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움이란 이름의 편견 - 인간의 외모를 바라보는 방식을 리디자인하다
데버러 L. 로드 지음, 권기대 옮김 / 베가북스 / 2011년 1월
평점 :
품절


"그 사이 뱃살이 더 나왔네?" "운동할 시간이 없다는 것은 핑계지. 다만 게으를 뿐.. 시간은 주어디든지 아니라 만드는거야" "더 예뻐졌네!"
가족이나 친한 지인들에게 아무런 생각없이 습관적으로 꺼내는 이야기다.
이렇게 이야기를 하고나니 후 나는 아무런 느낌도 없다.
반대로 내가 자주 듣는 이야기는 "머리 좀 이쁘게 다듬지?" "옷을 왜 이렇게 촌스럽게 입어?" "그래가지고 어디 사업(영업)하겠어?" 등이다.

시내 카페에 책을 읽고 앉아가 잠시 집중력이 흐트러지면 주변 자리에 앉은 여학생, 아줌마, 여성들의 이야기가 들리기도 한다. 드라마 이야기, 연예프로 이야기와 더불어 반드시 대화 소재에서 빠지지 않는 것이 외모, 패션, 연예인, 성형수술, 다이어트, 화장류의 이야기다.

언젠가 우리 주변에서도 크고 작은 성형수술을 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10대 청소년들은 연예인 누가 성형을 했는지 훤히 알고 있다. 우리나라 케이블 TV 프로그램에서도 참가자들에게 성형을 해주는 프로그램이 있다는 기사도 읽은 기억이 난다. 이휘재가 진행자로 나오는 프로그램에서 여자 연예인들은 성형수술을 했던 사실을 전혀 꺼리지 않고 자랑하고 다른 연예인은 부러워하기도 한다.
현재 TV, 인터넷, 모바일, 지하철, 옥외광고판 어디서도 성형과 화장, 패션 등에 대한 광고와 기사가 넘쳐난다.

얼핏 생각해보면 이러한 모습과 생각들이 아주 당연한 듯 한 상황이다.
하지만 저자는 이러한 현상을 '사회적 편견'이자 '외모지상주의'라고 비판한다. 자연스러운 모습이 아니라 사회적 '병리'현상이고 또 다른 사회구조적 차별이며 부도덕한 자본의 착취이자 결과라고 주장한다.

예일대학교를 Summa Cum Laude로 졸업한 데버러 로우드는 미국에서 법 윤리를 이야기할 때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지도자이며, 남녀문제, 법률 및 공공정책 분야에서 가장 주도적인 지위를 점하고 있는 탁월한 학자인 동시에 미국 최고의 지성인이다. 미국변호사협회 여성분과위원회 회장 및 미국로스쿨협회 회장을 역임한 로우드는 현재 스탠퍼드 법대 교수로 재직 중이다. 그녀는 스탠퍼드 윤리센터를 설립했을 뿐 아니라 남녀 성차 연구를 위한 미셸 클레이먼 인스티튜트를 이끈 적도 있으며, 클린턴 행정부에서는 하원 법사위원회 소수민족 선임자문관으로 봉직했다. 법 윤리 분야의 탁월한 업적 등을 인정받아 변호사협회가 수여하는 Michael Franck상, Pro Bono Publico상, W. M. Keck Foundation상 등, 수많은 상을 타기도 했다. 로우드는 분주한 가운데 시간을 쪼개 전국법학저널에 칼럼을 기고하는가 하면, [아름다움이란 이름의 편견] 외에도 [Managing Pro Bono], [Women and Leadership], [In Pursuit of Knowledge], [Moral Leadership], [Gender and Law], [Access to Justice], [In the Interests of Justice], [Ethics in Practice], [Speaking of Sex] 등 20여 권의 저서를 발표했다.

아름다움을 추구하는(선호하는) 것은 단지 인간의 본능일까? 따라서 그것은 비난하거나 개탄할 수 없는 일일까? 하지만 미모라는 개념이 허망하고 부당하게 정의되었다면, 그리고 그 왜곡된 이미지가 위험하게도 인간의 판단과 행동을 좌우한다면, 그냥 방치해도 좋을까? 근거 없는 아름다움의 이상 때문에 상상을 불허하는 경제적자원이 낭비되고, 사기성 광고가 판을 치고 건강을 위협하며, 외모로 인해 혹독한 차별이 자행되고, 수많은 삶이 피폐해지고 있는데도 (특히 어린이들부터 그런 편견에 물들고 시달리고 있는데도) 국가와 사회는 이를 수수방관해도 좋은 걸까?

이 책은 이런 문제들에 대한 해답을 찾아가는 것이다.

