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과 메타과학
장회익 지음 / 지식산업사 / 1990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2008년 수학 및 자연과학 교양서를 주로 읽을 때 구해서 책꽂이에 두었다가 지난번 이 책의 저자인 장회익 교수의 <물질, 생명, 인간>을 읽은 후 찾아보았다. <공부의 즐거움>을 읽으면서도 저자가 어떤 과정을 거쳐 과학철학자가 되었는지, 그 과정에서 문제의식과 아이디어가 어떻게 변해갔는지 가끔 궁금했다. 특히, 학문간의 통섭이나 '온생명' 이론에 대한 저자의 완성된 생각이나 결론이 아니라 저자의 초기 문제의식을 짚어보고 싶었다.
1989년에 처음 발간된 것으로 보이는 이 책은 그나마 저자의 초창기 문제의식과 아이디어, 연구결과물을 담고 있어 재미있게 읽었다. 한국이 배출해 낸 세계적인 과학철학자답게 설득력이 있다. 조금 어렵지만..ㅎ

전체적인 내용은 과학의 학문적 구조와 과학적 인식의 성격, 그리고 과학을 통해 인식된 우주와 그 안에서 형성되어 가고 있는 생명과 인간에 대해서 다루었다. 저자는 그 두 가지 주제가 "완전히 독립된 것이 아니라 결국 인간이라고 하는 하나의 고리를 통해 연결된다"고 책머리에 밝혔다. 즉, 우리는 "과학을 통해 인간을 이해하면서 다시 과학이란 인간이 하는 것임을 확인"하게 되며, "과학이란 인간이 지닌 제약을 벗어날 수 없으며 인간 또한 과학이 전해주는 지식의 한계를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다.
저자의 이런 설명은 자연과학이든 사회과학이든 유사 이래 인간이 창조해 온 모든 지식과 결과물은 인간을 벗어나서는 생각할 수 없으며, 어랜 인간의 역사와 진화과정 속에서 함께한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다르게 말하면, 일부 정치인이나 학자들이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는 "과학 또는 기술은 중립적이다"라는 말도 타당하지 않다고 할 수 있다.

이 책은 한국의 최고학부를 졸업한 486 세대 지인들에게 꼭 추천하고 싶다. 특히 이공계를 졸업한 이들에게...  내가 보기에 자연과학을 전공했거나 응용과학을 전공한 상당수의 486 세대들은 사회 각 분야에 진출하여 현재 중~고위급 실무책임자나 결정권자가 되었음에도 스스로의 혁신과 학습을 게을리하면서 과학기술 문명과 지배세력의 자발적, 타율적 노예가 되어가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과학기술이나 지식이 결코 중립적, 객관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것이며 인간의 세계관이나 의식의 프레임의 한계 내에서 존재함을 역설한다.

 
우리사회의 현실에 비추어 본다면, 자신이 아무리 수학, 화학, 물리학, 핵물리학, 컴퓨터공학, 생명공학, 건축토목학, 전기전자공학, 재료공학 등을 수 십년 공부했다 하더라도, 또 인문사회과학 각 분야에서 특정 학문을 오랫동안 전공했다 하더라도 학문 전체에 대한 포괄적인 시야나 역사적, 문화적 시각을 보유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은 어느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다른 분야에 대해, 다른 이들의 시각에 대해, 사회의 진화흐름에 대해, 사람들의 삶과 고통에 대해서 꾸준히 알려고 하고 대화하는 과정이 뒷받침되어야 자신의 전공과 학문과 직업의 정당성과 올바름을 추구할 수 있을 것이다.
자신이 조금 더 그 분야에 종사하였다고 하여 다른 분야의 관계자나 일반인들보다 더 많이 알고있고 자신만이 옳다고, 틀리자 않을 것이라는 생각은 오만이자 교만이고 결국 스스로를 망치게 될 것임을 분명하다.


저자는 과거 인류가 자연이라는 위력적인 존재 앞에 공포와 굴종의 수동적 생존을 지속하면서 그 지배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힘든 투쟁을 겪어 왔다면, 지금은 자연의 공포와 굴종에서 벗어난 대신 또다시 과학기술 문명이라는 정체불명의 새로운 지배세력 앞에 예속되고 있는 우리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음을 우려한다. 따라서 인간이 과학기술 문명이라는 새로운 지배세력으로부터 벗어나 시대의 주인이 되기 위해서는 이 거대한 새로운 문명의 정체부터 밝혀내야 한다고 주장한다.

