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다고지 (30주년 기념판) 그린비 크리티컬 컬렉션 5
파울루 프레이리 지음, 남경태 옮김 / 그린비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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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처음 이 책을 읽었던 것은 대학시절이었다. 대학에 입학하고나서 교육이나 학습, 연구, 의식화 등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 그 때 누군가를 통해 '몰래' 추천받아서 읽은 것이다. 당시로서는 저자의 관점과 주장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당시 나는 재수까지 하면서 나름 꿈에 부풀어 대학에 입학했으나 3월 첫 일주일 동안 미적분학, 물리학, 화학 수업을 듣고나서 고등학생 때 꿈꾸면서 동경하던 대학생활이 TV 프로그램 '하버드 대학의 공부벌레'와 전혀 다르다는걸 알아버린 후였다. 대학의 교육은 고등학교 시절 교실의 규모가 좀 더 커지고 고등학교 수업과목에 몇 가지 더 포함시킨 후 '선택'을 위한 강제에 불과했다.
토론과 논쟁은 고사하고 교수는 오간데 없이 조교가 강의실에 들어와 교재를 요약해 설명하고 출석과 주,객관식 시험은 고등학교와 다름 없었다. 시간이 좀 더 지나 선배들에게 들으니 나 뿐 아니라 5~10년 전 선배도 나와 동일한 교재로, 동일한 방식의 수업으로, 동일한 시험을 치렀던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초,중,고 12년간 우리나라의 '학교교육'에 진절머리가 나있던 나였기에 대학의 모습은 충격아닌 절망이었다. 27년이 지난 요즘은 얼마나 달라졌을까?
 
1970년 처음 발간된 이 책은 2000년 미국에서 발간된 <페다고지>(Pedagogy of the Oppressed ; 피억압자의 교육학) 30주년 기념판의 국역본이다. 우리 세대에게도 낯설지 않은, 아니 어느 한때 금서 목록의 한 칸을 차지했을 만큼 잘 알려진 책이다. 이 책은 1970년대 후반부터 1980년대까지 암울했던 군사독재 시절 금서 목록에 올라 비합법적으로 유통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당시 진보적 지식인, 노동자, 학생 들에게 민중의 의식을 깨우치는 책이자 교육자 자신이 교육받는 책으로 널리 읽혀진 바 있다.

저자가 이 책을 발간하는데 적용된 연구의 대상은 1980년대 또는 2010년대 우리나라의 현실과 전혀 다르다고 말할 수 있다. 1960년대라는 시점의 차이와 더불어 동양권과 전혀 다른 문화와 역사를 가졌던 남미라는지역적 특성, 그리고 문맹율(당시 70%)과 경제구조, 종교 등 사회적 특성도 우리나라와 크게 다르다. 21세기에 들어서도 브라질의 사정과 한국의 사정은 마찬가지로 무척이나 다르다.
그럼에도 이 책을 처음 읽었을 때와 두 번째 읽었을 때 모두 저자의 말에 공감할 수 밖에 없다는 걸 느낀다. 그것은 50년 넘는 시간이 경과했음에도 저자가 교육과 학습에서 제기하는 구조적이고 근본적인 문제점들이 우리사회 전반에서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있기 때문일 것이다.

책을 앍는 내내 사울 알린스키의 <급진주의자를 위한 규칙>과 이반 일리히의 <학교 없는 사회> 등 여러 저작들이 오버랩되었다.


프레이리가 인식하는 사회구조는 억압자 대 피억압자의 대립구조였다. '억압'은 폭력을 유발시키는 부당한 질서가 내면화된 결과이며 이는 억압자와 피억업자 양쪽 모두에게 영향을 미치는 비인간화의 총체이자 '길들이기'다. 이런 비인간화의 길들이기에 순응하지 않고 의식의 눈을 떠 자신을 찾는 것이 바로 '의식화'다. 사람이 억압의 힘에 더 이상 먹이가 되지 않으려면 거기에서 탈츨해서 그 힘에 대항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왜'라는 질문을 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한다.
'의식화'는 '의식을 발달시키는 과정'이면서 '현실을 변혁시키는 의식적 힘'이다. 의식화는 현실을 단순히 반영시키는 것이 아니고 그것을 재성찰하는 의식이다. 의식화는 억압적 현실에 길들여져 있는 순종의식에 눈을 뜨고 각성하게 되는 의식이다.

억압자들은 사회의 변화를 가능하게 하는 의식의 태동을 가로막고 그러한 의식을 태동시키는 교육체계를 하용하지 않는다. 따라서 억압자들은 권력을 유지하고 억압을 재생산해내기 위하여 '은행저금식 교육' 방식을 취한다.
따라서 프레이리는 교육방식에 있어 요점정리식 기계적 암기를 통해 지식을 축척하기만 하는 '은행저금식 모델'을 강력하게 비판했다. 그는 은행저금식 교육이 '억압의 도구'로 이용되고 있음과 그런 교육의 전제와 개념을 폭로했다. 은행저금식 교육은 교육자와 피교육자 사이에서 모순을 일으키게 되고 양자 모두를 '비인간화'시킨다고 주장했다.

은행저금식 교육에 대한 획기적 대안으로 프레이리가 제시한 교육은 '문제제기식 모델'이다. 이는 인간과 세계를 분리하여 상호 고립시키는 것이 아니라 인간과 세계를 결합시키는 문제인식을 갖도록 하는, 곧 이론과 실천의 교육을 지향한다. 이론과 실천의 결합을 프레이리는 프락시스(praxis)라고 정의했다.

프레이리는 또한 인간집단의 의사소통과 활동에 있어 '반대화'와 '대화'의 차이점을 강조한다. 억압자들은 억압 도구로서 진정한 의사소통을 차단시키는 반대화의 행동이론을 이용한다. 반대화적 행동이론은 정복, 분할통치, 조작, 문화침략을 특징으로 한다. 하지만 진정한 의사소통은 대화를 통해서 이루어진다. 대화는 객체를 주체로 변화시키고 억눌린 자를 해방시키는 의식화의 수단이다. 대화적 행동이론은 협동, 단결, 조직, 문화통합을 특징으로 한다. 대화를 하기 위해서는 사랑의 마음이 요구된다. 대화 자체가 사랑인 것이다. 대화는 사랑하고 겸손하고 소망을 가지고 신뢰하고 그리고 비판적이어야 한다. 주체적 인간은 '대화적 인간'을 기대한다.

저자가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요점은, 억압자의 교육에서는 학생들이 세계 바깥에 있는 하나의 대상이 되어 사물로 전락하는 반면, 피억압자의 교육에서는 학생들이 세계 속에서 세계와 더불어 한 인격체가 된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렇게 학생들과 교사들이 세계 속에서 주체와 주체로 만날 때 교육은 비로소 교육자와 피교육자, 선생과 학생 모두에게 ‘자유의 실천’이 된다는 것이다.

역자(남경태)는 책의 말미의 해제에서 프레이리의 주장과 논리에 대해 그가 변혁의 대안적 이론으로서 하부구조에 대해 언급하지 않은 것과 하부구조와 상부구조(의식화 교육)의 연결이 미흡하다는 점, '혁명적 교육'에 대한 언급을 기피한 점, 그리고 '억압'과 '억압자'라는 개념이 모호하고 주관적이며 계급적 관점이 결여되어 있다는 점이 비판받았음을 지적한다. 
내가 프레이리의 사상과 이론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니 역자의 평가에 대해서는 현재로서는 할 말이 없다.


