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 잠언 시집
류시화 엮음 / 열림원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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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초반부터 20여 년간 명상과 인간의식 진화에 대한 번역서를 소개하면서 시를 써온 류시화시인은 자신이 직접 읽고 사랑했던 시들을 처음 모아 잠언 시집을 낸 것이다. 시집에 들어 있는 각 시들은 삶에 대한 통찰과 지혜가 가득 담겨 있다.
 
이 시집은 류시화시인의 <사랑하라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과 같이 잠언시집이지만, 다른 점은 시집에 들어있는 시들의 작자가 이름없는 ’무명씨’라는 점이다. 인디언에서 수녀, 유대의 랍비, 회교의 신비주의 시인, 걸인, 에이즈 감염자, 가수 등 지역과 시대를 뛰어넘은 다양한 무명씨들의 고백록이나 기도문들을 모아 엮었다. 하지만, 그들은 시인으로써 이름은 없지만, 자신의 삶에서는 개인사를 당당하게 완성한 개인들이라 할 수 있다. 사람이 어떤 경지에 도달하면 종교나 직업, 나이, 지역, 신분이 크게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작자 미상의 [어느 17세기 수녀의 기도]는 인간으로서의 욕망과 한계를 인정하면서도 신에게 간절하게 바라는 일종의 ’중용의 미’를 잔잔하게 보여준다. "적당히 착하게 해주소서. 저는 성인까지 되고 싶진 않습니다만, 어떤 성인들은 더불어 살기가 너무 어려우니까요..."

루디야드 키플링의 [만일]은 인간이 한 사람의 어른이 되어 세상에서 반듯이 살아가기 위해서는 신뢰, 지혜, 꿈, 인내, 의지, 용서가 필요함을 가정법을 취하면서 말해준다.

랍비 주시아의 [도둑에게서 배울 점]은 도둑으로부터 우리가 배워야 할 7가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것은 밤 늦도록 일하고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노력하며, 동료를 신뢰하고 최선을 다한다. 소유한 물건에 대한 욕심을 버리고 시련과 위기를 견뎌내며,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다는 것...

이름 없는 뉴욕 맨하탄의 거지의 [내가 배가 고플 때]는 사람들이 겉으로 얼마나 허위와 위선으로 가득차 있는지 야유하면서 우리들의 모습을 돌아보게 한다. "내가 배가 고플 때 / 당신은 인도주의 단체를 만들어 / 내 배고픔에 대해 토론해 주었소..."

작자 미상의 [수업]은 예수가 그의 제자들에게 하늘나라의 말씀과 교훈을 가르칠 때, 제자들이 질문하는 이야기에 빗대어 기독교도들의 무지함과 교만을 꾸짖는다. 요한이 말했다. "다른 제자들한테는 이런 걸 알려줄 필요가 있을까요?"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과는 다른 새로운 삶을 원하는 사람, 새로운 존재를 영위하고 싶은 모든 사람들에게 자신의 삶의 방식에 대한 냉정한 관찰법과 웃음과 감동을 전해주는 시집이다.  
 
시집의 제목이자 가장 오래 남았던 시인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을 소개한다.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내 가슴이 말하는 것에 더 자주 귀 기울였으리라.
더 즐겁게 살고, 덜 고민했으리라.
금방 학교를 졸업하고 머지않아 직업을 가져야 한다는 걸 깨달았으리라.

아니, 그런 것들은 잊어 버렸으리라.
다른 사람들이 나에 대해 말하는 것에는
신경쓰지 않았으리라.
그 대신 내가 가진 생명력과 단단한 피부를 더 가치있게 여겼으리라.

더 많이 놀고, 덜 초조해 했으리라.
진정한 아름다움은 자신의 인생을 사랑하는 데 있음을 기억했으리라.
부모가 날 얼마나 사랑했는가를 알고
또한 그들이 내게 최선을 다하고 있었음을 믿었으리라.

사랑에 더 열중하고
그 결말에 대해선 덜 걱정했으리라.
설령 그것이 실패로 끝난다해도
더 좋은 어떤 것이 기다리고 있음을 믿었으리라.

아. 나는 어린아이처럼 행동하는 걸 두려워하지 않았으리라.
더 많은 용기를 가졌으리라.
모든 사람에게서 좋은 면을 발견하고
그것들을 그들과 함께 나눴으리라.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나는 분명코 춤추는 법을 배웠으리라.
내 육체를 있는 그대로 좋아했으리라.
내가 만나는 사람을 신뢰하고
나 역시 누군가에게 신뢰할 만한 사람이 되었으리라.

입맞춤을 즐겼으리라.
정말로 자주 입을 맞췄으리라.
분명코 더 감사하고,
더 많이 행복해 했으리라.
지금 내가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하루하루의 삶 속에서 사람이 무엇 때문에 살아가는지,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지 다시 생각해보게 하는, 말 그대로의 잠언시라 할 수 있다. 나는 과연 지금 이 시구절 속의 '앎'을 깨닫고 있는지 자신할 수 없다. 나는 아직도 즐겁지 못한 순간이 많고 당장 해결하지도 못하는 고민을 안고 있다. 제대로 놀지도 못하고 사랑하지도 못하고 용기도 부족하고 타인의 장점도 찾아내지 못한다. 나는 더 많이 감사해야 하고 더 많이 행복하다고 느껴야 한다.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 2011년 2월 22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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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집권플랜 - 오연호가 묻고 조국이 답하다
조국.오연호 지음 / 오마이북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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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계를 잘 아는 것은 아니지만, 2010년 출판 상황은 악조건 속에서도 작지만 의미있는 모습이 보였다는 생각이 든다. 그 특징을 살펴보면,
첫째, 작년 12월 문화체육관광부의 ’독서실태조사’에 따르면 2010년 한국 성인의 연평균 독서율은 2009년보다 6.3% 감소한 65.4%로 집계되었다고 한다.(연합뉴스 2월 8일 보도) 1994년 86.8%에서 지속적으로 하락하는 추세가 이어졌다고... 대신 책을 읽는 성인들의 평균 독서량은 15.3권에서 16.6권으로 늘어났다. 독서시간도 늘어나고 도서 구입비도 많아지면서 전체 연평균 독서량은 2009년과 비슷한 10.8권을 기록했다고 한다. (한 권도 읽지 않은 성인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궁금하다.)
 
둘째, 인문사회 서적부분에서 몇 가지 눈에 띄는 현상이 있었다. 연초에 한국의 현실을 직시하고 새로운 것을 생각토록 만든 김용철씨의 <삼성을 생각한다>가 인기를 끌었고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가 인문서의 기존 기록을 갈아치우면서 2010년 한국에서 ’정의’가 사회적으로 지대한 관심과 요구로 자리잡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겨울에 접어들 즈음에는 장하준교수의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가 경제학 서적으로는 드물게 상당한 히트를 치면서 신자유주의와 시장주의에 대한 사회적인 경각심을 반영하였고 곧이어 출간된 이 책 <진보집권플랜>도 지금까지 세간의 화제가 되고 있다.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서는 한국사회의 구성원들이 ’바보상자(TV)’에 둘러쌓여 세뇌당하는 것 같으면서도 현실과 이성을 놓치지 않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고 생각된다.
 
2007년 한국인들은 충격적인 사건과 열정적인 경험을 되풀이 하고 있다. 이명박정권의 등장과 지금까지 3년 간의 집권과정은 기존에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방식의 파시스트 체제를 겪어오고 있고 지난 2008년에는 ’촛불’을 경험했다. 2009년부터는 많은 한국인들이 존경해 마지 않던 두 분의 전직대통령이 사망하고 뒤이어 법정스님, 리영희선생, 백낙청교수님도 이승을 떠나신 것이다. 2010년에는 보수여론의 예상을 뒤엎고 지자체 선거에서 한나라당이 참패하기도 했다. 의식있는 지식인들이나 시민들은 지난 3년의 과정이 끝도 없는 깊숙한 패배와 좌절의 구렁텅이에서 조금씩 바닥을 딛고 일어서는 과정이라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이 책은 다시 정치문제를 전면으로 내세우며, 즐겁고 행복한 상상을 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하고 있다. 이 책은 인터넷신문인 오마이뉴스 오연호대표가 질문하고 서울대 법대 조국교수가 답변하는 내용을 담은 것이다. 다양한 분야에 걸쳐 (스스로 진보지식인이라 규정하는) 조국교수가 무엇을 고민하고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잘 나와 있다. 조국교수는 책의 서문에서 2008년 ’촛불’을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어느 영역에서 무슨 일을 하고 있든 간에 다시 한 번 마음 속에서 불꽃을 피우자. 한국 사회의 진보와 개혁을 위한 분명한 비전과 정책, 그것을 실현할 수 있는 인물의 ’라인업’을 다 같이 고민하고 만들어보자. 그러면서 우리 모두 지금 서 있는 자리에서 한 걸음씩 더 나아가보자."고 제안한다.
 
이 책에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육, 일자리, 복지, 통일, 검찰, 진보세력 등 중요한 국가적인 아젠다를 대부분 포함하여 논의가 전개되고 있다. 물론 인터넷에서 어느 교수의 지적처럼, 각 아젠다의 전문성이 높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전체적인 관점과 방향, 흐름을 제시하고 각 분야에서 과거의 정책을 어떻게 평가하고 미래의 정책을 어떻게 접근해 들어갈지 의제를 설정하고 논의를 유도해내는 것으로서 큰 의미가 있다고 본다. 어떤 이념과 정책을, 누구를, 어떤 방식을 진보로 규정할지는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같은 매화꽃이라 하더라도 각 꽃이 서로 다르듯이 진보도 세부적으로는 서로 다를 수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누구를 위한 진보’이고 ’무엇을 위한 진보냐’라는 것이다.

