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독립 협회는 해산되었을까? - 홍종우 vs 윤치호 ㅣ 역사공화국 한국사법정 49
정명섭 지음, 고영미 그림 / 자음과모음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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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고 홍종우는 독립협회가 후대가 알고 있는 것처럼 무능한 정부를 비판하고 외국의 침략에 맞서 싸웠지만

 독립협회에 대해 자세히 살펴보면 이중적인 태도를 보인 점이 여럿이라고 하니

 책을 통해 독립협회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고 해산되어진 이유와

홍종우가 후손들이 독립협회에 대해 바로잡고자 하는 것들에 주목해보고자 한다.

 





 

 

그럼 먼저 원고인 홍종우는 누구인가? 그는 대한 제국의 관리로 상하이에서 김옥균을 암살한 자객으로 기억되고 있다.

피고 윤치호는 독립 협회를 세운 자이다.

1896년 설립된 조선 최초의 정치 단체인 독립 협회는 청나라 사신들을 맞이하던 영은문을 헐고 그 자리에 독립문을 세웠다.

모금한 돈으로 독립문 건립을 시작했고 독립신문을 한글과 영어로 발행했다. 외세에 휘둘리던 국가를 바로잡고 국민을 계몽하려는

역할을 한 독립협회는 또 다른 이면을 가지고 있었다.

 

 

 

 

독립협회에서 발행한 독립신문에 대해 읽어보니 이중적인 기관지였다는 주장이 눈에 띤다.

한글판에는 열강의 이권 침탈을 반대하고 이권을 양도하는 정부를 비판하지만 영문판에는 열강들의 자원 개발과 투자를 지지하는 모습이다.

또한 백성의 봉기인 의병들을 배척하는 논설을 하기도 했고 일본군의 철수를 요구하는 요청도 거절한다.

독립 협회는 많은 잘못을 저질렀지만 어쩌면 대한 제국의 마지막 희망이었을지도 모른다는 것이 책을 읽는 내내 아쉬움으로 자리잡는다.

 

 

 

독립협회의 해산은 여러가지 이유들이 뒤섞여 있었다. 정부에 의한 강제 해산, 독립협회 내부 급진파들의 과격한 행동, 그리고 러시아와 일본의 간섭이 결국 독립 협회의 해산이라는 결과를 낳은 것이다.

역사공화국 한국사법정에서는 정부와 협력하지 못했고 무력 탄압을 종용한 일본과 러시아 공사에게도 간접적인 책임이 있다는 판결이다.

역사는 대부분 이면을 가지고 있다. 어느 방향에서 보느냐에 따라 양과 음의 성질이 바뀐다고나 할까? 그러므로 한 면에 치우지지 않고

객관적인 시각으로 접근해봐야 하겠다. 그것이 진정으로 역사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자세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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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고종 황제는 폐위되었을까? - 고종 황제 vs 이토 히로부미 ㅣ 역사공화국 한국사법정 50
이계형 지음, 조환철 그림 / 자음과모음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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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황제와 이토 히로부미의 이야기

 

 





 

고종황제는 조선이 26대 왕으로 국호를 대한제국으로 바꾸고 황제가 되어 강력한 개혁 정치를 펼치고자 했다.

그는 을사조약이 체결되고 외교권이 박탈되는 가운데 끝까지 나라를 지키고자 노력했던 것으로 평가받는다.

고종은 이토 히로부미를 국제법 위반과 명예 훼손죄로 고소하고 손해 배상을 청구, 또한 을사조약 무효와 폐위시킨 일에 대한

잘못을 인정받길 원하는 마음에 역사공화국 한국사법정 영혼재판에 의뢰한다.

 

 

 

 

 

고종이 다스리던 대한 제국 시절은 정말 말도 안되는 일제의 침탈과 간섭으로 알면 알수록 울화가 치미는 역사적 순간들이었다.

러일 전쟁에  휘말리지 않기 위해 중립화를 선언한 고종은 결국 한일의정서에 의해 러일 전쟁에 휘말리게 되고 그 결과는 말할 수 없이

참혹하게 되었다.

그런데도 이토 히로부미는 그것이 [동양평화론]이라는 거창한 포장으로 덩어리화시켜 역사를 왜곡하고 있으니 통탄하지 않을 수 없다.

말도 안되는 을사조약은 결국 고종 황제의 비준도 받지 않은 무효조약이다. 제 5조까지 되어 있는 이 조약은 어린 아이가 보아도 알 수

있을 정도로 어이없는 일본위주의 내용들 뿐이다.