교육당국이 말로는 '전인교육' 등을 내세우지만 실제 일류대학을 목표로 교육정책과 학교수업을 진행시키고 사교육을 방치,조장하여 청소년들과 학생들이 입시교육과 성적을 이유로 자살하고 방황하는 한국의 교육현실을 지켜보노라면, 프레이리의 교육관점과 방식이 '꿈나라' 같다는 생각이 든다. 마치 정부가 재벌과 기득권자를 위해 아이들을 '생각없는' 경쟁의 노예, 소비자 노예, 비정규직 노예를 양성하기로 작심한 것이 아닐까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굳이 혁명이나 변혁, 억압이나 피억압을 내세우지 않아도 '스스로 생각하고 고민하고 문제를 분석하고 해결하는' 것이 학습과 교육의 목적이지 않은가? 아이들이 오로자 대학입시를 위해 10대, 20대를 보내고 나서 대학에 들어가고 다시 취업을 위해 매달리고 나서 취업을 하거나(이제는 정규직 취업 자체도 바늘구멍이지만..) 전문직에 종사한다 한들 그들의 인생에 무엇이 남을 것인가? 남는 것은 커녕 그 오랜 과정에서 아이들은 행복이나 자아실현은 고사하고 자본과 제도의 부속품이 되고 소비의 희생양이 되고 삶의 목적을 상실한 채 죽을 때까지 방황할 수 밖에 없을 것이 뻔한데...ㅠ

도대체 우리 세대의 부모들이 자식들에게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 왜 자식들에게 무언가를 원하는가? 자신들도 신자유주의식 무한경쟁에 휘말려 개고생하고 있으면서 무언가 집단적, 조직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기 보다 아이들마저 학생 때부터 무한경쟁의 정글에 던져버리면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가? 아이들이 스스로 선택하고 판단하고 행동하게끔 도와주기만 하면 안되는 것일까? 실로 답답하고 암울한 현실이 아닐 수 없다.

일선 교사들 역시 안타깝기는 마찬가지다. 교육자(선생)이 지식을 알면 얼마나 아는가? 그들이 아이들의 개별 부모들보다 더 잘 알까? 그렇지 않다. 부모들은 나름 자신들이 일하는 분야에서 일정한 전문가다. 지식이든, 정보든, 업무방식이든, 제도나 이론이든 간에... 아이들에 대해서도 선생들보다 아이들 스스로가 더 잘 안다. 선생들이 학원강사보다 과목에 대한 깊이가 있나? 그렇지도 않다. 선생의 역할은 다른 것이다. 다른 역할 속에서 선생들도 더 배우고 깨닫고 역량을 키워야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선생의 역할과 권리는 학부모, 학생들의 권리와 역할과 함께 스스로 만들고 갖춰야하는 것일텐데...

[2012년 3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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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생 2016-05-24 21: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평소에 주입식 교육이 아니라 토록식 교육을 해야하리라고 생각 했습니다.
지금과 같은 교육은 개인뿐만 아니라 한국사회 미래를
위해서도 지극히 좋지 못한 교육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마도 미래 세대가 한국정치를 담당할때에야 바꾸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아뭏든 한국교육 미래를 위해서 걱정하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니 앞으로 개선이 이루어지리라
믿습니다. 붉은 구름님의 글이 좋아서 제 블로그에 복사해갔습니다.
출처 밝혔습니다. 원치 않으시면 karamos@naver.com 으로 연락주세요
오늘도 평안한 하루 되세요 감사합니다.
 
과학과 메타과학
장회익 지음 / 지식산업사 / 199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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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수학 및 자연과학 교양서를 주로 읽을 때 구해서 책꽂이에 두었다가 지난번 이 책의 저자인 장회익 교수의 <물질, 생명, 인간>을 읽은 후 찾아보았다. <공부의 즐거움>을 읽으면서도 저자가 어떤 과정을 거쳐 과학철학자가 되었는지, 그 과정에서 문제의식과 아이디어가 어떻게 변해갔는지 가끔 궁금했다. 특히, 학문간의 통섭이나 '온생명' 이론에 대한 저자의 완성된 생각이나 결론이 아니라 저자의 초기 문제의식을 짚어보고 싶었다.
1989년에 처음 발간된 것으로 보이는 이 책은 그나마 저자의 초창기 문제의식과 아이디어, 연구결과물을 담고 있어 재미있게 읽었다. 한국이 배출해 낸 세계적인 과학철학자답게 설득력이 있다. 조금 어렵지만..ㅎ

전체적인 내용은 과학의 학문적 구조와 과학적 인식의 성격, 그리고 과학을 통해 인식된 우주와 그 안에서 형성되어 가고 있는 생명과 인간에 대해서 다루었다. 저자는 그 두 가지 주제가 "완전히 독립된 것이 아니라 결국 인간이라고 하는 하나의 고리를 통해 연결된다"고 책머리에 밝혔다. 즉, 우리는 "과학을 통해 인간을 이해하면서 다시 과학이란 인간이 하는 것임을 확인"하게 되며, "과학이란 인간이 지닌 제약을 벗어날 수 없으며 인간 또한 과학이 전해주는 지식의 한계를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다.
저자의 이런 설명은 자연과학이든 사회과학이든 유사 이래 인간이 창조해 온 모든 지식과 결과물은 인간을 벗어나서는 생각할 수 없으며, 어랜 인간의 역사와 진화과정 속에서 함께한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다르게 말하면, 일부 정치인이나 학자들이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는 "과학 또는 기술은 중립적이다"라는 말도 타당하지 않다고 할 수 있다.

이 책은 한국의 최고학부를 졸업한 486 세대 지인들에게 꼭 추천하고 싶다. 특히 이공계를 졸업한 이들에게...  내가 보기에 자연과학을 전공했거나 응용과학을 전공한 상당수의 486 세대들은 사회 각 분야에 진출하여 현재 중~고위급 실무책임자나 결정권자가 되었음에도 스스로의 혁신과 학습을 게을리하면서 과학기술 문명과 지배세력의 자발적, 타율적 노예가 되어가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과학기술이나 지식이 결코 중립적, 객관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것이며 인간의 세계관이나 의식의 프레임의 한계 내에서 존재함을 역설한다.

 
우리사회의 현실에 비추어 본다면, 자신이 아무리 수학, 화학, 물리학, 핵물리학, 컴퓨터공학, 생명공학, 건축토목학, 전기전자공학, 재료공학 등을 수 십년 공부했다 하더라도, 또 인문사회과학 각 분야에서 특정 학문을 오랫동안 전공했다 하더라도 학문 전체에 대한 포괄적인 시야나 역사적, 문화적 시각을 보유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은 어느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다른 분야에 대해, 다른 이들의 시각에 대해, 사회의 진화흐름에 대해, 사람들의 삶과 고통에 대해서 꾸준히 알려고 하고 대화하는 과정이 뒷받침되어야 자신의 전공과 학문과 직업의 정당성과 올바름을 추구할 수 있을 것이다.
자신이 조금 더 그 분야에 종사하였다고 하여 다른 분야의 관계자나 일반인들보다 더 많이 알고있고 자신만이 옳다고, 틀리자 않을 것이라는 생각은 오만이자 교만이고 결국 스스로를 망치게 될 것임을 분명하다.


저자는 과거 인류가 자연이라는 위력적인 존재 앞에 공포와 굴종의 수동적 생존을 지속하면서 그 지배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힘든 투쟁을 겪어 왔다면, 지금은 자연의 공포와 굴종에서 벗어난 대신 또다시 과학기술 문명이라는 정체불명의 새로운 지배세력 앞에 예속되고 있는 우리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음을 우려한다. 따라서 인간이 과학기술 문명이라는 새로운 지배세력으로부터 벗어나 시대의 주인이 되기 위해서는 이 거대한 새로운 문명의 정체부터 밝혀내야 한다고 주장한다.

과학이 '자연과 사회 그리고 그 안에 속하는 일차적 실체들을 대상으로 하는 체졔적 지식'이라 한다면 다시 과학과 이것이 빚어낸 문명 자체를 대상으로 하는 한 차원 높은 새로운 종류의 지식을 저자는 '메타과학'이라 부른다. 따라서 이 시대가 요구하는 정신적 도약은 바로 과학을 발판으로 하여 메타과학으로 올라서는 도약을 의미하며, 이는 "인류가 과학기술 문명의 노예가 되지 않고 문명의 주인이 되기 위해
감당해야 할 불가피한 요청"이라 할 수 있다.

