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움이란 이름의 편견 - 인간의 외모를 바라보는 방식을 리디자인하다
데버러 L. 로드 지음, 권기대 옮김 / 베가북스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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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이 뱃살이 더 나왔네?" "운동할 시간이 없다는 것은 핑계지. 다만 게으를 뿐.. 시간은 주어디든지 아니라 만드는거야" "더 예뻐졌네!"
가족이나 친한 지인들에게 아무런 생각없이 습관적으로 꺼내는 이야기다.
이렇게 이야기를 하고나니 후 나는 아무런 느낌도 없다.
반대로 내가 자주 듣는 이야기는 "머리 좀 이쁘게 다듬지?" "옷을 왜 이렇게 촌스럽게 입어?" "그래가지고 어디 사업(영업)하겠어?" 등이다.

시내 카페에 책을 읽고 앉아가 잠시 집중력이 흐트러지면 주변 자리에 앉은 여학생, 아줌마, 여성들의 이야기가 들리기도 한다. 드라마 이야기, 연예프로 이야기와 더불어 반드시 대화 소재에서 빠지지 않는 것이 외모, 패션, 연예인, 성형수술, 다이어트, 화장류의 이야기다.

언젠가 우리 주변에서도 크고 작은 성형수술을 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10대 청소년들은 연예인 누가 성형을 했는지 훤히 알고 있다. 우리나라 케이블 TV 프로그램에서도 참가자들에게 성형을 해주는 프로그램이 있다는 기사도 읽은 기억이 난다. 이휘재가 진행자로 나오는 프로그램에서 여자 연예인들은 성형수술을 했던 사실을 전혀 꺼리지 않고 자랑하고 다른 연예인은 부러워하기도 한다.
현재 TV, 인터넷, 모바일, 지하철, 옥외광고판 어디서도 성형과 화장, 패션 등에 대한 광고와 기사가 넘쳐난다.

얼핏 생각해보면 이러한 모습과 생각들이 아주 당연한 듯 한 상황이다.
하지만 저자는 이러한 현상을 '사회적 편견'이자 '외모지상주의'라고 비판한다. 자연스러운 모습이 아니라 사회적 '병리'현상이고 또 다른 사회구조적 차별이며 부도덕한 자본의 착취이자 결과라고 주장한다.

예일대학교를 Summa Cum Laude로 졸업한 데버러 로우드는 미국에서 법 윤리를 이야기할 때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지도자이며, 남녀문제, 법률 및 공공정책 분야에서 가장 주도적인 지위를 점하고 있는 탁월한 학자인 동시에 미국 최고의 지성인이다. 미국변호사협회 여성분과위원회 회장 및 미국로스쿨협회 회장을 역임한 로우드는 현재 스탠퍼드 법대 교수로 재직 중이다. 그녀는 스탠퍼드 윤리센터를 설립했을 뿐 아니라 남녀 성차 연구를 위한 미셸 클레이먼 인스티튜트를 이끈 적도 있으며, 클린턴 행정부에서는 하원 법사위원회 소수민족 선임자문관으로 봉직했다. 법 윤리 분야의 탁월한 업적 등을 인정받아 변호사협회가 수여하는 Michael Franck상, Pro Bono Publico상, W. M. Keck Foundation상 등, 수많은 상을 타기도 했다. 로우드는 분주한 가운데 시간을 쪼개 전국법학저널에 칼럼을 기고하는가 하면, [아름다움이란 이름의 편견] 외에도 [Managing Pro Bono], [Women and Leadership], [In Pursuit of Knowledge], [Moral Leadership], [Gender and Law], [Access to Justice], [In the Interests of Justice], [Ethics in Practice], [Speaking of Sex] 등 20여 권의 저서를 발표했다.

아름다움을 추구하는(선호하는) 것은 단지 인간의 본능일까? 따라서 그것은 비난하거나 개탄할 수 없는 일일까? 하지만 미모라는 개념이 허망하고 부당하게 정의되었다면, 그리고 그 왜곡된 이미지가 위험하게도 인간의 판단과 행동을 좌우한다면, 그냥 방치해도 좋을까? 근거 없는 아름다움의 이상 때문에 상상을 불허하는 경제적자원이 낭비되고, 사기성 광고가 판을 치고 건강을 위협하며, 외모로 인해 혹독한 차별이 자행되고, 수많은 삶이 피폐해지고 있는데도 (특히 어린이들부터 그런 편견에 물들고 시달리고 있는데도) 국가와 사회는 이를 수수방관해도 좋은 걸까?

이 책은 이런 문제들에 대한 해답을 찾아가는 것이다.

저자는 아름다움이란 이름의 편견이 인간의 영혼을 지배해온 내력을 꼼꼼히 살펴보고, 소위 ‘루키즘’으로 불리는 외모지상주의의 엄청난 폐단을 세심하게 따져본 다음, 법률적, 정책적, 사회적 조치를 통해 이를 최소화하고 개선하기 위한 전략을 제안한다.
저자의 아이디어를 한 마디로 요약하면, 외모를 단순히 심미적 이슈로만 볼 것이 아니라 법적,정치적 이슈로 취급할 때 비로소 외모로 인한 편견과 차별을 없애고 진정한 사회적 정의와 평등을 이룩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외모로 인한 차별이 우리 사회의 가장 심각한 편견은 아니다. 하지만 그 피해와 영향은 너무나도 심각하고, 시간이 흐를수록 악화되기만 한다. 즐거움의 원천이요, 당당한 정체성의 표현 방식이어야 할 외모가 수치심의 원천, 피눈물 나는 투쟁의 목표로 삼았다.
이 책에서 그 해결의 단초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외모는 단순히 얼굴의 미모만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최근 몇 십년은 확장된 세계화에 따라 지금은 전세계 그 어디에서나, TV 시청이 가능한 곳에서는 여자애들이 패션모델과 연예인의 몸매와 외모에 자신을 맞추어야 밥을 굶고 살을 빼려고 애쓰고 있다. 세계화의 부정적인 모습은 각 지역의 고유 농산물과 문화, 언어를 멸종시키는데 이어 '미'의 기준, '인생'의 기분부터가 획일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현실 세계에서 외모의 중요성은 생각보다 크다. 그리고 외모지상주의에 따라가기 위한, 순응하기 위한 대가는 너무 크다. 대인관계애 있어, 경제적 기회에 있어, 자존감과 낙인찍기, 그리고 삶의 질에 있어서 외모중심의 문화는 사람들에게,  특히 여성들에게, 특히 청소년들에게 커다란 대가를 요구하고 있다.

누가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와 문화를 조성했을까? 저자는 이 문제를 사회생물학적 기반, 문화적 가치, 아이덴티티, 시장 요인, 테크놀로지와 미디어, 광고에서 찾아본다,

인간이 머리를 가꾸는 데 쓰는 돈만 매년 총 45조 2,200억 원, 효과조차 의심스러운 화장품에 허비되는 돈은 21조 4,200억 원, 오프라 윈프리조차 살빼기 스트레스로 넘어진다, 모든 의학 분야 중에서 발군의 속도로 성장하는 것은 성형외과, 발이 뭉그러지는 한이 있어도 ‘킬 힐’은 신어야 한다, 5세~10세 소녀들을 위한 미인대회만도 3천 개...
자, 이러고도 이 세상이 과연 제정신인가?

양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가끔씩은 개탄해 마지않으면서도, 다음 순간 한숨과 함께 잊어버리기 십상인 외모지상주의 혹은 ‘루키즘’의 모든 것을 파헤치고, 나아가 그 개선과 해결을 위한 실마리를 제공하는 탁월한 인문서다. 외모라는 편견의 오랜 역사, 그 가공할 폐단과 피해, 우리의 일상에 나타나는 그 편견의 모습들, 이로 인한 차별과 눈물겨운 투쟁을 생생하게 보여주는가 하면, 법조계와 학계에서 쌓아올린 치열한 연구와 경험을 토대로 이 괴물과도 같은 외모의 편견을 타파할 현실적인 전략을 제안한다. 특히 아름다움이란 이름의 편견을 바라보는 페미니즘의 고민이 흥미진진하게 그려져 있기도 하다.
아름다움의 허상에 온통 넋이 빠져버린 우리의 문화 ! 청소년들까지 미모의 노예로 전락시키기를 주저하지 않는 우리의 문화 ! 이 책으로 그 탈출구를 찾는 노력을 시작해야 한다. 미모에 집착하는 편견을 극복하지 않고서는 사회 정의와 도덕을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아름다움이란 이름의 편견]은 우리 모두의 책꽂이에 반드시 꼽혀 있어야 할, 허영과 편견에 관한 최고의 인문서이다.

다이어트와 성형수술을 생각하는 지인들에게 먼저 읽어보기를 권하고 싶다...

* 책 속의 문장 :
- 우리 여성들은, 스스로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게끔 그들을 세뇌하고 있는 얼토당토않은 미의 기준에 얽매인 채, 남자들의 인정을 받을 것을 매일같이 강요당하고 있다.

- 외모에 관한 선입견 때문에 우리가 치르는 대가는 실로 어마어마하다. 금액으로 따져볼까. 전 세계적으로 외모 가꾸기에 투자되는 돈은 적어도 136조 8,500억 원이다. 머리 가꾸는 데 대충 45조 2,200억 원, 스킨케어로 28조 5,600억 원, 성형수술 비용으로 23조 8,000억 원이 들어가고, 화장품 및 향수에 소비되는 돈이 각각 21조 4,200억 원과 17조 8,500억 원이다. 그뿐이랴, 미국인들은 다이어트로 47조 6,000억 원을 쏟아 붓고 있으며, 살빼기를 위한 피트니스에다 그보다 더 많은 금액을 소비한다. 그러면서도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지도 못 한다. 다이어트를 했던 사람들 중 95퍼센트는 1~5년 사이에 다시 몸무게가 늘어나며, 화장품 중에서 과학적으로 증명될 수 있는 혜택이 전혀 없는 것도 너무나 많다.

