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트의 집 블루픽션 (비룡소 청소년 문학선) 71
최상희 지음 / 비룡소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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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겐 주어진  삶의 무게가 있다.

누군가에겐 견딜만한 무게라면, 또 누군가에겐 견디기 힘든 삶의 고뇌라고  말한다.

비단 부정적이지 않은 것 또한 무게감이 있다.

왕관을 쓰려는 자, 그 무게를 감당하라는 말처럼 긍정적인 것에도 그 무게는 있는 것이다.

자폐를 가진 형과 그 형으로 인해 아버지가 떠난 열무의 집,

그리고 아들을 잃고 자책으로 살아가는 칸트 아저씨,

작은 바닷가 마을은 이들의 이야기로 풍성해진다.

한 장 한 장 페이지를 넘기면서 나무의 평범하지 않은 행동들이 짐스러웠고, 그로인해

엄마와 동생 열무가 겪는 어려움들이 공감이 갔다. 결국 그들은 사회의 따가운 시선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이곳으로 오게 된다. 

차가운 인상의 옆집 아저씨는 매일 같은 시간  산책하기에 칸트라는 별명이 붙여지고, 규칙화된 삶을 사는 나무에게 칸트아저씨는 의지하고 

좋아하는 상대가 된다. 열무 역시 이런 칸트 아저씨에게 호감을 가진다.

 

' 그는 정말 칸트였다. 형처럼 말이 통하지 않는 칸트. 난공불락의 성처럼 우뚝 서서 칸트는 나를 내려다 보기만 했다.' (P 74)

 

칸트 아저씨는 열무네 가족처럼 아픔을 가지고 살아간다.

관처럼 생긴 기이한 모양의 집에서 검은 외투를 휘날리며 백발의 움푹 패인 주름살을 가진 아저씨..

 

열무에겐 아저씨도, 형 나무도 칸트이다.

 

' 칸트는 매일 산책을 하고, 또 다른 칸트는 늘 정해진 만큼 그림을 그린다. 도대체 왜냐고 물어보고 싶지만 물을 필요도 없다.

그건 칸트이기 때문이다.'

 

 

열무와 나무는 칸트 아저씨네 집에 놀러가는 것이  너무나 행복하다.

가끔 열무는 공자가 말하는 것처럼 명언을 말한다. 칸트 아저씨도 열무가 다시 생각을 해볼만한 이야기들을 많이 해준다.

건축가인 칸트 아저씨는 건축을 통해 삶의 진리를 깨달았다.

 

 

' T자는 말이다. 누구나 하나 가지고 있어야 하거든. 누가 뭐래도 흔들리지 않는 수직과 수평을 지녀야 하는 거지.'

 

 

이 문장이 내 가슴을 후벼판다. 내가 이렇게 흔들리는 이유가 수직과 수평을 이루는 T자가 없는 이유에서 일까...

 

 

조류에 애착을 가지는 나무를 위해 조류박물관을 만들기로 한 칸트아저씨.

그러나 그는 결국 나무와 열무가 만날 수 없는 세상으로 떠난다. 그 장면들이 너무나 아려 책장 속 눈물이 박히고 말았다.

아들을 잃은 칸트 아저씨와 아빠를 잃은 열무, 세상과의 소통을 잃은 나무는 서로에게 의미가 되고 존재가 된다.

칸트 아저씨의 병실에서 마치 캠핑을 하듯 열무와 나무는 함께 시간을 보낸다.

 

'태어나 자랐지만 한동안 잊었고, 다시 찾았지만 가장 소중한 사람을 잃었고, 

그래서 잊고 싶었지만 결국은 죽어 가는 순간 찾아오지 않을 수 없었던 곳,

그곳이 바로 칸트의 집이었던 거다.'

 

여기서 책 제목을 정한 작가의 의도된 문장을 발견한다.

그런 의미로 칸트의 집이었다.