저자는 아름다움이란 이름의 편견이 인간의 영혼을 지배해온 내력을 꼼꼼히 살펴보고, 소위 ‘루키즘’으로 불리는 외모지상주의의 엄청난 폐단을 세심하게 따져본 다음, 법률적, 정책적, 사회적 조치를 통해 이를 최소화하고 개선하기 위한 전략을 제안한다.
저자의 아이디어를 한 마디로 요약하면, 외모를 단순히 심미적 이슈로만 볼 것이 아니라 법적,정치적 이슈로 취급할 때 비로소 외모로 인한 편견과 차별을 없애고 진정한 사회적 정의와 평등을 이룩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외모로 인한 차별이 우리 사회의 가장 심각한 편견은 아니다. 하지만 그 피해와 영향은 너무나도 심각하고, 시간이 흐를수록 악화되기만 한다. 즐거움의 원천이요, 당당한 정체성의 표현 방식이어야 할 외모가 수치심의 원천, 피눈물 나는 투쟁의 목표로 삼았다.
이 책에서 그 해결의 단초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외모는 단순히 얼굴의 미모만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최근 몇 십년은 확장된 세계화에 따라 지금은 전세계 그 어디에서나, TV 시청이 가능한 곳에서는 여자애들이 패션모델과 연예인의 몸매와 외모에 자신을 맞추어야 밥을 굶고 살을 빼려고 애쓰고 있다. 세계화의 부정적인 모습은 각 지역의 고유 농산물과 문화, 언어를 멸종시키는데 이어 '미'의 기준, '인생'의 기분부터가 획일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현실 세계에서 외모의 중요성은 생각보다 크다. 그리고 외모지상주의에 따라가기 위한, 순응하기 위한 대가는 너무 크다. 대인관계애 있어, 경제적 기회에 있어, 자존감과 낙인찍기, 그리고 삶의 질에 있어서 외모중심의 문화는 사람들에게,  특히 여성들에게, 특히 청소년들에게 커다란 대가를 요구하고 있다.

누가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와 문화를 조성했을까? 저자는 이 문제를 사회생물학적 기반, 문화적 가치, 아이덴티티, 시장 요인, 테크놀로지와 미디어, 광고에서 찾아본다,

인간이 머리를 가꾸는 데 쓰는 돈만 매년 총 45조 2,200억 원, 효과조차 의심스러운 화장품에 허비되는 돈은 21조 4,200억 원, 오프라 윈프리조차 살빼기 스트레스로 넘어진다, 모든 의학 분야 중에서 발군의 속도로 성장하는 것은 성형외과, 발이 뭉그러지는 한이 있어도 ‘킬 힐’은 신어야 한다, 5세~10세 소녀들을 위한 미인대회만도 3천 개...
자, 이러고도 이 세상이 과연 제정신인가?

양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가끔씩은 개탄해 마지않으면서도, 다음 순간 한숨과 함께 잊어버리기 십상인 외모지상주의 혹은 ‘루키즘’의 모든 것을 파헤치고, 나아가 그 개선과 해결을 위한 실마리를 제공하는 탁월한 인문서다. 외모라는 편견의 오랜 역사, 그 가공할 폐단과 피해, 우리의 일상에 나타나는 그 편견의 모습들, 이로 인한 차별과 눈물겨운 투쟁을 생생하게 보여주는가 하면, 법조계와 학계에서 쌓아올린 치열한 연구와 경험을 토대로 이 괴물과도 같은 외모의 편견을 타파할 현실적인 전략을 제안한다. 특히 아름다움이란 이름의 편견을 바라보는 페미니즘의 고민이 흥미진진하게 그려져 있기도 하다.
아름다움의 허상에 온통 넋이 빠져버린 우리의 문화 ! 청소년들까지 미모의 노예로 전락시키기를 주저하지 않는 우리의 문화 ! 이 책으로 그 탈출구를 찾는 노력을 시작해야 한다. 미모에 집착하는 편견을 극복하지 않고서는 사회 정의와 도덕을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아름다움이란 이름의 편견]은 우리 모두의 책꽂이에 반드시 꼽혀 있어야 할, 허영과 편견에 관한 최고의 인문서이다.

다이어트와 성형수술을 생각하는 지인들에게 먼저 읽어보기를 권하고 싶다...

* 책 속의 문장 :
- 우리 여성들은, 스스로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게끔 그들을 세뇌하고 있는 얼토당토않은 미의 기준에 얽매인 채, 남자들의 인정을 받을 것을 매일같이 강요당하고 있다.

- 외모에 관한 선입견 때문에 우리가 치르는 대가는 실로 어마어마하다. 금액으로 따져볼까. 전 세계적으로 외모 가꾸기에 투자되는 돈은 적어도 136조 8,500억 원이다. 머리 가꾸는 데 대충 45조 2,200억 원, 스킨케어로 28조 5,600억 원, 성형수술 비용으로 23조 8,000억 원이 들어가고, 화장품 및 향수에 소비되는 돈이 각각 21조 4,200억 원과 17조 8,500억 원이다. 그뿐이랴, 미국인들은 다이어트로 47조 6,000억 원을 쏟아 붓고 있으며, 살빼기를 위한 피트니스에다 그보다 더 많은 금액을 소비한다. 그러면서도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지도 못 한다. 다이어트를 했던 사람들 중 95퍼센트는 1~5년 사이에 다시 몸무게가 늘어나며, 화장품 중에서 과학적으로 증명될 수 있는 혜택이 전혀 없는 것도 너무나 많다.