- 외모의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바로 그 외모의 개선에 신경을 쓰는 것이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효과적인 방법은 아니라고 한다. 이건 참으로 역설적이 아닌가! 외모에 대한 투자는 다른 형태의 소비처럼 지속적인 만족을 주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일단 그 새로움이나 참신함이 없어지면, 혹은 하나의 ‘문제’가 해결됐다 싶으면, 새로운 형태의 자기표현이나 개선이 필요한 것처럼 보이니까. 이러한 패턴을 사회학자들은 “쾌락의 쳇바퀴(hedonic treadmill)”라고 부른다.

- 월터 크롱카이트나 톰 브로코 같은 앵커들은 여전히 영향력을 행사하고, 남자 배우들은 노년에 접어들어서도 연애영화의 주연을 꿰찬다. 숀 코너리는 60대에 피플지가 선정하는 “가장 섹시한 남자”로 선정되었다. 하지만 여자는 어떤가? 젊었을 땐 자기 나이의 두 배인 남자들을 상대로 연기하다가, 노화의 기미가 조금이라도 보이면 우아하게 퇴장하거나 온몸에 “손을 봐야” 한다. 어떻게든 열심히 노력해봤자, 어느 칼럼니스트가 짙은 화장을 하고 나온 여성 정치인을 두고 했던 핀잔이나 듣기 일쑤다: “엔간한 나이가 되었는데도 아등바등 붙어 있으려고 무진 애를 쓰는 그녀에게는 어딘지 굴욕적이고, 슬프고, 필사적이며, 보기에 민망한 무엇인가가 있는 것 같다.” 그가 말했던 그 “엔간한 나이”는 기껏 43세였다!

- 스튜어트 이원의 유명한 표현처럼, 광고주들은 단순히 상업의 캡틴이 아니라 “의식의 캡틴”이다. 사회적인 의미를 창조하고 개인의 욕망과 아이덴티티를 형성하기 때문이다.

- 젊음을 격려해주는 건 좋지만, 젊겠다고 아등바등해서는 안 된다. “나라는 존재는 내가 무엇을 하느냐에 달려있지, 내가 어떻게 보이느냐에 달린 게 아님”을 이해할 때에만 비로소 중년의 자유를 누릴 수 있다.

- 여자들이 외모 때문에 시간을 낭비할 필요만 없다면 훨씬 더 많은 것을 성취할 것이라는 생각은 한 마디로 논센스다. 여자들이 더 많은 것을 성취하는 것은, 아름다움을 포기할 때가 아니라, 법적이고 사회적인 권리와 특전을 얻게 될 때다... 우리가 그 아름다움을 즐기지 못한다면 이 세상은 한층 더 생기를 잃을 뿐이다. 물론 우리가 아름다움에 얽매어 있다면 문제가 되겠지만... 여자들에게 힘을 주는 원천의 하나를 깎아 내리는 데 급급하지 말고, 페미니스트들이 여자들의 힘의 모든 원천을 고양시키는 노력을 한다면 좀 더 유용할 것이다.

- 외모는 즐거움의 원천이 되어야지, 수치심의 원천이 되어서는 안 된다. 외모에 대한 우리의 이상은 인종, 연령, 몸의 크기에 따른 다양성을 반영해야 한다. 이렇게만 된다면, 외모의 중요성이 과도하게 평가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취업과 교육이란 장으로 외모의 중요성이 넘쳐흐르는 일도 없을 것이다. 또 성에 따라 차별화된 그루밍을 강요당하는 일도 없을 것이다. 여성의 자존감은 외모가 아니라 성과에 직결될 것이다.

- 외모로 인한 차별을 보여주는 하나하나의 예는 사소하게 보일 수 있지만, 그것이 축적될 때의 충격은 어마어마하다. 그러한 편견은 능력의 원칙에 위배되며, 기회 균등을 잠식할 뿐 아니라, 오명을 악화시키고, 자존감을 갉아먹는데다, 개인의 자유를 제약하고, 계급, 인종, 민족, 성, 성적 취향에 근거를 둔 불이익을 한층 더 심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 외모를 위한 제품에 대해서 현실적으로 소비자들을 보호해주는 것은 상식뿐이다. 사람들은 광고에서 주장하듯이 주름살이 그냥 사라지는 법은 없다는 걸 깨달아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희망사항에 지나지 않는 것도 받아들이는 인간의 수용력 또한 과소평가할 수는 없는 노릇. ‘코즈메수티컬’ 스킨 케어 제품의 시장이 연 640억 달러에 달한다는 사실은, 소비자가 ‘알아야 할’ 것과 ‘실제로 행하는 것’ 사이의 엄청난 간격을 말해준다.

- 진보는 개인으로부터 시작된다. 그러나 그 초점을 단순히 그들의 선택에 맞추어선 안 된다. 진보는 동시에 다른 사람들을 향한 너그러움과, 사회적 태도 변화나 외모에 관한 정책의 변화를 위한 지원을 중심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 2011년 9월 26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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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고 쉽게 쓴 '시간의 역사'
스티븐 호킹.레오나르드 믈로디노프 지음, 전대호 옮김 / 까치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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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저자의 원저서인 <시간의 역사, The Bridr History of Time>의 축약 버전이다. 저자는 원저서를 통하여 세계적인 물리학자로 명성을 날렸고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명강연자로 등극하기 시작했다.

이 책은 일반인들이 가질 수 있는 가장 원초적인 궁금증을 다룬다. 즉, "우리가 우주에 대해 아는 것은 무엇인가? 우리는 그것을 어떻게 아는가? 우주는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가고 있는가?"

현대 과학자들은 위와 같은 궁금증을 과학적인 방법론으로 찾는 것을 직업으로 삼는 사람들이고 그들은 20세기 인류의 위대한 지적 성취를 두가지로 내세운다. 그것들은 일반상대성이론(General Theory of Relarivity)과 양자역학(Quantum Mechanics)이다. 일반상대성 이론은 중력과 우주의 거시적인 구조를 기술한다. 그리고 양자역학은 1센티미터의 100만분의 1의 100만분의 1처럼 극도로 작은 규모의 현상들을 다룬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현대 과학자들은 두 이론이 서로 모순된다는 것을 안다. 21세기 현대 과학자들이 경주하는 중요하 노력의 하나이자 이 책의 중심주체는 두 이론을 포괄하는 새로운 이론-중력에 관한 양자역학, 즉 양자중력이론(Quantum Theory of Grarity)-을 탐구하는 것이다.

일반상대성 이론은 20세기 전반기에 아인슈타인 박사에 의해 발견된 천재적인 이론이다. 일반상대성 이론은 우주가 지속적으로 팽창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고 역으로 우주가 빅뱅(Big Bang)에서, 즉 우주의 밀도와 시공의 곡률이 무한대인 시점에서 시작되었다고 이론적으로 예측한다. 그렇지만, 최초의 시점인 빅뱅으로 인해 일반상대성이론은 우주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시작 전에는 무엇이 있었는지를 논리적으로 밝히지 못하는 함정에 빠진다.

양자역학은 우주와 미시세계 속에 존재하는 4가지의 힘, 즉 전자기력, 강력, 약력, 중력 중에서 중력을 뺀 나머지 3개를 훌륭하게 설명할 수 있으나 단 한가지 중력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못한다.

저자를 비롯한 현대 과학자들 중 일부는 양자중력이론의 모델로 '시공의 경계가 없는 우주'에 대한 이론을 세우고 있다. 즉, 우주는 완전히 자족적이고 외부에 있는 어떤 것의 영향도 받지 않으며, 창조되지도 파괴되지도 않는다는 것...

이 밖에도 이 책에는 타임머신과 미래/우주로의 여행 가능성에 대한 이야기 등 흥미로운 몇 가지 설명이 더 들어있다.

스티븐 호킹박사 등이 제시하는 '경계없는 시공'이론과 리차드 파인만교수 등이 제시하는 '초끈이론'이 현대 물리학의 두 기둥일까 궁금해진다...

* 저자 소개 : 스티븐 호킹(Stephen Hawking)
1974년 최연소 왕립학회 회원, 1979년 케임브리지대학 루카시언 석좌교수, 갈릴레오, 뉴턴, 아인슈타인의 계보를 잇는 세계 최고의 우주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은 갈릴레오의 사망 300주년이 되는 1942년 1월 8일에 영국 옥스퍼드에서 태어났다. 1등은 아니었지만 반 아이들은 사이에서 아인슈타인이라 불릴 만큼 어릴 때부터 수학과 물리학에서 남다른 실력을 보였던 그는 우주론에 관심을 갖고 옥스퍼드 대학원에 진학한다. 그리고 그 무렵부터 퇴행성 운동신경질환 증상이 나타나, 스물한 살 어린 나이에 루게릭병으로 시한부 2년을 선고받는다. 하지만 그는 좌절 대신 희망을 택했다. 자신의 의지대로 움직일 수 있는 건 손가락 두 개뿐이었지만 머릿속으로 수식을 계산하며 ‘블랙홀이 사라진다’는 놀라운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일명 ‘호킹 복사’라 불리는 이 이론은 물리학계에 센세이션을 일으켰고 현대 물리학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40년 넘게 루게릭병을 안고 살면서도 전 세계를 여행하며 강연과 강의를 했던 그는 지금도 케임브리지에서 살면서 연구에 몰두하고 있다. 그가 쓴 최초의 대중과학도서인 [시간의 역사]는 [선데이 타임스]의 베스트셀러 목록에 237주 동안 올라 있었고 전 세계 30개국에 수백만 부가 팔린 세계적 베스트셀러다.
1979년 아이작 뉴턴이 지낸 바 있는 케임브리지대학 루카시안 석좌교수로 임명되었고, 로마교황 과학아카데미의 회원이며, 열 두 개의 명예학위, 대영제국 상급 훈작 CBE(Commander of the Order of the British Empire), 엘리자베스 2세 여왕으로부터 대영제국 명예훈작(Companion of Honour to Queen Elizabeth II)을 수여받았다. 최근에는 2009년 은하우주선 버진 갈라티카를 타고 떠나는 우주여행을 위해 무중력 사단법인과 함께 무중력 비행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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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티븐 호킹의 외계인 위협론의 가능성 > http://diarix.tistory.com/rss