일제는 헤이그 특사 사건을 빌미로 고종 황제를 폐위시키고 기존의 을사조약을 뛰어넘는 강력한 한일 간의 조약을 체결하여 결국 이 땅을

식민지화하려는 것이다. 이토 히로부미가 주장하는 동양 평화론은 허울 뿐임을 그 누가 모를 수 있단 말인가?

 

역사공화국 한국사법정의 판결문을 살펴보면 한국 침략에 따른 국제법 위반, 을사조약 무효, 페위의 부당성에 대해서는 원고 승소 판결을 내린다.

다만 명예 훼손죄는 기각한다.

국제법 위반은 한국이 중립을 선언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을 침입한 것이 잘못이고, 고종과 대신들이 반대함에도 불구하고 을사조약을 체결한 것

역시 잘못이라고 지적한다. 또한 대한 제국의 처해있는 상황을 알리고자 만국 평화 희의에 특사를 파견했다는 이유로 고종 황제를 폐위한 것 역시

부당하다는 것을 알린다.

 

 

 

 

우리 역사 중 특히 이 시대의 역사는 참 암울하다. 알면 알수록 더 기막힌 상황들과 결과들이 참담할 뿐이다.

지금도 진행중인 일본과의 역사 바로잡기에 관한 일들이 많은 국민들의 지속적인 관심으로 말미암마 잘 이뤄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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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창경궁에 동물원이 생겼을까? - 순종 황제 vs 이토 히로부미 ㅣ 역사공화국 한국사법정 51
허균 지음, 고영미 그림 / 자음과모음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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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공화국 한국사법정 51권

[왜 창경궁에 동물원이 생겼을까?]

 

드디어 오랫동안 궁금했던 창경원과 창경궁의 이야기들이 그 궁금증을 해소하게 되었다.

매 번 읽을때마다 법정의 흥미진진한 공방이 역사와 맞물려 즐거운 읽기를 더해주는 자음과 모음의 [역사공화국 한국사법정]

 

오늘은 순종 황제 & 이토 히로부미의 이야기에 귀기울여보자.

 

 

 


 

 

 

 

어릴적 창경궁에 동물원이 있었던 기억이 나는데

어느날 갑자기 없어졌던 일들, 그 이야기 속에 엄청난 역사적 비밀이

숨겨져 있다는 것을 예전엔 왜 깨닫지 못했을까?

 

고종의 아들인 순종은 외교권과 재정권을 박탈당한

어려운 시절 왕위에 오른다.

창경궁은 경복궁과 창덕궁에 이어 조선 시대

세 번째로 지어진 궁궐로서 많은 대비들이

지내셨던 곳이다.

그런 창경궁을 일제는 놀이동산으로 만들었고

코끼리, 뱀 등과 같은 외국 동물들을 수입해서

동물원, 식물원 그리고 박물관으로

만들어 표를 팔아 사람들을 입장시키는

일들을 자행했고 이름도 창경궁에서 창경원으로 바꾸었다.

 

이에 순종은 조선 왕조의 권위를 상징하는 궁궐을

망친 이토 히로부미의 죄를 밝히고 순종이 허락했다는

허위 사실을 바로잡아 억울함을 풀고자 한다.

 

먼저 이야기 속에서 만나게 된 궁궐 이야기

 

서울에서 볼 수 있는 아름다운 궁궐은 경복궁, 창덕궁, 덕수궁, 경희궁, 창경궁이 있다.

그 중 4대 궁궐은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덕수궁을 가리킨다.

경복궁은 이성게가 지은 것으로

임진왜란 때 불탄 것을 흥선 대원군이 주도하여 복원하였지만

일제 강점기를 거치며 현재의 모습으로 축소되었다.

창덕궁은 4대 궁궐 중 왕이 가장 오랫동안 거처하며 나라를 다스린 궁궐이란다.

창경궁은 성종이 지은 것으로 임진왜란 때 불탄 것을 광해군이 다시

세웠고 사도 세자가 뒤주에서 죽는 비극이 일어난 배경이 된 곳이기도 하다.

덕수궁은 경운궁이라 불리웠는데 이 곳에서 을사조약이 체결되었던 곳이다.

 

 

이토 히로부미는 궁궐을 아름답게 가꾸어 순종과 국민에게

즐거움을 주고자 했다는 주장이고

순종은 자신은 이 일에 동조하거나 허락하지 않았다는 것을

밝힌다.

그렇다면 언제부터 창경궁이 창경원으로 불리게 되었을까?

1909년 11월 1일 동물원, 식물원을 창경궁에 설치하고

일반인에게 관람을 허락한 날이다.

이어 박물관도 완공되자 일제는 창경궁을

창경원이라고 이름을 바꾼다.

이름의 차이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궁궐은 그 자체가 와실 권위의 상징이고 원은 말 그대로

놀이 동산을 뜻한다.