조국교수의 주장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 진보개혁세력이 집권해야 국민들에게 희망이 있음을 공감시켜야 한다.
- 진보개혁세력은 연대와 단결을 끌어내야 한다.
- 386 국회의원은 ’영주’ 마인드에서 벗어나야 한다.
- 진보정당은 운동권 방식의 폐쇄성에서 벗어나야 한다.
- 진보적 상상력을 키워야 한다.
- 자녀들에게 3대 민생문제(교육,일자리,주택)에 대한 다른 상황을 만들어주어야 한다.
- 저출산 문제의 해법은 여성이 아이를 낳고 기르는 부담을 획기적으로 줄이는 제도화 : 직장의 보육시설 설치 의무대상 기준 확대
- 교육부분의 경쟁과잉, 학벌 병폐를 제도적으로 해결해야 한다.
- 반값 등록금, 반값 아파트, 준무상의료는 현재 한국의 부의 수준에서 가능하다. 정부예산 조정과 정밀한 증세를 통하여...
- 비정규직 문제의 해결 : 동일노동 동일임금
- 재벌기업 지배구조개선를 개선해야 한다. 스웨덴식으로 재벌기업의 지배구조를 인정하는 대신 노조의 경영참여, 불법경영이나 불법상속 포기 등을 빅딜할 수도 있다.
- 주택문제 해결을 위해 아파트 원가공개, 토지임대부 주택 시행해야 한다.
- 대학문제 : 지방대학 강화, 공공기관/공기업의 채용 다각화, 학력차별금지법, 국립대의 지역균형 선발제
- 교육예산 증액으로 대학등록금 절감, 사학비리 척결
- 북한 3대 권력세습 문제에 대한 입장 해결
- 한미동맹의 평등화 추진
- 사법개혁 :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는 필수다. 검찰 기소독점권 폐지
- 우리에게는 열정, 책임의식, 균형감각을 모두 갖춘 정치인이 필요하다.
 
이 책은 특히 486세대들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고 고민하게 한다. 다른 무엇보다 조국교수가 던진 말에 486세대들은 스스로 답을 생각하고 주변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어야 한다. “냉소, 초연, 안주를 넘어 자식세대에게 어떠한 세상을 물려줄 것인지 고민할 때가 되었다. 우리는 용케 생존에 성공하고, 나아가 세속적 기준으로 승자가 되기도 했지만, 우리가 겪었던 무한경쟁의 쳇바퀴 속으로 자식과 손자가 또 들어가는 일은 막아야 한다.”  여전히 정치적으로는, 관념적으로는 ’진보좌파’이면서 자신의 경제부분과 생활에서는 ’보수우파’가 되어버린 486세대들이 자기성찰과 혁신의 대열에 동참할 때 더 나은 세상으로 나아가는 길이 열릴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전쟁과 새마을운동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50대 이상에게 한국 사회의 미래를 맡기기 어렵다는데 모두 동의할 것이다. 그리고 일자리와 주택, 아이들 교육 문제에서 허덕이고 있는 30대에게도, 미래에 대한 비전도 희망도 보이지 않는 20대에게도 그 짐을 넘겨줄 수 없다. 가장 치열하게 20~30대의 젊음을 불태웠으면서도 운 좋게도 일자리와 주택, 아이들 교육에서 어느정도의 안정성을 확보하고 있는 486세대들이 가장 큰 책임감을 가져야 할 것이다. 486세대가 20대와 30대, 그리고 50대 이상에게도 손을 내밀어야 한다. 법정스님의 말씀처럼 "버리지 않으면 얻을 수 없다."
 
조국교수의 주장처럼, 정치나 권력에 대한 일반적인 혐오에서 벗어나자는 말도 경청해야 한다. 제도를 바꾸지 않고서는 꿈꾸는 것을 현실화할 수 없는 법이고, 이를 위해서는 권력을 잡아야 하기 때문이다. 한국인 개개인의 수준의 총체적 합계가 현재 한국정치의 현주소이고 이명박정권이 탄생하게된 배경이라고 생각한다. 
 
조국교수를 개인적으로 아는 것은 아니지만, 그리고 나 역시 각 부분에 대한 조교수의 정책과 대안을 모두 찬성하거나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의 말을 모두 귀담아 경청하고 그의 문제제기의 뿌리를 진지하게 받아들여 자신의 생각을 두 번, 세 번 돌이켜보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정치는 진보, 생활은 보수’라는 지적에 각목으로 뒷머리를 세게 얻어맞은 듯 지금도 얼얼하다...
 
자신의 생활과 행동을 돌아보지 않은 채, 거창한 정치와 경제에 대한 말만 번지르르 하고 실천이 전혀 따르지 않은 나부터 변해야 할 것이다. 또한, 내 주변에 가득찬 486세대들 역시 자신의 기득권과 관념을 버리지 않고 비판과 비난만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이켜 보아야 할 것이다.
 
모든 이들이 ’꼭’ 일독하기를 강력하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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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래는 [시사IN] 주최로 이해찬 전총리와 조국교수가 나눈 대담이다. <진보집권플랜>에서 다루지 않았던 여러 이야기를 마저 들을 수 있을 것이다.
 

이해찬·조국, “2012총선에서지면대선도필패한다
시사INLive | 이숙이 기자
sook@sisain.co.kr | 입력 2011.01.17 09:39 | 누가 봤을까? 50남성, 전라
 
이해찬전 총리는 정치권의 대표적인 전략가로 통한다. 총선 기획단장, 대선 기획본부장, 창당 기획단장 등 주로 ’기획’ 일을 맡아 선거판의 큰 그림을 그린 바 있다. 그런 역할로 김대중 정부와 의 탄생에 크게 기여했고, 두 정부에서 교육부 장관과 여당 정책위의장, 총리까지 지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그에게 ’내정’의 많은 권한을 위임했다. 그가 한국 정치사에 드문 ’실세 총리’로 기록되는 이유다.  
 
조국 교수(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도 ’진보 학자’ 중 독보적인 이론가다. 자신을 ’중도 좌파, 탈민족주의, 진보적 시민사회론자’(2007년 < 경향신문 > 의 ’한국 사회 지식인 지도’)로 분류하는 데 어느 정도 동의한다는 그는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어떤 법과 제도가 필요한지 연구하다 참여연대, 국가인권위원회 등의 일을 하며 조금씩 사회적 발언 수위를 높여왔다. 최근에는 < 오마이뉴스 > 오연호 대표기자와의 대담집 < 진보 집권 플랜 > 에서 진보 집권을 위한 밑그림을 펼쳐 보였다.  

이 같은 정치권 안팎의 두 전략가가 만났다. 2012년 총선·대선을 앞두고 진보·개혁 진영은 2011년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토론하기 위해서다. 대담은 1월3일 오후 이해찬 전 총리의 연구소(광장)에서 진행했다.

사회 :이명박 대통령은 2011년은 선거가 없기 때문에 일을 가장 많이 할 수 있는 해라고 강조한다. 야권에게는 어떤가?

이해찬:지난 3년은 고난의 행군 시기라 할 수 있다. 흔히 말하기를 민주주의의 위기, 민생의 위기, 남북관계 위기라고 해왔는데, 사람들이 정말 많이 힘들어하다가 2010년 지방선거를 계기로 에너지를 서서히 충전하고 있다. 2011년은 정권 교체를 준비하는 시기다. 그동안 내실 있는 야권 연대가 잘 안 돼서 후유증이 컸는데, 올해에는 정책 연합부터 시작해서 상호 신뢰를 쌓을 수 있는 중요한 시기라고 본다.

조국:한나라당에서는 김대중·노무현 정부를 ‘잃어버린 10년’이라고 하는데, 저는 지난 3년을 ‘저주받은 3년’이라 말하고 싶다. 2012년 4월에는 입법 권력, 12월에는 행정 권력이 바뀌고, 올해는 다수의 대법관과 헌법재판관이 바뀐다. 올해와 내년에 걸쳐 국가권력 전체가 바뀌는 것이다. 진보·개혁 진영은 6·2 지방선거의 성과에 기초해서 정책적·조직적 연대를 준비해야 한다.

사회:‘고난의 행군’ ‘저주받은 3년’이라는 센 표현들이 나오는데, 정작 대통령 지지율은 50%를 넘나든다.

이해찬:여론조사 방법론에 큰 결함이 있다. 지난 지방선거 때도 유권자의 투표 성향이나 지지율을 전혀 못 맞히지 않았나. 유선전화로 응답하는 인사들은 대체로 보수 성향이 많다. 반면 휴대전화 쓰는 젊은이들은 여론조사에 잘 잡히지 않는다. 그 방식으로 현 정부나 여당에 관한 지지율이 높게 나온다고 거듭 발표하는 건 심하게 말하면 여론 조작이다.

사회:대통령 개인에 대한 지지는 아니어도, 대통령직에 대한 최소한의 기대감 같은 게 들어 있는 건 아닐까?


   

ⓒ시사IN 백승기“2012년에는 삶의 질에 대한 요구가 더 강해질 거고, 한편으로는 전쟁 직전까지 가는 위기 상황을 경험한 까닭에 평화에 대한 요구도 높아질 거다.”이해찬
이해찬:근본적으로 잘못된 거다.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지지가 아니고 조작된 수치라고 보면 된다.

조국:내 주위를 확인해보면 이명박 대통령이나 정부에 대한 불만은 진보 진영뿐 아니라, 보수 진영에서도 많이 느껴진다. 정책 수행 능력이나 인사 시행 방식이 이 정도일 줄 몰랐다는 얘기들이 나온다. 하지만 진보·개혁 진영의 대안이 별로 없으니까 그냥 현존하는 것을 인정하고 가는 상황이 유지되는 것 같다.

이해찬:거기에 또 하나. 지난 3년 동안 정치적으로 억압된 사회였기 때문에 대개 반대 의견을 가진 사람들은 답변을 회피하는 경향도 있다.

▶2012년 시대정신은?

사회:민심은 결국 여론조사가 아닌 투표로 드러날 거라는 얘기인데, 그 표심을 모아낼 2012년의 시대정신은 무엇이 될까?

이해찬:대개 시대정신은 지나고 나서야 확인이 된다(모두 웃음). 그런데 사전에도 심층 면접조사를 해보면 윤곽은 잡힌다. 지난 지방선거 때도 4월쯤 수요 조사를 해보니 뉴타운 토건경제에서 삶의 질을 높이는 쪽으로 시민의 요구가 옮아가는 게 보였다. 2012년에는 삶의 질에 대한 요구가 더 강해질 거고, 한편으로는 전쟁 직전까지 가는 위기 상황을 경험한 탓에 평화에 대한 요구도 높아질 거다. 평화 체제와 민생민주주의, 크게 두 축 아닐까.

조국:이명박 정부 들어 첫 번째 총선에서 한나라당은 뉴타운으로 서울을 싹쓸이했다. 그런데 6·2 지방선거에서는 의무급식으로 뒤집어졌는데, 이 전환이 지니는 상징성이 크다(조국 교수는 ‘무상급식’ 대신 ‘의무급식’이라는 표현을 썼다. 급식은 국가의 의무라는 뜻에서다). 2007년 대선 때 MB를 택했던 여파가 이듬해 뉴타운으로 이어진 건, ‘아파트 재개발하면 내 집값 두 배 오른다’는 식의 환상이 대중을 휩쓴 거다. 그러다 뉴타운
결과가 거품으로 확인되면서 대중이 판단을 달리하게 됐고, 그것이 전혀 다른 비전인 ‘무상급식’으로 전환됐다. 뉴타운에서 의무급식으로의 전환, 이게 시대정신의 터닝포인트다. 실제로 유권자는 이념보다는 자기 삶의 문제를 구체적으로 해결해주는 정책을 원한다.