-외계 문명의 침략 가능성-
최근에 저명한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Stephen William Hawking) 박사는 디스커버리 채널의 다큐멘터리 '스티븐 호킹의 우주(Stephen Hawking‘s Universe)'에서 이전까지 "은하계에서 원시 생명체를 발견할 수는 있지만 인간 같은 생명체는 없을 것"이라고 했던 자신의 주장과 다소 다른 의견을 내놓아서 논란을 불러일으켰습니다. 그는 외계생명체의 대다수는 미생물의 형태일 것으로 보이지만, 일부는 매우 진화돼 인류에게 큰 위협이 될 수 있고, 그 중에는 아예 우주를 떠돌고 있을 수도 있으며, 그들 행성의 자원이 고갈되면 지구를 정복하고 식민지화할 수도 있을 것이라며 외계인과 접촉을 시도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이 주장에 대하여 학계나 일부의 종교계뿐만 아니라 외계지적생명체탐사계획(SETI) 연구소와 NASA에서까지 여러 의견을 내놓고 있습니다. 막대한 에너지를 들여 지구에 올 만큼 지구가 가치 있는 행성이 아니라는 의견에서부터 자멸의 위기를 극복하고 발전한 문명이라 평화적일 것이라는 의견, 외계인에게 배울 것이 있을 거라는 의견, 외계인과의 접촉을 목적으로 한 메시지 송출을 금지해야 한다는 등, 그 대부분은 놀라움과 더불어 외계인 위협론 자체를 부정하는 회의적인 반응입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스티븐 호킹 박사의 주장은 상당 부분에서 가능성이 있는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외계 생명체는 여러 종류가 있을 것이고, 그 외계 종족마다 고유한 생존가능 환경이 있겠지만, 그 중에는 지구와 비슷한 환경의 행성에서 진화해 문명을 이룬 외계인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생명체가 진화해 지성을 가진 고등생명체가 되고, 다시 문명을 이루기까지는 꽤 많은 시간이 필요합니다. 우리의 경우만 보더라도 수십억 년이 걸렸습니다. 아무리 짧게 잡아도 원시 생물이 정보를 누적해 고등 생물이 되기까지는 5억년 이상이 걸릴 것입니다. 그런데 우주는 위험한 곳입니다. 문명을 이루었다고 해도 충분히 발전한 상태가 아니라면 우주에서 날아온 거대운석 하나 때문에 한순간에 사라져버릴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우주에는 생명체는 많아도 문명은 드물지도 모릅니다.

또한 그 문명을 유지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닙니다. 문명이 존속하기 위해서는 문명을 지속할 수 있는 도덕성이 필요합니다. 문명이 발전하는 과정에서 올 수 있는 환경오염이나 대량파괴 무기를 극복하기 위한 도덕성 말입니다. 그래서 도덕성이 없는 문명은 일정한 수준을 넘지 못하고 자멸하게 됩니다. 그러나 문명이 종말을 맞이하는 원인은 자멸보다 행성 외부의 요소의 작용때문인 경우가 더 많습니다. ‘과연 행성이 얼마나 안전한 장소에 위치해 있는가?’와 ‘우주가 얼마나 오랫동안 그곳을 묵인해 주느냐’의 문제입니다.

다행히 지구는 지난 수십억 년 동안 항성의 생명체 거주가능 영역(habitable zone, HZ)에서 적당히 떨어져서 내행성의 궤도를 망가뜨리지 않고, 내행성의 궤도를 질서 있게 유지시켜 기후가 안정되게 형성될 수 있도록 도와주며, 동시에 스스로도 원에 가까운 공전궤도를 그리면서 파국적인 충격을 안겨 줄 수 있는 혜성이나 소행성과의 충돌로부터 내행성들을 보호해주는 지구의 수호자 역할을 하는 선량한 목성의 도움으로 수많은 우주폭주족의 위협에도 안전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주에는 지구처럼 안전한 행성은 그리 흔하지 않습니다. 어떤 이유에서든 한 문명이 이주해야할 행성이 필요하게 되었다면, 자신들의 거주 행성 근체에서 자신들의 행성과 비슷한 조건-태양과의 거리, 일조량, 중력, 물, 등-을 가진 행성을 찾을 것이지만, 그것을 발견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할 것입니다. 태양으로부터의 거리가 조금만 달라도 행성의 환경은 극단적으로 변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결국 최소의 환경만이라도 만족하는 행성을 선택하여 그곳을 자신들의 행성과 비슷해지도록 개조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행성 하나를 테라포밍(Terraforming)하는데 들어가는 비용은 어마어마합니다. 그리고 그 기간 역시도 최소 수백 년에서 수만 년 이상이 걸립니다. 과연 황량한 행성에 그렇게 오랜 세월 동안 자신들의 모든 자원을 쏟아 부어가며 개조하는 것이 최선의 선택이랄 수 있을까요? 지구 같은 행성을 찾아 낼 수만 있다면, 탐사에 아무리 많은 자원이 든다고 해도 테라포밍에 비하면 거의 공짜와 다름없는 것입니다. 더군다나 그들에게 있어 지구는 환경을 조금만 변경하면 당장 생존할 수 있는 조건이 된다면 말입니다.

(아폴로 17호에서 바라 본 지구 - 사진 제공 : NASA)

물론 갑작스런 재앙으로 수십 년 이내에 당장 이주를 해야 한다거나 최소의 문명 보존이라도 필요할 만큼 절박한 상태의 위기를 맞았다면 그럴 수도 있습니다. 실제 그런 문명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그런 행성에서라면 임시 거주를 위한 정도의 시설만 하고는 탐사대를 우주로 보내 영구 이주를 위한 행성을 찾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우주가 아무리 넓다고 해도 지구처럼 교묘한 곳에 위치한 행성도 그리 흔치 않습니다.

만약 행성의 문명이 더 발달한 상태라면 그런 위기가 오기 전에 이미 장기적인 안목으로 식민행성을 찾아 나설 것입니다. 다행히 운이 좋다면 비교적 가까운 곳에서 자신들이 거주하기에 적당하고, 자원이 넘치는 행성을 찾아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보다는 지구처럼 이미 생물이 거주하고 있지만 상대적으로 낮은 문명을 가진 행성을 발견할 가능성이 더 높습니다. 어린아이가 미지의 것을 두려워하면서도 호기심 가지듯 모든 문명은 자신들의 존재를 우주에 알리기를 좋아하기 때문에 잘하면 그런 곳에서 ‘나 여기 있어요.’ 하며 보낸 수백 년도 안 된 싱싱한 전파를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물론 우주를 가로질러 별사이를 오갈 정도의 기술을 가진 문명이라면 학자들의 지적처럼 도덕적일 것이므로 위협이 될 가능성은 낮습니다. 그러나 만약 그 전파를 받은 문명이 하필이면 모성이 우주의 재난으로 위기에 처했거나, 이미 위기가 닥쳐서 급히 피난선에 올라 갈 곳을 찾아 떠도는 중이라면 어떨까요? 수억 명의 외계인들이 바글거리는 피난선 무리의 문명은 황량한 행성을 테라포밍할 여력도 없거니와, 오랜 떠돌이 생활로 지쳐있고, 예민해진 상태입니다. 그런 그들이 발견한 지구는 신이 내려준 선물일 것입니다.

다행히 그들은 그렇게 지쳤음에도 여전히 도덕적입니다. 그럼에도 우리에게는 분명 재난이 됩니다. 체제가 다른 지구 내의 두 문명이 만나도 재난입니다. 문화가 다른 두 문명이 만나면 언제나 대립이 있었고, 수준이 다른 두 문명이 만날 때마다 정복의 역사가 반복되었습니다. 같은 사람끼리의 만남에서도 그랬는데, 완전히 다른 이질적인 문화를 가졌고, 완전히 다른 이질적인 체제를 지닌 채, 완전히 다른 이질적인 기술을 보유한 수억의 존재가 인류와 충돌 없이 공생할 수 있을까요?

큰 충돌 없이 공생하는 길은 두 가지 밖에 없습니다. 첫째는 우리가 그들의 문명에 동화되는 방법입니다. 즉 우리가 그들의 문화를 이해하고, 그들의 체계를 존중하며, 그들의 기술을 전수받는 것입니다. 흔히 진보한 외계문명과 만나면 그들의 우수한 기술을 배울 수 있다고 여기지만, 모든 기술은 그 문명의 주체에 맞게 설계되어 있고, 그 문명의 철학이 깃들어 있습니다. 예를 들어 비행기는 우리 인류가 사용할 목적으로 우리의 가치를 존중하도록 설계되고 있습니다. 즉 좌석의 크기와 배치에서부터 동체와 날개의 크기, 중량, 최대 출력 등이 인류를 기준으로 우리의 가치에 따라, 기능과 성능뿐만 아니라 그와 함께 안전성도 고려해서 만들어졌습니다. 그것이 우리의 도덕입니다.

그런데 극단적인 비유지만 안전성보다는 최대의 수송능력이나, 최고의 성능이 도덕인 문명이라면 비행기의 모양부터가 우리와 전혀 다를 수도 있습니다. 모든 기술에는 문명이 추구하는 철학과 그 기술을 감당할 수 있는 문명 고유의 도덕성이 들어있습니다. 외계의 기술을 안전하게 전수 받으려면 우리는 그들의 가치관을 배우며 그들의 문명에 동화되어야 합니다. 오직 기술만 빼내려 한다면 매우 위험한 대가를 치러야만 할 것입니다.

두 번째 공생하는 방법은 그들이 우리 문명에 동화되는 것입니다. 아무래도 지구를 먼저 선점하고 있는 인류에게 기득권이 있으므로, 이 방법이 더 합리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합니다. 아마 외계문명에서 반발하게 될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지금의 문명과 그에 따른 문명의 이기들을 고스란히 가지고 중세시대로 돌아간다고 하면, 과연 그 시대의 가치체계를 그대로 받아들이고, 또 우리도 그들과 같은 가치 아래서 살 수 있을까요? 무리 사이에 귀족이나 평민, 노예 같은 계급을 두고, 여성에 대한 심한 차별을 하며, 종교에 대한 절대적인 복종을 요구하는 그 시대의 가치를 그대로 인정하며, 그들과 동화될 수 있을까요? 그것도 수백만 명이 같이 그 시대에 갔다면 말입니다.