저자는 과학의 논리구조와 연구방법을, 정합적이고 사실적인 하나의 이론체계가 구성되는 과정을 '양태'와 '실태'라는 구분과 '의미기반'이라는 개념을 통해 설명한다. '의미기반'은 토마스 쿤의 '과학혁명'과 칼 포퍼의 '체계변형에 대한 입장차이'를 비교하면서 제시,검토한다. 
의미기반은 "시간 공간 내에 존재하는 어떤 임의로운 대상에 대하여 그것의 물리적 ‘특성’을 표상하고 그것의 ‘상태’를 서술할 어떤 일반적 방식들"로 정의하고 있는데, 구체적으로 서술공간, 서술모형, 서술양식에 따라서 다른 의미기반을 가진 과학이 존재한다. 의미기반이 다른 과학은 서로 이해하기가 어려운데, 대표적으로 고전역학의 의미기반으로는 양자역학이나 상대성이론을 이해하기가 어렵다.
 
이어서 그런 과학의 연구방법론을 토대로 '온생명'에 대해 설명한다. '온생명'은 '생명체가 온전하게 자기의 삶을 보존하며 영위할 수 있는 독립된 단위'를 말하는데, 태양과 지구를 포함한 물질계가 하나의 온생명임을 의미한다. 즉 우주 속 어디에 있더라도 태양과 지구의 상호작용으로 인하여 지구의 작은 생명체들이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온생명은 하나, 또는 생물체의 군집인 개체생명과 그것을 제외한 보생명으로 나누어 볼 수 있으며, 이러한 상호작용이 온생명을 구성하고 있다.

 

* 인상깊은 문단 :

 "이처럼 '선'과 '악'의 관념에 비추어 흔히 '우리편'과 '상대편'이라고 나누어 생각하는 구획관념은 더 깊숙히 인간의 본능 속에 그 기반을 두고 있는 듯하다.
인간의 선조가 특히 맹수글과의 경쟁 속에서 성공적인 생존을 유지해올 수 있었던 인간의 진화과정을 생각해 보면 '우리편'과 '상대편'의 철저한 구분의식이 대단히 유...
용한 역할을 했으리라는 점이 쉽게 짐작된다.
외부의 적과 대결하는 데 집단적인 협동을 중요한 무기로 사용해 온 인류의 선조는 이러한 집단구획 의식을 본능 속에 간직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며, 일단 본능 속에 새겨진 이러한 성향은 지교적 짧은 문화 발전과정의 기간 내에 특별한 수정을 받기가 어려웠으리라고 짐작된다.
뿐만 아니라 현대 이던의 문화발전 기간 내에서는 특히 민족의 생존을 위하여 이것이 유용한 방향의 기능을 해왔으리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현대에 접어들어 갑자기 역기능을 나타내기 시작한 이러한 성향은 '운동경기'라는 특별한 행동양식을 통해 묘한 절충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른바 '스포츠'라는 극히 무의미한 행동양식이 현대사회에서 불길같이 번져나가고 있는 것이 바로 이러한 집단구획 의식이 주는 현실적 독소를 대부분 제거하면서 인간이 지닌 이러한 본능적 욕구를 채워주기 때문이라고 이해될 수 있다.

인간의 성장과정에서 보면 이러한 집단구획 의식이 비교적 이른 유년기에 이미 발현되기 시작하여, 이것이 곧 '선'과 '악'의 관념과 결부하여 '좋은 편'과 '나쁜 편'으로의 구분으로 발전한다.
이러한 관념은 물론 성장과정의 진행과 더불어 상당한 수정이 가해지지만 근본적으로 이러한 방식의 사회의식 경향은 그 바탕에 깔린 본능적 구획성향과 함께 거의 누구에게나 일생 동안 그 사고 및 행동양식을 지배하게 된다.

아것 이외에도 인간의 가치관념 및 인식형태를 구성하는 대부분의 기본 요소들은 특히 성장과정을 통해 인간 심성의 심층부에 깊숙히 자리잡고 그의 모든 사고 및 감정을 지배하는 것이므로 이를 의식적으로 수정하기란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앞에서 논의한 바와 같이 바로 이러한 가치관념 및 인식형태가 현대의 과학기술 사회에서 가장 큰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점들이므로, 이들을 몰아내고 새로운 가치이념으로 대치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과제인가를 짐작할 수 있다."

 
[ 2012년 3월 21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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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가에게 묻다 - 굴절된 한일 현대사의 뿌리 찾기
김효순 지음 / 서해문집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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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말부터 우리나라를 비롯해 아시아 전역의 국가와 민중들에게 엄청난 피해를 끼친 일본은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지금까지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반성과 사과, 그리고 후속조치가 없었다. 그 뿐만 아니라 반성, 사과는 커녕 상당수 학자와 정치인들이 '한국의 근대화에 기여했다'거나 '독도는 일본 영토'라고 주장하고 일부 우익 인사들은 자국의 헌법을 바꾸어 '정식 군대'를 창설하려고 시도하고 있다. 한마디로 '불량(비양심적)국가'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도대체 왜 그럴까?
이러한 일본의 태도는 같은 전범국이었던 독일과 비교해보면 180도 정반대의 길을 걸어온 셈이다. 독일은 냉전으로 인해 동,서독으로 갈라지는 굴욕을 당했으면서도 2차대전 패전 후 국내외 군사재판을 통해 상당수 전쟁범죄자들을 처벌하였고 진심을 담아 피해국가와 민중들에게 사과했으며 상당액의 배상금을 지불한 바 있기 때문이다.
 
일본은 2차대전에서 패배했음에도 동서냉전의 최전선, 소련과 중국의 태평양 진출을 막아내기위한 미국의 전초기지를 받아들이면서 피해국들보다 오히려 미국으로부터 엄청난 정치경제적 혜택을 받았다. 미국은 사회주의 이념의 태평양 확산을 차단하기 위해 한국 뿐 아니라 일본에서도 좌파진영의 정치사회 세력을 극심하게 탄압하였고 전쟁범죄자들을 대부분 석방하고 천황제를 제외한 기존의 인물들과 정부체제를 존속시켰다. 그리고 일본에 엄청난 원조를 제공하고 경제적 기회를 부여하였다. 일본은 1950년 한국전쟁과 60년대 베트남 전쟁 등을 통해 급속한 경제성장을 이루었고 천황제 군사국가 시대의 인물과 체제를 기초로하여 전후에도 보수우익 세력이 경제권력과 손잡고 수 십년 동안 국가권력을 배타적으로 지배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동서냉전의 최전선이라는 외적 조건으로만 보면 독일과 일본이 큰 차이가 없음에도 왜 전후 처리는 정반대일까? 나에게 있어 이 의문은 일본 근현대사를 제대로 알지 못하면 풀기 어려운 것들이었다.

그리고 한국 내에서 일본에 대한 감정과 경멸은 또 다른 어려움이라 할 수 있다. 다른 사립대학에 대부분 존재하는 일본어학과가 서울대학교에 없다는 사실이 보여주듯 우리나라의 정치계, 학계 등 권력층의 일본에 대한 태도는 이해하기 어렵다. 이승만처럼 극렬하게 일본을 배타시하는 정치인이 있는가 하면, 박정희처럼 일본을 고향처럼 생각하는 정치인도 있다. 일제 식민지의 후퇴와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한국 내에 식민지 하수인들과 친일파들이 득세하여 국가권력을 좌우했음에도 자신들의 아킬레스건 때문인지 오히려 일본에 대한 학구적 연구를 배제한 것이라고 이해할 수 있지만...

이 책은 일본 내에서 전쟁범죄에 대한 전후처리가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그 중에서 한일관계라는 맥락에서 한국에 대한 제국주의 침탈에 대한 태도와 차리가 어떻게 진행되었는지와 더불어 한국정부와 정치권이 이 문제를 어떻게 대처해 왔는지 알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해준다.
 
