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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논어 - 홍사중의 고전 다시 읽기
홍사중 지음 / 이다미디어 / 2004년 8월
평점 :
절판
며칠 전 약속이 있어 광화문 부근에 갔다가 잠시 짬을 내어 교보문고에 들러 오랜만에 실컷 책구경을 했다. 그때 눈에 뜨인 책 중의 하나가 <마흔, 논어를 읽어야 할 시간>이었다. "꼭 마흔이 되어야 <논어>를 읽는 것인가?"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백 몇십년 전만 하더라도 이땅에서는 수 만명의 청소년과 성인들이 <논어>와 사서삼경을 읽었을텐데' 하면서...ㅋ
나 역시 한 권 한 권 책을 읽으면서 "언젠가 기회가 되면 동양 고전도 읽어야지.."라고 생각했는데, 지난 주에 우연하게도 공부모임 세미나 교재로 '논어'가 결정되어 읽게 되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점점 더 느끼는 것이지만 먹거리에서도 '편식'이 몸에 해로운 것처럼 '읽을거리'도 '편식'하게 되면 '마음'에, 또는 '정신'에 해로운 것 같다. 조선시대에 사대부들을 비롯한 지배계층들이 500백년 넘게 독차지했던 자신들의 권력과 이권을 일본에게 빼앗겼을 뿐 아니라 아무런 잘못도 죄도 없던 '백성'들까지 도탄에 빠트린 가장 중요한 이유 중 하나가 눈을 감고 귀도 막은 채 '편협된 주자학' 등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서구사회의 경우도 마찬가지라 할 수 있다. '성경'을 무슨 절대진리인 것처럼 받들면서 중세 암흑기에 수 많은 무고한 인명을 살상시켰고 그 이분법과 유아독존의 여파가 아직도 남아 미국의 부시 행정부는 이라크와 이란에서 엄청난 살상행위를 거듭하고 있다. '과학만능주의'와 '성장만능주의'는 서구사회 뿐 아니라 전세계에 뿌리를 깊게 내리면서 국가간 양극화와 국가내 빈부격차를 확대시키고 생태를 파괴하고 있다. 제국주의가 광품처럼 전세계를 몰아칠 때 한반도에 들어온 기독교 역시 21세기 현재에도 상당수 사람들에게 도그마로 남아 우리사회에 큰 악영향을 끼치고 있다.
가원전 중국 땅에서 태동하여 2000년 넘게 동양사회의 사상과 문화에 자리잡았던 '공맹사상' 등 동양사상은 19세기 말, 20세기 초에 서구의 강력한 힘에 떠밀려 지금은 흔적을 찾기도 어렵다. 물론 동양사상 뿐 아니라 전세계 구석구석에서 수 천년, 수 만년 동안 이어져오던 여러 민족과 국가의 전통사상과 문화가 서구 제국주의의 무자비한 탄압과 말살정책으로 사라져가고 있는 형편이다. 서구에서 태동하여 전세계에 퍼졌던 자유주의와 민주주의 가치의 핵심이 '다원성'과 '만민평등'임에도 당시에는 서구인들의 '그들만의 리그'였기 때문일 것이다.
서구사회에서는 20세기 후반부터 서구의 지배사상과 문화가 더 이상 전세계적인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다는 반성과 문제제기가 이어지고 동양사상을 비롯한 지구상의 다양한 사상과 문화가 존중되고 그 의미와 내용이 재평가되기 시작한 지 오래다. 그럼에도 정작 동양사회, 특히 중국과 한국에서는 오히려 서구사상과 문화가 더욱 기승을 부리고 있다고 느껴진다. 답답한 상황이다.
나 역시 사회적,정치적 격변기를 겪을 수 밖에 없는 세대라 <논어>를 읽으면 언론에 거론되는 여러 정치인, 지도자급 인물들을 생각하게 된다. 특히 박정희나 전두환, 김영삼처럼 상식적,정상적인 과정 속에서 대통령에 취임한 정치인은 평가할 가치조차 없었고 현재 대통령인 이명박은 <논어>의 관점에서는 군자 비슷하기는 커녕 최악의 지도자이자 "강물이 뒤엎을 배"에 해당하기에 제외한다. 그나마 김대중, 노무현 전직 대통령과 올해 우리나라에서 총선, 대선이 실시되는 가운데 거론되는 여러 야권 지도자(안철수,문재인,유시민,손학규,이정희등)을 중심으로 자연스럽게 평가하게 된다. 공자의 많은 이야기와 생각 중에서 사람과 사물과 사건과 상황과 갈등과 태도를 바라볼 수 있게 되어 딱딱할 것이라는 당초 생각보다 재미있게 읽었다.