우리는 스스로 이 시대의 우리가 평등하고, 자유로우며, 합리적인 사회에 살고 있다고 여길지도 모르지만, 수백 년 후나 수천 년 후의 후손들에게 이 시대는 가장 불행했던 시대로 평가될 수도 있습니다. 하물며 완전히 다른 과정을 거치며 문명을 이룬 외계문명에게 인류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비도덕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문명으로 보일 수도 있다. 아니면 아예 인류는 문명이 아닌 야만적인 존재의 집합으로 인식될 수도 있습니다. 아무리 도덕적인 문명이라고 해도 서로 추구하는 가치와 선의 기준이 다르다면 평등한 공생이 쉽지 않습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호킹 박사의 ‘그들 행성의 자원이 고갈되면 지구를 정복하고 식민지화할 수도 있다’는 의견의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호킹 박사가 말한 ‘행성의 자원’이 어떤 의미인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단순히 우리가 생각하는 지하자원이나 해양자원, 에너지 등의 문제만은 아니라고 봅니다. 그것이 식량 문제라면 문명의 발전하면서 인구조절, 환경보존 등으로 자연스럽게 해결하게 될 것이고, 에너지 문제라면 화석에너지가 아닌 태양력 등의 대체 에너지로 충분히 극복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우리 인류의 문명이 수십억 년 후에 발현되었다면 어찌 되었을까요? 문명이 한창 발전하고 우주시대를 맞이할 무렵, 우리의 영원할 것 같은 태양이 내부에 있는 수소를 전부 태우고 주계열을 떠나 적색거성(red giant)으로 진화는 중인 사실을 알아냈다면 인류는 충격에 빠질 것입니다. 물론 매우 천천히 진행이 되겠지만 태양은 그 지름을 현재의 200배로 확장하며 수성과 금성을 빨아들일 것이고, 지구도 먹일지 말지 알 수 없는 두려움에 놓이게 될 것입니다. 물론 그보다 훨씬 전에 지구는 태양이 수소를 소진하고 헬륨 융합을 하는 과정에서 계속 밝고 뜨거워짐에 따라, 바다와 대기는 모두 증발하여 우주 공간으로 날아가고, 지표면은 암석이 녹아내리는 뜨거운 불바다가 될 것입니다. 이럴 경우 자원 문제는 에너지 문제를 넘어 문명의 존속이 달린 ‘장소와 시간’ 문제가 됩니다.

인류는 그날이 오기 전까지의 시간 동안, 모든 기술과 자원을 집약해 필사적으로 살아남기 위한 방안을 모색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런 인류가 유사한 지구, 상대적으로 기술 수준이 열악한 외계 종족이 사는 유사한 지구를 발견한다면, 과연 도덕성을 내세워 포기할 수 있을까요?

물론 이런 가설은 말 그대로 가설에 지나지 않습니다. 외계인, 더군다나 외계 문명의 존재 여부조차 논란이 되고 있는 시점에서 스티븐 호킹 박사가 던진 우려의 말도 너무 앞선 기우에 지나지 않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의 생각이나 그에 대한 반대의 생각이 모두 틀린 것도 맞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 은하에만 해도 2000억 개 이상의 항성이 있고, 그 보다 많은 수의 행성이 있습니다. 그리고 우주에는 우리 천만 개에서 1조 개의 항성으로 이루어진 은하가 약 천억 개 정도 있습니다. 아무리 우주가 거칠고 위험하다고 해도, 이 많은 별 중에는 지구처럼 생명을 잉태한 별이 셀 수 없을 만큼 있을 것입니다. 그 중에는 분명 우리가 상상하지도 못할 지성을 가진 도덕적인 문명도 있을 것이고, 수억 년 문명을 이어오며 전지적인 능력을 얻은 문명도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객체보다 집단에 가치를 두는 문명이나 기술을 선(善)으로 삼는 문명, -우리 도덕을 기준으로- 야만적이고 야비한 문명, 침략과 전쟁을 미덕으로 삼는 호전적인 문명 등,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가치관을 가진 문명도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중에는 앞서 말한 것과 같이 위기에 처한 문명, 우주를 떠돌고 있는 문명도 있을 것입니다.

호킹 박사의 우려는 언제까지나 바위 밑에 숨어있자는 말이 아닙니다. 최소한 우리 스스로를 지킬 수 있을 때까지라도 조심하자는 뜻일 것입니다. 외계인이라면 무조건 선하다는 믿음을 가지고 그를 구원의 도구로 삼을 수는 없는 것이며, 그들이 행하는 선이 우리가 받아들이기에는 선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또한 그럴 생각으로 던진 게 아닌데 그 돌에 개구리가 맞아 죽을 수도 있습니다.

(사진에 보이는 반짝이는 빛은 별이 아니라 은하들입니다. - 사진 제공 : NASA)

그러나 이제는 늦었습니다. 우리가 지난 세월 동안 우주로 쏘아 보낸 수많은 공식적인 메시지와 TV, 라디오 신호들은 이미 반경 백 광년을 퍼져나갔습니다. 물론 지름이 십만 광년인 우리 은하에서 그 정도라면 거의 표시도 나지 않는 작은 동심원에 불과합니다. 어쩌면 외계문명이 우리 전파를 받을 수천 년 후에 이미 인류는 자멸하고 사라져, 지구는 주인 없는 별이 되어있을 수도 있습니다. 아마도 그럴 가능성이 더 높습니다. 그래도 우리가 살아있는 동안에라도 일부러 위험을 자초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요?


[ 2010년 5월 22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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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에 갇힌 사람들 - 불안과 강박을 치유하는 몸의 심리학
수지 오바크 지음, 김명남 옮김 / 창비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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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부터 한국사회에서 일상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한 모습들이 있다.
10대인 딸이 밥 먹기를 거부하기 시작한 어느 486 세대 엄마의 고민...
몸매를 고민하는 딸에게 "걱정마. 나중에 다 고쳐줄께"라고 큰소리치는 부모...
여직원의 옷차림과 몸매에 대해 툭 던지는 한 마디...
성형수술 비용도 건강보험 대상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주장...
비만은 '게으름'이고 '자기관리 부족'이라는 편견...
다이어트와 휘트니스를 하지 않고 있으면 뭔가 꼭 해야 하는 것을 하지 않고 있다는 불안한 느낌...
케이블방송을 점령하고 어느새 지상파 방송에까지 등장한 '다이어트' 프로그램...

한국 10대 소녀들 중 쌍커플 수술을 한 비율이 50%를 넘는다는 이야기...
 
정말이지 언젠가부터 사람들의 주요 관심사가 몸, 외모, 아름다움, 몸매, 섹슈얼리티로 변해가고 있다. 특히, 나이가 어릴수록 그런 경향이 더 강한 것 같다. 그리고 그 결과 어린이, 청소년, 청년들이 가장 크게 고통받고 있다.
무엇이 문제일까? 개인적, 사회적, 문화적 요인들은 무엇일까?
 
그런 문제의식 속에서 공부모임에서 세미나 교재로 책 두 권을 선택했다. 하나는 이 책 수잔 오바크의 [몸에 갇힌 사람들]이고 다른 하나는 데보라 L. 로드의 [아름다움이란 이름의 편견]...
어제(20일) 저녁 공부모임에서 두 권을 읽고 오랜만에 10명 미만이 참석하여 의견을 나누었다. 참석자가 줄어드니 각자의 생각을 발언할 기회도 늘어나고 논의의 수준도 깊어졌다.
 
이 책은 몸의 불안을 야기하는 현대사회의 근본적 문제들을 파헤치면서, 우리가 자신의 '몸'과 올바른 관계를 재정립하기 위한 새로운 이론을 제안한다. 저자 수지 오바크는 고(故) 다이애너 왕세자비를 상담했던 정신분석가로, 영국에서는 “프로이트 이래 가장 유명한 정신분석가”라고 평가받는다. 이 책은 그동안 몸의 문제를 천착해온 저자의 연구주제들을 총집결한 것으로, 저자가 상담했던 환자들의 다양한 사례를 통해 우리가 그동안 알지 못했던 ‘몸의 심리학’을 쉽고 흥미롭게 풀어나간다.(저서로 [비만은 페미니즘의 주제다](Fat is a Feminist Issue), [단식투쟁](Hunger Strike), [섹스라는 불가능성](The Impossibility of Sex), [먹는 것에 관하여](On Eating) 등이 있다.)

여기서 '몸의 심리학'이란, 신체적 고통의 원인을 심리적 문제에서 찾았던 전통적인 정신분석 이론과는 달리, 몸의 문제를 몸의 언어로 이야기하자는 것이다. 저자에 따르면, 신체적 증상은 단지 마음의 문제가 아니라, 몸이 그 자체의 욕구와 고통을 표현하려고 애쓰는 신호다. 예컨대 요즘 사람들이 경멸해 마지않는 뚱뚱한 몸은 태만과 자기무시의 결과가 아니라, 몸을 향해 무차별 공격을 쏟아붓는 대중문화에 대한 거부의 표현인지도 모른다. 저자는 마음이 몸을 장악한다는 기존 정신분석 이론으로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우리 시대 몸들을 재고하는 새로운 사고방식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저자의 주장이 납득 가능하고 과학적인 근거나 실험으로 뒷받침되지 않아 다소 아쉽기는 하지만, 내가 그동안 쉽게 생각하기 쉬웠던 '몸'과 '마음'의 상호작용을 뒤집는 주장은 조금 신선했다. 일면 수긍이 가는 대목이다.
 
