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 이 집에 이사오면서 결심한 게 딱 한가지 있었다. 집이 책에 점령당하게 하지 말자, 적어도 집 어딘가에는 , 어느 곳이든 빈 공간이 존재하도록 하자! 물론 이사오자마자 집을 정리할때만 해도 사방팔방 사면의 벽과 수납장에는 책들로 가득 차 있었다(지금은 많이 줄이고 있다). 우리 집은 가구라고 해야 변변한 것도 없이 죄다 책장 아니면 책장 대용 가구이다 보니, 살림하는 사람이 이래서 되나? 하는 자조적인 질문을 끊임없이 해대곤 했는데, 이런 나에 대한 자조가 드디어 일년 만에 결실을 맺기 시작하고 있다.

빈 공간이 생긴 것이다.

일주일전만 해도 저 거실장엔 그림책이 누워져 가득 차 있었다. 드러누워 아무도 찾지 않던 그림책을 동네 아기 도우미 아주머니에게 드렸다. 아파트 재활용때 폐지더미에서 그림책을 찾고 계시기에, 혹 그림책 필요하시냐고 여쭸더니, 본인이 아기돌보미인데 돌보는 아기집에 그림책이 없어서 이런 재활용때 그림책이 나오곤 해서 찾고 있는 중이란 말을 듣고, 아줌마에게 우리집 그림책 가져가시라고 하였더니, 그 날 오후에 유모차 끌고 오셔서 가져가셨다.

그림책들이 떠나니, 저 텅빈 공간을 보며 시원섭섭함을 느낀다. 저 텅 빈 공간을 만끽해야지, 더 이상 책으로 저 곳을 채우지 말아야지 하는 생각이 들면서도, 저 비워있는 공간이 어색하기는 하다. 이 어색함이 언제쯤 익숙함으로 바뀔 수 있을런지!

그나저나 작가 최윤이 한 에세이에서 자기 집은 사면의 벽이 책으로 가득 차 있다고 쓴 것을 이십 년전쯤 읽었는데, 지금은 어떨지 모르겠다. 여전히 책으로 벽지를 대신 하고 살고 있을려나? 아니면 나처럼 서서히 집에 빈 공간을 늘릴려고 애쓰고 있을려나?

그런데 참 사람이 간사한 게 책 대신 빈공간을 결심하면서도, 심지어 동네 아줌마에게 그림책을 드렸음에도, 더 이상 그림책을 볼 아이도 없으니 사서 쟁겨두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어제 북플 들어와 뉴스피드 보니, 관심가는 아니 사고 싶은 그림책들이 몇 권 보인다. 그림책은 겉표지가 이야기의 핵심을 담고 있는 경우가 많기에, 겉표지가 그 어떤 책보다 중요한데, 그만 겉표지의 구애에 확 걸려들었다. 아, 진짜 고민된다. 낼 애들한테 원펀맨 6권을 다 사 주기로 했는데, 산 김에 한권이라도 구매할까?


덧, 이 페이퍼 북플로 처음 작성한 것인데 글 쓰는 게 생각보다 괜찮다. 자판이 큰 타블릿이라 편했던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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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5-11-22 13:53   좋아요 0 | URL
참말 집 한쪽은 책이고 무엇이고 아무것도 없이,
그저 벽만 있고 바닥과 천장만 있는
그런 자리가 있어야겠더군요.

그런 자리를 꿈꾸며 집을 꾸미자고... 생각하면서
아직 그러한 방을 이루지는 못합니다...

기억의집 2015-11-22 16:45   좋아요 0 | URL
살다보니 비어있는 뭔가가 사람에겐 꼭 있어야하더라구요. 공간이든 사람욕심이든.... ㅎㅎ 애들 어느 정도 크면 빈 공간이 생기실 겁니다^^

2015-11-22 14: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1-22 16: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scott 2015-11-22 15:00   좋아요 0 | URL
기억의 집님 공기 청청하게 하는 초록잎 화초를 두시면 어떨까요.
제방은 이미 책이 점령(천장까지)해버렸고 누울자리만 있어요. ㅎㅎ
버릴것은 버리고 팔것은 팔았는데 도저히 못버리는 책이 이정도라니 ㅜ.ㅜ

기억의집 2015-11-22 17:04   좋아요 0 | URL
그러지 않아도 화초 키우고 싶어 뭘할까 고민중이에뇨. 벵갈고무나무가 이쁘던데, 그걸로할까 아니면 벤자민, 스투키, 센세베리아할까 고민중이에요. 생각보다 가격대가 쎄더라구요. 화분도 만만치않고..저는 고무나무쪽으로 기울긴하는데, 고무나무 이쁘죠?

저도 아주 옛날 건 재활용때 버렸어요. 너무 오래된 책들은 기증해도 안 받더라구요. 지인들 주고 그래도 여전히 책이 쌓였어요. 울 딸은 자기방에는 책 있는 거 싫다고 해서 겨우겨우 작은 책장에 꽂았어요. 팔자겠죠. 이것도~

scott 2015-11-22 20:26   좋아요 0 | URL
벵갈고무나무 이뻐요.^0^
화초 값의 반이상은 화분값!
일본어 그림책은 저얼대 팔지 마세요.
팔면 후회하는 책도 있으니 미련없이 버리시라는 말 못하겠어요. ^.~

붉은돼지 2015-11-23 10:40   좋아요 0 | URL
사실 책은 지금도 충분히 많이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지만...욕심이 끝이 없는 것 같습니다.