- 외모의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바로 그 외모의 개선에 신경을 쓰는 것이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효과적인 방법은 아니라고 한다. 이건 참으로 역설적이 아닌가! 외모에 대한 투자는 다른 형태의 소비처럼 지속적인 만족을 주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일단 그 새로움이나 참신함이 없어지면, 혹은 하나의 ‘문제’가 해결됐다 싶으면, 새로운 형태의 자기표현이나 개선이 필요한 것처럼 보이니까. 이러한 패턴을 사회학자들은 “쾌락의 쳇바퀴(hedonic treadmill)”라고 부른다.

- 월터 크롱카이트나 톰 브로코 같은 앵커들은 여전히 영향력을 행사하고, 남자 배우들은 노년에 접어들어서도 연애영화의 주연을 꿰찬다. 숀 코너리는 60대에 피플지가 선정하는 “가장 섹시한 남자”로 선정되었다. 하지만 여자는 어떤가? 젊었을 땐 자기 나이의 두 배인 남자들을 상대로 연기하다가, 노화의 기미가 조금이라도 보이면 우아하게 퇴장하거나 온몸에 “손을 봐야” 한다. 어떻게든 열심히 노력해봤자, 어느 칼럼니스트가 짙은 화장을 하고 나온 여성 정치인을 두고 했던 핀잔이나 듣기 일쑤다: “엔간한 나이가 되었는데도 아등바등 붙어 있으려고 무진 애를 쓰는 그녀에게는 어딘지 굴욕적이고, 슬프고, 필사적이며, 보기에 민망한 무엇인가가 있는 것 같다.” 그가 말했던 그 “엔간한 나이”는 기껏 43세였다!

- 스튜어트 이원의 유명한 표현처럼, 광고주들은 단순히 상업의 캡틴이 아니라 “의식의 캡틴”이다. 사회적인 의미를 창조하고 개인의 욕망과 아이덴티티를 형성하기 때문이다.

- 젊음을 격려해주는 건 좋지만, 젊겠다고 아등바등해서는 안 된다. “나라는 존재는 내가 무엇을 하느냐에 달려있지, 내가 어떻게 보이느냐에 달린 게 아님”을 이해할 때에만 비로소 중년의 자유를 누릴 수 있다.

- 여자들이 외모 때문에 시간을 낭비할 필요만 없다면 훨씬 더 많은 것을 성취할 것이라는 생각은 한 마디로 논센스다. 여자들이 더 많은 것을 성취하는 것은, 아름다움을 포기할 때가 아니라, 법적이고 사회적인 권리와 특전을 얻게 될 때다... 우리가 그 아름다움을 즐기지 못한다면 이 세상은 한층 더 생기를 잃을 뿐이다. 물론 우리가 아름다움에 얽매어 있다면 문제가 되겠지만... 여자들에게 힘을 주는 원천의 하나를 깎아 내리는 데 급급하지 말고, 페미니스트들이 여자들의 힘의 모든 원천을 고양시키는 노력을 한다면 좀 더 유용할 것이다.

- 외모는 즐거움의 원천이 되어야지, 수치심의 원천이 되어서는 안 된다. 외모에 대한 우리의 이상은 인종, 연령, 몸의 크기에 따른 다양성을 반영해야 한다. 이렇게만 된다면, 외모의 중요성이 과도하게 평가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취업과 교육이란 장으로 외모의 중요성이 넘쳐흐르는 일도 없을 것이다. 또 성에 따라 차별화된 그루밍을 강요당하는 일도 없을 것이다. 여성의 자존감은 외모가 아니라 성과에 직결될 것이다.

- 외모로 인한 차별을 보여주는 하나하나의 예는 사소하게 보일 수 있지만, 그것이 축적될 때의 충격은 어마어마하다. 그러한 편견은 능력의 원칙에 위배되며, 기회 균등을 잠식할 뿐 아니라, 오명을 악화시키고, 자존감을 갉아먹는데다, 개인의 자유를 제약하고, 계급, 인종, 민족, 성, 성적 취향에 근거를 둔 불이익을 한층 더 심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 외모를 위한 제품에 대해서 현실적으로 소비자들을 보호해주는 것은 상식뿐이다. 사람들은 광고에서 주장하듯이 주름살이 그냥 사라지는 법은 없다는 걸 깨달아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희망사항에 지나지 않는 것도 받아들이는 인간의 수용력 또한 과소평가할 수는 없는 노릇. ‘코즈메수티컬’ 스킨 케어 제품의 시장이 연 640억 달러에 달한다는 사실은, 소비자가 ‘알아야 할’ 것과 ‘실제로 행하는 것’ 사이의 엄청난 간격을 말해준다.

- 진보는 개인으로부터 시작된다. 그러나 그 초점을 단순히 그들의 선택에 맞추어선 안 된다. 진보는 동시에 다른 사람들을 향한 너그러움과, 사회적 태도 변화나 외모에 관한 정책의 변화를 위한 지원을 중심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 2011년 9월 26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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