개인적으로 주변 사람 중 거식증이나 폭식증 같은 섭식장애를 겪는 사람을 여러번 본 적이 있다. 그렇지만 10대 소녀나 대학생들의 다이어트나 식사패턴에 대해 가끔 들은 것과 내가 직접 직장에서 경험한 직장여성들의 식사습관이나 태도를 돌이켜 보면 한국에서도 적지않은 섭식장애자가 존재할 것으로 생각한다.(아직 한국인의 섭식장애에 대한 통계자료는 찾지 못했다.)
저자는 영국의 사례를 통해 섭식장애에 대해 이야기한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영국사회에서도 유명인들의 다이어트 비법이나 성형 소식은 사람들로 하여금 따라하고 싶다는 유혹을 느끼게 한다. 게다가 하루에도 수 백, 수 천번씩 마주치는 방송 프로그램, 뮤직 비디오, 광고 이미지 속 8등신 몸매는 소녀와 여성들에게 이 시대의 가장 이상적인 '몸매'가 존재하고 추구해야 하며, 당신도 노력하면 멋진 S라인과 식스팩을 가질 수 있다고 속삭인다. 최신 유행을 따르는 사람이든 아니든, 오늘날은 누구나 자기 몸을 완벽하게 가꿔야 한다는 압박을 받는다.
 
이제 몸은 태어나면서 엄마에게서 자연스럽게 그냥 주어진 것이 아니게 되버린 것이다. 저자는 우리 시대의 몸들은 개인이 열심히 노력한(혹은 실패한) 결과를 보여주는 작품이 되어버렸음을 지적한다. 때문에 현대인들은 대중문화가 모두에게 ‘평등하게’ 강요하는 ‘단 하나의 몸(날씬하면서도 풍만한 서구적 이상)’을 갖기 위해 저마다 고군분투중이다.
이같은 과도한 집착은 거식증이나 폭식증 같은 식이장애, 비만, 신체이형장애, 성형중독 등 심각한 부작용들을 낳고 있다. 불과 몇년 전까지만 해도 예외적 사례에 지나지 않았던 식이장애는 오늘날 대부분의 10대들이 경험하는 일상이 되었고, 이제 막 세계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한 나라들에서는 다이어트와 성형 열풍이 함께 일어나고 있다.

이처럼 우리의 시대는 신체 불안정화의 시대에 접어들었고, 우리의 몸은 비정상적인 열망과 혼란에 둘러싸여 있다. 대다수 사람들이 경험하는 ‘몸의 불안’은 우리 시대의 새로운 ‘전염병’이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어쩌다 우리의 몸은 심각한 무질서와 괴로움의 장소가 되어버린 걸까? 어떻게 하면 다시 예전처럼 몸과 더불어, 몸 안에서 편안하게 살 수 있을까?
 
해결하는 관점에서 집고 넘어가야 하는 한 가지는 바로 몸의 문제들을 다룰 때 '신체발달 이론'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우리 몸을 둘러싼 '외모 지상주의'의 분위기가 가족을 통해 흡수, 전달된다고 지적한다. 우리가 최초로 신체적 감각을 습득하는 공간이 바로 가족이기 때문이다. 몸은 부모와의 접촉을 통해 올바로 형성되거나 잘못 형성된다. 식탁 위에서 아이들이 듣는 엄마, 아빠의 한 마디, 옷차림이나 몸매를 보고 던지는 오빠와 언니의 한 마디, 할머니 할아버지의 충고들을 오랜 기간 동안 꾸준하게, 그리고 반복적으로 접하게 되면 아이들의 몸과 의식은 그 분위기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책에 등장하는 다양한 사례 - 아기가 우유를 토하는 것을 보고 과도하게 걱정한 엄마의 영향으로 반사적인 구토습관과 대장염에 시달리게 된 헤르타, 자기 몸과 섹슈얼리티에 대해 부정적 인식을 갖고 있던 어머니로 인해 정상적인 섹스를 하지 못하게 된 루비 등 - 들이 이를 뒷받침한다.
부모가 자기 몸에 대해 불안감을 갖고 있다면, 그 불안은 고스란히 아이에게로 전해지기 마련이다. 예컨대 엄마가 늘 다이어트하는 것을 보면서 자란 아이들은 몸에 대한 인식이 어려서부터 왜곡될 수밖에 없다. 저자는 현대인들의 신체경험에 부모의 괴로운 몸이 담겨 있는 경우가 많아지는 현상에 우려를 표하며, 예비부모와 초보부모에게 올바른 몸 인식을 심어주는 캠페인을 벌이는 것이 시급한 과제라고 주장한다. 엄마들, 친구들, 지역과 학교에서도 이에 대한 다방면의 노력, 끊임없는 노력이 필요하다.

우리의 마음을, 그리고 몸을 불안하게 만드는 것은 이뿐만이 아니다. 가장 중요한 문제는 바로 '왜곡된 미의식'을 조장하는 각종 산업(다이어트, 패션, 식품, 제약 등)들이다. 이들 산업은 포토샵으로 보정한 이미지를 유포함으로써 현실세계에는 존재하지 않는 ‘완벽한 몸’에 대한 관념을 전달한다. 그런 이미지들의 공격에 수시로 노출된 사람들은 그에 부합하지 않는 주변사람들과 자신의 몸에 대해 지나치게 비판적인 시각을 갖게 된다. 현대인을 착취하는 데 혈안이 된 산업들은 끊임없이 최신 유행을 만들어내며 우리를 현혹하지만, 우리는 스스로를 피해자로 인식하지 못한다. 오히려 그 흐름에 ‘자발적으로’ 참여하며 자신의 결함을 고치기 위해 부단히 애를 쓴다. 문제가 있다면 그것은 몸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가 아니라, 부족한 노력과 얄팍한 지갑뿐이다. '지갑'은 계급의 문제를 가져오게 되고 사회적 양극화를 악화시키게 된다.

저자는 이 거대한 사회적 병리현상을 개인이 사회 곳곳에서 개인적으로 경험하는 것이 우리 사회의 비극이라고 말한다. 개인적 경험이라는 점에서 많은 사람들이 사소하게 생각하지만, 오늘날 우리 몸들이 겪는 고통은 가히 '공중보건의 숨겨진 응급상황'이라 할 만하다. 사회적, 문화적 압박에 시달리는 몸들은 더이상 자연스러운 기능들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다. 예전에는 즐거운 일이었던 식사가 이제는 두려움의 대상이 되었고, 사랑하는 사람과 접촉하고 섹스하는 일조차 ‘연기(演技)’가 되어버렸다. 완벽한 몸이라는 목표를 향해 질주하는 동안 우리는 몸으로부터 얻었던 즐거움들을 모두 빼앗겨버린 것이다.
게다가 대중매체가 주입한 관념은 사람들의 미의식을 편협하게 만들었다. 이제는 어디를 가나 ‘쌍꺼풀, 오똑한 코, 풍만한 가슴, 탄탄한 엉덩이’와 같은 서구적 몸이 각광받는다. “신체혐오는 서양의 은밀한 수출품”이라는 저자의 말처럼, 서구적 몸에 매혹된 전세계의 젊은이들은 자기 몸을 그렇게 만들기 위해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한다. 때문에 지구상에서 2주에 하나씩 언어가 사라지는 것처럼, 각 사회의 문화와 전통을 반영하는 몸들의 풍부한 다양성 또한 위태로운 실정이다.
내가 그동안 아무런 생각없이 가족들, 친구들, 직장동료들에게 툭툭 내뱉었던 말들이 새삼 머리 귀속에서 들리는 것 같다. 나 스스로가 그러한 대중매체의 관념에 알게 모르게 세뇌되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면 이러한 몸들의 위기를 해소할 방법은 무엇일까?
저자는 먼저 우리의 불안감을 조장하는 산업들의 관행을 폭로하고, 현실세계에 존재하는 다양한 형태의 몸들이 패션문화에 반영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오늘날 ‘스타일산업’이 퍼뜨리는 소비주의의 지령이 엄마와 아기에게 침투하기 전에, 엄마 스스로 신체적 평화를 찾고 아기에게 그것을 제공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고 말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몸을 바라보는 우리의 비뚤어진 시각을 바로잡는 일이다. 우리는 ‘단 하나의 몸’만을 강요하는 스타일산업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자신의 몸을 ‘당연하고 즐거운 것’으로 여겨야 한다. "우리 몸은 우리가 제작해야 할 상품이 아니라, 평화롭게 깃들여 살아가야 할 장소이기 때문"이다.

우리 몸은 있는 그대로 아름답다는 것, 그것을 아름답지 못하게 만든 것은 대중문화의 조작된 이미지라는 것,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획일적인 아름다움이 아니라 자신만의 진정한 개성과 가치라는 사실을 일깨워주는 이 책의 문제의식은 다이어트와 성형 중독에 사로잡힌 우리 사회에 중요한 울림을 던져줄 것이다. 우리 몸에 대한 새로운 눈을 뜨게 해주는 이 책이야말로 어릴 때부터 몸짱 콤플렉스에 시달리는 현대인들이 반드시 읽어야 할 필독서다.
 
어제 공부모임에서 이 책에 대한 비판적인 의견도 나왔다. 한 참가자는 저자가 인용한 데이터의 신뢰도가 부족(그 의견을 내신 분은 현직 의사..)하고 저자가 심각하게 문제제기했던 것에 비하여 그 결론은 '개인적인 노력'으로 그쳤다는 것이었다.
'데이터의 신뢰도'에 대한 동의 여부는 아직 내 수준에서 판단할 수 없다. 하지만, 저자의 결론이 문제에 대한 해결책으로서 많이 부족하다는 지적에는 나도 공감했다.
 
[ 2011년 9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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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로 이루어진 세상
장미셸 코르티.에두아르 키에를릭 지음, 안수연.박인규 옮김 / 에코리브르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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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함에 대한 국방부의 민군합동조사단이 조사결과를 발표하면서 ’과학적’인 증거라고 내세운 것이 ’어뢰 파편-프로펠러’와  매직으로 쓴 ’1번’이라는 글씨체다.
나머지는 ’~라고 판단된다’, ’~라고 확인된다’, ’~와 비슷하다’ 등 모두 추측성 논리다.
 