이해찬:요람에서 무덤까지라고 하지 않나. 사람이 태어나면 보육·교육·일자리·주택·
건강·중간 탈락자에 대한 사회안전망, 그리고 노후연금까지 일생에 걸쳐 크게 7가지 정도의 복지 영역이 있다. 이 부분에서 구체적으로 얼마만큼 자기한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될 것이냐가 민주주의 이후 중요한 사회적 요구가 됐다.

사회:대다수 대권 주자가 ‘복지’에 포커스를 맞추는 건 흐름을 잘 읽고 있다는 얘기인가?


   

ⓒ시사IN 백승기“박근혜 의원까지 복지를 얘기하고 있으니, 여야를 막론하고 이른바 ‘좌 클릭’이 이뤄진 거다. 유의할 점은 복지가 절대로 진보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점이다.”조국
조국: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까지 복지를 얘기하고 있으니, 여야를 막론하고 이른바 ‘좌 클릭’이 이뤄진 거다. 유의할 점은 복지가 절대로 진보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점이다. 국민연금·의료보험은 박정희 정부 때 만들어졌고, 복지도 비스마르크가 시작한 거다. 복지를 먼저 말한다고 해서 결코 권력이 오지 않는다. 복지정책이라고 해도 보수 진영이 얼마든지 채갈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이해찬:우리가 내년에 준비해야 할 것은 유능한 진보·개혁 세력의 정책 대안을 보여주는 것이다. 박근혜 전 대표가 주장하는 건 ‘줄푸세(세금은 줄이고, 규제는 풀고, 법질서는 세우고)’ 복지다. 줄푸세를 주장한 사람이 복지를 주장하니까 747 내세우는 이명박 정부와 크게 다를 바 없다. 유능한 진보·개혁 정책을 올해 준비하지 못하면 2012년에 소모적인 논쟁만 하게 된다.

사회:구체적 정책으로
가면 ‘박근혜 복지’와 차별화가 될 것이다?

이해찬:가령 무상급식으로 논쟁하는데, 저 사람들은 시혜적 차원에서 하자는 거고, 이쪽에선 시혜가 아니라 인간적 권리라는 거다. 비용도 유럽이나 일본은 아예 아동수당을 주기 때문에 무상급식보다도 더 큰 복지가 정립되어 있다. 내가 총리 할 때 아동수당을 주려고 검토해보니까 0세부터 6세까지 아동 300만명 정도에게 한 달 보육시설 이용비 20만원가량 해서, 1년에 200만원씩 주면 6조원이 들어간다. 이걸 3조원씩 반으로 나눠 시작하면 당장에라도 할 수 있다. 3조원 정도 재원은 종부세 유지나 임시투자세액공제 폐지로도 충당할 수 있다.

조국:한번 더 강조하자면 복지 정책은 보수에서 얼마든지 차용이
가능하다. 홍준표 의원이 반값 아파트를 얘기하니까 분위기 확 바뀌지 않나. 따라서 수구·보수 진영에서 하기 힘들어하는 결정타를 몇 개 준비해야 한다. 의무급식도 오세훈 시장은 뭐라 하지만, 김문수 지사는 결국 하고 있다. 내 생각으로는 노동이 빠진 복지는 위험하다. 아무리 보편적 복지를 얘기해도 대중은 시혜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서민 중산층이 두루 포함되는 노동문제를 같이 얘기해야 한다. 수구·보수는 노동 빠진 복지를 상정한다.

▶DJ·노무현 정부의 복지, 왜 취약했나?

사회:일반 대중은 사실 시혜적 복지냐 보편적 복지냐 하는 걸 분별하기 쉽지 않다. 그보다는 나한테 어떤 혜택이 있나가 관건인데, 그런 걸로 보면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 복지에 너무 소극적이었던 게 아니냐는 비판이 있다.

이해찬:DJ 정부 때 당 정책위의장을, 참여정부 때 총리를 맡았다. 그런데 DJ 정부 때는 IMF 위기로 공적자금 165조원을 빌려 썼고, 이자만 1년에 10조원 이상이었다. 세금을 올리지 않고는 복지 쪽으로 거의 출연할 자금이 없었다. 당시 예산 규모가 200조원밖에 안 될 때이다. 참여정부 때는 카드 위기 탓에 2003~2004년 마이너스 성장을 했다. 그러다보니 DJ 정부 때는 기초생활수급 문제, 참여정부 때는 기초노령연금 정도 맛보기만 만들었고, 실제로 재원 투입은 경기가 좀 풀어진 2006년에 와서야 약간 이뤄졌다. 그런데 지금은 재원이 없는 게 아니다. 국가 예산 300조원, 지방재정 100조원 해서 전체 규모가 400조원 정도 된다. 예산 효율성을 1%만 높여도 4조원을 활용할 수 있다. 우리 경제에서 독점재벌의 주도권이 너무 세고 재벌가에 돌아가는 세금 혜택이 상당하기 때문에 이를 견제하기 위한 정치력이 필요하다. 가령 2008년에 법인세 인하한 게 연간 4조원, 임시투자세 공제만 연간 6조원이다. 재벌 쪽으로 간 것만 연간 10조원이다. 서민의 세금을 올리지 않아도 중요한 몇 가지 보편적 복지는 할 수 있다는 얘기다.

조국:선대인 김광수경제연구소 부소장이 최근 <프리라이더>라는 책을 냈는데, 그 책은 증세 이전 단계에서 조세 정의, 세원 확보, 재정구조 개혁 등을 통해서 얼마나 많은 재원 확보가 가능한지 보여준다. 물론 보편적 복지를 전면화하게 되면 일정 부분 증세가 불가피하다. 하지만 모든 시민은 세금을 적게 내고 복지 혜택을 많이 받고 싶어하기 때문에 그런 본성도 직시하며 전략을 세워야 한다.

이해찬:스웨덴을 잘 볼 필요가 있다. 스웨덴은 복지 체계가 잘 갖춰진 국가이고 조세율이 35% 가까이 되는 나라인데, 페르손 (전) 총리를 만났더니 “복지정책은 처음부터 전면적으로 실시해서는 세금 때문에 도저히 수용이 안 된다. 그러니 일단 부분적으로라도 맛을 보여주고 혜택을 확인하고 부담을 요구하는, 단계적 접근을 해야 한다”라고 하더라. 그렇지 않으면 조세 저항 때문에 정권을 빼앗기는 경험을 하게 된다는 거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참 좋은 의도를 가졌었는데, 저 사람들한테 역공을 당한 것은 2030이라고 하는 20년 뒤 복지의 규모를 얘기하다보니 재정 규모가 먼저 나왔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유능한 진보는 내용도 중요하지만, 풀어가는 과정도 상당히 섬세하고 신중해야 한다.

조국:구체적이고 즉각적인 수혜가 온다는 걸 초반에 진보 진영이 보여줘야 한다. 복지는 하방 경직성이 있어서 한번 맛을 보면 밑으로 떨어지지 않는다.

▶‘박근혜 복지’의 파괴력은?

사회:그런 점에서 진보·개혁 진영 지자체 단체장들의 역할이 중요하겠다. 앞으로 2년 동안 실적으로 보여줘야 2012년 대선에 대한 기대감을 높일 수 있을 것 아닌가.

이해찬:굉장히 중요하다. 어제 안희정 지사(충남), 김두관 지사(경남)를 만나 ‘당신들이 올해 중요한 키를 쥐고 있다’고 당부했다.


   

ⓒ시사IN 안희태‘박근혜 복지’는 야권의 경계 대상이다.
조국:오세훈 시장이 보수층 지지도 얻고 대선 후보로 자리도 잡고 스포트라이트도 받고 싶었던 것 같은데, 결국 의무급식에 타협할 수밖에 없을 거다. 다른 지역은 전면으로 가고 서울만 안 하면 학부모들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의무급식은 올해로 끝날 거니까 진보·개혁 진영은 2탄을 준비해야 한다. 의무급식처럼 쉽고 강력한 그 무엇을 조율해서 지자체 몇 곳에서 동시에 시작했으면 좋겠다.

사회:뭐가 있을까?

이해찬:지금 젊은이들이 제일 절박하게 느끼는 건 일자리다. 그 다음 절박한 게 주택하고 보육. 특히 보육은 진보 세력의 핵심 지지층인 30~40대의 절박한 화두라 부분적인 지원 차원이 아니라, 아동수당을 주는 단계로
가야 한다.

조국:현재 우리 정치에서 지역·이념과 별도로 세대 논쟁이 상당히 중요하다. 30대가 가장 반MB 성향을 띠는데, 그 이유는 20대는 일자리가 최대 과제이고, 40대는 생활의 여러 과제를 겨우 해결한 상태인 데 비해, 30대는 모든 문제를 떠안아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20·30대를 타깃으로 한 정책을 잘 만들어내야 한다. 지자체 차원에서 공무원을 뽑든, 관내에 있는 회사들에 대해 인센티브를 주든, 여러 방식을 통해 채용률을 높이는 게 있다. 특히 자기 지역 출신들의 채용률을 높이는 방식으로. 30~40대 같은 경우는 말씀하신 아동수당 문제가 좋다고 생각한다. OECD 국가나 G20 국가급이 아닌 말레이시아도 아동수당을 준다. 브라질은 ‘보우사 파밀리아’ 정책에 따라 5000만명에게 생계 수당을 주고, 칠레에서 0~4세 유아는 전국의 몇 천 개 보육시설에 공짜로 다닐 수 있다. 우리보다 경제적으로 규모가 작은 나라에서도 복지를 실시하는 게 명백히 보인다.

사회:단체장들 소집 한번 하셔야 되겠다(웃음).

이해찬:자기들끼리 모임이 있다. 나도 가끔 나가서 대화하는데 본인들도 이런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고 있다.

조국:전국적으로 의무급식 벨트도 있고, 4대강 찬반에 대한 벨트도 있다. 거기에 전 사회적 논쟁이 벌어질 만한 추가 벨트가 필요하다. 그걸로 지방자치단체가 뜨겁게 달궈지는 게 2012년 4월 총선 전에 필요하다.