동양이라고 할 수 있는 중국, 한국, 일본, 동남아 각국은 서양사회와 전혀 다른 가치관과 문화로 수 천년 넘게 이어져왔다. 그런 과정에서 동양사람들의 몸과 문화 속에 유전되어온 것은 여전히 서양의 그것과 무척 다르다. 그렇기 때문에 서양고전 뿐 아니라 동양고전 역시 꾸준히 탐구해보고 그 사상과 의미를 재해석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실제 언젠가부터 동양 내부에서보다 서구사회에서 동양철학과 사상을 연구하고 재해석하는 학자들이 늘어난다고 한다.
혹자는 '약 2,500년 전의 공자와 논어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라고 질문을 던질 수 있다. 수 천년의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공자가 다시 우리 앞에 나타난다면 어떤 말을 할 것인가. 인간의 본성을 무어라 설파할 것이며, 어떤 삶이 올바른 삶이라고 가르칠 것인가? 이런 문제의식은 한 번쯤 진지하게 생각해봐야할 것이다.
과연 공자는 21세기에 제대로 재평가, 재해석되어 새롭게 부활할 수 있을까?
이 책은 단순히 논어의 텍스트를 알기 쉽게 해석한 책은 아니다. 논어의 텍스트를 재해석하기보다는 오히려 인간 공자를 탐구한 책이라는 표현이 적합하다. 저자는 인간 공자를 통해 인간의 본성을 이해하고, 인간과 세계의 관계를 탐구하고, 그래서 삶의 지혜를 깨닫고 올바른 교훈을 터득하고자 한다.
그래서 저자는 책의 제목을 <나의 논어>로 붙였다고 말한다. 저자는 우선 공자를 둘러싸고 있는 신화의 껍질을 과감히 벗겨냈다. 그리고 오늘을 힘겹게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을 오버랩시켜 공자의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성인 공자에서 인간 공자로의 귀환이다.
저자가 동서양의 문헌을 두루 섭렵하면서 만난 공자는 비천한 집안에서 태어나 출세를 위해 기술을 배우고 학문을 익힌 사람이었다. 그리고 도저히 실현될 가망이 없는 꿈에 매달린 채 좌절과 체념 속에서 일생을 마친 비운의 인간이었다. 슬픔을 참지 못해 목놓아 울기도 했고, 거침없이 노여움을 나타내기도 했고, 제자들에게 핀잔을 잘 주고 농담도 하고 좌절감에 사로잡혀 신세한탄을 늘어놓기도 했다.
공자가 살았던 춘추전국시대는 내일을 기약할 수 없을 만큼 격동과 혼돈에 시달리던 시절이었다. 그것은 온갖 악덕과 비정에 물들고 소인들과 권모술수가 판치는 세상이었다. 어제의 정의가 오늘의 죄악이 되고, 오늘의 권력자가 언제 역적몰이를 당할지도 모르고, 권력이 법과 정의의 저울대를 멋대로 바꾸고, 나아가 도덕의 눈금마저 숨져지는 시대였다. 저자는 이런 난세의 한가운데서 도덕 정치라는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현실의 권력자에게 인정받으려는 인간 공자의 몸부림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저자가 1장 '공자를 말한다'에서 시도하는 것은 신화 벗기기이다. 공자를 둘러싼 신화의 껍질을 벗겨내고 인간 드라마를 보여준다. 출생의 비밀에서부터 가족을 둘러싼 의혹 등 신화 찌꺼기들을 걷어내고 인간 공자의 참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비천한 신분을 벗어나 말단 관직의 진출과 이후 14년에 걸친 떠돌이 현실 정치가의 고단한 모습, 공자를 미워하는 사람들, 고향으로의 귀향과 죽음을 다루고 있다. 1장에는 우리에게 익숙한 연령별 특성인 '이립(而立)'-'불혹(不惑)- '지천명(知天命)'-''이순(耳順)'-'종심(從心)'과 공자의 말년에 피력한 소회 '여일이관지(予一以貫之 나는 그저 외길 하나를 일관해서 걸어왔을 뿐이다)'라는 고사성어가 있다.