작가는 인터뷰를 하고 싶었으나 하지 못했던 작고한 건축가의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나도 칸트 아저씨와 열무, 그리고 나무와 칸트의 집에서 담소를 나누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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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신라에만 여왕이 있었을까? - 비담 vs 선덕여왕 역사공화국 한국사법정 7
정명섭 지음 / 자음과모음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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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최초의 여왕인 선덕여왕은 신라 27대 왕이다.

드라마로 방영되면서 선덕여왕은 국민적 관심을 받게 되었고, 책 또한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선덕여왕은 재위 기간동안 백성을 위해 구휼 사업에 힘썼고, 첨성대와 황룡사 9층탑을 건립하고 삼국통일의

기틀을 다진 왕으로 평가된다.

그렇다면 어떻게 선덕여왕은 왕의 자리에 오른 것일까?

그 당시 신라는 성골출신만 왕이 될 수 있었고 선덕 여왕이 유일한 성골출신이라 가능했다. 계층간의 차별은 존재했지만

성골 내부에서는 남녀의 차별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런 여왕의 즉위를 두고 신라가 남녀 평등의 사회였다고 보기도 하고, 또 다른 쪽에서는 극도로 폐쇄적인 족벌주의가 낳은 결과라고 말하기도 한다.

반란을 일으켰던 비담은 신라의 세 명의 여왕들은 모두 신라에 나쁜 영향을 끼쳤다고 주장한다.

당시 어려웠던 신라의 왕이 된 선덕여왕, 남존여비사상의 한반도에서 그녀는 어떻게 왕위를 이어나갔을까?

그러나 비담은 또 다른 견해를 밝힌다. 선덕여왕은 유능한 귀족과 장군을 놔두고 가야 출신의 김유신만을 중용해서 싸움을 맡겼고, 외교 문제는 김춘추에게만 매달렸다고 한다. 뒤를 이은 진덕 여왕 역시 허수아비에 불과했고, 진성 여왕은 각간 위홍과 정을 통하고 국정을 어지럽혔다고 한다.

책에서는 어떻게 판결을 하였을까?

'남녀의 성별이 통치자로서의 능력을 구분 짓는 잣대가 될 수 없으며, 이는 비교적 동등한 교육과 기회를 주는 현대에 여성이 활발하게 사회활동을 하는 것으로 증명된다. 세 명의 여왕이 통치자로서 부적합했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으려면 같은 실패 사레가 존재해야만 한다. 이런 근거가 없는 이상 여성이 신라를 통치하는데 적합하지 않다는 주장은 근본적인 모순을 지니고 있다.' (판결문 중)

 

여성이 왕으로 존재했던 신라시대는 특별하다고 할 수 있다.

적어도 학창시절 역사를 배우며 신라에 호감을 가지게 된 이유도 거기에 있다고 본다.

책을 읽으며 선덕여왕이 했던 말이 기억난다.

'나를 선덕 여왕으로 보지 말고 선덕왕으로 평가해달라...'

그 말이 계속 책을 읽는 내내 떠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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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백제의 칠지도가 일본에 있을까? - 백제인 vs 야마토 역사공화국 한국사법정 5
이희진 지음, 박종호 그림 / 자음과모음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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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여름 부여로의 여행은 백제 역사 공부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
그 중 국립부여박물관에서 만났던 [칠지도]는 역사의 왜곡이 빚어낸 가슴 아픈 사연에
너무나 아쉬웠던 기억이 난다. 서울의 박물관에도 모형으로 된 칠지도는 쉽게 볼 수 있다.
현재 칠지도는 일본에 있고 칠지도에 새겨진 한자의 해석 여부를 두고 일본과 공방에 있다.
이 책에서는 그 부분에 대한 자세한 배경과 사연을 잘 이야기해주고 있다.
백제의 부흥기에 왜는 백제로부터 다양한 문화를 전수받는다. 그러면서 문화적으로 제로였던 일본땅에
예술이 발전했다는 것은 많은 역사서를 통해 알 수 있다.
칠지도에는 여러 한자들이 씌여있는데 지워진 부분들이 있어 일본은 일본에게 유리하게 해석하여
'백제의 왕이 왜왕에게 바쳤다'라고 한다.
백제여행을 떠나면서
심지어 우리나라 사람들에게조차 백제에 대한 오해와 편견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렇다면 책에서는 이런 부분에 대한 견해를 어떻게 밝혔을까?
일본의 역사책인 [일본서기]에 나온 칠지도에 대한 사실은 조작되었다는 것을 지적하였고, 백제를
형편없는 나라라고 인식하게 된 부분에 대해서는 명예회손이 성립된다는 것이 법정의 판단이다.
여행읕 통해 느껴본 백제는 우리가 알고 있는 백제보다 훨씬 더 융성하고 발전된 나라였다.
예술적인 감각은 가히 그 시대뿐 아니라 지금까지 비교해보아도 너무나 탁월하다는 것이다.
 

