다보니 어쩜 작품의 편차가 심한 것일 수도 있고. 메구미의 경우 좀 더 많은 시간이 온다 리쿠에게 주어졌더라면, 매력적인 캐릭터로 탄생했을텐데하는 아쉬움이 남아 있다.  결국 일본 문학시스템에서책이라는 자체가 매번 하이 퀼리티를 자랑하기 보다는 읽고 버려지는 일회성의 엔터테이먼트 기능이 우선시 하게 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그들의 문학유통을 비판하는 것은 아니다. 일본의 문학이 전세계에 먹힐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이 엔터테이먼트 기능과 급수(고급과저급)를 따지지 않는 오픈형이기 때문이다. 좋은 글만 읽는다고 좋은 작품이 나오는 것은 아니다라고 생각한다. 포크너나 킹도 무수히 많은 펄프 픽션만 읽으면서 취할 것은 취하고 버릴 것은 버렸으니깐. 오히려 모든 문학의 오픈성이 나중에 좋은 작가를 만들어 낼 수 있다고 믿는다.

어쩌면 내가 뮤지션의 좋은 곡만 담았다는 베스트앨범은 절대로 구입하지 않는 것처럼(댄스구릅제외하고_, 이번 작품은 기대에 못 미쳐어도,  온다의 다음 작품은 이 보다는 좀 더 낫겠지하는 기대감으로  구입할 것이다. 한 뮤지션의 음악세계를 이해한다는 것, 그리고 한 작가의 작품을 이해한다는 것은 그의 최고 작품으로 가려지는 것이 아니고 그의 전체를 보아야하고 최고 작품은 그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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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ki's Delivery Service (Paperback)
Kadono, Eiko / Annick Pr / 200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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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소녀의 성장소설이라고 할 수 있는 이  책은, 워낙 미야자끼 하야오의 애니메이션으로 유명해서, 소설로는 빛 바래진 경우라고 할 수 있겠다. 그림도 아마 미야자키 애니그림으로 알려져, 정작  이 책의 삽화를 그린 사람이 하야시 아키코라고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하야시 아키코,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일본그림책 작가이며 수집대상작가이다. 우리나라에는 인기가 하늘을 찔러 그녀의 거의 모든 그림책이 발간된 상태지만, 그녀의 마녀배달부키키(삽화만 그렸다)는 한림출판사에서 나왔다가 지금은 절판된 상태이다.

하야시 아키코는 예술적 기교가 넘쳐나는 작가는 아니다. 그녀의 그림은 그저 일상의 한 장면을 반복적으로 묘사한 것일뿐. 색채도 화려하지 않다.  어떻게 보면  색감은 거칠고 아이들의 일상은 촌스럽기까지 하다.   하지만 그녀의 일상적인 묘사그림에는 상황을 부풀리거나 확대하지 않는다.  색의 향연이라는 말은 더더군다나 어울리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그림은 아이들의 시선을, 어른의 마음을 끄는 무엇인가가 있다. 처음 그녀의 <순이와 어린동생>을 받아보고 순이가  동생 영이를 찾기 위하여 뛰는 장면에서는 같이 가슴이 꽁닥거리고 같이 뛰고 싶을 정도로 기시감을 느꼈다. 솔직함, 그녀의 그림에는 아이들을 관찰한 후의 상황을 보편적인 감성을 담아 솔직하게 묘사하기 때문에 발간된지 30년이 지난 지금에도 사랑받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무지개산의 비밀에서부터 할머니집가는 길까지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도 구미가 당긴 것은 사실이지만,  가도노 에이코가 쓴 <마녀배달부>의 삽화가 아키코가 활동초기에 그린 그린 그림이여서 궁금증을 더 자아냈다. 일본아마존에서는 일어원본일 경우 배송은 빠르지만 일어의 일자도 몰라 구입을 망설였고 영역본은 미국에서 수입하는 것이라서 아마존보다 비싼데다가 배송비가 비싸 미국아마존에서 구입했었다. (일본아마존의 장점은 재고가 있는 경우 주문하고 삼일 후면 온다는 것일 것이다. 일어를 모르는데 어떻게 주문할 수 있느냐고. 일본 아마존의 경우 영어로 전환된다. 역시나 그들의 사업 잔머리는 알아주어야 한다 .미국 아마존의 경우 배송은 비싼 돈 주어가면서 특별배송을 선택하지 않는 한 대개 12일이면 온다.) 그런데 문제는 이 책 주문할 때(작년초같은데)는 검색해서 없어서 이웃 나라도 아니고 먼 나라에서 주문했는데, 지금은 떡하니 모든 인터넷 외국어서점에서 판다는 것이다. 이러면 정말이지 열라 속상하다. 돈은 돈대로 버리고...어차피 영어라 사 놓기만 하고 금방 읽지도 않는다. 하여간 사고 싶어하는 이 눔의 성질머리 하고는.  아닌게 아니라 요즘  인터넷 서점은  외국어서적이 막강해졌다. 없는 게 없더라. 가격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저렴하고. 요즘은 거의 이쪽 채널을 통해 먼저 검색하고 구입할 정도이다.