일제가 창경궁을 굳이 창경원으로 이름을 바꾼 것은,

조선 왕조이 정통성을 말살하기 위해서였던 것이다.

 


 

 

역사공화국 한국사법정은 어떤 판결을 내렸을까?

 

이토 히로부미는 겉으로는 조선을 위한 것이라 말하지만

여러 정황을 미루어 보아 조선 민족의 정기를 말살하고

국민을 어리석음 속으로 전락시키는 계책이 숨어 있었다고 밝힌다.

특히 궁궐, 왕를, 종묘 사직단 같은 국가적 상징물을

파괴하거나 용도를 바꾼 것, 창경궁과 종묘 사이에 길을 뚫은 것 등은

조선 왕조의 정통성을 훼손하고 조선인의 민족정신을

말살시키고자 한 일이었다는 것은 너무나 잘 알려진 사실이다.

 

역사 바로잡기는 지금도 우리가 계속 해나가야 할 일이니

우리 세대와 우리 다음 세대가 이 일들에

힘을 모아 끝까지 완결되어 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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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조선 역사대탐험 2014.3 - Vol.49
시사큐 편집부 엮음 / 조선에듀케이션(월간지)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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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소년조선 역사대탐험 2014.3

작가
시사큐 편집부
출판
조선에듀케이션(월간지)
발매
2014.0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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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조선 시사큐가 새롭게 개정되어 선보인 역사와 사회, 시사 논술잡지인 [소년조선 역사탐험대]

 

역사가 요즘 화두이긴 맞나보다. 역사 관련 책들이 쏟아지고 체험활동이 많아지니

정말 해야 할 일도 많고 읽어야 할 책들이 넘쳐난다.

그 중 역사와 사회에 대한 잡지책이 궁금해서 들여다보게 된 책이 바로 이것,

 

책에는 욕심이 많이 포함되어 있다,

역사와 사회, 그리고 시사까지 골고루 다루려고 했다.

 

일단 이번 호에는 어떤 내용이 있나 보면,

한 시대에 국한되지 않게 다양한 역사 속 인물과 유적지, 사건 등을

다루고 있다.

 

 첫번째 코너, 

한성백제의 문화를 볼 수 있는 곳을 소개한 코너엔

한성백제박물관과 몽촌토성이 나온다.

  

역사 속 중요한 사건인 [삼별초의 항쟁]

알면 알수록 대단한 삼별초.

 

오늘 장학퀴즈 문제로 나온 호패이야기

요즘 도로명 주소로 전면 개편되면서

주소 적는 문제와 찾는 문제가 제기되는 가운데

역사 속 주소의 변천사를 짚어본 코너라

더 재밌게 읽어본 기사다.

호패는

16세 이상의 남자에게 제공되고

직업, 신분, 주소가 적혀있었다고 한다.

 

 

 

다음주면 다가올 안중근 의사 순국의 날

다시 한번 안중근 의사의 위대함을 떠올리게 된다.

 

 

역사만을 다루지 않고

또 시사논술을 다루고 있는데 이 부분에 NIE가 있어서

장점으로 꼽고 싶다.

 

요즘 이슈화되고 있는 뉴스도 소개가 되고 있다.

역시 진보적인 페이스북.

소수자에게도 개방적인 모습이다.

 

 

 

샐리는기사를 읽고

문제를 풀며

NIE 활동지를 해결해본다.



 

기사를 정확하게 이해했는지를 체크해볼 수 있으며

자신의 생각을 길지 않게

요약해서 정리해볼 수 있다.

 



이 책은 많은 것을 다루고자 하는 욕심은 있으나

정확하게 컨셉을 정하기는 모호한 느낌이다.

사진의 색감이 조금 퍼지는 듯한 느낌이 드는 것도 지적하고 싶다.

책의 의도는

수능 필수 한국사 대비라 하니

초등학생보다는

중학생 이상에게 더 어울리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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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극기를 휘날리다 - 청바지를 입은 우리 시대의 장군
강이경 지음 / 아이앤북(I&BOOK)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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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극기를 휘날리다

작가
강이경
출판
아이앤북
발매
2014.0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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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경덕 교수가 대한민국 홍보전문가가 되기까지의 다양한 경험과 일화를 한 권에 담았다. SNS 팔로우가 3천 명이 넘고, 일 년의 절반을 해외에 머물며 가지고 있는 직함만 해도 열두 가지가 넘고, 생각나는 건 다 하는 사람, 마음먹은 건 꼭 하고야 마는 사람, 열정적이고 거침없는 사람, 바로 그 서경덕 교수가 청소년들에게 꿈과 비전을 제시하고,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실패를 통해 더 큰 성장을 이룰 수 있도록 서경덕 교수의 무한도전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자비를 들여 '뉴욕타임스'에 대한민국 광고를 내걸고, '월스트리트저널' 뉴욕 타임스스퀘어 등에 우리나라 광고를 낸 서경덕 교수 역시 좌절도 있었고, 실패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안 되면 되게 하고, 실패를 통해 얻은 경험과 배움을 통해 더 큰 사람이 되어 더 많은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 있었다.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 실패를 하더라도 스스로를 위로하며 다음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용기를 배울 수 있을 것이다.  [알라딘 발췌]