제2장 '지식을 말한다'에서는 지(知)의 본질과 목적 그리고 학문하는 자세를 일깨워준다. 당시의 시대 상황에 비추어 예(禮)로서의 지를 말하며 이것은 단순히 앎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실천의 지식을 의미한다. 2장에는 '학이시습지 불역역호(學而時習之 不亦悅乎)', '유붕자원방래 불역낙호(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 '인부지이불온 불역군자호(人不知而不溫 不亦君子好)'와 '육언육폐(六言六蔽)', '온고지신(溫故知新)', '완불상지(玩物喪志)', 그리고 '현현역색(賢賢易色)'에 대해 그 유래와 뜻을 설명한다.
제3장 '군자와 소인을 말한다'에서는 인간의 본질과 인간의 도리, 그리고 삶의 자세를 가르치고 있다. 공자 사상의 핵심인 인(仁)에 대해 다양한 사례를 제시하며 쉽게 설명하고 있다. "인은 사랑하는 것이며, 지는 이해하는 것이다"라는 말은 공자 사상의 핵심을 보여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3장에서는 '화이부동(和而不同)', '견리사의 견위수명(見利思義 見危授命)', '지자요수 인자요산(智者樂水 仁者樂山)', '기소불욕 물시어인(己所不欲 勿施於人)', '교언영색(巧言令色)' 대한 유래와 뜻을 설명한다.
제4장 '처세술을 말한다'에서는 말 그대로 세상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처세훈을 들려준다. 공자가 살았던 시대 상황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에 비추어도 조금도 낯설지 않다. 공자가 가르치는 난세의 처세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살아있는 경구임에 틀림없다. 4장에서는 '인자불우 지자불혹 용자불구(人者不憂 知者不惑 勇者不懼)', '익자삼우 손지삼우(益者三友 損者三友)', '방유도 빈자천언지야 방무도 부차귀언지야(邦有道 危言危行 邦無道 危行言孫)', '군자유삼계(君子有三戒)', '불환무위 환소이립(不患無位 患所以立)', '군자 욕눌어언 이민어행(君子 欲訥於言 而敏於行)' 등에 대한 유래와 뜻을 설명하고 있다.
제5장 '리더십을 말한다'에서는 한 나라나 한 무리의 지도자가 갖추어야 할 도리와 자세를 얘기한다. 공자가 말하는 군주론은 사리사욕에 눈이 멀어 정쟁을 일삼는 우리의 정치 지도자들이 금과옥조로 삼을 만하다. 5장에는 '관즉득중 신즉민이언 민즉유공 공즉열(寬則得衆 信則民任焉 敏則有功 公則說)'과 '민면이무치 도지이덕 제지이례 유치차격(民免而無恥 道之以德 齊之以禮 有恥且格)' 등에 대한 유래와 뜻을 셜명되어 있다.
제6장 '천명과 부귀를 말한다'에서는 인간의 욕망을 경계하고 천명에 순응할 것을 요구한다. 현실에서 재물과 명성을 탐하는 것은 죄가 되지 않지만 도가 지나침을 경계하라고 가르친다. 정당한 수단으로 재물과 명성을 얻으면 하등 부끄러워 할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6장에는 '군자유삼외(君子有三畏)' 등에 대해 들어있다.
제7장 '공자 학원과 제자들'에서는 공자의 교육 이념과 교육 방법을 얘기한다. 당시 공자 학원에는 출세를 위해 제자들이 많이 모여들었지만 공자는 신분이나 우열의 차별을 두지 않았다. 공자의 제자들 중에서 논어에 가장 빈번하게 등장하는 자로와 안연, 자공을 다루고 '사과십철(四科十哲 : 공자의 문하생 중 뛰어난 제자 10명. 덕행에는 안연(顔淵)·민자건(閔子騫)·염백우·중궁(仲弓), 언어에는 재아(宰我)·자공(子貢), 정사(政事)에는 염유·계로(季路), 문학에는 자유(子遊)·자하(子夏))'과 '칠십자(七十子 : 공자의 제자 가운데 후세에 이름이 알려진 뛰어난 70인)'를 설명한다.