저자 김효순은 "‘한일 신시대의 도래’라는 그럴 듯한 선언을 수없이 들어도 망언은 왜 계속되는 걸까? 일본 전역에 방치돼 있는 강제연행 희생자들의 유골은 고향 땅에 돌아올 기약이라도 있는 건가? 교과서 기술 등을 둘러싼 역사적 갈등을 극복 해소하는 방안은 없는가? 일본과 한국의 시민 사회는 어떤 노력을 해왔고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하나?"와 같은 질문들에 답을 찾고자 굴절된 한일현대사, 뒤틀린 한일관계의 뿌리에 들어 가보고자 한다.

이 책에 나오는 일본 내 역사가나 활동가들은 평생 난마처럼 꼬인 한국과 일본의 근현대사를 연구하거나 전후보상이나 재일동포 문제 해결을 위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노력해온 사람들이다. 냉전과 분단상황에 휘둘리면서도 균형감각을 잃지 않으려고 애썼던 이들의 오랜 경험과 시행착오와 식견이 역사를 보는 독자들의 안목을 넓혀주는 역할을 한다.

[야마다 쇼지] “일본인은 스스로 죄를 고백하지 못한 책임이 있다”
야마다 쇼지가 일본의 식민지 지배를 분석하는 문제의식은 과거의 어느 특정 시기에 한정돼 있지 않다. 그는 당시의 실상을 파헤치는 것 못지않게 ‘전후 책임’, ‘사후 책임’을 집요하게 추궁해왔다. 그의 문제 제기는 일본 정부의 책임 회피와 방관을 지적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국가 범죄’에 가담하고 묵인해온 일본 민중에게도 큰 책임이 있다는 '민중책임론'을 주저 없이 말한다. 그만큼 일본과 한국의 근현대사를 연구하는 야마다 교수의 자세는 결기에 차 있다. 그는 잘못된 과거를 따지는 지식인의 자세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말하지 않고 생각만 한다면 도피하는 것이다.”

[강덕상] “재일조선인의 역사 연구는 뿌리 찾기다”
재일동포 사학자 강덕상은 1923년 간토 대지진 때의 조선인 학살 배후에 일본 정부의 조직적 관여가 있었음을 밝혀냈다. 1960년대 초반 도쿄의 국회도서관에서 우연히 미국이 보낸 ‘반환 자료’(미군이 점령 초기에 압수한 일본 육군과 해군의 문서)를 볼 수 있었고, 이를 면밀하게 검토한 결과였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에서 성장한 그는 여느 조선 아이들처럼 자기부정과 정체성의 위기를 겪었다. 청소년기의 열등감과 피해의식을 이겨내고 뿌리를 찾기 위한 역사 연구에 들어갔다. 그가 오랜 강사 생활을 거쳐 대학 교수로 취직한 것은 예순을 몇 해 앞둔 때였다. 재일동포로서는 그가 처음이다. 은퇴를 생각할 늘그막에 교수가 된 그의 역정은 식민지 출신이 옛 종주국에 남아서 겪었던 고단한 삶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미야타 세쓰코] “시대가 연구자보다는 활동가를 원했다”
미야타 세쓰코는 전후 일본에서 한국, 조선에 대한 연구가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진행돼왔는지를 말해줄 수 있는 중요한 증인이다. 조선에 대한 주류 학계의 관심이 아주 낮았던 1954년 와세다 대학에 들어간 그는 몇 가지 일이 겹치면서 조선사 연구의 분수령이 될 수 있는 여러 모임의 결성이나 사건에 참여했다. 그에게는 어느 대학 교수라는 직함이 없다. 수십 년 동안 일본의 수많은 대학에서 강사 생활을 했다. 대학에 정착할 자리를 잡지 않은 것은 순수한 연구자보다는 활동가로서의 역할을 시대가 요구했기 때문이다.

[조동걸] “대학에서 근현대사 강의가 없었던 것 자체가 비극이다”
조동걸은 평생 독립운동사를 연구해온 국사학계의 원로다. 1965년 한일협정 체결 후 일본에서 온 청구권 자금의 일부로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가 꾸려졌을 때 초기부터 관여했다. 당시 주요한 구실을 했던 인사들이 고령으로 세상을 떠나는 바람에 그때의 우여곡절을 얘기해줄 수 있는 소중한 증인이다. 그는 무엇보다도 1949년 6월이 통탄스럽다. 반민특위가 와해됐고 ‘남로당 프락치 사건’으로 제헌의회에서 진보적 성향의 의원들이 쫓겨났다. 게다가 백범 김구까지 암살됐다. 이 때문에 일제 식민지 청산이나 독립운동사 정리 작업이 모두 중단됐다. 그 결과 대학에서 근현대사 강의가 오랜 기간 아예 없었고, 그 자체가 비극이라고 말한다.

[하야시 에이다이] “강제동원 희생자 위해 필사적으로 역사기록 남긴다”
하야시 에이다이는 다큐멘터리 르포를 쓰는 작가다. 징용으로 탄광에 끌려간 조선인, 자살특공대(가미카제), 일본군위안부, 이중 징용, 시베리아 억류자, 사할린에서의 조선인 학살 등 주제도 아주 다양하다. 그의 무기는 무엇보다도 끈질김이다. 피해자는 말할 것도 없고 가해자 편에 섰던 사람, 뭔가 감추려는 사람들을 찾아가 말을 건넨다. 답변을 회피하면 수십 번이라도 집요하게 찾아간다.
일본 국내뿐 아니라 러시아, 중국, 한국, 인도네시아, 뉴기니 등 광활한 지역을 찾아다니며 증언을 모은 그는 누구보다도 강제연행의 실상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강제연행은 없었다’거나 ‘당시 조선인은 법적으로 일제의 신민이었기 때문에 국민으로서 의무를 다한 것뿐’이라는 우익의 주장을 들으면 분노를 참을 수가 없다.

[김광열] “평생 찾아다닌 강제연행 기록, 이제 누가 하나?”
재일동포 김광열은 일제강점기에 지쿠호 탄전 지대에 끌려와 갖은 고초를 겪었던 동포들의 흔적이 사라져가는 것을 볼 수 없어 1969년 탄광 도시였던 다가와로 아예 이사를 했다. 발로 뛰어다니며 이름을 확인한 조선인 희생자는 약 2000명, 찾아낸 유골도 약 500위에 이른다. 그가 모아놓은 자료들은 이제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가치를 지니고 있다. 그가 구식 녹음기를 들고 다니며 증언을 수록했던 사람들은 다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77세에 [발로 본 지쿠호, 조선인 탄광노동의 기록]를 출간했다. 30년을 넘긴 집념의 결실이었다.

[우쓰미 아이코] “도쿄 군사재판에서 식민지 문제는 완전히 빠졌으니……”
우쓰미 아이코는 자타가 공인하는 조선인 B·C급 전범 문제의 전문가다. 1970년대 20대 후반 인도네시아에 갔다가, 현지의 포로감시원이던 한 조선 청년의 기막힌 삶을 우연히 알게 된 것이 전기가 됐다. 유감스럽게도 한국에는 아직 이 분야의 전문가가 없다. 현실적으로 연구에 30여 년의 격차가 있는 셈이다. 더욱 난감한 것은 그 격차가 좁혀질 전망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는 일흔이 넘은 나이에도 평생의 과제인 B?C급 전범 문제 해결을 위해 해외 취재를 하고 지원 활동을 벌인다.

[히다 유이치] “한일 시민단체, 과거사 문제 공유해야”
히다 유이치는 전후 보상 운동에 관여해온 일본의 활동가, 연구자, 단체들이 호응해서 만든 조직인 강제동원진상규명 네트워크의 공동 대표다. 재일동포 차별 등 인권 문제, 전후 보상이나 강제연행 희생자 조사 등을 다루는 시민운동에서 이 단체의 이름은 약방의 감초처럼 등장한다. 각 지역의 전문 연구자들과 활동가들이 유기적으로 결합되어 자료 입수, 피해 사례 조사, 유골 소재 확인 등에 주요한 구실을 했다. 식민지 피해 조사에서 한국의 정부 기관과 일본 시민단체 사이의 연계 활동이 처음으로 실현된 셈이다.

