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리케인 미래그림책 33
데이비드 위스너 글 그림, 이지유 옮김 / 미래아이(미래M&B,미래엠앤비) / 2005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일본 애니매이션 <빨강머리 앤>에서 내가 가장 탐낸 것은 앤의 다락방이었다.  다락방의 창문에 걸터 앉아 , 하얀 구름과 푸른 하늘, 바람에 날리던 벚꽃눈, 비오는 날의 우울, 하얗게 눈 내리는 풍경, 밤하늘의 무수히 찍혀 있는 별, 다이안과의 통신등 앤이 나에게 보여준 이 모든 것들은  다락방이 주는 환상 체험이었다. 그때, 언니와 남동생 그리고 할머니까지 모시고 살았던, 방 세칸짜리 좁은 단독주택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나에게 앤의 다락방은 부러움의 공간이자 상상의 세계에 머무는, 현실 불가능한 공간이기에 더욱더 간절하게 탐낸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때뿐만 아니라 지금도 다락방에 대한 미련은 아직도 남아있다. 현실적으로 여름에 덥고 겨울엔 추울 것이 분명한, 그 곳에 대한 갈망이 주책스럽기는 하지만, 다락방을 꿈꾸는 것은 나뿐만이 아니라 어쩜 대부분의 사람들이 꿈꾸는 곳이 아닐까. 누군가는 현실에서 탈피하고 싶은 피난처로,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모험의 세계로 인도해주는 장소로 말이다.

며칠 전에 아이에게 데이빗 위즈너의 <허리케인>을 읽어주면서, 큰 애는 시큰둥하게 넘어간 대목이었지만 어른인 내가 더 깊이 와 닿는 글귀가 있었다.  허리케인으로 자신들의 집 앞에 있던 나무 한 그루가 쓰러지자 두 형제는 그 곳을 무대로 온갖 상상력(아프리카 탐험놀이, 우주에서의 항해, 드 넓은 바다에서의 역경)을 동원하여 자신들만의 아지트로 삼는다.  결국 그 커다란 쓰러진 나무는 조각조각 장작처럼 토막내  다른 곳으로 보내졌지만, 형과 함께 한 자신의 어린시절의 경험을 토대로 한 그 그림책에서 데이빗 위즈너는 그 장소에 대해,  이제는 사라져 버린, 하지만 영원히 기억에 남는 자신의 어린 시절의 공간적 노스탤지어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둘은 가끔 가만히 앉아서 경치를 구경했습니다. 나무는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둘만의 장소였지요. 그 곳은 비밀스러운 꿈을 펼칠 수 있을 만큼 컸고, 또 모험이 두렵지 않을 만큼 작기도 했어요."(Sometimes they just sat and enjoyed the view. The tree a private place, big enough for secret dreams, small enough for shared adventure.) 라고.

내가 꿈꾸는 다락방이 타인을 배제하고 공유보다는 배타적이고 독점적인 자폐기능이 강했던 것에 비해, 위즈너의 공간은 추억이고 상상력을 나누었던 공간이라는 것이 다를 뿐, 비밀스러운 꿈을 펼치고 모험과 공상의 세계가 두렵지 않았던 작은 왕국이었던 점은 나와 그, 아니 적어도 다락방이나 아지트를 꿈꾼 사람들에게 그 장소가 가져다 주는 세계는 동일하다라는 생각이 들어 가슴 깊이 공감이 가는 말이었다. 

회색의 도시 생활에 익숙한 나와 마찬가지로 우리 아이들도 다락방을 실제로 사용할 기회는 거의 없을 것이다. 단지  이미지나 공상 속 또는 이야기 속에만 존재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아직도 나만의 벚꽃 날리는 다락방을 꿈꾸는 것처럼,  누구든지  당신이 체험했던 어린시절의 아지트였던 비밀 장소든, 지금 현재가 힘들어 공상속의 피난처든 난 누구든지 이런 작은 모험을 꿈꿀 수 있는 공간이 마음 한 켠에 언제나 간직하길 바란다.


ps- 번역판은 형에게 헌사한다는 글이 없는데, 원서는 캐롤,바바라,조지에게라고 써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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