이해찬:실제로 영국 노동당이 집권에 실패했다가 1996년 재기할 때 지자체로부터 동력을 얻어서 성공했다.

사회:‘박근혜 복지’를 한번 더 짚고 가자. 현실적으로 가장 지지율이 높은 차기 주자가 ‘복지’라는 핵심 어젠다를 들고 나오니까 관심이 쏠린다.

조국:
개인적인 얘기일 수 있으나, 박근혜 캠프에 들어간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아무개 교수가 유신헌법을 만든 김기춘 전 의원 사위다. 박근혜표 복지는 한마디로 ‘김기춘의 사위가 스웨덴 갔다 와서, 박근혜 캠프에 들어가 만들어낸 것’이라는 얘기다. 진정성을 따지려면 그런 것부터 들여다봐야 하지 않을까.

이해찬:정책을 만들 때 결국은 계급적 힘이 작용한다. 복지를 하려면 국방비를 줄이거나 법인세를 올리거나 해야 하는데, 박 전 대표가 자신의 지지층인 재벌이나 보수층, 독점 언론의 이해관계에 반해서 과연 복지를 추진할 수 있을까?

조국:박 전 대표에게 직설적으로 물어야 한다. 부자 증세 할 거냐 말 거냐, 법인세 올릴 거냐 말거냐, 국방비 어떻게 할 거냐. 그래서 답변을 분명히 받아내야 한다.

이해찬:좀 걱정스러운 건 진보 진영 학자나 연구자들이 이런 걸 자꾸 관념적으로 접근하려 한다는 거다. 무상급식 얘기 나오면 ‘얼마 들어가고, 어디에서 마련하면 된다’는 식으로 수치가 나와줘야 한다.

▶평화가 핵심 어젠다 될까?

사회:이제 평화에 대해 얘기해보자. 2007년에 정동영 후보가 ‘평화’를 앞세웠다가 ‘경제’를 앞세운 이명박 후보에게 대패했다. 이번엔 평화 부분이 커질까?

이해찬:그렇다. 2012년은 한반도 주변국의 권력이 모두 바뀌는 매우 중요한 시기다. 중국도 새로운 주석이 선출되고, 미국도 선거가 있다. 러시아도 푸틴이 다시 출마할 예정이고, 북한은 2012년을
강성대국 원년으로 잡고 있다. 이럴 때 평화 체제에 대한 확고한 인식과 국민적 지지가 없으면 리스크가 엄청 커진다. 연평도 사건이라는 게 한발만 더 나가면 상호 교전 아닌가. 지방선거 때 보니까 평화에 대한 요구가 굉장하더라. 저 사람들이 천안함을 선거에 이용하려 했는데, 거꾸로 평화에 대한 욕구가 더 올라갔다. 그걸 보고 햇볕정책 10년의 성과가 여기에 있다고 느꼈다.


   

ⓒAP Photo연평도 포격 사건(위) 이후 ‘평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총선·대선 이슈로도 부각될 전망이다.

조국:6·15, 10·4 선언을 통해 지속되던 10년간의 평화 체제가 3년 만에 무너졌다. 유권자들은 보수 권력 뽑고 나면 안보에는 유능할 거라고 기대했는데, 이 정부는 대북정책의 지렛대를 스스로 포기했다. 미국 부시 정부의 원리주의자들처럼 북한 문제를 접근하고 있다. 유능한 진보라면 이제 외교나 안보에서도 유능함을 보여야 한다. 안보란 말 자체를 쓰기 싫어하거나 보수 것으로 넘길 필요가 없다. ‘안보에도 유능한 진보’, 이렇게 프레임을 전환하자. 10년 동안 직접 리스크 관리를 해봤고, 지난 3년간 온갖 일을 겪지 않았나.

이해찬:지난 지방선거 때 시민들이 자연스럽게 이런 구호를 외치더라. 1번 찍으면 전쟁, 2번 찍으면 평화. 전경들이 그 구호 쓰지 말라고 짜증내던데(웃음). 조 교수 얘기대로 평화라는 담론에서 민주·개혁 세력이 일정 부분 우위를 지니고 있다는 걸 인정받은 거다. 문제는 이 정부의 인식에 한계가 있다는 점이다. 얼마 전 중·일 갈등이 벌어졌을 때 일본 국민의 반응은 “왜 쓸데없이 중국한테 강경책을 써가지고 초강경 국면을 만들었느냐”였다. 예전 같으면 반중 여론이 확 일어났을 텐데 정반대 반응이 나온 건, 그만큼 중국의 위상이 커졌고 동북아에 파워 시프트(권력 이동)가 일어나고 있다는 의미다. 그런데 MB 정부는 여전히 한·미·일 삼각동맹만 강조하면서 후퇴하고 있다. 미국한테는 군사적으로 의존하지만 중국과는 경제적 의존관계가 점점 더 커지고 있기 때문에, 중국하고 나빠지면 바로 민생 경제에 타격을 받는다는 역학 구조도 국민에게 차근차근 설명할 필요가 있다.

조국:MB 정부가 중국의 부상을 관념적으로 인식하고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정치·외교적으로는 중국을 제치는 우를 범하고 있다. 중국으로서는 ‘얘들 뭐냐’ 생각할밖에.

▶야권이 대안이 될 수 있을까?

사회:복지와 평화라는 시대정신은 나왔는데, 다들 그런다. 그럼 야당이 대안이냐고.

이해찬:그래서 2012년 4월 총선 승리 여부가 관건이다. 1992년 선거 때도 YS가 3당 합당해서 총선을 치르고 압도적 다수당이 되고 나니까 그해 겨울 대선은 성립이 안 되더라. 그때 선거기획단장을 했는데 아무리 해도 150만 표 이하로 줄지가 않았다. YS가 워낙 못해도, 정주영씨가 잘라 먹어도 그랬다. 2012년도 언론은 대선 위주로 보도하는데, 총선이 관건이다.

사회:이긴 쪽이 대선까지 먹는다?

이해찬:총선에서 이기는 쪽으로 역학이 확 돌아가게 된다. 총선에서 이겼는데 대선에서 지게 되면 권력 구조가 엇각이 나고. 총선에서 지고 나면 대선에서 이길 동력을 찾아내기 어렵다. 따라서 총선 전략이 더 우선이고, 그 과정에서 대선 후보들은 총선에 얼마나 기여하고 진정성을 보였느냐로 평가받을 가능성이 크다.

조국:4월에 결판이 나면 흐름을 바꾸기 힘들 거다. 따라서 4월에 정책이나 인물이나 연대나 모든 걸 실험하는 장이 되어야 한다. <한겨레>의 어떤 논설위원이 ‘한나라당에는 박근혜라는 준마가 있고, 야권에는 조랑말이 여러 명’이라고 표현한 바 있다. 이 ‘조랑말’들이 2011년에 훨씬 적극 움직여야 한다. 보통은
가치와 이념이 정책으로, 정책이 조직으로, 조직이 막판에 가서는 인물로 결집되지만, 반대로 인물이 맘에 들어서 그가 추구하는 가치를 따라가기도 한다. 민노당 노선을 안 좋아해도, 이정희 보고 민노당 좋아하는 사람 생기는 것 아닌가. 주자들이 너무 몸을 사리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사회:왜들 몸을 사릴까?(웃음)

이해찬:각자 자기가 선 위치에 따라 서로 다른 방식으로 몸집을 키워가고 있다. 유시민 전 장관은 강연하러 다니고, 이정희 대표는 원내에서 싸우고, 손학규 민주당 대표는 전국을 다니고…. 그런데 이 과정에서 국민이 신명을 못 느끼는 건 하나도 막아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올해는 연대 틀을 빨리 만들어서 미약한 보이스 파워를 집단으로 키울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번에 종합편성채널을 네 개씩이나 주는 걸 보니까 결국 보수적인 매스미디어로 도배를 하겠다는 건데, 다행히 미니 미디어나 소셜 네트워크들이 활성화되고 있으니까 이런 부분도 더더욱 키워갈 필요가 있다.

조국:의석 수로는 밀릴 수밖에 없다는 걸 알면서도 야권 지도자들이 왜 저 정도밖에 못할까 하는 불만이 있는 게 사실이다. 저는 어떤 경우든 이기는 경험이 중요하다고 본다. 한번 이겨야 기세가 오른다. 2012년 4월 이전에 이기는 경험을 해야 한다. 재·보궐 선거든 상징적 정책이든 명백하게 이기고, 막아야 한다. 노무현 정부 때 한나라당이 ‘4대 개혁 입법’을 온갖 방식으로 저지해서 지지층을 다졌다. 대중이 승리의 경험을 맛보게 하기 위해 야권 정치인들은 각자 ‘한방’을 보여주어야 한다. ‘박근혜 대세론’에 위축되지 말아야 한다. 경제학자 폴라니가 한 말을 인용하겠다. “진정한 진리는 만유인력 법칙이 아니라, 중력을 뿌리치고 새가 하늘 높이 날아오른다는 것이다.”

이해찬:정치에서 이기는 경험은 정말 중요하다. 쭉 지다가 2009년 보궐선거에서 계속 이긴 게 지방선거 승리로 이어진 거 아닌가. 이런 점에서 본다면 올해 공동의 투쟁과 연대. 그 속에서 신뢰가 생기는 게 절실하다. 신뢰 없이 나중에 단일화하는 건 안 된다. 나하고 이정희 대표도 서울시장 선거 때문에 만났는데, 만나서 얘기하다보니 서로 신뢰가 생기고 선거 캠페인도 민주당 의원 못지않게 했다. 내가 출마했던 지역(서울 관악을)에 이정희 대표가 최근 사무실을 냈는데 우리 지역 사람들이 나와 연대가 있는 것처럼 생각하더라. 서로 차이를 확인하고 이뤄지는 연대가 튼튼한 연대다. 그 과정을 올 1년 가열차게 쌓아가야 한다.

▶보수 종편과 SNS의 싸움?

