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공화국 한국사법정 51권
[왜 창경궁에 동물원이 생겼을까?]
드디어 오랫동안 궁금했던 창경원과 창경궁의 이야기들이 그 궁금증을
해소하게 되었다.
매 번 읽을때마다 법정의 흥미진진한 공방이 역사와 맞물려 즐거운
읽기를 더해주는 자음과 모음의 [역사공화국 한국사법정]
오늘은 순종 황제 & 이토 히로부미의 이야기에
귀기울여보자.
어릴적 창경궁에 동물원이 있었던 기억이 나는데
어느날 갑자기 없어졌던 일들, 그 이야기 속에 엄청난 역사적
비밀이
숨겨져 있다는 것을 예전엔 왜 깨닫지 못했을까?
고종의 아들인 순종은 외교권과 재정권을 박탈당한
어려운 시절 왕위에 오른다.
창경궁은 경복궁과 창덕궁에 이어 조선 시대
세 번째로 지어진 궁궐로서 많은 대비들이
지내셨던 곳이다.
그런 창경궁을 일제는 놀이동산으로 만들었고
코끼리, 뱀 등과 같은 외국 동물들을 수입해서
동물원, 식물원 그리고 박물관으로
만들어 표를 팔아 사람들을 입장시키는
일들을 자행했고 이름도 창경궁에서 창경원으로 바꾸었다.
이에 순종은 조선 왕조의 권위를 상징하는 궁궐을
망친 이토 히로부미의 죄를 밝히고 순종이 허락했다는
허위 사실을 바로잡아 억울함을 풀고자 한다.
먼저 이야기 속에서 만나게 된 궁궐 이야기
서울에서 볼 수 있는 아름다운 궁궐은 경복궁, 창덕궁, 덕수궁,
경희궁, 창경궁이 있다.
그 중 4대 궁궐은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덕수궁을
가리킨다.
경복궁은 이성게가 지은 것으로
임진왜란 때 불탄 것을 흥선 대원군이 주도하여 복원하였지만
일제 강점기를 거치며 현재의 모습으로 축소되었다.
창덕궁은 4대 궁궐 중 왕이 가장 오랫동안 거처하며 나라를 다스린
궁궐이란다.
창경궁은 성종이 지은 것으로 임진왜란 때 불탄 것을 광해군이 다시
세웠고 사도 세자가 뒤주에서 죽는 비극이 일어난 배경이 된 곳이기도
하다.
덕수궁은 경운궁이라 불리웠는데 이 곳에서 을사조약이 체결되었던
곳이다.
이토 히로부미는 궁궐을 아름답게 가꾸어 순종과 국민에게
즐거움을 주고자 했다는 주장이고
순종은 자신은 이 일에 동조하거나 허락하지 않았다는 것을
밝힌다.
그렇다면 언제부터 창경궁이 창경원으로 불리게 되었을까?
1909년 11월 1일 동물원, 식물원을 창경궁에 설치하고
일반인에게 관람을 허락한 날이다.
이어 박물관도 완공되자 일제는 창경궁을
창경원이라고 이름을 바꾼다.
이름의 차이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궁궐은 그 자체가 와실 권위의 상징이고 원은 말 그대로
놀이 동산을 뜻한다.
일제가 창경궁을 굳이 창경원으로 이름을 바꾼 것은,
조선 왕조이 정통성을 말살하기 위해서였던 것이다.
역사공화국 한국사법정은 어떤 판결을 내렸을까?
이토 히로부미는 겉으로는 조선을 위한 것이라 말하지만
여러 정황을 미루어 보아 조선 민족의 정기를 말살하고
국민을 어리석음 속으로 전락시키는 계책이 숨어 있었다고
밝힌다.
특히 궁궐, 왕를, 종묘 사직단 같은 국가적 상징물을
파괴하거나 용도를 바꾼 것, 창경궁과 종묘 사이에 길을 뚫은 것
등은
조선 왕조의 정통성을 훼손하고 조선인의 민족정신을
말살시키고자 한 일이었다는 것은 너무나 잘 알려진 사실이다.
역사 바로잡기는 지금도 우리가 계속 해나가야 할 일이니
우리 세대와 우리 다음 세대가 이 일들에
힘을 모아 끝까지 완결되어 졌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