 

 

[Review]

 


 

대한민국 홍보전문가인 생소하면서도 멋진 직업을 가진 서경덕 교수의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의 이야기들을 볼 수 있는 책을 골랐다.

서경덕씨는 이미 많은 한국인들에게 자비로 독도와 위안부 등에 관련된 광고를 한 사람으로 잘 알려져 있다.

또한 무한도전 프로그램으로 인해 공중파 방송에 출연해 더 많은 화제를 불러오기도 하였다.

내가 그를 주의깊게 알고 싶게 된 계기는 샐리가 임원수련회를 가서 만나게 되었던 일로 인한 것이었다.

그는 강연가로 아이들과 만났고 그가 하는 일에 대해 설명해주고 책과 지도를 선물해주어

지금껏 샐리는 존경하는 인물 중 한 명으로 꼽고 있다.

 


 

 

유년 시절부터 어떤 가정환경에서 자라났는지 책을 통해 읽어보니 그는 이미 남들과는 다른 발상을 하는 사람이었다.

그가 이렇게 국제적인 홍보를 하게 된 계기는 대학연합동아리 [생존경쟁]을 만들면서 패기있는 젊은 대학생들이 할 수 있는

여러가지 프로젝트들을 친구들과 함께 하나 하나 실현해 나가는 과정에서 내공이 쌓이고 힘이 길러졌다고 볼 수 있다.

남들도 물론 그런 생각을 해볼 수 있다. 그러나 남들과 그의 다른 점은 그는 생각을 실천으로 옮겼고, 남들이 귀찮아하고 어려워할 일들을

마다하지 않고 부딪치며 이뤄낸 것이라 할 수 있다.

지금까지 그가 만든 [생존경쟁]이라는 동아리가 존재한다고 하니 그 영향력이 얼마나 컸는지 알 수 있겠다.

 


그는 대학 시절 2002년 월드컵 유치로 인한 홍보를 위해 배낭여행을 떠나고

유럽을 두 달 동안 여행하면서 한국을 세계에 알려야 하겠다는 것을 뼈저리게 체험하게 된다.

내가 대학시절 유럽으로 여행을 갔을때도 그들은 제일 먼저 물어보는 것이 '중국인이냐, 일본인이냐?'였다.

서경덕씨 역시 똑같은 질문을 받으며 한국을 홍보하는 일이 절실함을 알게 되었고, 더욱이 월드컵 개최라는

큰 일을 앞 둔 시점이기에 그는 다양한 홍보물을 가져가 외국인들에게 나눠주며 설명을 하는 등 열정을 가지고 일하게 된다.

여행 중 8.15광복절 행사를 즉석으로 기획해 파리 에펠탑 앞에서 여행중이거나 유학중인 사람들을 모았던 일들은 결코 평범하지 않은

그의 나라사랑의 열정과 확신이 낳은 결과라 할 수 있다.

 

그는 위안부 문제를 광고로 실어 일본 극우파의 무시무시한 경고와 위협을 무릎쓰게 된다

그래서 우리는 그를 '청바지를 입은 우리 시대의 장군'이라고 부른다.

마치 조선시대 장군처럼 꿋꿋하게 나라를 위한 일들을 위해 정열적으로 사는 그를

이 시대의 많은 젊은이들이 본받았으면 좋겠다.

 



 

가수 김장훈씨와 함께 독도에 대한 광고와 활동 등을 하는 모습은 이미 많은 국민들에게 잘 알려진 사실이다.

덕분에 김장훈씨의 인기도 올라갔고 그는 독도 수호천사라는 별명까지 얻게 되었다.

둘은 의형제를 맺으며 서로를 위하며 열심히 활동을 하였다.

 


 

 

이 모든 일들을 직접 발로 뛰며 광고문을 만들고 기안을 작성해서 도전정신으로 임했던 서경덕씨,

책은 대한민국의 역사와 문화를 전세계에 알린 서경덕씨의 이야기를 재미나게 잘 썼다.

대한민국 홍보전문가 1호인 그와 그의 뒤를 잇는 많은 젊은이들이 나왔으면 한다.

그의 행보에 귀기울이며 열심히 응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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