조국: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에 대해 덧붙이고 싶은 말이 있다. 그쪽 세계가 확실히 조·중·동 같은 곳과는 다르게 굴러간다. 영향력도 상당하다. 특히 20대는 신문은 안 봐도 이건 매일 한다. 그래서 정치인, 예비 정치인, 정당 모두 페이스북·트위터로 대변되는 SNS에 개입이 필요하다. 선거 시기에 ‘선거합시다’ 정도를 넘어서야 한다. 트위터 타임라인을 확인해보면 20대가 생각해내는 기막힌 아이디어들이 있다. ‘대중이 이런 것을 고민하는구나. 이래서 야당 혹은 이명박에 대해 짜증내는구나’ 하는 것도 알 수 있다. 이런 것을 포착해 20~30대의 마음에 불을 질러야 하는데. 지금 국회의원·정치인들의 멘션은 ‘오늘 내가 뭐 했다’ ‘이명박이 뭐 잘못했다’ 이런 것뿐이다. 주장하기 전에 먼저 들어야 한다. 지금은 공감이 먼저이다. 무명의 대중은 자기들 불만과 고민에 대해 유명인이 응답해줬다는 사실 때문에 보수였다가 진보가 되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한다(웃음).

이해찬:40대까지만 해도 소셜 네트워크가 아닌 인터넷 매체를 써오던 사람들이다. 민주당이 참 답답한 게, 미국의 무브온(move on: 온라인 시민운동 단체) 같은 것을 설치해보려고 연구를 꽤 했다. 그런데 돈이 들어간다니까 안 하더라. 그런데 오바마의 당선에 무브온은 굉장히 중요했다. 민주당은 늙은 당이 되었다. 20~30대와 소통하지 않고 옛날 표 얻어서 이기려고 하는. 그런데 선거에서 20~30대의 표를 못 얻고는 이길 수 없다. 486의 자녀들이 유권자가 되고 있다. 이 친구들을 만나보면 자유나 민주는 당연하다고 여긴다. 그 다음 중요한 것이 소통이다. 수직적이지 않고 수평적인 소통을 기대한다. 가치관도 집단적이지 않고 개인적이다. 그러면서도 자존심이 굉장히 세다. 이런 세대의 문화가 생겼는데, 이를 빠르게 잡아내야 한다.


   

ⓒ무브온 웹사이트 진보·개혁 진영의 집권을 위해서는 미국의 무브온(위) 같은 시민사회 단체의 움직임이 요구된다.

사회:민주당이 늙은 당인 것은 분명하다. 예전 야당의 역동성이 없고 많이 게을러져 있다.

조국:나는 대학에 있어서 항상 만나는 이들이 20대이다. 그러다보니 정치권에 있는 동년배 친구들을 만나면
감성적 괴리를 느낀다. 그들은 주로 동년배 이상의 후원자를 만나니까. 진보·개혁 진영에도 불소통의 문제가 없나 살펴봐야 할 것 같다. 경박함과 유쾌함은 다르다. 20~30대는 진지하면서도 유쾌함을 원한다. 나이가 많아도 그 문화 코드를 체득하면 20대에게 불이 붙는다. 노무현은 나이가 많지만, 솔직한 태도로 말하고 권위주의에 철저히 반대하는 그의 모습을 보며 20대가 열광했다.

사회:이 전 총리도 ‘대장 부엉이’로 불리며 20대 팬덤을 경험하지 않았나?(웃음)

이해찬:나도 깜짝 놀랐다. 노 전 대통령 장례를 치르고 오니까, 강의를 해달라고 처음 보는 20대 여성들이 찾아왔다. ‘쌍코(성형 정보를 주로 나누는 인터넷 카페 이름)’라는 말도 처음 들어봤다(웃음). 500명이 2만원씩 회비를 내고 강의에 참가하더라. 그들은 진보적이라서 이명박에게 반대하는 게 아니다. MB의 가식과 거짓말에 반대하는 것이다. 그들이 ‘쥐’라고 하는 건 경멸을 의미하는 거다. 이런 세대가 태어났다는 것 자체가 우리 사회의 한 단계 발전을 의미한다. 그런 단계까지 왔기 때문에 이제 우리 정치가 새로운 가치로 전환돼야 한다. 잘 먹고살기 위한 민생이 아니라, 인간으로서 품위를 지키기 위한 민생이어야 한다. 올해 진보 진영의 가치는 사람이다. 사람의 품위와 인격에서 연원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잡아야 한다.

▶야권 연대를 하려면?

사회:연대가 성사되려면 민주당의 양보가 관건인데, 쉽지 않아 보인다.

이해찬:지방선거는 주고받을 수 있는 자리가 많으니까 그나마 가능했는데, 총선은 한 자리밖에 없으니 소모전으로 갈 가능성이 크다. 더구나 지금처럼 집단 지도화되어 있으면 더 어렵다. 대선 나가려면 총선에서 먼저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려고 할 텐데, 누가 자기 땅을 내놓으려고 하겠나. 따라서 후보 단일화를 어떻게 해내느냐, 그 방법론을 찾는 게 현실적이다. 미국 민주당의 오픈 프라이머리도 실은 단일화의 필요성 때문에 생긴 거다. 대선은 물론이고 총선에서도 이 단일화의 프로세스를 잘 찾아야 한다.

조국:5차 방정식보다는 2차 방정식이 풀기 쉽기 때문에, 일단 소통합을 해야 할 것 같다.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이 합치고, 국민참여당은 어디로 갈
건지 두고 보자. 정당이 꼭 이념으로만 뭉치는 건 아니니까. 그 다음으로 연대의 방법과 절차가 문제인데, 정당법상 두 정당 사이에 경선이 불가능해서 골치 아프다. 정당과 정당은 못하니까 그 안에서 무슨 연대를 만들어 여러 방식으로 합의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연대는 감동을 주는 연대여야 한다. 감동 주는 연대를 위해서는 강자의 양보가 필요하다. 그리고 지난 경기도지사 경선 때처럼 접전을 벌이고 패자가 승복하는 모습이 주는 감동도 필요하다.

사회:그게 가능할까?

이해찬:노무현 후보가 부상하는 과정을 보면, 자기 헌신을 해왔던 걸 국민이 인정하면서 결국 후보가 된다. 이번에 대선에 나가려고 하는 사람들도 단일화를 위해 헌신하는 모습을 보여야 총선 후 지지가 그리로 모아질 거다. 그런 흐름을 선도해가는 그룹이 나와야 한다. 아무리 늦어도 올 4월 보궐선거 전에, 1월 한 달 준비해서 2월부터는 흐름이 보이기 시작해서 그 흐름에 의해 4월 보궐선거가 치러지고 성과가 나야 한다. 선도적인 그룹은 정치인만 참여하는 게 아니고, 대중적으로 보이스 파워가 있는 이들 50명만 시작해도 상당한 효과가 있을 거다. 올 한 해를 하나의 무브먼트로 만들어 나가야지, 협상에 의한 타결은 불가능하다. 조국 교수도 참여하고(웃음).

조국:저도 올해 무브온 같은 걸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금 시점에서 강조할 것은 우리나라를 책임지겠다고 하는 정치인이나 정당이 올해 완전히 몸을 던진다는 마음으로 나서야 한다는 거다. 현재 야권 정당 가운데 가장 강자가 민주당 아닌가. 강자로서 맏형으로서 민주당이 바뀌어야 한다. 지금처럼 반MB 반사이익, ‘호남 플러스 연대’로는 절대 집권 못한다.

이해찬:2012년에 진보 진영이 집권하지 못하면 평화도, 민생도 돌아올 수 없는 수준까지 망가진다. 그럼 2017년에 가서 되느냐? 정치라는 게 파도타기하고 똑같아서 다가오는 파도를 계속 타고 넘어가야 마지막에 상륙하는 거지, 피해갈 수 있는 게 아니다. 파도타기하다 익사하는 수도 많다. DJ는 끝까지 타고 넘어간 것 아닌가. 2012년을 놓치면 벼랑 끝이라는 위기감을 가지고 이 문제를 풀어가야 하고, 그러려면 민주당이 내용상으로 양보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그게 아니면 민주당이 내놓는 ‘잘못된’ 후보를 이길 수 있는 인물을 발굴하고 키우고 운동으로 끌고 가는, 그런 일을 시작해야 한다.

조국:권투 선수든 야구 선수든 이번 게임 포기하고 다음 게임에서 이기자고 하면 다음 게임도 지게 되어 있다.

▶개헌 등 주목할 만한 대선 변수는?

사회:그런 측면에서 개헌이 힘을 받지 않을까? 국회의원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세력도 만만치 않을 듯한데.

이해찬:개헌 문제는 단순하지 않다. 소선거구제와 비례대표를 현 수준으로 유지하면서 (내각제 등으로) 권력 구조만 바꾸려는 개헌은 굉장히 위험하다. 현재 권력 구조를 영구화하는 것이기 때문에. 아니면 중·대 선거구제로 바꿔서 사회 통합 차원으로 가야 하는데. 그러려면 자기네끼리 ‘빡치기’가 난다. 영남은 한나라당끼리, 호남은 민주당끼리. 국회 의석 3분의 2 확보하는 개헌이라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조국:나도 지금 시점에서는 논의 자체를 반대한다. 2012년 4월 선거 이후 선거구제 개편과 연동해서 논의할 수 있을 것이다.


   

ⓒ시사IN 백승기안희정 지사(위)를 비롯한 지자체 단체장들의 성과가 총선·대선의 주요 변수라는 게 중론이다.

이해찬:전형적으로 소선거구제 해서 망한 데가 일본 사회당이다. 일본이 중선거구제 할 때는 사회당이 100석 이하로 내려간 적이 없었다. 제1 야당 하면서 개혁적인 사람들이 꽤 많이 활동했다. 그러다 1994년도에 연정하면서 소선거구제로 바뀌었는데, 그때부터 자민당에 확 깨져가지고… 100석이 뭔가? 지금은 존재도 없는 당으로 몰락하고 말았다. 사실 소선거구제라고 하는 제도가 굉장히 민주적인 것 같지만, 사회 진영 간에 힘의 균형이 안 맞을 때는 아주 보수적인 제도다. 유럽 같은 경우는 진영 간의 역량이 우리처럼 비대칭적이지 않기 때문에 소선거구제를 해도 연정이 된다. 한쪽에서 독식을 못하니까 연정이 되고, 사회적 협약이 가능한 거다.

사회:주목할 만한 다른 변수는?

이해찬:한나라당 내 권력투쟁이다. 총선이 먼저라 공천권이 핵심인데, 박근혜 전 대표는 공천권을 못 갖고 있고, 친이계는 자기네가 공천 다시 해서 정권 재창출하려 할 것이기 때문에 이런 권력투쟁이 올해 하반기에 벌어질 가능성이 크다.

사회:한나라당이 깨질 수도 있을까?

이해찬·조국:그건 말하기 어렵다.

사회:조국 교수께서는 정말 정치권에 들어갈 생각이 없나?

