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 잠언 시집
류시화 엮음 / 열림원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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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초반부터 20여 년간 명상과 인간의식 진화에 대한 번역서를 소개하면서 시를 써온 류시화시인은 자신이 직접 읽고 사랑했던 시들을 처음 모아 잠언 시집을 낸 것이다. 시집에 들어 있는 각 시들은 삶에 대한 통찰과 지혜가 가득 담겨 있다.
 
이 시집은 류시화시인의 <사랑하라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과 같이 잠언시집이지만, 다른 점은 시집에 들어있는 시들의 작자가 이름없는 ’무명씨’라는 점이다. 인디언에서 수녀, 유대의 랍비, 회교의 신비주의 시인, 걸인, 에이즈 감염자, 가수 등 지역과 시대를 뛰어넘은 다양한 무명씨들의 고백록이나 기도문들을 모아 엮었다. 하지만, 그들은 시인으로써 이름은 없지만, 자신의 삶에서는 개인사를 당당하게 완성한 개인들이라 할 수 있다. 사람이 어떤 경지에 도달하면 종교나 직업, 나이, 지역, 신분이 크게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작자 미상의 [어느 17세기 수녀의 기도]는 인간으로서의 욕망과 한계를 인정하면서도 신에게 간절하게 바라는 일종의 ’중용의 미’를 잔잔하게 보여준다. "적당히 착하게 해주소서. 저는 성인까지 되고 싶진 않습니다만, 어떤 성인들은 더불어 살기가 너무 어려우니까요..."

루디야드 키플링의 [만일]은 인간이 한 사람의 어른이 되어 세상에서 반듯이 살아가기 위해서는 신뢰, 지혜, 꿈, 인내, 의지, 용서가 필요함을 가정법을 취하면서 말해준다.

랍비 주시아의 [도둑에게서 배울 점]은 도둑으로부터 우리가 배워야 할 7가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것은 밤 늦도록 일하고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노력하며, 동료를 신뢰하고 최선을 다한다. 소유한 물건에 대한 욕심을 버리고 시련과 위기를 견뎌내며,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다는 것...

이름 없는 뉴욕 맨하탄의 거지의 [내가 배가 고플 때]는 사람들이 겉으로 얼마나 허위와 위선으로 가득차 있는지 야유하면서 우리들의 모습을 돌아보게 한다. "내가 배가 고플 때 / 당신은 인도주의 단체를 만들어 / 내 배고픔에 대해 토론해 주었소..."

작자 미상의 [수업]은 예수가 그의 제자들에게 하늘나라의 말씀과 교훈을 가르칠 때, 제자들이 질문하는 이야기에 빗대어 기독교도들의 무지함과 교만을 꾸짖는다. 요한이 말했다. "다른 제자들한테는 이런 걸 알려줄 필요가 있을까요?"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과는 다른 새로운 삶을 원하는 사람, 새로운 존재를 영위하고 싶은 모든 사람들에게 자신의 삶의 방식에 대한 냉정한 관찰법과 웃음과 감동을 전해주는 시집이다.  
 
시집의 제목이자 가장 오래 남았던 시인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을 소개한다.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내 가슴이 말하는 것에 더 자주 귀 기울였으리라.
더 즐겁게 살고, 덜 고민했으리라.
금방 학교를 졸업하고 머지않아 직업을 가져야 한다는 걸 깨달았으리라.

아니, 그런 것들은 잊어 버렸으리라.
다른 사람들이 나에 대해 말하는 것에는
신경쓰지 않았으리라.
그 대신 내가 가진 생명력과 단단한 피부를 더 가치있게 여겼으리라.

더 많이 놀고, 덜 초조해 했으리라.
진정한 아름다움은 자신의 인생을 사랑하는 데 있음을 기억했으리라.
부모가 날 얼마나 사랑했는가를 알고
또한 그들이 내게 최선을 다하고 있었음을 믿었으리라.

사랑에 더 열중하고
그 결말에 대해선 덜 걱정했으리라.
설령 그것이 실패로 끝난다해도
더 좋은 어떤 것이 기다리고 있음을 믿었으리라.

아. 나는 어린아이처럼 행동하는 걸 두려워하지 않았으리라.
더 많은 용기를 가졌으리라.
모든 사람에게서 좋은 면을 발견하고
그것들을 그들과 함께 나눴으리라.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나는 분명코 춤추는 법을 배웠으리라.
내 육체를 있는 그대로 좋아했으리라.
내가 만나는 사람을 신뢰하고
나 역시 누군가에게 신뢰할 만한 사람이 되었으리라.

입맞춤을 즐겼으리라.
정말로 자주 입을 맞췄으리라.
분명코 더 감사하고,
더 많이 행복해 했으리라.
지금 내가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하루하루의 삶 속에서 사람이 무엇 때문에 살아가는지,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지 다시 생각해보게 하는, 말 그대로의 잠언시라 할 수 있다. 나는 과연 지금 이 시구절 속의 '앎'을 깨닫고 있는지 자신할 수 없다. 나는 아직도 즐겁지 못한 순간이 많고 당장 해결하지도 못하는 고민을 안고 있다. 제대로 놀지도 못하고 사랑하지도 못하고 용기도 부족하고 타인의 장점도 찾아내지 못한다. 나는 더 많이 감사해야 하고 더 많이 행복하다고 느껴야 한다.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 2011년 2월 22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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