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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게으른 시인의 이야기
최승자 지음 / 난다 / 2021년 11월
평점 :
봄이 관한 시 중에서 봄을 가장 지랄맞게 표현한
최승자 시인의 시
봄
(잎도 피우기 전에 꽃부터 불쑥 전시하다니,
개나리, 목련, 이거 미친년들 아니야?
이거 돼먹지 못한 반칙 아니야?)
이 봄에 도로 나는 환자가 된다.
마음 밑 깊은 계곡에 또다시
서늘한 슬픈 물결이 차오르고
흉부가 폐광처럼 깊어진다.
아, 이 자지러질 듯한 봄의 풍요 속에서
나 어릴 때 흥얼거렸던 그 노래
이젠 서러운 찬송가처럼 들리네.
˝설렁탕 거룩한 탕 끓여 가려고
오늘도 모여 있네, 어린 동포들.˝
고등학교 시절, 윤동주나 한용운 시인들의 서정성과 아름다움이 뚝뚝 묻어나는 시들의 세계가 전부였는지 알었는데, 최승자 시인은 나에게 교과서 시에서 벗어나, 시란 무엇인가를 알게 해 준 시인.
최승자 시인은 시가 이렇게 비속어도 가능함을, 내 안의 아픔과 슬픔을 아무렇지도 않게 일상 언어로도 시를 쓸 수 있음을처음으로 깨닫게 해 준 시인이다. (그러고 보니 장정일 시인도 그러네)
내 알라딘 아이디 기억의 집은 최승자 시인의 시집에서 빌려올 정도로 좋아하는 시인인데, 더 이상 글을 쓰시는 건 불가능하겠지. 최승자 시인이 다시 시를, 에세이를 써 줬으면 좋겠다. 다시 아무렇지도 않게 비속어 날리시면서….
덧 : 이젠 오래 되서 재활용 하는 날 버린 시집들.
이제는 더 이상 시를 읽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