조국:잘나가시다가 왜? 이미 여러 차례 제 입장을 말씀드렸는데….(웃음)

이해찬:나도 직접 출마할 생각은 없다. 당적을 다시 가질 생각도 없다. 당끼리 모이면 잘 안 되니까 연대를 추구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운동을 전개해 나갈 것이다.

사회:전반적으로 정리가 된 것 같다. 장시간 열변 토해주신 데 감사드린다.

녹취 도움:김경희·황승기 인턴 기자

※ 다음 호에는 ‘쾌도난마 한국 정치❷ 박세일-윤여준’편이 이어집니다.

(
http://www.sisainlive.com/news/articleView.html?idxno=9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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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영 지음 / 더팩트 / 2010년 7월
평점 :
절판


9년 전부터 알고 지내는 후배가 있다. 서울 소재 4년제 대학을 졸업하여 보험회사에 근무하다가 비지니스 관계로 2002년 겨울에 우연히 알게 되었고 2003년부터 같은 회사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그 회사는 부동산 매매 등의 업종을 주로 영위하던 곳이었는데 그 해 겨울에 결혼을 하여 경기도(도시지역)에 전세로 신혼입을 마련했다. 생활 조건 때문에 경기도에 살았던 관계로 강남 사무실까지 출퇴근 하느라 고생이 많았음에도 결국 2006년 집주인이 전세금을 대폭 인상시키는 바람에 고민 끝에 집 근처에 은행 대출을 받아 아파트를 마련했다. 은행 대출금을 대출한도 가까이 받았기 때문에 매달 대출이자를 납부하는데 곤혹을 치렀고 수도권 다른 지역과 달리 그 지역은 개발 호재나 정부의 도시계획 정책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아 부동산 가격이 오르지 않았다. 급기야 2009년 부동산 침체기 이후에는 오히려 집값이 내려가기 시작하여 요즘에는 아파트 시세가 대출금 이하로 내려간 경우도 생겼다.
 
그 후배는 아이가 둘이고 각각 양측 집안에 홀어머니가 살아 계신다. 부부 합산 1년 연봉은 5천만원에서 조금 모자라니 제세공과금을 공제한 1년 소득은 약4천만원 가량 된다. 대출이자는 연간 약1,000만원 정도이고 아파트 보유세, 관리비, 공과금을 합한 거주비, 아이 둘에 대한 양육비, 의식비용, 부모임 생활비 보조까지 합하면  결국 부부 합산 1년 소득으로는 가계를 유지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그러니 당연하게도 대출이자와 신용카드는 종종 연체될 수 밖에 없다. 현재 상태의 소득과 지출이 유지된다 하더라도 조만간 후배가 소유하고 있는 아파트는 경매로 넘어가는 최악이 상황이 발생할 것이다.
 
이 후배는 결국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전형적인 '하우스 푸어'다. 그 후배 말고도 내 주변에는 대출이자 때문에 정상적인 가정생활이 곤란한 이들이 적지 않아 보인다.
'하우스 푸어'는 말 그대로 '집을 소유하고 있는 가난한 사람'이란 뜻이다. 2010년 말 현재 강남 3구와 양천, 용산, 영등포 등지의 아파트 가격은 도시평균근로자가 월급을 20년 동안 한푼도 쓰지 않고 모아야 살 수 있을 정도다(3인 가족 부양시 389만원/월, 4인 가족 부양시 445만원/월, 2010년 통계청 기준). '하우스 푸어'는 자신의 소득과 지출규모에 맞지 않는 집을 소유함에 따라 집을 보유하고 있지만 기본적인 생활을 유지하기도 벅찬 가구를 말한다. 
 
한국에는 현재 '하우스 푸어'가 얼마나 될까? 저자와 김광수정제연구소가 국토해양부의 온나라부동산포털 자료에 근거하여 분석한 바에 따르면, 수도권에만 대략 95만 가구이고 전국적으로는 198만 가구 정도로 추산한다. 우리나라의 전체 가구수가 대략 1,400~1,500만 가구 정도 되니 가구수로만 계산하면 전체의 14% 정도가, 주택 소유자로만 계산하면 소유 가구수의 20% 이상(2009년 기준 한국의 자가주택 보유율은 약60% 전후..)이  '하우스 푸어'의 범주에 포함되는 것이다.(여기서는 다주택 보유자의 주택대출에 대한 수치는 개략적으로만 계산한 것임)
 
저자는 MBC [PD수첩]에서 프로그램을 제작하면서 재건축의 문제점을 연구하기 위해 직접 은마아파트의 4,424세대의 등기부등본을 모두 떼어 조사한 적이 있다. 저자는 방송 프로그램 제작 과정에서 한국의 부동산에 사회경제적으로 커다란 문제점이 있음을 알았고 이 책은 그러한 경험을 토대로 '하우스 푸어'의 실상과 '하우스 푸어'가 양산된 이유, 한국의 부동산 시장구조에서 풀어야 할 숙제와 대안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 펴낸 것이다.
 
책의 1부 [대한민국의 슬픈 자화상, 하우스 푸어]에서 저자는 한국에서 하우스 푸어가 얼마나 되는지, 하우스 푸어가 된 사람들의 여러가지 실례, 하우스 푸어에 대한 세대론, 하우스 푸어를 원하는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지금 이 순간이야말로 독자들이 현실적으로 냉정하게 계산기를 두드려야 할 시간임을 알려준다. 지난 2007~2008년 미국의 부동산 버블 붕괴 시점부터 미국에는 '하우스 푸어'가 무수히 나타났고 지금까지도 사회 문제화되고 있으며, 한국 역시 현재, 그리고 앞으로 하우스 푸어가 양산될 구조를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2부 [내 집을 꿈꾸는 사람들]에서 저자는 '대박의 꿈'이었던 재개발과 재건축이 실제 소유자들에게 어떤 비극과 슬픔을 안겨주고 있는지, 전국의 신규 분양시장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국제도시 송도의 허상, 그리고 기성 언론에서 감추어진 부동산 이야기를 말해준다. 이 글 속에는 멀쩡하게 집을 보유하고 살고 있다가 '하우스 푸어' 단계를 거치지도 않고 곧장 월세와 지하방의 도시빈민으로 전락한 사례들이 들어있다.
 
3부 [하우스 푸어를 낳고 있는 위험한 한국경제]에서는 세종대학교 김수현 교수와 시골의사 출신 경제학자 박경철씨가 애물단지 재건축에 대해, 김광수경제연구소 선대인 부소장이 한국의 위험한 부동산 경제에 대해, 경원대학교 홍종학 교수가 아파트 공화국의 위기를 진단한다.
 
그렇다면 한국에서 어쩌다가 이런 최악의 부동산 구조가 만들어 졌을까? 저자는 "정부 + 금융기관 + 건설업체 + 언론 + 부동산 정보업체들"이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위해 '부동산 덫'을 놓았다고 주장한다.
1. 1997년 IMF 금융위기 이후 한국은 정치,경제,사회,문화 등에 대한 전반적인 구조를 개혁할 수 있는 절회를 기회를 맞았으나 실패를 거듭했다. IT 붐과 신용카드 대란, 부동산 경기부양책을 쏟아부으면서 외형적인 성장에만 치중한 것이다.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는 개혁의 마인드와 의지는 갖고 있었으나 실질적인 정책내용과 실행방법을 가지고 있지 못했으며 재벌과 언론, 건설회사와 부정부패한 관료들의 속임수와 거짓정보에 넘어가 기회를 놓친 것이다. 특히, 국민의 공복으로서 건설업체, 재벌, 언론, 투기자들의 이익을 대변해 온 건설교통부, 국토해양부, 기획재정부, 금융감독원, 지자체 공무원, 국세청, 공정거래위원회, 각종 국책 연구소 등은 정부 책임자에게 거짓 정보를 제공하고 정책을 양산하여 부동산 거품과 서민들의 주택난, 금융기관의 대규모 부실을 가져온 것에 대해 막중한 책임이 있다.
2. 2000년 이후 시중은행들은 부동산 시장에 계속 펌프질을 해댔다. 박정희 정권 이래 계속되어 환란을 겪은 IMF 구제금융 사태 이후 관치금융이 사라졌음에도 금융기관들은 대출과 금융기법을 스스로 개발하지 못하고 외형적인 성장과 담보대출에만 목을 매어 집단대출과 '빌라깡' 등 무분별한 대출을 양산하여 금융기관의 본래 기능을 상실해 왔다.
3. 재벌과 건설업체는 자신들의 요구가 받아들여진 이후 정부의 부동산 경기부양책과 은행들의 무분별한 대출에 편승하여 건설업체들은 분양가 상한제 폐지와 선분양제라는 두 가지 무기를 가지고 부동산 가격의 폭등을 유도하고 그 과정에서 엄청난 폭리를 취해왔다. '한탕'을 위해 부동산에 뛰어든
4. 조선,중앙,동아일보를 필두로 하는 언론은 광고수입을 목적으로 부동산 시장의 거품을 조장하고 신문 지면을 건설업체들의 광고지로 도배하면서 올바른 경제정책을 유도하기는 커녕 정부의 적절한 정책과 규제를 방해하고 저지하여 부동산 거품의 폭리를 건설업체들과 나누어 가졌다.
5. 부동산 정보업체
 
그렇다고 하더라도, 부동산 거품이 키워지는 과정에서 주택을 구입한 국민들은 책임이 없을까? 자본주의가 아니라 하더라도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선택과 결정에 책임져야 한다.  
나는 2000년부터 시작된 [부자아빠 신드롬]을 기억하고 있다. 로버트 기요사키의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는 IMF로 인하여 촉발된 중산층과 386세대의 사회적,심리적인 위기감을 자극하여 "가난한 아빠는 죄인"이라는 인식을 전국적으로 확산시켰다. 나 자신 역시 이 책을 통하여 기존에 가지고 있던 '소박한, 검소한, 성실한, 착실한' 가장으로서의 지위와 역할보다 '부자아빠'로서의 역할에 치우치고 말았다. 
 
겉으로는 '내 집 마련의 꿈'이니 '정당한 투자'라는 말로 포장했지만, 우리 세대들은 2000년 돈과 지위에 대한 거대한 욕망의 포로가 되어버린 것이다. 20세기 말까지 이어져 오던 저축과 소비절약은 사라지고 어느새 우리 머리 속에는 "부채도 자산"이라는 관념이 자리잡아 과도한 대출을 받아서라도 주식과 부동산을 사서 자산을 운용하는 것이 '부자아빠'가 되는 길이고 '부자아빠'로서의 적절한 재테크 행위가 되었다. 신문과 인터넷, 옆사람들에게서 주식이나 부동산을 통해 '벼락부자'가 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술자리에서 푸념하면서도 집에 가서 남편과 부인은 자신들의 재테크에 골몰했다. 한마디로 '부동산 불패 신화'의 덫에 빠져버린 당사자들도 스스로 되돌아 보아야 한다는 말이다.
 
