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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식주의자
한강 지음 / 창비 / 2007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맨부커상은 세계 3대 문학상의 하나로,
노벨문학상과 프랑스의 공쿠르 문학상과 함께 세계인의 이목이 집중되는, 작가들이 받고 싶어하는 상이다. 한국 소설 최초로 맨부커상 인터내셔널
수상작이 된 작가 한 강의 [채식주의자]는 그렇게 대중의 이목과 집중의 대상이 되어 책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까지도 다 아는 책이 되었다.
유명세는 대단했다. 한 강 작가가 공항에서 귀국할때 마치 한류의 중심에 서있는 인기 아이돌 가수의 입국과 비슷한 풍경이 펼쳐졌다. 책은 서점에서
품절되는 현상까지 벌어져 예약주문이 쇄도하였다. 맨부커상 수상작을 여러 편 읽어보았던 경험이 있던 터라 그녀의 소설이 어떤 느낌으로 다가올까
기대가 되었다. 사실 [채식주의자]는 2010년 2월 영화로도 개봉이 되었다. 영화는 흥행에 성공을 거두지 못했고, 이번 수상의 힘을 입어
재개봉의 소식도 들려왔다.
맨부커상 수상 선정 이유는 '탄탄하고
정교하며 충격적인 작품으로, 독자들의 마음에 그리고 그들의 꿈에 오래도록 머물 것이다'이다. 맞다. [채식주의자]는 충격적이다. 나무가 되고
싶어하는 여인의 심리를 다뤘다는 점에서 소재의 독특성을 찾을 수 있다. 거기에 형부와의 불륜 아닌 불륜은 더 자극적인 기폭제 역할을 한다.
그리고 충격적이고 자극적인 소설을 좀 더 개연성있게 대중에게 다가가도록 해주는 희생적인 언니의 이야기가 가미되어 완성작으로 우리에게
다가왔다.
[채식주의자]는 총 세 편의 이야기가 하나의
유기적 관계를 가지며 이뤄진다. 채식주의자는 영혜의 남편 이야기 위주로 영혜를 살펴볼 수 있다. 몽고반점에서는 영혜의 형부인 민호의 입장에서 더
많이 생각해볼 수 있고, 나무 불꽃에서는 영혜의 언니인 지혜의 이야기가 더 많이 다가온다.
사실 주인공
영혜의 심리나 행동을 따라 긴 호흡으로 책을 읽는데는 인내심이 필요했다. 누구나 상처와 함께 인생을 견뎌내고 살아간다. 그런데 영혜는
'꿈'이라는 것을 통해 그녀와 현실 사이의 끈을 과감하게 놓아버리게 된다. 미련없이 가위로 싹뚝 잘라낸 그녀의 결단력이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
그런 면에서 영혜의 언니인 지혜가 좀 더 현실적인 캐릭터이다. 참고 견디어 내는 모습의 그녀는 그 누구보다 세상과 이별하고 싶은
사람이다.
영혜의
남편은 그녀를 신선함이나 재치, 세련된 면을 찾을 수 없이 무난한 성격이 주는 편안함으로 결혼했다고 밝힌다. 그가 묘사하는 그녀는 어떤 끌림도
없는 무채색의 그 무언가였다. 그런 그녀였기에 식물이 되고 싶어했던 것일까? 무언가 평범하거나 대중적이지 않은 인물에 대한 묘사가
인상적이었다.
'정말이지
나에게는 이상한 일들에 대한 내성이 전혀 없었다.'
너무나 무난해서 그 편안함이 좋아 결혼했던
영혜가 돌변하자, 남편 길수는 그 자체가 참을 수 없는 존재가 된다. 그는 이상한 일들에 대한 내성이 없다는 이유로 그녀와 이혼을
한다.
'아무도
날 도울 수 없어.
아무도
날 살릴 수 없어
아무도
날 숨쉬게 할 수 없어.'
꿈을
꾸고 채식을 하게 된 여인인 영혜는 이렇게 그 누구도 자신을 도울 수 없다는 것을 절감하며 그것을 받아들인다.

몽고반점에서
형부 민호는 우연히 처제의
엉덩이에 몽고반점이 남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그동안 예술적 슬럼프에 빠져 허덕이던 자신의 꽉 막혔던 무언가가 터지는 것을 경험한다.
그런데 그것은 너무나 위험하고 모든 것을 잃어버릴 수 있는 것이었다. 벌거벗은 남녀의 온몸을 꽃으로 그려, 교합하는 장면은 그의 뇌리에
각인되어 정상적인 생활로부터의 일탈을 꿈꾸게 한다. 영혜는 민호의 제안을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이며, 이 소설은 파국으로
치닫는다.
영혜는
고기를 먹지 않으면 지독한 악몽에서 해방될 줄 알았다. 꿈 속에서 나타나는 얼굴들은 그녀의 뱃속에서부터 올라오는 얼굴이란 걸 그녀는 형부와의
관계후 깨닫는다.
나무
불꽃에서 우리는 그동안 잘 몰랐던 영혜의 언니, 지혜의 삶이 얼마나 팍팍하고 고단하며 외로왔는지 절절히 느끼게 된다. 그녀의
언니는 열아홉살에 집을 떠난 뒤 누구의 힘도 빌리지 않고 서울생활을 헤쳐나왔다.
'그렇게
모든 것이 - 그녀를 둘러싼 모든 사람의 삶이 모래산처럼 허물어져버린 것을, 막을 수 없었을까'
지혜는 하루에도 몇 번씩 이 모든 일들을
막을 수 없었을까?라는 자책에 반문하고 반문한다. 모든 것을 앗아간 사건 하나하나가 처음으로, 원점으로 되돌아가기만을 간절히 바랄뿐 그녀는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문득
이 세상을 살아본 적이 없다는 느낌이 드는 것에 그녀는 놀랐다. 사실이었다. 그녀는 살아본 적이 없었다. 기억할 수 있는 오래전의 어린시절부터,
다만 견뎌왔을 뿐이다.
[채식주의자]에서 많은 사람들이 공감했던
문장은 '단연 살아본 적 없이 견뎌왔다'는 위의 구절일 것이다. 이것은 놀랍게도 영혜의 대사가 아닌 지혜의 독백이었다.
'산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라고, 그 웃음의 끝에 그녀는 생각한다.'
그녀에겐
삶은 이상한 일이었다. 그녀를 둘러싸고 일어났던 무수한 사건들의 기이함에 그녀는 그렇게 삶을 정의한다.
[채식주의자]는
읽고 나면 마음이 불편해지는 소설이다. 결말도, 주인공의 심리 상태도 쉽게 이해되거나 독자가 바라는 대로 흘러가지 않기 때문에 더 그렇다.
어긋나버려 끝도 없이 다른 방향으로 흘러간 세 주인공의 이야기가 아직도 가슴에 아련하게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