꽤 오래 전에 레몽 장의 <책 읽어주는 여자>가 영화로, 그리고 책으로 한참동안 사람들 입에 오르내린 적이 있었다.그 때만 해도 난 책을 읽어주는 것도 남이 읽는 것을 듣는 것도 싫었다. 책은 속으로 읽는 것이라고만 생각했다. 읽는다라는 것에 대한 그 어떤 대안도 생각도 해 본적이 없었던, 그리고 누군가에게 내가 책을 읽어준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던 20대 시절이었다. 단순히 <책 읽어주는 여자>란 영화를 통해 처음으로 책을 읽어주는 직업이 있을 수 있구나라고, 웃긴다라고 생각했었다.
결혼하고 나서 책이나 영화에 대한 관심이 무 자르듯이 뚝 끊어졌다. 아니 생각할 겨를 조차 없었다. 시간이 많이 남아도는 때였는데도 책도 영화도 내 주의를 끌지 못했다. 그렇게 무의미한 시간들이 흘러갔고 애가 태어나자 별일도 다 있지, 내 책들이 아닌 아이들 그림책에 눈길이 가기 시작했다. 서점엘 가도 그림책 코너만 돌다 맘에 드는 그림책만 사들고 오고 인터넷 서점의 잇점을 알고 나선 매일 아침에 일어나 딱 한시간 동안 유아코너에 들어가 어떤 그림책들이 나왔는지 검색하고 주문하고 그리고 주문한 책 받아 아이들에게 읽어주고..... 그런 반복되는 일상을 한 몇년동안 재생버튼 누르듯 해 왔다. 계속해서 쏟아지는 신간 그림책 때문인지 그 생활에 싫증도 나지 않았다.
내가 읽어주는 책에 길들어진 아이들은 책은 엄마가 읽어주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아, 내가 영화처럼 책 읽어주는 그 여자 아니 엄마가 되다니.... 한 때 비웃었던, 웃지 못할 일이 생긴 것이다. 감정도 넣어가면서 열심히 읽어주었다. 하루에 수십권을 읽어도 힘든지 모를 정도로. 하지만 나도 모르게 아이들과 나 사이에 틈이 서서히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요 근래에 깨닫게 되었다. 내가 읽어주고 싶은 글이 있어 큰 애에게 읽어주겠다고 하면, 딴짓을 하곤해서 기분 상한 적도 있었다. 심지어 거절당하기도 하였다. 처음엔 어리둥절해서 아이가 보내오는 의미를 파악하지 못했다. 한동안 그 벌어진 틈이 익숙하지 않아서, 간극만큼 공허감만 커져간다.
며칠 전에만 해도 그렇다. 테지마 케이자부로오의 신간<섬수리부엉이의 호수>라는 작품에서 작가 후기가 읽어 줄 만해 읽어주려고 했더니 단번에 거절하는 것이었다. 잠깐 앉아 들어, 엄마가 빨리 읽어줄께. 이 작가가 왜 이 작품을 썼는지에 대한 글이니깐, 응! 한번만 들어달라는 엄마의 애걸을 주저없이 거절하고 다른 곳으로 쳐다보는 아이의 모습에서 울렁이는 씁쓸함을 느꼈다. 왜 이런 배신감이... 시도 때도 없이 책 읽어달라고 했던 놈이.....
나의 고향
나는 소년 시절 대부분을 홋까이도 북쪽 끝에 있는 시골에서 보냈습니다. 그 곳은 집에서 백미터만 걸어가도, 커다란 가문비나무가 우거진 산속으로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산속은 조용해서 한 그루 한 그루 나무 끝을 스치는 바람 소리와 새소리가 고독한 기분을 더욱더 강하게 자아냈지요. 밤이 되면 섬수리 부엉이가 소리도 없이 날아와서, 집 가까운데 있는 전봇대 위에서 나를 내려다보곤 했습니다. 노란 눈동자와 이러저리 잘 움직이는 머리와, 그 뒤에 펼쳐지는 넓고 반짝이는 대우주는 어린 나의 마음에 무한한 신비감을 주었습니다.
<섬수리 부엉이의 호수>는 그 시절에 체험한 것들이 향수와 그리움으로 승화되어 만든 세계입니다.
깊은 밤, 섬수리 붕엉이가 펼치는 생활 드라마는 아주 오랜 옛날부터 변함없는, 살아 있는 생명체의 꾸미없는 모습입니다. 나에게 섬수리 부엉이는 친구이자, 삶의 방식을 가르쳐 준 선생님일지도 모릅니다. - 테지마 케이자부로오
끝내 읽어주지 못했다. 내가 테지마 케이자부로오의 작품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그가 판화로 세겨내고 있는 훗카이도오의 적막한 자연때문이었다. 그가 장면 장면에 새긴 그림이 완벽한 라인을, 완전한 형태를 갖추고 있다고 자신있게 말하진 못하겠다. 세밀하게 새겨진 세련미보다는 그의 그림에서는 약간의 서툰 형태의 모습도 간간히 보인다. 하지만 적어도 내가 그의 그림에서 짚어낼 수 있었던 것은 그가 한 장면 한장면 판화를 새길 때, 자신이 지금까지 보아왔던 풍경을 누군가에게 보여주고 싶다는(어린 독자이건 어른이건 간에 상관없이) 강렬하고 열정적인 마음이었다. 그런 마음이 없었더라면, 그의 그림책에서 느낄 수 있는 거대한 적막감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 사람이 등장하지 않기 때문에 자연 속에서 느낄 수 있는 적막감이 더 부각될 수도 있었겠지만, 그가 후기에서 밝혔듯이, 자신의 유년시절에서 체험한 자연의 이미지가 없었더라면, 그리고 고히 간직한 그 이미지를 그림으로 잡아낼려는 열정이 없었더라면 그의 그림 세계는 만들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작품의 동기가 무엇이었는지 알려주기 위하여 아들애한테 읽어주고 싶었다. 작가가 그 작품을 만들게 된 배경과 원동력이 무엇인지 이 후기만큼 더 잘알 수 있는 정보가 어디 있겠는가 말이다. 할수 없지, 머리가 커가면서 점차 멀어지는 아이의 마음을 내가 무슨 수로 말린단 말이여.
엄혜숙씨도 본격적으로 일본그림책에 서서히 발을 들여 놓는구나 싶다. 요 몇년 심심찮게 일본그림책의 역자에 엄혜숙씨의 이름이 눈에 띈다. 작년 8월에 나온 책인데, 이번에 오픈 키드에서 행사해 오랜 만에 주문 넣고, 열린어린이책 그림책 받아보고 나서야 케이자부로의 신간이 나왔다는 것을 알았다. 인터넷 검색이 편하고 빠르고 편하긴 한데, 단점은 글자 하나 틀려도 같은 작가로 검색이 안 된다는 것. 케이자부로오는 관심가는 일본작가라 그 때 그때 검색했었건만..... 모르고 지나칠 때가 있어 인터넷 검색이 빠른건지...모든 정보가 완벽할 수 없다는 것인지. 알쏭달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