결국 이 책은 한일 양국의 여느 역사서에서도 찾을 수 없는 유일무이한 사실을 기록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공부모임의 한 참가자가 제안하여 세미나 교재로 선택된 이 책과 오랫동안 알려지지 않은 현대사의 비극, ‘시베리아 억류자’ 문제를 본격적으로 조명한 최초의 책 <는 일본군 인민군 국군이었다>의 저자는 동일인이다. 저자는 일본 내 한일관계 역사가들의 연구 동기와 활동에 얽힌 중요한 뒷이야기를 일일이 증언으로 끌어내 기록으로 남긴 것이다. 이들과의 대화에서는 흥미로운 일화들이 잇따라 튀어나온다. 단지 재미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하나 역사적 의미를 갖고 있는 것들이다. 조선사 연구의 기인 야마베 겐타로와 조선인 운동가 김천해의 인연, 북한에서 사라진 재일동포 사학도 김종국, 해방 공간에서 쫓겨 다닌 독립운동가 김선기와 박진목, 포로감시원과 포로가 만나 화해한 이학래와 던롭,박병숙과 바커르 등 근현대사를 가로지르는 그러나 누구도 관심없었던 이들의 흔적도 찾아냈다. 그동안 방치해 온 한국의 근대사 연구에 있어 더 없이 소중한 자료일 것이다.


이 책이 대학이나 연구기관의 전문적 연구 성과물은 아니지만, 책 속의 증언과 사실관계 기록은 저자의 이야기처럼 뒤이어 한일 근대사를 연구할 사람들에게 큰 동기와 사실자료를 제공할 것이라는데 공감한다. 책 속의 역사가들이 정리한 것만 가지고 "왜 일본은 양심적이지 못한가?"라는 의문에 대한 연구결과를 쉽게 판단할 수는 없지만, 몇 가지 사항들은 추측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 같다.

그것은 두 가지로 볼 수 있는데, 첫 번째로 2차 대전 후 동서냉전에 따른 패전국에 대한 전후처리에 있어 미국의 유럽국가인 독일과 아시아 국가인 일본에 대한 입장 차이에 기인한다고 생각한다. 미국은 독일이 유럽사회의 일원으로 미국과 같은 문화권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독일의 자율성을 상당부분 인정했고 일본의 경우는 '미개한 동양권'이라는 전제에서 권위적이고 패권적인 방식식으로 처리한 것이라고 본다.
두 번째로는 독일과 일본의 내부 사정과 수준에 따른 차이.. 다시 말해 독일은 16~17세기 유럽 전역의 르네상스 부흥과 자유주의 사상의 교류, 민주주의 혁명과 파시즘의 태동, 민중들의 조직과 투쟁, 사회주의 사상의 확산 등의 역사적 과정을 거쳐온 반면 일본은 중세시대의 막부통치에서 19세기 중후반 급속하게 메이지 유신을 단행하면서 자유주의, 민주주의, 사회주의 사상의 교류나 민중들의 투쟁 없이 곧바로 천황제와 군국주의로 이행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 두 가지 차이가 전후 독일과 일본의 자국내 전후처리와 민주주의의 정착에 그대로 반영되지 않았을까 하는 것이 나의 가설이다...^^
마지막은 문제해결을 위한 피해당사자국, 즉 우리나라의 태도와 노력이 거의 없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해방 후 1965년 박정희 군사정권이 전국민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일본과 '부당한 한일협정'을 통해 배상과 후속조치를 생략해버렸던 것이다. 그리고 그 이후 역대정권, 정치권, 학자, 언론 등은 일본에 대해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해방 후 동서냉전을 이유로 민중들의 뜻에 아랑곳하지 않고 미군정이 한국의 지배권력에 배치한 친일파가 잔류한 것이 가장 큰 원인일 것이다.
 
실제 상황이 그러함에도 미래에 대한 전망도 결코 밝지 않아 보인다. 이명박 정권 들어서 수구우익 세력들이 날뛰면서 초중고교나 대학에서 근현대사를 과목에서 삭제하려고 시도하는 행위들을 보면 우리나라의 근현대 역사가 뒤틀리고 회귀하고 있다는 절망감과 분노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지금부터라도 그동안 미진했던 근현대사 연구에 매진하고 일제에서 비롯된 만행과 버림받은 동포들에 대한 사실관계 파악에 주력한 후 각각의 사안에 걸맞는 국가적인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 2012년 3월 20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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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려와 철학자
장 프랑수아 르벨 & 마티유 리카르 지음, 이용철 옮김 / 이끌리오 / 2004년 5월
평점 :
품절


인류의 역사가 태동한 이래 아시아나 아메리카 대륙의 문명보다 뒤쳐져있던 유럽과 서구사회의 문명은 15~16세기부터 장족의 발전을 거듭하여 500여년 만에 지구촌 전체를 뒤덮었다. 특히 서구사회는 과학기술 문명과 자본주의 경제체제를 앞세워 물질적인 번영을 구가했다. 물론, 그들은 지금도 서구인들 무의식 속에 뿌리깊게 남아있는 인종적, 문화적 편견을 토대로 하여 근현대 시대에 지구촌 전역에서 수 많은 타민족과 타인종을 지배,점령하면서 살육과 약탈, 타문명에 대한 침탈을 자행했고 그들의 문명이 심어놓은 물질만능, 인간중심주의는 지구촌의 다른 생태계에 치명적인 위협을 가하고 있다. 아시아,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에서 저지른 만행이 없었다면 서구사회가 지금처럼 번영을 누리고 있을지 회의적일 정도다. 21세기 들어서 서구사회의 만행은 사라졌을까?

서구사회가 언젠가부터 누리던 물질적 번영의 이면에는 그 반대급부가 존재하는 것처럼 보인다. 서구인들은 수 천년의 역사 속에서 가장 물질적인 번영을 누리지만 역으로 정신적, 문화적 번영은 오히려 더 줄어든 것처럼 보인다. 한 때 서구인들의 정신적, 문화적 만족과 행복을 받쳐주던 그리스,로마 신화나 기독교 문화와 정신은 서구사회에서 근대문물이 발달하면서 비과학적이고 비합리적인 것이 되었다. 하지만 정신적, 철학적 바탕이 제거된 서구사회의 물질문명, 과학기술문명은 자신들에게 편안함과 행복감을 가져다 주지 않았다. 서구사회의 문명과 문화에서 무엇이 문제일까?

간혹 그와 같은 서구사회의 정신적, 철학적 빈곤에 대한 새로운 방향과 희망을 동양철학에서 찾는 경우가 있다.
 
이 책은 서구 과학문명을 공부하고 세포 유전학 분야의 과학자로 일하다가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나 히말라야 정착해 위대한 스승들 밑에서 가르침을 받고 티베트 승려가 된 아들 '마티유 리카르'와 현대 프랑스 유명 철학자 5인 중의 한 사람으로 한림원 정회원인 아버지 '장-프랑수아 르벨'이 히말라야 산중에서 만나 열흘간 펼치는 대화를 담은 것이다. 20세기를 대표하는 서양 철학자인 아버지와 전도유망한 분자 생물학자였다가 티베트 불교의 승려가 된 아들. 이들이 나누는 대화는 인간의 갈 길을 모색하며 철학의 역할이 박탈당한 이 시대에 서양인이 불교에 매력을 느끼는 이유에 대해, ‘왜 불교일까? 왜 서양에서 대단한 호기심을 유발하는가? 수많은 추종자가 따르는 이유는 무엇인가?’에 대한 문답을 통해 여러가지 생각할 점을 제시한다.(이 책은 처음 발간 후 프랑스에서 6개월 동안 베스트셀러 1위를 차지했으며 세계 16개국에서 번역 출간되어 수백만의 독자들의 사랑을 받는다고 알려져 있다.)