물론, 그 많은 중산층과 486세대 중에서 주식과 부동산 투자를 통해 재산을 증식한 경우도 있을 것이다. 가급적 빠른 시점에 시작한 사람들, 적절한 시점에 주식을 사서 적절한 시점에 주식을 팔아 돈을 번 운 좋은 사람들, 가급적 빨리 부동산을 처분하여 시세차익을 남긴 사람들...  하지만 대다수의 중산층과 486세대들은 그렇게 할 수 없었기에 주식과 부동산 투자로 적금을 날리고 빛만 늘어난 경우가 대다수일 뿐이다. 주식과 부동산에서 큰 돈을 벌려면, 엄청난 고급 정보와 십억대 이상의 현금과 자산을 소유해야만이 경쟁력이 있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의 인사청문회에서 부동산 투기를 한 자들이 바로 그런 경우에 해당한다. 즉, 적법하고 합리적으로 주식과 부동산에서 돈을 버는 사람은 극히 운 좋은 일부 사람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저자에게 아쉬운 점은 안타깝고 절망스러운 '하우스 푸어'의 현 상태를 풀어내기 위한 적절한 방향과 대안을 책 속에 제시하지 못한 것이다. 물론 마지막 3부에 전문가 대담의 형식으로 부분적으로 '하우스 푸어'와 관련한 전체적인 부동산 문제에 대한 몇 가지 방법을 제시하기는 했지만 1부 및 2부와 논리적이고 일관되게 연결된 해법이 되기는 어려울 것 같다.
 
그 많은 '하우스 푸어'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ㅠ.ㅠ;;  좀 더 면밀하게 공부해야 할 숙제다.
 
* 책 속의 문장 : 

- 강남 3구와 양천, 용산, 영등포 등지의 아파트 가격은 도시평균근로자가 20년을 한 푼도 쓰지 않고 모아야 살 수 있을 정도의 가격이다. 도시평균근로자의 10%의 고소득자들조차 10년을 한 푼도 쓰지 않고 모아야 살 수 있을 정도이다. 이 가격이 정상인지 묻지 말자. 이 가격이 정상이라면 정상인 대로 거품이면 거품인 대로 쳐다보지 않고 살다 보면 결국에는 경제적 진실에 부딪힐 것이다. (p.8)

- 내 집 마련의 꿈은 우리 사회에서 가장 강력한 이야기이다. 은행에서, 언론에서 심지어 국가에서도 당신의 이 꿈을 도와준다며 광고하고, 약속하고, 내세운다. (중략) 내 집 마련의 여왕들이 수십 억 원, 수백 억 원을 벌었다는 확인되지 않은 소문이 우리를 들뜨게 만들고, 직장, 계모임, 교회를 통해 퍼진다. (p.10)

- 하우스 푸어는 시간이 갈수록 더욱 냉엄한 현실이 되고 있다. 강남 재건축 단지, 1기 신도시와 2기 신도시, 서울 도심의 뉴타운, 경제자유구역, 그리고 숱한 수도권 분양 시장에서 무리하게 대출을 받아 집을 산 덕분에 집을 소유하고 있으나 빚에 짓눌려 삶이 피폐해진 사람들이 신음하고 있었다.(p.14)

- 물가 상승률이 15%라는 이야기는 집값이 액면으로 매매 시점 가격을 그대로 유지한다고 해도 물가 상승률을 감안하면 실질 가치로는 15% 떨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중략) 예금 금리를 최소 4% 정도 챙길 수 있었던 기회를 상실하고 금융 이자와 부동산 거래에 들어가는 수수료와 세금 등의 비용을 생각하면 2006년 이후 20~25% 이상 올랐어야 실질적으로 손해를 보지 않은 것이다. (p.33)

- 386세대는 정치적으로 독재의 압제에 시달렸지만, 경제적으로는 축복받은 세대였다. 3저 호황을 통해 국내 기업들이 급성장하는 시기여서 386세대는 취업걱정이 전혀 없었다. (중략) 386세대는 이렇게 대학 시절 열심히 데모하고도 마음 놓고 취업할 수 있었다. 상대적으로 탄탄한 직장에서 경제력을 비축했던 386세대는 2000년대 부동산 투기의 주력이 됐다. 일정한 경제력을 비축해놓았던 이들은 2000년대 초반 부동산 투기 붐에 뛰어들었다.(p.59)

- 하우스 푸어가 양산되는 이유는 일반 가계의 단순한 판단 착오 때문이거나 탐욕 탓으로 돌려버리기에는 매우 구조적인 근원을 갖고 있다. 정부-금융기관-건설업체-언론-부동산 정보업체들이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위해 일반 가계들을 부동산 덫이라는 거대한 매트릭스를 만든 것이다. (p.103)

- 2억 원을 20년 만기, 금리 8%, 거치 기간 없는 원리금균등분할상환 조건으로 대출시 한 달에 갚아야 할 원리금은 167만 2,880원이다. 매월 167만 2,880원씩 무려 20년 동안, 총 4억 원을 은행에 갖다 바쳐야 2억 대출이 종결된다, 반명, 한 달에 167만 원을 6.3% 복리금리, 일반과세로 저축하면 8.3년이면 약 2억 원을 모은다. (p.106)

- 강남 3구 재건축 아파트를 보유한 전현직 고위공직자는 모두 317명이었다. 그리고 그들이 보유하거나 보유했던 아파트의 숫자는 358채였다. 조사 대상인 1급 이상 고위공직자들의 약 10%는 강남3구 재건축 아파트와 직접 관련을 맺고 있다는 이야기다. 여기에 재산신고를 누락한 직계존비속을 포함한다면 그 비율은 휠씬 높아질 것이다.(p.145)

- GS건설은 미래가치, 브랜드, 그리고 완벽한 조망과 최고급 시설을 광고했다. 조망권에 대한 가격을 따로 매겨 2,000만 원에서 6,000만 원까지 지급됐다. 하지만 기대했던 것과는 달리 황량한 민둥산과 무덤이 시야에 들어왔다.건설사에서는 사업부지 이외의 땅이기 때문에 훼손된 상황에 대해서는 회사의 책임이 아니라고 해명했다.(p.157)

- (판교에) 분양받은 사람들 가운데 얼마나 그 아파트에 살고 있을까? 10세대 가운데 3세대 정도만이 실제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아직 입주조차 하지 않는 세대가 4분의 1이 넘는 상황. 판교 분양자 가운데 얼마나 부채를 안고 있을까? 조사 가구의 약 70% 이상이 부채를 안고 있었다. 그렇다면 부채 규모는 얼마나 될까. 평균 3억 원가량의 금융 대출을 받고 있다.(p.161)
 

[ 2011년 4월 13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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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왕자 비룡소 걸작선
생 텍쥐페리 지음, 박성창 옮김 / 비룡소 / 200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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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스님의 저서 <무소유>를 읽다가 이 책에 대한 스님의 설명이 들어있어 책꽂이에 있던 것을 꺼내 오랜만에 다시 읽었다. 이 책을 읽은 기억이 아주 어렸을 때와 대학 다닐 때로 기억하니 이번이 세 번째다. 책 표지에 [초등학생을 위한 세계명작]이라 써있는 걸 보니 아마 딸아이가 읽게 하려고 마련한 것이리라...
 
이 책은 1943년에 발표된 프랑스의 작가 생떽쥐베리의 작품이다. 작가는 자신의 비행기 조종사 경험을 바탕으로 하여 이 작품을 썼다.
 
세계적인 명작으로 평가받은 책이고 전세계 수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으며, 많은 이들의 글이나 말 속에서 거론되었기 때문에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책을 직접 읽었거나, 이 책의 이름에 대해서는 들었을 것이다. 작가는 이 책 <어린왕자>를 통해 어린아이처럼 순수하게 산다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가를 보여주고 있다.
 
비행기 고장으로 끝없는 사막에 추락한 조종사가 사막 한 가운데에서 한 소년을 만나게 된다. 그 소년은 자신이 살던 작은 별에 장미꽃 한 송이를 남겨둔 채, 여러 별을 여행하다 지구에 오게 된 어린왕자였다. 어린왕자가 지구에 오기까지 거쳐온 별들은 위엄을 지키는 일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임금님이 혼자 사는 별, 허영심이 가득한 모자 쓴 사람이 사는 별, 부끄러움을 잊기 위해 술만 마시는 사람이 사는 별, ’난 바쁘다’를 계속 외치면서 부자가 되기 위해 별의 수를 세는 사업가가 사는 별, 해가 뜨고 질 때마다 가로등을 켜고 끄는 일을 하는 사람이 사는 별, 탐험가의 이야기만을 듣고 지리책을 쓰는 지리학자가 사는 별이다. 어린왕자는 여섯 명의 어른들을 통해 휴식도, 사랃도, 꿈도 없이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무지와 헛된 욕망을 꼬집고 삶의 의미가 돈, 권력, 지식, 명예 등에 있는 것이 아니라 책임있는 사랑에 있음을 이야기한다.
 
어린왕자는 여우를 만나 "어떤 것을 잘 보기 위해서는 마음으로 보아야 해. 가장 소중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거든."이라는 가르침을 받고는 자기가 책임을 져야하는 한 송이의 장미꽃을 떠올린다. 그리고 자신의 별로 돌아가기 위해 안타깝고 신비로운 죽음을 맞이한다.
 
이 책은 어른을 위한 어린이 동화책이다. 작가 스스로가 서문에서 "나는 이 책을 어떤 어른에게 바쳤는데, 그 점에 대해 어린이들에게는 정말 미안하게 생각합니다."라고 한다. 하지만, 이 책은 어린이들 보다 청소년, 대학생, 어른들이 더 읽어야 한다. 나이가 들수록 더 자주 읽어야 할 책인 것 같다. 나이가 들면 더 생활에 찌들고 관성에서 벗어나기 어렵고 사랑에서 멀어지기 때문이다.
 