어릴 때는 책이 가득 채워진 책장 하나 갖고 싶었는데...
책장을 가지게 되니 서재를 꾸미고 싶고 서재를 가지게 되니
이제는 어디 시골에 작은 개인 도서관 같은 걸 하나 장만하고 싶은 생각이 듭니다. 허허....

저희 집의 경우, 아내는 책이 서재의 경계를 넘어 거실로 범람하는 것은 절대 금지여서
제 책은 오로지 제 서재에서만 치고박고 복닥거리고 있습니다..
저도 처음에는 거실을 서재로 꾸미고 싶은 생각이 굴뚝이었는데....
지금은 아내의 아내에 의견에 어느정도 공감을 하고 있습니다. 온 집구석이 책으로 점령당하는
것도 그리 좋은 것은 아닌 것 같아요...^^

기억의집 2015-11-23 10:43   좋아요 1 | URL
저도 읽을 책이 산더미인데 여전히 신간보면 탐나고 사들이네요. 그나마 위안인 건 예전보다 덜하다는 것이요. 전 가방도 옷도 변변한 게 없어요. 책 사들이냐고.... 어휴 팔자려니 해도 책이 뭔지요.

책방꽃방 2015-11-23 14:15   좋아요 1 | URL
그림책 유혹은 정말 뿌리치기 힘들어요,
저도 책쌓지 말자고 치워보지만 금새 또 차고 차니 난감해요,
사랑의 도서기증 어쩌고가 있길래 기증이나 할까하구요^^

기억의집 2015-11-24 08:37   좋아요 1 | URL
게다가 그림책은 사 놓아도 한번 보고 말더라구요. 경험상~ 애들이 어리면 같이 계속 보니깐 본전 생각이 안 나는데, 이건 한번 보고 쳐 박아 두니깐 언제나 망설여져요. 심지어 저는 그림책 가게 하나 낼까, 이런 생각도 해 봤어요. 자본도 없으면서...ㅠㅠ

책읽는나무 2015-11-24 06:40   좋아요 1 | URL
집 깨끗하고 좋으네요^^
저는 정리정돈을 할줄모르는 성격인데 책 때문에 더 엉망이어 우리집에 놀러다녀간 이웃지인들은 다들 한 마디씩 합니다^^
가구가 없어 책으로 대신할 속셈도 없지않아 사들였었는데 언제부턴가 이건 아니다~~싶어 책을 많이 정리중이고 더이상 사들이지 않으려 노력중이에요ㅜ
빈공간이 많고 정리정돈이 잘되어있는 그런집이 요즘은 부럽답니다 책 또한 양이 적더라도 책제목이 훤히 보이고, 눈길가는 제목으로 채워진 그래서 `읽고 싶다`라고 생각되는 그런서재를 가진 집이 부럽다죠?^^
나이숫자가 변할수록 생각들도 참 많이 변해가는 것같아요

기억의집 2015-11-24 08:42   좋아요 0 | URL
저는 책이 많으니깐 언제나 너저분해서 정리정돈 칼같이 해요~ 안 그럴 것 같죠? 저희 애들이 다들 뱀과라 옷도 오면 홀러덩 벗고 그 자리에 그대로 둬서 옷과 책과 여러가지 것들이 쌓이면 집이 난리도 아니더라구요. 그래서 보는 즉시 치우고, 가구나 탁자 위에 뭐 안 둘려고요. 저는 집에 장식품이 없어요. 아예! 그것마저 있으면 저의집은 뭐.... 말 안 해도 아시죠? ㅋㅋ
그나마 저도 책을 치워서.... 저의 시어머님이 저번에 오셔서 아니 그 많던 책들 어디갔냐고 놀래시더라구요. 예전에 벽만 있으면 책장 사서 책을 꽂아두었는데, 이젠 그마저도 버거워요.....

나이가 드니 저는 버릴려고 하는 것도 많고 웬간해선 안 사려고 노력해요. 그릇 대신 책, 옷 대신 책, 가방 대신 책 이런 인생도 참 흔하지 않을 것 같아요.

icaru 2015-11-24 16:12   좋아요 0 | URL
그릇 대신 책, 옷 대신 책, 가방 대신 책 이런 인생,,, 진짜 멋진 인생이라고 봐요 ㅎㅎㅎ
책을 보관하고 함께 숨쉬며 살아가는 일은 음 정말,,, 정말 아직도 저는 뭐라 정의내리지 못하고 혼돈한 가운데 먹고자고 하며 살고 있네요 ㅋㅋ

기억의집 2015-11-25 23:09   좋아요 0 | URL
이카루님댁이 상상이 가요. 저의집은 이제 애들이 다 커서 정리도 아침에 하면 저녁까지 그 상태에요. 애들도 학원 갔다오면 어떨땐 아홉시 이러거든요. 애들하고 많은 시간 보내세요. 애들 크면 집에 있는 시간도 없더라구요. 편하긴 해요. 애들 어리면 장난감에 책에... 휴!!!!

이카루님 불금도 얼마 안 남았네요!

아영엄마 2015-12-03 10:55   좋아요 0 | URL
방금 그림책 욕심 그만 부린다고 해놓고는 이 글 보면서,
` 그 그림책들 저도 좀 나눠주시지.. 아쉬워라..` 하고 있답니다. 이 눔이 책욕심은.. 흐흐~ ^^*
요즘 그림책 대신 막내가 즐겨보는 만화책이 꾸준히 늘고 있답니다.
만화책만 줄창 보려 하고 동화책은 훠이훠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