26세 되던 해 모든 것을 버리고 티베트 불교에 귀의해 구도의 삶을 살아가는 아들과 프랑스의 저명한 철학자이자 언론인인 아버지는 20년 만에 네팔의 히말라야 산중에서 만나게 되고 둘은 인류의 정신적 삶에 대해 열흘간 지적인 대화를 나눈다. 이 책의 첫 주제는 ‘왜 출가했느냐’라 할 수 있다. 최고 수준의 과학문명을 공부한 학생으로서 지난 30년간 이룩된 인류 사상 가장 놀랄 만한 지적이고 과학적인 모험에 동참하지 않고 왜 히말라야로 갔느냐…
아들의 출가에 대한 아버지의 비판적 질문을 통해 불가지론자인 아버지는 불교에서 말하는 궁극적 깨달음에 끝없이 회의를 품는다. 아들은 풍부한 비유로 이를 설명한다. 이들이 나누는 대화는 동서양 철학과 과학을 넘나들며 불교와 삶의 본질에 대해 진지하고 깊이 있게 이어진다. 이들의 대화는 현대 인문학의 세계, 인류 지성사를 책 한 권 속에서 알아볼 수 있는 즐거움을 선사한다.

불교는 과학인가? 철학인가? 종교인가? 지식인가? 지혜인가? "종교인들은 불교가 무신론적 철학이고 마음의 과학이라는 이유를 들어 거부하고, 철학자들은 불교를 철학에 끼워주지 않고 종교에 결부시키면서 거부한다. 그러므로 종교는 어디에도 시민권이 없다."
"사실 부처님의 가르침은 철학적이고 형이상학적인 주제들인 존재의 본성, 무지, 고통의 원인, 자율적이고 실체로서의 자아와 현상들의 비존재성, 인과법칙 등에 근거를 두고 있습니다. 이러한 주제들은 초자연성에 의해 윤색될 수 없습니다."

아들 마티유 리카르는 “생물학과 물리학이 생명의 기원과 우주의 형성에 관련하여 놀랄 만한 지식을 낳은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지식들로 행복과 고통의 근본적인 메커니즘을 규명할 수 있습니까?”라는 반문을 철학자인 아버지에게 던지며, 특히 출가 전 위대한 철학자나 예술가, 시인을 만나고 세계적인 과학자들을 사귀었지만, ‘저것이 내가 진정으로 열망하는 모습인가’에 대해서는 의문이 생겼다고 고백한다. 비록 자신의 분야에서는 세계적인 위치에 올랐지만 ‘가장 소박한’ 인간적인 완성과는 거리가 멀었고, 이를테면 위대한 시인이 사기꾼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에 절망했으며, 이에 반해 그가 대학 시절 히말라야 여행에서 만난 티베트의 승려는 엄청난 감동으로 다가왔다고 말한다. 가르침과 현실에서의 삶이 일치하고 진정한 내면의 평화를 가져오는 불교야말로 자신의 모든 것을 걸 새로운 삶의 방편으로 손색이 없었으며, 20년 훨씬 넘게 승려생활을 한 아들은 아버지와의 대담에서도 ‘이 선택을 단 한번도 후회한 적이 없었다’라고 이야기한다.
 
서로 너무나 대조적인 가치관으로 평행선을 달릴 것만 같았던 두 사람이 히말라야의 정경을 바라보며, 서로의 가치관에 대해 체계적으로 논의해 본 적이 없었던 두 사람이지만 최근 서양 사회에서 불교가 급속히 확산되는 것을 계기로 자연스럽고도 짜임새 있는 대화를 통해 서로간의 생각을 허물없이 교환하는 자리를 마련하기에 이른 것이다. 카투만두를 굽어보는 깊은 산 속의 외딴 산장에서 두 사람은 역사상 전 인류에게 부과되었던 여러 의문들에 대해 깊은 대화를 나누며 인류 지성사에 대한 탐구로, 동양과 서양의 정신사를, 삶과 사상, 정치와 휴머니티, 과학에 이르는 다양한 분야에 걸쳐 폭넓게, 혼란의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인생을 풍요롭게 살아가는 지혜와 인류의 참된 미래를 모색하기에 이른다.

인간 삶에 관한 진지한 성찰이 담긴 이 책에서 보여주는 부자간의 대화가 더욱 가치 있는 점은 이들 부자가 최고 수준의 서양 과학문명을 공부한 학자로서, 단순히 철학적, 종교적 문제만을 다루는데 그치지 않고 안락사나 인종 갈등과 유전자 복제 등과 같은 현대적 쟁점들에 대한 지식인의 진지한 고민을 보여준다는데 있다. 특히 세상의 단맛과 쓴맛을 두루 경험한 나이 든 아버지가 피력하는 유한성의 철학과 순수한 종교적 이상을 간직한 아들의 불교 철학은 서로 수렴하기도 하고 분산하기도 하면서 더 나은 세계와 인간을 지향하는 사람들의 노력을 감동적으로 보여준다.
 

굳이 부자간의 대화 전체를 내가 평가한다면, 아들의 '판정승'이라고 생각한다. 장-프랑수아 르벨은 처음부터 끝까지 '과학기술 만능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 서구의 철학과 문명이 일으킨 19~20세기의 학살과 만행, 살육과 전쟁, 환경파괴와 양극화는 지구인들의 고통을 배가시키고 있음에도 르벨은 이 문제를 애써 외면한다. 20세기 말까지 현대과학의 성과는 인류역사상 최대의 실적을 거두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인류의 과학이 사물과 인간에 대한 완전한 이해가 가능하다는 희망을 보여주지는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서구 과학문명의 특징인 전문화와 이분법의 한계가 점점 더 드러나고 있는 상황이라 할 수 있다. "과학 측정의 시도가 측정결과에 영향을 미치게"되는 양자역학이 대표적이다. 즉 과학의 주체인 인간(측정자)의 간섭을 배제한 과학의 결과물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고 있기도 하다.
그렇다고 해서 불교 승려인 마티유 리카르의 'KO'도 아니다. 수 년, 수 십년간 산중 사찰애서 명상과 수련을 통해서만 불교의 지혜에 가까워질 수 밖에 없는 현재의 상황은 대다수의 일반사람들이 불교의 진리와 지혜에 다가가기 불가능한 구조를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류 대다수 사람들이 쉽게 편하게 접할 수 있는 철학이나 과학처럼 많은 부분을 다듬과 일반화시켜야 하는 큰 숙제가 남겨져 있다는 것이다.

그래도 이 책을 통해 티벳 불교가 한국의 불교보다 훨씬 더 부처의 진리와 지혜에 접근하고 있고 대중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한국의 불교는 존재감 자체가 과거보다 더 즐어들었다. 그것은 불교를 받아들이고 부처의 지혜를 실천하는 한국의 불교계가 진리나 지혜 자체보다 기독교처럼 물질과 명예와 정치에 민감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특히 조계종) 티벳 불교와 달리 한국 불교는 '마음의 과학'이 아니라 '일신교' 같은 종교로 가고 있는 것이다. 결국 불교가 종교든, 철학이든 그 수행자들이 어떤 모습과 결과를 보여주느냐가 한국 불교의 미래를 결정하지 않을까 싶다.

이 책은 법정스님의 열 아홉번째 추천도서였다.
 