어떤 전문가나 블로거들이 말하듯이 북한이 다른 무기처럼 어뢰에 ’~호’가 아닌 ’~번’으로 표기하였는지, 한 나라의 무기에 그처럼 허술하게 매직펜으로 ’1번’이라고 표기하는지, 국방부가 왜 자꾸 말을 바꾸었는지, 어뢰가 폭발하여 2천톤급 배가 부서졌는데 사람이 멀쩡한 이유에 대한 궁금증과 별도로, 어뢰폭발시 발열현상으로 매직으로 쓴 글씨가 변색되지 않았는지, 바닷물 속에서 매직 글씨체는 부식되지 않는지, 어뢰가 바닷물 속에 잠긴지 80여일만에 그 정도로 부식되는지 등에 대하여 과연 엄정하게 실험실에서 부식의 정도와 시점을 규명하였는지 묻고 싶다.
 
’과학’은 추정이 아니다. ’과학’은 특정한 가설을 엄밀한 실험과 테스트를 통해 논리적, 수학적으로 입증하는 학문이다. 함부로 ’과학적’이라는 표현을 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2000년 전후하여 한국 케이블 방송에서 미국의 과학수사대에 대한 시리즈 드라마가 유행하기 시작했고 지금까지도 ’CSI’나 ’NCIS’가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다.
한 번이라도 그 드라마를 보았다면, (비록 그 드라마가 방송 프로그램이기 때문에 어느정도 과장하는 면이 있다손 치더라도...) 21세기 과학은 국방부 발표처럼 허술하게 부품 몇 개와 글씨체를 가지고 ’과학적인 조사’라고 당당하게 발표하지는 못할 것이다.
 
아마도 제대로 ’과학적’인 조사를 하기 위해서는 앞으로 몇 개월, 또는 1~2년간 다양한 분야의 과학자가 수십번의 실험과 시뮬레이션을 동원해야 어느정도 확률을 가진 조사결과를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1개월 남짓 조사결과를 성급하게 발표하는 이유는 ’삼척동자’도 모두 아는 바, 당연히 정치적인 이유에서이고 ’6. 2 지방선거’가 코 앞에 닥쳤기 때문이다. 한 나라의 군인들이 하루아침에 수장당한 상황을, 엄밀하게 조사하여 재발하는 것을 막아야할 위치에 있는 자들이 자신들의 잘못은 덮어두고 자신들의 정치적인 목적을 위해 이용하는 국가... 그 국가의 대통령과 국방부장관, 해군사령관과 지휘관들, 행정관료들과 정치인들... 김용옥교수 말처럼 이것은 '미친거 아냐?'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나온다.
 
이 사건은 아마도 5.18 당시 자신들의 국민을 ’빨갱이’로 매도하여 총칼로 무참하게 살해한 전두환,노태우와 4.19의 이승만, ’인혁당재건위’ 사건의 박정희 이후에 가장 파렴치한 사건으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다.
 
천안함과 같은 사건을 접할 때마다 한국 제도교육의 커리큘럼에 대해 ’음모론’적 시각으로 생각할 때가 있다. 한국 교육제도에서 점점 ’수학’과 ’과학’이 평가절하되거나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수학’과목과 ’과학’과목은 학생들에게 자연과 현상에 대한 이해를 깊게하고 사물과 현상의 인과관계를 인식하게 해주며, ’결정론적’ 사고 대신에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사고방식을 길러준다.
 
다만, 교사와 교육관계자들이 이러한 근본적인 관점과 시각을 잊어버리고 ’경쟁’이나 ’입시’에만 치중하는 것, 단순히 일 잘하는 ’노동자’를 길러래는 정도의 소양만 갖추면 된다라고 생각하는 것이 문제라고 생각한다.
아마 가장 중요한 근본 원인은 ’대학 만능주의’와 ’대학 서열주의’에 의하여 사람을 자질을 평가하고 대우하는 것이겠지만...
 
그렇기 때문에 고등학생들이 가장 싫어하는 과목이 물리,화학이고, 이공계 기피 현상은 더욱 심화되고 있다. 그들에게 물리학은 여전히 공식을 외우고 그 공식에 숫자를 대입해 문제를 푸는 과목일 뿐 우리 일상과는 먼 학문이다. 문제 풀이만을 열심히 익힌 우리 학생들에게는 곤혹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시야를 넓혀 우리 주위를 관찰해보면 그 안에 무수한 물리 법칙들이 숨어 있고, 만물의 이치가 깃들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불을 끌 때 물이 어떤 구실을 하는지, 눈송이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어떻게 돌멩이가 물 위로 튀어 오르며, 자전거가 균형을 이루는 이치가 무엇인지 등 우리 주위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관심을 기울일 새 없는 그들에게 그러한 일들을 물리 법칙으로 풀어내는 일은 쉽지 않을 게 분명하다.

이 책은 (조금 거창하게 표현하면) 좀 더 쉽게 물리학의 본성에 근접하고, 우리 앞에 놓인 문제의식에 부응하는 책이다. 그냥 소설처럼 편안하게 읽어도 좋고, 좀더 깊이 알고 싶다면 수식을 이끌어내 검증을 해봐도 좋다. 소설처럼 읽든 수식으로 검증을 하든 놀라운 자연현상에 놀랄 것이다. 그러면 물리학은 좀더 흥미로운 학문이 되지 않을까.

불을 끄기 위해 왜 우리는 물을 가장 많이 사용할까? 세차게 번져가는 화재를 진압하기 위해서는 불의 온도가 상승하는 속도보다 빨리 온도를 낮춰야 한다. 물은 모든 천연 물질 중 열용량이 가장 뛰어나며, 모든 액체 중에서 기화열이 제일 크다. 그리고 우리 주위에 가장 많이, 가장 손쉽게 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간혹 실내 화재에서는 이것으로 충분하지 않을 수 있다. 밀폐된 공간에서는 열과 연기가 쉽게 빠져나가지 못해 불이 확산되면서 갑자기 성질이 바뀔 수 있기 때문에 방 안에서 불이 번질 때, 온도가 높아지면서 열에 노출된 물건들은 적외선 복사로 방 곳곳에 에너지를 전달한다. 열분해로 연기나 뜨거운 가연성 가스가 방출되어 천장 아래에 쌓이고, 천장 아래 온도는 섭씨 300도에 이른다.
이어 걷잡을 수 없는 상황이 전개되어 눈 깜짝할 사이에 무시무시한 플래시오버 현상이 일어나 방 전체에 불길이 번지고, 실내 온도는 약 섭씨 1000도에 이른다. 어떻게 이런 유형의 참변을 피할 수 있을까? 물을 지나치게 사용하면 뜨거운 증기가 너무 많이 만들어져 연기와 가연성 가스들이 방 밖으로 빠져나가게 된다. 이 연기와 가연성 가스는 선선한 공기를 만나면 즉시 타오르게 된다. 따라서 전소를 피하기 위한 최선의 방법은 물을 조금씩 단속적으로 여기저기 뿜어대면서 가스를 냉각시키는 것이다. 냉각된 가스가 압축되어 생성된 증기를 전반적으로 상쇄하고, 주변의 뜨거운 가스가 흡착되면서 전체 공간의 압력이 낮아진다. 그렇게 하면 뜨거운 가스가 빠져나가 외부로 불길이 번지는 것을 막고 최선의 시야를 확보할 수 있다.

 
이 책에는 아래와 같이 일상 생활 전반에 걸쳐 숨어있는 물리학의 세계를 보여준다.
- 눈꽃: 육각형 눈 결정과 여전히 풀리지 않는 눈의 신비
- 원형으로 배열된 암석: 자연이 만든 ‘스톤헨지’의 비밀
- 냉각 혼합물: 냉장고에 꼭 필요한 아주 효과적인 냉매
- 냉기에서 나온 열기: 온도가 더 낮은 곳에서 열을 흡수하는 놀라운 장치
- 물과 불: 물이 오히려 더 큰 화재를 일으킬 수 있다?
- 검은색 옷을 입는 베두인족: 사막의 유목민들은 왜 검은색 옷을 입을까
- 광압: 빛이 비행기와 우주선의 동력이 된다?
- 편광 오징어: 어떻게 편광을 감지할까
- 거울 효과: 수면 안테나로 메시지를 포착하는 전략 잠수함
- 선별 반사: 비눗방울이 펼치는 색채의 마술
- 파속과 광속: 새로운 유형의 레이더와 광원을 이용한 영상 프로젝터
- 테라헤르츠선 촬영 때 부끄러워하지 마라!: X선에 강력한 라이벌이 나타났다
- 형태가 유지되는 파: 초고속 대용량 광통신의 숨은 주역, 광솔리톤
- 지진파와 모호면: 지구 내부는 어떤 구조로 되어 있을까
- 자기 기억 암석: 자기마당 정보를 이용한 화산암의 연대 측정법
- 자기 방호판: 우주에서 날아드는 입자로부터 지구를 지켜주는 방패
- 집 안에서 일어나는 방전: 복사기와 우주선에 적용되는 ‘마찰전기’ 현상
- 터키 커피를 원심 분리하라!: 아인슈타인과 브라운 운동
- 하늘을 수놓은 300개의 불꽃: 불꽃으로 하늘에 숫자와 글자를 새기다!
- 접착력: 자유자재로 벽을 타는 게코도마뱀과 판데르발스의 힘
- 수분 흡착기: 습기 쏙, 물 먹는 염화칼슘과 실리카젤
- 젖은 모래성: 누가 가장 멋진 모래성을 지을 수 있을까
- 다시 튀어 오르거나 깨지거나!: 타이타닉호가 침몰한 까닭은?
- 완벽한 고정: 고체 마찰력과 쿨롱의 법칙
- 바이올린과 경첩: 음향 효과에 숨겨진 물리학
- 보조보조의 원리: 저절로 돌아가는 회전 날개의 비밀
- 위아래가 뒤바뀐 추의 수수께끼: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 볼프강 파울의 이온 트랩
- 이제 돌을 이용한 에너지 시대가 온다: 지각 평형설과 판구조론으로 재생 가능한 에너지
- 물수제비뜨는 기술: 4톤이 넘는 폭탄이 수면 위에서 튀어 오른다?
- 유속의 차이: 완류인가 급류인가, 마하의 수에 해당하는 ‘프루드 수’
- 물고기의 영법: 탁월한 수영 실력을 자랑하는 물고기의 비밀
- 자전거의 균형: 넘어지지 않으려면 앞으로 나아가라!
- 인간의 힘으로 작동하는 헬리콥터: 2만 달러의 상금이 걸린 프로젝트는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 더 빨리 더 높이 더 힘차게: 육상 경기 세계 신기록의 비밀
- 경이로운 활쏘기 기술: 오랜 세월 활이 사랑받아온 이유
- 화살을 따라가보자: 과녁 정중앙에 꽂히는 화살의 비밀
- 회전력이 강한 공의 기술: 베컴이 차는 절묘한 프리킥의 비밀
 