각설하고, 이 책의 내용은 하야오의 애니메이션의 플럿과 다르다. 애니에서는  처음 도입부와 발상만 가져가 자기들 나름대로 기승전결이 있는 이야기로 전개하였고, 책은  여섯가지 에피소드로 나눠진 사건들로 채워져 있다. 사건이라고 해서 거창한데 사실은 소녀 주변에서 흔히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이다. 처음 배달서비스를 부탁받고 배달하러 가는 도중에 고양이 인형을 잃어버려 인형을 찾다가 만난 화가(이 에피소드는 애니에서는 중요한 사건이었지만), 자신의 선물과 시를 자기가 좋아하는 남자친구에게 전달해달라고 부탁한 키키 또래의 소녀가 쓴 시가 궁금해 읽다가 분실한 사건, 빨래를 공중에 넌 일, 기차에 둔 악기를 짐꾼이 내려놓는 것을 잊어버려 달리는 기차에서 악기를 가져 온 사건등등. 키키가 집을 떠나 정식으로 마녀가 되기 위해 정착을 결심한 코리코라는 해안도시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은 키키를 내가 과연 부모 떠나 먼 곳에서 가장 잘 해낼 수 있을까하는 의문투성이의 연약한 소녀에서 독립적이고 책임감 있게 성장할 수 있는 틀을 마련해주는 사건들이었다. 영화와 달리, 커다란 사건이 일어나 이를 극복해나가거나 시련이나 좌절하는 에피소드는 없다. 비록 책은 큰 시련은 없지만,각각의 사건을 통해 유치하고 감정통제가 안 되는, 부모에게 매달리는 13살 소녀가 아니고 자신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는 자부심을 느끼며 부모에게서 독립하는, 사춘기 소녀의 성장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전반적으로 영어는 쉽다.중고등학생이라면 강추할 만한 영어소설이다거의 대화체인데다( 영어오디오가 있었다면 금상첨화!) 일본어는 시제가 어떤지 모르겠지만, 영역본은 단순 과거시제여서 쭉쭉 쉽게 읽어내려 갈 수 있다. 물론 복합시제가 있긴 하지만 문장 자체가 아리송한 것은 없다. 처음엔 왜 이렇게 잘 읽히나 하고 내가 더 놀랬다.(일본책은 영어로 번역해도 이렇게 잘 읽히나 싶어서!)  책 중간 쯤 가서야  단순시제가 많다는 것을 알아챘다. 핑계는 영어공부 한답시고 원서를 읽긴 하지만, 실력이 없다보니 복잡한 복합시제가 나오면 떨린다. 우리 나라 말의 경우, 완료형이란 것이 없다보니 영어책을 읽다보면, 이게 참 애매하다. 물론 나 또한 완료형을 만나면 현재와 연결되었더라도 과거시제로 다 해석해버리긴 하지만.  유아그림책이나 청소년 소설은 시제가 복잡하지 않은데다가 문장의 함축적인 의미가 없어 읽기가 쉬운 편이라고 점을 감안한다 하더라고, 마녀배달부 키키의 영역본은 생각보다 쉬운 영어로 번역되어 있다.