[ 2012년 3월 18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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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논어 - 홍사중의 고전 다시 읽기
홍사중 지음 / 이다미디어 / 2004년 8월
평점 :
절판


며칠 전 약속이 있어 광화문 부근에 갔다가 잠시 짬을 내어 교보문고에 들러 오랜만에 실컷 책구경을 했다. 그때 눈에 뜨인 책 중의 하나가 <마흔, 논어를 읽어야 할 시간>이었다. "꼭 마흔이 되어야 <논어>를 읽는 것인가?"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백 몇십년 전만 하더라도 이땅에서는 수 만명의 청소년과 성인들이 <논어>와 사서삼경을 읽었을텐데' 하면서...ㅋ
나 역시 한 권 한 권 책을 읽으면서 "언젠가 기회가 되면 동양 고전도 읽어야지.."라고 생각했는데, 지난 주에 우연하게도 공부모임 세미나 교재로 '논어'가 결정되어 읽게 되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점점 더 느끼는 것이지만 먹거리에서도 '편식'이 몸에 해로운 것처럼 '읽을거리'도 '편식'하게 되면 '마음'에, 또는 '정신'에 해로운 것 같다. 조선시대에 사대부들을 비롯한 지배계층들이 500백년 넘게 독차지했던 자신들의 권력과 이권을 일본에게 빼앗겼을 뿐 아니라 아무런 잘못도 죄도 없던 '백성'들까지 도탄에 빠트린 가장 중요한 이유 중 하나가 눈을 감고 귀도 막은 채 '편협된 주자학' 등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서구사회의 경우도 마찬가지라 할 수 있다. '성경'을 무슨 절대진리인 것처럼 받들면서 중세 암흑기에 수 많은 무고한 인명을 살상시켰고 그 이분법과 유아독존의 여파가 아직도 남아 미국의 부시 행정부는 이라크와 이란에서 엄청난 살상행위를 거듭하고 있다. '과학만능주의'와 '성장만능주의'는 서구사회 뿐 아니라 전세계에 뿌리를 깊게 내리면서 국가간 양극화와 국가내 빈부격차를 확대시키고 생태를 파괴하고 있다. 제국주의가 광품처럼 전세계를 몰아칠 때 한반도에 들어온 기독교 역시 21세기 현재에도 상당수 사람들에게 도그마로 남아 우리사회에 큰 악영향을 끼치고 있다.

가원전 중국 땅에서 태동하여 2000년 넘게 동양사회의 사상과 문화에 자리잡았던 '공맹사상' 등 동양사상은 19세기 말, 20세기 초에 서구의 강력한 힘에 떠밀려 지금은 흔적을 찾기도 어렵다. 물론 동양사상 뿐 아니라 전세계 구석구석에서 수 천년, 수 만년 동안 이어져오던 여러 민족과 국가의 전통사상과 문화가 서구 제국주의의 무자비한 탄압과 말살정책으로 사라져가고 있는 형편이다. 서구에서 태동하여 전세계에 퍼졌던 자유주의와 민주주의 가치의 핵심이 '다원성'과 '만민평등'임에도 당시에는 서구인들의 '그들만의 리그'였기 때문일 것이다.
서구사회에서는 20세기 후반부터 서구의 지배사상과 문화가 더 이상 전세계적인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다는 반성과 문제제기가 이어지고 동양사상을 비롯한 지구상의 다양한 사상과 문화가 존중되고 그 의미와 내용이 재평가되기 시작한 지 오래다. 그럼에도 정작 동양사회, 특히 중국과 한국에서는 오히려 서구사상과 문화가 더욱 기승을 부리고 있다고 느껴진다. 답답한 상황이다.

나 역시 사회적,정치적 격변기를 겪을 수 밖에 없는 세대라 <논어>를 읽으면 언론에 거론되는 여러 정치인, 지도자급 인물들을 생각하게 된다. 특히 박정희나 전두환, 김영삼처럼 상식적,정상적인 과정 속에서 대통령에 취임한 정치인은 평가할 가치조차 없었고 현재 대통령인 이명박은 <논어>의 관점에서는 군자 비슷하기는 커녕 최악의 지도자이자 "강물이 뒤엎을 배"에 해당하기에 제외한다. 그나마 김대중, 노무현 전직 대통령과 올해 우리나라에서 총선, 대선이 실시되는 가운데 거론되는 여러 야권 지도자(안철수,문재인,유시민,손학규,이정희등)을 중심으로 자연스럽게 평가하게 된다. 공자의 많은 이야기와 생각 중에서 사람과 사물과 사건과 상황과 갈등과 태도를 바라볼 수 있게 되어 딱딱할 것이라는 당초 생각보다 재미있게 읽었다.

동양이라고 할 수 있는 중국, 한국, 일본, 동남아 각국은 서양사회와 전혀 다른 가치관과 문화로 수 천년 넘게 이어져왔다. 그런 과정에서 동양사람들의 몸과 문화 속에 유전되어온 것은 여전히 서양의 그것과 무척 다르다. 그렇기 때문에 서양고전 뿐 아니라 동양고전 역시 꾸준히 탐구해보고 그 사상과 의미를 재해석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실제 언젠가부터 동양 내부에서보다 서구사회에서 동양철학과 사상을 연구하고 재해석하는 학자들이 늘어난다고 한다.
혹자는 '약 2,500년 전의 공자와 논어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라고 질문을 던질 수 있다. 수 천년의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공자가 다시 우리 앞에 나타난다면 어떤 말을 할 것인가. 인간의 본성을 무어라 설파할 것이며, 어떤 삶이 올바른 삶이라고 가르칠 것인가? 이런 문제의식은 한 번쯤 진지하게 생각해봐야할 것이다.
과연 공자는 21세기에 제대로 재평가, 재해석되어 새롭게 부활할 수 있을까?

이 책은 단순히 논어의 텍스트를 알기 쉽게 해석한 책은 아니다. 논어의 텍스트를 재해석하기보다는 오히려 인간 공자를 탐구한 책이라는 표현이 적합하다. 저자는 인간 공자를 통해 인간의 본성을 이해하고, 인간과 세계의 관계를 탐구하고, 그래서 삶의 지혜를 깨닫고 올바른 교훈을 터득하고자 한다.
그래서 저자는 책의 제목을 <나의 논어>로 붙였다고 말한다. 저자는 우선 공자를 둘러싸고 있는 신화의 껍질을 과감히 벗겨냈다. 그리고 오늘을 힘겹게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을 오버랩시켜 공자의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성인 공자에서 인간 공자로의 귀환이다.

저자가 동서양의 문헌을 두루 섭렵하면서 만난 공자는 비천한 집안에서 태어나 출세를 위해 기술을 배우고 학문을 익힌 사람이었다. 그리고 도저히 실현될 가망이 없는 꿈에 매달린 채 좌절과 체념 속에서 일생을 마친 비운의 인간이었다. 슬픔을 참지 못해 목놓아 울기도 했고, 거침없이 노여움을 나타내기도 했고, 제자들에게 핀잔을 잘 주고 농담도 하고 좌절감에 사로잡혀 신세한탄을 늘어놓기도 했다.
공자가 살았던 춘추전국시대는 내일을 기약할 수 없을 만큼 격동과 혼돈에 시달리던 시절이었다. 그것은 온갖 악덕과 비정에 물들고 소인들과 권모술수가 판치는 세상이었다. 어제의 정의가 오늘의 죄악이 되고, 오늘의 권력자가 언제 역적몰이를 당할지도 모르고, 권력이 법과 정의의 저울대를 멋대로 바꾸고, 나아가 도덕의 눈금마저 숨져지는 시대였다. 저자는 이런 난세의 한가운데서 도덕 정치라는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현실의 권력자에게 인정받으려는 인간 공자의 몸부림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저자가 1장 '공자를 말한다'에서 시도하는 것은 신화 벗기기이다. 공자를 둘러싼 신화의 껍질을 벗겨내고 인간 드라마를 보여준다. 출생의 비밀에서부터 가족을 둘러싼 의혹 등 신화 찌꺼기들을 걷어내고 인간 공자의 참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비천한 신분을 벗어나 말단 관직의 진출과 이후 14년에 걸친 떠돌이 현실 정치가의 고단한 모습, 공자를 미워하는 사람들, 고향으로의 귀향과 죽음을 다루고 있다. 1장에는 우리에게 익숙한 연령별 특성인 '이립(而立)'-'불혹(不惑)- '지천명(知天命)'-''이순(耳順)'-'종심(從心)'과 공자의 말년에 피력한 소회 '여일이관지(予一以貫之 나는 그저 외길 하나를 일관해서 걸어왔을 뿐이다)'라는 고사성어가 있다.