[ 2010년 5월 23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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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저절로 좋아지지 않는다 - 한상권 교수의 치열했던 5년의 기록
한상권 지음 / 너머북스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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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값등록금' 문제가 사회적,정치적 이슈로 한참 달구어지던 지난 6월 11일 '한국사립대학총창협의회' 박철 회장은 중앙일보와 인터뷰에서 "대학이 성장하고 발전하려면 돈이 필요한데 사립대학은 등록금에 의존할 수밖에 없고 그것이 매년 등록금이 올라가는 이유다."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도 사립대학 등록금이 2000년 449만원에서 2011년 754만원으로 68% 인상됐음을 인정했다.(http://article.joinsmsn.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5624130&ctg=1200)
 
그는 기자가 그렇게 등록금을 인상했음에도 대학들은 항상 돈이 없다고 아우성인데 그 이유가 '외국 대학에 비해 방만한 운영을 했기 때문 아닌지'라고 질문하자, “우리 대학들은 대부분 세계 100위권에도 못 들어간다."라고 솔직하게 인정하면서도 그 이유를 "세계 유수의 대학들과 경쟁하려면 연구 업적이 필요한데 국제적인 학술지에 논문을 많이 써야 한다. 경쟁력을 높이려면 당연히 연구비가 많이 든다. 대학의 교육환경을 높이려면 건물과 시설도 늘려야 한다. 그래서 대학 적립금은 건축 적립금이 대부분이다. 학생들을 해외에 보내는데도 돈이 필요하다. 돈 쓸 곳은 많은데 국가 지원이 없는 사립대로선 등록금을 올릴 수밖에 없다."라고 딴 소리를 한다. 2000년부터 10년 동안 그렇게 등록금을 인상하였음에도 그런 변명을 내세우는 것이 과연 대학 총장이 할 소리일까? 건물과 시설이 많으면 자연스럽게 대학의 연구능력이 올라간다는 것인가? 세계 100위 이내의 대학이 운영하는 건물, 시설과 한국 사립대학의 건물, 시설을 비교하는 수치가 나오면 그 때는 뭐라고 변명할지... 등록금이 폭발적으로 인상되기 시작한 2000년부터 대학 내 정규직 교수를 줄이고 비정규직 교수, 강사 비율을 늘리면서 어떻게 대학의 연구역량이 늘어난단 말인가?
 
그러면서 '반값등록금'에 대한 대학의 계획에 대해 기자가 질문하자 그는 “반값 등록금을 당장 실현하는 것은 어렵다. 하지만 등록금 부담을 완화해야 하는 것도 사실이다. 우선 10~20% 경감하는 방안을 찾고 있다. 교육법에 사립대학은 등록금의 10%를 장학금으로 주게 돼 있다. 대학에 따라 15%를 주는 대학도 있다. 그 돈을 정부가 재정으로 부담하면 내년부터라도 등록금을 10% 내릴 수 있다."라면서 정부측에 그 책임을 떠넘기기에 급급했다.
그는 "사립재단이 학교를 만들었으니 기본적으론 정부가 아니라 재단이 돈을 대야 한다. 그런데 재단은 1년에 고작 1억~2억원을 내놓는 경우가 많다."고 사립대학교 재정의 진실을 고백하면서도 재단의 책임과 의무에 대해서는 입을 닫았다.
 
사학재단은 '사립학교법'에 의해 교육발전과 인재양성을 위해 설립한 것이다. 그리고 사학재단의 주인은 개인을 인정하지 않고 이사회에 의해 운영되도록 규정되어 있다. 하지만, 그동안 수도 없이 언론과 인터넷에 폭로되었듯이 사학재단의 설립자 등 일부 개인과 가족들이 재단과 대학을 사리사욕을 채우는 도구로 사용하고 있다. 상당수 사학재단은 부동산 투기와 건물 증축, 등록금 횡령을 일삼고 있고 재단 설립자와 가족끼리 여러 재단 이사회를 돌아가면서 겸직하면서 서로의 이익을 도모하고 있다. 정치권에도 지속적으로 자금을 뿌리고 국회의원을 배출하여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불철주야 애쓰면서...
 
 
이 책은 사학재단들이 재단과 대학 설립의 목적과 이유를 상실한 채 개인들의 사리사욕을 추구하기 위해 재단과 대학을 악용했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교수와 직원, 학생들을 억압하고 착취했는지를 알 수 있는 대표적인 사례 - 덕성학원과 덕성여자대학 - 에 대해 이야기해 준다.
덕성여대를 졸업한 후배들이 있기 때문에 개인적으로는 덕성여대 재단의 부당함과 재단과 대학의 민주화를 위해 10년 이상 싸워온 교수,학생,졸업생들의 이야기를 몇 번 전해들은 기억이 있다.
 
이 책은 저자는 그 지난한 싸움의 한 가운데에 있었던 한상권 교수의 이야기다. 저자가 덕성여대에서 해직된 1997년부터 박원국 덕성여대 이사장의 연임이 좌절된 2001년까지 5년 동안 일어난 일들에 관한 이야기를 담았다.
이 기간에 덕성여대에는 교육부 특별감사 두 차례, 국회 교육위원회 국정감사 네 차례, 관선이사가 세 차례 파견되었다. 또한 직무대행을 포함해 이사장이 일곱 명, 총장이 다섯 명 교체되었다. 덕성학원 이사장 임기가 5년인 점을 감안할 때, 직무대행을 제외하고 이사장이 다섯 번 교체된 5년의 기간은 평화로운 시기의 25년에 해당한다.
그만큼 덕성 민주화 운동은 치열했다. 65일간의 전교생 수업거부, 260일간의 총장실 점거를 포함하여 2,555명의 전국 지식인 서명 및 기자회견, 재단 항의방문, 성금모금, 가두시위 등 질풍과 노도처럼 일어났던 이 싸움은 1999년 한상권 교수의 복직과 2001년 박원국 이사장의 퇴진이라는 유례없는 결과를 낳았다. 한상권 교수의 부당한 재임용탈락으로 촉발된 이 사건은 불합리한 교수재임용 제도에 대한 불복종 운동이었고, 대학이라는 공공재를 사유화하여 전횡을 일삼았던 사학재단에 대한 거부운동이었다. 이 한가운데 이 책의 저자인 한상권 교수가 있었다.

부당한 재임용탈락을 철회하기 위해 싸우던 한상권 교수는 ‘학교가 조용해질 때까지 일 년 동안 해외에 나가 있을 것’을 전제로 한 복직제의를 거절했다. ‘언제’가 아니라 ‘어떻게’ 복직되느냐가 학원민주화를 위해 싸워온 학생들과 동료 교수들을 위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학내외의 학생, 지식인, 여러 단체들의 연대를 통해 한상권 교수의 복직투쟁은 교수들의 교수권과 학생들의 수업권, 직원들의 노동권을 요구하는 전면적인 권리투쟁으로 승화되었다. 이 책은 힘없는 개인들이 연대와 단결을 위해 노력했던 모든 몸짓들을 꼼꼼히 기록하여 개인의 복직 및 교수 재임용제의 개선, 구재단의 퇴진, 인사행정과 학사행정의 민주화 등에서 끈질기게 불의에 저항한 모든 사람들의 승리임을 증명하고 있다.

전례가 없는 일을 해냈을 때 ‘역사를 만들었다’고 한다. 그 ‘역사’는 다양한 방식으로 기록된다. 그렇게 기록된 한 시대를 분석하고 종합하는 작업을 하는 사람이 역사학자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역사를 만들고’, 수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기록하고, 또 수많은 사람들이 그 기록을 분석하고 종합하지만, 이 모든 것을 한 사람이 해낸 경우는 무척 드물다. 이 책은 개인인 한상권 교수가 부당한 압력과 불의에 대항하며 만든 ‘역사’를, 기록자인 한상권 교수가 정리한 다섯 권의 ‘투쟁백서’를 자료로 하여, 역사학자인 한상권 교수가 분석하고 종합한 우리 시대 역사의 한 단편이다.
한상권 교수는 한 시대를 살아가는 개인으로서는 치열하고, 시대를 증언하는 기록자로서는 부지런하며, 그 기록을 분석하고 종합하는 역사학자로서는 철저하였다. 자신이 한가운데 있었던 덕성민주화 투쟁을 다루면서도, “역사가는 사실을 원래 있었던 그대로 보여주기 위해 기록에 근거하고 정확히 서술하려고 노력하였다. 그러나 주관적 인식인 ‘서술된 역사’가 객관적 존재인 ‘본래의 역사’와 완전히 부합할 수는 없다.”라는 실증주의 역사학자 랑케의 말을 통해 학자적인 냉정한 시선을 보여주고 있다.
 
저자는 덕성 민주화운동을 빼앗긴 권리를 되찾으려는 ‘권리투쟁’과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으려는 ‘기억투쟁’, 두 가지 로 설명한다. 그가 해직된 후 ‘동토의 왕국’이라 불리던 덕성에서 기본권을 되찾으려는 ‘권리투쟁’이 일어났다. 사회의 공기(公器)인 대학을 사유물로 여긴 이사장의 그릇된 교육관 때문에 일어난 저항이었다. 재단 이사장에게 초법적인 권한을 부여한 사립학교법이 그의 일탈된 행동을 뒷받침해주고 있었다. 어느 사립대학보다도 낮은 급여와 열악한 근무조건, 끊임없이 발생하는 부당한 해직, 비싼 등록금에 턱없이 못 미치는 낙후된 교육시설, 무분별한 학부제 시행 등 암울한 교육환경에 맞서 교수, 직원 그리고 학생은 빼앗긴 교육권· 학습권· 노동권을 되찾기 위해 일어섰다.
박원국 이사장은 자신을 ‘교주(校主)’, 즉 학교의 주인이라고 일컬었다. 학교가 자신의 사유재산이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사립학교의 자주성을 확보하고 공공성을 앙양할 목적”으로 제정된 사립학교법에는 설립자의 소유 관념이 없다. 교육은 공공재(公共財)이기 때문이다. 덕성민주화운동은 대학을 사유물로 볼 것인가, 공공재로 볼 것인가라는 가치관 사이의 갈등이기도 했다.