간혹 이런 생각 할 때가 있는데,  우리나라 소설을 영어로 옮기면 우리의 단순한 과거 시제가 어떻게 완료형으로 옮겨질지 궁금하다.이건 영어를 단순히 잘 하는 사람이 아니고 태생이 영어로 말하고 생각하고 쓰는 사람이어야지 가능하지 않을까싶다.  바이링구얼이라는 것이 존재할까. 두 개의 언어로 똑같이 말하고 쓰고 생각할 수 있을까. 불가능하지 않을까싶다.  절대언어. 난 아무리 제 2 외국어을 잘 하는 사람이 있다고 해도, 두 가지의 언어로  동시에 사용할 수 없다고 확신한다. 태어나면서부터 머릿속에 고정된 언어구조로 먼저 생각하고 말함으로써 능숙해진다고  생각한다. 원서를 읽을 때마다 내가 곤혹스럽게 느끼는 것은 함축적으로 쓰여진 글도 글이지만, 복합시제의 낯설음 때문이다. 매번 문법책을 뒤적이면 복합시제의 예를 외우고 다시 훑어보기를 반복해도 며칠 만 지나면, 까먹는다. 일상에서 사용하지 않기 때문 일 것이다. 영어를 잘하고 싶은 욕망은 큰데... 그 욕망만큼 실력이 안 따라주니..한국에서 태어나 한국어로 말하는 것을 원망할 수도 없고. 혹 일본어의 시제에 대해 알려주었으면 한다. 일본어도 복합시제가 있는지에 대해서.

이 책의 아쉬운 점은 겉표지이다. 하야시 아키코의 일러스트 대신 다른 키키가 그려져 있어 이건, 키키가 서양앤지 아니면 동양앤지 구분이 안간다. 차라리 미야자키 하야오의 키키가 그려졌더라면 더 그럴싸할텐데. 이건 도대체 뭐냐싶다. 참, 미국판 애니메이션에서는 커스틴 던스티가 어렸을 때  키키역으로 더빙했던데, 사실 난 애 커스틴 이쁠 줄 모르겠더라.

                    일본판 <마녀배달부키키>

 하야시의 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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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 정원사의 노래 - Summer
루이스 캐롤 외 지음, 헤럴드 블룸 엮음, 정정호 외 옮김 / 생각의나무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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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룸에 대해 내가 알고 있었던 전부는 킹의 단편집 Night Shift의 역자후기에서 킹의 문학적 성취에 대해, "아무런 문학적 가치나 미학적 성취나 독창적 지성의 흔적을 찾을 수 없다"라는 언급한 블룸의 고급문화주의를 개탄하는 역자의 글을 통해서였다. 오호라, 블룸이라는 시덥지 않는 보수적인 평론가가 그런 말을 했단 말이지...고지식하기는! 

사실 그 때는 그냥 고지식한 평론가로만 알았다. 그가 미국 보수주의 문단을 주도하는 굵직한 비평가라는 것을 안 것은 올 초에 생각의 나무에서 나온 해롤드 블룸 클래식전집 덕분이었다고나 할까나. 우리나라에서는 블룸의 인지도가 낮아 위키를 찾아보니, 한마디로 20세기 문학사조인 막시즘, 해체주의, 페미니즘 그리고 포스트 모던니즘 반대편에는 굳건히 19세기를 지키는 수호천사 해롤드 블룸이 있다라고 이야기하면 될 듯 싶었다. (아무래도 시대를 잘 못 태어난 듯.)

그의 고급문화주의나 보수주의는 문제 될 것은 없다고 본다. 시대별로 옛것을 그리워하고 수호하려는,그런 사람 꼭 하나는 있기 마련이고 있어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문제는 위키에서 그에 대한 프로파일을 보면서, 그가 전반적인 20세기의 문학작품들을 부정하고 있고 현재 아이리스 머덕이 죽고 나서는, 그 잘난 문학가라고 치켜세운 사람들이 토마스 핀천, 필립 로스, 코맥 맥카시 그리고 Don DeLillo 라는 점이다. (블룸의 올해 나온 책인 천재들인가의 목차보니 현재진행중인 작가들은 없는 듯하다.)   21세기 초, 블룸은 아드리안 리치, 스티븐 킹, 그리고 롤링같은 인기 작가의 작품들을 비난하면서, 문학적 격론의 중심에 있었다. 그는 Paris review지에서 인기에 영합하는 Poetry slam를 비판하면서, 예술은 죽었어(It is the death of art)라고 말했다고 할 정도로 고지식한 영감탱이가 아닐 수 없다.  정말 이 오픈된 21세기에 예술이 죽음을 맞이했을까!