 
일본의 역사왜곡도 그 수위가 갈수록 심하다는 생각이다. 역사 기록을 조작하고 그러한 기록을 이용하여
자기들에게 유리한 역사를 만들어내는 일을 더이상 해서는 안될 것이다.
 
아이들과 부여여행을 떠나고 나서 이 책을 읽으니 더 잘 이해되어서 좋았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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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임금님이야 난 책읽기가 좋아
이미현 지음, 이지선 그림 / 비룡소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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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표지를 보자마자 '나는 임금님이야' 

임금님이라고는 하는데 겉표지엔 공주옷을 입은 여자아이가 그려져 있다.

궁금증은 책의 첫페이지를 읽자마자 풀렸다.

 

임금님이라는 이름을 가진  금님이는 키도 작고 다리도 절룩거리며  말라서 아이들로부터 놀림을 많이 받는다. 

또한, 학교에 준비물을 챙겨가지 않아 꾸중을 듣고, 주인집 강아지가 무서워서 지나다닐 때마다 벌벌 떠는 그런 아이다. 

이름이 임금님이라서 생각해보면 진짜 임금님처럼 화려한 궁전에서 맛있는 만친과 아름다운 드레스를 입은 그런 임금님이 생각날 것이다. 

하지만 금님이는  으리으리한 궁전에서 사는  임금님과는 달리 그저 성이 임씨고 이름이 금님이인 평범한 소녀였다. 

금님이는 가족이라고는 엄마밖에 없고 엄마는 밤 늦게 식당일을 끝내고 돌아오니,  집에 혼자일 때가 많았다. 

 

어느날, 평소와 다름없이 집에서 다리를 펴고 발가락을 꼼지락 거리던 금님이는 발가락은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물론 심심해서 말이다. 

한참 시긴이 흐른뒤, 금님이의 두발 사이에서 신기한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이상한 호리병같은 것이 나타나더니, 그안에서 무언가가 줄줄이 나왔다. 

자세히 보니, 금님이와 똑같이 생긴 작은 사람들이 금님이의 주의를 맴돌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금님이였다면 매우 놀라서 입을 다물지 못했을 것이다. 금님이는 자신과 똑같은 사람들이 호리병 안에서 나와 자신들의 임금님이 되어달라고 부탁하자, 매우 놀란다.

 하지만 거절을 할 수 없으니, 임금님이 되어주기로 결심하였다. 임금님이 된 금님이는 명령을 내리기만 하면, 백성들이 그 명령을  복종하였다. 

백성들은 으리으리하고 큰 궁전에 금님이를 데려가기도 하였고, 맛있는 만찬과 세갈래로 예쁘게 머리를 땋아주기도 하였다.

어렸을 깨부터 아빠와 헤어져 살아야했던 금님이도 백성들의 힘으로 아빠를 만날 수 있었다.

 나도 많은 사람들의 임금님이 되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였고, 한편으로는 자신이 내린 명령들을 다 이루어주는 백성들을 갖고 싶기도 하였다. 

많은 소원을 이루어주고 금님이를 행복하게 해준 백성들 덕분에 금님이는 학교에서 놀림을 더이상 안 받았고, 용기가 생겼으며, 당당해 질 수 있었다. 