과학이 '자연과 사회 그리고 그 안에 속하는 일차적 실체들을 대상으로 하는 체졔적 지식'이라 한다면 다시 과학과 이것이 빚어낸 문명 자체를 대상으로 하는 한 차원 높은 새로운 종류의 지식을 저자는 '메타과학'이라 부른다. 따라서 이 시대가 요구하는 정신적 도약은 바로 과학을 발판으로 하여 메타과학으로 올라서는 도약을 의미하며, 이는 "인류가 과학기술 문명의 노예가 되지 않고 문명의 주인이 되기 위해
감당해야 할 불가피한 요청"이라 할 수 있다.

저자는 과학의 논리구조와 연구방법을, 정합적이고 사실적인 하나의 이론체계가 구성되는 과정을 '양태'와 '실태'라는 구분과 '의미기반'이라는 개념을 통해 설명한다. '의미기반'은 토마스 쿤의 '과학혁명'과 칼 포퍼의 '체계변형에 대한 입장차이'를 비교하면서 제시,검토한다. 
의미기반은 "시간 공간 내에 존재하는 어떤 임의로운 대상에 대하여 그것의 물리적 ‘특성’을 표상하고 그것의 ‘상태’를 서술할 어떤 일반적 방식들"로 정의하고 있는데, 구체적으로 서술공간, 서술모형, 서술양식에 따라서 다른 의미기반을 가진 과학이 존재한다. 의미기반이 다른 과학은 서로 이해하기가 어려운데, 대표적으로 고전역학의 의미기반으로는 양자역학이나 상대성이론을 이해하기가 어렵다.
 
이어서 그런 과학의 연구방법론을 토대로 '온생명'에 대해 설명한다. '온생명'은 '생명체가 온전하게 자기의 삶을 보존하며 영위할 수 있는 독립된 단위'를 말하는데, 태양과 지구를 포함한 물질계가 하나의 온생명임을 의미한다. 즉 우주 속 어디에 있더라도 태양과 지구의 상호작용으로 인하여 지구의 작은 생명체들이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온생명은 하나, 또는 생물체의 군집인 개체생명과 그것을 제외한 보생명으로 나누어 볼 수 있으며, 이러한 상호작용이 온생명을 구성하고 있다.

 

* 인상깊은 문단 :

 "이처럼 '선'과 '악'의 관념에 비추어 흔히 '우리편'과 '상대편'이라고 나누어 생각하는 구획관념은 더 깊숙히 인간의 본능 속에 그 기반을 두고 있는 듯하다.
인간의 선조가 특히 맹수글과의 경쟁 속에서 성공적인 생존을 유지해올 수 있었던 인간의 진화과정을 생각해 보면 '우리편'과 '상대편'의 철저한 구분의식이 대단히 유...
용한 역할을 했으리라는 점이 쉽게 짐작된다.
외부의 적과 대결하는 데 집단적인 협동을 중요한 무기로 사용해 온 인류의 선조는 이러한 집단구획 의식을 본능 속에 간직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며, 일단 본능 속에 새겨진 이러한 성향은 지교적 짧은 문화 발전과정의 기간 내에 특별한 수정을 받기가 어려웠으리라고 짐작된다.
뿐만 아니라 현대 이던의 문화발전 기간 내에서는 특히 민족의 생존을 위하여 이것이 유용한 방향의 기능을 해왔으리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현대에 접어들어 갑자기 역기능을 나타내기 시작한 이러한 성향은 '운동경기'라는 특별한 행동양식을 통해 묘한 절충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른바 '스포츠'라는 극히 무의미한 행동양식이 현대사회에서 불길같이 번져나가고 있는 것이 바로 이러한 집단구획 의식이 주는 현실적 독소를 대부분 제거하면서 인간이 지닌 이러한 본능적 욕구를 채워주기 때문이라고 이해될 수 있다.

인간의 성장과정에서 보면 이러한 집단구획 의식이 비교적 이른 유년기에 이미 발현되기 시작하여, 이것이 곧 '선'과 '악'의 관념과 결부하여 '좋은 편'과 '나쁜 편'으로의 구분으로 발전한다.
이러한 관념은 물론 성장과정의 진행과 더불어 상당한 수정이 가해지지만 근본적으로 이러한 방식의 사회의식 경향은 그 바탕에 깔린 본능적 구획성향과 함께 거의 누구에게나 일생 동안 그 사고 및 행동양식을 지배하게 된다.

아것 이외에도 인간의 가치관념 및 인식형태를 구성하는 대부분의 기본 요소들은 특히 성장과정을 통해 인간 심성의 심층부에 깊숙히 자리잡고 그의 모든 사고 및 감정을 지배하는 것이므로 이를 의식적으로 수정하기란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앞에서 논의한 바와 같이 바로 이러한 가치관념 및 인식형태가 현대의 과학기술 사회에서 가장 큰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점들이므로, 이들을 몰아내고 새로운 가치이념으로 대치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과제인가를 짐작할 수 있다."

 
[ 2012년 3월 21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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