세기를 통털어서 자신이 살고 있는 시대가 만족스럽고 행복하다고 느꼈던 사람들은 몇명이나 될까? 노예제도가 버젓히 살아있고 어린 것들의 노동력으로 농사를 짓고 (십자군) 전쟁에 아이들이 동원되어 목숨 잃는 것이 아무렇지도 않았으며, 귀한몸과 천한 것이 구분되어 있고 여자는 한갓 대를 잇는 수단에 지나지 않으며 인종차별,성차별, 자본주의가 가진 한계등.  이 모든 현상들이 수백년도 아니고 수십년 전만해도 아니 20세기 초중반 해도 당연했던 사회적 모습이었고 정치적인 것들이었다. 

전 세대를 살면서 당연시 되었던 모든 관계나 현상이 폭발하여 문제화되고 타결점을 찾으려고 애썼던 세대가 20세기 아니었던가. 모든 것들이 부정되었고 원점으로 돌아가 다시 토대를 세우고자 노력했던 자들이었고 격렬하게 싸웠던 자들의 기록(문학작품)을 부정하는 것은 블룸을 한갓 보수고급문화주의자라고 딱지 붙은 이유리라. 20세기 소설가들과 시인들의 약점인 약물과 알콜 중독 그리고 자기 혐오와 사회 부적응등은 자기 세대의 변화에 대한 좌절의 결과하고 본다. 자기가 살고 있는 세대와 맞선 20세기 작가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어쩜 20세기는 투쟁의 시대였고 먼 훗날 몇 세기가 지나고 나면 20세기에 대한 역사적 인식은 바로 겉보기에는 미친, 진보와 변혁의  20세기야말로 가장 러블리한 시대였다고 평가될 지도 모른다. 

여하튼, 블룸의 19세기문학에 대한 집착은 바로 블룸의 해롤드블룸 클래식에서 잘 나타나 있다. 4월초쯤에 도서관에 갔다가 <미친 정원사의 노래>라는 블룸의 클래식을 발견하고는 빌려와 읽었는데, 블룸이 비난하는 킹이나 롤링의 작품하고 다른 것이 무엇인지를 잘 모르겠다. 잔혹함과 공포스러움이 작품 곳곳에서 살아있어 선뜻 아이에게 권하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으니 말이다. 좀 더 큰 영어덜트정도면 모를까. 초등저학년에게 무리다 싶다. 그러나 고급문화주의 평론가답게 블룸의 문학적 선택은 탁월하다. 이 책을 계기로 블룸의 클래식 전집을 구입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 말이다. 19세기 영미문학에 대한 짧막한 이해는 이 블룸의 클래식전집이면 거의 해결될 듯 싶다. 

이 책에 소개되어 있는 작가로는 캐서린 싱클레어, 그림형제, 매리 드 모건, 스티븐 크레인, 루이스 캐럴, 벤 존슨, 키플링, 토머스 러브 피콕, 이솝, 스윈번, 리어인데, 가장 눈에 들어오는 작가는 역시 캐럴!  블룸이 선택한 작품은 거울속의 앨리스의 <험프티 덤프티> 일부분과 <Sylvie and Bruno Concluded> 중에서 The pig-tale이라는 시와 두 편의 시이다. 블룸은 프롤로그에서 캐럴의 <스나크 사냥>을 장편시었기에 뺐다고 했는데, 차라리 이 시를 집어 넣고 다른 여타의 시를 뺐었다면 더 탁월한 선택이 아니었을까 싶다. 

책속의 일러스트에 대한 일언반구도 없고(정말이지 꽤심하다!) 영미시정도면 원문도 편집했어야 하는 직무유기는 이 책을 8800원씩이나 주고 사야하는지 고민하게 만들었다.(결국 원서를 사서 대조해보기로 했다.) 지금은 도서관에서 다 빌려 읽고 있지만 아무래도 조만간 (1년6개월 지나면) 구입하지 않을까 싶다.

* 원서 어쩌구 저쩌구 해서 영어를 잘 하리라 생각하겠지만 나의 영어는 절음발이 영어다. 문어만 잘한다. 지금 coldcase 드라마 자막 나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을 정도. 영어자막만 나와도 드라마 내용은 이해할 수 있지만 듣는 것은 30%정도.. 아~ 이 자괴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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