기존의 질서에 대한 도전은 그 지배질서에 내재하고 있는 가치 체계나 구조를 무너뜨리지 않으면 성공할 수 없다. 이러한 의미에서 ‘기억투쟁’은 중요하다. 덕성학원은 모자 세습에서 형제 세습으로, 형제 세습에서 다시 부자 세습으로 이루어진 전형적인 족벌 세습재단이었다. 게다가 덕성학원 설립자라고 일컬어지는 송금선은 친일파, 즉 반민족행위자였다. 덕성학원은 단순한 족벌 재단이 아니라 친일 족벌 재단이었던 것이다. 덕성인은 기억을 둘러싼 투쟁 끝에 덕성학원 설립자가 친일파 송금선이 아니라 독립운동가 차미리사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그 결과 덕성여대는 친일 족벌 사학의 오명을 벗고 정통 민족 사학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었다. ‘차미리사 가치’와 ‘송금선 가치’ 사이의 대립은 독립운동가와 친일파 간의 반세기가 넘는 긴 싸움의 연장이기도 하다. 그리고 덕성민주화운동은 우리 사회가 친일파에 의해 오염된 역사를 청산할 능력이 있는지를 시험하는 무대이기도 했다. 

 
그는 복직을 법에 호소하지 않았다. 사립학교법이 “교원을 기간을 정하여 임용할 수 있다.”라고 규정했을 뿐, 재임용의 의무나 절차, 요건 등을 법령으로 규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재임용의 기준과 절차에 관한 근거가 실정법상 마련되지 않았다는 것은 교원의 지위가 법률적으로 보호받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재임용 관련 법규가 없으니, 재임용탈락 시비를 둘러싼 재판이 성립될 리 없었다. 재임용탈락자가 법원에 소송을 제기하면, 재임용 여부는 사법부의 심사대상이 아니라는 이유로 ‘각하’되었다(법원이 적법 여부를 심리하고 물리치는 ‘기각’과는 달리, 각하는 소송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판단이다). 부당한 재임용탈락처분을 철회시키기 위해서는, 사회적인 저항을 통해 ‘대법원 판례’를 넘어서는 새로운 판례, 즉 ‘덕성여대 판례’를 만드는 수밖에 없었다.
학내 구성원과 사회 민주세력이 연대해 부당한 재임용탈락처분을 뒤집은 사례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덕성민주화운동이 해직교수들 사이에서 복직투쟁의 전범(典範)이 된 것은 이 때문이다. 필자가 복직된 뒤, 제주산업정보대, 세종대, 서울대, 동의대 등 여러 대학에서 부당하게 해직되었던 교수들이 복직되었다.

덕성민주화운동이 한국 사회에 던진, ‘대학의 자유정신’, ‘법치주의’, ‘교육의 공익성’, ‘친일잔재 청산’, ‘국가권력의 공공성’, ‘공동선의 추구’ 등에 관한 문제제기와 의미는 원칙과 상식이 실종된 지금의 우리사회에서 더없이 소중하다. 역사적 기억은 대중이 공유할 때 현실을 극복하는 힘이 된다.
그는 지난날 덕성에서 있었던 정의를 향한 몸부림이 ‘사회적 기억’이 되어 미래를 창조하는 원동력이 되었으면 하는 생각으로 이 책을 펴냈다고 말한다.

그는 "시대가 아무리 마음에 안 들더라도 아직은 무기를 놓지 말자. 사회 불의는 여전히 규탄하고 맞서 싸워야 하기 때문이다. 세상은 저절로 좋아지지 않는다."라면서 책을 마무리한다.
 
 
교수로서의 교육권과 학생들의 학습권을 위해 1997년부터 지금까지 노력해온 저자의 의지와 열정에 경의를 표한다. 덕성여대의 사례가 다른 대학의 교수, 학생들에게 모범적인 사례도 되었을 것이고 배울 점도 많았을 것이다. 자신의 고통을 개인적으로 치부하지 않고 대학 차원에서, 사회적 차원에서 바라보고 다른 교수들, 직원들, 학생들, 졸업생들, 그리고 사회민주화 세력들과 연대하여 학원문제를 풀어낸 것 역시 현명한 판단이었다고 생각한다.
이 책은 사학재단의 끝없는 탐욕과 무능, 반교육적 행태를 알 수 있을 뿐 아니라 교과부 등 행정부와 국회, 법원의 무능과 편파성을 여지 없이 들추어냈다. 특히, 공정하고 공평해야 할 행정부와 국회, 검찰/법원의 행태는 대한민국이라는 국가권력의 주인인 국민들이 위임해준 권력을 행정부, 입법부, 사법부가 얼마나 형편없이 휘두르고 있는지 다시 한 번 보여준다. 전면적인 개혁과 쇄신이 필요함을 느낄 수 있다.
 
책을 읽으면서 아쉬운 점이 몇 가지 있다. 처째는 저자가 이 책을 펴낸 것이 2010년 12월 이었으나 책 속의 덕성여대 민주화 투쟁은 2001년까지만 담겨있는 점이다. 이미 2007년 7월 사립학교법은 '개악'되었다. 2008년 들어선 이명박 정부는 그 개악된 사립학교법을 '개악'의 취지에 맞게 철저하게 활용하고 있다. 그리고 그 이후부터 덕성여대를 포함한 전국의 사립대학은 몸살을 앓고 있다. 어째서 2001년 이후 10년간의 덕성여대 상황을 담아내지 않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둘째는 덕성여대 민주화 투쟁은 저자 말대로 대학 내 모든 주체들과 사회민주화 세력들의 공통적인 노력이었음에도 그 부분에 대한 내용은 책 속에 자세히 다루고 있지 않다. 마치 한상권 교수가 중심이 되어 모든 싸움을 주도한 것처럼 보이도록 그려져 있다. 비록 그 것이 사실이다 하더라도 다른 교수들, 직원들, 학생들, 졸업생들, 사회민주화 세력들의 노력도 동등하게 다루어져야 할 것이다. 그들의 참여와 노력이 없었다면 그나마의 '작은 성과'도 이루기 어려웠을 테니까...
셋째는 덕성학원의 구조적 문제와 덕성여대 민주화 투쟁을 바라보는 관점과 해결하는 관점이 적절하지 않다는 점이다. 지금 사립대학이 처해있는 문제는 사립대학 자체의 문제는 절대 아닐 것이다. 그것은 박정희 군사정권에서부터 뿌린 씨앗이 전두환, 노태우를 비롯하여 현재까지 지속되는 과정이라 생각한다. 그렇다면, 구조적이고 역사적인 관점, 특히 사회전체적인 시각과 제도적인 관점에서 사립대학의 문제를 관찰하고 그 대안을 모색해야 하는 것이다. 민주주의에서 모든 싸움의 결과는 제도와 문화를 정비하는 것으로 일단락되는 것이다. 교육에 대해, 대학에 대해, 사립학교법에 대해, 구조와 문화에 대해 분석하고 전체적인 관점에서 덕성여대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이 아쉽다.
(외부에서 접한 한상권교수에 대한 부정적,비판적 의견은 서평에 쓰지 않았다. 사실 확인이 필요하기 때문에...)
 
2010년 8월 교육과학기술부 산하 사학분쟁조정위원회(사분위)가 상지대의 운영 정상화를 추진하면서 구재단 측에서 추천한 정이사 4인을 승인했다. 같은 달 교과부가 사분위의 의결 내용을 최종 승인하면서 17년 만에 구재단이 상지대에 복귀했다. 조선대, 세종대에 이어 세 번째 구재단 복귀 결정이었다.
사분위는 덕성여대에도 2010년 10월로 임시이사를 파견했으나 이사회는 그동안 덕성여대 '학원분규'를 조정해내지 못했고 지난 8월 11일 사분위는 덕성학원에 임기 1년의 임시이사 7명을 또 다시 선임키로 결정했다. 하지만 덕성여대 총장과 덕성여대 정상화추진위원회는 이에 반대하여 교과부에 재심을 청구했다. 덕성 민주화투쟁은 아직 완료되지 않은 것이다.
 
올해까지 14년 동안 덕성여대의 학원민주화 투쟁이 지속되었음에도 왜 덕성여대는 정상화되지 않았을까? 문제를 정확하게 진단하고 분석해야 정확한 해결방안을 찾을 수 있다. 결국 커다란 범주에서 한국사회에서 대학의 기능과 역할, 사립대학의 존재 이유와 운영, 재단과 대학의 역할분담, 학원 주체들간의 존중과 역할, 사립학교법을 비롯한 제도와 관행, 교과부의 역할, 정치권과 언론의 역할 등을 총체적으로 다루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의 고민과 노력이 필요하고 전국민적인 관심과 이해가 필수적이다. 알고 해결방안을 토론하면서 대안을 마련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대학입학율이 80%나 되니 대부분의 국민들이 대학에 이해관계를 가질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정치와 정책이 중요하다. 현재 재직 중인 국회의원 상당수는 2007년 사립학교법 개악에 동참한 사람들이다. 그리고 2008년 국회의원 선거에서 한나라당이 과반수 의석을 차지했으니 '개악'에 동의하는 정당과 국회의원은 여전히 강력할 것이다. 그렇다면 결국 2012년 4월 국회의원 선거에서 사립학교법 개정에 동의하는 국회의원을 다수 배출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대통령 선거에서도 대학 개혁과 혁신에 대한 명확한 식견과 비전을 가진 인물을 선출해야 할 것이다. 또한 교과부도 개혁,쇄신해야 한다.
 
[ 2011년 9월 19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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