백성들은 금님이를 만나 평화롭고 행복해졌으니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게 되었지만 언제나 금님이의 옆에 있어주겠다고 약속하며 사라졌다. 

이 책에서 가장 인상깊게 느꼈던 부분은 백성들이 호리병으로 들어가며 금님이에게 해준 마지막 응원 메세지이다. 

 

'우리는 늘 임금님 곁에 있답니다'

 

우리주변에서 일어나는 왕따문제를 따뜻한 이야기로 극복해나가는 모습을 그린 [나는 임금님이야]는 읽는 내내 가슴이 뭉클했다.

 

by 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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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지우고 남은 것들 - 몽골에서 보낸 어제
김형수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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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여행에서 돌아와 여독을 풀고 있을즈음

나의 손에 쥐어진 몽골의 흔적은 계속 공기처럼 함께 존재하는 듯 했다.

 

 

 

 

책속엔 아름다운 초원의 모습과 몽골이 담겨있었고

몽골 초원을 답사하면서

몽골인과의 인연을 통해

자연 환경의 변화를 보며

작가는 담담히 써내려 간다.

인생의 모진 문제들과 사건들이 그리고 번뇌와 고민들이

황량한 사막의 한복판에서는

한갖 먼지에 불과해보이는 것처럼

우리가 부둥켜 안고 있는 수많은 것들이 그렇게 덧없음을 책을 읽는 내내 절절이 느낄 수 있었다.

 

 

 

작가는 내가 느낀 몽골과 비슷하게 경험했던 것 같다.

 

"몽골 사람의 등에는 바람이 묻어 있고 그들의 문화적 비밀 또한 바람에 새겨져 있다. 경계도  장벽도 없는 무한한 공간을

형상도 없이 오고 가는 바람의 갈피에 몽골이 존재하는 셈이다." ( p 61)

 

 

 

초원에서 사는 존재들은

작은 것에 감사하게 만든다.

황량한 들판에서 만난 노란 꽃들이

주는 행복은

수십만원짜리 플로리스트가 만든 꽃바구니와 어찌 비교할 수 있을까..

 

 

 

바람이 시작되고 근원적 존재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는 초원에서의 먼지같은 존재 인간.

소유도 무소유도 묻지도 않는 그곳에선

존재만으로도 힘이 있는 것이었다.

 




 

초원에서 만난 하얀 솜 에델바이스, 그 유혹을 못이겨 몇 송이 책속에 고이 담아왔는데

작가도 에델바이스에 대해 말한다.

 

"에델바이스, 몽골 말로 차강올. 하얀 솜이라는 뜻입니다. 옛사람들이 왜 애인에게 이걸 선물했는가 하면 언제까지 색깔이 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p 98)

 

나도 이와 같은 말을 함께 여행한 몽골인에게 들었다. 그녀의 말은 더 신기했다. 그녀 어릴적

에델바이스를 베개속으로 사용했다고 하니

꽃을 어떻게 베게속으로 사용하나...믿기 어려웠다.

그러나 100일이 지난 지금에도 에델바이스는 내가 꺾었던 그대로 색도 재질도 변함이 없다.

에델바이스 같은 사람이 어디에 없을까..

 

"고독한 영혼을 위무할 꽃향기도, 수고로운 육신을 쉬게 할 숲 그늘도, 대지에 뿌려놓고 생명의 육성을 기다릴 씨앗 한 톨 존재하지

않는 광야에 서면 정착 사회에서의 오만은 순식간에 사라져버린다. 돈을 조금 가졌다고 해서. 섬섬옥수의 경쟁력을 주변의 사랑을

조금 받는다고 해서, 또 명민한 두뇌로 영장류의 능력을 조금 발휘한다고 해서 무슨 소용일 것인가? 문명계에서 한번도 의심하지

않았던 생존 수단들이 하나도 먹혀들 것 같지 않은 한계상황에 처하는 것이다." (p 168-1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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