제2장 '지식을 말한다'에서는 지(知)의 본질과 목적 그리고 학문하는 자세를 일깨워준다. 당시의 시대 상황에 비추어 예(禮)로서의 지를 말하며 이것은 단순히 앎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실천의 지식을 의미한다. 2장에는 '학이시습지 불역역호(學而時習之 不亦悅乎)', '유붕자원방래 불역낙호(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 '인부지이불온 불역군자호(人不知而不溫 不亦君子好)'와 '육언육폐(六言六蔽)', '온고지신(溫故知新)', '완불상지(玩物喪志)', 그리고 '현현역색(賢賢易色)'에 대해 그 유래와 뜻을 설명한다.

제3장 '군자와 소인을 말한다'에서는 인간의 본질과 인간의 도리, 그리고 삶의 자세를 가르치고 있다. 공자 사상의 핵심인 인(仁)에 대해 다양한 사례를 제시하며 쉽게 설명하고 있다. "인은 사랑하는 것이며, 지는 이해하는 것이다"라는 말은 공자 사상의 핵심을 보여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3장에서는 '화이부동(和而不同)', '견리사의 견위수명(見利思義 見危授命)', '지자요수 인자요산(智者樂水 仁者樂山)', '기소불욕 물시어인(己所不欲 勿施於人)', '교언영색(巧言令色)' 대한 유래와 뜻을 설명한다.

제4장 '처세술을 말한다'에서는 말 그대로 세상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처세훈을 들려준다. 공자가 살았던 시대 상황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에 비추어도 조금도 낯설지 않다. 공자가 가르치는 난세의 처세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살아있는 경구임에 틀림없다. 4장에서는 '인자불우 지자불혹 용자불구(人者不憂 知者不惑 勇者不懼)', '익자삼우 손지삼우(益者三友 損者三友)', '방유도 빈자천언지야 방무도 부차귀언지야(邦有道 危言危行 邦無道 危行言孫)', '군자유삼계(君子有三戒)', '불환무위 환소이립(不患無位 患所以立)', '군자 욕눌어언 이민어행(君子 欲訥於言 而敏於行)' 등에 대한 유래와 뜻을 설명하고 있다.

제5장 '리더십을 말한다'에서는 한 나라나 한 무리의 지도자가 갖추어야 할 도리와 자세를 얘기한다. 공자가 말하는 군주론은 사리사욕에 눈이 멀어 정쟁을 일삼는 우리의 정치 지도자들이 금과옥조로 삼을 만하다. 5장에는 '관즉득중 신즉민이언 민즉유공 공즉열(寬則得衆 信則民任焉 敏則有功 公則說)'과 '민면이무치 도지이덕 제지이례 유치차격(民免而無恥 道之以德 齊之以禮 有恥且格)' 등에 대한 유래와 뜻을 셜명되어 있다.

제6장 '천명과 부귀를 말한다'에서는 인간의 욕망을 경계하고 천명에 순응할 것을 요구한다. 현실에서 재물과 명성을 탐하는 것은 죄가 되지 않지만 도가 지나침을 경계하라고 가르친다. 정당한 수단으로 재물과 명성을 얻으면 하등 부끄러워 할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6장에는 '군자유삼외(君子有三畏)' 등에 대해 들어있다.

제7장 '공자 학원과 제자들'에서는 공자의 교육 이념과 교육 방법을 얘기한다. 당시 공자 학원에는 출세를 위해 제자들이 많이 모여들었지만 공자는 신분이나 우열의 차별을 두지 않았다. 공자의 제자들 중에서 논어에 가장 빈번하게 등장하는 자로와 안연, 자공을 다루고 '사과십철(四科十哲 : 공자의 문하생 중 뛰어난 제자 10명. 덕행에는 안연(顔淵)·민자건(閔子騫)·염백우·중궁(仲弓), 언어에는 재아(宰我)·자공(子貢), 정사(政事)에는 염유·계로(季路), 문학에는 자유(子遊)·자하(子夏))'과 '칠십자(七十子 : 공자의 제자 가운데 후세에 이름이 알려진 뛰어난 70인)'를 설명한다.


과거 중국이나 한반도의 고전도 그렀지만, <논어>의 원문 한자를 읽어보면 <논어>는 '해석해야'하는 텍스트로 보인다. 따라서 혹자는 <논어>에 대한 주석서가 3천권이 넘는다고 말했다. 즉 내가 이 책 <나의 논어>를 한 번 읽고 어디가서 '내가 <논어>를 읽어 보았다.'라고 쉽사리 떠들 수 없다는 말일 것이고 나 역시 그렇게 생각한다. 앞으로 다른 관점이나 해석을 하는 종류도 읽고 이 책도 몇 번을 더 읽어야 '내 것'으로 만들 수 있으리니...ㅎ

현실의 권력 투쟁, 명분과 현실 사이의 갈등, 생을 이어가야 하는 세상살이의 고단함, 인간의 욕망이 빚어내는 시시콜콜한 일상사, 이런 것들이 저자가 만난 인간 공자의 모습이다. 저자는 그런 것들이 바로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과 별다른 차이가 없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렇게 이해될 때, 비로소 공자는 오늘 우리와 함께 살아 숨쉬고, 또 논어는 죽은 경구가 아니라 생명의 언어로 살아 꿈틀거린다.
저자는 공자가 숭배의 대상이건, 비판의 대상이건 상관하지 말고 한 인간으로 보자고 말하고 있다. 논어를 한 인간의 언행의 기록으로 보아야 공자의 참모습과 논어의 참언어를 제대로 맛보고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책을 덮고 나서 나는 과연 그렇게 느꼈나? 이 책에서는 <사기>나 '성경' 또는 '불경'과 같은 신화같은 내용을 담겨있디 않았다. 저자의 원래 의도대로 공자의 인간 본성이 숨기없이 나타나 있다.

이번에 읽은 <논어>에서는 '온고지신'처럼 과거에 중고등학교에서 배우가나 알고 있던 고사성어에 대해 원래 유래와 뜻을 다시 새길 수 있었다. 그리고 춘추전국시대의 구체적인 상황 속에서, 어느 제자와 대화 속에서, 어떤 취지로 고사성어가 사용되었는지 알게 되었다. '육언육폐' 등 새로운 고사성어도 많이 배운 것 같다.

공자의 사상과 철학을 기본으로 받아들였으면서도 청나라와 조선이 '군자의 나라'가 되지 못했던 것은 아무래도 도그마와 해석의 문제가 컸던 것으로 생각된다. (아직은 명확하게는 모르겠지만)명나라 때 왕양명에 공자의 '유학'이 '주자학'으로 재해석되고 조선에 도입되면서 또 재해석되는 가운데 명나라(이후 청나라)와 조선이 공자사상의 '본질'이 아닌 '자구'에 매달린 것들이 그러한 사례일 것이다. 이덕일의 <당쟁으로 보는 조선 역사>는 그러한 과정을 잘 보여주었다.

재미있는 것은 사마천과 공자의 비슷한 점이 있다는 것이다. 공자의 삶의 역정과 공자가 역사에 남긴 유산이 비교할 수 없게 다르지만, 그럼에도 사마천의 <사기 본기>를 읽으면서 사마천과 공자의 닮은 점을 발견하게 된다. 사마천이 <사기>를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한 것이 자신의 인생 후반기에 한나라 무제에게 궁형을 당한 이후였다. 공교롭게도 공자 역시 춘추전국시대 제후국으로부터도 중용되지 못하여 14년 동안 방랑한 후인 인생 후반기에 본격적으로 <논어>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두 사람의 인생역정이 똑같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역사에는 '만약'이 무의미하기는 하지만, 공자가 제나라나 노나라의 왕들에게 '중용'되었다면 <논어>가 탄생할 수 있었을까? 그리고 공자의 사상이 공자 사후 2천년 넘게 동양에그렇게 강하게 영향력을 가질 수 있었을까 자문해본다.
 
[ 2012년 3월 16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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