* 책 속의 문장
- "네가 친구를 원한다면, 나를 길들여야 해"
- "네가 언제나 오후 4시에 와 준다면, 나는 3시부터 마음이 설레기 시작할 거야"
 
[ 2011년 2월 25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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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반대한다 - 4대강 토건공사에 대한 진실 보고서
김정욱 지음 / 느린걸음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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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왜 사람을 죽이면 안되는 겁니까?"
1996년 일본에서 폭력에 대한 공청회를 진행하던 중에 고등학교 학생이 던진 질문이다.
학생이 이렇게 질문하거나 아들, 딸이 우리에게 물어보면 우리는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 잠시만 생각해보자. 당시 일본 문부성은 사람을 죽이면 안되는 논리적인 이유를 팜플렛으로 작성한다고 언론에 해명했다고 한다. 아마 한국의 교육과학기술부도 마찬가지로 대응할 것이다.
왜 사람을 죽여서는 안되는가? 사람의 목숨은 본래 소중한 것이니까, 하늘이 내려준 것이니까, 상대방 입장에서 생각하여, 사람을 죽이는 것이 허용되면 세상이 무지막지한 지옥이 되니까... 등등 철학적, 도덕적, 논리적인 이유는 얼마든지 댈 수 있다.
하지만, 이 질문에 일본의 한 지성인이 말한 것이 아마 적절한 대답일 것이다. "사람을 죽여서는 안되는 논리적인 이유 따위는 아무것도 없다. 사람을 죽여서는 안되는 이유는 '그래서는 안되니까 안된다"라고 하는 것 이외에는..."
 
"왜 사람을 죽여서는 안되는가?"와 마찬가지의 질문이 '왜 약자를 못 살게 굴어서는 안되는가?', 왜 쓰레기를 버리면 안되는가?'일 것이다. "왜 자연을 파괴하면 안되는가?" 역시 마찬가지다. 더 중요한 것은 "이런 주제를 논리적으로 설득해야 하는 나라는 이미 사람이 살 수 없는 나라"라고 저자는 말한다.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논리 설명할 수 없다고. 이런 문제는 논리의 문제가 아니라 직감의 문제고 도덕의 문제다.
 
이명박 정부가 추진하는 4대강 토건공사는 멀쩡한 강을 죽일 뿐 아니라 무수한 자연의 생명과 지구를 파괴하고 결국에는 사람을 살 수 없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저자와 같은 양심적인 지성인들과 많은 국민들이 반대의 목소리를 높이는 것이다. 저자는 단순하게 말한다. '왜 강을 파괴하면 안되냐고?' 그것은 '안 되니까 안된다'
 
저자는 40년 넘게 환경공학의 모든 성과를 검토해 보았지만 정부의 4대강 토건공사에 대한 환경공학적, 수문학적, 생태학적 측면에서 하나의 타당성도 발견할 수 없었다고 토로한다. 타당성이 없을 뿐 만 아니라 우리 강산을 회복 불가능하게 망가뜨릴 큰 재앙을 예고하고 있다. 한 가지만이라도 장점이 있다면 '일리一理가 있다'고 하고 싶지만 저자가 그런 긍정적인 마음으로 정부의 논리를 살펴봐도 정말 하나도 없으니 국립대에 근무하는 저자로서도 '난감한 노릇'이 아닐 수 없다.
 
그렇지만 저자가 생각할 때, 강의 파괴보다도 더 끔찍한 것은 이 잘못된 토건공사를 정부가 '4대강 살리기'라는 이름으로 포장하여 자연을 살리고 국민을 행복하게 하는 유익한 정책인 것처럼 국민을 속이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저자는 이 책에서 4대강 토건공사가 어떤 내용으로 되어 있으며 어떻게 강과 자연을 죽이는지, 그러면 왜 사람들이 살 수 없는지를 말하고 있다. 정부가 논리로 그 타당성을 주장한다고 하고 있기에, 저자 역시 논리로 타당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한다. 즉 4대강 토건공사의진실에 대해 누구나 납득할 수 있도록 국민들에게 제공하는 보고서라 할 수 있다.(1부) 그리고 2부에서는 우리가 어디로 가야할지에 대한 근원적인 물음에 대한 길을 제시한다. 저자는 [나눔문화]의 오래된 회원이기에 책의 중간에 박노해 시인의 시가 실려 있다.
 
1부 [4대강 토건공사의 변신]에서 저자는 정부가 주장하는 '4대강 살리기'는 '한반도 대운하'에 다름 아니며, 이명박 대통령이 국민들에게 직접 한 약속을 스스로 뒤집은 것임을, 정부가 주장하는 일곱 가지가 모두 이론적, 논린적, 상식적으로 허구임을 밝힌다. 정부의 일곱 가지 주장이란, 1. 강바닥의 더러운 퇴적물을 준설해야 한다., 2. 4대강 토건공사는 물을 깨끗하게 만든다., 3. 4대강 토건공사는 물 부족을 해결한다., 4. 4대강 토건공사는 홍수를 예방한다., 5. 4대강 토건공사로 34만 개의 일자리를 창출한다., 6. 4대강 토건공사는 하천 생택계를 살린다., 7. 4대강 토건공사는 강을 더 아름답게 한다.를 말한다. 저자는 각 항목에 대하여 학문적, 전문적, 논리적인 헛점과 거짓말 등을 지적하며, 모든 항목이 정반대의 결과를 가져오고 있다고 말한다. 결국 4대강 토건공사는 전국의 토건과 투기를 장악하고 있는 '강부자'와 지역의 '토호세력'의 이득을 위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진정한 강 살리기를 위한 대안을 제시한다.
 
2부. [이 땅에 살기 위하여]에서 저자는 몇 가지 원칙과 대안을 제시한다. 그것은 한국과 인류의 미래에 드리우는 암울한 먹구름을 제거하기 위하여 현재 지구상에 존재하는 에너지를 아껴 써야 하고 근본적으로 재생 가능한 에너지를 개발해야 하며, 자원 재활용율을 높여야 하고 지구가 받아들일 수 있는 환경용량 이상의 환경훼손 행위를 정당해해서는 안되다는 점이다.
 
서구와 달리 한국의 대학 교수들은 1980년대 민주화 운동 이후 지성인이자, 스승으로서 사회 문제에 대해 제대로 목소리를 내지 못해왔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 들어 4대강 토목공사에 대해 많은 교수와 전문가들이 적극적으로 반대운동에 나서는 것을 옆에서 바라보면서 많은 위안을 얻었다. 아직 한국의 지성이 죽지 않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고 한국의 대학과 학문에도 실낱같은 희망이 보이는 듯 하다. 특히, 저자는 한국의 최고 대학으로 인정받는 서울대학교의 전공 교수로서, 정년을 앞둔 노년의 전문가로서 앞장서서 후배들에게 모범을 보였다는 점에서 무한한 존경심이 들었다.
 
지금껏 '4대강 살리기'라는 허울만 남은 이명박 정부의 토건공사에 대해 나는 제대로된 이해도 하지 못했고 피상적인 수준에서 심정적으로 반대만 해왔다. 나의 대학 전공이 직접적으로 '토건'에 해당함에도 성실하게 문제에 다가가지도 못했고 동기들, 선후배들과도 심도 깊은 이야기를 나누지도 못했다. 물론 그 반대 역시 사무실, 식사자리, 술자리에서 주변 사람 몇몇에게 주장하고 동조하는 수준에 불과했고... 그 속임수 정책과 진행과정을 내 시간과 노력을 통해 알려고 노력하지 않았고 적극적으로 반대하고 막아내려고 노력하지도 못했다. 그런 점에서 나는 저자에게 부끄러웠고 그동안 반대 운동에 나선 모든 분들에게 감사하고 미안할 따름이다. 이제부터라도 내가 직접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노력을 다해야겠다고 마음먹게 된 것이 이 책이 나에게 주는 교훈이 될 것이다.
 
며칠 전 언론에 보도된 범종교계의 4대강 반대집회 기사를 아래에 옮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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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강은 자유롭게 생명은 평화롭게”


 
4대강 사업 저지를 위한 범종단 성직자 생명평화 기도회가 열렸다. <사진> 
범종단연대회의는 오늘(4월8일)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4대강 사업 중단을 위한 기도회를 거행했다.

연대회의는 이날 발표한 선언문을 통해 국민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는 현 정부를 비판하고 저지 운동을 강력하게 펼칠 것을 결의했다. 이날 기도회에는 조계종 환경위원회, 불교환경연대, 생명의 강 지키기 기독교 행동, 원불교 환경연대, 4대강 사업 저지를 위한 천주교 연대, 천도교 한울 연대 등 200여 명의 종교인이 참석했다.

연대회의는 “지난해 1만 여 명의 각 종단 성직자들이 모여 4대강 토건 공사의 즉각 중단을 요구했지만 이명박 대통령과 정부는 토건 공사를 강행했다”며 “지금 이 순간까지 자연을 죽이고 사람 목숨까지 죽이고 있기에 종교인들은 시청 광장에 다시 모였다”고 밝혔다. 이어 “종교인들이 지향하는 세상은 물질적 욕망에서 벗어나 생명과 평화의 가치가 우선되는 생태복지국가를 만들기 위해 각자의 자리에서 앞장서 노력 하겠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4대강 복원 운동과 물이용 부담금 폐지운동을 추진할 것을 밝혔다. 또 생명평화를 거스르는 정치인에 대한 퇴출 운동을 벌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연대회의는 “4대강 토건 사업은 지금 중단해도 결코 늦지 않다”며 “수 천 년 이 땅을 보듬고 흘러왔고, 수 만년 계속 흘러갈 생명의 강을 끝까지 지켜낼 것”이라고 강조했다.

연대회의는 이날 죽어가는 강을 위한 평화의 절 40배로 행사의 문을 열었다. 스님들과 목사, 신부, 수녀 등 각 종교인들은 생명을 파괴하는 4대강 사업 중단을 염원하며 절을 했다. 이어 천주교, 불교, 개신교, 원불교 순으로 생명의 강을 되찾기 위한 선언문을 낭독하고 종교별 의식을 치렀다.

전 조계종 환경위원회 위원장 주경스님은 이날 선언문에서 “4대강 사업으로 수천 수억의 생명을 죽이고 소멸시켰다”며 “이번 종교인 모임으로 진실을 드러내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스님은 “수 천 년 수 만 년 흘러온 자연은 영원히 함께 가야한다”고 강조했다.

이밖에도 생명의 강을 위한 노래 및 종교인들이 함께 부르는 노래, 피리연주 등의 공연도 펼쳐졌다. 
 

불교신문 홍다영 기자 
(
http://www.ibulgyo.com/archive2007/201104/201104081302287393.asp)  

[ 2011년 4월 12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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