과거 중국이나 한반도의 고전도 그렀지만, <논어>의 원문 한자를 읽어보면 <논어>는 '해석해야'하는 텍스트로 보인다. 따라서 혹자는 <논어>에 대한 주석서가 3천권이 넘는다고 말했다. 즉 내가 이 책 <나의 논어>를 한 번 읽고 어디가서 '내가 <논어>를 읽어 보았다.'라고 쉽사리 떠들 수 없다는 말일 것이고 나 역시 그렇게 생각한다. 앞으로 다른 관점이나 해석을 하는 종류도 읽고 이 책도 몇 번을 더 읽어야 '내 것'으로 만들 수 있으리니...ㅎ
현실의 권력 투쟁, 명분과 현실 사이의 갈등, 생을 이어가야 하는 세상살이의 고단함, 인간의 욕망이 빚어내는 시시콜콜한 일상사, 이런 것들이 저자가 만난 인간 공자의 모습이다. 저자는 그런 것들이 바로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과 별다른 차이가 없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렇게 이해될 때, 비로소 공자는 오늘 우리와 함께 살아 숨쉬고, 또 논어는 죽은 경구가 아니라 생명의 언어로 살아 꿈틀거린다.
저자는 공자가 숭배의 대상이건, 비판의 대상이건 상관하지 말고 한 인간으로 보자고 말하고 있다. 논어를 한 인간의 언행의 기록으로 보아야 공자의 참모습과 논어의 참언어를 제대로 맛보고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책을 덮고 나서 나는 과연 그렇게 느꼈나? 이 책에서는 <사기>나 '성경' 또는 '불경'과 같은 신화같은 내용을 담겨있디 않았다. 저자의 원래 의도대로 공자의 인간 본성이 숨기없이 나타나 있다.
이번에 읽은 <논어>에서는 '온고지신'처럼 과거에 중고등학교에서 배우가나 알고 있던 고사성어에 대해 원래 유래와 뜻을 다시 새길 수 있었다. 그리고 춘추전국시대의 구체적인 상황 속에서, 어느 제자와 대화 속에서, 어떤 취지로 고사성어가 사용되었는지 알게 되었다. '육언육폐' 등 새로운 고사성어도 많이 배운 것 같다.
공자의 사상과 철학을 기본으로 받아들였으면서도 청나라와 조선이 '군자의 나라'가 되지 못했던 것은 아무래도 도그마와 해석의 문제가 컸던 것으로 생각된다. (아직은 명확하게는 모르겠지만)명나라 때 왕양명에 공자의 '유학'이 '주자학'으로 재해석되고 조선에 도입되면서 또 재해석되는 가운데 명나라(이후 청나라)와 조선이 공자사상의 '본질'이 아닌 '자구'에 매달린 것들이 그러한 사례일 것이다. 이덕일의 <당쟁으로 보는 조선 역사>는 그러한 과정을 잘 보여주었다.
재미있는 것은 사마천과 공자의 비슷한 점이 있다는 것이다. 공자의 삶의 역정과 공자가 역사에 남긴 유산이 비교할 수 없게 다르지만, 그럼에도 사마천의 <사기 본기>를 읽으면서 사마천과 공자의 닮은 점을 발견하게 된다. 사마천이 <사기>를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한 것이 자신의 인생 후반기에 한나라 무제에게 궁형을 당한 이후였다. 공교롭게도 공자 역시 춘추전국시대 제후국으로부터도 중용되지 못하여 14년 동안 방랑한 후인 인생 후반기에 본격적으로 <논어>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두 사람의 인생역정이 똑같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역사에는 '만약'이 무의미하기는 하지만, 공자가 제나라나 노나라의 왕들에게 '중용'되었다면 <논어>가 탄생할 수 있었을까? 그리고 공자의 사상이 공자 사후 2천년 넘게 동양에그렇게 강하게 영향력을 가질 수 있었을까 자문해본다.
[ 2012년 3월 16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